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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국제연대에 왕도없다 - 평화만들기

 

국제연대에 왕도 없다

 

편집부 editor@digitalmal.com

 

필자 :   김승국 (평화전문 인터넷 신문 '평화만들기' 대표)     
  
 
필자는 국제 연대의 전문가가 아니다. 다만 평화운동을 하는 가운데 해외에 나가서 부딪히며 느낀 점을 ‘국제연대’란 틀에 맞춰 겨우 기술할 능력을 지니고 있을 뿐이다. 정색을 하고 말할 때의 ‘국제연대’가 아닌 평화 관련 ‘국제회의’에 참가하여 겨우 의사소통하며 국제적인 연대감을 느낄 정도의 감각을 지니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좀 섣부른 이야기도 있을 법하다.

국제연대에 관하여 ‘glocal 운동'이란 화두를 던진다. ‘glocal 운동'이란 ‘global 운동’과 ‘local 운동’을 아우르는 말이다. 세계화 시대에 걸맞게 지구촌을 누비며 활약하는 운동(global 운동)도 잘하고, 자기가 사는 지역에서 풀뿌리 운동(local 운동)도 잘해야 한다는 당위가 함축된 뜻이다. 지역의 풀뿌리 local 운동의 기반 없는 global 운동은 사상누각이라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그럼 한국의 경우 민초들의 생활에 입각한 풀뿌리 local 운동을 잘 하면서 global 운동도 잘하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두 마리 토끼(풀뿌리 local 운동 · global 운동)를 모두 놓쳐 허둥대는 상태에 빠져 있다. 민중 없는 국내(local)운동을 하다가 가끔 국제무대로 나가 global 운동을 한다고 헤매는 듯하다. 이는 무언가 운동의 좌표설정이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흔히 국제연대의 맹점을 지적할 때 ‘우물 안의 개구리’라는 표현을 한다. 이 표현은 ‘국제적인 시야를 갖지 않고 우물 안 즉 국내에서만 꼼지락거리는 운동’을 풍자한 것이다. 그런데 이 말도 수정되어야 한다. 진짜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려면 우물 안의 중생들과 친화력을 갖춘 풀뿌리 local 운동을 잘해야 한다. 우물 안의 개구리라해도 풀뿌리 운동을 제대로 못하면 중생들로부터 개구리 취급도 받지 못한다. 우물 안의 개구리 자격도 없는데 어떻게 우물 안을 박차고 우물 밖의 세계를 지향할 수 있는가?

우물 안에서 우물쭈물 운동하는 필자가 자기성찰의 의미에서 몇 가지 당돌한 질문을 던진다; 한국처럼 세계적인 운동력을 갖춘 나라가 해외에 나가기만 하면 맥을 못 추는 게 단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탓인가? 혹시 운동력은 있으되 운동의 좌표 설정이 잘못된 게 아닌가? 운동력은 있으되 민중 없는 국내(local)운동에 장기간 매몰된 나머지 세계화 시대를 돌파하기 위한 global 운동력을 갖추지 못한 게 아닌가? 한국처럼 국내 운동력이 세계 최상위권인데 국제연대 운동력이 세계 최하위인 ‘극도의 비대칭’인 경우가 있는가? 얼마 전 홍콩에서의 국제무역기구(WTO) 각료회의 반대 시위 때 한국의 운동권이 이름을 날렸다고 하지만 극도의 비대칭을 극복할 발판은 마련했나?

홍콩의 WTO 반대 시위를 요령 있게 함으로써 국제연대의 모범을 보인 것 같지만 그저 멋진 국제행동의 한 장면을 연출한데 불과하다. 우물 안의 개구리들이 우물을 박차고 나와 ‘개구리들의 반세계화 짓시늉을 보인 쾌거’라고 겸손하게 말하면 어떨까? 국제무대에서 담론 · 의제 설정 · 운동 노선 제기 · 운동 조직 구성 · 대중설득 능력을 보이지 않을 때 국제연대의 일주문에도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면, 홍콩 시위에 관해서도 겸손할 줄 알아야한다. 국제연대의 기본기(基本技) 없이 장외에서 몇 차례 멋진 시위를 했다고 ‘국제연대를 끝내주게 했다’고 자만하면 안 된다.

어쨌든 홍콩 시위는 국제연대의 일주문에 상당히 접근한 쾌거임에 틀림없다. 이는, 시애틀에서의 반세계화 투쟁부터 뭄바이의 세계사회포럼에 이르기까지 ‘좌충우돌’하면서 국제연대 운동력을 축적한 산물이다.

앞에서 언급한 ‘좌충우돌’이란, ‘영어의 청맹’인 한국 운동권이 국제연대 한다고 좌충우돌 했으며 필자 역시 엄청난 좌충우돌을 했음을 고백하는 문구이다. 한국의 운동권과 필자가 동시에 좌충우돌한 사례를 일일이 열거하는 게 바람직하지만 지면제약으로 축지법을 쓸 수밖에 없다.

국내 운동권이 좌충우돌한 근본적인 이유는 ‘벙어리 영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국제회의에 참석한 국내 운동가들이 아예 국제회의장 주변을 맴돌며 벙어리 냉가슴을 앓는 심정을 이루다 말할 수 있으랴...낮에는 국제회의장에서 놀고(?), 저녁에는(이 시간에 다른 나라의 활동가들은 자신들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물밑 작업을 한다) 시내 구경을 하거나 술 한 잔으로 국제연대의 쓴 맛을 곱씹을 수 밖에 없는《나들이 파(派)》들의 푸념을 죄다 늘어놓으면 서로 할 말이 많으리라...그럼에도 나들이 파들의 푸념에서 국제연대의 교훈을 발견해야 하는 게 한국 운동권의 현실이다.

늘 준비 안 된 국제연대이어서 ‘나들이의 좌충우돌’을 강요받는 측면도 있으나, 나들이하기에는 너무나 안쓰러운 사연이 있기에 ‘좌충우돌’이란 표현도 사치스럽다. 그런데 사치스런 좌충우돌을 하는 나들이 국제연대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국제회의 적극 참석파’ 역시 귀동냥 수준에 머문다면 이는 심각한 일이다. 이들이 국제 회의장에 적극 참석하여 하루 종일 머리가 쥐 날 정도로 들어도 무슨 소리를 하는지 종잡을 수 없는 ‘국제연대의 멀미 현상’을 느낄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이런 경우에도 ‘영어만 잘 해가지고 국제연대를 잘 할 수 있다’는 환상은 금물이다.

영어를 잘 한다고 해서 국제연대를 잘하리라는 보장을 할 수 없다. 무엇보다 국제연대의 기획 · 의제설정 · 의제 실현 · 담론 형성 · 국제 네트워크 조직 능력을 갖추지 못하면, 국제연대는 백년하청이다. 이렇게 비관적인 설명을 하면 ‘영어의 청맹이 수두룩한 한국 운동권이 어느 세월에 그런 능력을 겸비하느냐?’는 역공이 대뜸 쏟아질 것이다.

이 역공을 맞받아치는 것은 아니지만 ‘영어에 왕도가 없듯이 (영어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국제연대에도 왕도가 없다’는 댓글을 단다. 끈질기게 국제연대에 매달리면 귀가 뚫리며 국제연대의 멀미 현상도 해소되는 그날, 국제회의장에서의 좌충우돌이 끝나는 그날이 오리라는 믿음을 갖고 국제연대를 위해 몸으로 때우라고 주문한다. 온몸으로 헌신하듯 국제연대에 임하지 않으면 국제연대의 감각이 갖춰지는 그날이 결코 오지 않음을 강조한다. 국제연대에는 왕도가 없을 뿐 아니라 꾀를 부리며 나아갈 지름길도 없다. 오직 우물 안의 개구리 신세를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몸으로 때우기’ 밖에 없다.

국제연대 나들이 파(派)들이여! 일단 ‘몸으로 때우기 국제연대’를 시도하시라! 영어의 청맹을 모면하기 위해 영어회화 공부에 정진하라!
벙어리 영어를 벗어난 국제회의 적극 참가파들이여! 국제연대의 멀미 현상에서 벗어나라!
국제연대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는 자칭 ‘꾼’들이여! 국제연대 무대에서 의제 · 담론을 장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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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평화전문 인터넷 신문 '평화만들기' (http://peacemaking.co.kr/)

 

2006년 01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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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합의 규탄 기자회견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합의 규탄 기자회견

 

편집부 editor@digitalmal.com

 

(* 최근 한미 외교장관 전략대화에서 한미간에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을 합의한 것과 관련하여 오늘(1월 23일)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번 합의를 규탄하고 철회할 것을 요구하는 공동기자회견을 열었다. 전문이다. )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를 강력히 규탄한다

지난 1월 20일, 한미 양국은 워싱턴에서 열린 '장관급 전략대화'에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그 동안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인정될 경우, 그것이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와 세계 평화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해온 우리는 이번 합의를 강력히 규탄하며, 이를 철회할 것을 요구하는 바이다.

우리는 분쟁예방이나 평화적 해결보다는 오히려 분쟁과 갈등을 심화시킬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반대한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보는 미국이 군사 패권주의를 강화하기 위해 추진해온 핵심전략이다. 이는 이라크 침공에서 그러했듯이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자행하는 불법적인 전쟁에 주한미군을 신속하게 차출·투입시키고, 중국에 대한 군사적 봉쇄와 대북 선제 군사행동 등을 원활하게 하는 한편 유사시 주한미군의 개입을 가능케 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목적은 갈등분쟁에 대한 예방과 평화적인 해결을 위한 것에 있지 않다. 오히려 주한미군의 군사적 개입을 용이하게 함으로써 새로운 갈등과 분쟁, 그리고 파국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 우리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반대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으로 인해 한반도가 미국의 군사행동을 지원하는 전초기지가 되는 것을 결코 용인할 수 없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인정은 한반도 이외 지역에 대한 주한미군의 군사적 개입으로 인해 한반도가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시에 한국이 주한미군에게 제공하고 있는 대규모의 기지와 다양한 법, 제도적 지원체계는 결과적으로 미국의 군사행동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정부는 동북아 분쟁에 대한 한국의 불개입 입장을 미국이 수용했다고 애써 주장하고 있지만, 이것은 주한미군이 한반도 영토, 영공, 영해를 군사행동에 이용하는 순간 한국은 어떠한 형태로든 분쟁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정부의 이번 합의는 한국이 미국의 군사행동을 전폭 지원해주는 전초기지 역할을 수행할 것임을 약속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번 합의는 평화주의를 명시한 우리 헌법이나 주한미군의 역할을 한반도 방어에만 규정한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모두 위배되는 것이다. 또한 노무현 정부가 내세운 평화번영 정책이나 동북아 균형자 역할과도 배치되는 것이다. 우리는 평화를 지향하는 국가라면 미국의 군사적 패권과 이에 대한 군사적 지원을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정착 노력에 역행하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반대한다.

우리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북한과 중국에 대한 군사적 압박 강화를 의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합의가 현재 교착상태에 있는 6자회담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에 대해 무력 사용 배제를 약속한 9.19 공동성명에도 불구하고, 부시 행정부의 선제공격 독트린을 포함한 미국의 군사전략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통해 구체화될 가능성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한반도에 대규모 병력과 기지를 유지한 채 한반도 안팎으로 주한미군의 출입을 인정한다는 것은 한국이 미국 주도의 지역동맹에 편입되는 것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이는 미국의 대중국 견제와 미일동맹 강화 움직임 속에서 한국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신냉전적 동북아 질서 재편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듯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한반도비핵화와 동북아 다자안보체제 구축 노력에 큰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합의는 철회되어야 한다.

정부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 철회하고, 동맹 재편에 관한 국민적 토론과 의견수렴에 먼저 나서라

우리는 정부의 대미 협상 태도에도 분노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동맹재편에 관한 모든 협상을 밀실협상과 정보통제, 그리고 일방적인 통보 방식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리고 용산 미군기지협상에서도 확인되었듯이 국민들의 정보접근을 철저히 차단한 채 부실한 대미협상 결과를 커다란 성과를 거두었다는 식으로 과대 포장하여 발표해왔다. 이러한 정부의 태도는 대미협상에 관한 정부의 입장을 곧이곧대로 믿기 어렵다는 국민들의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분명한 것은 '동맹조정의 소프트웨어에 해당하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인정되면서 '하드웨어'라 할 수 있는 미군기지 재배치 협정이 마무리된 지금 동맹의 미래는 미국의 군사패권을 추인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성격변화가 한반도 평화와 직결되어 있고 국민들에게 엄청난 재정 부담을 강요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부는 협상에 앞서 국민적 토론과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야 마땅하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주한미군을 둘러싼 많은 사회적 논쟁과 갈등 속에서도 대규모의 미군주둔이 인정된 것은 한반도 방어에 그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부는 주한미군의 주둔목적이 분명히 달라졌음을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전략적 유연성 등 동맹의 방향에 대한 국민들의 의견수렴에 우선 나서야 한다. 그리고 지금과 같이 일방적인 방향으로 한미동맹 재편이 이뤄진다면 강력한 국민적 저항을 면치 못할 것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 국민의사를 무시한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합의를 철회하라!
- 정부의 밀실협상과 일방적인 통보방식의 협상태도를 강력히 규탄한다!
-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을 비롯한 협상 담당자들을 엄중 문책하라!
- 국회는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합의와 미군기지협상 등 동맹재편에 관련한 모든 협상에 대해 청문회를 열어라!

2006년 1월 23일

녹색연합, 민교협, 민화련, 전국민중연대, 참여연대, 통일연대, 평화네트워크, 평화를만드는여성회, 평화박물관추진위, 평화만들기,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평화통일시민연대, 환경운동연합


 

 

2006년 01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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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북한인권과 미국의 대북정책 - 사진연

‘북한인권’ 과 미국의 대북정책
-인도주의 간섭의 노림수

 

편집부 editor@digitalmal.com

 


* 필자 : 정 희 찬(사회진보연대 정책편집부장)

* 이 글은 '인권운동 사랑방' 등이 11월 30일 개최한 ‘북 인권 문제의 대안적 접근’ 토론회에서 필자가 발표한 내용이다.

 


최근 이른바 ‘북한인권’이라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이는 작년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대북인권 결의안의 통과 및 미국 의회에서 「북한인권법」이 만장일치로 제정․통과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부상하기 시작했는데 이미 그 이전 미국 부시 대통령의 「연두교서」(2002)에서 북한의 김정일 정권이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지목되면서부터 미국은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의 전제조건으로서 ‘인권 상황의 개선’을 공공연히 거론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처럼 ‘북한인권’에 대한 문제가 운위될 때마다 운동진영은 북한 체제의 문제점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외면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게 된다. “공화국의 질서를 교란하는 제국주의 책동”, “불순한 의도의 내정간섭”이라는 북한 당국의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거나 혹은 반북․반공 이데올로기를 선전하는 지배언론들의 보수적 비판에 수긍하기 어려웠기 때문인데 이러한 상황에서 운동진영은 연북적인 입장을 취하거나 쟁점을 회피함으로써 수동적인 정치적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북한인권’을 둘러싼 갈등은 현재 진행 중인 6자회담에서 논의되는 ‘북핵문제’에 비해 가시적으로 드러나지는 않고 있지만 향후 언제든지 정세의 핵심으로 점화될 수 있는 가연성(可燃性)을 안고 있다. 유럽연합이 유엔에서 이 문제를 공세적으로 제기하고 있고 미국의 네오콘 역시 공격적인 대북정책을 펼 것을 행정부에 주문하는 가운데 북한의 ‘열악한’ 인권상황은 강경한 대북정책을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정세적 조건 속에서 운동진영이 ‘북한인권’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지는 향후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적 갈등과 대립, 그리고 논란 속에서 수동적이거나 무능력하지 않게 사태에 개입할 수 있는가를 규정한다.


가. 1. 인도주의 간섭의 배경

나. - 신자유주의 통치성의 위기

1)  인도주의 간섭이란 무엇인가?

