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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수요모임 리더 박형준

[뉴리더]‘자유와 연대’ 깃발 든 학구적 정치인

뉴스메이커 653호

좌파 이론가에서 ‘우파적’ 실천가로… ‘수요모임’ 이끌며 패러다임 전환 모색



박형준 한나라당 의원은 정계의 많은 학자·논객 가운데서도 특히 학구적 이미지가 강한 정치인이다. 한나라당 원내 소장파 토론모임인 새정치수요모임(이하 수요모임)을 이끌고 한 달에 10차례 이상 세미나·강연에 나가는 등의 왕성한 ‘학구적 정치활동’이 그런 느낌을 갖게 하는 요소 중 하나일 것이다.

새로운 리더십은 웅변으로 대중을 사로잡고 세력으로 권력을 거머쥐는 과거의 방식으로 나오는 게 아니다. 다원화한 사회의 복잡한 흐름을 읽어내고 그 토대 위에서 국가 발전을 위한 창의적인 비전과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국민적 동의를 얻어내고 실행하는 과정이 민주적이어야 한다.

이런 정치는 확고한 소신과 큰 목소리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시대의 복잡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이를 설득력 있게 정리해 널리 확산시킬 수 있는 ‘능력’도 필요할 것이다.

박형준 의원은 이 점에서 뉴리더십의 또 다른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만하다. 정치인으로 변신한 뒤에도 학자적 관점에서 사회 변화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 하고 있고, 그런 ‘고급스러운 지적 고민’을 정치권이 공유하도록 하는데 누구보다 적극적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 의원은 동아대 교수 출신이다. 정치사회학을 전공한 학자로서 학계에 있을 때 사회 패러다임 변화를 집중적으로 탐구한 경력이 있다. 박사학위 논문이 우리 사회의 지식근로자층을 포착하고 처음으로 이론화한 점에서 눈길을 끈 ‘자동화에 의한 노동과정의 변화’다. 지금도 진보학계와 정치권의 중요한 논제가 되고 있는 ‘87년체제 논쟁’에 일찍이 불을 붙인 학자가 바로 박 의원이다.

좌파 소장학자였던 박 의원이 ‘우파적’ 정치인이 된 것은 치열한 학술적 고민과 논쟁의 결과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변화와도 맥을 같이 하고 있어 흥미롭다. 그는 1959년 12월 21일생이다(호적에는 1960년 1월 19일로 돼 있다). 고려대 사회학과 78학번으로, 긴급조치 9호 세대 막내그룹에 속한다.

시대상황은 문학청년이던 그를 사회학도로, 다시 정치인으로 만들었다. 원래 문학을 하려고 사회학과에 갔다가 그 길을 끝까지 가게 됐다고 할까. 대학 3학년 때인 1980년 교지 ‘고대문화’ 편집장을 지냈다. ‘서울의 봄’ 때는 당시 복학생협의회장인 박계동 의원이 이끄는 시위대의 맨 앞줄에 섰다가 최루탄 유탄에 맞아 오른쪽 각막이 파열되기도 했다.

시대상황에 흘러간 학창시절

뒷날 민청련과 연결되는 소그룹 ‘호민회’에서 활동하던 그는 졸업 후 노동운동이 아니라 대학원을 택했다. 현장 활동보다는 이론적 지향이 더 강했기 때문이다. 잠시 중앙일보에 몸담기도 했으나 1986년 박사과정에 들어간 뒤부터는 재야 학술운동에 헌신했다. 당시 진보학계에서 불붙은 여러 사회과학 논쟁에 참여해 소장논객으로 두각을 나타냈고 민중당 강령을 기초하는 데도 참여했다. 박 의원은 “그때의 민중당 강령이 지금의 민주노동당 강령보다 더 우파적이었다”고 평가한다.

