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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 다큐멘터리 <소풍>에 관한 제작과정에 대한 작업일지 (2004.12~2006.3...그리고 지금)

1월 11일 촬영과 후기(남용조할아버지편)

행복했다.

오랫만에 온 몸에 불 냄새가 진동한다.

남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나는 고구마를 불에 구워먹었다.

촬영하면서 느끼는 부담감과 편집에 대한 압박감 대신에 내가 이 작업을 왜 하고

있는지 내가 무엇때문에 끝마쳐야 하는지를 느꼈던 중요한 순간이었다.

뜨거운 고구마 껍질을 벗기며 검댕이를 손과 얼굴에 묻혀가며 먹던 고구마의 맛은

정말 일품이었다.

 

남할아버지가 며칠전 술을 너무 많이 먹고 신장로로 걸어오다 길에 쳐박혔던(?) 큰

사건이 있었다. 할머니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고, 할아버지가 움츠려든 사건이었다.

주변에 머시기 상회 아저씨 아니었으면 남할아버지는 꼼짝없이 길에서 얼어죽을뻔한

사건이었다. 그로 인해 남할아버지는 며칠째 술을 예전처럼 못드시고 계셨다.

그래도 할머니의 눈을 피해 하루에 한잔 정도는 마신다고 했다.

술을 잘 못드셔서 그런가 손을 더 떠는것 같다.

남할아버지는 감기도 걸렸고 며칠전 사건도 있고 해서 영주시내 한의원에 다녀오신

모양인데 그곳에서도 주사는 안놔준다고 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건강에 대해 걱정이 많으시다.

 

우리 셋 불을 쬐고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할머니의 칠십평생 망가지고 갈라진 손을

이리 저리 보더니..슬쩍 만져 보신다.

분명하다. 서로 좋아하고 있다. 그래서 좋다.

 

돌아오는 길에 할머니가 바리 바리 싸주신다.

동지에 해놓고 얼려놓았던 팥죽이며 고구마며..

...돌아오는 길에 이런 생각을 했다...아..C...돈마니벌어야게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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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0일 촬영후기

 

지금 촬영을 인터뷰 형식으로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촬영분을 어떻게

가편본내용에서 적재적소에 끼워넣기를 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본다.

시간이 길어지면서 내 가편본에 대해 부족한 부분이 눈에 보인다는게 가장 큰

즐거움이라면 즐거움이랄까.

다만 좀 더 완편본을 만들기 까지의 기간이 길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홍진유할아버지는 질문한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대답해주는 한편

변호용할아버지는 (늘 그렇지만 술에 취해있다) 이 질문하면 딴 얘기하고

저 질문하면 또 다른곳으로 튀어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변할아버지의 인터뷰는 성공적인 편이 못되었고

그렇다고 변 할아버지에게 같은 질문을 해서 성공적인 대답을 얻을 수는 없을 듯하다.

 

나머지 촬영분은 봉도각에서의 촬영과 남할아버지 부부에 관한 촬영이 남아있다.

영주 순흥은 추웠던 날씨가 요며칠 누그러졌다.

어렸을 적 부터 그래왔지만 늘 잠이 많은 나는, 요즘 정말 더 괴롭다.

스스로 곰탱이가 된것 같은 착각도 든다.

생각은 많은데 그것을 어떻게 풀어야 되는지 다른 사람들이라면 짧은 시간에

정확히 해결할 문제를 나는 며칠이고 생각한다. 느리다 정말.

아무래도 내일은 점심때쯤 출발 해야 할것 같다.

(내가 있는곳에서 할아버지들이 계신 봉도각 까지는 차로 30분이 걸린다)

내일 촬영을 마무리하고 돌아올때는 어느정도 촬영에 마침표를 찍고 싶은데

어떤것이 부족한지는 더 생각을 해봐야할것 같다.