북한체제를 압박하는 주요한 수단이 다름 아닌 ‘인권’(human right), 혹은 ‘인도주의’(humanitarianism)에 준거하고 있다는 점을 어떻게 볼 것인가? 냉전체제의 소멸 이후 1990년대 초반 소말리아, 부룬디, 유고내전의 반인도적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유엔, 혹은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개입이 이루어지고 나아가 그 이후 자국의 시민에 대한 시민적․정치적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국가들에 대한 국제적인 압력과 제재, 최종적으로 군사적인 수단을 동원할 수도 있다는 것이 점차 대세로 굳어진다. ‘북한인권’에 대한 문제제기를 단지 “미제국주의의 불순한 내정간섭”으로만 파악할 수 없는데 왜냐하면 여기에는 미국만큼이나 유럽연합(EU) 국가들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간섭의 주체는 미국과 서방열강을 주축으로 한 중심부 국가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간섭이 인권을 둘러싸고 출현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일단 1990년대 이후 개인의 인권을 위협하는 것은 권위주의적이고 부패한 국가 내부에서 지도자들의 잘못된 결정으로 초래된 무정부 상태와 내전이라는 진단이 제기된다. 최의철, 『인도주의 개입에 대한 국제사회의 동향』, 통일연구원, 2004, pp.8-11. 내전은 아프리카의 국가들이나 현실사회주의 몰락 과정에서 국가가 붕괴한 뒤 벌어지는 종족적․종교적 분쟁의 양상으로 드러난다(舊유고슬라비아, 르완다, 소말리아, 수단 등).
  20세기 말에는 전쟁의 양상이 20세기 초 세계대전과 같이 국가간의 총력전이 아니라 주로 민간인의 희생을 야기하는 국가 내부의 내전으로 변화했으며 그 과정에서 8백만 명의 민간인이 희생되고 4백만 명에 달하는 난민이 발생하였다. 뿐만 아니라 기타 수십만 명의 시민들이 빈곤과 영양실조로 고통받고 안전과 교육 등의 기본적인 권리를 박탈당했다. 여기서 등장한 것이 이른바 “실패한 국가들”(failed states)이라는 개념이다. 여기서 “실패한 국가들”이란 영토를 통제하지 못하고, 시민적․정치적 자유를 위협하며, 정치적 폭력과 범죄로부터 시민을 보호하지 못할 뿐 아니라, 법치주의, 즉 독립적인 사법부가 존재하지 않는 국가들이다. “실패한 국가들”의 시민들에게는 정치적 재화들(political goods)이 보장되지 않는다. 이러한 정치적 재화들로서는 민족적․지역적 차이들에 대한 존중과 지원, 근본적인 시민권과 인권(human right)의 보장, 보건의료 체계, 학교와 교육제도, 도로․철도․항구 및 기타 물리적인 기본시설, 통신의 기본시설, 화폐와 은행체계 등을 포함하며 이는 어떤 국가들이 튼튼한 국가(Strong Staes)이며 어떤 국가들이 약한국가(Weak States)이며, 어떤 국가들이 이른바 “실패한 국갚인지를 가늠하는 주된 잣대가 된다. Robert I. Rotberg, “Failed States,
Collapsed States, Weak States: Causes and Indicators”; Robert I. Rotberg, ed, State Failure and State Weakness in a Time of Terror, A World Peace Foundation Book 2003. 롯버그는 “약한 국갚와 “실패한 국갚를 다루는 문제가 “21세기의 중요한 질문”이 되었다고 단언한다. “실패한 국가들”이라는 표현은 테러가 빈발하는 조건 속에서 국제적인 안보와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약한 국가들”을 강하게 하고 “국가의 실패”를 방지하기 위한 정책 아젠다를 제공하려는 목적으로 미국의 군사․안보 전문가들에 의해 고안되었다고 볼 수 있다. 애초에 갈등의 근본원인이 아니라 사태를 관리하고 그 부정적 결과를 통제하기 위한 군사․안보전략가들의 정책 아젠다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적어도 이들의 분석에는 세계적인 폭력과 무질서라는 현실의 변화가 반영되어 있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들 국가들은 오늘날 세계적으로 국가의 의한 인권침해를 자행하고 나아가 지역의 안보를 위협한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왜냐하면 영토 내에서 정부의 부재상태를 초래하고 자국민들의 생명과 세계 질서를 위협할 뿐 아니라 대규모 이민, 각종 범죄와 테러의 온상으로서 결국 폭력적인 갈등이 분출하다가 국가의 합법성이 붕괴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국가들에 대해 국제적인 차원에서 이른바 ‘인도주의 간섭’이 이루어지게 된다. 인도주의 간섭에는 부패와 무능력을 노정하며 국가의 실패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지도자들에 대해 공개적 비판, 외국여행 제한, 자산동결 등의 조치를 포함하는 제재 뿐 아니라 정부전복까지를 포함한다. 그렇지만 인도주의 간섭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인도주의 간섭 이후의 문제이다. 안전, 경찰행정, 법제도 정비, 경제재건 등의 작업에는 막대한 인적․물적 자원이 소요되기 때문에 간섭국가들이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도주의 간섭을 논하는 많은 정치학자들은 이 과정에서 주권 개념에 대한 재해석이 요구된다고 주장한다. 최의철, 앞의 책, pp.45-49. 그런데 여기서 제시되는 경제제재- 정권의 전복- 국가 재건이라는 일련의 도식에서 현재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점령정책을 연상한다는 것은 후술하겠지만 전혀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다.
 해당국에서 인권을 보호하고 안정적인 권위(정부)가 수립되는 것은 해당사회의 자치적인 능력의 결여, 군대, 민병대, 테러집단 등에 의한 폭력의 만연 등으로 인해 인도주의 간섭의 목적은 당장의 주권 회복이 아니라 국제적인 협력 과 지원 속에서 이루어지는 제도적인 안정과 통치질서의 확립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인권보호는 단지 국가의 관할에만 맡겨둘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 간, 혹은 국가 내부의 폭력 및 분쟁을 사전에 예방하고 해결하는 국제적 안보현안으로서 제기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최근 진지하게 고려되고 있는 것이 ‘인간안보’이다. 인권의 의미를 전통적인 안보 개념의 변화와 접목한 것인데 이는 전통적으로 안보가 국가질서와 영토의 보전을 추구했던 것에 비해,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외부적 요인과 국가 내부의 물리적 위협으로부터의 안전, 즉 포괄적인 인간 개개인의 발전을 포괄하고 있다. 유엔개발계획(UNDP)에 따르면 인간안보는 국제적이고 보편적 관심사로서 마약, 빈곤, 환경오염, 인권 침해 등의 문제를 다룰 뿐 아니라 그 위협에 대해서 모든 국가의 참여를 통한 해결이 중요하며, 사전 예방이 필수적이다.
이처럼 인권이나 안보가 전통적으로 단일 국가의 관할이나 영토적 범위로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고방식이 지배적으로 자리잡게 된 이유는 무엇보다도 세계화의 영향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세계화로 인한 빈곤과 부의 불평등은 특히 다양한 민족적․종교적 구성을 지니고 있는 국가들 내부의 갈등을 증폭시켜 내전, 테러, 범죄가 만연한 가운데 국제적인 안정을 저해할 수도 있고 그 과정에서 다양하게 드러나는 반인도적 참상과 빈곤, 폭력의 고통은 이미 해당 국가 차원에서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권이나 안보의 영역이 국제적으로 모든 국가들이 공동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로 대두함에 따라서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의 체결 이후 출범한 국가간 체계를 지탱해왔던 주권원칙은 도전받게 된다. 2차 대전 이후 설립된 유엔의 기본 목표는 주권을 보유한 다양한 국가들간의 체계를 안정시키는 것이 목표였으며 따라서 그동안 다른 국가에 의한 내정 불간섭과 국제관계에서 무력사용 금지라는 두 원칙을 고수해왔다고 볼 수 있다. 유엔 헌장 자체가 회원국들의 주권 평등과 자치권을 인정하고(2조 1항), 국가간의 갈등은 평화적으로 해결할 것을 강조하며(2조 3항), 무력을 사용하거나 무력사용을 위협하는 행위를 금지(2조 4항)할 뿐 아니라 유엔이 해당국이 관할하는 사안에 간섭할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규정(2조 7항)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예외도 존재한다. 개별적․집단적 자위권(51조)과 평화에 대한 위협과 파괴 및 침략행위를 금지(7장)하기 위해서는 무력사용이 허용된다.
 그러나 인권과 안보의 의미가 상호보완적인 관계로 인식되고 나아가 “국가, 또는 국가들의 집단이 타국에서의 인권에 대한 심대한 침해를 중단시키거나 방지하기 위해서 해당 국가의 허가 없이 국경을 넘어 무력을 사용하거나 무력사용을 위협하는 것” 이는 홀츠그레페(J. L. Holzgrefe)의 정의이다. 최의철, 앞의 책, p.24에서 재인용.
으로 정의되는 인도주의 간섭(humanitarian intervention)은 기존의 주권규범과 충돌하게 된다. 그렇지만 국제법이나 주권 모두 그 도덕성과 정당성을 인권에 기반하고 있으며 더욱이 유엔에서 최근 평화를 보다 광의의 맥락에서 해석함에 따라 평화에 대한 위협 시 무력사용을 허용한 7장을 적극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하면서,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1999년 54차 총회에서 인도주의 간섭에 평화적인 수단과 강압적인 수단을 모두 포함할 것을 제안하고 국가주권에 개인주권이 우선함을 강조했을 뿐 아니라 유엔 헌장이 타국에 간섭할 권리가 있다는 인식을 배제하지는 않고 있음을 언급하는 등 주권에 대한 기존의 규범이 상대화되고 있다. 2000년 유엔은 국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반인도적 참상과 이에 대한 유엔의 대응의 한계를 평가하면서 인권에 대한 대규모적이고 체계적인 침해가 발생할 경우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인권과 주권(state sovereignty) 사이의 딜레마에 대한 국제적인 합의를 구축하기 위해 구성한 ‘간섭과 국가주권에 대한 국제위원회(Iinternational Commission on Iintervention and State Sivereignty)’는 보고서를 통해 ‘보호의 의무’를 강조하며 국가가 인권 보호의무에 실패했거나 수행할 의지가 없을 경우 그 의무에 대한 책임을 공유하는 국제적 보호의무를 주장했다. 인도주의 간섭은 국제사회의
도덕적 의무이며 무력사용을 제한하면서 그 절차를 구체화하는 국제규범 또는 행동지침 등에 대한 국제적 합의를 구축할 것을 제안했다. 여기서 인도주의 간섭은 도덕적 의무로 규정된다.


2)  인도주의 간섭과 미국의 군사․안보전략

그런데 인도주의적 간섭은 유엔 차원에서 이루어지거나, 혹은 유엔의 승인을 얻지 못한 상황에서는 더욱더 몇몇 열강들에 의해 좌우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점에서 제기되는 하나의 의문은 바로 오늘날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의 군사․안보전략으로부터 이러한 인도주의 간섭이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으며, 인도주의 간섭의 결과가 더욱 커다란 폭력과 분쟁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닌지 여부이다. 미국의 군사․안보전략의 핵심이 9․11 테러 이후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으로 표현되었고 테러를 자행한 알카에다를 박멸하고 이른바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 2001년과 2003년에 걸쳐 각각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대규모로 침공하여 결국 탈레반 정권과 후세인 정권을 전복시켰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미국의 군사․안보전략의 대상은 이른바 “불량국가들”(rogue states)이다. 이러한 ‘불량국갗는 국제법적인 정의도 아니며 일관되게 적용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 지조차 의심스러운 정치적 수사에 가까운 표현으로서, 미국의 군사․안보전략을 구성하는 주요한 인식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국가들이 ‘불량국갗로 규정되는가? ‘불량국갗들은 공통적으로 “국제규범의 거부하고 세계적․지역적 헤게모니를 추구”하거나 “테러에 관련되어 있고 대규모의 재래식 군비를 소유하며 대량살상무기(WMD)를 획득하려 하는” 등의 행동을 추구함으로써 미국식 이념을 침해하며 미국의 전략적 이해관계에 도전하는 국가들이다. 미국은 이로부터 이들 ‘불량국가들’에 대한 제재의 정당성을 도출하는데 그 주된 방법은 경제제재를 통한 국가봉쇄 및 군사적 위협을 통한 강압, 또는 보상과 포용, 혹은 양자를 병행하는 전략(당근과 채찍)이다. 다양한 “불량국가론”의 개념과 그 역사에 대해서는 박형중, 『ꡒ불량국가ꡓ 대응 전략』, 통일연구원, 2002, pp.7-19 참조.
 1980년대 미국은 테러리즘을 기준으로 이른바 ‘불한당 국갗를 규정해왔으며 클린턴 행정부 시기까지는 이처럼 테러리즘, 혹은 WMD의 추구와 같은 대외적인 측면을 기준으로 ‘불량국갗를 정의해왔으나, 2001년 부시 행정부의 등장 이후 작성된 『미국
국가안보전략』(2002.9.20)에서는 이뿐만 아니라 자국민에 대해 잔혹하며 국가자원을 개인의 이익을 위해 낭비하고, 인간의 기본적 가치를 거부하며 미국과 미국이 옹호하는 모든 것을 증오하는 것 등을 ‘불량국갗의 주된 성격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들 ‘불량국갗들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자유와 같은 미국의 이상과 근본적으로 공존할 수 없기 때문에 미국은 결국 이러한 국가들에 대한 정권교체를 목적으로 삼게 된다. 또한 9․11 테러와 같은 참사를 방지하고 이로부터 미국을 보호하기 위해 이른바 ‘부시 독트린’에서는 필요한 경우 미국의 일방적인 독자적인 행동을 추구하고 테러와 연계된 국가들에 대한 주권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 즉 테러와 대량살상무기의 국제적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선제공격을 포함한 적극적인 반확산(counter-proliferation) 전략을 강조한다. 여기서 미국의 공격적인 군사․안보전략, 즉 미국의 강력한 간섭을 통해 테러와 전제적인 정권의 위협을 감소하거나 제거할 수 있다는 발상은 상당 부분 인도주의 간섭을 정당화한 논리와 연결되어 있다. 여기서 그 주체가 미국인지, 아니면 이른바 ‘국제사회’인지, 혹은 그 절차가 적법했는지에 대해서 벌어지는 논란은 의미가 없지는 않지만 부차적일 수밖에 없다.
미국이 ‘불량국갗 혹은 2002년 「연두교서」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른바 ‘악의 축’에 포함된 국가들(북한, 이란, 쿠바)은 대외적으로는 테러와 대량살상무기의 획득을 위해 노력함으로써 지역의 안보와 평화를 위협하며, 대내적으로는 기본적인 시민적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지 않은 전체주의 독재정권으로 규정됨으로써 이들 국가에 대한 미국의 군사․안보전략은 ‘불량국갗를 변화시키는 인도주의적 간섭이라는 명분을 획득할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더욱이 미국의 네오콘(신보수주의자)에서 발견되는 사고방식 중의 하나가 이처럼 자신들의 호전적인 외교․안보전략을 절대적인 도덕적 수사로 표현하는 것인데 이러한 관념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부시 대통령의 이른바 “악의 축” 발언이었다. 기독교 복음주의 세력과 결탁한 네오콘의 세계관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요소가 바로 종교적․도덕적 이데올로기인데 정의와 선의 자리에 미국이 들어서고 악이자 징벌과 응징의 대상에는 이른바 ‘불량국갗가 자리잡게 된다. 네오콘은 극단적으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축으로 하는 미국식의 이념을 절대적으로 잣대로 하여 이러한 이념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무력사용을 불가피한 것으로 여긴다. 바로 이러한 인식이 이른바 선제공격 독트린으로까지 이어지고 있음은 다음의 인용문에서도 드러난다. “미국은 전지구적으로 전례가 없으며 누구도 따를 수 없는 힘과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다. 자유의 원칙과 자유로운 사회의 가치에 대한 믿음으로 지탱되면서 이러한 미국의 위치는 상당한 책임감과 의무와 기회를 동반하고 있다. 이 나라의 위대한 힘은 자유를 선호하는 힘의 균형을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 이것은 또한 미국을 위한 기회다. 우리는 이 영향력의 계기를 평화와 번영과 자유의 세기로 전환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미국 국가안보전략보고서」 中)
 네오콘은 이미 이들이 정치세력으로 결집한 계기였던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에서 미국의 가치를 보편적인 것으로 선언하고 이를 위해 선제공격을 불사한다는 것, 그리고 세계를 민주적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첫 단계로서 중동민주화를 제창하였다. 체제 교체(regime change)는 따라서 악에 대한 응징의 의미뿐 아니라 (미국식) 자유민주적 가치의 수출이란 점에서 정당화된다. 이로부터 네오콘의 군사․안보전략은 단지 미국의 국익을 수호한다는 차원을 넘어 기독교적 사명감에 기반한 ‘도덕적 우월주의’, 권위주의나 독재체제를 민주적으로 전환하기 위한 ‘십자군 전쟁’으로서의 성격을 부여받는다. 이와 관련하여 안병진, 「미국 신보수주의의 사성적 배경 : 레오 스트라우스를 중심으로」; 남공군 편, 『네오콘 프로젝트 - 미국 신보수주의의 이념과 실천』, 사회평론, 2005, pp.113-19; 김성한, 「미국 신보수주의 외교이념의 구성과 주장」, 같은 책, pp.190-94 참조.

이처럼 미국의 인권-외교정책이 군사․안보전략과의 밀접한 상호공명 속에서 추구되고 있으며, 또한 인도주의적 간섭이 현실적으로 이러한 미국의 세계전략의 틀 내에서 전개된다면 과연 이것이 진정 해당 국가와 지역의 인민들의 자유와 권리를 확장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의문시될 수밖에 없다. 이로부터 인도주의 간섭을 침략전쟁으로 정의할 수는 없더라도 그것이 현실적으로 침략전쟁과 구분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간과할 수 없는 인도주의 간섭의 한계이다.


3)  실업과 빈곤, 불평등: 임계에 봉착한 자본주의

앞서 언급한 유엔과 미국의 해법은 모두 세계적인 야만적인 폭력과 무질서를 교정하기 위한 맥락에서 출현한 것으로서 부분적으로는 상이하지만 공통적으로는 폭력과 무질서의 원인을 피상적으로 진단하거나 무시함으로써 세계적인 폭력과 갈등의 부작용을 단지 관리하기 위한 것으로 전락한다. 국가의 해체와 종족적․종교적 집단들 사이에 벌어지는 내전, 그리고 빈곤, 교육과 보건의료 체계의 붕괴, 민주주의의 후퇴 등은 1970년대 이후 금융세계화의 전개와 미국의 냉전기 군사․안보전략의 실패를 의미하며 이는 세계적인 차원에서 통치성의 문제를 제기한다. 게다가 이러한 금융세계화의 효과는 단지 특정한 국가나 지역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이며 미국이나 유럽과 같은 중심부 국가들 내부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주변부를
창출하고 기본적인 시민의 권리를 위축시킨다.
1970년대 인플레이션과 실업이 동시에 증가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은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을 조정하는 케인즈주의 경제정책의 메커니즘이 파괴되었음을 의미했다. 실업이 증가하는 불황기에 재정정책과 화폐정책을 통해 인플레이션을 조정함으로써
사실상 완전고용을 이룰 수 있는 것으로, 1929년의 대공황과 같은 악몽을 반복하지 않아도 될 것으로 간주되었던 중심부 국가의 경제정책들을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렸다. 1945년 이후 세계 자본주의가 파멸의 늪에서 기적적으로 회생한 이후 1973년까지 미국을 비롯한 중심부 국가들에서 고성장과 저실업을 기록했던 ‘자본주의의 황금기’가 막을 내린 이후 1973-75년 사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연평균 성장률은 불과 0.1%였으며 그 이후 약간의 회복이 있었으나 결코 그 이전 1960년대와 1970년대 초의 성장률을 회복하지는 못하였다. 이전까지 각각 3% 미만과 4.8%였던 유럽과 미국의 실업률은 10% 이상과 7.1%를 기록했다(Phlip Armstrong․Andrew Glyn․John Harrison, Capitalism Since 1945 (Basil Blackwell, 1991)[국역『1945년 이후의 자본주의』, 동아, 1993 14장 참조]).
 등장한 것이 이른바 금융시장의 규제를 해제함으로써 중심부의 자본이 금융적 팽창을 추진할 수 있게 장려한 신보수주의․신자유주의다.
라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서 경제위기가 만성화되고 발전이 정지된 것은 이러한 자본주의의 위기비용을 (반)주변부에 교묘하게 전가한 중심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기인한다. 그 신호탄은 미국의 레이건 행정부가 시행한 고금리․강한 달러 정책인데, 1970년대 말, 1980년대 초 소련과의 군비경쟁과 이로 인한 재정적자를 세계 자본의 미국으로의 유입을 통해 상쇄하려한 결과 라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 저렴한 이자율로 대출되었던 자본은 급격하게 미국의 금융시장으로 집중되었다. 이로 인해 발생한 것이 바로 외채위기이며 주변부 국가들은 터무니 없이 높은 외채부담 속에서 부와 자원의 유출을 강제받게 된다. 1970년에 10억 달러를 빚진 국가는 12개 뿐이었으나 1980년에는 6개국이 자신의 GNP, 또는 그 이상의 외채를 안고 있었고, 1990년에는 - 사하라 사막 이남의 모든 국가들을 포함하여 - 24개국이 자국의 생산액 이상의 외채를 짊어지고 있었다. 수백억 달러를 빚진 3대 채무국 -브라질, 아르헨티나, 멕시코 -을 포함하여 모든 외채는 전적으로 ‘제3세계’라 불리는 주변부 국가들이 지고 있었다. 1970년대 이후 세계은행의 조사에 따르면 저소득 및 중소득 국가에 해당하는 96개국 가운데 외채가 10억 달러 미만인 국가는 7개국에 불과했고 그 국가들조차 외채는 20년 전에 비해 몇 배나 증가했다. Eric Hobsbawm, Age of Extremes - The Short Twentieth Century, 1914-1991(London: Michael Joseph, 1994) [국역 『극단의 시대: 20세기 역사 하』, 까치, 1997, pp.780-81].
 이러한 외채위기는 라틴 아메리카의 경우는 초민족화한 자본가들의 자본도피와 투자의 실패에 대한 비용을 해당 국가와 민중이 부담하는 방식으로 나타나기도 하였고(일례로 외채규모에서 자본도피를 제외할 경우, 1985년 현재 아르헨티나의 외채는 500억 달러에서 10억 달러, 멕시코의 경우 970억 달러에서 10억 달러로 줄어든다) James Petras, "Latin America's Transnational Capitalists and the Debt: A Class Analysis Perspective", Development and Change, 1988 no.2, pp.179-201[국역 「라틴 아메리카의 초민족적 자본가와 외채문제: 계급분석적 시각; 다이앤 앨슨 외, 『발전주의 비판에서 신자유주의 비판으로 - 페미니즘적 시각』, 공감, 1998]
 아프리카의 경우 1980년대 이후 자본의 ‘가뭄’은 이후 연이은 가뭄과 자연재해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약화시켰으며 1975년 이후 오히려 경제적으로 쇠퇴하였다. 1975년에서 1990년 사이 라틴 아메리카는 1인당 GNP가 19%,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는 33% 감소했는데 Giovanni Arrighi, "The African Crisis: World Systemic and Regional Aspests", New Left Review 15(May/June 2002)[국역 「아프리카의 위기: 세계체계적인 그리고 지역적인 양상들」, 『월간 사회진보연대』2002년 11월호, 2003년 1/2월호]
, 이는 한편으로는 자본 이동의 역전(더이상 자본은 주변부로 유입되지 않고 오히려 중심부의 금융시장으로, 혹은 중심부 사이에서 이동한다)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외채위기 당시 자금을 지원하는 대가로 IMF가 부과한 구조조정 프로그램에 따라 자원과 산업을 해외매각하거나 사유화하고, 정부의 복지지출을 감축한 결과 실업과 빈곤의 위협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된 데 따른 결과이다. 이들 지역의 국가들은 세계 자본주의의 ‘사각지대’가 되었다. 그러나 금과 다이아몬드가 매장된 지역은 예외적으로 세계 자본주의와 연결된 통로로서, 이 지역을 통제하기 위한 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는데 앙골라의 경우에서는 내전이 용병과 무기를 제공하는 군수 사업가들과의 제휴 속에서 장기간 지속되었다. 이처럼 라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의 경제와 사회를 만성적인 경제위기와 외채부담 속에서 내파시키고, 1997-98년 아시아와 러시아 등을 휩쓴 금융위기를 빌미로 구조조정을 관철시킨 신자유주의의 모습은 이미 세기말적 자본주의의 자기-조절 능력이 부재함으로 드러낸다.
중심부 내에서도 실업을 수반하는 구조조정과 저임금의 불안정 노동이 노동조합과 복지국가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공세가 진행되는 가운데 일반화되고, 규제가 완화된 금융화한 자본은 세계 각지의 신흥시장과 중심부의 금융시장을 왕복하며 소수의
금융자산가 계층을 정점으로 한 거대한 사회적 위계와 불평등이 심화된다. 그 전형적인 사례는 미국인데 1980년에서 1994년 1-3분기 사이, 연기금․뮤추얼펀드․보험회사․은행․재단 등이 소유한 금융자산은 1,331억 달러에서 11,770억 달러로 증가하였다. François Chenais, La Mondialisation du Capital(La Découverte & Syros 1997)[국역 『자본의 세계화』, 한울, 2003, p.53].
 불평등의 심화는 금융기관, 가계들로 지불되는 거액의 이자와 배당의 형태로 부와 소득이 이전되는 금융적 성격을 간과하고는 설명될 수 없으며 1980년대 주식시장의 급격한 성장은 부의 불평등을 심화하였다. 소득 상위 1%가 소유한 부의 비율은 1976년 22%였는데 2000년대 들어 이는 무려 40%에 육박한다. Gérard Duménil and dominique Lévy, “The Nature and Contradictions of Neoliberalism”, Socialist Register
2002[국역 href="http://jinbojournal.jinbo.net/">http://jinbojournal.jinbo.net/ 번역자료실
16번]. 한편『포브스』(Forbes) 지의 계산에 따르면 1990년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400명은 2000년에 더 부자가 되었는데 같은 기간 동안 미국의 국민소득은 고작 두 배 증가했을 뿐이다.(Emmanuel Todd, ARRÈS L'EMPIRE (Éditions Gallimard 2002)[국역 :『제국의 몰락』, 까치, 2003, p.101])
 
