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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값 1백만 원, 중풍 걸린 세상” -국회 앞 월요 전국사제시국기도회

 

2010년 12월 07일 (화) 07:43:06 고동주 기자 godongsori@nahnews.net
 

12월 6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월요 전국사제시국기도회’가 봉헌됐다. 이는 지난 11월 8일부터 29일까지 매일미사를 봉헌하고 나서 매주 월요일 미사로 전환한 후 첫 미사다.

 

   
▲ 저녁이 되어 기온이 급격히 떨어졌으나 130여 명의 신자와 시민, 20여 명의 사제가 월요사제시국기도회에 참여했다. (사진/ 정현진 기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대표 전종훈 신부는 “매주 월요일 미사로 변경하면서 월요일 미사는 우리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이 자리에서 끝까지 하겠다”며 결의를 밝혔다. 사제단은 미사의 지향을 “참다운 민주정부의 수립과 분단체제의 극복을 위해, 더욱 근본적으로는 생명과 평화를 주춧돌로 삼는 ‘새 하늘 새 땅’을 위하여”로 삼고 있다.

사제단 총무 김인국 신부는 강론에서 세상이 모두 중풍에 걸려 있다며 중풍 환자를 고치신 예수처럼 그리스도인도 세상을 치유하는데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신부는 “한의학에서는 중풍을 불인(不仁)이라고도 한다”며 세상이 어질지 못하고 기가 막혀서 중풍에 걸렸다고 한탄했다.

지난 10월 초 재벌가 2세 최철원 씨가 야구방망이로 노동자를 폭행하고 한 대에 1백만 원을 맷값으로 지급한 사건에 대해 김인국 신부는 “사람들이 모두 중풍병자다. 육신은 멀쩡할지 모르지만 속은 완전히 마비가 됐다”며 탄식했다. 이어 “남과 북도 모두 마비가 됐다”며 “이 자리(기도회)에 모이신 분들이 주물러주고 풀어줘야 한다”고 신앙인의 책임을 상기시켰다.

미사 때마다 독특한 ‘평화의 인사’를 하는 문정현 신부는 이날 “여러분은 평화를 어디에서 찾을 것입니까?”라고 물으며 “정부는 4대강 사업을 중단하라! 국회는 4대강 예산을 삭감하라! 모든 민주시민은 궐기하라! 에서 평화를 구합시다”라고 구호를 외쳤다.


(엄광현/김정은 부부가수의 노래 공연 공연을 통해 미사에 참여한
신자/시민들이 추위를 녹일 수 있었다. 촬영/편집 고동주 기자)

 

   
평화를 외치다! 문 신부는 이날 4대강 사업 중단하는 데서 평화를 찾을 수 있다며 '평화의 인사'를 구호를 외쳤다. (사진/ 정현진 기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nah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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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방송 PBC특강, 4대강 언급 부분 삭제된 채 방영

 

-정홍규 신부, 삭제된 원고에서 정 추기경에게 생명평화미사 참여 호소.. 사목자들의 문제 지적
 
2010년 12월 06일 (월) 10:48:42 한상봉 기자 isu@nahnews.net
 

지난 12월 2일 본방송이 나간 평화방송 TV 'PBC 특강' 정홍규 신부의 '평화 생태 이야기'란 강연이 당초 정홍규 신부가 준비한 강연 내용 중 4대강 문제와 관련된 부분이 대폭 삭제된 채 녹화가 진행됐고, 녹화 내용 중에서도 일부가 삭제된 채 방영된 것으로 밝혀졌다.

당일 방영된 프로그램은 영천 산자연학교 교장인 정홍규 신부(대구대교구)의 생태 문제 관련한 강의였으며, 이 내용은 12월 2일 본방송을 시작해 오는 7일까지 방영될 예정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서 입수한 당일 방송 원고에서 정홍규 신부는 "4대강은 사회적 공감대를 얻기는커녕 오히려 "집단적 광기"가 판을 치고 있다"고 안타까워하며, "전혀 맞지도 않은 개념인 녹색성장이라는 용어에 우리 국민이 헷갈리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4대강과 관련해 정부가 농경지 리모델링 운운하며 황당한 단어를 급조해 국민을 속인다는 것이다.

