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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방문기-1

세번째 베트남 방문이었습니다

 

첫번째 방문에서 처음으로 민간인학살 생존자들을 만났었습니다. 대부분 나이가 든 할머니들이었고 얼굴과 몸에는 선연한 상처가 고스란히 기억되어 있었고 한국사람들을 만난 할머니들은 소리내어 우셨습니다. 난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습니다. 손이라도 잡고 나의 미안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전달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습니다.

 

두번째 방문에서 학살이 일어났다는 폭탄구덩이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학살에 대해서 웃으며 이야기하는 생존자를 인터뷰하면서 순간 주저앉아 울었습니다. 그분이 웃지만 않았어도 아니 오히려 화를 냈다면 눈물이 나질 않았을 겁니다. 담담하게 당시의 상황을 이야기하는 수많은 생존자들을 인터뷰하면서 괴로웠습니다. 또다시 그분들의 아픈 상처를 내가 후비고 있다는 자괴감과 학살을 자행했던 국가의 한사람이라는 미안함... 생존자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말하는 동안의 표정을 보면서 조금이나마 그분들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세번째 방문이었습니다. 작년 촬영하러 갔던 곳이었고, 그곳에서 인터뷰를 한 생존자는 '한국군을 증오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젖먹이였다가 엄마품에서 다행히 살아남았던 생존자 동생의 금방이라도 쏟아질듯한 눈망울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위령비를 세운다는 이야기를 듣고 꼭 가고 싶었습니다.

 

 

사람만이 오직 평화를 지킬 수 있습니다

 

 

호치민에서 반레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베트남전쟁에 참가했고 부대원중에서 살아남은 5명 중의 한사람인 반레 선생님의 이름은  친구의 이름이라고 합니다. 꿈이 시인이 되고 싶었던 친구의 이름을 전쟁이 끝난 후에 본인의 이름으로 사용하면서 시인이자 소설가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분께 질문을 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평화란 무엇인가요?'

'지금의 전쟁은 단추를 누르는 전쟁입니다. 단추를 눌러 전쟁을 시작하고 무기를 사용할 수는 있지만, 사람의 마음을 바꾸거나 조정하지는 못합니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사람만이 오직 평화를 지킬 수 있습니다.'

 

 

작년 <미친시간>작업을 하면서 그리고 이라크 파병을 결정하는 정치인들을 보면서 인간에 대한 신뢰가 많이 없어졌습니다. 어떻게 인간이 이렇게까지 잔인할 수 있는지, 과연 인간이란 존재는 선한 존재인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조용하게 그리고 단호하게 이야기하는 반레 선생님의 말을 들으며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인간이지만 그 전쟁을 막을 수 있는 것도 바로 인간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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