 

홍할아버지의 아들 중할아버지의 촬영분을 조금 더 분량을 늘여야 하는것은

그래 분명한거고..그렇지 인터뷰보다는 촬영분으로 나의 생각이나 할아버지들의

생각을 그대로 옮기는것이 더 좋고 자연스럽다는것은 자명한것이지만 사실

그렇게 촬영를 한다는게 정말 쉬운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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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도각 할아버지들

 

 

노년을 보내고 있을 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영화를 보거나 책을 보거나, 길을 가다 할머니나 할아버지의 등을 볼때

난 늙어서 어떤 모습으로 있을까 궁금해진다.

할아버지들이 나를 두고 이런 저런 얘길 많이 한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젊어서 이쁘지만 나중에 나이 들고 늙어지면 보기 싫어질 정도로 늙을거라했다.

당장 다가올 미래가 아니기때문에 나는 아직 젊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깊게 생각해 본적

없었는데 문득 문득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고 나또한 늙어가고 있다는것을 알게된다.

 

봉도각 할아버지들은 서로가 있어 행복하다.

늙기 전에 해두어야할 몇가지 이야긴가 하는 글을 읽은적이 있었는데

내용에 보면 이런 내용이 있었다.

친구를 사귀어라. 그대를 회상하며 손을 잡아줄 수 있는 친구를 만들어라.

 

(아래 사진은 2005년 5월 석가탄신일날 기념으로 봉도각 앞 연못에서 찍은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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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0일 보충촬영<변호용할아버지 편>

변호용할아버지에 대한 의견은 다분하다.

일단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보면,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고 난봉꾼이라고 부른다.

젊은 사람들은 작업맨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변할아버지에 대한 씬들이 재밌기는 했다.

영주시골장 씬이라던지, 버스 안씬이라던지..그러나

그가 바람둥이인지. 그럼으로 인해서 할머니와의 고통이 지금 있는건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거다. (지금 가편집 본에 근거를 해서)

 

그래서 이번 촬영은 변호용할아버지에 대한 인간적인 매력을 탐구해보고.

혼자 살고 있는 생활의 어려움과 고통, 그리고 할아버지를 보면서 생각할 수 있는

노인의 문제는 없는지, 있다면 그것을 끌어내기 위해 촬영을 해야 할것같다.

 

영화를  본다음 사람이 사람을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영화...

쉽지 않다. 시나리오가 있는것도 아니고, 할아버지들이 배우도 아니고..

이럴때 쓰라고 만들어진 특수문자..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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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노아와 앨리>

노트북이란 제목이 크게 맘에 들진 않는다. 다른 제목이었으면 어땠을까?

 

노아와 앨리...

<내가 기억을 다 잃어버리면 어떻게 할거야?>

<영원히 옆에서 지킬거야>

<우리의 사랑이 기적을 만들 수 있을까?>

<우리의 사랑으로 못하는건 없을꺼야>

 

앨리처럼 책임감과 사랑에 대한 열정에 대해 고민했을때

그녀처럼 당당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것이다...

사랑을 하고  그 사랑하는 사람과 죽을때까지 함께 할 수 있다는것만으로도

그건 멋진 일이다.

<소풍>의 남용조할아버지, 할머니도 정으로 함께 살고 계시지만

죽는 순간까지 그들은 서로의 옆을 지킬것이 분명하다.

 

예전부터 내가 살고있는 근처에 노인전문요양원이 있었다.

지나칠때마다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불쑥 불쑥 생긴다.

그곳에도 영화 노트북 만큼이나 더 절절한 얘기를 간직한 분들이 있을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진다....

 

노트북의 시놉시스는 이렇다.

 

17살 내 전부를 흔들어 버린 그녀…
노아는 카니발에서 활달하고 천진난만한 앨리의 웃음을 보고 첫눈에 반한다. 두 사람은 빠른 속도로 서로에게 빠져들고 전부를 주어도 아깝지 않은 사랑을 한다. 그러나 신분 차이로 인한 집안의 반대로 두 사람은 이별을 하게 되고, 갑자기 일어난 전쟁은 더욱 확실하게 두 사람간의 연결고리를 끊어버렸다. 그렇게 7년이란 시간은 지나간다.