이처럼 소수를 제외한 주변부에서의 경제발전의 정지, 혹은 후퇴와 중심부에서의 빈곤과 저임금노동의 일반화는 2차 대전 이후 반공-발전주의, 복지국가, 민족-국가의 수립을 자국의 노동자와 식민지 인민들에게 약속했던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를 드러내는 징후이다. 신자유주의 정책은 복지국가를 시대 착오적인 것으로 간주하며(과거 시민들의 적극적 자유로 해석되었던 경제와 복지에 대한 국가의 적극적인 역할은 이제 위험천만한 ‘반시장적’ 관념이며 연금수혜자들은 이제 ‘기생충’으로 취급된다), 과거 케인즈주의가 제한적으로나마 달성했던 세계경제의 실질적인 성장은 부와 자원의 중심부로의 지속적인 유출 속에서 빈곤한 지역들로 둘러싸인 중심부의 도시들과 주변부 내의 몇몇 중심부에 국한된 금융적 팽창과 세계적인 불평등으로 대체된다.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전면적인 수정 없이는 1993년 비엔나 세계인권대회에서 개도국들이 인권의 선결조건으로서 요구한 ‘발전권’도,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이 역설한 ‘인간안보’도, 인도주의 간섭 이후에 새로운 통치질서를 재건하는 작업도 실효성이 있을 수 없다. 일례로 중심부 국가들은 외채부담을 경감하는 문제 대해 매우 소극적이고 인색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지난 7월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열린 G8 정상회담에서 논의된 외채탕감 규모는 과중채무빈국(HIPC) 38개국에 대해 550억 달러의 외채탕감 계획을 발표했는데 이는 이들 국가들의 총외채 1,670억 달러,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의 총외채 2,080억 달러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액수일뿐더러 향후 수십 년에 걸쳐 진행되는 관계로 고작 한 해에 10-20억 달러의 효과를 내는데
그친다. 그런데 남반부 국가들로부터 G8 국가들이 거두어들이는 외채에 대한 이자는 한 해 230억 달러에 달하며, 탕감하기로 한 외채 중 400억 달러는 이미 악성외채여서 실제 거래되는 가격은 32억 달러에 불과하다. 게다가 G8은 외채탕감운동을 전개하는 단체들이 요구하는 증오스럽고 불법적인 성격의 외채탕감에 쉽사리 응하지 않는다는 것은, 러시아를 제외한 모든 국가가 인권과 인도주의를 침해하는 독재국가의 비도덕성을 비난하던 서방열강들이라는 점에서 놀라운 사실이다. 박하순, 「G8 외채탕감계획의 기만성」, 『월간 사회운동』2005년 7/8월호.
 1970년대 남미 군부독재 정권들, 1994년 이전 남아공의 인종차별(아파르트헤이트) 정권, 필리핀의 마르코스 치하 외채 뿐 아니라 심지어는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이 이란과의 전쟁을 위해 빌린 외채도 완전히 탕감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이라크에서 1,200억 달러에 달하는 이 외채에 대해 지난 해 채권국들의 비공식 협의체인 파리클럽은 80%를 탕감하는 전제조건으로 IMF 구조조정 프로그램의 실행과 이에 대한 IMF의 긍정적인 평가를 내세웠다.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사실상 이라크의 모든 부문의 산업에 대해 외국인 투자의 제한을 철폐하는 것으로서 이미 연합군임시행정처(CPA) 시절 법령 39조를 통해 보장된 바 있다. 여기서 미국이 강조하는 이라크의 재건이란 초민족적 자본 사이에 이루어지는 이권의 재분배에 다름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나마 이러한 부분적인 탕감조차도 교육, 보건 같은 사회적 비용을 줄여 재정적자를 감축할 것, 전력, 전기, 전화, 물, 의료 등을 사유화하며 외국인 투자에 대한 장벽을 제거할 것, 공공부문의 규모를 줄일 것, 노조조직을 어렵게 만들 것, 외화획득을 위해 (자연자원을 포함한) 수출을 늘릴 것, 생활필수품에 대한 보조금을 제거할 것 등의 신자유주의 개혁에 순응하는 대가로서 주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현행 체계의 근본적인 변혁 없이는 인간안보나 ‘발전권’은 신자유주의와 공존하는 대가를 혹독하게 치루어야 할 것이다.


4)  군사세계화: 세계화를 방어하는 중심부의 통치전략

불평등과 빈곤의 근본원인으로 금융세계화의 이면에는 이른바 군사세계화가 자리잡고 있다. 이것은 앞서 언급한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이 임시적이거나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오늘날 자본주의의 변화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바로 미국의 막대한 군비지출이다.
2005년도 미국 국방예산 4,206억 달러는 부르키나파소, 부룬디, 콩고, 케냐, 레소토, 모리셔스, 모로코, 나이지리아, 르완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탄자니아, 튀니지 등 아프리카 12개국 3억9천4백만 명의 국민총소득 총합 3,857억 달러보다 많다. 이러한 군비지출의 증가는 9․11 테러를 기점으로 상당히 늘어난 것이 사실이지만 냉전 이후 국방예산의 감소추세가 역전된 것은 1999년부터이다. 1990년 미국의 국방예산은 3,850억 달러에서 1998년 2,800억 달러로 28%나 감소하였다. 1990-2000년 사이 세계에 배치된 미군의 수는 200만 명에서 140만 명으로 10년 동안 32%가 줄었다. M. E. O'Hanlon의 분석. 엠마뉘엘 토드, 앞의 책, pp.115-16.
 이미 클린턴 행정부는 1999년-2003년 동안 국방예산을 1,120억 달러 증액하기로 결정했고, 부시 대통령이 국방예산을 15% 증가하기로 결정한 것은 9․11 테러가 일어나기 전이었다. 또한 1990년대 초반 미국이 자신의 군사적 이니셔티브를 포기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 시기 동안 군사기술의 혁신을 위한 예산은 잘 유지되었고(1980년 273억 달러에서 1996년 390억 달러), 군수기업들 간에 이루어진 인수․합병 과정에서 연금기금과 투자기금 등의 금융자본이 참가했으며 ‘주주 가캄를 극대화하기 위해 국방예산을 증액하기 위해 국방부에 꾸준히 압력을 행사했다. 기관투자가들은 클린턴 행정부의 국방예산 증가에 환호를 보냈으며 2001년 9월 11일 이후 S&P 지수와 나스닥 지수가 각각 20%와 60% 하락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군수기업의 증가는 10% 상승할 수 있었다. 게다가 군사상의 우위를 통신의 효율성, 정보도구의 성능, 무기 유도의 정밀성 등에 근거하는 이른바 ‘군사혁명'(Revolutions in Military Affairs)이 대두하면서 군수산업들은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경쟁력‘을 제고하는데 9․11 이후 팽창한 안보시장은 이들에게 새로운 이윤 창출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는 전통적인 군비생산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으로써 국방부 이외 민간부문의 지출이 크게 증가하여 이미 야간경비․사고예방 등 안보관련 민간지출은 400억 달러로 연방․주․도시들의 경찰예산과 맞먹는 것이었다. 과거의 군산복합체를 대체하는 이들 ‘군사․안보 복합체’ Claude Serfati, "La guerre sans limites: à l'èrre de la mondialisation du capital", href="http://www.france.attac.org/">http://www.france.attac.org/, 15 Jan. 2003[국역: 「금융세계화와 무한전쟁」; 윤소영, 『마르크스의 ‘경제학 비판’과 대안세계화운동』, 공감, 2003, pp.35-52]. 클로드 세르파티는 오늘날 미국이 주도하는 전쟁은 세계화한 미국자본의 이해를 방어하는데 필수적이라고 진단한다.
가 금융자본과 결탁하여 미국의 사회와 경제에 깊숙이 뿌리내리게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바로 냉전 이후 미국의 새로운 국가안보전략이다. 안보시장의 팽창을 가속화한 것은 ’본토안보부‘(Department of Homeland Security)의 설치였으며, 앞서 언급했듯이 예방전쟁, 선제공격 독트린으로 악명높은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이 방어하고자 하는 것은 다름 아니라 냉전의 소멸과 세계화로 인한 각종 위협과 불안정(‘테러와 불량국가'로 대표되는)으로부터 폭넓게 정의된 미국의 ‘사활적 이익’(vital interests), 즉 신자유주의 질서와 금융 부르주아의 이익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안보’는 단지 외부의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안전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미국국익위원회(The Commission on America's National Interests)의 보고서에 따르면 "무역․운송․금융․에너지 네트워크와 환경 같은 세계적 차원의 주요
시스템의 안정성의 유지"에 대한 공격으로부터의 방어를 포함하며, 또한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에 따르면 예방적․선제적 행동이 지키고자 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와 함께 도덕적 원칙으로 선언되는 “자유기업․자유무역”이며, 이 원칙이 문제시될 때 미국의 안보는 보장될 없다.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에서 “자유무역․자유시장”에는 기업활동을 촉진하는 탈규제정책, 한계조세율을 인하하는 재정정책, 금융시장을 부양하는 통화정책, 아메리카자유무역지대의 창설, 다자간․양자간 자유무역협정의 부과 등을 포함한다. 이처럼 미국의 군사․안보전략 자체는 금융화한 자본주의 질서를 방어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테러와의 전쟁’으로 명명되는 이 전략은 9․11 테러 이후 사회적 저항을 범죄화하는 일련의 현상과도 관련이 있다. 실상 이라크에서 보았듯이 미국의 군안복합체는 첨단무기로 무장한 보병과 공습이 교대로 이루어지는 전쟁을 수행하는 무기체계를 고안하고 있고 이는 ‘도시전쟁’ 즉 남반부의 붕괴해가는 국가들과 그 인민들, 그리고 북반부 도시의 빈곤층을 잠정적으로 ‘위험한 계급’으로 간주하고 이들의 저항에 맞선 전쟁을 의미한다. 또한 부시정부가 전비를 충당하기 위해 발행하는 국채는 기관투자자들에게 높은 수익성을 보장하며, 군수시장 및 안보시장의 전망을 밝게 만들 뿐 아니라 중심부의 발전한 국가들의 금융자본이 미국을 더욱 안전한 투자처로 간주하는 계기가 된다.
‘예방적 공격자’로서 ‘세계의 경찰’임을 완성하려는 미국의 행동은 이미 클린턴 행정부 시절 시작되었다. 1990-99년 사이 미군은 1945-90년 동안보다 더많은 대외개입을 수행했으며 『LA 타임즈(LA Times)』(2002.1.6)에 따르면 2001년 9월 10일 현재 “6만명 이상의 미군이 약 100개의 나라에서 작전과 훈련을 수행하고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미국과 다른 국가들 사이의 불화가 없지는 않겠지만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미국과 이외의 국가들 사이에 군사력의 격차가 유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과거 1차대전과 같이 열강들 사이의 전쟁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2003년도 미국 국방예산은 3,961억 달러로 ‘불량국갗로 지목된 북한, 이란, 이라크, 시리아, 리비아, 수단, 쿠바의 국방비 총합의 26배이다. 심지어 미국의 국방비는 미국을 제외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과 러시아, 중국, 일본, 인도, 남한, 호주의 국방비 총합보다 740억 달러가 많다.
 오히려 미국이 선호하는 것은 미국과 세계자본주의의 질서를 교란하거나 위협하는 세력에 대한 중심부 차원에서의 ‘공동작전’(걸프전쟁에서 ‘다국적군’, 이라크 침략전쟁에서 미․영 연합군 등)이다. 유럽연합 회원국 전체는 세계군비의 30%를 차지하며, 세계군비의 2/3를 차지하는 나토는 ‘세계화의 무장력’으로서 미국에게 필요한 것이다(바로 이 점이 냉전 이후에도 나토가 계속 유지되는 이유이다). 이로써 전쟁은 오늘날 경기를 부양하고 금융화한 자본주의 질서를 위협하는 세력에 대한 중심부의 공동대응의 핵심적인 구성부문으로 통합된다. 그런데 역설적인 것은 다양한 분쟁지역, 즉 인종정화와 난민의 발생, 만긴인에 대한 폭력과 테러의 위협 등을 야기하는 전례없는 유형의 전쟁, 즉 냉전 이후 등장한 ‘새로운 전쟁’은 냉전 시기 축적된 거대한 군사적 자원의 바탕 위에서 그 자체가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자원과 무기, 병력을 조달하는 연속적인 폭력과 분쟁의 순환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소련의 해체 이후 미국과 소련 양자로부터 원조가 중단된 사하라 이남 국가들, 혹은 중앙 아시아 국가들이 정상적인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점차 정규군 자체의 유지가 불가능해지고 이들 전․현직 군인들은 자이르에서처럼 약탈과 강탈에 고용되거나, 타지키스탄에서처럼 군벌화하는 등 일반적으로는 준군사집단, 군벌, 자위조직의 일원이 되었다. 이들은 부대를 유지하기 위해 강탈이나 납치를 통한 인질장사에 의존하거나, 다이아몬드(시에라리온과 앙골라), 청금석과 에메랄드(아프가니스탄), 마약(콜롬비아와 타지키스탄) 생산과 거래를 ‘보호’하는 대가로 이득을 보거나 내전 중인 상황에서 국제기구들 및 NGO에 의해 이루어지는 인도주의적 원조를 암시장 거래 등을 통해 군사적 자원으로 전용하는 방법을 활용하기도 한다. 인구절멸 등의 수단을 통해 특정한 종족적․종교적 동일성에 기반한 공포, 증오를 표출하고, 약탈에 의존하는 이러한 비공식 군사집단들과 이들이 수행하는 새로운 전쟁은 냉전 시기 축적된 군사적
자원이 세계화된 경제와 결합하여 처분되는 하나의 양상이다. Mary Kaldor, “The Globalized War Economy”, New and Old Wars: Organized Violence in a Global Era (stanford University Press 2001)[국역: 「세계화된 전쟁경제」, 『월간 사회진보연대』2003년 5월]
 이러한 극단적인 폭력은 사회적 권력관계를 변화하지 않고 단지 교전 당사자 사이를 중대하고 현상을 유지하는 외교협상으로는 해결될 수 없으며, 미국이 주창하듯이 선제적․예방적 전쟁에 의해서는 오히려 무한전쟁의 순환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게다가 전략적 이해관계가 없는 지역의 분쟁에 대해서는 국제적인 해결노력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목격되는 다양한 극단적 폭력과 야만의 유형들은 자본주의의 위기와 신자유주의 실패라는 관점 속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이러한 진단 없이 제기되는 인간안보, 혹은 인도주의 간섭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거나 미국의 군사․안보전략의 독트린 속에서 그 일부분으로서 기능할 것이다.


다. 2. 1990년대 이후 미국의 대북 정책

라. -군사․안보전략에 종속된 미국 외교정책

1)  핵과 미사일 문제: 1994 - 2005

지난 1990년대 미국의 대북정책을 살펴본다면 오히려 문제는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를 이런저런 이유로 회피하고 여전히 대북경제제재를 유지함으로써 북한의 개혁․개방의 가능성을 봉쇄하고 있는 미국이다. 1980년대 말까지 미국에게 북한은 ‘봉쇄’(containment)의 대상으로서 대화의 상대가 아니었으며 남한정부를 통한 간접적인 개입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말 북한의 핵 프로그램이 부각되면서 동아시아 지역에 대한 전략적 중요성과 대량살상무기 확산 저지라는 전략적 목표를 위해 북한과의 직접적인 접촉이 불가피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접촉(engagement)’이란 유화나 포용이 아닐 수도 있는데 접촉정책의 가장 일차적인 목표는 다름 아니라 미국 주도의 군사․안보질서를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며, 이를 위해 정치․경제적 수단을 동원하여 미국의 전략적 목표에 순응하도록 유도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경제적 상호의존성이 심화하는 가운데 미국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정치적 공감대를 형성하며, NGO 네트워크 등 다양한 채널을 확보한다는 다자간 접근법 등이 접촉정책을 구성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핵․미사일 문제는 물론이고 북한인권에 대한 미국의 문제제기 역시 접촉정책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다고 할 수 있으며 이는 미국 주도의 군사․안보질서를 안정적으로 유지한다는 전제를 침해하지 않는다.

냉전질서의 소멸 이후 한반도는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당시 남북은 상호체제(제도)의 인정․존중, 내부문제 불간섭, 비방․중상 중지, 파괴․전복행위 금지, 정전상태의 평화상태로의 전환, ‘남북화해공동위원회’를 구성․운영 등에 대해 합의하였다.
와 1992년「비핵화공동선언」 당시 남북은 핵무기의 시험․제조․생산․접수․보유․저장․배비․사용 금지, 핵 에너지의 평화적 이용, 핵 재처리 시설과 우라늄 농축 시설 보유 금지,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의 구성을 통한 상호 사찰 실시에 합의하였다.

