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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시위와 재판 참관

오랜만에 수요시위에 참가했다. 가장 최근에 참가했던 날도 벌써2-3년 전이다. 반가움과 미안한 마음에 할머니들을 보니 그새 세월이 더 묻어나는 얼굴이다. 수요시위 참가할 정도의 기력이 있으신 게 다행이다 싶기도 하면서 수요시위20년이란 긴 세월 동안 할머니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들어나고 들으려고 했던가 다시금 되돌아보게 된다. 증언이란 이름으로 생존자의 목소리가 들어나기도 하고 그 목소리의 파장을 통해서 운동이 확장된다. 여론을 움직이고 한국, 일본정부를 압박하는 성과를 냈다. 하지만 때로는 운동의 이름으로 피해자화된 박제된 이야기로 당사자의 목소리가 사라지기도 했다.

 그래도20년동안 목소리를 굽히거나 매몰당하지 않고 계속 ‘낮은 목소리’을 내어주신 할머니들은 앞으로도 비틀거릴 때마다 ‘네가 들어야 할 이야기가 더 있다고’ 라고 말해주시는 가장 큰 목소리이다. 또, 활동가들에게도 직접적인 활동을 안 하는 미안함과 함께 묵묵히 오랫동안 그 길을 걸어주는 모습에 감사의 마음도 든다. 

점심을 먹고 간 법원은 법원이란 무게만으로도 피곤하게 하는 공간이다. 1심이 열리는 공판이 없어서2심을 보러 갔다. 고등법원에서 황색 옷을 입은 구류를 살고 있는 피고인을 보았다. 살인 사건의 피고인이었는데 수감을 찬 모습이 가슴을 서늘하게 만든다. 잠시, 병역거부를 했던 친구가 떠오르며 재판을 받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라는 생각이 들며 기분이 묘해졌다.

 긴장감이 팽팽할 거 같았던 재판은 생각보다 밋밋하게 진행되었다. 항소심을 맡게 된 국선 변호사는 내용을 모른다기보다는 자신이 변호할 이를 알고 싶어하지 않는 듯 대충 변론을 한다. 피고인의 이야기는 좀더 절박해 보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이어서 성폭력 재판이 시작되었다. 항소심이라서 검사와 변호사간 첨예한 공방은 없지만, 재판은 역시 씁슬한 기분을 들게 했다. 가해자는 실형4년, 신상정보 공개10년의 양형이 부당하다고 항소를 했다. ‘그건 강간이 아니다. 강간이 뭔지 몰랐다. 자신은 강간을 하지 않았다.’고 진술을 번복하기도 하고 합의를 하고 싶어한다. 또 ‘반성한다’라는 앞뒤가 맞지 않는 말로도 선처를 호소한다. 술을 마셔서 우발적으로 했다는 변호사의 말에 ‘음주가 면책사유가 안 된다’고 아무리 법 조항에 되어있어도 여전히 음주는 재판에서 먹히는 말이라는 분위기를 풍긴다.

두 번째도 강간 재판인데1심에서 무죄였다. 장애인에 대한 강간인데 피해자의 진술에 대한 신빙성이 없기 때문에 채택이 안 된다. 항소한 검사조차 피해자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보려는 시도 조차하지 않는 모습에 답답함이 일어난다. 어찌 신빙성이 없다고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할 수 있는지…… 가해를 했다는 게 명백할 거 같은데 무죄이다. 한편, 피고인이 암수술로 인해 몸이 안 좋다는 그런 호소도 할 수 있는 게 재판소다. 가해자의 건강상태와 무관한 일임에도 연관성을 만들어내려는 변호사와 이를 용인하는 듯한 재판장의 분위기가 ‘저 할말 있어요’라고 말하고 싶게 만든다.

성 매매를 알선업자의 재판은 알선업자가20대초반이라는 젊은 나이라는 점이 더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몇년전에도 동일 범죄로 집행유예를 선고 받은 이가 재차 그 일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묻고 싶었다. 성매매 알선을 성매매 문제의 고리를 푸는 핵심중에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재판에서는 큰 일이 아닌 것처럼 1년선고를 받는 모습에서 법이라는 테두리의 한계가 느껴지기도 했다.

재판을 보면서 몇 가지 생각이 들었다.  

법이라는 지배언어의 불편함, 주민등록번호로 모든 게 통제되는 사회, 국선변호사와 민간변호사들이 재판에서 보여주는 모습에서 계급차이로 인해 이용할 수 있는 자원의 차이, 장애인에 대한 입장, 끄집어 내야 할 이야기가 많은 법원! 이라는 생각이 든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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