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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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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05

1.

 

아침부터 쓰는 오늘의 일기는, 조금 길어질 듯하다.

 

2.

 

1주일간 잠수를 탔다. 별 이유 없이, 그냥. 잠수타는 와중엔 WoW를 했다. 흑마법사 63렙을 찍었다.

 

쓰레기처럼 산다는 것도 즐겁다. 그것이 지속될 수만 있다면 말이다.

 

그러나 지속 불가능성을 알기에, 담담히 짐을 챙겨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3.

 

굳이 잠수 같은 걸 타지 않아도 충분히 쓰레기처럼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매일 새벽같이 일어날 수 있었던 바람직한 생활 습관은 한 번의 휴학으로 전부 까먹고, 줄담배의 소비량은 늘어만 가고 있으며, 장래가 걸려 있으니 정말 중요하다고 공언하고 다녔던 이번 학기 학점 관리는 이미 개판이 되었다. 써야 할 글과 레포트가 쌓여 있어도 몸이 움직이지 않아 결국은 하릴없이 디씨나 뒤적거리든지 만화방을 전전하는 꼬락서니는 가관이다.

 

당장 오늘만 해도, 현대 서양의 형성 레포트를 늦었지만 마무리지어 내려 했지 않았는가. 그래서 꼭!! 오랜만에 아침 일찍 일어나서 남는 시간에 남은 레포트를 마무리짓고 학교에 가야지라고 생각하지 않았던가. 정말 오늘도 내 의지로 일어나지 못하면 내가 개(犬)다 라고 혼잣말하지 않았던가.

 

...지금 시각은 10시 15분, 나는 훌륭한 개새끼가 되었다.

 

4.

 

나는 어쩌면 운동을 하려는 인간이 아니라, 그냥 운동 오타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니, 비단 운동 뿐 아니라 어떤 일에도 오타쿠 수준을 못 벗어나는, 그런 인간.

 

오타쿠와 전문가의 차이는? 전문가는 진지하고 깊이 있는, 때로는 많은 인내를 필요로 하는 수련과 노력을 통해 내공을 쌓지만, 오타쿠는 자기 흥미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한에서 수박 겉핥기 식으로 외우고 잘난척하기를 좋아할 뿐이다.

 

밀리터리 오타쿠는 베네수엘라 민병대가 닭 잡을 때 쓰는 총의 일련번호까지 외울 수 있을지는 몰라도, 실제 총을 쥐여 놓으면 딱 고문관이다. 만화 오타쿠는 구도가 어떠네 플롯이 어떠네 캐릭터가 어떠네 주구장창 외울 수 있을지는 몰라도, 펜을 쥐여 놓으면 동심의 세계나 펼쳐내는 수준이다. 보다 더 본질적인 차이는, 능력 이외에도, 그 분야에 접근하는 진지함이랄까, 노력과 인내의 자세랄까, 뭐 그런 거다.

 

뭘 해도 그냥 대충대충, 귀찮지 않을 정도로만. 내 즐거움을 해치지 않을 정도로만.

 

진짜 전력을 다해 노력하고, 수련하고, 갈고 닦을 만한 의지가 없다.

 

비단 운동을 하지 않는다 해도 내가 겨우 이 정도의 인간이라면 그 어느 곳에서도 쓸모가 없을 것인데.

 

잘 아는데도, 잘 고쳐지지 않는다. 여전히 나는 현실에서 도피하는 것이 가장 편안하다.

 

5.

 

내게 비범한 재능이 없다면, 차라리 평범하게라도 잘 살고 싶다.

 

비범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 특별한 길을 걸으면 그는 영웅이 된다. 비범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 평범한 길을 걸으면 그는 성공한 인생이 된다. 평범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 평범한 길을 걸으면 그는 일반인이 된다. 평범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 특별한 길을 걸으면 그는 바보 머저리가 된다.

 

그렇지 아니한가? 남들 연봉 5천씩 받아 처먹고 있을 때 만년 9급 공무원이라고 해서 누구 하나 비난하는 사람은 없다. 가끔 배우자는 한탄할지도 모르고 스스로 아주 가끔씩 자괴감은 느껴질지 몰라도, 사회적으로 부정당하는 그런 인생은 아니다. 그러나 쉽게 갈 수 없는 길 - 이를테면 예술 - 에서 누군가 천재다, 훌륭하다 하고 극찬을 받고 조명을 받고 있을 때 그냥 평범했을 뿐인 많은 사람들은 하루하루 소주병이나 비워야 한다. 사회적으로 부정당하며, 왜 그렇게 사냐는 얘기를 들으며.

 

더더군다나 특수 중에서도 특수, 소수 중에서도 소수 속에 있다면 말할 것도 없다.

 

특수함 중에서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특수함은 항상 있게 마련이다 - 그런 것들을 통해 세상은 자신들이 배제적이지 않다고 자위한다. 음악으로 따지면 클래식 같은 경우다. 그저 평범한 바이올리니스트일 뿐이기 때문에 별반 조명을 받지 못한다 해도, 주변에선 (속으로는 뭐라 할지 몰라도) '순수 예술을 한다면 그럴 수도 있지'라는 시선을 보내 준다(고맙게도). 정 안 되면 탈출구도 있다. 음악 학원을 열든 어떻든 해서 자신의 순수했던 꿈을 잠시 접고 관련한 기능을 써먹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같은 음악 중에서도 락은? 메탈은? 아니면 아예 듣보잡 장르라면? 말 그대로 대성공하지 못하면 그냥 쓰레기로 남을 뿐이다.

