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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 금속연맹 선거에 대하여

민주노조운동의 새로운 가능성은 있는가?-김삼연
| 분류 : 현장소식 | | HIT : 20 | VOTE : 0 |
[현장소식]

민주노조운동의 새로운 가능성은 있는가?
- 금속연맹 선거에 대하여 -

김삼연(전국노동자회 사무처장)

1. 민주노조운동의 위기와 정파

민주노조운동을 혁신해야 한다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그러나 상당기간 쇠락을 거듭해온 민주노조운동이, 지난 십수년의 관성이 몸에 박힐대로 박힌 활동가들이, 더구나 그들이 여전히 민주노조운동의 중심임을 자처하는 현실에서 혁신을 논의하기란 쉽지 않다. 오히려 혁신이라는 표현자체가 관성화되었을 지경이다. 저마다의 입맛대로 혁신은 뒤틀려있다. 어쩌면 지금의 혁신은 이합집산의 다른 표현처럼 들린다.
민주노조운동이 쇠락한 원인은 정권의 탄압과 자본의 교묘한 길들이기에만 있지 않다. 민주노조 내부로부터 곪아온 노사담합과 ‘계파’혹은 ‘정파’로 표현되는 현장조직운동의 타락에도 적지 않은 원인이 있다.

기아차 취업비리 사건에 대해서도 많은 활동가들은 터질 것이 터진 것 아니냐는 조소를 보낸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보다는 어떻게 덮을 것인가에 더 골몰하고 있다. 대공장 노조를 중심으로 자성의 목소리를 높이지만, 그것은 제스쳐를 넘어선 실천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 이러한 실천을 선도하여야 하는 것이야말로 현장조직의 임무다. 임금인상투쟁 자체가 선도적 정치투쟁이었던 시대가 지나고, IMF이후 정리해고에 맞선 수세적 방어 투쟁으로 전환 된지 상당한 기간이 흐른 지금 상당수 현장조직들은 과거의 선도성은 사라지고 얼마 안 되는 자리다툼 정치에 조직의 이름을 내다 판지 오래다. 노조 권력을 둘러싼 이합집산만이 유일한 선도성인 현장조직들이 다수인 현실이다. 사측과 거래하는 어용조직들 뿐만 아니라 칼날같은 기풍과 원칙적인 현장 투쟁으로 기세를 떨쳤던 현장조직들도 점차 선거용 조직으로 변질되어 왔다.

2005년 연초부터 세상에 공개되기 시작한 민주노조운동의 치부는 서막에 불과했다. 기아차 취업비리 사건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의 파행은 민주주의와 변혁의 주체임을 자부했던 민주노조운동에 심각한 정치적, 도덕적 상처를 남겼다. 그리고 그것은 치유되기는커녕 점점 더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내부 반성과 비판이 결여된 채 치부 덮기와 변명에 급급한 민주노조운동의 모습은 현장의 많은 활동가들과 조합원들을 우울하게 하고 있다. 더구나 비판의 칼을 빼어들고 과감한 내부 혁신의 수술을 단행하는 모습보다는 서로 눈치보기에 바쁜 게 현실이다. 헌신적인 현장의 활동가들과 조합원들을 매도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썩은 상처를 도려내고 새살을 돋게 하기 위해서 지금부터 단사와 지역, 자기조직의 이해를 넘어서는 과감한 자기 혁신이 필요하다는 점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2. 조합원을 모욕하는 야합에 대한 분노