한편 두물머리에서 260일이 넘도록 봉헌되고 있는 생명평화미사를 소개하며, "저는 우리 정추기경님이 미사에 두 번도 아닌 한 번만 오시면 참 좋겠습니다. 평화를 이룩하려면 피조물을 보호하라는 이 메시지에 정추기경님 힘을 주시면 사목자들이 얼마나 신명이 나겠습니까?"라고 제안했다. 이어 정 신부는 대구의 한 성서학교에서 경험한 사례를 들어 "주교님들이 4대강에 대한 반대성명을 했다고 하니까 그 말을 들은 한 교우가 쓸데없는 짓을! 이렇게 냉소하였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평신도의 잘못이 아닙니다. 사목자들이 우리 평신도에게 신앙과 사회적 영역을 통합한 총체적 삶으로 신앙을 가르치기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정홍규 신부는 본래 원고에서 사목자들이 주교단의 지침을 따르지 않는 상황 역시 이렇게 꼬집었다.

"우리 사목자들이 교황님의 메시지나 주교단의 지침서를 따르지 않는다면 평신도들이 우리 신부님의 사목적 방침을 따르겠습니까? 그동안 우리 영성이 너무 구원보속중심에 치우쳐져 있었습니다. 이제는 창조와 축복중심으로 균형을 잡고 우리교회의 은사가 다양성을 갖고, 풍요로워 지고, 우리교회가 생태적 정의를 실현함으로써 예언자적인 소명과 더 나은 미래를 다음세대에게 물려주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이 부분은 전국의 사제들이 4대강 사업 반대운동을 하게 된 배경과 호소를 담은 내용과 더불어 삭제된 채 방영되지 못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서 담당 피디에게 사실확인을 요구한 결과 담당 피디는 "녹화과정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외부에 알릴 수 없게 되어 있다"고 답변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nahnews.net>

 

정홍규 신부 PBC특강 강의초록(전문)
"평화 생태 이야기-거울"
 


*방송에서 제외된 부분은 붉은 글씨로 표시하였습니다. --편집자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갈 즈음에 1950년대 우리 인류에게 큰 그림 혹은 화두. 요사이 말로 하면 하이컨셉을 주신 분이 계십니다. 북경원인을 발견하였으며 예수회 소속의 신학자이면서 고생물학자인 테이야르 드 샤르댕 신부님입니다. 신부님은 처음으로 서로 치고 받고 싸우는 과학과 종교를 화해시켰습니다. 그리고 분리된 물질과 정신을 하나로 통합한 위대한 신학자입니다.

20세기의 위대한 저서라면 테이야르 드 샤르댕 신부님의 <인간현상>입니다. 오늘 저는 샤르댕 신부님의 그 저서에 나오는 말씀으로 이 강의를 시작하고 싶습니다. "첫 인류가 그 자신이 처음으로 거울에 비친 그 자신을 알았을 때 전 세계가 앞으로 나아갔다" 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저는 이렇게 이해합니다.
자신에 대해서 거울 앞에서 두 번 생각하고 성찰하고 회개했을 때 그 자신을 새로운 차원으로 성장 혹은 발전, 진화시킬 수 있습니다. 한 개인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발전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새로운 생활양식에 대한 진정한 시각의 변화가 없다면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의 말씀에 공감합니다. 지금이 바로 거울을 봐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의 우리 현실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고, 뒤돌아 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 버렸습니다. 사회의 모든 에너지가 정체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참으로 위기의 시대이며 단순한 경제 위기나 환경위기가 아닌 교황 베네딕토 16세께서 지적하신 도덕적 위기입니다.

그러나 이 위기는 또한 창조할 기회, 더 큰 깨달음으로 진화할 기회이며 우리 의식이 한차원 높아질 기회입니다. 미래 세대의 책임 있는 종으로써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이며 그리하여 새로운 관계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20년 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생태계의 위기라는 표현을 하시고 지금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환경의 황폐화라는 용어를 사용하시는데 지금이 인간과 자연이 의식적으로 화해할 수 있는 도전의 기회입니다.

환경의 황폐화가 우리를 절망과 체념으로 몰아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계획을 위한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이때 샤르댕 신부님이 말씀하신 거울의 의미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1990년에서 2010년 사이의 가톨릭 환경운동을 성찰하고자 합니다.

