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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중에서]<빼앗긴 자들> 편집 후기 소개

2부 중 'SF 작가들의 좌우 격돌기' 에서 소개하는 어슐리 K. 르 귄의

<빼앗긴 자들:The dispossessed>을 번역 출간한 황금가지 출판사 편집자의 편집 후기 입니다. http://www.goldenbough.co.kr/readersclub.html?menu=view1&id=9&code=afteredit&start=0

 

르 귄은 베트남 전쟁 당시 전쟁 반대에 서명한 SF 작가 중 한 명이며 'SF계에서 노벨문학상을 탈 사람은 르 귄 뿐'이라는 말이 있을만큼 필치며 철학 등등 여러 면에서 훌륭한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빼앗긴 자들>은 미국에서 히피들로 대표되는 반체제 운동이 활발하던 1974년에 첫 출간한 것으로 당시의 시대정신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한 쪽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고도로 발한한 행성, 다른 한 쪽은 아나키즘 공산주의가 정착한 행성.

이 두 행성은 마주보고 보는 쌍둥이별입니다.

아나키즘 공산주의 사회에 회의를 느낀 한 물리학자가 반대편 행성으로 가서 느끼는 여러가지 모습들을 담고 있습니다.

 

필자는 "<빼앗긴 자들>을 읽으면 '사회과학 SF'란 것이 어떤 것인지 확실히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며 이 작품을 극찬합니다.

 

다소 생뚱맞지만 재밌는 편집후기를 보실 분은 "계속 보기" 클릭

 



빼앗긴 자들 The Dispossessed

어스시의 마법사라는 이름, 혹은 어둠의 왼손이라는 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더 잘 알려진 어슐러 K. 르귄의 작품 세계는 딱히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전체적으로 인간 냄새가 많이 나는 작품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영도씨나 혹은
톨킨과 같은 작가들의 글 속에서 서사를 만나고 영웅을 만나고 또 그 안에 잘
짜여진 플롯을 느끼다가도 가끔 어딘지 허무하게 느껴지는 것은 인간 냄새가
덜 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생각해 보면 셍떽쥐베리의 어린왕자에서 인생을 느
끼고 철학을 이해한다는 말은, 그 안에 철철 넘치는 사람과 세상을 이야기하기
때문이고, 동일선상에서 어슐러라는 작가, 어딘지 인간 냄새가 풀풀 풍기는 그녀
의 소설은 사실 SF나 판타지의 장르라고 규정짓기보다는 단지 그러한 장르를
빌려 만들어낸 새로운 인간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러한
인간에 대한 탐구와 고뇌, 이런 저런 이야기들. 그런 것들이 바로 현재 한국 장
르 문학들이 겪고 있는 허덕임과 지하 밑바닥으로 스며들 수밖에 없게 된 근본
적인 문제이며, 또 해결책이 아닐까하는 뭐 그런 쓰잘데기없는 궁금증을 줄줄
떨어뜨리며 어슐라 K. 르귄의 <빼앗긴 자들> 원고를 받아 보았다. -_-;;;

솔직히 처음 원고를 받고, 도무지 무슨 소리를 하는지 하.나.도. 이해 안 갔다.
하나도 이해 가는 게 없으니 당연히 내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이 어마
어마한 분량의 원고를 편집해야 한다니 눈앞에 시꺼먼 구름이 가득 몰려오더니
하루죙일 비를 뿌려댔다. 아, 젠장 다리에 류마티스도 있는데...으버버 -_-;

어찌했든, 이렇든 저렇든, 좌우지간, 여차지간, anyway!
번역본을 한번 다 완독한 후에, 다시 교정을 위해 읽을 때부터 내용이나 설정,
다양한 정보를 수집했다. 알고보면 우리나라 웹 사이트에 가득한 어슐러 르귄에
대한 정보나 해외 르귄 사이트에 넘쳐나는 정보들만 해도 책 한 권을 내도 될
정도로 많다. 대충 정보들을 찾아보고 여기저기 내용을 이해시킨 글을 읽고
나니 작품이 이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아니 이렇게 좋은 작품이 어째서 그동안
한번도 우리나라에 소개된 적이 없는 거지? 가만 생각해 보면.....
-_- 한마디로 책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라 이거다!

