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구슬픈 肉體

2007/03/06 08:53
  

불을 끄고 누웠다가
잊어지지 않는 것이 있어
다시 일어났다

암만해도 잊어버리지 못할 것이 있어

다시 불을 켜고 앉았을 때는

이미 내가 찾던 것은 없어졌을 때

반드시 찾으려고 불을 켠 것도 아니지만
없어지는 자체(自體)를 보기 위하여서만

불을 켠 것도 아닌데
잊어버려서 아까운지 아까웁지 않은지

헤아릴 사이도 없이 불은 켜지고

나는 잠시 아름다운 통각(統覺)과

조화(調和)와 영원(永遠)과

귀결(歸結)을 찾지 않으려 한다

어둠 속에 본 것은 청춘이었는지

대지(大地)의 진동이었는지
나는 자꾸 땅만 만지고 싶었는데
땅과 몸이 일체(一體)가 되기를 원하며

그것만을 힘삼고 있었는데

오히려 그러한 불굴(不屈)의

의지(意志)에서 나오는 것인가
어둠 속에서 일순간을 다투며 없어져버린

애처롭고 아름답고 화려하고 부박한

꿈을 찾으려 하는 것은

생활이여 생활이여,

잊어버린 생활이여
너무나 멀리 잊어버려 천상(天上)의 무슨 등대(燈臺)같이

까마득히 사라져버린 귀중한 생활들이여
말없는 생활들이여
마지막에는 해저(海底)의 풀떨기같이

혹은 책상에 붙은 민민한 판대기처럼 무감각하게 될 생활이여

조화(調和)가 없어 아름다웠던 생활을

조화를 원하는 가슴으로 찾을 것은 아니로나
조화를 원하는 심장으로 찾을 것은 아니로나

지나간 생활을 지나간 벗같이 여기고
해 지자 헤어진 구슬픈 벗같이 여기고
잊어버린 생활을 위하여 불을 켜서는 아니될 것이지만
천사(天使)같이 천사같이 흘려버릴 것이지만

아아 아아 아아
불은 켜지고
나는 쉴사이없이 가야 하는 몸이기에
구슬픈 육체(肉體)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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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 새가 나는 이유?

2007/02/28 11:07

 

뉴질랜드에는 날지 못하는 새가 5종이 있다고 한다.

그 이유를 관찰해 본 결과 뉴질랜드에는 새의 천적이 없어 새가 굳이 땅을 박차고

힘차게 비상할 이유가 없어서 오랜시간 날지 못하는 새로 진화되었다고 한다.

 

절대절명의 위기와 긴장감이 새가 날 수 있는 조건이었다.

매너리즘과 나태한 일상의 수레바퀴에 젖어 있는 한 영원히 날 수가 없다.

마치 날개가 있어도 날아오르려 하지 않는 뉴질랜드의 새처럼 말이다.

 

 

- lifephilo 카페 [마주보기] 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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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 길은 처음부터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누구든 안락한 환경에 있었던 사람이 갑자기 그 반대의 생활로 떨어져 버렸다면, 그 떨어지는 과정에서 세상 사람들의 참모습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자서』)


‘중국 현대 문학의 아버지’, ‘중국의 기상나팔’로 불리는 루쉰은 1881년 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나 부유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고 아버지가 병환을 얻으면서 집안이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루쉰은 아버지의 약을 구하기 위해 약방으로, 돈을 구하기 위해 전당포로 뛰어다니게 되었는데 약방 계산대와 전당포의 계산대는 어린 루쉰이 느끼는 세상의 벽만큼이나 높은 것이었다.


“약방 계산대는 내 키만큼 높았고, 전당포의 계산대는 내 키의 갑절이나 되었다” (『자서』)


약방 계산대는 어린 루쉰에게도 익숙했던 현학적인 전통의 세계였기에 루쉰의 눈높이를 뛰어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전당포의 계산대는 어린 루쉰에게 화폐의 소중함, 그리고 더러움을 동시에 알게 해준 곳이므로 심리적으로 훨씬 높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이것이 루쉰이 느꼈던 세상의 두 가지 벽이다. 또한 이것은 전통적인 낡은 시대의 유물(약방), 그리고 자본주의적 질서인 서구의 문명(전당포) 사이의 긴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루쉰은 성인이 되어 이 두 가지 것에 맞서 처절하게 싸우게 된다.


성장한 루쉰은 양학을 배우기 위해 일본으로 떠나게 된다. 의학을 통해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의 아픔을 덜어주겠다는 결심으로, ‘센다이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한 그는 이곳에서 인생의 길을 바꿔놓은 결정적인 체험을 하게 된다. 바로 ‘환등기 사건’이었다. 수업시간에 환등기로 뉴스필름을 보여주었는데 어떤 중국인이 군사재판을 받고 있고 그 주위에 다른 중국인들이 둘러서 있는 장면이었다. 그 중국인은 곧 일본인에 의해 총살되었고 학생들은 박수를 치며 중국인들을 욕하고 있었다. 루쉰은 큰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사람의 생명을 구하고자 수련하는 이들이 사람을 죽이는 장면을 보고 환호할 수 있는가?’ 라는 분노와 함께 자기 동족이 죽는 것을 둘러서서 가만히 보고 있는 중국의 무지몽매에 대한 회의를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그것을 지켜봐야만 하는 자신도 무지한 중국인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의술을 통해 몸의 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인의 낙후된 정신을 각성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의사의 길을 포기한 채 비로소 문학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리하여 허구를 비판하고 진실을 추구하는 작품들로 10억 중국인을 깨어나게 한 ‘중국의 기상나팔’ 루쉰이 탄생한 것이다.

- 권용선 <루쉰을 읽는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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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문화] 새해 다짐

2007/02/23 17:13

새해 다짐
 
 
새해에는
단 하루만이라도
가지런해야겠다
세상이 어지럽지만
내가 단정하지 못했구나


새해에는
단 하루만이라도
고요해져야겠다
세상이 시끄럽지만
내가 말이 너무 많았구나


새해에는
단 하루만이라도
멀리 내다 봐야겠다
세상이 숨가쁘지만
내가 호흡이 짧았구나


새해에는
단 하루만이라도
간소하고 나직해야겠다
세상이 온통 대박행진이지만
내가 먼저 비우고 나누지 못했구나


새해에는
단 하루만이라도
홀로 외로워져야겠다
좀 흔들리고 눈물도 흘리고 가슴아파하면서
내 사람이 온유해져야겠다


그리하여 새해에는
나의 하루 하루가
좀 더 치열해져야겠다
과녁을 향해 팽팽히 당겨진 화살처럼
하루 하루를 내 삶의 가장 깊은 곳으로
온전히 집중해야겠다
 
 
- 새해에는 더 해맑은 다짐으로 더 진실한 성취와 향기나는 사람의 꽃을 피우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나눔문화에서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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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념] 고해(苦海)

2007/02/21 12:13

출근하기 위해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면서,

 

사람이 사는 것 자체가 고통인가? 

불가에서는 인간세상 자체가 괴로움이라는 의미에서  고해(苦海)라고 말한다.

 

탐(貪 탐냄), 진(瞋 화냄), 치(痴 어리석음)

고통의 바다! 바다는 참 넓다.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이다. 

 

참 세상 사는 일이 마음 먹은 대로 되질 않는다.

예전에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더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였지만, 지금은 그런 에너지가 많이 고갈된 것 같다.

 

괴로움이 없는 하루, 자유로운 하루.

이것이 내가 오늘 갈망하는 하루다.

 

 

-2007.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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