박 의원이 본격적으로 ‘신사고’를 제창한 것은 1989년부터였다. 사회주의 몰락 후 우리 시민사회가 사회주의가 아닌 다원적 참여민주주의로 전환해야 한다고 보아서였다. 운동권 전체의 사고의 전환을 주장한 것이다. 물론 운동권으로부터는 ‘개량주의자’ ‘변절자’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패러다임 전환은 박 의원의 학술적 과제이자 정치적 꿈이 됐다. 동아대 교수 시절 매달린 연구 주제가 ‘국가의 미래 비전과 시민사회의 역할’이었다. 중도에 김영삼 정부의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에 참여한 것도 그 연장선상에서 이뤄진 일이었다. 그간의 여러 논쟁에서 운동권이 정보화·세계화라는 새로운 경향에 눈뜰 것을 일관되게 주장하던 터였다. 당시 김 대통령이 발표한 ‘세계화 구상과 전략’의 최종 집필자가 바로 박 의원이다.

2004년 총선에 참여하면서 정치에 뛰어든 명분도 패러다임과 관련이 있다. 박 의원은 “앞으로 5년간 한반도에 감당할 수 없는 변화가 닥칠 수 있다”면서 “이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면 선진화의 문턱에서 주저앉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정치권에 들어가 새로운 국가발전 세력을 모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민중당 강령 기초 닦은 논객

대통령 탄핵의 후폭풍으로 위기에 처한 한나라당에 입당한 박 의원은 ‘뉴한나라당’ 비전과 강령을 만드는데 일조했다. 수요모임에 참여해서는 ‘뉴라이트’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한나라당이든 열린우리당이든 ‘정쟁세력’이 아닌 새로운 국가경영 세력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박 의원이 볼 때 지금의 정치권은 신화와 전통을 먹고사는 ‘과거세력’에 머물러 있다. 한나라당은 산업화의 신화와 반공·자유주의 전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역시 민주화의 신화와 그 테두리에 맴돌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세력이다. 민주노동당은 사회주의의 신화, 민주당과 국민중심당은 지역주의의 틀 속에 갇혀 있는 양상이다.

어떻게 하면 한국 정치가 과거세력에서 ‘미래세력’으로 전환할 수 있을까. 바로 한국 정치 전체의 고민이자 한국 정치의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게 박 의원의 생각이다. 그가 설정한 국가 아젠다는 선진화, 통일, 양극화 해소다. 정치세력은 이런 중요한 국가 아젠다에 대한 의지나 규범 수준이 아니라 능력을 보여주는 집단이 돼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즉 이 3가지 축을 누가 미래지향적 비전과 정책을 가지고 제대로 풀어갈 수 있느냐의 경쟁으로 가는 것이 우리 정치권의 미래세력화이자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얘기다.

박 의원은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가치를 ‘자유’로 삼고 있다. 그런데 조건이 있다. 자유의 가치를 신봉하는 세력은 연대(박 의원은 ‘평등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 이유는 자칫 획일적 평등으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의 가치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권이 연대의 가치를 이해하는 자유주의 세력과 자유의 가치를 이해하는 연대주의 세력으로 분화되는 것이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정치구도인 셈이다. 다시 말하면 자유와 연대라는 두 가지 가치 속에서 새로운 성장·복지·통일모델에 대한 생산적인 대안을 내놓고 서로 경쟁하는 구도로 정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 정치권은 모두 ‘과거세력’

지난 7월 박 의원은 이런 생각에 공감하는 당내 개혁파 의원들의 모임인 수요모임의 2기 대표를 맡았다. 최근 10·26재선거에서 당선된 의원 3명이 가입, 수요모임은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는 숫자(20명)로 세력화했다. 이들은 한국 정치의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해서는 먼저 한나라당부터 변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과거의 잣대로는 이들이 정치적 운명을 함께 할 수준의 세력으로 보기 어렵지만 박 의원이 말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우군임에는 틀림이 없다.