그래서 이 작품의 편집 첫 목표는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여 이해할 수 있게 만들
자에 두었다. 이 작품은 과거와 현재라는 두 가지의 챕터가 번갈아가며 진행된다.
과거는 주인공 쉐벡의 어린시절부터 우라스로 가기까지의 이야기, 현재는 우라스
로 가서 그곳에서 우라스의 수많은 사람과 문명의 이질감, 현실감 등을 느끼고
탈출하는 내용이다. 일단 과거는 "아나레스", 현재는 "우라스"라는 면주를 달았
다. 처음 읽는 독자들이 도대체 이게 뭔 횡설수설들이야- 라며 헷갈리지 않게 하
기 위한 방책이었다. 그 다음으로 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게, 이
작품에 대한 해설보다는 이 작품의 시리즈 모체인 <헤인 시리즈>에 관한 해설을
역자인 이수현님에게 부탁을 드렸다. 다른 한편으로는 책을 읽는데 참조할 수 있
게 <헤인 시리즈 목록>과 <수상 연혁>을 달았다.

원서에 지도가 있었는데, 작품 해설을 위해 지도를 꼭 넣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원서 지도가 이렇다..

 

난 이 지도를 보고 5분 넘게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아.니.도.대.체... 이걸 보라고 만든 지도인 건가! 지도를 대충 만든 건 그렇다
쳐도, 글자도 안 보이게 만들면 어떻게 하라는 건가!!(역자분의 말로는 퍼즐 맞
추기 수준이라고...)
그만큼 글자를 알아보기도 힘들 뿐 아니라, 그림에 표기된 위치조차 불분명했다.
결국, 역자분의 도움을 얻어 정말 정말 고생해서 지명들을 알아냈고,
그중에는 역자분과 함께 머리를 싸매고 추리한 것도 있다. -_-;;
하지만 저 지도대로 나갈 수 없기 때문에, 본인이 직접 지도를 다시 그렸다.
그런데 지도에 그림이라고는 선과 산... 이게 전부이다보니... 지도가 좋게 나올
턱이 없다. 그러니 내가 그린 지도에 너무 기대하지 않길 바라는 바. 단지 예전
지도보다 조금 좋아졌을 뿐.

뭐 그렇다 치자. 이해를 돕기 위해 면주를 넣고 해설, 지도, 연혁 등을 넣어다
치자. 그렇다고 이 작품이 이해가 될까? 오 노... 작품 우습게 보는 소리가 된다.
이 작품은 적어도 두 번은 읽어보길 권한다. 시간 차가 다른 챕터가 번갈아 진행
되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한 번 읽어보고 덮을 책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리고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이건 편집자로서가 아니라 한 개인으로서 외치
는 바이다!

본문 편집에선 최초에 2권으로 분책할 예정이었으나, 그렇게 될 경우 분량이 250
페이지씩 두 권이 나올 것 같아 1권으로 합쳤다. 560페이지에 양장으로 만들어지
도록 결정하고 나서 고심한 것은 다름아닌 제목이었다.

The Dispossessed
빼앗긴 자들

역자는 이렇게 번역해 오긴 했지만, 솔직히 <소유하지 않는 자들>이란 말이 더
느낌이 좋았다. 그리고 내용상으로도 <소유하지 않는 자들>이 중심인 이야기가
아닌가? 게다가 기자들에게도 <소유하지 않는>이란 말은 아주 잘 먹힐 말이다!
결국 편집부 내부에서는 <소유하지 않는 자들>로 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역자
에게 문의하였다.

이에 대한 역자의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으음. 그리고 제목은...저도 한참 고민했었는데 말이죠. 좋은 게 떠올랐으면
벌써 원고 넘기기 전에 이걸로 하자고 말씀드렸을 걸요 ^^;;
처음에 '빼앗긴(박탈당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가 책을 읽어보니 의미가
그런 쪽이 아니더라고요. 하지만 달리 정확히 옮길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그대로 넘겼습니다. 게다가...빼앗긴 자들이라는 의미와 소유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의미, 양쪽 모두를 함축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 제목.
낙원을 빼앗긴...이라는 느낌이랄까요. 우라스와 아나레스 양쪽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말 같기도 하고.
그래서 저는 그냥 빼앗긴 자들로 가도 될 것 같습니다. "

흠... 이것도 듣고 보니 상당히 맞는 말 같았다. 그래서 일단 표지에 제목을
앉혀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어떤가. -_- 확실히 <빼앗긴 자들>이 표지 디자인 상 임팩트가 있다.
결국 <빼앗긴 자들>로 결정. 하지만 <소유하지 않는 자들>은 참 아쉬운 제목
이다.(참고로 이번에 나온 표지를 보니 처음 나왔던 표지보다 선명하고 밝아져서
지금 위에 링크시킨 어두침침한 표지에 비해 분위기가 좀 깨진다.)

