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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6/30
    .....
    투덜 투덜
  2. 2006/06/05
    개를 기르다/우리 개 이야기/수지(6)
    투덜 투덜
  3. 2006/06/02
    뭐이, 마누라가 이리 마니 나왔어(1)
    투덜 투덜

.....

 

 

긴장과 조바심

 

 

 

여유와 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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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기르다/우리 개 이야기/수지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울먹이는 목소리였고, 어찌할바를 모르는 목소리였다.

'수지가 아파서 아무것도 못먹고 계속 누워있어'

가슴이 철렁내려 앉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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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동물병원에 수지를 데리고 갔더니, 간이 굳어가 희망이 없다고 했다.

어머니는 울기만 했다.

주말에 집으로 가서 가망이 없으면 내가 안락사 시키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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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기 이틀 전 어머니가 수지가 갑자기 괜찮아졌다고 했다.

수의사도 수지가 좋아진 이유를 모르겠다고 한다.

주말에 집에가서 이틀동안 수지랑 같이 있었다.

집을 떠난 후 처음으로 집에 제대로 붙어있었다.

오직 수지때문이었다.

집을 나서서 울산으로 돌아 갈 떄 수지를 다시 못볼 것같았다.

나가는 나를 보던 수지의 얼굴이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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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보름 후 수지가 죽었다고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베낭에 수지를 데리고 가 산에 묻었다고 한다.

울산으로 온지 2년이 안됬을 때였다.

지금으로부터 8개월 전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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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를 전역하고 방황으로 학교에 발길이 뜸할 때

오랜만에 사람들 얼굴이나 보려고 총학생회를 찾아갔다.

혀를 쪼금 내밀고 있는 요크셔 한마리가 있었는데 너무 귀어웠다.

그 때 감기걸려 기침을 하다 콧물이 나왔고, 당황하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아무도 대려가지 않아서 총학생회실에 임시방편으로 살고 있던 개였다.

사흘후 내가 키운다고 하고 집으로 대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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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식구들 몰래 수지를 집에 대리고 왔다.

다음 날 아침에 수지는 식구들을 만났고, 가족들은 모두 당황해 했다.

어머니는 일거리 생긴 거 아니냐고 했다.

내가 모든 것을 알아서 한다고 하면서 어찌저찌 설득을 시켰다.

불안한 맘에 한달넘게 집에 붙어있으면서 수지를 지켰다.

그 때처럼 집에 빨리 들어간 때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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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수지가 온 지 6개월정도가 지나서야 식구들이 수지에게 정을 주기 시작했다.

그래도 1년동안 수지 뒤치닥거리는 나 혼자 했다.

1년이 넘어가자 어머니가 수지를 처음으로 목욕을 시켰다.

그러나 어머니는 맘이 약해 수지를 혼내지 못했다.

수지에게 악역은 나 혼자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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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는 사실 요크셔치고 다리와 주둥이가 길고 몸집도 쫌 큰 편이었다.

혀를 내밀고 있는 것은 기관지계열이 약하기 때문이었다.

소화를 잘 시키지 못해 자주 체하기도 했다.

요크셔답지 않게 너무 조용한 성격에 애교도 없는 개였다.

어찌보면 B급 애견이었지도 모르는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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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대리고 온지 얼마 후 수지의 사연을 들었다.

한 친구가 기르던 개를 젊은 부부에게 인터넷으로 분양을 받았는 데

그 친구가 기르기 어려워 다른 친구 집으로 옮겨갔다.

그런데 그 다른 친구 아버지의 반대가 심해 갈 곳없이 총학생회에 있게 된 것이다.

한달동안 일어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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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는 낯선 남성을 매우 싫어했다.

최초에 길렀던 부부 중 남편이 못살게 굴었던 것으로 추정할뿐이다.

수지가 집으로 왔을 때는 중성화 수술이 되어있어, 다른 개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우리 집에 왔을 때 수지가 대여섯살정도일 것이라고 추정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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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가 온지 1년정도 되었을 때 집에 너무 끔찍한 일이 있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너무 싫었고, 모든 게 싫었고 괴로웠다.

한달동안 방에만 있을 때 수지가 내 옆을 지켜줬다.

그 때 집에 있을 수 있던 것은 수지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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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떠나 울산으로 가던 날, 식구들이 모두 자고 있는 밤에 짐을 챙겨 나왔다.

