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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8일 입대

입소는 32사단.

 

제대 예정은 2011년 7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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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

팍팍한 생활을 몇 년간 지속해 오다 보니, 2006년에 켄 로치 감독의 신작이 나왔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그냥 지나쳤었던 모양이다. 우연히 알게 된 영화평론 홈페이지(http://djuna.cine21.com)에서 여러 영화평을 둘러보던 도중 발견하고 바로 구해 봤다. 실로 얼마만에 영화감상인지 -_-;;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The Wind That Shakes the Barley)은 1920년대 아일랜드 독립 투쟁을 소재로 한 영화다. 아일랜드 독립 투쟁... 사실 영화에서 닳고 닳을 정도로 써먹은 소재로는 홀로코스트 뺨치는 정도일 것 같다 -_-;; 물론 아일랜드 독립 투쟁은 고귀하고 주목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투쟁이지만, 글쎄다, 외국 압제자에 대한 '백인들의' 투쟁이라는 성격이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지울 수 없다.

 

가장 유명한 좌파 감독이자 계급적 시각을 잃지 않기로 유명한 켄 로치 감독이 민족주의 투쟁을 카메라에 담았다는 것이 처음엔 좀 의아하긴 했는데, 뭐 아니나다를까, 감독은 1920년대의 아일랜드 공화주의자들을 사회주의 투쟁의 투사로 그려내고 있다. 실제로 없었던 성격도 아니고... 1916년 더블린 무장봉기를 일으킨 사회주의자 제임스 코널리의 이름은 의도적으로 언급된다.

 

영화의 플롯을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이렇다. 1920년 평화로울 수 있었던 아일랜드의 한 시골 마을에서, 공공집회 금지 명령을 어기고 헐링 경기를 했다는 이유로 영국군이 청년들을 검문하던 도중 자신의 이름을 영어가 아닌 게일어(게일어의 정의에 대해선 네이버 백과사전: http://100.naver.com/100.nhn?docid=14334)로 대며 반항했다는 이유로 한 17세 소년이 구타당해 죽는다. 마을 주민들은 테디라는 청년을 중심으로 아일랜드 공화국 군대를 조직하고, 본래 런던에서 의사가 되려던 테디의 동생 데이미언도 영국군 수송 거부를 하려다가 구타당하는 기관사를 보고 다시 돌아와 군대에 합류한다. 끈질긴 항쟁이 계속되고 사람들은 고통 속에서도 압제에 저항한다. 그러던 와중 아일랜드 공화국 정부는 아일랜드가 대영제국의 테두리 안에서 자치주로 남는다는 내용의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정전선언을 하지만, 완전한 자유를 위해 몸바쳐 싸운 자원군들은 이 협정을 거부한다. 이 과정에서 테디는 자치주를 지지하여 공화국 정부의 편에 서고, 데이미언은 완전 독립을 지지하여 반군의 편에 선다. 정부군의 무기를 털어가려던 어느 한 밤의 작전에서 데이미언은 체포당하고, 테디는 전향을 호소하지만 데이미언은 거부한다. 다음 날 데이미언은 테디의 구령에 따라 총살당하고 쓰러진 동생의 주검 앞에 테디는 오열한다.

 

내용을 거의 다 말했지만 어차피 플롯 자체가 그리 중요한 영화가 아니니 상관은 없을 것이다. 어찌보면 좌파 지식인이 20세기 초 좌파 투쟁의 역사를 그릴 때 동원할 수 있는 가장 뻔한 이야기들이니까(평범한 사람들 눈앞에 실체화되어 나타난 압제, 영웅적인 투쟁, 내부의 개량주의/타협주의의 등장, 내분 속에서 비극적으로 갈라지는 밀접한 관계의 누군가들). 사실 이 영화는 감독의 이전 작품인 <랜드 앤 프리덤>과 그 플롯상에서 크게 다를 것도 없다. 원래 20세기 초 우리들의 투쟁이 그랬었으니까.

 