자 이제 모든 결정 사항이 끝났다.

편집을 시작하고 교정을 들어갔는데, 가끔 이해하기 힘든 말들이 나와 편집자를
당혹스럽게 했는데 그중 한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자네가 어찌할 수 없는 건 없어"
-_-;; 아니 이게 무슨 말이야!!! 혼자 끙끙거리며 원서를 찾아보았다.
"Nothing you cant handle."
-_-;; 맞잖아.. 자네가 어찌 할 수 없는 건 없어...;
-_-;;;;;
이 부분은 쉐벡이 처음 사불이라는 고집불통에 권위적인 - 어쩌면 쉐벡의 적이
라 볼 수 있는 사람과의 첫대면 장면이다. 쉐벡이 우라스의 수학이 어떻냐는
질문에 딱 저렇게 대답해 버린다. 그러니까 원 뜻은 "자네가 봐야 다를 게 없
다고"... 뭐 이런 의미다. 하지만 그렇게 직접 적으로 쓰기는 좀 그렇지 않은가?
이 부분에서 이사람 저사람 물어보며 끙끙거렸다. 사내 저작권 담당 팀에도
물어보고... 하지만 그럴 듯한 해석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역자에게 다시
수정을 부탁하여 받애는 것이 이것이다.
"자네가 손댈 수 있는 건 없어."
아아. 이 얼마나 행복한 번역인가!

=_= 뭐 그렇다. 본문 중에 "테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일반적 상식으로
"테라"는 지구다. 하지만 이걸 이해하지 못하는 독자를 감안해서 "테라"에
대한 설명을 해설에 넣는 걸로 충족시켰다.

다음 문제는 애칭이다. 외서 번역을 편집하다보면 가장 골치아픈 게 이 애칭
인데, <빼앗긴 자들>에는 유독 애칭이 많다. 이것을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헷
갈리지 않고 읽을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역자와의 상의 끝에 애칭 뒤에 본명
을 처음에만 달아주기로 했다. (하지만 여전히 불만스러운 표기다.)

이 소설이 가장 날 놀라게 한 부분은... 아나레스 사람들의 생김새였다.
처음에 타크베르와 쉐벡의 강제 이별 장면에서는, 쉐벡의 아픈 가슴이 너무나
절절하게 느껴지고, 타크베르라는 이 쿨한 여인네에 대해 남몰래 호감도 가졌
다. 그런데... 후반에... 표현하기로... 그들의 얼굴에는 털이 잔뜩 나 있고
그걸 면도하지도 않는다고...하니... -_-; 여자의 얼굴은 드워프 여자의 그...
모습이 아닌가. 오 마이 갓... 상상을 초월하는 이 묘사들.

그 묘사를 접하고 난 다음부터, 왠지 등장 인물들의 모습을 상상하니... 끌리
지가 않았다. 상상속에는 팀버튼의 혹성탈출 장면들이 여러 개가 스쳐가고...
OMG!

뭐 그랬다는 것이다.

이 작품에는 실로 많은 사상이 들어간다. 패미니즘 - 동성애, 사회주의, 아나
키즘, 관료체계에 대한 불신, 실패한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 현 미국의 패권
주의와 나눠먹기식 약탈 등, 지금 이 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30년 전부터 줄줄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특히 우라스의 에이-이오를 미국과 비교한다면, 지금
우리가 겪는 현실... 뭐 다양한 미군 문제, 반미 감정 등과 동화되어 보다 쉽
게 읽고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좀 해봤다.
이제는 책이 잘 나가기만 빌고 있다.
그리고 보다 많은 사람이 좋은 작품을 읽고 감격에 겨워 눈물을 펑펑 흘리길 빈다.

쓴다고 오래 벼르다가 이제야 썼는데 부실한 듯.
책임 없음.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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