2010년 올해는 저에게 아주 의미있는 해입니다. 제가 대구에서 푸른평화 운동을 한 지가 20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내년이면 서품 30년이 됩니다만 저는 사제생활을 거의 대부분을 가톨릭 환경운동에 투신하였습니다. 1990년 그러니까 한국교회에서 가톨릭 환경운동이 태동할 무렵인데 서울대교구에는 하늘 땅 물 벗이 있었고 그 중심에는 이재돈 신부님이 활동하였습니다. 그리고 원주교구의 김승오 신부님이 우리밀운동으로 가톨릭 환경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1990년대였습니다.

교구는 달랐지만 큰 생명운동이라는 꿈이 같았으며 자발적으로 저희 세 신부들은 1992년 5월 전국환경사제모임을 발족하여 교구별로 순회하면서 지역의 환경문제를 함께 풀어가는 연대활동을 신나게 전개하였습니다. 광주교구의 영광반핵운동의 박재완 신부님과 이영선 신부님 그리고 부산교구의 조욱종 신부과 더불어 새로운 에너지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전국환경사제모임은 오늘날 천주교 창조보전 전국 모임의 초석이 되고 그 범위가 확대되었습니다. 1990년대에는 참으로 아름다운 연대였고 사목자들의 동행이었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까지 강조하신 연대, 함께 하는 것 즉 연대야 바로 또 하나의 연대를 낳은 힘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80년대는 민주화, 그다음엔 90년대부터는 생명이라는 화두로 교구를 넘어서 정의-평화-창조보전 큰 그림으로 활동하였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한 가지 큰 성과를 얻었습니다. 특히 김수환 추기경님의 전폭적인 도움으로 우리밀운동과 우리농촌살리기를 통한 환경운동은 1995년 추계주교회의에서 매년 7월 셋째 주일을 우리 농촌주일로 제정하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농촌주일은 참으로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당시에 돌아가신 박석희 주교님이 우리농촌을 위한 기도문을 만들어 주셨음을 기억합니다. 우리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올해 신년도 메시지에서 광활한 농촌지역의 황폐화를 지적하시면서 소농중심으로 농촌 개발 전략을 마련하라 촉구하고 계십니다. 올해 가톨릭 환경상을 일산본당의 우리농 운동에 준 것은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4대강 문제는 농경지가 대부분 사라지는 것이 기가 막힙니다. 옥토중의 옥토가 사라집니다. 농사의 중요성을 모르기 때문에 저런 정신나간 짓을 한다고 봅니다.

저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 하나 있습니다. 1998년 10월 영월본당에서 촛불을 들고 강뚝을 행진하면서 정의구현사제단, 전국환경사제모임, 각 교구정의평화위원회, 수도자와 평신도는 물론 전국의 모든 뜻있는 시민단체와 예술가들이 함께 동강살리기를 이룬 것입니다. 사회 민주화운동이 생태적 정의로 확대된 사건입니다. 동강은 가능하였는데 왜 새만금은 이렇게 되었을까요?

2003년 새만금살리기를 위한 문규현 신부님의 삼보일배를 지금의 4대강과 같은 전폭적 지지를 보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2003년 새만금의 사건은 결국 2010년 4대강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았다고 저는 봅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회칙 <진리안에 사랑>에는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모든 경제적 결정은 도덕적 결과를 가진다" 저는 이 말씀으로 새만금이나 4대강이 얼마나 도덕적이지 않음을 알 수가 있지 않습니까?

동강보다 메가톤급 규모로 기도도 하고 미사도 하고 순례도 하고 주교님 성명서도 발표하고 명동미사와 전국적으로 4대강을 보전하자고 하였는데 왜 되지 않을까요? 1998년은 동강은 살게 되었는데 2010년은 4대강은 불가능할까요? 그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졌기에 세계환경에 대한 의식과 정보는 더욱 높아졌는데 (웰빙과 로하스, 지구온난화, 북극곰의 눈물등) 동강살리기는 사회적 공감대를 얻을 만큼 집단적 각성이 이루어졌던 반면에 4대강은 사회적 공감대를 얻기는커녕 오히려 "집단적 광기"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전혀 맞지도 않은 개념인 녹색성장이라는 용어에 우리 국민이 헷갈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농경지 리모델링 운운하며 황당한 단어를 급조해가며 국민을 속이는 것입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의 우리의 현실은 개발 개발하여 부를 창출하자는 마음의 상태를 반영합니다. 지금도 4대강이 공사가 돌아가는 이유는 개발 집단적인 의식이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까지 우리가 노력한 것과 실제로 우리가 행동하는 것 사이에 간격이 더욱 넓어지고 있습니다. 인식은 아주 높아졌는데 그 실천은 더욱 교묘하게 배운 사람일수록 인식과 괴리가 벌어졌습니다.


