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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보수혁명 원희룡

[뉴리더]‘보수혁명’ 꿈꾸는 뚝심의 승부사

뉴스메이커 651호

당내 ‘왕따’ 자처하는 ‘1등 인생’… ‘정치의 서브스리’ 목표 역동적 정치행보



한나라당에서 가장 한나라당답지 않은 정치인을 들라면 첫 손가락에 꼽히는 인물이 원희룡 의원일 것이다. 한나라당 정서와 어울리지 않는 소신으로 당내 갈등을 빚는다든가 ‘톡톡 튀는’ 행동으로 대중적 관심을 사는 모습이 그렇다.

그래서 그는 당내에서 ‘왕따’를 자초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간첩’ ‘박사모의 공적 1호’라는 말을 공공연하게 듣고 있으며 심지어 “탈당하라”는 압박까지도 받는다. 실제로 그는 열린우리당에 가면 편하게(?) 정치를 할 수 있는 조건을 더 많이 갖추고 있다. 하지만 그는 완강하게 고개를 젓는다. 그의 정치적 목표가 한나라당에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발 원희룡표라는 정책상품을 만드는 공장장이 되겠다”는 게 그의 말이다.

바로 이 점이 그가 한나라당 보수파의 ‘집단 린치’에 못 이겨 탈당한 이른바 ‘독수리 5형제’와는 다른 면모다. 유약한 듯한 외모나 이력과 달리 그의 내면에는 강한 뚝심과 투지가 엿보인다. 그는 이제까지 1등 인생을 살았다. 학력고사 전국수석, 서울대 전체수석, 사법시험 수석합격이라는 자랑거리를 갖고 있다. 검사, 변호사, 그리고 국회의원 재선을 거쳐 당내 ‘서열 3위’라고 할 수 있는 최연소 최고위원에 오른 정치이력도 비교적 순탄하다.

가슴에 박힌 ‘아크로폴리스의 장미’

이처럼 ‘귀한 집 도련님’ 이미지도 한 꺼풀 더 벗겨보면 그 내면에는 질풍노도의 과정이 숨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점 역시 ‘정치인 원희룡’을 ‘정치 뉴리더 원희룡’으로 한 단계 끌어올린 바탕이자 향후 ‘원희룡표 정치’의 성패를 결정짓는 중요한 동력이 될 듯하다.

원 의원은 서울대 82학번이다. 그의 표현대로 ‘기구한 운명의 학번’이다. ‘광주학살’을 저지른 신군부 정권 하에서 속으로 칼을 갈며 대학생활을 보내다가 1984년 이른바 ‘유화국면’을 맞아 대중운동을 폭발시킨 세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많은 투옥자를 낸 것으로 유명하다. 게다가 이 무렵 전개된 학생들의 집단적인 공장 위장취업에 대거 동참한 것도 바로 이들 세대다.

‘제주도가 낳은 수재’ 원 의원도 이 ‘운명’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순진한 공부벌레였던 그가 제 발로 운동권에 가담한 것은 입학한 지 석달도 되지 않았을 때다. 1982년 5월 27일 서울대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1년 전 ‘전두환 물러가라’고 절규하며 중앙도서관 6층에서 투신한 김태훈(당시 경제학과 4) 추도식이었다. 원 의원의 운명을 뒤바꾼 ‘아크로폴리스의 장미’는 이날 시위의 가장 인상 깊은 후일담으로 그의 기억에 남아 있다.

당의 변화는 ‘시간과의 싸움’

“아크로폴리스에 장미가 심어져 있었어요. 친구들이 시위하다가 흩어져 도망가던 중 장미 가시에 찔려 도서관으로 들어오는 걸 보았어요. 그게 박혀서 평생을 가는 겁니다. 아크로폴리스에 심어진 장미 넝쿨, 거기에 찔려서….”

원 의원은 이 시위를 계기로 운동권 학생으로 변모한다. 당시 가장 투철한 투사로 알려진 1년 선배 이정우씨(현 변호사)를 찾아가 지하서클 사회복지연구회(사복회)의 일원이 된다. 이때부터 그는 학과 공부는 아예 접고 야학·후진양성·위장취업 등 운동의 일선에 있었다.

