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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6월11일]FTA는 '자유무역' 아닌 '경제통합' 협정"

"FTA는 '자유무역' 아닌 '경제통합' 협정"
  [화제의 책] 이해영의 <낯선 식민지, 한미 FTA>
  2006-06-11 오후 3:40:32
  지난 2일부터 미국 워싱턴 DC와 스위스 제네바 두 곳에서 진행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1차 본협상이 9일 끝났다. 한국의 김종훈 수석대표, 미국의 웬디 커틀러 수석대표를 비롯한 양측 협상단은 이번 협상에서 총 17개 중 13개 분과·작업반에서 통합협정문을 만들어냈다. "상대방의 관심사와 우선순위에 대한 상호이해에 중요한 진전을 이뤘다"는 것이 미국 측 커틀러 대표의 평가다.
  
  한미 양국 정부 대표단이 한 테이블에 머리를 맞대고 앉고 그 협상장 밖에서는 한미 양국 노동자와 사회단체 회원들이 '다운 다운 FTA'라는 구호를 외쳤다. 그 와중에 서울에서는 스크린쿼터 영화인대책위원회 정책위원장과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정책기획연구단장을 맡고 있는, 한 마디로 반(反)FTA 진영의 '브레인'이라 할 수 있는 한신대 이해영 교수(국제관계학부)가 본협상 개시에 맞춰 <낯선 식민지, 한미 FTA>(메이데이 펴냄)라는 분석서를 내놓았다.
  
  "한미 FTA가 미칠 영향은 측정가능한 범위를 넘어선다"
  
  지난 2004년에 한미 FTA의 전조 격인 한미투자협정(BIT)에 대한 비판논문을 발표한 바 있는 이 교수는 "한미 FTA는 FTA가 아니다"라는 말로 이번 책의 첫머리를 열었다.
  
  "한미 FTA는 자유'무역'협정이라기보다, 포괄적 '경제통합'협정이라고 보는 것이 현실에 부합된다. 이런 의미에서 한미 FTA는 FTA가 아니다. 따라서 그것이 미칠 영향은 현재로선 측정가능한 범위를 넘어선다."
  
  2차대전 직후 미국 주도의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체제를 견제할 목적으로 일부 유럽국가들에 의해 제안된 FTA가 2002년 칸쿤 WTO(세계무역기구) 각료회의 실패 이후 미국의 일방주의적 통상전략 관철 도구로 변질됐다는 것이 이 교수의 지적이다. 또한 고전적 FTA는 '관세'를 중심으로 '상품무역'을 자유화하는 데 그쳤지만 '신세대' FTA의 성격은 전혀 다르다고 이 교수는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04년 7월 미국이 호주와 체결한 FTA의 경우를 보면 신모델 FTA의 포괄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알 수 있다. (1)상품에 대한 시장접근 (2)농산물: 미국산 농산물에 대한 관세는 즉각 철폐, 호주산 농산물에 대한 관세는 4~18년 간 철폐 (3)제약 (4)초국경적 서비스: 광고, 회계, 시청각, 컴퓨터, 교육, 훈련, 에너지, 특급우편, 금융업, 전문직, 통신, 관광 등 모든 분야에 대한 내국민 대우 및 최혜국대우 (5)미국계 은행, 보험, 증권, 생명보험사에 대한 영업허가 (6)전자상거래: 소프트웨어, 음악, 비디오, 문서 (7)'모든' 종류의 투자에 대한 보호 (8)미국 국내법 수준의 지적재산권 보호 (9)정부조달에 대한 비차별적 대우 (10)반경쟁적 관행 금지 및 법적 제재 (11)분쟁해결절차 규정 (12)노동 (13)환경 등, 그것이 포괄하고 있는 범위는 국민경제의 거의 모든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삼성과 LG "우리는 해볼만 하다"
  
▲ 이해영의 <낯선 식민지, 한미 FTA> ⓒ 프레시안

  이렇게 한국과 미국의 경제가 '통합'되면 다들 손해만 볼까?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아니다"라고 답하고 있다. 재벌기업 특히 삼성, LG, 현대차 같은 "한국계 초국적 기업의 입장"에서는 해볼만 한, 아니 "구조조정의 새로운 모멘텀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다.
  
  유엔의 세계투자 보고서에 의하면 삼성은 초국적화 지수로 세계 7위다. FIFA 2006 월드컵의 공식 스폰서인 현대자동차그룹이나 LG도 만만치 않다. 이런 '한국계 초국적 기업'에게도 유리한 한미 FTA를 통해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되면 국민들도 덩달아 해택을 볼까?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관점에서 한미 초국적 자본은 한미 FTA를 지렛대로 구조조정의 새로운 모멘텀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라는 점에서 보면 삼성과 LG도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과거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를 미국 자동차 업계가 인원감축, 생산기지 이전 등 구조조정의 계기로 이용했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한미 FTA로 인한 관세철폐가 가져다줄 가격인하 효과보다 오히려 이러한 구조조정을 통한 인건비 절감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신자유주의적 한미 FTA는 가변자본에 대한 총자본의 글로벌 네트워킹의 한 고리라고 할 수 있다."
  