을 통해 북핵문제 해결 및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장밋빛 전망이 제기되지만 이는 미국의 북한에 대한 강경한 입장과 공명하는 노태우 정권의 공안탄압 당시 법무부는 「남북합의서」를 조약으로 인정할 수 없으며 따라서 국가보안법 상 ‘반국가단체’는 이와 관계가 없다는 것을 밝히고(1992.4), 안기부의 ‘남조선노동당 사건’ 및 경제협력 동결, 팀스피리트 훈련 재개 등을 발표하는 1992년 10월 경 남북관계는 다시 대결국면으로 되돌아갔다.

 속에서 순식간에 경색국면으로 전환된다.
1993-94년으로 접어들면서 미국과 남한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저지하기 위해 팀스피리트 훈련을 재개하고, 유엔을 통한 대북 제재와 영변 선제공격계획 등을 검토하면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은 삽시간에 고조된다. 여기서 1994년 6월 카터의 전격적인 방북을 계기로 그 해 가을 북한과 미국 사이에 체결된 제네바 합의는 북핵문제 및 북․미 관계에 중대한 진전을 의미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Leon V. Sigal, Disarming stranger: Nuclear Diplomacy with North Korea (Princeton, N.J. :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8)[국역: 『미국은 협력하려 하지 않았다 - 북한과 미국의 핵외교』, 사회평론, 1999].

 제네바 합의의 주된 내용은 북한이 영변의 원자로를 동결하고 핵비확산조약(NPT)에 규정된 사찰을 수용하는 대신 미국은 한국, 일본과 함께 경수로 건설 및 난방용 중유와 4억 달러의 장기채와 지급보증을 약속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제네바 기본 합의서」에는 양국 간 관계정상화를 명시함으로써 정치․외교적 고립상황에 빠진 1990년대이래 북한이 추구하던 ‘교차승인’이 머지않아 현실화할 것으로 보였다(2항. “양측은 정치적․경제적 관계의 완전 정상화를 추구한다”). ‘교차승인’이 처음 제기된 것은 베트남전 패배와 경제위기라는 조건 속에서 현실사회주의 진영에 대한 미국의 유화책으로서 ‘데탕트’가 등장한 1970년대 초반이었다. 그리고 한반도와 관련하여 제기된 것이 ‘교차승인’이었는데, 이는 한반도에 독자적인 두 개의 국가가 있음을 인정하고 주변 국가들이 서로 상대방 진영의 국가와 정상적인 외교관계를 수립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키신저 국무장관은 1975년 UN 총회에서 한반도에 이른바 ‘교차승인’을 제기하지만 이는 한반도에서 기존 한․미 군사동맹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현실화되기 어려웠다. 그러나 1990년대 舊소련 및 동유럽의 현실사회주의 진영이 급속하게 해체․몰락과 더불어 남한이 소련 및 중국과는 각각 1990년과 1992년 공식적인 외교관계를 수립함으로써 순식간에 국제적 고립 상태에 놓인 북한은 분단을 고착화한다며 교차승인을 반대하던 입장을 바꿔 미국 및 일본과의 관계정상화를 추진한다.
 또한 「제네바 합의서」에는 3개월 내 양국의 통신 및 금융거래, 투자에 대한 제한을 완화하고, 쌍방의 수도에 연락사무소를 개설하며, 양국관계를 대사급으로까지
격상시켜 나간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제네바합의는 북한의 핵 개발 프로그램을 일단 동결하고 과거 얼마나 플루토늄을 생산하고 재처리했는지에 대한 조사(를 위한 연료봉의 해외반출) 및 기존 핵시설의 해체는 대체 원자로(제네바합의에 규정된 경수로의 건설)에 따라 단계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는 경수로가 완공되는 수 년 동안은 북한의 과거 핵 프로그램이 당분간 모호한 채로 남겨져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며 미국 내에서 공화당을 위시한 보수진영의 비판은 여기에 집중되었다. 북한이 비밀 핵시설이 있다든지, 혹은 이미 만들어진 핵무기가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경우 제네바 합의는 결국 미국이 북한에게 사기를 당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제네바 합의에 대한 비난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북한을 압박하는 데는 미국보다 적극적이었던 김영삼 정권은 북․미 직접대화에서 한국이 소외된 것과 북한의 핵이 철저하게 규명되지 않는다는 점에 대해 불만을 표시했다. 게다가 1994년 미의회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상하 양원에서 모두 다수파를 차지한 직후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비난은 봇물을 이루었다. 제네바 합의는 ‘카드로 만든 집’이라고 조롱받았고 북한의 핵개발 의혹이 투명하게 밝혀지기 전에는 북한에 대한 연료 공급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그렇지만 미국은 북한에 대해 미사일 개발이라는 추가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1998년 북한이 정권창립 5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발사한 광명성 1호는 미국과 일본으로 하여금 북한의 중․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문제삼는 계기가 되었다. 북한은 사정 거리 500km의 스커드-C형 미사일을 자체적으로 제작․보유하고 있었고 대포동 1호의 사정거리는 1,500-2,000km에 달했다. 또한 이를 개량한 대포동 2호는 (실험되지는 않았지만) 3,500-6,000km를 날아 이론상으로 미국의 북서해안을 공격할 수 있었다. 이러한 미사일의 개발은 이란, 파키스탄 등의 국가들에게 수출되었는데 이는 북한의 주요한 외화수입원 중 하나였다.
동유럽의 몰락과 소련의 해체 이후 북한은 1차 연료의 부족과 대외무역의 급속한 감소로 커다란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소련․러시아와의 교역은 1990-94년 동안 26억 달러에서 1억 달러로 줄었고 무역총액은 47억 달러에서 23억 달러로 반토막 났다. 와다 하루키, 『북조선 - 유격대 국가에서 정규군 국가로』, 돌베게, 2002, p.238.
 당시 미국은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부풀리며 전역미사일방어망(TMD)을 정당화하는 계기로 삼았고, 제네바합의에서 약속한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 해제와 관계 정상화에 대해서는 여전히 별다른 진전을 보여주지 못했다(대조적으로 북한은 이미 1995년 1월 미국과의 상업 및 금융거래 금지를 폐지했다). 게다가 미국은 1998년에도 펜타곤에서 북한에 대한 모의 핵공격을 훈련하는 등 북한에 대한 핵위협을 여전히 철회하지 않고 있었다. 미국은 새롭게 등장한 북한의 중․장거리 미사일 문제를 포함하여 한반도 정책을 재검토하기 시작한다. 이에 따라 1999년 발간된 『페리 보고서』에서는 북한에게 경제제재 해제와 실질적인 대북지원을 제공하는 대가로 북한이 기존 제네바 협정에서의 이행사항을 준수할 것과 더불어 미사일 실험의 유예와 중동지역에 대한 미사일 판매를 포함한 미사일 프로그램의 중지를 요구했다. 이는 중장거리 미사일 개발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북․미 관계정상화와 대북 경제제재 해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지만 문제가 악화되지는 않았다. 2000년 북한 조명록 차수의 방미와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의 평양방문에 이어서 11월의 시점에서는 클린턴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여 북한과 정상회담을 갖기 일보직전이었다. 여기서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수년 동안 10억 달러 상당의 식량원조를 받고 사정거리 180마일(388km) 이상의 미사일을 규제하는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에 가입하는 것이 거의 기정사실로 인식되었다. Bruce Cumings, North Korea: Another Country, (New York: The New Press 2004)[국역: 『김정일 코드』, 따뜻한손, pp.197-199] 참조.
 그러나 전례 없는 박빙의 승부였던 당시 미국 대선의 와중에 클린턴의 방북은 취소되고 공화당의 부시가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제네바 합의에 대한 비판과 부정이 등장한다. 당초 제네바 합의에 따르면 기존 흑연 감속로를 대체하는 경수로의 건설 시점은 2003년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미국은 북한과의 관계정상화와 경제제재에 소극적이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2001년 『핵태세 보고서』에서 북한을 선제핵공격이 가능한 국가로 분류하고, 2002년 연두교서에서 이라크․이란과 더불어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이들 국가의 체제교체를 목표로 설정한다. 또한 앞서 언급했듯이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을 통해 핵무기나 화학무기 등의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예방적 반확산’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러한 미국의 공격적인 군사․안보 전략의 첫 시험대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였다. 2002년 말 북한과 미국 사이의 관계는 다시 제네바 합의 이전으로 되돌아갔다고 할 수 있다.
2002년 11월 북한을 방문하여 북한의 비밀 핵 프로그램-농축 우라늄 개발-을 추궁하는 켈리 미국무부 차관보에게 북한은 핵 프로그램과 미사일 수출을 포기하는 대가로 북한 주권의 인정과 불가침 보장, 여타의 경제적 지원을 제안하지만 미국은 이를 거부한다. 당시 북한은 "미국이 대담한 조치를 취하면 우리도 이에 상응하겠다"는 내용의 친서를 보냈으며, 이에 대한 미국측의 반응이 없자 북한이  수 주 후  유엔
국제원자력기구(IAEA) 요원들을 추방하고 핵무기비확산조약(NPT)에서 탈퇴한데 이어 플루토늄 생산 시설을 재가동시켰다고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대사와 존 오버도퍼 교수가 밝힌 바 있다. 이 둘은 2002년 켈리 미국무부 차관보와 함께 평양을 방문했었다. (『연합뉴스』6월 22일)
 켈리의 귀국 이후 미국은 제네바 합의의 무효를 선언한다. 이에 대응하여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감시요원들을 추방하고 발전소의 봉인을 연료봉을 재처리했다고 발표했다. 이듬해 베이징에서 열린 6자회담에서 북한은 다시금 북․미간의 모든 현안을 일괄에 타결하는 ‘대담한 제안’을 협상하려 하지만 미국은 북한의 인권문제를 거론하며 끝까지 북한체제에 대한 인정과 불가침을 보장하는 것을 끝까지 거부한다. 지난 9월 11일 4차 6자 회담에서 북한과 미국을 포함한 6개국은 6개항으로 이루어진「공동성명」의 형태로 합의문을 발표했으나 이로써 북한과 미국 사이의 핵 및 관계정상화를 둘러싼 갈등이 해소된 것은 아니며, 오히려 경수로 제공, 북․미 관계정상화 및 불가침 조약의 체결 등의 구체적인 쟁점들에 대한 더욱 지난한 줄다리기가 지속될 것이다.


2)  북한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 ‘불량국가', 그리고 「북한인권법」

그런데 여기서 북한에 대한 미국의 불신과 추가적인 요구사항을 제시하는 이면에는 북한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과 북한 체제의 붕괴를 원하는 의식이 자리잡고 있다. 1994년 10월 21일자 『월 스트리트 저널(Wall Street Journal)』의 사설은 “이번 주에 타결된 합의서의 역사를 기술할 시점에서 붕괴하게 내버려두어야만 했을 때 전세계가 김정일 정권에 돈을 퍼붓기 시작했다는 과연 기억될 것인가가 의문스럽다”라며 북한과의 협력과 대화에 부정적인 보수진영의 입장을 대변하였다. 리안 시걸, 앞의 책, p.258.

 게다가 북핵문제에 대한 미국 행정부의 대응은 북한이 전형적인 ‘불량국갗로서 미국에 적대적이고 핵무장에 광분하고 있으며 이러한 국가의 야망을 단념시키기고 핵확산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대화나 협력을 통해서가 아니라 무법자라는 규탄과 무장해제에 대한 요구, 그리고 응징이 필요하다는 인식에 의해 계속 지배되고 있었다. 위의 책, p.325.
 부시 행정부가 등장한 이후 이러한 신념은 대통령과 그 주위의 몇몇 인사들이
개인적으로 북한에 대한 강한 혐오와 증오의 발언(부시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가리켜 “독재자”, “못된 아이”, “피그미” 등으로 묘사한 적이 있다)을 일삼아 왔는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거부하는 국가를 악으로 취급하는 인식 속에서 북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것이었다. 부시 대통령은 북한체제에 대해 2001년 2월 17일『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투명성이 부족한 데다 국민을 가두고 굶주리게 하며 동시에 무기증강을 하는 국갚로 평가하고 있으며 김수암, 『미국의 대북인권정책 연구』, 통일연구원, 2004, p.29.
, 지난 11월 9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서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전국민을 억압적으로 대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리더십의 자질은 먼저 국민들의 인권 복지를 우선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표명한 바 있다. 또한 지난 6월 13일 백악관은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처참한 인권 유린 현실을 고발하는 책을 쓴 탈북자 출신 기자를 초청하여 환대함으로써 북한의 인권상황에 대해 깊은 관심을 나타내었을 뿐 아니라,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아태담당 차관보는 의회의 청문회에 출석하여 “북한의 인권문제에 침묵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하게 밝혔다. 이러한 일련의 발언들 속에서 이들의 북한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을 엿볼 수 있거니와,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는 상황에서 테러의 근본적인 근절은 정권의 민주화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체제 교체’라는 발상과 결합된다. 근본적으로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김정일 정권의 교체를 통해 북한을 민주화하고 북한의 인권상황을 개선한다는 전략과 연계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북한 체제에 대한 미국의 부정적인 인식은 비단 최근 몇 년 동안 생겨난 것이 아니며 네오콘만의 전유물도 아니다. 미국 국무부가 발간하는 『연례 각국 인권보고서』(유엔 회원국 전체를 대상으로 1978년부터 발간)에서 북한은 1993-96년 동안 “조선노동당 절대권력 하의 독재체제”로서, 독립된 사법부가 존재하지 않는 관계로 인권이 보장되지 못한다고 보고 있다. 또한 국가안보를 위한 군과 보안기구들에 의해 심각한 인권침해가 이루어지고 경제발전을 가로막는 군부에 대한 과도한 투자, 북한주민들에게 정부를 교체할 권리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 등을 들어 미국 국무부는 북한체제를 군사력과 대량살상무기를 추구하면서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고 굶주리게 하는 ‘전체주의 체제’(totalitarian regime)로 규정한다. 위의 책, pp.28-29.
 또한 북한은 미국 의회 종교자유위원회에서 발간하는 『국제종교자유보고서』에서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특별관심대상국’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미국 대표는 59차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북한인권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대표단 단장인 커크패트릭은 북한을 “지구상의 지옥”으로 지칭하며 시민들의 인권이 [이보다] 더 가혹하게 유린되는 국가를 상상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커크패트릭은 카터 행정부 당시 매우 제한적으로 이루어졌던 인권외교를 비판하며 미국의 동맹국인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자유화의 요구는 미국에 우호적인 이들 정부를 약화시키고 미국의 이익에 불리하게 작용할 정권을 수립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며 경고한 적이 있다(마상윤, 「미국 신보수주의의 역사적 배경 : 탈냉전에서 이라크전쟁까지」; 남궁곤 편, 『네오콘 프로젝트 - 미국 신보수주의의 이념과 실천』, 사회평론, 2005, p.73).

북한에 대한 미국의 인식은 국무부가 발간하는 『인권 및 민주주의 지원 보고서(Supporting Human Rights and Democracy)』(2003년부터 심각한 인권침해 국가들을 선별하여 분석)를 통해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다른 국가와의 공동대처를 모색하고,
『연례인신매매보고서(Report on Trafficking in Persons)』(2001년부터 발간),를 통해 강제노동수용소의 운영과 인신매매에 대한 북한 정부의 미흡한 대처를 비판하는 것처럼 각종 보고서의 형태로 드러나기도 하고, 의회에서 관련 입법을 제정함으로써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방식, 또는 인권 NGO를 지원하는 것 미국은 이미 2002년와 2003년에 걸쳐 한국의 두 개 NGO 단체에 25만 달러를 지원하였는데, 미국의 인권-외교정책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를 위한 기금’(National Endowment for Democracy)의 지원을 통한 국제적인 NGO와의 협력을 꼽을 수 있다. 그런데 “인권과 민주주의의 신장”을 위한 미국의 외교정책은 경제제재와 봉쇄, 체제전복을 위한 반체제 단체의 조직 및 지원, 무력개입까지를 포함하는 것이다. 북한인권 관련 NGO는 북한자유연합(North Korea Freedom Coalition)이 대표적인데 이 단체는 북한의 인권유린이 계속되는 한 북한에 대한 지원에 반대하고, 북․미 간 협상에서 인권문제를 최우선적으로 다룰 것을 요청한다(김수암, 앞의 책, pp.22-25, 49-56).
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북한인권 관련 입법의 대표적인 것은 작년 만장일치로 제정․통과된 「북한인권법」을 꼽을 수 있는데, 미국이 국내법을 제정함으로써 타국의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해 간섭하는 것은 이미 1990년대부터「쿠바민주주의법」(1992년), 「쿠바자유․민주연대법」(1996년), 「이라크해방법」(1998),「쿠바자유법」(2001년), 「이란민주주의법」(2003년) , 「이란자유․민주주의지원법」(2004년) 등으로 시작된 것이다.
「북한인권법」은 2003년 상정된 「북한자유법」을 손질한 것인데, 2004년 10월 14일 부시 대통령이 최종 서명함으로써 효력을 발휘하였다. 「북한인권법」의 각 조항에 대한 비교․분석과 그 영향에 대해서는 김수암, 앞의 책, 4장을 참조할 것.
 「북한자유법」은 지나치게 공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여기서는 명시적으로 대량살상무기의 개발로 인해 위협받는 미국의 안보가 궁극적으로 북한에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확립, 시장경제로의 근본적 전환이 이루어질 때 보장될 수 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와 선박나포, 선제공격을 포함한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에 대한 남한 및 일본의 참여를 유도한다든가 북한과의 모든 협상에서 수용소 문제와 종교의 자유 등을 제기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상 법안에서 의도하는 것은 북한의 정권교체였고 「북한자유법」의 통과를 위해 국무부와 의회를 상대로 활발한 로비활동을 벌인 허드슨연구소의 마이클 호로비츠(Michael Horowitz)는 대표적인 네오콘으로서 이를 숨기지 않았다. 이에 비해 「북한인권법」은 대량살상무기 관련 조항과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 조항을 삭제하여 보다 온건한 형태로 다듬어졌다고 볼 수 있다. 북한과 함께 미국에 의해 ‘악의 축’으로 규정된 이라크나 이란에 적용된 「이라크해방법」,「이란자유․민주주의지원법」에서는 명시적으로 “민주주의로의 이행”(transition to democracy)를 언급할 뿐 아니라 반체제단체에 대한 군사교육 및 훈련원조(9,700만 달러), 민주적 반체제 단체 지원과 반체제 민주조직의 편성(1천만 달러) 등의 구체적 조치를 담고 있는 것에 비하면 이라크, 이란에 대한 법안과의 비교는 위의 책, pp.63-66 참조.
 「북한인권법」은 아직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북․미 간의 외교적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법안에서는 북한을 이탈한 주민(이른바 ‘탈북자’)을 보호하고 이들에 대해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적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실제로 미국이 이들의 대량입국을 허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법안의
제․개정 과정에서 북한주민들의 미국 입국시 난민 혹은 망명 신청에 대한 특혜를 부여한 조항(박해받는 북한주민들을 특별한 인도적 관심을 갖는 2순위 지정그룹으로 인정, ‘임시망명정책’의 추진, 인도적 임시입국 허가, 18개월 내 신분변경 가능, 난민 신청인에 대한 노동허가)은 9․11테러 이후 미국입국이 보다 엄격해지고 있는 방향을 감안하여 모두 삭제되었다. 일본 역시 재일교포 및 일본인 처와 그 가족에 한하여 수용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미국이 선별적으로 북한주민들을 수용할 가능성은 있다(위의 책, pp.61-62, 84-85). 는 점에서 법안 자체는 상징적인 대북압박의 수단으로 채택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북한인권법」은 기본적으로 법안의 목적을 “민주적 정부체제로의 한반도 평화통일 가속화”한다는 제정목적에서 드러나듯 명시적으로 ‘체제 전환’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북한체제의 변화를 (점진적?) 추구한다고 할 수 있으며 경제제재 등 엄격한 대북협상 조건을 부과하지는 않고 있지만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각종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대북협상시 “주요 관심 요소”(key concern element)로 고려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에 대한 미국의 인도주의적 관심은 언제든지 북한에 대한 미국의 강경한 군사․안보전략의 하위 범주로서 활용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히 열려있다고 할 수 있다.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이나 대북경제봉쇄 등의 강경한 수단이 동원될 가능성은 이미 여러 모습으로 입증된 바 있다. 이번 4차 6자회담을 앞두고 미국은 이라크 전쟁에서 공습을 담당한 전체 F-117 스텔스기의 27%에 달하는 15대를 군산기지에 배치한 바 있고(5월 31일), 대량살상무기와 관련된 것으로 의심되는 북한기업들(조선광업무역회사, 단천은행, 조선룡봉총회사)의 자산을 동결(6월 29일)한 바 있을 뿐 아니라, 2004년에는 확산방지구상을 발표하면서 핵무기의 ‘수평적 확산’(horizontal proliferation; 핵보유국이 늘어나는 것을 가리킴) 핵무기의 확산에는 또한 ‘수직적 확산’(vertical proliferation; 기존 핵보유국들의 핵전력이 강화되는 것을 가리킴)이 있는데, 미국의 반확산 전략은 수평적 확산만을 문제삼고 있으며 스스로는 포괄적핵실험금지협약 부결(1999년), 지하 벙커를 파괴하기 위한 소형 핵무기를 개발하기로 결정(2004년)하는 등 수직적 확산을 주도하고 있다. 또한 미국은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등 핵비확산(NPT) 비회원국들의 핵개발에 대해서는 침묵함으로써 이중적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을 저지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천명하였다. 게다가 지난 7월 21일 발표된 미국 국가안보자문그룹(여기에는 「페리 보고서」를 작성했던 페리 前 대북정책조정관도 포함되어 있다)은 플랜 A와 함께 플랜 B를 제시했는데, 플랜 A가 북한이 핵 및 미사일 프로그램을 폐기하는 대가로 미국은 북한에 대한 불침공을 약속하고 주변국과 함께 경제적 지원을
제공하는 시나리오라면 플랜 A가 실패할 경우, 플랜 B는 봉쇄와 금수조치, 대량살상무기의 생산․배치․실험시설에 대한 폭격을 포함한 무력사용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지난 10월 10일 국정감사를 통해 밝혀진 것처럼여전히 미국과 남한은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을 포함하는 공격적인 군사 시나리오를 여전히 유지하고 개정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언론에 공개된 2003년 11월에 열린 제35차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 회의자료에 따르면, 한국과 미국이 당시에 합의한 전략기획지침에는 ‘작계 5027’의 목적으로서 북한군 격멸, 북한정권의 제거, 한반도 통일여건의 조성으로 설정되어
있으며, 그 해 7월까지 북한의 화생방(운반 능력 포함) 능력과 지휘․통제 체제의 파괴 및 무력화를 목적으로 하는 추가적인 ‘작계 5026’을 보완하는 것으로 나타나있다. 또한 ‘개념계획 5029’를 대비하는데, ‘개념계획 5029’는 북한에서 소요나 내란 등의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시, 주한미군의 주도로 북한 내부에 개입하는 것을 상정하고 있다. 5026․5027․5029을 종합하면 북한의 군사시설에 대한 정밀폭격을 단행하고
이에 맞서 북한군이 남침할 경우 이를 격퇴하고 주한미군의 주도로 북한정권을 전복하고 통일을 달성하는 것이 현재 한국군과 미군의 작전 시나리오라는 점이 명백하다. 국정감사 당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군사기밀임을 내세워 답변을 거부했지만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은 "미국이 도입하는 정밀타격용 첨단무기와 한국이 현재 도입을 추진 중인 F-15K, 공중급유기, 합동정밀직격폭탄(JDAM), GPS 유도폭탄 등은 작전계획 5026에 따른 정밀타격 능력을 갖추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론적으로 미국의 대북정책은 첫째로 ‘불량국갗로서 북한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 둘째 미국 주도의 군사 질서에 대한 도전과 위협에 대한 불용(不容), 셋째, 비록 가상시나리오이기는 하지만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 옵션에 기반하고 있다. 1994년 제네바 합의와 1998년 「페리 보고서」조차도 남한과 미국의 군사적 동맹을 전제한 것이었으며, 실질적인 대북 관계개선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나 해 제정된 「북한인권법」은 명시적으로 이란이나 이라크를 겨냥한 입법과는 달리 ‘북한 민주화’를 담고 있지는 않지만 주요 관심사안으로서 ‘북한인권’에 대한 문제제기는 북한에 대한 미국의 근본적인 목표(‘악의 축’으로서 테러를 지원하고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는 정권의 전복, 즉 ‘체제의 전환’)가 반영되어 있으며,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군사적 수단과 보완적인 관계를 맺는다.


