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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의 The Issue - 인민권력의 제도화

a issue가 아니라 The Issue. 그러니까 다양한 문제 중에 하나가 아니라 한 가지 핵심을 이루는 절대적 문제라는 얘기.

 

혁명사와 루소, 맑스, 레닌, 로자, 그람시를 거슬러 올라가며 정치학도로서 귀결된 하나의 결론 - 정치학은 현상을 서술하는 학문일 수 없다. 현상을 어떻게 더 정교하게 묘사할 것인가에 집착하는 현대의 주류 정치과학자들마저도, 자신들의 묘사를 토대로 현실 정치에 한 마디 하는 것을 사명쯤으로 생각하는 마당이다. 결국 정치라는 것 자체가 - the political 자체가 - 인간의 주체적 활동이며 현재적 운동이기 때문에, 그에 대해 언급한다는 것은 결국 하나의 동학(動學)이며 변화에 대한 개입이어야만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리고 무엇을? 근대정치가 태동하면서부터 지금까지 정치에 대한 담론적 접근의 대전제는 결국 하나였다. 어떻게 더 많은 사람의 복리를 더 많은 사람의 결정권 하에서 추구할 것인가. 즉 다시 말해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라는 식상하지만 간명한 정치의 정의 속에서 볼 때, 권위를 보다 넓게 그리고 배분을 보다 많이 해내는 것이 좌우를 막론한 모든 근대정치 이론의 핵심이었다.

 

이러한 인식에는 결국 하나의 아이디어가 깔려 있다 - 인민주권. 즉 권력이라는 것이 단순히 한 개인 혹은 신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에 의해 창출되고 재생산되는 것이라는 인식. 이것은 인민이 주권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에서의 인민주권 뿐 아니라, 결국 절대군주조차도 공동체 전체의 재가(그것이 비록 최초의, 단 한 번의 재가일 뿐일지라도)에 의해서만 성립 가능하다고 주장한 홉스적 의미에까지 확장될 수 있다. 즉 근대정치 담론의 가장 위대한 대전제는 권력이 집단의 것이라는 점이다.

 

여기에서 결국 하나의 The Issue가 제출된다. 이 집단의 것인 권력을 어떻게 집단 내에 정착시킬 것인가? 어떻게 그 실행과 출현, 작동과 사멸을 우연적인 계기들이 아닌 인간의 의식적 통제 하에 놓을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이 제출되지 않는다면 정치에 대한 모든 언급은 한낱 헛소리로 변한다. 주사위의 눈이 다음번에 무엇이 나올 것인가에 대해 논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대답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요소들에 대한 해명이 소전제로서 필요해진다. 첫째로 인민이 권력을 가진다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가에 대해서, 둘째로 권력이 안정적으로 재생산되기 위한 준거와 그것이 재생산되고 있다는 표현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셋째로 우리가 권력을 통해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에 대해서.

 

이에 대해 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은 이렇게 해명한다. 첫째, 인민이 권력을 가진다는 것은 투표권을 가진다는 것이다. 둘째, 권력이 안정적으로 재생산되기 위한 준거는 법치이며 그것이 재생산되고 있다는 표현은 평화적이고 주기적인 정권교체이다. 셋째, 우리가 권력을 통해서 하고자 하는 것은 국민의 후생복리 증진과 대외 안보이다.

 

루소는 이렇게 해명한다. 첫째, 인민이 권력을 가진다는 것은 정치체의 모든 행위가 일반의지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둘째, 권력이 안정적으로 재생산되기 위한 준거는 정기적인 집회이며 그것이 재생산되고 있다는 표현은 인민에 의한 주기적인 헌법 재가이다. 셋째, 우리가 권력을 통해서 하고자 하는 것은 국가의 공동선 추구이다.

 

맑스는 이렇게 해명한다. 첫째, 인민이 권력을 가진다는 것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부르주아 계급을 타도한다는 것이다. 둘째, 권력이 안정적으로 재생산되기 위한 준거는 생산력의 발전이며 그것이 재생산되고 있다는 표현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이다. 셋째, 우리가 권력을 통해서 하고자 하는 것은 계급지배의 철폐와 국가의 사멸이다.

 

뭐 이런 식인 셈인데(쓸데없이 예를 너무 많이 들었다), 역사적으로 이루어진 이러한 논의들은 여전히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 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의 속류적 인식은 차치하고서라도, 루소의 경우 국가를 윤리적 대상으로 삼아 정치와 윤리를 통합하는 계몽주의 시대의 한계적 오류를 범했고, 맑스의 경우 실제로 저러한 해명에 대해 명확하고 체계적인 이해를 제공하지 않는다. 레닌이 그 빈 자리를 메꿔 써내려갔으나 여전히도 국가주의적 한계에 노출되어 있고, 그람시의 경우 보다 통합적인 이해를 시도했으나 그 저술이 가진 본원적 한계 때문에 너무 모호하다.

 

결국 정치학은 여전히도 The Issue에 대한 해명을 시도해야 한다. 권력이란 무엇이며, 인민이 그것을 가진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그리고 그것을 정착시키고 제도화시킨다는 것은 어떻게 성립 가능한가? 이것은 종국적으로 사회 전체의 변혁 프로젝트와 연결되며, 과정과 목표 양편에서 체계적이고 사려깊게 정리되어야만 한다. 파편적으로 산개해 존재하는 주먹구구식의 이해들을 종합적으로 다룰 필요가 있다.

 

다시 제목으로 돌아와서, 인민권력의 제도화 -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어쨌든 자신이 공부하는 학문에서 평생을 바쳐도 답을 내리기 힘들 듯한 과제를 발견하는 것은 절망적이면서도 동시에 고무적인 일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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