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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제 해결사 정동영

[유인경이만난사람]“통일한국 그 날을 위해 기꺼이 도와야죠”

뉴스메이커 648호

‘퍼주기’ 논란에도 당당한 ‘통일문제 해결사’… ‘소통’ 중요시하는 그의 다음 무대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초등학교 때부터 이렇게 노래했지만 ‘통일’은 판타지소설보다 더 추상적이다. 어릴 때부터 받아온 철저한 반공교육 탓에 북한 사람들은 피부는 빨갛고 머리에 뿔달린 사람들, 혹은 이승복 어린이를 죽인 무장공비나 양복입고 산에서 내려오는 간첩으로만 알았다. 북한은 지금도 비자가 필요한 외국이고 북한 동포는 외국인보다 더 의사소통이 안 되는 이들이었다. 우린 북한에 대해 너무 몰랐고 또 알고 싶어하지도 않았다. 통일은 북한에 가족을 두고 온 이들이나 학자들의 관심사로만 여겼다.

그러다 정주영 현대 회장이 소떼를 몰고 가는 드라마를 연출했고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정상회담 후, 통일문제는 현실이 됐다. '그리운 금강산'도 열렸고 아시안게임 응원단으로 온 북한 여성들의 무공해 미모에 넋을 잃어 통일되기 전에는 장가가지 않겠다는 총각들은 팬카페까지 만들었다. 청소년들은 북한의 핵보유도 ‘통일되면 결국 우리 것’이란 쿨(?)한 태도를 보였다. 수령님의 은혜로 잘 산다더니 탈북자들의 증언, 용천역 사건으로 해외뉴스에 소개된 북한 동포들은 6·25전쟁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곧 6자회담, 경수로 등 경협문제 등이 긴박하게 펼쳐지며 온통 세계의 관심이 한반도에 쏠렸다. 지난 9월엔 전문가들조차 회의적 반응을 보였던 북핵 6자공동성명이 타결됐다. 늘 미국측으로부터 귀동냥으로 정보를 얻고 회담장 밖에서 얼쩡이던 정부 당국자와 기자들은 우리가 미국과 정반대되는 입장을 당당히 밝히고도 회담 타결을 이끌어낸 것에 감격해했다. 감격도 잠시, 삐그덕거리는 북한관광, 장기수, 북한 동포들의 인권, 탈북자 문제 등이 연일 터져나왔다. 그리고 모두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을 찾았다.

그동안 통일부 장관은 ‘갈 수 없는 나라’북한을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게 주요업무인줄 알았더니 국방, 외교, 산업자원, 재정경제, 심지어 교육문제까지 연결되지 않는 것이 없었다. 게다가 각종 여론조사에서 여당 후보 중에는 항상 1등인 대권후보이고 그 전부터 스타였던 정 장관의 일거수 일투족은 모두 뉴스거리 아닌가.

열린우리당의 10·26재선거 참패 후 언제 다시 당으로 복귀할지도 모르고, 11월 6자회담 재개를 앞두고 고뇌와 걱정이 많을 정동영 통일부 장관을 정부종합청사 통일부 장관실에서 만났다.

볼륨 조절이 가능한 TV형 정치인

“평소 지면을 통해 글을 자주 읽고 있습니다.”

정 장관은 이렇게 인사를 시작해 점수를 땄다. 방송에 가끔 나오는 이유로 기자면서도 항상 ‘방송에서 잘 보고 있습니다’란 인사를 들었던 억울함(?)이 풀렸다. 하지만 곧 이성을 회복해 공격적인 질문을 시작했다.

“지난 6자회담 타결은 국내외에서 놀라운 성과란 찬사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정 장관은 너무 북한측의 입장만 옹호해 ‘김정일 대변인’ ‘북한 통일부 장관’이란 비난도 받으셨죠. 무엇보다 저는 7월의 중대제안 때 우리나라가 6조 원에서 13조 원에 이르는 핵폐기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 걱정스럽더군요. 미군이 감축되거나 완전철수할 경우 자주국방비용까지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갈 텐데….”

“그 문제는 너무 비용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본질이 흐려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이제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된 OECD국가이고, 이들 국가들은 못사는 빈곤국에 문명국으로서 해외무상원조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30개 가입국 중 가장 인색한 국가가 우리나라입니다. 다른 나라들은 타인종, 타민족에게도 인도적인 무상지원을 하는데 같은 핏줄이고 한민족인 북한에 원조를 해주는 것이 어떻게 ‘퍼주기’입니까.