마. 3. 그렇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앞의 내용을 요약해보자. 현재 인도주의 간섭을 제기하는 것은 명백히 중심부 국가들이다. 현재 미국이 내세우는 군사․안보전략은 “민주주의와 인권”를 내세우고 있으며, 유럽연합 국가들은 그동안 유엔인권위원회에서 「북한인권결의안」 발의를 주도하고, 이를 유엔 총회에서 통과시키기 위해 노력해왔다. 지난 11월 17일 유엔 총회에서 84개국의 찬성을 얻어 결국 「북한인권결의안」이 가결된 만큼 ‘북한인권’에 대한 국제적인 비판과 문제제기는 보다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미국과 나토를 포함한 중심부 국가들에게 시장의 질서, 오늘날 금융자본과 금융부르주아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한 예방적이고 선제적인 군사적 수단이 활용되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인도주의적 간섭은 세계 도처에 존재하는 불투명성, 위협과 도전에 대해 중심부 국가들에게 요구되는 불가피한 개입의 논리에 다름 아니다. 또한 북한에 대한 미국의 정책에서는 항상 ‘불량국갗로서 북한에 대한 반대급부를 최소화하려는 미국의 군사적 관심사가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왔다.
그런데 1789년 프랑스대혁명과, 20세기 초 세계적인 민족해방운동들이 다름아니라 민주주의와 권리들을 확장해온 역사적 과정이었다. 이 역사적 경험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러한 역사적 경험과 실천들을 통해 민주주의는 고정불변의 체제나 이념이 아니라 항상 지속적으로 배제와 불평등, 부당한 압제에 항거하는 모든 이들의 보편적 언어로서 자리잡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운동진영에게 중요한 과제는 민주주의와 인권이, 불평등과 빈곤으로 한계에 봉착한 자본주의를 방어하기 위한 중심부 열강들의 침략과 압제의 새로운 전략 속에 자리잡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보편화의 과정을 다시 재개하는 것에 존재한다.
이와 관련하여 제기되는 것이 오늘날 과연 “누가 인간의 권리(Rights of Man)의 주체인가?” Jacques Ranciére, "Who Is the Subject of the Rights of Man?", South Atlantic Quarterly 103:2/3, Spring/Summer 2004.

라는 질문일 것이다. 이러한 질문은 매우 중요한 함의를 갖는데 오늘날 인권은 자신들의 이름으로는 그 어떠한 권리나 요구도 주장할 수 없는 희생자들의 권리로서 나타나고, 결국 이들의 권리는 타인에 의해 뒷받침되고 “인도주의 간섭”이라는 새로운 권리, 즉 (다른 국가를) 침략할 권리로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1789년 “모든 인간들은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났다”고 선언하는「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을 통해 자유와 평등의 원리로서 공동체에 각인된 성문화된 권리를 여성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지 않음을 인식할 수 있었고, 자신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이러한 권리들을 요구하였다(“교수대에 가는 것이 여성에게 허락된다면 그녀들은 마찬가지로 의회에 가는 것도 허락된다”). 하지만 여기서 그녀들의 자유와 평등에 대한 요구는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 그녀들의 권리를 의미한다. 이처럼 인간의 권리는 단지 이미 존재하는 기존의 권리들을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권리들을 건설하고 각인할 수 있는 주체들의 권리를 의미한다.
그러나 인도주의적 상황에서 인권(Human Rights)이 의미는 “그릇된 것”과의 관련 속에서 재사고된다. 바로 절대적이고 구제불가능한 악. 인권은 절대적인 “악”의 “절대적인” 희생자들의 권리인데 비인도적 억압으로부터 고통받는 이들은 인권을 규정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다른 누군가가 이들의 권리를 물려받아야 한다(이른바 “인도주의적 간섭”에 대한 권리의 등장). 희생자들의 권리를 물려받는 이들은 “악의 축”에 맞서는 "무한정의(infinite justice)"와 밀착하여 행하는 것은 사실상 복수이다. 이 “무한정의”의 문제는 내정간섭을 금하는 국제법을 어기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선(Good)과 악(Evil) 사이의 종족적 갈등으로 모든 구분을 지워버린다는 데 있다. 규범과 사실, 법적 제재와 사적 보복 등등(얼마 전 언론에 보도된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비밀 포로 수용소와, 쿠바 관타나모, 그리고 이라크의 아부그라이브를 떠올리는 것으로 충분하다).
따라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도주의 간섭이 전제하는 인권에 대한 관념과의 단절이다. 칼 맑스가 1864년 국제노동자협회 규약의 전문에 “노동자계급의 해방은 노동자들 자신의 작업이어야 한다”고 썼듯이, 피압제자들의 해방은 그들 자신에 의해 쟁취될 수 있을 뿐이다. 여기서 단지 ‘인간으로서의 권리’라는 도식만으로는 인도주의 간섭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특정한 인간이 공동체에서 배제되는 현실에서 인간의 권리는 시민의 권리와 정확하게 동일시될 때 그 의미가 있다. 이는 곧 누구에게나 정치에 대한, 공동체의 의사결정에 대한 보편적인 권리가 있음을 의미한다. E. Balibar, “‘Droits de l'homme' et 'droits du  citoyen': La dialetique moderne de l'égaliberté et de la liberté”, Actuel Marx, no.8(1989)[국역: 「’인간의 권리‘와 ’시민의 권리‘: 평등과 자유의 근대적 변증법」; 에티엔 발리바르 외, 『’인권의 정칼와 성적 차이』, 공감, 2003].
 이러한 권리의 행사는 기존의 인간학적 한계를 깨뜨리는 새로운 정치의 주체들을 형성해왔다. 노예, 여성, 식민지의 다양한 종족과 민족들, 여성, 노동자 등등. 인간의
권리들이 시민의 권리로서 제시될 때, 그것은 사실상 무제한적이며, 무조건적이며, 민주주의를 그 한계로까지 이끌고 가며 현존하는 법의 질서, 기존의 사회질서를 끊임없이 문제삼는 위험한 작업이 된다. E. Balibar, "Qu'est-ce une‘une politique des
droits de l'homme?", Les Frontières de la démocratie: Essais et erreurs, 1981-1991, La Découverte, 1992, pp.238-66[국역: 「’마르크스주의의 전화‘의 전망: 인권의 정치와 정치의 탈소외」; 윤소영 편역, 『알튀세르와 마르크스주의의 전화』, 이론, 1992]. “이는 언제든 구성/헌정(constitution)의 안정성에 대립하지만 구성을 기초지우고 준비한다는 그러한 의미에서 봉기적 행위를 전제한다”.

현재의 위기는 단지 기존의 권리의 목록을 제시하는 것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하며, 한계에 처한 민주주의를 해체하고 새로운 권리를 발명함으로써 다시 형성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새로운 주체들이 기존의 권리를 급진적 확장함으로써 사실상 새로운 권리들을 보편적인 것으로서 제시할 때, 현존하는 체계는 더이상 유지 불가능하다. 구체적으로 언급하자면 민주주의와 인권은 유엔으로 대표되는 국가간 체계, 미국이 주도하는 군사․안보질서의 해체를 전제한다. 한반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가능하다면 남한과 북한에서 동시에 그러한 변혁적 운동들이 동시에 형성되고 교류를 나눈다면 좋겠지만, 그 전망은 지극히 불투명한 것이 사실이며 지금과 같은 미국의 ‘북한인권’에 대한 문제제기와 강력한 군사적 위협의 감축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이다.

 

2005년 12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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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힘]룰라를 위해 울지 마시라 - 제임스 페트라스 (9.25자)

룰라를 위해 울지 마시라: 부패한 노동자정권의 정치학
 국제

기관지노힘  제84호
제임스 페트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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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본인과 윤리에 대해 논할 도덕적 권위를 가지고 있지 않다."
- 룰라 다 실바 대통령, 2005년 7월

부패가 브라질 룰라정권을 초토화시켰다. 노동자당(PT)의 모든 부분이 뇌물, 사기, 표매수, 공금유용, 불법선거자금 보고회피, 일련의 기타 중범죄행위에 연루되었고 이는 5월과 6월 거의 매일 폭로되었다. 룰라의 모든 가장 중요한 최측근 보좌관, 의회지도자, 당내 실세들이 사임하지 않을 수 없었고, 대규모 불법자금의 선거유용, 개인적 착복, 당상근비 지원 등의 혐의로 의회의 조사를 받고 있다. 현재까지 불법혐의 조사에 연루되지 않은 유일한 정치인은 룰라와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이끌어온 백만장자 장관들뿐이다. 심지어 이들 가운데 중앙은행총재(미레일에스)마저 보스톤은행 총재시절 조세포탈과 사기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확실히 백만장자 장관들은 PT출신의 출세주의자들과 달리 공금을 횡령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시장에서 투기를 하거나 노동자·농민을 착취해서 엄청난 돈을 벌었기 때문이다.

PT에 풍토병처럼 만연한 부패의 정치학은 무엇인가? 왜 25년 전 사회운동과 대중투쟁에 기초해 출범한 활동적·민주적·참여적 정당이 금융투기꾼과 농광업의 자본의 지원을 받고 탐욕스런 출세주의 전물가들에 의해 운영되는 부패한 엘리트정당으로 타락했는가?
1990년대 초 PT는 전투적 활동가들을 축출했고, 당의 '운동정당'에서 '선거정당'으로 전환시켰다. 의사결정은 민중회의에서 의회와 정부관료들에게 넘어갔다. PT는 선거전문가와 유급 선거운동원에 의지했고, 언론에 더욱더 의지하게 되었다. 선거정치와 언론캠페인이 중심적 위치를 점하고, 선거운동에 헌신하려는 활동가들의 숫자에 더욱 줄어드는 시점에 더 많은 자금이 필요하게 되었다. 당과 의회의 엘리트들은 공공계약을 대가로 기부금을 확보하기 위해 민가부문 업자들과 관계를 더욱 발전시켰다. 룰라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이런 관행은 더욱 늘어났고, 수천 명의 PT 활동가들은 공직을 차지하면서 개인적 자금원을 발굴하기 시작했다. 룰라의 신자유주의적 의제와 대기업가 및 은행가의 주요경제부처 공직임명은 의회내에서 우파정당의 지지확보를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관행은 민중지향적 사회운동과 노동조합, 특히 공공부문 노동조합에 악영향을 미쳤다.
우파의원들의 지지를 확보하면서 룰라가 직면한 정치적 문제는 이중적이었다. 대부분의 정무직이 선거승리의 결과물을 챙기려는 PT출신들에게 할당되면서, 룰라는 우파에게 공직제안으로 보상할 수 없었다. 둘째 우파는 룰라의 정책과 완전히 일치하지만, 그들은 정치적으로 경쟁관계이며, 대기업의 지지를 얻기 위해 서로 경쟁했다. 우파의 표를 확보하기 위해 룰라의 최측근 보좌관들은 우파 의원들을 매수하는 방법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의원 1인당 월 12,000달러를 룰라정권과 함께 일하는 광고회사를 통해 지불했던 것이다.
PT는 더 이상 좌파성향의 정당이 아니며, 농업자본(농업대부의 90%를 받는), 금융자본(30개월 동안 900억 달러가 부채상환으로 지불되었는데, 이는 1개월 상환액이 교육·의료·농업개혁의 1년 예산보다 많은 액수이다), 광업 및 석유자본의 이해를 추진하는 프로그램을 채택했다. PT를 한데 묶어준 것은 바로 '공직의 후원', 부패와 매수, 착복, 후견주의였다. 정치권력과 신자유주의적 '개인적 치부'의 가치는 영향력 있는 자리를 추구하는 주된 동기가 되었다.

사민당에서 자유당에 이르기까지 우파의 반대는 강령적 차이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야당은 대기업의 기반, IMF, 세계은행, 룰라가 정부측으로 끌어들인 국제금융가들을 재확보하려고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룰라를 위해 울어줄' 주요한 집단은 도시노동자나 농촌의 무산자가 아니라 룰라의 재임기간 동안 수십 억을 벌어들인 은행가, 외국투자가, 백만장자와 투기꾼들이다. <파이낸셜 타임즈>(FT)와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부패조사 때문에 룰라가 반동적인 신자유주의적 의제의 남은 과제를 수행하지 못할까봐 크게 걱정하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즈> 2005년 7월 22일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다. "… 부패스캔들로 월스트리트에서 룰라다실바 씨의 명성을 뒷받침한 그런 종류의 추가적 개혁이 연기될 가능성이 높다. 매일매일 정부는 스캔들로 마비되고 있으며 … 민관자금협력과 중앙은행의 자유권 확대 등의 제안은 뒷전으로 밀려날 것이다."
부패조사와 의회의 '마비' 때문에 룰라는 나머지 공공서비스와 기반시설을 민영화하지 못할 것이며, 중앙은행을 금융가들에게 넘겨주지 못할 것이다(의회로부터 자율성을 더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금융부문과의 통합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공공 민영화'가 예정된 공공부문의 노동자들은 '노동자당'의 부패스캔들 덕분에 고용과 급여, 연금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룰라는 브라질의 신자유주의적 전환을 위한 주요한 동맹자를 잃으면서, PT출신의 장관을 보수당(PC)과 브라질민주운동당(PMDB) 출신의 장관으로 교체하는 등 더욱 오른쪽으로 움직여왔다.

월스트리트와 런던 금융가, IMF의 룰라에 대한 지지 때문에, IMF에 대항하는 군사쿠데타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격언처럼 쿠데타의 가능성은 없다. 룰라정권이 처한 난관에서 최대의 피해자는 토지 없는 노동자운동(MST)이다. MST는 수십 명의 활동가들이 살해당하고 수만 명의 토지점거자들이 추방당하고 룰라가 농업개혁에 대한 모든 약속을 배신했음에도 정부를 지지했었다. 부패스캔들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룰라가 지주와 투기꾼들의 우파정당과의 연합확대를 보다 분명히 했음에도, MST는 '정부흔들기'와 부패에 반대하는 친정부 시위를 조직하는 포섭된 노조 관료들에게 합류했다. MST의 친룰라정책은 무토지 농민들의 투쟁을 심각하게 약화시켰을 뿐 아니라, 야당을 분열시켜 브라질사민당과 자유전선당 등 '구우파'를 강화시켰다. 일부 투기꾼들은 브라질 주식시장에 대한 투자를 줄였지만, 대규모 투자기관들은 여전히 수익률이 높은 브라질 자산에서 높은 이윤을 확보하러 달려들고 있다. 현재 브라질은 18-25%의 세계최고의 이자를 지불하고 있다.