내가 집을 나가는 모습을 수지는 뚤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집을 떠난 후 수지가 일주일동안 대문앞에 있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듣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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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가 죽은 후 어머니가 수지 사진이 있으면 가져다 달라고 했다.

다섯장 정도를 챙겨서 집에 가져다 주었다.

평소 모습의 수지 사진이었는데, 가족들은 사진속의 수지 모습이 아파보인다고 했다.

가족들은 수지의 아파한 한달동안 마지막 모습이 연상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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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가 죽기 열흘전부터 종양이 생겼다고 한다.

누워있기만 해서 생긴 종양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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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가 죽고난 후 집에 처음 갔을 때, 다시 문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수지가 없는 집은 너무 차가웠다.

수지대신 7개월 정도된 조카가 옹알거리고 있었다.

내가 사준 수지밥그릇은 구석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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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가 죽기 서너달 전 집에 갔을 때, 수지는 화장실 앞 긴 줄에 묶여있었다.

돌이 안된 조카 옆에 수지가 못가게 하기 위해서 였다.

그리고 그 날 수지의 목줄을 풀고 같이 잤다.

수지가 죽기 보름 전에 집에 갔을 때는 목줄이 풀려있었다.

수지가 여덜,아홉살정도 되었다고 추정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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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가 죽고 두달 후

'개를 기르다'라는 만화책을 샀다.

그리고 얼마 전

'우리 개 이야기'라는 영화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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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야, 마지막으로 있던 우리 집에 있을 때 나쁘지는 않았지?

수지야, 내가 막 혼내도 맨날 너랑 잔 사람은 나밖에 없다.

수지야, 발바닥 털정리, 발톱정리는 내가 다 해줬다.

수지야, 없는 돈에 이것저것 사느라 쪼매 힘들 때도 있었어.

수지야, 그래도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해.

수지야, 그래도 나중에 너같은 친구를 책임질 수 있을 때, 다른 친구랑 살아가도 괜찮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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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이, 마누라가 이리 마니 나왔어

 

지자체 선거기간동안 이유야 당연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선거에 관심이 가니 여러 이야기를 했었다.

그 중에 기억에 나는 말

 

'뭐이, 활동가들 마누라가 이리 마니 나왔어. 지들끼리 다 해묵어라'

 

이번 지자체선거에 (울산에서) 민노당 여성후보들이 많이 출마했고

그녀들 다수는 한딱가리한다는 현장출신의 활동가와 결혼한 학출여성이었다.

그리고 그녀들의 다수는 운동일선에 물러난 상태였다.

 

추측컨데

그녀들은 열성적인 (노조)민주파 활동가였을 것이고,

가장 험난한 일들을 해왔던 여성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들은 어느 순간 운동일선에 물러났다.

그녀들이 운동일선에서 물러난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결혼과 함께 '주부'라는 일을 해야 했을 것이고

제도화되가는 민주노조운동에서 그녀들이 할 일은 많이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들은 운동일선에서 물러났기보다는 밀려나간 것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 그녀들의 갑작스런(?) 컴백이

대공장 중년 남성 활동가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던 것이다.

 

또 추측컨데

그들의 불편한 심기의 이유는

하나. 현장에서 선명한 이야기를 하던 '학출'들이 어느 순간 운동일선에 안보이더니

갑자기 '제도정치'로 돌아 온 불편함일 것이다.

둘. 집에서 밥하던 '여자'가 '님'이 된 불편함일 것이다.


그녀들의 진출에 별 생각이 없던 나는 그들의 말에 의해

그들의 말이 불편해졌고

그녀의 행동이 불편해졌다.


그들의 말

학출과 여성을 분리하는 태도

자신과는 다른 무엇

학출은 뭔가 선도적이어야 하고, 투철해야 하고, 일선에 항상 있어야 하고...

여성은 뒤에 있어야 하고, 섬세해야 하고, 뒤치닥꺼리하고...


그녀의 행동

자신이 만들어 온 제도에 밀려나자 다른 제도로 가버리는 행동

제도가 있어야 안심하는 무엇


그들이 내게 물었다.

‘지들끼리 다해묵는 거슬 어찌 봐야하는 거고?’

나의 대답

‘어찟든 자기 활동하는거고, 활동 복귀하는건데 잘 하는거죠.

권력도 잡고, 활동도 재계하고. 잘 하는거죠...‘


비겁한 대답

무능한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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