제가 사는 동네 벌이 사라집니다. 벌과 같은 곤충은 자꾸 사라져 농업과 과수에 부담을 주고 있습니다. 농약과 더위 때문에 곤충이 없어지니까 씨앗의 전파, 곤충통제, 수정의 부족으로 영양소의 재생이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올해는 UN이 정한 생물 다양성의 해입니다. 우리가 매일 쏟아내는 독성 때문에 종의 대량 전멸이 예상되지 않습니까? 파괴는 한 순간이지만 회복은 참으로 더디지 않습니까?

곰보배추는 천식과 비염에 좋습니다.
와송은 위 치료에 좋습니다.
주목껍질에서 추출되는 태솔은 암 치료에 좋습니다.
중요한 혈액 응고제가 투구 게에서 발견됩니다. 생명의 다양성이 줄게되면 어디에서 약재를 구합니까?

올 여름에 비가 그렇게 많이 와도 골짜기에 물이 적습니다. 물이 부족해지고 석유가 고갈되고 있습니다. 지금의 소비주의는 지구를 3개정도 가져도 못자랄 지경입니다. 에너지 상황과 기후변화등 더 나빠졌는데 우리의 소비는 더욱 과소비로 늘어났습니다.

이렇게 소비하면 우리가 지구를 혹사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TV광고 소비 생활양식을 보면 분노와 폭력이 일어날 것입니다. 석유는 대체할 수 있지만 식량을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식량증산보다 인구증가가 더 높으면 미래는 아주 불안정해집니다. 자원전쟁이 일어날 것입니다.

올 봄에 너무 따뜻하다가 눈이 오는 바람에 자두, 복숭화, 사과와 배가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지난 여름 폭염과 폭우는 우리가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올해는 그렇게 덥더니만 서리가 일찍 내렸습니다. 더우면서 빙하가 옵니다. 지구적인 기후변화는 구제역과 광우병은 우리 인류가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전염병입니다. 기후위기는 생태계와 농업에 치명적 파괴력을 일으킵니다.

교황님은 환경난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시면서 환경의 황폐화가 절박함을 간절하게 호소하십니다. 우리 현실은 빈부 격차, 양극화로 더욱 어려워지고 젊은이에게 선택과 기회는 축소되고, 먹고 생존하는 문제로 인해 환경위기는 이제 들어도 무감각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최근 10년 동안 우리가 삶의 의미를 돈과 성공에 걸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공정심 즉 사회정의라든가 돈 되나 안 되나에 따라 우리 모두가 식별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생명의 복음> 83항 지적대로 우리가 물질에 대한 관상적 시각보다 당장에 돈이 된다 안 된다 식의 시각으로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강의 아름다움보다도 경제적인 가치로 환산하는 물질주의로 우리모두가 집단적 광기로 자연을 제일 만만하게 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교육으로는 국영수 선행학습 등으로 지구과학이나 우주교육은 설 자리가 없어져 더욱 경쟁으로, 경제적으로는 더욱 개발 의식에 떨어졌습니다. 그렇지않고서는 이렇게 10년만에 변할 수 있겠습니까? 교황님은 생명을 고마움으로 아름다움으로 창조주의 모상으로 느끼는 관상적인 시각으로 보라고 초대하시지만 우리 모두는 돈 되나 안 되나 맹목적으로 달려갑니다. 우리 경제모델에 대한 성찰과 문화적 쇄신이 참으로 필요한 시대입니다.