지금도 국민 1인당 매년 1만2000원 정도의 비용이 드는데 앞으로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대신 그 보상과 전력 등 에너지를 제공하는 절차에 들어가는 비용이 13년간 그정도 규모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언젠가 통일한국의 국민으로 함께 살아가야 하는데 언제 어떻게 올지 모르는 그날에 대비해서도 북한 동포들을 도와야죠. ‘비용’으로 본질을 희석해 정치적 공세를 퍼붓는 이들에게 과연 그들이 제시할 내일은 무엇인지 묻고 싶습니다.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미래전략이고 국가를 이끄는 정치인이라면 발등의 문제보다 더 멀리, 더 넓게 보고 해결책을 제시해야 합니다.”



또박또박 정확한 발음에, 강조하고 싶은 부분에선 적절하게 볼륨을 키우고 다시 부드럽게 줄여 말하는 정 장관의 이야기를 들으며 13년간 들어간다는 비용을 국민 1인당, 얼마씩 내야 하는가를 계산해보니 매달 2000원 정도였다. 커피 한 잔값으로 언제 터질지도 모를 핵의 공포에서도 벗어나고, 북한 동포도 도와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더구나 우리만이 내는 게 아니라 미국, 일본도 다 함께 내니 말이다. 정 장관 주장대로 통일되어 함께 살려면 북한 동포들도 잘 먹어 건강해야 하고, 도로·통신·전기 등 북한의 기반시설도 튼튼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겨우 5분 만에 세뇌당했다. 나의 감수성이나 지능지수 탓도 있지만 인터뷰를 위해 정동영 장관과 관련된 자료를 찾아보니 그는 북한 출신도 아니고 정치학자도 아닌데 한결같이 통일이나 북한 관련 정책에 관해 의견을 밝혔다.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을 때, 최고위원에 진출했을 때, 대선 직후의 인터뷰에서 항상 대북정책과 북핵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그리고 다른 정치인처럼 말을 바꾸지 않고 일관된 견해를 보였다.

그는 지난해 10월 미국측이 주한미군 감축시기를 2005년까지로 못박고자 했을 때도 럼즈펠드 국방장관을 만나 '지난 1년간 한국이 용산기지 이전, 미군 재배치와 감축, 이라크파병 등 무려 네 가지를 미국에 공헌했으니 이번엔 미국이 감축시기를 조정해달라'고 주장했다. 설득당한 럼즈펠드가 부시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10월 6일 한국측 요구가 반영된 주한미군 감축계획이 발표됐다. 리처드 롤리스 부차관보는 “정 장관이 매우 큰 일을 했다”고 칭송했단다. 미국에는 항상 읍소나 애걸복걸만 하는 비굴한 모습에 익숙했던지라 그런 모습이 무척 멋있게 느껴졌다.

정동영 장관은 이런 늦가을에 ‘낙엽’ 같은 시를 읊는 게 어울릴 듯한 로맨티스트처럼 보인다. 그와 절친해 객관성을 잃은 이들은 “해맑게 웃는 모습은 귀공자 출신인 케네디 대통령 같다”고 표현한다. 게다가 기뻐도, 슬퍼도 자주 눈물을 보인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미국에도 당당하고 북핵문제에도 겁을 내지 않을까.

“어릴 때부터 ‘일이관지’란 말을 즐겨 썼어요. 일관한다는 것의 덕목을 스스로 삶의 원칙으로 여깁니다. 학창시절이나 기자시절, 그리고 지금 정치인을 거쳐 공무원으로 일하면서도 처음 세운 뜻을 지키려고 하는 의지가 그런 힘을 주는 것 같습니다.”

그는 자신이 모범생이 아니라고 했다. 전주고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를 잃고 삶의 중심을 잃은 듯해 수업 빼먹고 영화관에 드나들고 하숙방에서 막걸리만 마셨단다. 당연히 성적은 떨어졌고 대학시험에도 실패했다. 아들들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온 어머니는 오막살이 같은 집 단칸방에 재봉틀을 들여놓고 옷을 만들어 청계천시장에 내다팔았다. 올 5월 돌아가신 어머니의 49재도 군부대 총기사건의 유가족을 위로하러 가느라 참석하지 못했다.

