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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랜드와 연을 끊은 지 벌써 두 달이 사뿐히 넘어가고 있습니다.
처음 이랜드 불매운동에 참가하겠다고 다짐했을 때에는 쉬울 것으로 생각했습니다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다 보니 그것 참 생각보다 쉽지가 않더군요.
제일 먼저 뉴코아아울렛에서 싸게싸게 사던 옷들의 유혹을 떨쳐내야 했지요.
생각해 보면, 그렇게 옷을 싸게 팔면서도 이윤을 내기 위해서는
어디에선가 누군가는 착취당하고 있다는 것인데,
단기적인 이윤에 눈이 먼 자본주의적 탐욕에 가득찬 인간은 그것을 자꾸 잊으려 듭니다.
서민으로써, 세일 깃발을 크게 내건 이랜드 매장을 외면하기란 참 힘든 일이죠.
거기에 납품업체들의 어려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가 깔려 있다는 걸 알면서도
싼 가격은 자꾸 내 눈을 끕니다.
그래요.
자본이 이 사회를 움직이고, 오직 화폐 증식이 사회의 지상 목표가 되며,
'합법적' 방법을 통한 이윤 추구는 오히려 바람직한 것으로 여겨지는 이 사회에서는
'돈', '가격', 그 아래 있는 착취구조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아니, 안다고 해도 거기에 대항하기 힘듭니다.
처음 한 달 동안, 저는 정말로 심각하게 '이랜드 금단현상' 에 시달렸습니다.
우리 동네 유일한 할인마트 홈에버와 뉴코아 아울렛을 거절하고
버스를 타고 좀 나가야 하는 재래시장에 가거나,
똑같은 옷에 돈을 더 내고 산다는 건 뭐랄까,
눈 딱 감고 이랜드 매장에 걸어가고 싶도록 만들더군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힘이란 이처럼 강력합니다.
제 생활 곳곳에 이렇게 부도덕한 자본주의가 침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참 섬뜩한 기분이었어요.
나름대로 유기농 제품을 사고 생협에 참가하는 등 노력해 왔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이렇게 착취구조의 일부로 기능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그 악순환에서 벗어나기란 제법 힘든 일이었구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심적 소비란 중요합니다.
그것이야말로 그 강력한 돈, 돈 돈에 매몰된 인간성을 살리는 길일 테니까요.
우리 옆집 아주머니일 수도 우리 어머니일 수도 있는 이랜드 아주머니들이
바코드 찍는 기계가 아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노동하며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드는 것이 돈 몇만원보다 훨씬 중요할 테니까요.
그리고 지금 고등학생인 제가 졸업한 이후
저 자신이 스스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길이겠지요.
그래, 그런데,
기계화된 자본주의 사회의 일원인 동시에 양심적 개인으로 살아가려니 참.
아니, 사실 생각해 보면 '양심적 개인'처럼 거창한 걸 갖다붙일 필요도 없어요.
그저 나를 위해, 내가 인간답게 살기 위한 일인데,
생각해 보면 참 당연한 일인데,
화폐 증식 회로 안에서 쳇바퀴 돌리는 쥐처럼
오늘도 이랜드 매장에 가시는 아파트 아주머니들을 보노라면
참 한숨이 나옵니다.
단돈 몇천원의 의미를 알기에, 따라서 그분들을 비난할 수 없는 노릇이기에.
그래서 참 무섭습니다.
이랜드라는 것이, 자본주의라는 것이.
과연 인간은 인간이 만들어낸 자본주의에 대항해 이길 수 있을까요.
과연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오늘도 힘겹게 뉴코아아울렛에서 발걸음을 돌리며 생각해 봅니다.
댓글 목록
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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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 소비... 정말 어렵지요.길에 넘치는 몇천원짜리 티셔츠, 가방 등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가끔해요. 아마도 중국의 노동자들이 만들었을 그것들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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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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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없을 땐, 더 어려운 것 같아요...일단 싼 걸 찾으러 다니게 되니까요...양심적 소비, 일상에서의 중요한 실천이면서도 참 힘든 건 사실이네요^^;부가 정보
L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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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나 // 맞아요. 3900원짜리 티셔츠, 이런 거 언니들이 막 사가잖아요. 그런 거 보면서 양심적으로 만든 옷은 얼마나 안 팔릴까, 그러니 인간적인 자본주의란 과연 가능하기나 한 걸까, 라는 회의를 느끼곤 해요.초보좌파 // 동감입니다 ^^;; 결국 항상 돈이 문제라니까요. 돈보다 삶이 먼저라는 신념도 돈이 없다는 현실 앞에선 참 지키기 힘든 것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자본이 무서운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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