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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6월13일]"한-미 FTA 통과되면 한국 주권상실"

“한-미FTA 통과되면 한국 주권상실”
이해영 교수 ‘낯선 식민지, 한미 FTA’서 찬성론자 반박
한겨레 한승동 기자
  이슈특집 : 노무현정권과 한미FTA
수출은 늘고 성장도 계속되고 있다는데, 게다가 ‘출산율 1.08’에서 보듯 인구폭발이 평균소득을 갉아먹고 있는 것도 아닌데, 왜 갈수록 못살겠다는 아우성은 커가기만 할까? 욕심이 커져선가? 아니면 사회 양극화 심화로 인한 저소득층의 상대적·절대적 빈곤화 때문인가?

1998년부터 2002년 11월까지 약 6년간 외국인들이 한국 증권시장에 투자(투기)해서 얻은 평가차익은 89조5천억원, 한국 1년 예산의 75%에 이른다. 2004년 시가총액기준 외국인 국내주식보유는 40.1%로 세계 최고수준이다. 또 그 외국인투자의 구성을 보더라도 2004년 말 기준으로 직접투자는 21%에 불과하고 대부분이 투기성 강한 증권투자가 51%를 차지했다. 한국 은행산업에 대한 외국자본의 점유율도 30%(총자산 기준)에 이르러 국민경제를 심각하게 위협하기 시작했다. 이는 아시아 최고수준이며 선진국의 평균 20% 이하보다도 월등 높은 수준이다. 성장잠재력 고갈의 근본원인 중 하나가 바로 이런 데 있다. 한국이 ‘국제투기자본의 놀이터’가 됐다는 비판이 나온 지는 오래됐다.

최근 ‘스크린쿼터 영화인대책위원회 정책위원장’,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저지 범국민운동본부 정책기획연구단장’으로 활동하면서 한-미 FTA를 둘러싼 논란과 공방의 최일선, 그 중심에 서온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가 〈낯선 식민지, 한미 FTA〉(메이데이 펴냄)를 출간했다. 이 교수가 보기에 한-미 FTA 투자조항은 미국 투자의 악영향과 문제점을 개선하고 극복하려는 정책이 아니라 오히려 보호하고 조장하는 정책이다.

투자부문만이 아니다. 농산품, 자동차, 세제, 환율, 지적재산권, 정보통신시장, 철강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잉여 ‘약탈’을 겨냥한 외부권력과 자본의 전면적인 침투가 진행되고 있다. ‘수출의존도가 70%가 넘는데, 자유무역은 곧 수출인 마당에 개방은 불가피하지 않느냐’는 논리는 본질 왜곡이다. 한국은 이미 폐쇄나 쇄국상태를 벗어난 지 오래며, 오히려 지나칠 정도로 문을 활짝 열어 젖히고 있기 때문이다. ‘FTA 저지’가 쇄국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분석 결과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되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10년간 총누증분이 1.99~7.75%, 매년 약 0.2~0.8% 추가성장이 가능한데,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매년 13.5억~35.2억달러 정도다. 미국 사모펀드 론스타는 외환은행 인수 뒤 3년 동안 매년 1조5천억씩, 즉 매년 15억달러 이상의 차익을 챙겼다. 일개 투기펀드가 한 해에 걷어가는 수익이 이럴진대 협정으로 말미암은 국민소득증가 효과라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그나마 미 국제무역위원회 자료를 보면, 협정 체결 4년 뒤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는 약 100억달러에서 고작 9억달러 수준으로 급감한다. 이 교수의 논박은 이처럼 매우 구체적이다. 곳곳에서 실증자료들을 찾아내 들이댄다.

한-미 에프티에이는 말 그대로 ‘무역 자유를 위한 협정’이 아니라 “경제통합협정”이다. 그것이 한국이라는 국가에 미칠 “가장 치명적인 결과는 경제체제의 거의 모든 부문에서 국가의 정책공간을 위축시키고 또 정책수단을 박탈하는데 있다.” 노리는 건 경제통합만이 아니다. 정치·사회·문화 거의 모든 분야의 통합이다. “한마디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정치적 결과는 (한국의) 주권 상실이다.”

쌍방의 추진 주체들은 기존의 민족국가 경계를 추월해 무제한의 ‘돈의 자유’ ‘자본의 자유’를 요구하는 초국적 기업, 초국적 자본, 초국적 시장 세력이다. “한-미 에프티에이를 통해 시장이 요구하는 것은 단순히 규제를 완화하라는 것이 아니다. 조약문에 나타난 그 흐름을 볼 때 그것을 넘어 이제 시장이 국가를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식민주의이며,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가 상징하는 양국 군사동맹강화(통합)까지 강행되면 “포괄적 재식민화는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이 교수는 경고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힘을 쥐고 있는 쪽은 “미국 말 듣지 않으면 다 죽는다는 공미주의적 담론”과 “한-미 에프티에이 협상 결렬=한미동맹 파탄” 담론의 유포자들이다. 보수언론과 보수학계뿐만 아니라 노무현 정부 핵심까지 포함해 도처에서 이 신종 담론을 퍼뜨리고 있다. “한-미 에프티에이는 위축된 한-미 동맹의 지위를 복원하는 매우 유리한 환경이 되고, 또 미국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미국/재벌/관료 복합체의 재공고화를 기획하는 데 가장 바람직한 조건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에프티에이는 한국사회의 지배블록 내에서 한미동맹파 총반격의 성격을 가질 수 있다는 데 주의해 둘 필요가 있다.” 말하자면 에프티에이가 ‘국가나 국민’에게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주장은 거짓이거나 사기에 가깝다. 이로써 득을 보는 쪽은 따로 있다. 따라서 에프티에이가 이익을 가져다 주는 쪽은 ‘그들’이지 ‘국가나 국민’ 전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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