여기서 돌아오지 않았다면 ‘오늘의 원희룡’은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1989년 사회주의 몰락사태는 그에게 2년 가까운 방황을 안겨주었다. 믿었던 신념과 가치관이 무너지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위해 전국을 무전여행했다. 많은 사람과 대화하고 다양한 삶의 현장을 경험한 뒤 그는 생각을 바꿨다. 공개선언을 통해 ‘전향’을 한다는 것이 이미 후배 운동권에 ‘전설’이 돼 버린 ‘혁명투사 원희룡’으로서는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자유주의에서 온건사회주의까지’ 이념의 폭을 설정하고 자신을 어디에 세워야 할지 고민한 그는 결국 해답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지금도 그 숙제를 푸는 일은 계속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옛 소련과 북한식 사회주의는 실패작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학생 시절의 좌파적 노선은 청산했지만 ‘아크로폴리스의 장미’는 여전히 그의 가슴 속에 박혀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한나라당을 택한 그의 정치적 좌표도 ‘보수혁명’이다. 그 말 속에는 기존 보수세력이 갖고 있는 부정적인 요소들을 제거하는 것도 포함되지만 국가운영전략을 세우고 그에 맞는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개혁을 하는 데 있어서 좌파적 방법론이 아닌 우파적 방법론을 제시하겠다는 뜻도 담겨 있다고 하겠다.

원 의원이 보는 한나라당의 부정적 이미지는 크게 4가지다. 영남당(지역)·부자당(계층)·반공당(이념)·노인당(세대)이다. 한나라당은 이런 부정적인 장막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안주하려 한다는 게 그의 인식이다. 이것이 그가 ‘독불장군’ ‘제2의 박찬종’이라는 말을 감수하면서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하는 이유다.

한나라당을 변모시키는 것, 원 의원은 이를 ‘시간과의 싸움’으로 규정하고 있다. 시간이 가면 자연히 해소될 부분도 있고, 국민이 채워줄 부분도 있다는 것이다. “3명만 있으면 시간과의 싸움은 충분히 승산이 있다. 아니, 혼자서라도 가능하다”는 게 그의 말이다.



“어차피 중요한 건 일관성과 내용”

아마추어 마라토너이기도 한 원 의원은 마라톤 풀코스에 7번 도전했다. 그 가운데 6번을 완주했다. 아직 4시간 벽도 깨지 못했지만 그는 서브스리(마라톤 풀코스를 3시간 안에 완주하는 것)를 꿈꾼다. 어릴 때 사고로 오른쪽 발가락이 기형인 그는 이 때문에 병역을 면제받았다. 마라토너에게는 치명적인 이 장애를 딛고 서브스리에 도전하듯 그는 ‘정치의 서브스리’도 쉽게 돌파할 수 있는 벽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원 의원은 백두대간 등정에도 도전하고 있다. 백두대간을 50구간으로 나눠 2009년까지 완전 등정을 목표로 삼고 있다. 스타크래프트·카트라이더 등의 게임을 즐기며 프로게이머 임요환씨의 열렬한 팬이기도 하다. 자녀를 이해하고 젊은 세대와 의사소통할 수 있는 멋진 세계라는 게 그의 게임 예찬론이다.

한나라당 안에서는 튈 수밖에 없는 이런 그의 역동적 정치행보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당내에서도 “잘 다듬으면 한나라당의 부정적인 벽을 뛰어넘을 차세대 주자로 키울 수 있다” “내용 없이 시류에 영합하고 있다”는 상반된 평가가 함께 한다.

원 의원은 사회주의권 몰락 후 이념적 정리를 한 뒤 1년 반 만에 사법시험에 수석합격했다. 주변 사람들이 “재수 없다”고 할 정도로 무서운 집중력으로 사법시험은 통과했지만 ‘정치의 서브스리’는 벼락치기로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말한다.

“아직 한참 젊은데 1년이면 어떻고, 10년이면 어떻습니까. 아직 노력할 여지가 많고 어차피 모자라는 점은 국민이 채워주는 힘을 받아서 해야 되는 건데…. 중요한 것은 시간과의 싸움에서 가져갈 일관성과 내용 아니겠습니까.”


