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값어치가 그가 나온 학교로 매겨지는 사회가 있다. 강남 출신이 서울대생이 되는 우울한 사회. ‘교육인적자원부’가 교육행정부처 명으로 버젓이 이름을 내걸 수 있는 사회. 수능점수가 개인의 전부를 결정하는 현실은 ‘교육상품론’의 극단을 보여준다. 부모의 배경이 자녀의 인생을 결정하는 사회는 어마어마한 사교육 열풍을 만들어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슬픈 자화상이다.

 

사진_‘학교’를 버리고 시장을 떠나라ㅣ학벌없는사회 지음ㅣ메이데이 펴냄수능시험, 일제고사, 영어몰입교육, 국제중, 특목고 등 교육을 서열화하는 무수한 시도로 인해 우리 학생들은 탈진하기 일보직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숨가쁜 교육환경에 처해 있다. 고질적인 문제로 인식된 ‘학교제도’와 ‘시장경쟁’이 그 주요인이기 때문이다.


교육의 첫째 목표는 무엇이 돼야 할까? 개인의 자유와 주체성의 계발이다. ‘무한경쟁’과 ‘스펙쌓기’만이 난무하는 우리 사회가 자신과 전체 공동체의 행복을 위해 교육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때 자유롭고 동등한 시민으로 이루어진 정상적인 사회가 가능해진다.

 

≪‘학교’를 버리고 시장을 떠나라≫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학벌에 따른 차별을 타파하기 위한 운동을 벌이고 있는 ‘학벌없는사회’가 지은 책으로, 자본과 교육, 학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우리 사회의 거대한 집단사기극을 꼬집는다. 이 책은 학교제도와 시장경쟁을 비판하면서 교육의 근본적인 문제를 다시 생각하고 변화를 이끌어내는데 주안을 두고 있다.


무한경쟁에서 살아남는 법은 경쟁 속에 뛰어들지 않는 데 있다고 말한다. 그 길은 다름 아닌 ‘학벌없는 사회’다.


한국 사회에 ‘학벌철폐’와 ‘대학평준화’라는 화두를 최초로 던졌던 학벌없는사회는 이 책을 통해 이제 ‘학교와 시장’을 넘어 ‘교육’의 근본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자고 제안한다. 체제의 요구를 거부하는 ‘내부로의 망명’ 떠나기, 학교밖 청소년에 주목하여 다양한 학교밖 배움터를 만들어내기, 입사원서에 학력란 없애기 등 새로운 탈출구에 대해 이야기한다.


:::“교육은 교사나 학생 한 쪽의 일이 아니라 양 쪽이 서로 만남으로써 이루어지는 활동이다. 만남은 교육의 시원이며 과정이요, 궁극 목적이다. 이 점에서 교육의 본질은 서로주체성에 있다. 교육을 그 본질적 진리에서 규정하기 위해서는 교육을 이루는 다른 모든 계기에 앞서 그것이 만남이라는 계기를 통해 이해되고 규정되어야 한다.”:::


 


이 책은 우선 왜 ‘학교‘를 버려야 하는가를 보여준다. 오늘날 학교는 학생들을 점수로 줄 세우는 국가 독점 학력인증기관이며, 일류대에 얼마나 많이 보냈느냐가 그 학교와 학생들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는 학벌의 구조와 논리를 재생산해내는 기관이다. 이는 교육이 아니라 반(反)교육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김상봉이 철학적 관점에서 자유와 주체성의 논의에 근거해 학교를 비판하고 ‘내부로의 망명’이나 자발적 ‘낙오자 되기’를 위한 강령을 제시하고 있다면, 채효정은 체험을 바탕으로 실제로 얼마나 많은 청소년들이 학교를 그만두고, 왜 학교를 나오는지, 그들은 거기서 어디로 가는지를 분석하고 학교 밖 배움터의 필요성과 의미를 보여준다. 학교가 아니어도 갈 곳이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제도권학교에 충격을 주고 건강한 변화를 이끌어 내기를 시도한다.


:::“우리는 오히려 학교를 떠나는 아이들의 용기를 격려해야 한다. 또 떠나지 못하고 남아있는 아이들이 어떤 병적 상태에 있는지 알아야 하며, 학교에 오래 머물수록 그런 병적 상태가 심각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학교 밖으로의 탈출은 아이들을 살리는 길이다. 아이들은 살기 위해 학교를 나온다. 문제는 학교 밖에 이들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공간이 없다는 것이다. 학교밖 배움터는 그래서 필요하다. 그리고 학교를 중단함으로써 모든 사회적 지원 시스템이 동시에 중단되는 청소년들에게 교육을 비롯한 필요한 사회적 지원을 지속적으로 제공해주기 위해서 학교밖 배움터가 필요하다.”:::


 


책은 이어서 왜 시장을 떠나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학교는 시장이 될 수 없고, 교육은 상품이 아니고, 인간은 도구가 아니어야 하기 때문이다. 홍훈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 속에 명시적으로나 묵시적으로 상정하는 교육과 상품의 유비를 비판한다. 이철호는 학벌사회인 한국에서 정부가 밀어붙이는 교육시장화정책은 학교교육의 문제들을 풀지 못하고 결국 사교육시장의 비대화를 초래했을 뿐임을 보여준다. 정세근은 고착된 대학서열체제가 대학교육을 붕괴시키고 나아가 국가경쟁력도 약화시킨다고 주장하며 학벌타파의 우선적인 실천으로 학력란 없애기를 제안한다. 경쟁을 할 때 이미 강자에게 유리한 규칙을 일방적으로 적용하는 이 사회에서 하승우는 공생을 모색하며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이 있다고, 어렵지 않다고 말한다.


:::“학벌이 정치경제적 가치로 환산되는 국가조직이 아니라, 정말로 능력과 창조성, 그리고 패기에 의해 운영되는 경쟁력 있는 선진국형 국가이길 젊은이들은 꿈꾸고 있다. 이 꿈은 입사원서에서 학력란을 없애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입사원서의 ‘학교명’이라는 빈칸은 실제로는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을 가로막고 있는 ‘학벌’이라는 원죄를 담는 그릇임을 우리 모두 인식할 때이다.”:::


 


또한 지식교육보다 앞서는 신체의 단련을 위한 체육교육의 실태를 살펴보고, 개별학과의 지식을 넘어서는 시민교육을 철학적으로 반성한다. 김재홍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을 중심으로 교육이 왜 공공적이어야 하는지 시민교육이 어떤 함의를 갖는지 보여준다. 이병호는 우리나라의 체육교육을 해부함으로써 가장 기초적이고 보편적인 교육이 근저에서부터 어떻게 왜곡되어왔는지 드러내준다.


이 책은 결론적으로 학교는 변해야 하고 학교가 바뀔 수 없다면 학교를 버리고 시장을 떠나서 교육을 다시 세워야 한다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