그러나 켄 로치의 진정한 가치는 좌파 지식인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뻔한 얘기를 또 반복한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뻔한만큼 보편적이었던 그 기억들을 무수한 레퍼토리를 통해 "영화적으로 아름답게" 시연한다는 점에 있다. 그의 영화가 감동적인 것은 지루한 연설을 늘어놓는 정치선동이어서도 아니고, 스스로 좌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향수를 자극해서도 아니다. 그는 인간이 가장 고귀해지는 시점에 나타나는 보편적 인간 군상들을 마치 그리스 비극에서처럼 모델링하여 스크린 앞에 배치하고, 그 캐릭터들을 카메라가 잡아낼 수 있는 최상의 방식으로 잡아냄으로써 우리 앞에 미적 전율을 선사한다. 아마 켄 로치 영화를 가장 잘 평가해낼 수 있는 이론이 있다면 그건 아리스토텔레스의 <비극>일 것이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역시 이러한 켄 로치 영화의 미덕을 잘 보여준다. 전형적인 인물(과거 투쟁 경력을 가진 노동계급, 유약하지만 정신적으로 강인한 지식인, 현실적이기에 비틀어지는 지도자 등)과 전형적인 사건(예를 들면 영화 중반부에 등장하는 재판 장면)이 배치되지만 켄 로치의 질서 안에서 그 전형성은 인간 존재를 자극하는 보편성으로 변한다. 우리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의 재판 장면과 <랜드 앤 프리덤>의 마을 회의 장면 사이에서 강렬한 데자뷔를 느끼지만, 그것은 고루한 형태의 반복이 아닌 마땅히 나타날 수밖에 없는 본질의 편린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보편적이기에 몰입적으로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인물과 사건들 속에서, 그 비극적 폭발이 가져오는 카타르시스는 예술이 인간에게 무엇인가를 답하는 하나의 해답이다. 이러한 카타르시스가 이 영화에서 극대화되어 나타나는 두 개의 명장면이 영화 초중반의 밀고자 처형 장면과 영화 마지막의 데이미언 처형 장면이다. "우리가 만드는 아일랜드가 이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으면 좋겠어"라는 밀고자 처형 장면에서의 데이미언의 명대사는, 극도로 슬프고 혼란스러운 상태의 극중 인물에게서 기습처럼 튀어나와 가슴을 울린다. 데이미언 처형 장면은... 말이 필요없다. 사실 별 말도 없다. 그러나 고개를 꼿꼿이 쳐든 데이미언과(물론 당당함의 표출이라기보단 죽음의 공포 앞에 몰아쉬는 숨 때문이지만) 고개를 숙인 테디를 옆면에서 대칭적으로 잡아내는 미쟝센은 고전적인만큼 강렬하다. 그리고 테디가 총살 구호를 붙이기 위해 물러서고 난 후에도, 곧 다가올 죽음 앞에 격렬하게 숨을 몰아쉬며 자신을 다잡는 데이미언을 계속해서 측면 컷으로 집요하게 붙잡는 카메라의 시선은 그 마지막 죽음에 실로 격하게 관객의 시선을 빨아들이고 있다. 이 장면에서 데이미언을 연기한 킬리안 머피의 연기는 정말 S급.

 

그러나 영화에서 조금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일단 플롯의 호흡이 너무 길다는 점... 담뱃갑 명중 장면 같은 건 사실 없어도 되지 않았을까 -_-;; 그러다보니 결정적으로 평화협정 선언 전과 후의 균형이 맞지를 않는다. 어찌보면 평화협정 선언 전보다 후가 격렬한 비극적 갈등이 터져나올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그 갈등은 간략하게 정리되기만 하고 급하게 최종국면으로 달려가는 느낌이다. 형제의 갈등이라는 또 하나의 도구 역시 빛이 바래는 그런 느낌.

 

그리고 또 한 가지가 있다면 켄 로치가 이제 20세기 초 역사물은 그만 만들어줬으면 한다는 점. 사실 <랜드 앤 프리덤>으로도 충분했는데, 이제 넘칠락말락 하는 것을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자체의 완성도로 간신히 지탱하고 있는 것 같다. 20세기 초 역사물을 너무 많이 만드는 좌파 영화감독은 80년대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하는 한국 좌파 운동가와 마찬가지로.... 추해질 수 있다.

 

피씨방에서 보는 바람에 정말 펑펑 울고 싶었던 장면에서 울지 못했다는 것만 천추의 한으로 남는 영화다. 감정적 고양으로 존재를 좀 윤택하게 가꾸고 싶은 분들께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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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화와 침묵

지난 4년간 나는 무수히 많은 말들을 해왔다. 때로는 발언의 형태로, 때로는 논증의 형태로, 때로는 글의 형태로 끊임없이 내가 옳다고 여기는 원칙들과 결론들에 대해 언급해 왔다. 그 과정에서 나는 (어쩔 수 없이 포함되는 나의 작은 오만을 용서하시라) 내가 발화에 특출난 재능이 있음을 재확인할 수 있었고, 그것을 통해 얻은 자신감은 보다 더 많은 발화를 생산해 내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침묵이 찾아왔다.