 

내 처지도 별반 다르지 않다.

 

"난 내가 말야 스무살 쯤에 요절할 천재인줄만 알고"

 

심하게 찔리는 가사다. 솔직히 그런 게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텐데. 엄청나게 힘든 길이지만, 모두가 손가락질할 길이지만, 난 비범하니까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 왔던 건데. 한순간에 그 보증수표가 부도였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단지 '내'가 아니어도 좋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실천을 하려는 '우리'는 어떤가. 우린 소수파 중에서도 극소수파지만, 가진 거 하나 없는 듣보잡이지만 우리가 옳으니까, 우린 비범하니까, 우린 우리의 입장을 확실히 정당화할 수 있고 확고하니까.... 다 개소리라면, 어떨까.

 

그냥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남기지 못하고, 손가락질이나 받다가 잊혀지려고?

 

손가락질을 받으려면 나중에 기억에라도 남던가, 잊혀지려면 손가락질이나 받지 말던가 하고 싶다.

 

자의식 과잉이라고?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내 인생 내가 사는 거고, '나'라는 것은 남들이 보는 나, 남들의 시선 속에 둘러싸인 나까지도 포함하는 것 아닌가? 과거의 남이건 현재의 남이건 미래의 남이건, 영영 남들에게 비난받거나 혹은 잊혀지거나밖에 하지 못하는 존재라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6.

 

여기서 등장하는, 피할 수 없는 한 마디.

 

"하지만 비범한 것도 평범한 것도 아닌 평범 이하라면 어떨까???!! ㅋㅋㅋㅋ"

 

7.

 

만 열아홉 이후의 3년은 실망과 좌절로만 점철되어 있나.

 

만 열아홉엔 사람에 실망하고, 만 스물엔 현실에 실망하고, 만 스물하나엔 나 자신에게 실망하고 있다.

 

앞의 두 좌절보단 뒤의 한 좌절이 더 수준이 높아진 것 같긴 하다. 남들이 도와주지 않아서, 지금 현실이 뭐 같아서 그토록 무력감을 느꼈던 것이 아님을 알게 되지 않았는가. 그냥 내가 못나서, 진짜로 내가 할 줄 아는게 아무것도 없어서, 심지어 바보같이 노력하는 것도 못하는 그런 놈이라서 그랬던 것임이 확연히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그나마 좀 한다는 이론에서조차, 번갯불에 콩 구워먹으려는 수작이라니. 몇 시간이고 몇 일이고 붙들고 앉아 비벼대서 불을 붙여내기엔 싫은게지.

 

남는 것은 오직 거짓말, 허위, 사기, 남들에게 그럴듯하게 보이는 치장. 내뱉는 것은 오직 공허한 말뿐이고, 글 속에는 고민이 담겨 있지 않다. 그럴싸한 글을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빼내려고 하니까 그토록 끙끙대는 것일 뿐이지. 어떻게 하면 멋있게 말할까 외에는 어떤 고민도 내공도 없는 가벼운 글.

 

게다가 그 모든 것 중에서도 가장 좌절스러운 것은, 그 사실들을 이렇게 논평이나 하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

 

왜 바꾸지 못해,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알면서. 말은 쉽다. 그러나 그 바꾸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는, 썩어가는 모습까지도 나 자신 안에 있는데. 이미 바꾸려고 뭔가를 하기 시작하기만 하면, 그게 시작이 아니라 완료인데. 그게 쉬울 리가 있나. 그렇지 않은가.

 

"너 같이 뺀질거리는 놈은 커서 사기꾼이나 되겠지" 그 교사의 악담은 들어맞았던 것일까. 아니면 그 악담이 날 이렇게 만든 것일까. 어느 쪽일까.

 

8.

 

차라리 무슨 예기치 못한 사고나, 갑작스런 질환 선고로 죽음을 마주하기라도 한다면 좋겠다.

 

그냥, 어쩔 수 없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더 이상 살지 않아도 된다는 허가를 받고 싶다.

 

그럼 최소한 남은 시간은 열심히 살 수 있으려나. 아니면, 별 죄책감이나 걱정 없이 지금껏 살아온 대로 살 수라도 있으려나.

 

살아 있는 밥벌레보단 죽은 추억이 낫지 않느냐. 존재로서는 그게 더 유의미하지 않으냐.

 

물론 죽은 개새끼가 되긴 싫어 자살은 하지 않는다. 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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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군

 

꼼왕, 흑돼지, 찌질이다 ㅎㅎ

 

이 녀석들 1학년 때 사진인가. 우리 학교의 상징이라는 도롱뇽을 타고 도라군이라며 낄낄대던 녀석들.

사진에는 '관악의 무법자들'이라는 제목까지 붙어있었다.

 

언제까지고 그렇게 낄낄대며 살 수만은 없었던 것일까.

 

대견하기도 하고, 부러울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엔 안쓰럽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녀석들.

 

이 때로 돌아가고 싶구나.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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