인터뷰/원희룡 한나라당 의원

“한나라당 지지율 의미 없다”

-‘보수혁명’이란 말까지 하면서 한나라당의 체질개선을 주장하는데, 최근 당 지지율이 40%대로 상승하는 것은 뭘 의미한다고 보는가.

“한나라당에 대한 지금의 지지율을 무의미하다. 더 중요한 것은 한나라당에 대한 거부율이다. 전문가들의 일치된 지적에 따르면 50% 정도의 거부율이 있다. 그렇게 된 요인은 크게 네 가지라고 본다. 영남당-지역, 부자당-계층, 반공당-이념, 노인당-세대다. 한나라당은 이런 거부율을 돌파할 생각은 하지 않고 의미 없는 지지율에 안주했다. 그래서 대세판단을 그르치고 되레 거부의 원인이 되는 것을 강화하는 쪽으로 갔다.”

-그렇게 따지면 열린우리당도 거부율이 만만찮을 것 같은데…

“물론 열린우리당도 거부율이 높다. 하지만 과거에도 그랬듯이 지금의 집권 여당은 거부율이 높아지면 당을 새로 만들어서 돌파해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다음번 대선은 절대 열린우리당 간판으로 안 치를 것이다.”

-최근 박근혜 대표의 호남 구애는 긍정적으로 보는가.

“그 자체는 긍정적으로 본다. 하지만 호남의 거부는 원죄 때문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신화나 종교에서 얘기하는 희생을 통한 번제와 속죄가 따라야 한다. 호남에 가서 악수하고 온다고 해서 표가 오는 게 아니다.”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이 집권했을 때 5·18특별법을 만들고,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까지 구속하지 않았는가.

“그 후로 ‘도로 민정당’ 소리가 나오니 문제가 되는 것이다. 더 많이 노력했다면 표는 안 나와도 지금처럼 적대적이고 아예 외면하는, 극단적인 거부라는 형태는 아닐 것이다.”

-원 의원이 말하는 ‘보수혁명’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개인의 자유와 행복, 가족에게 가는 삶의 질 개선이라는 핵심적인 가치를 가지고서 그 방법론으로서 중도우파적인 것을 취한다는 뜻이다. 진정한 우파라면 재벌이 공정한 게임을 안 하고 정경유착하고 특혜를 받는 점에 대해 누구보다 단호하게 매를 쳐야 한다. 북한 문제도 그렇다. 북한과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갖는 것이 우파가 갖는 민족주의적 가치와 부합한다. 친일파 청산, 이것도 우파가 해야 하는 일 아닌가. 복지 문제를 보더라도 전국민 의료보험 제도를 도입한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고, 국민연금도 노태우 전 대통령이 도입하지 않았는가.”

-‘보수혁명’이 인적 청산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 아닌가.

“인적 청산이라면 두 가지 측면이 있다고 본다. 하나는 부정적인 요소를 청산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새로운 리더십과 국가를 이끌 수 있는 있는 실력과 준비태세를 갖춘 인재를 다발로 기라성 같이 만들어서 국민한테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넓혀주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특히 잘못하는 부분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이 정부가 아젠다로 내놓은 게 약 30가지가 된다. 성장과 분배를 같이 가도록 하겠다, 동북아 허브를 하겠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 만들겠다, 지역 균형발전 이루겠다 등등 좋은 얘기는 다 했다. 그런데 무엇이 우선순위인지 알 수 없다. 기자회견할 때마다 국정 우선순위가 바뀌는 것 같다. 또 경제성장률 1% 올려봐야 그게 무슨 업적으로 남겠느냐, 내가 경제를 살릴 줄 알고 대통령으로 뽑아준 건 아니지 않으냐, 지역감정 타파에 대통령직을 걸겠다, 이렇게 얘기한다. 이런 모습에 아연실색이다. 경제성장률 1%면 돈으로 치면 50조원이고, 일자리로 치면 60만개다. 정권이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이고, 국정의 최우선 과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돼야 한다.”

<글/신동호 편집위원 hudy@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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