  비록 FTA를 통해 수출이 획기적으로 늘어나고 또 경쟁력이 갑자기 강화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상관없다는 것이다. IMF 이후 '사오정(사십오세 정년), 오륙도(오십육세까지 버티면 도둑놈)'이라는 말이 유행하면서 '정년퇴직'은 '희망'에 불과해진 것을 떠올리면 된다.
  
  "한미 FTA는 가뜩이나 비교열위에 있는 한국 국가 대 자본의 힘 관계를 더욱 후자에 유리하게 재편할 전망이다. 그래서 시장은 국가에 대해 규제완화나 철폐 따위 '탈(脫)규제'를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시장에 의한 국가의 '역(逆)규제'를 요청한다. 그래서 한미 FTA는 단순히 대미 종속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한국계 초국적 기업을 포함하는 신자유주의에 의한 포괄적 식민화를 의미한다."
  
  지난달 말 삼성경제연구소의 곽수종 수석연구원은 '한미 FTA의 정치경제학'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서 곽 연구원은 "부문별 이해득실을 떠나 국가전략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는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면서 "협상과정에서 전략적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의 책을 읽으면 삼성경제연구소가 말하는 '국가전략', '전략적 유연성'이 무엇인지 파악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지금까지 신자유주의가 국가규제로부터 시장의 분리, 곧 탈규제에 전략적으로 집중해 왔다면, FTA를 매개로 신자유주의는 국가에 대한 시장의 규제, 곧 역규제를 지향한다. 더욱이 문제가 되는 것은 시장의 공동화가 아니라 이제 국가의 공동화이다."
  
  '낯선 식민지'가 시작된다
  
  한미 FTA로 도래할 포스트-신자유주의가 그리는 미래는 한국계와 미국계 초국적 자본에게는 유토피아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분명히 디스토피아다.
  
  "결국 외환위기 당시 IMF를 지렛대로 구조조정을 관철하였고, 이번에는 FTA를 지렛대로 구조조정하겠다는 발상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외부쇼크', 즉 외압을 통한 구조조정이야말로 한국사회 양극화의 새로운 주된 원인이 될 것이다. 한미 FTA를 통해 이제 그 효과는 제조업 일반을 넘어 공기업을 비롯한 서비스산업 전반에까지 확산될 것이다. 그 결과 당장 고용불안과 비정규직 확대는 불가피하다."
  
  이 교수는 이런 디스토피아를 '낯선 식민지'로 명명했다. 제국주의 시대의 고전적 식민지, 냉전-탈냉전기를 거친 신식민지에 이어 자본이 국가를 지배하는 3세대 식민지가 도래한다는 것이다.
  
  "식민주의는 자기 완결적인, 신성불가침의 국경으로 무장한 전통적 민족국가 간의 관계에서 나온 개념이다. 오늘날처럼 초국적 자본이 주동하는 글로벌 경제에서 그 양상은 매우 다르게 전개된다. 이 지점에서 한국의 수출경제를 사실상 주도하는 초국적 기업과 미국계 초국적 기업은 일종의 '이항대립(二項對立, binary opposition)'적 관계에 놓인다. 다시 말해 한편으로 시장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대립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신자유주의에 동일한 이해를 갖는 그러한 관계 말이다."
  
  이 교수는 한미 FTA 협상의 전망과 관련해 3가지 정도의 시나리오를 전망한다. 2006년 12월 말~2007년 3월 말에 걸쳐 협상이 타결되는 경우, 협상이 결렬되는 경우, 그리고 협상이 지연되는 경우가 그것이다. 그런데 2007년 3월 말을 협상타결 시점으로 하여 추진되는 한미 FTA는 어떤 경우가 됐든 저항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한미 FTA 추진은 그 자체로 한편으로는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커다란 사회정치적 쟁점이 될 것이고, 더 나아가 '87년 체제'의 향방 혹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둘러싼 새로운 도전이 될 것이다. 이 교수는 묻는다. "2006년이 갈림길이다.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그러나 이 교수의 질문에 대해 이미 노무현 대통령은 답한 바 있다. "한미 FTA로 사회양극화를 해결하겠다"고. 5.31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대패한 이후에도 대통령은 '부동산시장 안정과 한미 FTA'를 향후 국정의 양대 축으로 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국정에 임하겠다던 한나라당은 "정부로 협상창구가 단일화된 마당에 (한미 FTA에 대해) 왈가왈부할 때가 아니다"라고 했다. 일부 언론들은 "이익집단에 휘둘리지 말고 국가 전체를 생각해서 FTA 체결에 나서야 된다"고 입을 모은다. 확고하기만 한 이 삼각동맹을 바라보노라면 이 문제가 사회정치적 쟁점이 될 수나 있을까 의심스럽다.
  
  각종 통계자료와 표가 빽빽이 담겨있는 이 책은 사실 술술 잘 읽히거나 한 번 손에 들면 내려놓기가 힘든 그런 책은 아니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머리와 가슴을 무겁게 만드는 책이다. 그렇지만 한미 FTA가 펼칠 우리의 미래는 아마 훨씬 더 무거울 것 같다. 눈을 감고 있다가 죽느냐, 눈 뜨고 죽느냐 라는 두 가지 선택지만 남아있는지 모르겠지만, 눈을 뜨고 있고 싶은 사람은 일독해볼 만한 책이다.
   
 
  윤태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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