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8일 독일총선의 결과는 상당히 복잡한 것이었다. 외형상 추락했던 슈뢰더 총리와 사민당은 상당한 수준으로 지지율을 회복하여 최악의 패배를 모면한 반면, 낙승이 예상되었던 앙겔라 메르켈의 기민련·기사련은 선거전의 높은 지지율을 까먹고 사상 두 번째 낮은 득표로 정권창출이 난망한 상황이 되었다. 양쪽의 하위파트너였던 소수정당 자민당은 일정한 성과를 낸 반면, 녹색당은 제자리걸음이었고,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무대에 등장한 좌파당은 첫 총선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슈뢰더의 사민당은 기민련의 졸전에 힘입어 최악의 참패는 면했지만, '하르츠 IV' 법안과 '아겐다 2010' 등 신자유주의로의 선회한 정책에 대한 대중적 심판을 받았다. 반면 슈뢰더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감의 반사이익을 누렸던 기민련은 연이은 실책으로 집권의 기회를 놓쳤다. 기민련의 실수는 상대적으로 자민련의 반사이익으로 귀결되었고, 사민당과 녹색당에 대한 반대는 좌파당의 약진으로 귀결된 양상이다. 그러나 큰 지형에서 보자면 사실상 독일정치는 사민당, 기민련, 녹색당, 자민당 등 4당의 '신자유주의 대연정' 속에서 좌파당이 캐스팅 보트를 쥐게 되었다.
정치적 배경과 선거운동
지난 5월 슈뢰더 정권은 승부수를 던졌다. 실업급여삭감, 연금삭감, 의료보험 부담금인상, 등 하르츠 IV 법안과 아겐다 2010으로 상징되는 슈뢰더의 '제3의 길'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중적 분노로 사민당은 연이어 주의회 선거에서 참패했고, 이와 동반하여 지지율이 바닥을 치면서 사실상 통치불능 상태에 이르자, 예정된 일정을 1년 앞당긴 조기총선이란 초강수를 승부수를 던졌다.
선거운동 초반 기민련은 사민당에 비해 약 24%나 지지율이 앞서 손쉬운 압승을 낙관했다. 그러나 슈뢰더는 선거운동 전략을 대폭수정하여 마치 야당인 것처럼 선거운동을 했고, 그 결과 총선직전에는 기민련을 1∼2% 차이로 추격하는 데 성공했다. 슈뢰더는 좌파의 이탈표와 대중적 분위기를 고려하여 최저임금제 도입 등 대중의 요구에 영합하는 선거운동을 펼친 반면, 메르켈은 세제개혁 및 부가세 2% 추가인상을 주장하여 지지층의 이탈을 촉발했다. 그 결과 유권자들은 상당한 혼란에 빠졌고, 예상지지율은 예측불허의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표: 독일총선결과
기민련·기사련 225석 35.2%
사민당 222석 34.2%
자민당 61석 9.8%
좌파당 54석 8.7%
녹색당 51석 8.1%
선거결과와 연정시나리오
9월 18일 선거는 아무도 승리를 주장할 수 없는 절묘한 결과를 낳았다. 기민련·기사련은 1당의 위치를 차지했지만, 자민당과의 연정으로 과반수를 확보할 수 없었고, 사민당 역시 기존의 적록연정을 재창출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다. 따라서 1) 보수연정: 기민련-기사련-자민당, 2) 대연정: 기민련-사민당, 3) 교통신호등 연정(또는 자메이카연정): 사민당-자민당-녹색당, 4) 적적록 연정: 사민당-녹색당-좌파당 등의 연정시나리오가 제출되고 있다.
그러나 작센주 드레스덴의 한 지역구에서 선거일 전에 한 후보가 사망함으로써 그 지역구의 선거일은 10월 2일로 연기됐다. 공식 선거결과도 10월 2일 발표할 예정이어서 본격적인 연정 협상도 그 이후에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어쨌든 현재의 구도로서는 기민련-사민당을 축으로 하는 대연정 이외에는 유의미한 연정이 없는 상태다. 설사 대연정이 이루어지더라도, 이는 외형상 정치적 파국은 피할 수 있을 뿐, 이미 대중적 저항에 부딪힌 신자유주의적 대연정으로의 복귀라는 유권자의 판단과 정반대되는 결과를 낳는 황당한 사태로 귀결될 수도 있다.
좌파당의 약진 - 과연 독일민중의 희망인가?
이번 선거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대목은 좌파당의 약진이다. 혹자는 전후 독일정치에서 최초로 사민당 왼편의 진짜 야당이 등장했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이번 총선에서 좌파당은 서독지역에서 4.9%, 동동지역에서 25.4%를 득표했다. 각각 2002년 총선시 민사당의 득표에 비해 3.8%와 8.5% 증가한 것으로, 전국평균 8.6%의 득표로 54석을 획득했다. 과거 녹색당이 제도권에 진입하는 과정이나 독일정치의 보수성을 고려하면 그 성장세는 대단히 폭발적인 것이다.