2005년 5% 성장을 자극했던 투기거품은 끝났다. 브라질은 2005년 2%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면, 제조업은 브라질 시장을 값싼 아시아 공산품에 노출시킨 자유시장 정책 때문에 경기침체에 들어갈 것이다. 야당과 언론은 심화되는 부패스캔들을 룰라정권의 핵심까지 추구할 것이지만, 대기업과 은행권은 2006년 선거 이전에 룰라의 퇴진을 선호하지 않는다. <파이낸셜 타임즈> 7월 25일자는 사설에서 룰라의 자유시장정책을 칭찬하면서도, "부패가 발생한 데에 대해 더 책임을 지고 한정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정부를 재편할 것"을 충고하고 있다. 상품호황이 냉각되는 동안, 브라질 레알화는 20%나 평가절상 되었고, 제조업계는 룰라가 섬유재벌이자 국가주도 산업정책과 저이자율의 지지자인 자유당의 알렌카르 부통령이 룰라를 대신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룰라가 대통령직에 남아있을지 아니면 결국 사임해야 할지 여부는 그가 부패스캔들에 얼마나 깊이 연관되어 있는지 여부보다는 그의 사퇴가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에 달려 있다. 어떤 경우이든, 룰라가 사임하든(또는 탄핵 당하든) 아니면 자리에 남아있든, 주요한 투자컨설턴트들은 야당도 룰라가 열렬하게 추진한 화페주의적 신자유주의 정책을 연금축소, 최저임금 동결, 수출농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위해 의회의 표를 매수할 수 있을 정도로 지속할 것으로 예상한다. 한때 독립적·전투적이었던 MST가 부패에 찌든 정권을 방어함에 있어 월스트리트에 가세한 것은 최대의 역설이다. 최소한 은행가들은 이자와 원금에서 1,000억 달러의 수익을 올린 반면, MST에는 4만 명의 쫓겨난 토지점거자들이 있고 20만 가족이 도로주변의 비닐텐트에서 살아가고 있다. 한 은행가가 말하기를, "룰라를 위해 울지 마라, 그는 그들을 위해 말하자만 우리를 위해 일하고 있으니까."

룰라가 더 이상 의원들을 매수, 설득, 포섭 또는 부패시킬 수 없거나 민중을 조종할 수 없고, 더 이상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없을 때, 지배엘리트들은 룰라를 다쓴 콘돔처럼 버릴 것이다.
룰라정권은 재임 30개월 동안 브라질 역사상 수많은 "최초"의 것을 이룩했다.
- 어떤 정부도 그렇게 빨리, 그렇게 심하게 우경화하지 않았다.
- 어떤 여당도 그렇게 많은 당지도부, 의원, 장관, 활동가들이 그렇게 짧은 기간에 부패혐의로 조사를 받을 적은 없다.
- 어떤 정부는 그렇게 짧은 기간 더 많은 외채이자와 원금을 지불한 적이 없다.
- 어떤 정부도 30개월만이 더 많은 백만장자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 어떤 정부도 그렇게 짧은 기간에 빈곤층 유권자들의 환상을 깨뜨린 적이 없다.
룰라정부는 수많은 기록을 세웠지만, 불행히도 그 어떤 것도 자랑할 만한 것이 못된다.

번역 / 원영수| 노동자의 힘 편집위원장
 

2005-09-25 19:53:39


브라질 노동자당(PT)과 룰라정권의 정치적 위기
 국제

기관지노힘  제82호
원영수 노동자의 힘 편집위원장

Dirceu-Lula.jpg Dirceu-Lula.jpg(46 KB)

브라질노동당(PTB) 총재 호베르투 제퍼손의 폭로로 촉발된 브라질 의회사상 최대의 부패스캔들로 룰라정권과 노동자당이 엄청난 정치적·도덕적 타격을 받았다. 제퍼손의 폭로로 룰라정부의 비서실장/총무처장관이자 당과 정부의 실세인 주제 디르세우가 지난 6월 16일 사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디르세우는 이미 1년 전 측근인 왈도미루 디니스의 스캔들로 정치적 타격을 입은 바 있다.
사태는 체신청 횡령·비리혐의로 정치적 위기에 몰린 제퍼손이 이를 디르세우의 음모론으로 역공을 취해 정치폭로를 한 것이다. 그는 6월 6일 상파울로의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와 6월 14일 하원윤리위원회 청문회 증언에서 노동자당(PT)의 재정책임자인 델루비우 소아레스가 자유당과 인민당 의원들에게 매월 3만헤알(12,500달러)을 정기적으로 지급했다고 폭로했다.
이 두 정당은 하원 564석 가운데 100석 정도를 보유하고 있는데, 반정부진영에서 정부지지로 선회하는 대가로 1백만 헤알(40만 달러) 상당의 사례금을 받았다고 한다. 제퍼손 자신도 PT로부터 4백만 헤알을 받았다고 밝혔다. 약속 받은 2천만 헤알의 일부로 PT 당총재 조제 제노이노가 직접 관여했다고 한다(7월 9일 전격 사임함).
주제 디르세우는 야당매수의 총책이었고, 대통령궁의 PT출신 보좌진들 역시 이런 거래에 깊숙이 개입되어 있으며, 특히 피티 사무총장 실비우 페레이라가 2만5천 개 이상의 정부부처 요직을 경매에 붙였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이로써 피티는 다른 부패한 기성정당과 어떤 차별성을 갖지 못하는 또 하나의 기성정당으로서의 이미지가 굳어질 것이다.
이번 부패·매수사건은 룰라정권과 노동자당에게 치명적 타격을 주었지만, 동시에 브라질 의회 내에 만연한 부패의 일각이라는 점에서 브라질 정치권 전체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키고 있다. PT가 광범한 대중적 지지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기대를 배신한 채, 야당의원을 매수하는 관행을 취한 손쉬운 선택은 PT를 돌이킬 수 없는 자멸의 길로 인도하였다. 이는 1980년대 초 노동운동 중심의 반독재민주화투쟁의 성과로 창립된 이래 PT가 가졌던 역사적 정당성과 좌파로서의 정체성의 총파적 파산에 다름 아니다.

PT의 제도화와 우경화의 심화

이번 스캔들로 룰라정부와 노동자당은 심각하게 약화되었고, 이번 정치적 위기는 룰라정부와 PT의 신자유주의 노선 때문에 발생한 모순 때문에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다. 어쨌든 이번 사태로 룰라정부 내부의 우파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지형을 형성할 것이고, 대안정치의 희망으로서 피티의 도덕성과 신뢰성은 심각한 손실을 입을 것이다. 일반대중들에게도 룰라와 PT의 본질이 어떤 변명의 여지없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디르세우의 축출은 정부내의 세력균형을 뒤흔들었고, 비록 룰라가 "썩은 사과"를 도려내고 당을 자정하더라도 룰라정권의 미래는 그다지 밝지 않다. 왜냐하면 디루세우를 축으로 한 룰라정부내 PT 각료진의 영향력은 약화되는 대신, 팔로치와 구시켄으로 대변되는 브라질민사당(PSDB)계 금융자본파의 입김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이는 곧 PT 우경화의 가속화로 이어질 것이다.
룰라의 전임자인 페르디나두 카르도수 대통령의 PSDB는 PT의 이런 우경화를 환영할 것이다. 이유는 한편에서 현정권 하에서 신자유주의노선이 지속되는 가운데 자신들의 주도권을 유지할 뿐 아니라, 룰라와 PT가 가장 취약한 상태에서 2006년 10월 대선을 맞이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보다 전통적인 우파에 속하는 자유전선당(PFL)은 대정부 공세의 수위를 높여 룰라탄핵까지 주장하고 있다.
이런 안팎의 위기로 인해 룰라정부 내에서 팔로치의 영향력과 국제금융독점자본의 지배력은 은 더욱 강화될 것이며, 신자유주의를 뛰어넘는 어떤 정책적 대안도 구조적으로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룰라정부의 지속적 우경화 속에서 PT는 명목상 정권을 장악하고 있지만, 룰라는 사실상 PSDB의 인질에 지나지 않게 되는 구도가 형성될 것이다.

위기관리식 접근의 한계

그럼에도 당은 여전히 디르세우의 손아귀에 있으며, 당대표 제노이노를 제외하면 이번 부패스캔들과 연루된 모든 PT 인사들은 디르세우와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6월 8일 열린 PT 전국집행위 회의는 재정국장 델루비우 소아레스를 의회조사기간 동안 정직시켰을 뿐, 부패 스캔들 당사자들을 옹호했다. 기자회견에서 델루비우는 자기가 단지 심부름꾼일 뿐이라는 식으로 말해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당내 친정부계 좌파(사회주의적 민주주의[DS], 좌파연합[Left Articulation] 등)도 디르세우와 델루비우 등 당권파의 편에 서있다. 이들은 체신청 스캔들이 폭로되었을 때 의회의 조사를 지지하지 않았다. 이들은 현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룰라정부의 신자유주의노선에 반대하는 다른 좌파들은 피티와 연관된 모든 추문에 대한 조사할 것을 전부터 강력히 요구했으며, 사건을 있는 그대로 조사해야 하며, 당에 어떤 피해가 오더라도 정당하게 조사할 것을 촉구하였다.
그렇지만 룰라정부와 PT 지도부의 현실인식과 대응은 당내 좌파의 기대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단지 야당의 정치공세에 대한 위기관리식의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특히, 최근 7월 11일 합법공산당계 노총(CGT) 및 주류 좌파노총(CUT)의 노동조합원 1천명이 참여한 룰라지지집회는 사태를 더욱 호도하는 적나라한 사례이다.
노동자·민중운동의 대중투쟁으로 룰라정부를 압박하여 신자유주의노선을 철회하도록 압박하는 기조는 폐기된 채, 노동운동이 체제내로 포섭되어 총체적 위기에 처한 룰라정부를 구원하는 소방수로 동원되는 경악스런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더욱이 기층조합원의 분노의 대상인 CUT 위원장을 노동부장관으로 전격 기용한 것 역시, 룰라정부가 얼마나 안이한 정세인식을 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위기의 파장과 당 안팎의 좌파

이번 위기는 PT 내부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디르세우식의 실용주의 정치는 일반당원이나 대중들에게 용납하기 힘든 것이며, 이는 역으로 피티 내에서 좌파의 입지가 강화되는 계기로 작동할 수도 있다. 이미 룰라정부 출범시부터 적지 않은 좌파와 진보적 지식인들의 탈당사태로 이어져 온 상황에서, 이번 부패스캔들은 PT의 조직적 위기로 전화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당내좌파 역시 방향성의 혼란과 상호분열 상태에 있어서, 이 기회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지 아직 의문이다.
한편 PT를 탈당한 엘로이사 엘레나의 P-Sol(사회주의와 자유당) 역시 이번 스캔들을 통해 입지를 강화할 수 있겠지만, 현재 페솔의 상태는 유동적이며, 2006년선거에 참여하기 위한 법적 등록과정에 있다. 이들은 이번 부패사태와 관련하여 PT내 좌파와 연대를 모색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엘로이사 엘레나가 2006년 대선에서 좌파의 대안이 될 가능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현재 룰라정부나 피티가 현재의 정책기조를 변화시킬 가능성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좌파의 중장기적 대응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현재 룰라정부의 행보는 PSDB의 복귀로 귀결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중운동의 재활성화와 브라질 좌파지형의 변동을 염두에 둔 좌파의 조직적 대응이 더욱 필요한 상황이다.

선거와 제도정치를 중심에 둔 정치세력화의 총체적 파산

당내외 좌파들 사이에서 새로운 대안으로 여겨지는 엘로이사 엘레나는 "룰라정부가 전정권의 경제정책만이 아니라, 부패마저 흉내내고 있다"고 강력히 비판했다. 1980년대 군부독재에 맞선 민주화투쟁과 노동운동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비종파주의적 정치세력화에 성공했던 브라질 좌파운동의 구심으로서의 노동자당은 1990년대 본격적으로 제도권에 진입하였고, 그 제도권으로의 대장정 끝에 마침내 금속노조 지도자에 불과했던 룰라는 대권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실제로 그의 성공은 한편에서 브라질 노동자-민중투쟁의 성과임과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이른바 현실정치라는 미명아래 타협과 거래, 적과의 동침의 결과였고, 이는 룰라정부의 구성에서부터 그대로 드러났다.
그러나 문제는 현실정치와 실용주의가 전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당의 관료화와 함께 체질화·제도화되었다는 점이다. 제도권진입과 더불어, 당내로 밀려든 수많은 기회주의적 출세주의자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PT의 정체성을 왜곡해왔고, 룰라와 디르세우의 주류 당권파는 이들의 대중성과 득표력을 이유로 당의 지속적 우경화를 조장했다. 디르세우 스캔들에서 드러난 진실의 핵심은 룰라정부와 노동자당이 더 이상 새로운 정치세력화의 모델이 아님이 대중적으로 폭로되었다는 점이다. PT의 허구적 신화로부터 해방되어, 실종된 거리의 정치, 해방의 정치를 복원하기 위한 발본적 자기혁신과 투쟁만이 브라질 노동운동과 좌파운동이 나아가야 할 길이다.
 

2005-08-11 16:3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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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힘]9.11 일본 총선거 (11.10자)

9.11 일본 총선거
 국제

기관지노힘  제87호
김영준 | 노동자의 힘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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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민당 압승, 민주당 참패
9.11 일본의 총선거는 고이즈미와 자민당의 압승과 민주당의 참패로 규정할 수 있다. 선거전 자민당은 249석에서 단독 과반수가 넘는 296석을 확보했고, 민주당은 175석에서 113석으로 격감했기 때문이다. 자민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공명당은 34석에서 31석으로 줄었고, 공산당은 9석으로 유지, 사회민주당은 5석에서 7석으로 늘었다. 나머지 자민당에서 '우정민영화 반대'를 했던 세력들이 만든 당과 무소속도 24석에 이르지만 크게 줄었다.

대통령적수상 고이즈미의 행보
이번 선거는 고이즈미 내각이 주장해왔던 '우정민영화'가 참의원에서 부결된 것을 계기로 고이즈미수상이 중의원을 해산함으로써 치러진 선거이기 때문에 '고이즈미'의 의지과 모두 관철되었던 것이다. 이제 고이즈미는 일본에서는 "대통령적 수상"이라 표현할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잡게 되었다. 사실 자민당의 승리가 아니라 '고이즈미'의 승리이다. '우정민영화'를 개혁의 상징으로 내세우며, 자민당 내부의 반발세력을 제거하면서 이룬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는 지금까지의 "이권분할형의 자민당 지배체계"와 고도성장을 지탱해 왔던 "복지국가형 자본주의"를 구조적으로 전환하여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정책과 그를 실행하는 정치체계로 재편되는 것을 의미한다.
당장 예상되는 '우정민영화'법안의 재상정을 통한 관철만이 아니라 소위 '평화헌법의 개헌'과 '군국주의화'가 추진될 것이고, 일본이 그동안 유지시켰던 각종 복지정책이 후퇴되고 '개혁'이라는 이름아래 전면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이 실시될 것이다.

민주당의 참패의 의미
민주당은 2003년 총선거에 의해 구체화된 '양당구조'를 지향하면서 이번 선거에 '정권채택 선거'라고 주장했지만 결국 이는 패배로 끝났다. 민주당은 스스로를 신자유주의 구조개혁을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세력으로 자임하며 '정권교대'를 전략으로 내놓았다. 그러나 구체적인 사안에서는 자민당의 개혁공격에 대해 방어적인 대응으로 그 차별성을 확보할 수 없었다. 어정쩡한 '우정민영화 대책'과 '공무원 급여 총액 2할 삭감'등의 공약이 이를 말하며, 이는 '신자유주의자와 구사회당계·노조간부출신'이라는 이질적 인물들의 결합이라는 민주당 내부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선거 결과로 민주당은 당내 구사회당계와 '연합'의 노조간부들의 위치는 축소될 것이며, 이는 새로운 당대표의 선출이 말해주는 바이다.

일본 운동진영의 과제
이제 일본은 고이즈미의 독주아래 '우정민영화'를 거쳐 본격적으로 '헌법개정', '연금개악', '대폭 증세'로 이어질 것이다. 여론 조사에 의하면 일본 국민의 다수가 '평화헌법 개정을 반대'하고 있고, 경기침체, 고용불안 등 경제적 불안감과 불만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강력한 리더쉽'을 가진 '고이즈미'를 선택하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 이는 변화를 갈망하고 있으나 사회운동진영이 그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 못한 것을 의미한다. '평화헌법 사수'와 '전쟁반대'의 움직임이 풀뿌리 조직으로부터 광범위하게 움직이고 있지만 그 전망은 불투명한 상태이고 이런 의사를 대변할 정치세력은 더욱 약화되었다.
변화의 강풍속에 일본사회운동은 '평화수호', '전쟁반대', '신자유주의 반대'의 거대 흐름을 조직해야 하는 과제와 새로운 전망을 제시하는 정치세력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런 과제에 대해 우리 또한 자유롭지 못해 어깨가 무거워진다.
 

2005-11-10 19:58:10


독일총선: 신자유주의에 대한 심판과 좌파당의 약진
 국제

기관지노힘  제87호
원영수 | 노동자의 힘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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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8일 독일총선의 결과는 상당히 복잡한 것이었다. 외형상 추락했던 슈뢰더 총리와 사민당은 상당한 수준으로 지지율을 회복하여 최악의 패배를 모면한 반면, 낙승이 예상되었던 앙겔라 메르켈의 기민련·기사련은 선거전의 높은 지지율을 까먹고 사상 두 번째 낮은 득표로 정권창출이 난망한 상황이 되었다. 양쪽의 하위파트너였던 소수정당 자민당은 일정한 성과를 낸 반면, 녹색당은 제자리걸음이었고,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무대에 등장한 좌파당은 첫 총선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슈뢰더의 사민당은 기민련의 졸전에 힘입어 최악의 참패는 면했지만, '하르츠 IV' 법안과 '아겐다 2010' 등 신자유주의로의 선회한 정책에 대한 대중적 심판을 받았다. 반면 슈뢰더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감의 반사이익을 누렸던 기민련은 연이은 실책으로 집권의 기회를 놓쳤다. 기민련의 실수는 상대적으로 자민련의 반사이익으로 귀결되었고, 사민당과 녹색당에 대한 반대는 좌파당의 약진으로 귀결된 양상이다. 그러나 큰 지형에서 보자면 사실상 독일정치는 사민당, 기민련, 녹색당, 자민당 등 4당의 '신자유주의 대연정' 속에서 좌파당이 캐스팅 보트를 쥐게 되었다.

정치적 배경과 선거운동

지난 5월 슈뢰더 정권은 승부수를 던졌다. 실업급여삭감, 연금삭감, 의료보험 부담금인상, 등 하르츠 IV 법안과 아겐다 2010으로 상징되는 슈뢰더의 '제3의 길'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중적 분노로 사민당은 연이어 주의회 선거에서 참패했고, 이와 동반하여 지지율이 바닥을 치면서 사실상 통치불능 상태에 이르자, 예정된 일정을 1년 앞당긴 조기총선이란 초강수를 승부수를 던졌다.
선거운동 초반 기민련은 사민당에 비해 약 24%나 지지율이 앞서 손쉬운 압승을 낙관했다. 그러나 슈뢰더는 선거운동 전략을 대폭수정하여 마치 야당인 것처럼 선거운동을 했고, 그 결과 총선직전에는 기민련을 1∼2% 차이로 추격하는 데 성공했다. 슈뢰더는 좌파의 이탈표와 대중적 분위기를 고려하여 최저임금제 도입 등 대중의 요구에 영합하는 선거운동을 펼친 반면, 메르켈은 세제개혁 및 부가세 2% 추가인상을 주장하여 지지층의 이탈을 촉발했다. 그 결과 유권자들은 상당한 혼란에 빠졌고, 예상지지율은 예측불허의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표: 독일총선결과
기민련·기사련 225석 35.2%
사민당 222석 34.2%
자민당 61석 9.8%
좌파당 54석 8.7%
녹색당 51석 8.1%

선거결과와 연정시나리오

9월 18일 선거는 아무도 승리를 주장할 수 없는 절묘한 결과를 낳았다. 기민련·기사련은 1당의 위치를 차지했지만, 자민당과의 연정으로 과반수를 확보할 수 없었고, 사민당 역시 기존의 적록연정을 재창출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다. 따라서 1) 보수연정: 기민련-기사련-자민당, 2) 대연정: 기민련-사민당, 3) 교통신호등 연정(또는 자메이카연정): 사민당-자민당-녹색당, 4) 적적록 연정: 사민당-녹색당-좌파당 등의 연정시나리오가 제출되고 있다.
그러나 작센주 드레스덴의 한 지역구에서 선거일 전에 한 후보가 사망함으로써 그 지역구의 선거일은 10월 2일로 연기됐다. 공식 선거결과도 10월 2일 발표할 예정이어서 본격적인 연정 협상도 그 이후에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어쨌든 현재의 구도로서는 기민련-사민당을 축으로 하는 대연정 이외에는 유의미한 연정이 없는 상태다. 설사 대연정이 이루어지더라도, 이는 외형상 정치적 파국은 피할 수 있을 뿐, 이미 대중적 저항에 부딪힌 신자유주의적 대연정으로의 복귀라는 유권자의 판단과 정반대되는 결과를 낳는 황당한 사태로 귀결될 수도 있다.