저는 생태 평화, 자연 평화, 환경 평화운동을 예언자적인 소명이라고 자각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지금부터 20년 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가톨릭 역사상 처음으로 생태교서를 1990년 1월 1일날 평화의 메시지로 발표하였습니다. <창조주와 함께하는 평화, 창조물과 함께 하는 평화>라는 이름으로 말입니다. 환경문제와 종교적인 측면을 아주 신중하게 결합한 생태윤리에 대한 체계적이고 탁월한 교회문헌입니다. 환경운동이 신앙운동과 별개의 것이 아니라 신앙인의 본질적인 소명임을 일깨웠습니다. 저는 그 메시지가 사목의 큰 그림이 되었고 하이컨셉이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의 사목자들은 환경운동을 정부에서 추진하는 사회운동쯤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대구교구에서 4개강을 위한 생명 평화미사를 준비하면서 지금까지 한 10번째 미사를 하였습니다. 미사장소를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나하면 본당신부님들이 이 미사를 달갑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떤 신부님들은 왜 미사를 두물머리에서 낙동강 현장에서 하느냐? 미사가 무슨 데모의 수단이냐, 하고 반대를 합니다. 이런 태도야말로 하느님의 에너지를 장롱속에 가두는 아주 폐쇄적인 사고방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상호이해가 부족하고 생태정의가 상실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환경문제와 구원문제를 별개의 것으로 간주하는 태도는 신학적 무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오늘도 두물머리에서 매일 미사를 봉헌합니다. 벌써 260번이 넘었습니다. 주교님들도 두물머리에서 미사를 하셨는데 그 미사가 데모미사입니까? 저는 우리 정추기경님이 미사에 두 번도 아닌 한 번만 오시면 참 좋겠습니다. 평화를 이룩하려면 피조물을 보호하라는 이 메시지에 정추기경님 힘을 주시면 사목자들이 얼마나 신명이 나겠습니까?

대구의 한 성서학교에서 한 교우가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하였습니다. 주교님들이 4대강에 대한 반대성명을 했다고 하니까 그 말을 들은 한 교우가 쓸데없는 짓을! 이렇게 냉소하였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평신도의 잘못이 아닙니다. 사목자들이 우리 평신도에게 신앙과 사회적 영역을 통합한 총체적 삶으로 신앙을 가르치기 않았기 때문입니다.
교황 베네딕도 16세의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는 환경을 보호하고 돌볼 책임이 있습니다. 그 생태적 책임엔 경계가 없습니다."

이런 속담이 하나 있습니다. "여우는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고슴도치는 큰 것을 알고 있다." 지금 우리 교회는 큰 그림이 필요합니다. 하이컨셉말입니다. 그것은 교황 베네딕도 16세께서 주신 컨셉 즉 "평화 생태학"이라는 용어입니다. 평화와 피조물간의 관계가 평화의 시작입니다. 자연의 평화 없이 우리 인류의 평화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지금까지 우리의 신앙살이에서 마음의 평화, 영혼의 평화, 가정의 평화라는 말은 있었지만 평화와 창조주, 평화와 창조물과 연결시키는 교회의 작업은 아주 드물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말씀을 드리면 교황님의 메시지의 핵심은 "녹색평화"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너무 적색평화, 구원구원, 죄와 원죄, 세상은 죄요 고통이요 보속과 두려움에 치중하여 우리의 영성생활이 오로지 개인영혼구령, 부정적이고 소극적이고 세계에 닫혀있는 태도였지 않았습니까?

교황님은 이 메시지에서 창조물에 통한 명상, 창조물을 통한 평화, 자연을 통한 창조주와 일치를 강조하였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는 인간과 인간간의 화해, 인간과 하느님과 화해를 강조하였지만 이제 한걸음 더 나아가 창조물과의 화해 즉 제 3의 명상, 제 3의 기도의 영역으로 확대되고 포용된 것입니다. 자연의 평화 없이 세계평화는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성은 더 확대되고 포용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창조물을 아우러는 영성, 창조물까지 확대하는 선교지평이야말로 우리의 교회을 풍요롭게 하고 다양하게 그리고 공정하게 할 것입니다.