2004년 서독지역의 좌파조직 및 노조내 사민당 탈당파로 구성된 '노동과 사회정의를 위한 선거대안'(WASG)에, 오스카 라퐁텐(Oskar Lafontaine)이 합류하고, 2005년 8월 동독 통일사회주의당의 후신 민주사회주의당(PDS)과의 협상을 통해 좌파당(Linkspartei)을 결성하여 9월 총선에 참여했다. 선거운동은 은퇴 뒤 복귀한 민사당의 그레고르 기지(Gregor Gysi)와 오스카 라퐁텐 쌍두마차로 동서독 양지역을 누비면서 전국정당화에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신생정당 좌파당의 속사정과 미래는 그리 간단한 것은 아니다. 당 전체적으로 이념적 기조는 반신자유주의로 요약할 수 있지만, 명확한 사회주의적 지향을 갖고 있지 않다. 오히려 좌파 케인즈주의로 최소한의 합의수준으로 보인다.
내부적으로 당내 세력관계는 크게, 1) 민사당 다수파(사회주의적 지향, 당기구 장악), 2) 선거대안 다수파(노동조합 출신의 사민주의세력과 사회운동 좌파 중심), 3) 오스카 라퐁텐의 민중주의 그룹(대중적 이미지 제고에 기여, 케인즈주의 그룹), 4) 민사당 소수파(당내 기반은 약하지만, 지방정부에 참여하는 신자유주의 세력), 5) 소규모 좌파 제정파(트로츠키주의 좌파, 구 공산계 좌파 등) 등 5개 그룹 또는 경향으로 구성되어 있다.
앞의 세 세력이 주력을 이루지만, 현단계 반신자유주의와 좌파케인즈주의적 대안(?)을 뛰어넘어 새로운 정치변혁의 주체로서 대중적 정치세력으로 성장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특히 노동조합과의 관계가 관건인데, 공식적으로 좌파당은 노조에 대한 "중립성"을 방침으로 정하고 있다. 그러나 사민당 지지세력에 맞서 노동조합운동의 헤게모니를 장악할 가능성은 아직 취약하다.
또한 선거주의의 한계를 넘어, 사회운동 및 노동자투쟁과 결합하는 새로운 투쟁정당으로 발전할 가능성 역시, 라퐁텐과 기지를 중심으로 한 지도부의 성향을 고려하면 쉽지 않은 발전경로로 보인다. 다수의 소규모 좌파들이 좌파당에 참여하고 있지만, 이들이 좌파당을 견인할 정치적 지도력을 갖춘 것 같지는 않다. 따라서 과연 좌파당이 사민당에 대한 대안적 좌파정치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제도권내 선거정당으로, 또하나의 녹색당으로 전락할 것인가? 이 문제는 여전히 불확실한 미래의 문제로 남아 있다.
독일의 계급투쟁과 정치세력화
2003년 금속노조(IG-Metal)가 동독지역에 대한 주35시간 파업에서 실패하고, 2004년 슈투트가르트 다임러-클라이슬러에서 자본의 해외이전 공세에 굴복하는 등 독일 노조운동은 패배를 거듭했다. 그러나 보쿰의 오펠사, 만하임 알스톰사에서 완강한 현장투쟁을 시발로, 2004년 여름 하르츠 IV 및 아겐다 2010에 대한 대중적 불만이 폭발했다. 6개월간 매주 월요일 전국 220개 도시에서 15만여명이 시위를 벌였고, 연인원 150∼200만명이 참가했다.
그러나 노동조합 지도부의 무기력과 정치적 대안의 부재 속에서 좌파당이 등장하자 대중들은 선거정치를 하나의 대안으로 인식했고, 그 결과가 이번 선거결과로 나타났다. 전체적으로 독일총선의 핵심적 메시지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이었고, 이는 올해 프랑스와 네덜란드에서 신자유주의적 EU헌법 부결투쟁의 승리와 같은 맥락에서 파악해야 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독일의 정치구조와 세력관계는 좌파당의 약진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 공세를 결정적으로 반전시킬 수 있는 세력관계의 변화로까지 나아가지 못했고, 제도정치에서 그 중심에 서게 된 좌파당 역시 대안적 주체로 성장할 가능성을 담보하는 데에는 일정한 한계를 갖고 있다. 사태는 여전히 복잡한 변수에 의해 작동되겠지만, 독일의 노동운동이 계급투쟁의 고리로 작동하면서 선택을 강요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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