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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공원 다녀온 날

어제 휴가를 쓰고 모란 공원에 갔다.

민우회 소식지에 용산 관련한 글을 기고하기로 했는데

잘 안 써졌다.

추모제에 가지 못한 죄책감 때문인가...

시간을 내서 찾아뵈어야 겠다고 생각했었다.

 

강남역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천마산 수련원에서 갈아탔다. 다른 날보다 유독 멀미가 심하게 올라왔다.

 

<모란공원 입구>

 

학교 다닐 때

우리 과에서는 3월에 전 학번이 함께 가는 엠티를

대성리로 오고

다음날 아침 다같이 걸어서 모란공원까지 와서

참배를 하고 청량리로 돌아가곤 했다.

그땐 전태일 열사와 김귀정 열사(아리따우시다고 남성선배들이 좋아했음둥;;)밖에

잘 몰랐는데...

 

오랜만에 찾은 모란공원은

왜 이렇게 넓은 것인지... 

열사가 이토록 많았던가, 순간 어지럽다.

 

 

<민주열사 추모비>

 

"의로운 것이야말로 진실임을, 싸우는 것이야말로 양심임을, 이 비 앞에 서면 세상 알리라...

지나는 이 있어 스스로 빛을 발한 이 불멸의 영혼들에게서 감가 불씨를 구할지어니"

<추모비에 비친 내 모습>

 

모란공원 터줏대감 전태일 열사를 먼저 찾아뵙는다.

눈을 마주치며 마음 속으로 괜히 넋두리를, 하소연을 해 본다.

'나 힘들어요.... 어쩌구 저쩌구...;;'

말없이 들어주시는 전태일 열사.

 

이제 용산 열사들을 찾는다.

그런데 쉽게 찾아지지가 않는다. 눈에 확 띌 거라고 생각했는데...

산 이라서 그런지 눈도 다 녹지 않아서

미끄러운 길을 살금살금 걸으면서 찾는데

도대체 어디 계신건지...

 

혹시 지도에 써 있을까? 다시 입구로 가서 지도에서 찾다가 발견했다.

 

 

다시 산길을 올라간다.

번듯하게 묘비도 있고

아직 시들지 않은 국화꽃도 가득할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겨울이라서 그런가?

용산 열사들의 봉분에는 아직 잔디도 묘비도 없었다.

흙으로 덮은 봉분 위에 비닐이 씌워져 있고

그 위에 눈 녹은 물에 축축히 젖은 국화꽃 몇 송이.

 

괜히 서러워서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봉분이 다섯 개여서 용산열사들인지 알았차렸지

정말 못 찾을 뻔도 했다.

 

다른 열사의 유가족이신지

가까운 묘에서 부부가 열심히 눈을 치우신다.

그 분들에게 들릴까봐 숨죽여서 한참을 울었다.

 

전태일 열사 묘처럼

플라스틱 박스가 놓여있을 줄 알고

민우회 빼지도 챙겨 왔는데

놓을 곳이 없다.

용산열사들의 묘 사진을 찍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냥 찍지 않기로 했다.

 

한참을 울다보니 해가 이동해서

용산열사들 계신 곳에 햇볕이 따뜻하게 비춘다.

왠지 마음이 놓이고 조금 차분해져서 모란공원을 떠날 수 있었다.

 

<눈 덮인 모란공원>

 

돌아오는 길에 서점에 들렀더니

<내가 살던 용산>이라는 만화책이 출시되었길래

한권 샀다.

 

죽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잘 살지도 못하는 인생.

 

더 낮은 곳으로 가고 싶다,

더 절박한 싸움의 현장에 함께 하고 싶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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