이번 2010년 환경에 대한 주교단의 지침서의 표현대로 하자면 지금까지 우리의 신앙살이가 너무 인간중심 선교, 인간중심주의 윤리에 치중되어있다는 지적입니다. 구원의 방주 안에 창조물을 담으라는 것입니다. 올해 신년도 평화의 메시지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창조주와 함께하는 평화, 창조물과 함께 하는 평화> 메시지 이후에 20년 만에 다시 특히 교황 베네딕도 16세께서는 더 명확하게 평화를 이루려면 창조물을 보호하라는 것입니다. 창조물을 보호하라! 얼마나 단호한 말씀입니까? 그리고 저는 그동안 교황청에서 나온 회칙과 문헌 그리고 보고서를 공부하였지만 이렇게 교황님께서 다급하게 절박하게 호소한 메시지는 처음 읽어 봅니다. 그만큼 이 행성전체의 위기가 절박하다는 것입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께서는 " 지구온난화는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라 지적한 후 환경보호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 10억 가톨릭신자들이 모두 환경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고 호소하였습니다. 우리 사목자들이 교황님의 메시지나 주교단의 지침서를 따르지 않는다면 평신도들이 우리 신부님의 사목적 방침을 따르겠습니까? 그동안 우리 영성이 너무 구원보속중심에 치우쳐져 있었습니다. 이제는 창조와 축복중심으로 균형을 잡고 우리교회의 은사가 다양성을 갖고, 풍요로워 지고, 우리교회가 생태적 정의를 실현함으로써 예언자적인 소명과 더 나은 미래를 다음세대에게 물려주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제가 한번은 1990년부터 2010년까지의 각 교구에서 새해마다 교구장이 발표하는 새해 지침서를 전부 분석해 보면 거의 비슷하게 인간구원, 태아구원, 가정사목, 노인사목, 청소년사목에만 국한되어있음을 보고 저는 아주 놀랐습니다. '생명 31'도 보면 생명컨셉이 인간으로만 한정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생명관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관이 좁다는 것입니다. 생명관을 넓히자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전 우주를 포용하자는 것입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생태적 고백이나 생태적 회개를 강조하였습니다. 교황님은 1979년에 특히 성 프란치스꼬를 생태운동의 주보성인으로 뽑으셨습니다. 프란치스꼬 성인은 길가의 지렁이도 함부로 하지 않았습니다. 나무를 자를 때도 연민의 정을 가졌습니다. 태양을 형님, 땅을 어머니라고, 물을 자매라고 노래하였습니다. 부처님이 왜 숲속에 뜨거운 물을 붓지 말라고 하였겠습니까? 돈보스꼬 성인은 교육은 "마음을 쓰는 일"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마음을 쓰는 것이 사랑입니다. 마음씀을 예를 들면 우리조상에게는 까치밥 마음이 있습니다. 경북 청도는 감으로 아주 유명합니다. 감나무마다 까치를 위한 식사, 까치를 위한 밥을 위해서 감을 감나무에 서너 개씩 남겨 둡니다. 우리 조상들은 까치를 위해서 마음을 주었습니다. 이것이 생태윤리입니다. 창조물에게 마음을 쓰는 일 이것이 창조물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일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콩 세알 마음이 있습니다. 구약성경의 노아는 방주에 모든 생명체를 쌍으로 실었습니다. 피조물에게 마음을 쓰는 것입니다. 프란치스꼬 성인은 님을 사람에게만 아니라 사물에게도 님을 붙쳤습니다. 햇님과 달님, 그렇습니다. 이 시대의 참으로 필요한 영성은 님을 확대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비가 더럽게 온다고 내뱉습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은 비님이 오신다고 감사드립니다. 이것은 영성의 차이이며 감성의 큰 차이입니다.

최근에 봉은사 땅밝기 사건이나 동화사 동영상 사건은 우리 사회의 종교가 얼마나 포용의 영성이 부족한 가를 알 수 있습니다. 단군상을 부수고, 불교문화의 관광자원을 배척하고, 사찰에 들어가 우상숭배를 타파를 기도하는 종교적 광기는 집단적 광기 못지않게 참으로 무서운 것입니다. 중세 1400년 경 마녀사냥이 그렇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신앙입니다.

우리 천주교는 어떻습니까? 본당마다 너무 배타적입니다. 서로 다름을 포용하지 않습니다. 전임신부가 한 사목적 작업을 후임신부가 하루아침에 부수어버립니다. 가톨릭이 보편적이라고 하면서 사제끼리 수도자끼리 평신도끼리 얼마나 배척하고 차별하고 유아기적 신심에 사로잡혀 각 본당마다 신앙의 자원을 소모하고 있습니까? 하느님의 온 창조계를 포용하는, 인간을 포함한 온 창조물의 상호 미션으로 연대지평을 넓히는 사목자들의 전환적 발상의 리더쉽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우리 가톨릭은 조직력이 강하며 소통이 한 번 불이 붙으면 잠재력이 강합니다. 신부님의 한 말씀은 공동체적인 의식의 잠재력이 메가톤급입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집단적 광기(예 중세 마녀사냥과 이스터섬)로 떨어질 수도 있지만 집단적 각성( 칠레 광부들이 지하 700m에서 캐낸)의 잠재력도 있습니다. 우리 인간 안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신비에 싸인 베일에 가린 우주와 같은 커다란 각성이 있습니다. 이 역사적 위기의 시대에 이러한 각성을 일깨워는 신부님의 역할이야말로 생명평화의 힘이 된다고 확신합니다.
이 말씀을 드릴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nah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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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청춘" ..언젠간 가겠지 푸른 이 청춘..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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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청 성탄트리, 십자가 왜 달렸나 했더니

