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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멀어지는 북-미 관계

가까이 하기엔 너무나 멀어진 北-美
제네바합의 후 마련된 채널 차례로 단절…교역량도 하락
등록일자 : 2006년 01 월 17 일 (화) 15 : 03   
 

  9.19공동성명의 이행 방안을 논의해야 하는 시점에서 불거진 위조 화폐 문제로 북미간 대립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는 가운데, 핵·위폐 같은 핵심 쟁점 외에도 북미간 공식 접촉 채널이 차례차례 단절되고 교역량이 축소되는 등 양국의 관계가 총체적인 난맥상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일간 〈유에스에이 투데이〉는 15일(현지시간) 한국전쟁중 사망한 미군의 유해 발굴·송환 작업이 중단되고 대북 식량 지원이 끊기는 등 1994년 북미 제네바합의 이후 구축된 양국간의 공식 채널이 모두 막혀 북핵 문제의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할 우려가 있다고 진단했다.
  
  그레그 전 대사 "美, 韓·中에 부담 떠넘기려 해"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대북 대화를 이끌었던 찰스 카트먼 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사무총장은 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북미가 한때는 이들 접촉선이 양국관계를 개선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희망'으로 가득 찼었으나, 이제는 양측 모두 "희망이 없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고립에 빠진 책임은 북한 스스로에게 있다면서 "한반도에서 핵무기의 무용성에 대한 북한의 이해가 빠르면 빠를수록 북한의 미래가 밝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차관보는 북한이 금융 제재를 핑계로 9.19공동성명의 이행을 협상하는 자리에 복귀하지 않고 있다며 "원칙을 만드는 단계에서 이행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에는 늘 일이 어렵게 되는 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핵 물질과 시설들을 공개해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며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했다.
  
  한국과 중국이 북한에 식량과 자원을 공급하는 것과 관련해 힐 차관보는 그같은 "적선(handouts)"은 성공적인 경제를 만들 수 없다. 북한이 성장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유에스에이 투데이〉는 힐 차관보가 최근 대화의 재개를 위해 한국, 중국, 일본에 다녀 왔다면서 힐의 그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조지 부시 미 행정부는 중국과 한국에 협상 재개와 이행의 부담을 미루는 것 같다는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국 대사의 지적을 소개했다.
  
  코리아 소사이어티 회장을 맡고 있는 그레그 전 대사는 "북미간 공식 채널이 위축됐다"고 평했다.
  
  다음은 이 신문이 부시 행정부 들어 중단됐다고 소개한 북미간의 공식 채널이다.
  
  KEDO 경수로 건설 종료
  
  북한 경수로 건설 현장에 남아 있던 KEDO 인력이 이달 초 전원 철수했다.
  
  KEDO는 1994년 제네바합의에 따라 만들어져 그동안 북한에 경수로 2기를 건설하는 사업을 해 왔으나 2차 북핵 위기가 발발한 후 2003년 이래 사실상 작업이 중단됐다.
  
  찰스 카트먼 전 사무총장은 몇 개월 내에 모든 청산 절차가 마무리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북 식량지원 중단
  
  북한이 세계식량계획(WFP)에 대해 구호원조 대신 개발원조가 필요하다며 WFP의 평양사무소 철수·감축을 요구함에 따라 식량 원조는 중단했다.
  
  미국은 북한이 대기근을 겪은 1990년대 중반부터 WFP를 통해 북한에 식량을 지원해 왔다.
  
  미군 유해 발굴·송환 중단
  
  미 국방부는 지난해 5월 북한내에서 활동하는 미군 유해발굴팀과 통신상의 어려움으로 인해 안전상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며 유해 발굴 작업의 중단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북미는 1980년대말 이 문제를 두고 공식대화를 시작해 클린턴 임기 첫 해인 1993년 '미군 유해 문제와 관련한 합의서'를 채택하고, 1996년부터 공동 발굴 활동을 벌였으며, 1999년부터는 판문점을 통하지 않고 북한에서 직접 미국으로 유해를 운구했다.
  
  그러나 미 국방부의 우려와는 달리 발굴 작업을 진행했던 지난 10여 년간 유해발굴팀의 북한내 활동에서 별다른 문제가 보고되지는 않았다.
  

  양국 교역도 90년대 수준으로 뒷걸음질
  
  한편 북미 양국 간의 2005년 교역 규모도 지난해 10월 말을 기준으로 총 580만 달러를 기록해 2004년의 4분의 1로 줄었다.
  
  미국 상무부 홈페이지에 게재된 나라별 무역통계에 따르면 북미 교역은 전체 규모가 작고 변동폭도 해마다 크지만 지난해의 실적은 2002년 이래 최저치로 기록했다.
  

출처 : 美 상무부 홈페이지

  북미간의 교역 규모는 1994년 제네바 합의 이후 증가세를 보이다가 2000~01년 두 해 동안 급감했고 2002년 이후 다시 급증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2000년 대북 제재 일부를 완화해 소비재 대부분에 대해서는 당국의 승인 없이도 대북 수출이 가능토록 했는데, 2002년 이후의 증가세는 이와 관련된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북핵과 관련해 양국의 갈등이 고조되고 기존의 공식 관계마저 위축되는 상황은 무역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마침내 지난해의 무역량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2000년대 대북 수출 품목은 밀, 쌀, 옥수수, 채소, 식용유, 낙농제품이 주종을 이루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양국 교역의 대부분은 미국의 대북 수출로 이뤄지고 북한의 대미 수출은 2004년 약재 150만 달러 어치를 제외하고는 10만-20만 달러 수준이고, 1990년대엔 실적 자체가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황준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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