좌파당의 약진 - 과연 독일민중의 희망인가?

이번 선거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대목은 좌파당의 약진이다. 혹자는 전후 독일정치에서 최초로 사민당 왼편의 진짜 야당이 등장했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이번 총선에서 좌파당은 서독지역에서 4.9%, 동동지역에서 25.4%를 득표했다. 각각 2002년 총선시 민사당의 득표에 비해 3.8%와 8.5% 증가한 것으로, 전국평균 8.6%의 득표로 54석을 획득했다. 과거 녹색당이 제도권에 진입하는 과정이나 독일정치의 보수성을 고려하면 그 성장세는 대단히 폭발적인 것이다.
2004년 서독지역의 좌파조직 및 노조내 사민당 탈당파로 구성된 '노동과 사회정의를 위한 선거대안'(WASG)에, 오스카 라퐁텐(Oskar Lafontaine)이 합류하고, 2005년 8월 동독 통일사회주의당의 후신 민주사회주의당(PDS)과의 협상을 통해 좌파당(Linkspartei)을 결성하여 9월 총선에 참여했다. 선거운동은 은퇴 뒤 복귀한 민사당의 그레고르 기지(Gregor Gysi)와 오스카 라퐁텐 쌍두마차로 동서독 양지역을 누비면서 전국정당화에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신생정당 좌파당의 속사정과 미래는 그리 간단한 것은 아니다. 당 전체적으로 이념적 기조는 반신자유주의로 요약할 수 있지만, 명확한 사회주의적 지향을 갖고 있지 않다. 오히려 좌파 케인즈주의로 최소한의 합의수준으로 보인다.
내부적으로 당내 세력관계는 크게, 1) 민사당 다수파(사회주의적 지향, 당기구 장악), 2) 선거대안 다수파(노동조합 출신의 사민주의세력과 사회운동 좌파 중심), 3) 오스카 라퐁텐의 민중주의 그룹(대중적 이미지 제고에 기여, 케인즈주의 그룹), 4) 민사당 소수파(당내 기반은 약하지만, 지방정부에 참여하는 신자유주의 세력), 5) 소규모 좌파 제정파(트로츠키주의 좌파, 구 공산계 좌파 등) 등 5개 그룹 또는 경향으로 구성되어 있다.
앞의 세 세력이 주력을 이루지만, 현단계 반신자유주의와 좌파케인즈주의적 대안(?)을 뛰어넘어 새로운 정치변혁의 주체로서 대중적 정치세력으로 성장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특히 노동조합과의 관계가 관건인데, 공식적으로 좌파당은 노조에 대한 "중립성"을 방침으로 정하고 있다. 그러나 사민당 지지세력에 맞서 노동조합운동의 헤게모니를 장악할 가능성은 아직 취약하다.
또한 선거주의의 한계를 넘어, 사회운동 및 노동자투쟁과 결합하는 새로운 투쟁정당으로 발전할 가능성 역시, 라퐁텐과 기지를 중심으로 한 지도부의 성향을 고려하면 쉽지 않은 발전경로로 보인다. 다수의 소규모 좌파들이 좌파당에 참여하고 있지만, 이들이 좌파당을 견인할 정치적 지도력을 갖춘 것 같지는 않다. 따라서 과연 좌파당이 사민당에 대한 대안적 좌파정치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제도권내 선거정당으로, 또하나의 녹색당으로 전락할 것인가? 이 문제는 여전히 불확실한 미래의 문제로 남아 있다.


독일의 계급투쟁과 정치세력화

2003년 금속노조(IG-Metal)가 동독지역에 대한 주35시간 파업에서 실패하고, 2004년 슈투트가르트 다임러-클라이슬러에서 자본의 해외이전 공세에 굴복하는 등 독일 노조운동은 패배를 거듭했다. 그러나 보쿰의 오펠사, 만하임 알스톰사에서 완강한 현장투쟁을 시발로, 2004년 여름 하르츠 IV 및 아겐다 2010에 대한 대중적 불만이 폭발했다. 6개월간 매주 월요일 전국 220개 도시에서 15만여명이 시위를 벌였고, 연인원 150∼200만명이 참가했다.
그러나 노동조합 지도부의 무기력과 정치적 대안의 부재 속에서 좌파당이 등장하자 대중들은 선거정치를 하나의 대안으로 인식했고, 그 결과가 이번 선거결과로 나타났다. 전체적으로 독일총선의 핵심적 메시지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이었고, 이는 올해 프랑스와 네덜란드에서 신자유주의적 EU헌법 부결투쟁의 승리와 같은 맥락에서 파악해야 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독일의 정치구조와 세력관계는 좌파당의 약진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 공세를 결정적으로 반전시킬 수 있는 세력관계의 변화로까지 나아가지 못했고, 제도정치에서 그 중심에 서게 된 좌파당 역시 대안적 주체로 성장할 가능성을 담보하는 데에는 일정한 한계를 갖고 있다. 사태는 여전히 복잡한 변수에 의해 작동되겠지만, 독일의 노동운동이 계급투쟁의 고리로 작동하면서 선택을 강요받게 될 것이다.
 

2005-11-10 19:5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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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힘]심화되는 미제국주의 위기 (12.8자)

미주정상회담: 전미자유무역협정(FTAA)의 파산
 - 심화되는 미국제국주의의 위기

기관지노힘  제90호
원영수 | 노동자의 힘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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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4∼5일 아르헨티나의 남부 휴양도시 마르델플라타에서 "빈곤과 투쟁하기 위한 고용창출 및 민주정치의 강화"의 기치 아래 모인 제4차 미주정상회의(Summit of the Americas)는 부시의 참패로 끝났다. 부시를 포함, 34개국 서반구(남북아메리카) 정상들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미주정상회의는 2000년 캐나다 퀘벡의 경우처럼 반세계화 노동자·민중운동의 저항에 부딪혔다. 11월 4일 마들델플라타의 거리를 메운 5만 명의 항의 시위행진은 월드컵 경기장에 모여 진정한 라틴 아메리카 민중의 의지를 표출했고, 부시가 추구했던 FTAA의 사망을 선언했다.

라틴 아메리카: 반제국주의 정치의 확산

일찍이 1973년 9월 11일 아옌데 민중연합 정권을 타도한 피노체트 쿠데타를 계기로 시작된 신자유주의 공세를 반세기를 거치면서 남미대륙을 초토화했다. 유엔의 통계에 의하면, 남미의 5억 8천만 인구 가운데 9,600만 명이 월 1달러 이하로 생존하고 있다. 2004년 남미의 경제성장률은 5.5%였지만, 여전히 2억 2천 만 명이 빈곤층에 속한다. 신자유주의 사반세기가 가져온 초라한 성적표이다.
이에 맞서 1994년 사파티스타 봉기이래, 1998년 차베스 정권이 주도하는 볼리바리안 혁명, 2001년 12월의 아르헨티나 봉기, 2002년 6월 페루의 전력민영화 반대 민중봉기, 2003년 10월 볼리비아의 천연가스 국유화를 위한 민중봉기 등 아래로부터 민중투쟁이 폭발하고 있다. 또한 차베스 정권 외에도 2002년 10월 브라질의 룰라, 12월 에콰도르의 쿠티에레스, 2004년 10월 우르과이의 바스케스 등 중도좌파 정권들이 민중투쟁에 힘입어 등장하면서, 쿠바와 베네수엘라를 중심으로 한 라틴 아메리카판 '악의 축'이 구축되어 2세기에 걸친 미국의 정치·경제적 지배에 대한 반제국주의 전선이 구축되고 있다.
이번 미주정상회담은 바로 이렇게 격동하는 정세 속에서 미국 부시정권의 라틴아메리카 정권이 시험대에 오르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미주정상회담: 5 대 29

11월 4일 오후부터 개막된 미주정상회담은 부시와 미국에 대항하는 5개국 블록이 형성되었다. 베네수엘라,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우르과이의 정상들은 남미가 당면한 긴급한 문제인 빈곤과 고용을 위한 구체적 계획을 주장하면서, 부시가 제시한 FTAA 재협상을 강력하게 거부했다. 특히 브라질의 룰라와 아르헨티나의 키르치너는 미국의 농산물 보조금에 대한 미국의 확실한 입장을 요구하면서, FTAA 재협상 카드를 거부했다.
부시와 멕시코의 빈센테 폭스를 중심으로 한 29개국은 5개국을 제외한 새로운 협상을 시도했지만, 5개국의 사실상 라틴 아메리카 인구와 GDP의 절반을 포괄하는 실세 블록이었기에 자유무역협상을 더 이상 강제할 수 없었고, 정상회의는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한 채 끝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아메리카 볼리바르대안'(ALBA)를 주장하면서 원칙적 반대를 주장하는 베네수엘라의 차베스와 조건부 반대를 주장한 브라질의 룰라 간에 일정한 의견차이는 있었지만, 부시정권의 일방적인 자유무역협정 강요에 반대하는 블록의 정치적 승리로 귀결되었다.
전미자유무역협정(FTAA)은 지난 1994년 클린턴 정권에 의해 마이애미에서 출범한 미주정상회담의 핵심의제로서 2005년 1월 시효를 목표로 협상을 진행해 왔다. 그러나 반세계화 운동의 폭발적 성장, 특히 라틴 아메리카에서 무차별적 신자유주의 공세의 결과로 빈곤과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됨에 따라 FTAA 반대운동은 전대륙적으로 확산되었다. 특히 베네수엘라 차베스의 볼리바리안 혁명이 이 FTAA 반대운동과 반신자유주의 전선에 동참하면서 세력관계는 변화했고, 미국의 강제하려는 '마이애미 정신'은 파산했다.

제3차 민중정상회담

11월 1∼3일 서반구 사회운동 네트워크의 주최로 열린 제3차 민중정상회담은 미주정상회담에 대응하는 민중운동의 구심점이었다. 약 600개 풀뿌리운동, 노동조합, 및 정치조직에서 온 5천여 명의 활동가들이 참가했고, 150여 개 패널, 워크숍, 전체회의 등 연인원 12,000여명이 참석하여, FTAA와 미국제국주의에 대항한 라틴 아메리카 민중의 의지를 밝혔다.
개막식에서는 아르헨티나 출신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아돌포 페레스 에스키벨은 연설을 통해 "우리 민중들은 군대를 필요로 하지 않고, 특히 북미에서 온다면 사양한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의료와 교육 자원이며, 죽음이 아니라 삶을 위한 자원을 원한다"고 선언했다.
한편 이번 민중정상회담에는 미주정상회담에 유일하게 제외된 쿠바의 대표단도 300여명이 참여하였다. 또한 폐막식에서는 쿠바 국회의장 리카르도 알라르콘이 연설함으로써, 쿠바혁명에 대한 라틴아메리카의 연대를 재확인했다.

금요일의 반미-반FTAA 투쟁

1월 4일 새벽 수도 부에노스 아이에스에서 디에고 마라도나와 볼리비아 에보 모랄레스, 보스니아 영화감독 에미르 쿠스트리카 아르헨티나 작가이자 의원 미구엘 보나소 등을 태운 전세열차 'Alba Express'가 500km를 달려 마르델 플라타에 도착했다. 차가운 날씨에 비가 뿌렸음에도, 금요일 오전 5만여 명의 시위대가 소개된 마르델 플라타 중심가를 거쳐 3시간 동안 월드컵 축구경기장으로 행진했다.
"부시 반대! 다른 아메리카는 가능하다!"(No to Bush! Another America is possible!)는 슬로건의 결집한 5만 명의 시위는 라틴아메리카 전역의 공동투쟁의 일환이었다. 이날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브라질과 우르과이에서도 마르델 플라타의 투쟁에 연대하는 공동투쟁이 전개되었다. 특히 부시가 11월 5일 방문할 예정이던 브라질에서는 브라질의 반미시위: 수도 브라질리아, 리우데자네이루, 발바도르, 벨렘 등의 도시와 마토그라소두술 주(파라과이 접경지대로 미군배치 예정지)에서 반미시위가 벌어졌다.
월드컵 경기장에 운집한 5만여 명의 대중집회의 중심은 당연히 베네수엘라의 차베스였다. 그는 오후부터 개막되는 정상회담에 앞서 민중투쟁에 동참했다. 차베스는 일성으로 "전미자유무역협정은 사망했다! 우리 아메리카의 민중들이 FTAA를 매장했다"고 선포했다. 신자유주의와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민중들이 결집한 이 곳이 진정한 미주정상회담이라고 덧붙였다.
2시간에 걸친 차베스의 열정적인 연설이 끝난 후에는 쿠바 가수 실비오 로드리게스 및 아르헨티나 가수 빅토르 에레디아 등이 참여하는 라틴 아메리카의 꿈과 사랑, 삶을 노래하는 대중콘서트가 열었다.
한편, 정상회담이 개막되는 시점에 마르델플라타 거리에서는 시가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정상회담 보안을 위해 배치된 8천명의 경찰의 삼엄한 경계에 맞서, 수 백여 명이 돌과 화염병을 던지고 새총을 쏘면서 실력대결을 벌였다. 이들은 반부시 슬로건을 외치면서 경찰과 충돌했고, 시위대는 50여 개 상점을 공격했고 가구와 사무집기를 불태워 바리케이드를 구축했다. 전투 와중에 은행 하나에 화재가 발생했다. 경찰은 50여명의 시위대를 체포했다.
또한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도 경찰에 맞선 가두투쟁이 벌어져 외국계 은행과 맥도널드 등을 시위대가 공격했다. 이번 정상회담에 맞춰, 좌파 노총(CTA)이 FTAA 및 미국제국주의 반대 총파업을 선언했고, 주요 교원노조들도 1일 파업에 들어갔다.

전미자유무역협정의 파산과 반세계화 운동

신자유주의와 자유무역협정의 확산을 아메리카 전대륙에 강제하려던 부시정권의 신자유주의 프로젝트는 이번 아르헨티나 마르델플라타 정상회담에서 다시 한번 파산했다. 이는 라틴 아메리카 전역을 휩쓸고 있는 민중운동의 정치적 승리이다. 부시가 초라한 패자였다면, 차베스는 당당한 승자였다. 그는 미주정상회담에서 라틴아메리카 민중을 대변했고, 실제로 민중투쟁과 함께 했다.
이번 미주정상회담 반대투쟁의 승리는 반세계화운동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1994년 출범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전대륙적 확산을 저지한 것이다. 이는 동시에 9.11이후 확산되는 라틴 아메리카의 반미·반제국주의운동의 성장을 확인하는 것이며, 새로운 민중적 대안의 가능성을 한층 더 강화할 것이다.
또한 이번 12월 홍콩각료회의에서 WTO·DDA를 통해 신자유주의 세계화 체제를 완성시키려는 미국제국주의와 초국적 자본 및 국제금융기구들에 대한 강력한 정치적 압박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번 투쟁은 1999년 시애틀전투, 2003년 칸쿤전투에 이어, 반세계화 민중운동진영이 쟁취한 또 한번의 승리로 기록되어야 한다.
 

2005-12-08 16: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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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투]국제이주자 2억명, 이유는 3D의 차이

국제이주자 2억명, 20년새 2배 늘어
UN 국제이주세계위원회, 각국 이주정책 자유화 및 이주자 권리 보장 촉구
 
현재 전 세계적으로 국제이주자는 2억명에 달하는 등 갈수록 증가추세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국제노동재단 '국제노동동향'에 따르면 UN 국제이주세계위원회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세계이주보고서>에서 전 세계적으로 2억명의 국제이주자가 존재하며 이는 20년 새 2배가 증가한 수치다. UN 통계에 따르면 80~2000년 새 선진국으로의 이주자는 4,800만명에서 1억1천만명으로, 개도국으로의 이주자는 5,200만명에서 6,500만명으로 각각 늘었다.

이들 중 50%가 여성 이주자다. 이들이 본국으로 송금하는 금액은 1,500억 달러로 저개발국 경제에 기여하는 바다 작지 않다는 지적이다.

UN 국제이주세계위원회는 국제 이주가 증가하는 이유로 3D의 차이, 즉 선진국과 저개발국간의 개발 격차(Development), 인구 분포의 차이(Demography), 민주주의의 발전 정도의 차이(Democracy)를 들었다.

선진국가 저개발국간 빈부차가 심화되면서 보다 나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 이주자들이 선진국 등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 또한 선진국의 인구 감소와 노령화는 세계 노동 수요공급의 차이를 메우기 위해 이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국제이주를 세계 경제발전에 최대한 이용하고 이주자들의 권리보호를 위한 국내, 지역, 국제적 노력이 필요한 시기라는 지적이다.

UN국제이주세계위원회는 잘 제도화된 개방적 이민정책을 실시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선진국의 노동력 수요와 저개발국의 노동력 공급간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것이 필요하며 이 과정에서 이주자들의 노동권 등 기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송출국, 유입국, 통과국들의 의무가 국제적으로 부여되고 이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UN국제이주세계위원회는 이주자들이 한 국가의 경제발전 및 사회의 역동성에 기여하는 점을 인식해, 각국 정부는 자국 개발정책에 이주 정책을 반영하고, 지역 및 국제 사회가 이주 정책을 더욱 심도 있고 성실하게 검토하고 이행해 나가야 한다고 권고했다.
 
연윤정 기자  yon@labortoday.co.kr
     
2006-01-09 오전 10:35:20  입력 ⓒ매일노동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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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투]휴전전 일대는 부동산 투기의 마지막 노른자

   
<노동과 세계>

한국 보수우익의 위선과 속물스러움
미국신문에 실린 서울 이북 군사지역 규제완화 기사를 읽어보니

한국에 관한 재미있는 기사가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1월16일자 1면 머리기사로 실렸다. 서울 북쪽 비무장지대에 가까운 접경 지역에 대한 규제가 대폭 풀리면서 개발 바람이 뜨겁게 불고 있다는 게 주내용이다.

이 글을 쓴 제임스 브룩 기자는 개발자들이 들이닥칠 이 지역을 “지난 두 세대 동안 북한의 공격에 대비한 일종의 완충지대이자, 국제적으로 개발이 가장 안 된” 곳으로 묘사했다. 그는 “남한의 경제적 팽창이 심리적 장벽을 무너뜨리면서 오랜 동안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비무장지대의 남쪽 끝자락까지 밀려오고 있다”면서 한나라당 대권주자의 한 명인 손학규 경기도지사의 말을 소개했다. “경기도의 북쪽 지역은 부동산 가격 때문에 정말로 성장하고 있다. … 이곳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면, 어떻게 필립스가 1백억 달러를 투자할 수 있었겠는가.”