 

서울시청 성탄트리, 십자가 왜 달렸나 했더니

[취재수첩]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십자가 달린 성탄트리 탄생 배경

김태일, info@humanpos.kr

등록일: 2008-12-02 오전 7:01:16


해마다 12월이 되면 대한민국의 도시 번화가와 주요 공공장소에 성탄트리(크리스마스트리)가 세워진다. 그런데 해마다 성탄트리의 아름다운 불빛 위에 매달려 있는 십자가가 왠지 어색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 여러 자료를 찾던 중에 재미있는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 서울시청 앞과 부산역 앞에 설치된 2008년 십자가 달린 성탄트리

★ 재밌는 사실 하나 - 부활절도 아닌 성탄절 기념 트리에 웬 십자가?



성탄트리 꼭대기에 십자가가 매달려 있는 것에 대해 과거에 많은 논란이 있었는데 보통의 사람들이 느끼는 생각은 아기 예수가 탄생한 성탄절 기념 트리에 왜 예수 부활을 의미하는 십자가를 매달아 놓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생일 축하하는데 고통 받고 죽은 사람의 상징을 걸어 놓았다고나 할까?

성탄트리는 보통 예수가 태어났을 때 동방박사들이 별을 따라서 베들레헴에 간 것을 기념하기 위해 별 모양의 장식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전세계적으로 성탄트리 꼭대기에는 별 모양을 달고 있다.

기독교인들 사이에도 십자가 매단 성탄트리에 대해 비판이 일고 있는 가운데 한기총은 "성탄트리에 십자가 달지 말라는 법은 없다"고 말해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 재밌는 사실 둘 - 서울시청 십자가 성탄트리는 2002년 이명박 시장 때부터?

그렇다. 2002년 32대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당시 이명박 시장이 취임하면서 12월 서울시청 앞 성탄트리가 화려해지고 꼭대기에 십자가가 걸렸다.

내용을 들여다 보니 이렇다. 60년대 말부터 30년 가까이 서울시 예산으로 성탄트리를 만들었는데 특정종교 상징물을 국민의 세금으로 만드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하여 한동안 서울시에서 성탄트리를 세우지 않았다. 아마 98년부터 재직한 고건 시장 시절인 것 같다. 이것은 2001년 겨울까지 지속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 이전 서울시에서 예산을 들여 만들때에도 위의 1997년 사진처럼 ‘근하신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등의 글자를 넣고 꼭대기에는 별을 달아 특정종교 지원 시비를 피하려했다.



그런데 2002년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 때부터 한기총이 예산을 들여 직접 성탄트리를 만들었고 서울시가 서울시청 앞에 설치하는 것을 허가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화려하면서 꼭대기에 십자가가 매달린 성탄트리가 탄생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지금의 오세훈 서울시장까지 이어지고 있다.


★ 재밌는 사실 셋 - 서울시청 십자가 성탄트리의 최초 제안자가 뉴라이트?

그렇다. 이것도 취재하다보니 알게된 사실이다. 두레교회 남민우 목사(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대표)가 한기총에 요청해서 현재와 같은 성탄트리가 세워졌다고 한다.


★ 재밌는 사실 넷 - 십자가 걸린 성탄트리는 대한민국에만 있다?

  
▲ 미국, 영국 등 서방국가들의 성탄트리

그런것 같다. 구글과 국내 포털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세계 각국의 성탄트리를 2시간 넘게 검색해봐도 십자가를 매달은 성탄트리는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전세계를 모두 다녀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인터넷상에서 확인 할 수 있는 사실만으로는 그렇다. 혹시라도 세계여행 하면서 십자가 매달은 성탄트리를 보았다면 제보해 주세요. 꼭 후속기사를 쓰겠습니다. 000에도 십자가 매달은 성탄트리가 있더라.......


취재하면서 느낀것이 있다면 넌센스에 가까운 십자가 매달린 성탄트리는 서울을 봉헌하겠다던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과 기독교 복음전파만 생각했지 비기독교인들과 함께 축제 같은 연말을 생각하지 않는 한국 기독교의 생각이 맞아 떨어진 결론이지 않을까 싶다.