24살이 되어서도 그녀는 여전히 나의 전부였고…
우연히 신문에서 노아의 소식을 접한 앨리는 그를 찾아 나선다.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잊을 수 없었던 두 사람은 다시 만났지만, 서로가 처한 현실에 더 가슴 아프다. 앨리에게는 약혼자가 있었고,잊을 수 없는 첫사랑과 현실 앞에서 그녀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나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녀와 함께 하고 싶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앨리는 큰 병을 앓으면서 점점 모든 기억을 잃어간다. 그녀가 세상의 전부였던 노아는 두 사람의 추억이 담긴 일기장을 남겨둔다. 그녀만을 지키겠다는 약속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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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80, 부부< 그 냉정과 열정사이>

영화<냉정과 열정사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는 이랬다.

두번 다시 만날 수 없다 할지라도 나는 그녀를 계속 생각할것이다.

사랑이란 그러한데 여자 이연희와 남자 남용조의 모습은 어떠한가..

 

할머니의 집안은 가난한 선비의 집이었다했다.

할머니의 아버지는 평생 글을 읽으셨고 딸만 있는 집안에 맏딸이었던 할머니는

사랑을 받으며 곱게 자라셨다. 그때는 욕도 모르셨다 한다...

(그럴리가, 지금 너무나 잘하신다)

그런 그녀는 아버지가 시집가라는 집으로 시집을 오셨다.

평생 우유한통 얻어먹은적이 없는 남편, 아파도 약한번 사오지 않고 물 한그릇

가져다 주지 않는 남편 그런 남편의 사이에서 딸 셋과 아들 셋을 낳으셨다.

할머니의 사랑은 일방통행이다.

받는것은 없어도 주는것은 많다. 그런 할머니가 집을 며칠째 비워두셨을때는

정말 충격이었다. 할아버지도 나 처럼 놀라셨을테지만 표정관리하셨던건지

애써 마음을 다스리셨다.

두분이서 싸움을 하실때는 정말 촬영하기 곤란스럽다. 계속 찍어야 하는건지,

여기서 끊고 싸움을 말려야 하는건지..

부부란 참 이상하다. 가장 존중하고 사랑을 주어야 하는 상대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가슴 아픈 상처를 누구보다 더 많이 건드리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 상처는 다시 부메랑이 되어 나 자신에게 돌아와 더 크고 아픈

상처를 준다는 걸...

남용조할아버지의 얼굴이 호남형인지 매력형인지 모르겠으나

보고 있으면 절대 그를 미워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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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5일 보충촬영<홍진유할아버지편>

홍진유할아버지의 아들...

내가 중할아버지라고 부르는 일흔여섯의 할아버지를 내일 만나러간다.

왜 나는 궁금하지 않았을까.

홍진유라는 인물에 대한 너무 큰 사랑때문에 부모가 자식을 바라보는 입장만 생각했지

자식이 또 다른자식(중할아버지의 자녀분들_모두 타지에 나가있는)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상황이며 이런것들에는 초점을 맞추지 못했던것 같다.

 

고로 내일 중할아버지를 찾아가 물어봐야 할 질문은 이렇다.

 

Q. 할아버지, 도시에 나가 살고계신 아들들 한테 가서 할머니랑 자식들이랑

   살고싶은 생각은 없으신가요?

Q. 아버지도 모시고 가서 편하게 살고 싶진 않으신가요?

Q. 이제 농사짓기가 많이 힘드실텐데요...

 

다시 홍할아버지에 대한 질문은 이렇다.

 

Q.일제시대와 전쟁과 민주화를 모두 거치던 할아버지의 인생에 대해 말해달라.