위에서 말한 것처럼 치부를 도려내고 새살을 돋게 하기 위한 내부 혁신투쟁에 전력을 기울여도 모자랄 판에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조합원들과 활동가들을 분노하게 하는 사건이 금속연맹 선거에서 벌어졌다. 소위 민주노조운동에서 내노라하는 세 정파가 모여 단일 선본을 꾸린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동지적 비판과 자기 반성, 연대를 위한 새로운 실천의 모색 따위는 전혀 없었다.
세 정파가 힘을 합치면 금속연맹 선거는 해보나마나한 것이라고 소위 세 정파의 지도부는 생각했을지 모른다. 사실 경선이 안 되었다면 이번 금속연맹 선거는 지난 두 차례 전투로 지칠대로 지친 세 정파가 휴전을 선언하고 서로의 땅을 지키자는 야합이 연맹을 위기에서 구해내는 구세주로 둔갑하게 되었을 것이다. 지난 두 차례의 선거과정과 함께 이번 선거에서 펼친 정책이나 운동과정만 봐도 이번 야합이 얼마나 고육지책이었는지 잘 드러나 있다. 하지만 선거기간 전은 물론 선거기간 중에도 주먹질하고 이간질하던 사람들이 하나의 선본으로 ‘야합’한 것을 ‘대단결’이라 억지 주장한다면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조합원을 우롱하고 모욕하는 이러한 행태에 분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실 세 정파의 야합에 대항한 박병규 선본의 조직력은 세 정파의 연합선본에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또한 선거를 준비하는 실무 주체역량도 미비하였다. 혹자가 박병규 선본이 대단한 선거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할지 모르겠으나, 박병규 선본이 가지고 있던 유일한 장점은 오랜 기간 동안 현장 활동에 주력하면서 정파활동에 이리저리 휩쓸리지 않고 주장과 행동을 일치시켜온 후보들의 이력뿐이었다. 물론 이러한 현장성은 조합원들과 활동가들에게 신뢰를 얻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요즘처럼 이합집산의 정치가 난무하는 시대에 정치에 구애받지 않고 원칙적 활동과 동지적 애정을 몸소 보여주는 활동가들을 만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더구나, 후보들이 득표에 영향력이 적은 것은 둘째 치고, 어떠한 정략적 이해관계도 없는 장기투쟁 사업장과 중소영세사업장을 직접 찾으며 현장의 의견을 수렴하려했던 활동자세는 현장의 조합원들과 활동가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았다.

어쨌든 조직력과 선거 실무력이 모두 부족한 상태에서 치른 선거에서 정책 공약을 중심으로 한 주장과 대의원 득표 모두에서 선전을 한 것은 박병규 선본이 가진 현장 활동의 원칙성뿐만 아니라 앞서 말한 현장의 분노가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선거는 야합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150대 197이라는 결과는 이변 그 자체다. 대의원들의 성향을 보더라도 이것은 놀랄만한 결과임에 틀림없다. 아무리 명분이 없다하더라도 상당한 득표력을 가진 세 정파의 득표수는 놀라울 따름이다. 내부적으로 반대표가 조직되었던 것이다. 세 조직이 그동안 주장했던 바와 활동방식에 어긋나고, 당시 국면 또한 첨예한 대립을 하고 있었던 상황에서 내적 근거를 전혀 갖출 수 없는 연합에 대한 반대하는 것은 상식을 갖춘 활동가라면 당연한 것이다. 더구나 추진 과정에서 내부적 민주주의 절차들이 봉쇄되고, 연합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묵살된다면 더욱 그러하다. 결국 연합이란 것이 권력을 나눠먹으려는 세력들과 사람들의 야합일 뿐인 선거에, 결코 동의할 수 없는 후보를 지지하는 ‘표’로 동원된 현실에 각 정파의 활동가들 상당수가 ‘반대’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상당수 활동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연합선본은 가까스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산너머 산이다. 연맹 운영의 원칙을 세우기보다 세 정파의 자리나누기가 우선 합의되어야 하고 모든 사안에 대해 각 정파의 이해를 먼저 고려해야하는 집행부의 모습은 상상만 해도 답답하다. 또 연맹의 지도적 권위가 실추된 상황에서 대산별이 가능할지, 각 지역별, 단사별 개별 행동이 오히려 확대되지 않을지 우려스럽다.


3. 민주노조운동의 새로운 가능성을 실천하는 현실로

결과적으로 낙선했지만 잊고 있던 운동의 원칙과 정신을 일깨운 박병규 선본의 선전은 빛났다. 하지만 이번 금속연맹 선거가 민주노조운동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하기엔 부족하다. 민주노조운동이 완전히 枯死(고사)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 준 정도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민주노조운동의 새로운 가능성은 없는 것인가? 그 선본 자체가 새로운 가능성이라 말할 수 없다. 선거를 계기로 모인 각 지역의 현장 활동가들이 앞으로 어떤 실천을 하느냐에 달려있다. 선본에 모인 계기, 세 정파의 야합에 분노했던 계기, 민주노조운동과 현장조직운동이 혁신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들을 포착하여 그 초심을 잃지 않고 활동할 방식과 결의를 모으는 실천에 적극 나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사와 지역의 이해에 따른 작은 차이를 넘어 전국적 시야와 전망 속에서 자기 활동을 결의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그러한 과제를 실천적 활동으로 만들어 낼 때 민주노조운동의 새로운 가능성은 현실이 될 것이다.

물론 전국노동자회도 이러한 처지에서 무관하지 않다. 전국노동자회는 보다 적극적으로 당면한 실천 활동에 대한 자기 계획을 만들고, 그 계획 속에 활동을 결의하는 것이 선행되어야한다. 이번 선거 평가를 통해 얻은 교훈과 과제를 잊지 말고 현실에 투영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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