다시 개통된 청계천을 걸으며 그는 종종걸음으로 청계천에 옷감 사러 가고 또 제값을 안 주는 상인들과 드잡이를 하던 어머니를 떠올리지 않았을까. 정 장관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어머니를 추모하며 ‘고애자(孤哀子)’란 말을 썼다.



‘피투성이’ 경선에서 얻은 것들

정동영 장관은 노무현 대통령 당선의 1등공신이다. 2002년 민주당 국민경선 때, 그는 꼴찌를 하면서도 완주했으며 국민경선에서 승리한 노무현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전국을 돌며 목이 터져라 표를 호소했고 부산 자갈치시장 등을 누비며 돼지저금통을 나눠줬다.

정몽준 후보의 선거 전날 파기 역시 종로연설 당시에 정 장관이 단상에 올랐고, 노 대통령이 차기후보로 강조해준 것이 결정적이었다. 그리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할 때도 ‘천신정’의 도움이 컸다.

“한국 정치 사상 초유인 여당의 국민경선은 항상 주장했던 쇄신운동의 결과물이었습니다. 남이 만든 트랙에 경주자로 참여했으면 당연히 포기했겠죠. 하지만 내가 트랙을 제안했고 설치하고 중심에 섰다는 책임감으로 하루에도 열두 번씩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눌렀습니다. 생각해보세요. 권투선수가 링위에 올라 게임마다 KO패를 당하고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또 다음 게임에 서야 하는 심정을…. 하지만 틀을 내가 만들었다는 자부심으로 끝까지 충실할 수 있었습니다.”

정치부 기자들조차 ‘페어플레이 상이 있다면 정동영의 몫’이라고 말할 만큼 국민경선에서 그의 의연한 모습은 비록 속으론 피투성이였을지 모르지만 아름답게 보였다.

그는 “처음의 믿음을 고집스럽게 지켜나가고 이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할 때 한 발 더 내딛는 힘"이 자신을 지켜주고 오늘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는 연애도, 기자생활도, 정치도, 마음먹은 것은 다 이뤘다고 했다. 실연했다가 납치 끝에 한 결혼도 그렇고, 최고의 앵커로 인정받았고, 정치 입문 10년 만에 ‘통일문제 해결사’로 통하며 차기 대권후보로 자리잡은 것을 보면 그는 운도 좋은 편이다.

하지만 ‘컨텐츠가 뛰어난 지도자’ ‘모양새가 좋은 정치인’등의 찬사만 받는 것도 아니다. 비호감층도 만만치 않다. 예를 들어 '카메라를 과잉 의식하는, 2% 부족한 정치인'이라거나 ‘지나치게 이미지에 의존한다’는 지적도 있다. 그가 혼신을 다하는 남북화해 역시 김대중 정권 시절 불렀던 노래이며 6자회담의 솔로 주역도 아니라고도 한다.

전문가집단의 여론조사에선 항상 수위를 달리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지지도가 낮은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은 "정 장관은 카메라만 돌아가면 꽃처럼 화려하게 피어나는데 나는 카메라만 보면 딱딱하게 굳어진다"고 했다. 잘 생긴 외모에 현란한 웅변솜씨를 보이는 것이 어쩌면 정 장관에게는 득이 아니라 ‘연출’로 보여 실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카메라만 보면 달라지는 게 아니라 그는 평소에 말할 때도 표정이 매우 풍부하다. 입벌려 크게 웃고, 고뇌하는 진지한 표정을 짓고, 눈물을 감추는 듯 입술을 지그시 누르기도 하고, 연설할 땐 격앙된 모습으로 포효하고…. 가면을 쓴 듯 굳은 표정을 짓는 한국 남자들이 보기엔 풍부한 표정이 다소 역겨워 보일 수도 있을 게다. 하지만 그건 결국 그가 속마음을 그대로 얼굴에 드러내 타인에게 진심을 전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앵커생활, 정치인으로 대중연설을 통해 느낀 것은 ‘소통의 중요함’입니다. 정치건 방송이건 사람들과 의사소통이 잘 되어야죠. 국민들의 눈높이로 세상과 사물을 보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남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진솔하게 했을 때 아무리 어려운 문제도 잘 전달되고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소통의 능력을 가진 그가 곧 열릴 6자회담에서는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또 파란만장한 열린우리당과는 어떤 역할을 할지 궁금하다. 아직까지는 사랑부터 장관직까지 원하는 것은 다 이뤄졌지만 그 마법은 또 어디까지 효력이 있는지도….

<글/유인경 편집장 alice@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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