“북한 전차가 내려왔던 곳을 남한 불도저가 밀고 올라갈 것”

1면과 8면에 걸쳐 실린 이 기사는 비무장지대를 비롯해 서울 북쪽의 지형을 표시한 지도를 보여주면서 파주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두 세대에 걸쳐 남한 남자들 사이에 최전방 군사도시로 알려져 있는 접경도시 파주는 노동자들이 서울보다 값싼 아파트를 찾음에 따라 2003년 이래 인구가 두 배 늘어 30만에 달하게 되었다. 남한의 수도에서 북쪽으로 향하는 이주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건설 노동자들이 자유로의 너비를 8차로로 두 배 넓히는 중이다. 서울의 지하철은 2008년 이곳까지 연결된다. 파주시의 지도자들은 고속열차인 KTX를 끌어오기 위해 로비를 하고 있다. … 산업단지 세 곳과 인구 15만의 계획도시 한 곳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이 모두 비무장지대 남단으로부터 25킬로미터 안에 자리하고 있다.”

그러면서 제임스 브룩 기자는 “지난 10년 동안 땅값은 열배나 뛰었는데, 이는 서울보다 빠른 것이다”고 지적했다.

기사는 북한의 남침 가능성에 대해선 부정적인 시각으로 일관하고 있다. 남북 사이의 “정치적 긴장완화가 경제적 성과를 낳고 있다”는 표현이 그렇고, “거의 파산한 나라인 북한의 경제규모는 남한의 3%에 불과하다”는 표현도 그렇다. “우리는 북한이 남한을 공격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정달호라는 남한 외교관의 말을 인용한 것도 그렇다. “한반도 평화에 관한 신뢰가 커지고 있다는 신호는 남한 정부가 군용지 140곳에 대한 규제를 철폐하거나 완화한 데서 잘 알 수 있는데, 이 중에는 비무장지대와 서울 사이에 위치한 것들도 포함되어 있다”는 대목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기사는 “북한의 전차가 밀고 내려왔던 협곡을 조만간 남한의 불도저가 밀고 올라가게 될 것”이라는 문장으로 끝난다.

수도 서울의 ‘무장해제’에 침묵하는 보수우익

여기서 짚어볼 문제가 있다. 비무장지대와 서울 북쪽 사이는 어떤 지역인가. 이곳은 군사적인 측면에서 볼 때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을 북한의 침공으로부터 사수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다. 제임스 브룩 기자의 글에 따르면 북한은 “세계에서 세번째로 많은 상비군을 보유하고 있으며, 120만 병력의 절반이 비무장지대에서 150킬로미터 안에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휴전선을 중심으로 북한은 세계 최대규모의 포병부대를 주둔시키고 있다. … 그리고 남한을 방문하는 미국 정치인들은 비무장지대의 남쪽 지대에서 기념촬영을 하면서 이곳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곳’으로 부른다.”

사정이 이러한 데도 남한 정부는 이 지역에 소재한 군사지역에 대한 규제를 철폐하거나 완화했고, 공단과 도시를 짓고 있다. 노무현 정부야 “친북좌파에다 김정일의 하수인”이라서 그렇다 치자. 그런데 더욱 이상한 것은 늘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떠들고 철통같은 국가안보를 부르짖으며 국가보안법 절대사수를 고집하는 한나라당을 비롯한 한국의 보수우익들도 수도 서울이 맞이한 이 희대의 비상사태 앞에서 침묵하고 있다는 점이다.

“수백만을 굶겨 죽인 범죄정권”이자 “호시탐탐 적화야욕에 불타는 전쟁광”인 북한 군대의 바로 코앞에서 ‘개발 열풍’에 들뜨고 ‘땅값 상승’에 눈멀어 스스로 무장해제를 하고 있는 이 희한한 사태에 대해서는 '할 말은 하는 신문'을 자처하는 <조선일보>조차도 사실 보도만 할 뿐이다. “군 보호구역 6천5백만평 해제, 개발사업 활기”라는 환영조의 제목을 달아놓고는 “국방부는 작전환경 변화와 국민재산권 보장을 위해 6522만평에 이르는 군사시설 보호구역을 해제하고 623만평을 통제구역에서 제한구역으로 완화한다고 밝혔다”는 게 요지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가 나가기 불과 일주일 전인 1월6일자 사설에서 국정원이 민간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해 휴가나 외출을 나온 병사들에게 물어본 결과 현역 병사 10명 중 6명이 앞으로 전쟁이 날 가능성은 없다고 믿는다는 조사결과에 시비를 걸면서, 이렇게 썼다.

“지구상 어느 곳보다 첨예한 갈등의 현장에서 복무하는 우리 현역 병사들이 전쟁은 아예 일어나지도 않을 것이라고 믿으면서 ‘의미 없는’ 군복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엄연히 남북을 가로막고 있는 철책선, 북한의 남침이나 붕괴를 상정하고 짜여 있는 군 작전계획, 각종 전술훈련, 북한을 향해 배치돼 있는 수많은 육해공 화력들은 대체 무얼 위해 있다는 말인가. … 북한은 지금도 여전히 최상위 규범인 노동당 강령에서 ‘남한 적화(赤化)’를 지우지 않고 있다. 수십만 정규군을 공격형으로 전진배치하고, 재래식 무기의 40%를 휴전선 가까이 벌여놓고 있다. 이 상황에서 마지막 보루라 할 군의 중추세대가 일방적으로 정신무장을 해제 당해버린 현실을 과연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마음이 무겁다.”

물신에 눈먼 보수우익의 진면목

비무장지대인 휴전선 일대가 역설적이게도 세계에서 가장 중무장된 지역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데 개발의 열풍, 부동산 투기의 바람은 이제 그곳까지도 집어삼키고 있다. 지난 1월13일 국방부가 발표한 6천만평이 넘는 군사지역 규제 철폐·완화 발표는 본격적인 신호탄이다. 서울 이북 지역 어느곳을 가나 군대가 만든 군사시설과 진지를 만날 수 있다. 이제 그 앞뒤로 아파트가 서고 공장이 서고 도로가 난다. 북한군의 탱크를 저지하려 만든 대전차장애물을 비웃듯 그 옆으로 4차선 도로가 뚫리고 있다.

지금 경기도 북부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개발과 건설은 군대에 크고 작은 불편을 초래하며 군사작전에 어려움을 줄 게 틀림없다. 만에 하나 북한군이 남침한다면 남한군의 방어작전에 크게 불리할 것임도 자명하다. 무엇보다 최전방 사단 작전구역 안에서 이뤄지는 개발 광풍을 바라보며 그곳에서 근무하는 젊은 병사들의 다수가 남북 간에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없다고 믿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하다.

수도 서울의 안보 상황이 이러한 데도, 눈만 뜨면 북한의 남침야욕과 군사적 위협을 들먹거리며 민주주의의 발전과 인권의 진보를 가로막던 한나라당과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이 땅의 수구기득권세력이 침묵하고 있는 실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제임스 브룩 기자가 밝혔듯이 “지난 10년 동안 땅값은 열 배나 뛰었”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는 한나라당으로 대표되고, 언론으로는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수구기득권세력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래 줄기차게 부동산 투기를 통한 불로소득으로 부를 축적해 왔는데, 이들에게 휴전선 일대 지역은 그야말로 마지막 노른자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눈앞에서 셀 수 없는 돈들이 왔다갔다 하는데 자신들이 생각해도 터무니없는 북한의 남침 위협이 생각났을 리 만무하다.

사실 한국의 보수우익 가운데는 물신(物神)에 눈이 어두워 휴전선 일대 군사지역 규제 ‘개혁’을 (자신들이 수십년 동안 주장해 온) 북한의 군사적 위협 증대와 남한의 군사적 약점의 노출, 그리고 젊은 병사의 ‘정신무장’ 해이와 연결시켜 생각하지 못하는 우둔한 자들이 많다. 하지만, 한나라당과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보수우익의 엘리트들은 이 문제들의 연결고리를 생각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일부러 침묵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돈과 이권 앞에서는 자신들이 해야 할 말을 못하거나 일부러 안하는 자들, 이런 자들이 한국의 보수우익들이다. 사회라는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데, 이래서 우리 사회가 이토록 어려운 지도 모른다.
윤효원 본지 국제담당 객원기자 
2006-01-19 오후 4:23:41  입력    ⓒ매일노동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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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투]민노당-민주노총, 영국모델과 유사

   

대기업 노동조합을 위한 '변명'
당내선거 맞은 민주노동당, 노동조합과의 관계 제대로 풀어야

민주노동당 내부가 어수선하다. 당대표를 비롯해 새로운 ‘지도부’를 뽑는 당내 선거가 진행 중이라 그렇다. 2005년 4월 총선에서 10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한 뒤 임기를 시작한 최고위원회가 자기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자진 사퇴해 이뤄지는 당내 경선이라 ‘축제’ 분위기가 되지 못하는 게 어수선함의 가장 큰 이유인 듯하다. 물론 그 바탕에는 지난 총선 이후 (혹은 그 이전부터) 점차 물과 기름처럼 되어가는 민주노동당과 보통 당원 사이, 그리고 민주노동당과 국민 대중 사이의 관계가 자리잡고 있다.

민노당, ‘이슈’가 문제인가 ‘행태’가 문제인가

'통합형' 대표를 선출했던 지난번과 달리, 이번 당내 선거에서는 민주노동당의 내부 권력을 나누고 있는 NL과 PD라는 양대 정파가 각자의 대표 후보를 냈다. 여기에 한 정파가 미는 대표 후보와 80년대 이후 상당 기간 같은 정파에 속했던 분이 ‘정파로부터의 독립’을 내세우며 대표 후보로 나섰다. 당 지도부의 미숙과 지도력 부재, 기간 활동가들의 경험과 역량 부족, 지지율의 지속적인 하락, 울산 북구 보선 패배, 지도부 사퇴 등으로 이어지는 ‘위기’ 상황에서 민주노동당 내부의 정파들이 통합 지도부를 내지 못하고, 당권을 놓고 다툼에 들어간 게 모양새가 영 좋지 않다.

지도력이 제대로 확립되어 있고, 조직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며, 실무자들이 갖고 있는 경험과 역량이 풍부한 조건에서도 당권을 둘러싼 지나친 경쟁은 당 조직의 발전에 해를 입힐 수 있다. 그렇지 못한 작금의 상황을 생각할 때 당내 경선의 ‘열기’가 더해갈수록 민주노동당의 앞길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당권 경쟁이 80년대 중반에 형성된 한물간 이데올로기의 유산에 서있다면야 더더욱 그러하다.

21세기로 접어든 지 6년째를 맞이하는 데도 80년대 중반에 형성됐던 NL과 PD라는 낡은 대립구도가 ‘운동 세계’의 뒷덜미를 낚아채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현실 변화에 눈감고 보통 사람의 정서와 유리된 NL과 PD라는 정파 간 대립은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에는 대학 학생회 선거판을 좌우하면서 학생운동을 ‘정리’하더니, 90년대에는 노동조합 선거판을 문란케 하면서 얼마 전 내셔널센터의 대의원대회를 폭력으로 얼룩지게 했다. 그리고 21세기에는 드디어 (당분간은 이 땅에서의 마지막 시도가 될 수도 있는) 진보정당의 선거판까지 어지럽히고 있다.

당내 경선에서 당대표를 NL이 잡든 PD가 잡든, (지도부와 실무자 모두 경험과 역량이 크게 부족하고 당조직 일선기관과 활동가들의 상태가 일하는 사람들의 정서와는 크게 유리되어 있는) 민주노동당의 행보가 지금까지와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가보안법이 이슈가 됐든, 비정규직이 이슈가 됐든, 부유세가 이슈가 됐든지 간에 엄동설한에 국회 앞에 천막을 치고 하는 ‘철야농성’ 방식으로 대표되는 민주노동당의 정치 행태는 똑같을 것이기 때문이다.

당과 노조의 관계 설정 문제

최근 일간지를 통해 이번 당대표 경선에 나선 “세 후보가 당의 최대지지 기반인 민주노총과의 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다. “당 대의원·중앙위원 안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민주노총의 비중도 줄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는 전언이다.
사실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관계 재정립 문제는 민주노동당이 아닌 민주노총 내부에서 먼저 제기됐는데, 그때는 민주노동당이 창당된 2000년과 2004년 총선 사이다. 이 시기에 지금은 한국 정치사의 에피소드로 전락해버린 개혁당을 지지했던 소수세력은 민주노총이 민주노동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고, 이른바 ‘범좌파’를 지지했던 일부 세력 역시 똑같은 주장을 했었다.

이 논란이 잦아든 때는 2002년 대선에 즈음해서였고, 확실하게 정리된 때는 2004년 1월 민주노총에 이수호 집행부가 들어서면서부터였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창당 이후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라는 공든 탑이 무너질까봐 노심초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가 민주노동당의 조기 궤도 안착과 2004년 총선 성공의 숨은 공로자임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작금의 관계 재설정 문제가 민주노동당 내부에서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기업노조 간부와 민주노총 임원의 비리사건으로 당 지지율이 타격을 입었다는 판단이 직접적인 원인인 듯하나, 현 시기(!) 민주노총과의 관계를 둘러싼 민주노동당 (그리고 민주노총) 내부 정파들의 이해관계도 배경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작년초까지만 해도 민주노동당의 입장에서 “전체 당원의 40%가 민주노총 조합원”이라는 설명이 당 정체성의 근거였으나, 불과 한해 사이에 민주노총의 존재는 떼어내야 할 혹처럼 다뤄지고 있다. 민주노동당 내부의 이런 분위기는 당 부설연구기관인 진보정치연구소가 “대기업노조를 한국 사회 위기 10대 주범의 하나”로 지목한 데서 절정에 이르렀다.

영국노동당의 노동조합 ‘입김 빼기’ 경험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관계는 당이 노동조합(노총)을 만든 스웨덴 모델보다는 노동조합이 당을 만든 영국 모델에 가깝다. 영국 모델의 경우 노동조합이 당을 만들다 보니 당에 대한 노동조합의 영향력이 엄청났고, 결과적으로 당이 급격히 ‘우경화’ 하는 것을 막는 안전판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당에 대한 노동조합의 입김을 약화시키길 원하는 그룹이 생겨났다(그 대표적인 사람이 영국 일류대학인 옥스퍼드대학 출신의 변호사인 토니 블레어 현 영국 총리다). 역사적으로 이들 그룹은 노동조합의 권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고, 마침내 1993년 전당대회에서 기존의 당헌규정으로 보장되던 노동조합의 블록투표제를 폐지해버렸다.

블록투표제는 전당대회의 안건에 대해 특정 노조 안에서 찬성 600표, 반대 400표가 나오더라도, 노조 위원장은 전당대회에서 노조원 전체의 표(즉 투표에 참가한 1,000표+투표에 참가하지 않는 노조원)를 찬성표로 던지게 되는 제도를 말한다. 1993년 전당대회의 결정으로 전당대회에서 노동조합 내부의 찬반 투표수는 그대로 계산되고, 노동조합이 전당대회에서 차지하는 투표권을 당원의 규모와 관계없이 70%로 제한하게 되었다(영국 노동당 당원에서 노조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9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이후로도 영국 노동당은 노동조합의 정치헌금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과 당원의 대부분이 노동조합원인 상황을 바꾸기 위해 개인당원을 증가시키고 당비를 기업인과 독지가의 기부금, 개인당원의 당비 등으로 다양하게 조달하는 사업을 벌여 왔다. 그 결과 이전과 비교할 때 노동조합의 입김은 많이 빠졌고, 영국 노동당은 ‘대중적 계급정당’에서 ‘국민정당’으로 바뀌게 되었으며, 당 지도부의 권한은 크게 강화되었다.

‘자주’와 ‘평등’, ‘고립’과 ‘평균’?

정당은 정파조직일지 모르나, 노동조합은 대중조직이다. 만약 정당이 노동자들에 기반한 계급적 대중정당을 지향한다면 노동조합은 그 당의 가장 기본이 되는 단위이다. 한국의 노동운동은 대기업노조주의에 기반하고 있는데, 상대적으로 중소기업 사업장이 많은 한국노총보다 민주노총이 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민주노동당이 짧은 시기 안에 비약적인 성장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대기업노조가 가진 풍부한 자원과 인력이 자리잡고 있다.

더군다나 민주노총에 소속된 산별조직이나 대기업노조는 사회경험이 없는 20대나 30대가 다수인 민주노동당 활동가들이 갖고 있지 않은 인적 풀(pool)을 갖고 있다. 이들은 한 직장에서 일하는 평범한 노동자로, 또 가정을 가진 보통의 가장으로, 대중의 바다에서 대중과 더불어 살아 왔다. 다만 이들이 접촉하는 상당수의 대중이 대기업노동자들일 뿐이다.

민주노총에 거리를 두는 대신에 민주노동당의 당대표 후보로 나선 세 명의 후보 모두 비정규노동자를 당이 끌어안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혹자는 ‘비정규센터’를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찬란한 투쟁의 역사를 갖고 있는 민주노총조차 제대로 끌어안지 못하는 비정규직들을 민주노동당이 끌어안을 수 있을런지는 의문이다. 솔직히 말해 활동가들의 수준·경험·역량이라는 측면에서 대중운동의 성과조차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못한 민주노동당의 현재 실력에서 불가능한 이야기다.

현재의 조건에서 민주노동당이 ‘민주당’이 아닌 ‘노동당’을 지향한다면, 노동조합을 잘 알고 관련 경험을 많이 가진 이들이 지도부에 많이 당선되어야 할 것이다. 이번에 당대표 경선에 나선 어느 후보는 “민주노총이 민주노동당의 어머니”라고 표현했다. 올바른 말이다. 여기에 이런 말을 보탰다면 더 올바른 말이 됐을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어머니 품을 떠나기에는 아직 너무 어리고 약하다”고.

아름다운 가치인 ‘자주’와 ‘평등’을 ‘고립’과 ‘평균’으로 전락시키지 않기 위해선 민주노동당이 치러야 할 비용은 아직은 많은 게 분명해 보인다.
윤효원 본지 국제담당 객원기자 
2006-01-12 오후 1:30:59  입력    ⓒ매일노동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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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투]2006년 프로그램, 리스본 전략

   

유럽 노동법제 현대화 등 검토
유럽집행위원회 2006년 프로그램 발표

유럽집행위원회는 ‘유럽의 잠재력을 깨우기 위해’라는 2006년 프로그램을 발표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해외노동동향’에 따르면 이 프로그램은 유럽이 직면한 문제가 무엇인지 명확히 해야 한다며, 유럽이 지금과 같은 호황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현대화가 필수임을 강조한 것이다. 고용과 관련해서 경제성장을 촉진시키고, 보다 나은 보다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을 중점적으로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2006년이 개정된 리스본전략(고용창출과 성장)을 현실화하는데 고비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를 구체적으로 보면, 기술과 지식이 새로운 일자리 창출과 지속적인 경제성장의 핵심요인이라고 강조하는 한편 노동자들의 지리적, 직업적 이동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 유럽의 고령화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힘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선 불법체류자를 단속하는 것이 최우선적으로 다뤄야 할 문제라며 이주노동자를 EU차원의 불법체류자 단속 공동정책을 세울 것을 건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밖에 노동법제를 현대의 흐름에 맞춰 검토, 정부 견해를 발표하고, 성평등을 증진시키기 위해 ‘평등하고 민주적인 사회 속에서의 성장, 번영 그리고 연대 : 남녀간의 평등을 위한 로드맵’이라는 의견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또한 노동과 보건, 안전정책을 쇄신 및 보강하기 위한 의견서도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리스본전략(또는 리스본아젠다)은 지난 2000년 3월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서 유럽연합(EU) 15개국 정상들이 합의, 서약한 유럽의 장기적인 발전전략이다. 유럽통합을 완성할 계획으로, 2010년까지 3%대의 경제성장률과 70%대의 고용률, 금융 및 유통 등의 서비스시장 통합을 이룩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연윤정 기자  yon@labortoday.co.kr
2006-01-03 오후 12:00:19  입력    ⓒ매일노동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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