2008년 12월, 이제는 서울 뿐만아니라 부산, 광주, 전주....등 전국 곳곳에 넌센스에 가까운 십자가 매달린 성탄트리는 계속 설치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연말과 겹친 크리스마스 시즌은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이 새해를 맞이하는 기대와 설레임 그리고 희망을 나누는 축제 시즌이다. 그러나 유독 대한민국 기독교만 복음 전파 시즌으로 생각해 유별남을 나타내는 것은 그리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닌 것 같다.

또한 이명박 정부 들어 특정종교 차별과 관련하여 잡음이 계속되는 현실에서 십자가를 매단 성탄트리가 1개월 넘게 정부 공공기관 앞을 지키고 서 있는 것 또한 그리 좋은 모습은 아니지 않을까.



출처: http://www.humanpos.kr/news/article.html?no=1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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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득 의원 ‘천황 폐하 탄신 축하파티’ 참석

6일 저녁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주한일본대사관이 주최한 ‘천황 폐하 탄신 축하파티’에 이상득 의원 등 국내 정치인들이 참석했고, 일부 기업들은 축하화환을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뷰스앤뉴스’는 “아키히토 일왕의 생일(23일)을 기념한 이날 파티에 이명박 대통령의 형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을 비롯해 한나라당 박종근, 김태환 의원이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파티장 입구에는 롯데그룹, LG, 하나금융 등에서 보낸 대형 화환이 세워져 있었는데, 롯데그룹에서 보낸 화환에는 “천황폐하 탄생축하”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고 <뷰스앤뉴스>는 전했다.

 행사가 시작된 지 40여 분 뒤에 파티장에 도착한 이상득 의원은 어떻게 오게됐냐는 ‘뷰스앤뉴스’ 기자의 질문에 “한일교류협회 회장인데 한일 친선 교류를 위해서 당연히 와야지”라고 답했다고 전했다. 이 의원은 “그래도 국민 감정이 있지 않냐”라는 질문을 받자 “사람들이 사과하고 그랬으면 우리도 노력하고 해야지. 난 그렇게 생각한다”며 서둘러 파티장 안으로 입장했다. 이 의원은 이날 행사참석 뒤 ‘뷰스앤뉴스’와 재차 만나서도 “어느 나라든 간에 내셔널 데이(national day)가 있다. 나라마다 딱 하루 정해서 하는 건데 한일 교류 협회장으로 참석했다”고 거듭 문제될 게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일본이 사과하고 하니까 (참석) 해야지. 일본이 정중히 사과했고 자진해서 문화재도 돌려주려고 하니까. 외교상…”이라며 “축하해주고 나왔다. 축사는 안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내가 할 일이고 그동안 지난 (한일의원연맹) 협회장들도 다들 참석하셨다고 하더라”고 말한 뒤, 자신의 차에 올랐다.

 이상득 의원은 한일의원연맹 회장, 박종근 의원은 부회장, 김태환 의원은 수석부간사장 자격으로 참석했는데, 연맹 간사장을 맡고 있는 이낙연 민주당 사무총장은 불참했다. 이 총장은 “이제까지 (해마다 열린 행사에) 참석한 적이 없다”면서 불참이유를 설명했다고 ‘뷰스앤뉴스’에 밝혔다. 이날 대사관으로부터 초대장을 받은 의원들과 외교관 등 우리 정부쪽 인사 대부분은 행사의 부적절성과 민감성을 감안해 불참한 것으로 전해졌다. ‘뷰스앤뉴스’는 과거 일본군 제복을 입고 파티장에 들어온 일본인들은 장군으로 보이는듯한 한 퇴역 군인에게 거수 경례를 하기도 했다고 이날 파티장 분위기를 전했다.

 이날 행사에서 무토 마사토시 일본 대사는 축사를 통해 북한의 연평도 공격을 맹비난했고 나카소네 전 일본 총리는 일본은 천황 황제가 있어서 국가를 만들 수 있었으며 천황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결속하겠다는 요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대사관은 한국내의 각국 외교관은 물론 국내 정치인, 외교관, 정부 인사들에까지 초청장을 발송했고, 행사는 주최측이 예상한 350여명을 초과한 500여명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이날 파티는 철저한 보안 속에서 이뤄졌다.

e뉴스팀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45248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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