Q.평생을 함께한 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Q.인생에서 부부란 어떤의미인지 말해달라.

Q.할아버지가 보시는 요즘세상...

Q.지금 이 세상보다 예전세상이 더 좋았던것은 뭔가.

Q.오래도록 살아있기 때문에(?) 느끼는 고통은 뭔가?

Q.나이듧에 있어서 느끼는 생활의 고통은?

Q.할아버지가 생각하는 (노인의 입장에서 바라본) 노인 문제는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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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주만에 다시 홍 할아버지를 만나러간다. 많이 기다리시셨을텐데......

마지막으로 들렀을때 홍할아버지를 못만나고 와서 너무 아쉬웠다,

감기가 걸려서 병원에 가셨기 때문이었는데..도대체 어디 병원으로 갔는지 알수가 있어야지..

갈때마다 나는 불안에 떤다. 너무 연세가 많으셔서 혹시나 어디 편찮으시지는 않을까...

내가 얼마나 더 홍할아버지를 만나러 갈 수 있을까...

올해로 할아버지는 92세가 된다..

 

내일은 정말 오래 오래 함께 있다가 와야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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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정혜<사랑, 할수 있다는 희망>

 

<여자, 정혜>에서  정혜가... 시놉시스(이윤기 감독이 말하는)..

 그녀의 마음을 흔드는 사랑이 다가왔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어디에도

 정혜가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는 표정이나 제스추어 그리고 그 어떤

 비쥬얼적인 면이 없었다. 적어도 어떤 사람으로 마음이 흔들린다면

 정혜의 눈속에 사랑을 느끼고 있다는 감정선을 조금이라도 보여줘야 했던것은

 아닐까. 혹 영화를 다시 한번 보라며 정혜가 그 남자의 뒷모습을 한번

 보는 장면이 있지 않았냐고..혹은 갑작스레 그 남자를 따라가 저녁에

 밥을 같이 먹자는것이 감정선의 흐름을 보여주는것이 아니냐라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런데 그것은 감독이 생각하는 주관적인 오류라는거다.

 이렇게 표현하면 관객이 알것이다. 감정선을 자제하며 이정도 보여주면 된것이다.

 많은 감독들은 주관적 오류를 범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이 정도 보여주면..혹은 여기 나왔지 않았냐..라는 식으로 말이다.

 극찬받고 있는 영화라 할지라도 관객에게 죄책감을 느낄 부분이

 얼마든지 있다.

 

 푸른영상 사무실에서 <여자, 정혜>테잎을 보고 정말 반가웠다.

 그리고 지금은 이윤기라는 감독이 정말 궁금하다...

 

시놉시스는 이렇다.

 

우편 취급소와 TV홈쇼핑 그리고 고양이... 일상

자신의 일만큼이나 단조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는 우편취급소 여직원 정혜... 직장에서 멀지 않은 그녀의 작은 집엔 TV 홈쇼핑으로 사들인 물건들, 아파트 화단에서 주워온 어린 고양이가 그녀를 기다린다. 그리고, 그것들은 그녀만의 작은 세상이 된다.

아무도 그녀를 찾지 않을 것 같은, 실제로 아무도 찾지 않는, 일요일 오후...

고양이와 발장난하며 베란다 너머로 들려오는 아이들의 재잘거림을 듣는 시간이, 정혜는 그 어느 때보다 좋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짧지도 길지도 않은 일생에서 요즘이 가장 평화로운 시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초여름 때 이른 소나기... 상처

정혜에게 어린 시절이란, 한 손엔 연필, 다른 한 손엔 담배를 들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엄마의 조용한 모습과 어린 정혜로선 감당하기 힘들었던 기억뿐이다. 15세 여름 한낮의 통증... 정신과 치료... 엄마의 긴 한숨... 그리고... 자신의 유일한 그늘이었던 엄마의 죽음은 커다란 상처가 되어 남는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이제는 멀게만 느껴지는 기억의 편린들일 뿐, 이라고 그녀는 생각한다.
왜 모두들 내가 불행할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나는 불행하지 않은데...
그러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타고난 천성이 그런 여자다.