 

단순히, 학생운동에서 물러나왔기 때문에 이 침묵이 찾아왔다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나는 학생회에 대해 과히 적대적이기까지 했던 어린 시절에도 많은 발화를 했었기 때문이다. 현실에 대해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언급을 더 이상 하지 못하고, 이미 내가 알고 있는 범위 안에서만, 그나마 질의에 대한 반작용으로서만 말을 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은 꽤나 거북한 일이었다. 글을 써보라는 요구도 몇 번씩 마주쳤고, 나 자신도 글을 토해내야 한다는 욕구로 가득차 있었지만 어떠한 글도 써지지 않았고 나는 조금씩 백지가 무서워졌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나는 결론을 내렸다. 2007년 1학기에 제출된, 26대 관악 사회대 학생회의 총론을 작성함을 통해 나는 내 안에 있던 발화의 재료를 모두 소진해 버렸던 것이다. 나는 이 결론을 최근 몇 명의 믿을 수 있는 친우들과 조심스레 공유했고, 친우들은 그 결론이 타당함을 확인해 주었다.

 

일상 속에서 스쳐 지나가 내가 그런 말을 했었던가 하게 될 짧은 무의미들이 아닌, 뭔가 자기 자신을 온전히 실어 형태화시키고 싶어하는, 본질적으로 자기과시적인 발화의 작업을 위해서는 상당히 많은 재료가 필요하다.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과, 현실과의 접촉면에서 빨아들인 무수한 경험들과, 인간이라는 군집체가 집단적 지성을 유지해나가는 수단으로서의 독서를 통해 취득한 지식과, 그 삼자를 하나의 체계로 구성하기 위해 땜질과 망치질을 반복하는 사고과정. 이 모든 것들이 갖춰진 이후에야 사람은 더듬더듬 입을 열 수 있게 된다. 이 재료들의 종합의 결과로서 제시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문제화(problematization).

 

학생운동이라는 좁은 지평에 서서 모든 문제를 사고할 수밖에 없었던 나에게(그것은 내가 사회적 지평을 모르거나 무시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나에게 허락된 행동의 지평이 그뿐이었기 때문이었다), 학생운동의 논리와 원칙에 대한 하나의 해답을 내놓은 후 모든 문제화가 사라지리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나는 그것을 조금 늦게 깨달았을 뿐이다. 내가 나의 침묵을 깨고 싶어 몸부림칠때마다 언제나 그 글로 돌아가고 그 글을 다시 읽었던 것은 단순히 나의 가장 찬란한 결과물을 보며 과거를 떠올리는 수음행위를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직감적으로 나의 문제화가 사라진 지점을 파헤쳐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단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어떻게 보면 한 인간의 문제화가 완전히 소진되기에는 너무나도 왜소한 종착점이었다. 그러나 그 종착점이 그토록 왜소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나의 문제화 자체가, 그 문제화를 구성하는 삶과 경험과 지식과 사고과정 모두가 왜소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의 왜소함을 놓고 보다 거대한 문제화들과 비교해 가며 내 과거를 평가절하하느니, 나는 내가 내게 주어진 재료들을 큰 낭비 없이 적절한 결과물로 만들어 내는 능력 정도는 갖추고 있었다는 점에 만족하기로 결정했다.

 

한 친우는 내게 오만하다고 평했다. 나 자신의 지성이 완벽하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의 문제화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 평가를 검토한 결과 틀린 말은 아니지만 핵심에서 빗겨나간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물론 나는 오만했다. 그러나 그 오만함은 내가 완벽하다는 자의식이라기보단, 내가 지금까지 쌓아올려온 문제화의 재료들이 앞으로의 문제화를 위해서도 충분할 것이라고 여겼다는 것이다. 불충분한 경험과 불충분한 지식이나마 그걸 갖고 새로운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했다는 점이다. 틀렸다. 나는 스물셋에 하나의 선을 그었고, 그 앞으로 돌진하기 위해선 새로운 연료가 필요하다.

 

여기까지 자인하고 나자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내가 이상의 논점들을 모르고 있었을 때, 나는 나의 침묵이 매우 불편하고 부끄러웠다. 평생을 발화해왔고 또 발화로써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증명해 온 자가 갑자기 침묵에 맞닥뜨리게 된다는 것은, 존재로서 존재하지 못하고 썩어가는 과정의 도입부로 보였다. 그러나 나는 그저 새로운 충전을 필요로 했을 뿐이다. 내게 잘못이 있다면 빨간불을 빛내는 연료계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밖에 없으며, 기름을 다 넣기 전까지는 어쨌든 멈춰있을 수밖에 없다.

 

아마 나는 앞으로도 한동안은 이 침묵에서 벗어나오지 못할 것이라고 본다. 지난번의 왜소했던 문제화보다는 그래도 조금은 더 큰 문제화를 위해선, 지난번의 재료들보다 그래도 조금은 더 많은 재료가 필요할 것 같아서이다. 그러나 그 재료들을 채워나가기 위한 행동이라는 원칙에 초점을 맞추고 앞으로의 시간들을 구상할 수 있다는 것이, 지금껏 혼란에 빠져 방황하던 시절보다는 훨씬 나은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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