박 의원은 운동권·기자·교수, 시민단체(경실련)·국정(정책기획위원회) 참여 등 다양한 경험을 가진 정치인이다. 정치의 근거지인 부산에서는 방송토론 진행 등을 통해 높은 인지도를 얻었다. 이런 경험으로 쌓은 사고력과 정책기획력. 그리고 대중 전파력과 설득력 등이 그의 정치적 꿈인 ‘선진화를 위한 새로운 국가경영 세력 구축’에 힘이 될 것이다.

그는 믿고 있다. 우리 정치가 도무지 바뀔 것 같지 않으면서도 사실은 많이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 정치의 패러다임 전환은 생각보다 빨리 올 수도 있다. 그때 만날 새로운 리더십은 어떤 모습일까.


[인터뷰]박형준 한나라당 의원

“대세론과 줄서기가 당을 망친다”

- 새정치수요모임의 지향점과 당내 역할은 무엇인가.

“기본적인 생각은 한국 정치가 바뀌려면 먼저 한나라당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한나라당이 선진화를 위한 새로운 국가경영 세력이 되게 하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가 제일 먼저 ‘뉴라이트’가 필요하다고 내부에서 얘기해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많이 깨지기도 했지만 지난번처럼 혁신안을 만드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 과거에도 당내 개혁파 모임이 있었지만 정작 선거와 같은 중대한 국면에서는 각자 정치적 이해에 따라 뿔뿔이 흩어졌다. 수요모임은 뭐가 다르다고 보는가.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대세론과 줄서기이다. 그렇게 되면 당이 굉장히 경직돼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반박(反朴) 세력으로 비치는 이유도 4·30재보선 후 ‘박근혜 대세론’이 확산되려고 할 때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해서다. 마찬가지로 ‘MB(이명박) 대세론’이 나와도 똑같이 문제제기를 할 것이다. 구성원이 대선국면에서 줄서기를 하게 되면 수요모임도 형해화된다. 그걸 막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 현실적으로 막을 수 있다고 보는가.

“우리는 대선주자들이 공정한 게임의 룰을 갖고 자기 콘텐츠로 승부를 하는 여건을 만들자는 것이다. 최종적인 결정을 하는 순간에는 각자 선택이 불가피하겠지만 2007년 경선 이전, 적어도 내년 말까지는 (줄서기를)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는 같이 망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래연대 등 과거로부터 우리가 얻은 교훈이기도 하다.”

- 줄서기를 경선 전에 하든 후에 하든 마찬가지 아닌가.

“그래서 내년 전당대회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방선거 후 대권·당권 분리 상태에서 새로운 당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요모임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고 모든 선출직에 출마할 생각이다. 그 과정에 당내 세력과 외부 영입인사들과 연대해 당의 컬러를 바꾸는 것이 우리의 1차적 목표다. 그때까지는 대권경쟁 구도 속에 우리를 위치시키지 않는다는 게 수요모임 의원들의 합의사항이다.”

- 그래도 결국은 다 줄서기를 하던데….

“본격적인 대권경쟁이 시작되면 개별 의원들을 통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유력한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분들 모두가 하나같이 한나라당이 크게 변해야 한다고 얘기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걸 우리가 자꾸 강요하는 것이다.”

- 김영삼 정부 정책 참여 경험으로 볼 때 노무현 정부 개혁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국가 아젠다의 우선순위 설정이 우선 잘못됐다. 예를 들면 지난해 ‘4대악법’ 개정에 매진한 것이 그렇다. 그건 각자 조용하게 풀어서 해결해야 할 문제인데 거기에 매몰되다 보니까 그것도 실패하고 다른 중요한 것까지 놓친 것이다. 선진화와 관련된 중요한 아젠다 몇 개를 설정하고 이를 해결하는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 정말 하고 싶은 다른 개혁 과제의 추진하는 데 힘이 될 수 있었다.”

- 평소 개혁 과정의 관리(Process Management)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해왔는데…

“국가경영에는 고도의 능력이 필요하다. 개혁의 비전이나 목표도 중요하지만 개혁 과정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김대중 정부나 참여정부가 그 점에서 제대로 된 능력을 보여주지 못해 안타깝다.”

<글/신동호 편집위원 hudy@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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