그녀를 흔드는 작은 바람... 사랑

그런 여자 정혜에게, 어느 날... 그녀의 마음을 흔드는 사랑이 찾아온다. 그리고 그에게 용기 내어 말한다. 저희 집에 오실래요?
이제, 서서히 시작되는 그녀 마음 속 동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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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림 또는 양반 <그 안의 아름다움>

올해 92세가 되는 홍진유 할아버지,그는 양반이다.

영주시에 위치한 소수서원의 원장이었으며 금성단의 단장이었고

경노국의 국장이었으며, 우리나라에서 유일무이한 향장이시다.

그러나 그를  양반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웃는 모습이 너무나 따뜻한

그냥 할아버지로 기억해주면 안될까..

그의 행동이 좀처럼 요즘 보기 힘든 성격의 소유자임은 분명하다.

옷을 벗어 놓을때라던지(너무 정리 정돈이 완벽하시다) 아니면 밥을 먹을때라던지

(그럴때는 겉옷까지 다 입으시고) 식사를 하셔서 올해 일흔 넷의 며느리를 힘들게 한다.

며느리의 고통은 육체적 고통도 물론 상당하지만 정신적인 고통도 크다.

스무살에 시집온 며느리의 평생 시집살이가 오죽 힘이들까.

그렇지만 그렇게 큰 내색(?)한면 안하고 아직까지 홍진유 할아버지를 잘

챙겨주시고 계시다.

노인이 노인을 모시는 노노부양의 모습은 현대사회에서 간과해서는 안될

부모와 자식의 관계와 사랑 그리고 노인들의 현위치를 볼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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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충 촬영을 시작하면서.

머릿속으로 생각한다.

여길 더 넣어야되고, 더 촬영이 되면..너무 깊이 들어왔나, 일단 촬영에 들어가나.

아니다. 편집구성안을 다시 짜고 정말 필요한 부분만 체크를 해서 그걸 들고

봉도각으로 가자.

그러나 나는 결국 오늘 촬영을 가지 못했다.

 

요즘 전혀 생각하지도 않던 탁구를 치러가고

함께사는 사람이 지금 보는 영화를 다 보면, 난 그를 데리고 당구장엘 갈것이다.

그리고 한동안 손놓았던 포켓볼이라도 쳐대면서 생각정리를 해봐야겠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사람들의 전화를 받을때면 이미 달력의 숫자는 2006년을 말하는데 내가 지금 2006이라는 숫자앞에 그대로 멍하니 방치되어 있는듯한 느낌이다.

친구가 전화를 해서 올 한해 바라는것을 빌었냐고 물어봤다.

그러고 보니 마땅히 올해의 소원에 대해 바라는것도 없었고

새해가 되던(그 중요하다면 중요한 순간)

나는 함께 사는 사람과 뒤늦게 보는 영화<친절한 금자씨>를 보며

새해를 맞이했다. 보고, 또 보고 세번을 돌려보기하며 하나는 깨달았다.

아...연체료를 물어야 하는구나..이런...얼마나 할까...천원?..이천원?..설마

이천오백원은 아니겠지..하는 그런 의미없는 생각으로 한 해를 맞이했나보다.

 

뭐 아무려면 어떤가.

나는 항상 다큐멘터리라는 길을 가고 있고

가고 있는 방향이 설사 틀릴지언정

내가 하고픈 그/ 길/ 위/에/서/ 있/다/는것은 변함이 없을테니까.

 

그럼 한번 빌어보자.

항상 이 길위에 서 있을수 있는 열정을 거두어가지 말아 주소서.

다큐멘터리<소풍> 지/화/자/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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