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보통 근대를 경제적인 차원에서 하나의 피라미드로 표현하지 않습니까? 자본의 집중이 고도화된 후기 자본주의 같으면 맨 위에 있는 극소수의 다국적 대기업 대주주들을, 밑에다가 대다수의 고용 근로자들이 피라미드형으로 받쳐주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19세기 – 20세기초기의 근대 사회들을 보면 경제 뿐만 아니고 욕망의 충족이 허락되는 정도를 척도로 삼아도 피라미드형 사회의 그림이 그려질 것입니다. 예컨대 당대의 근대 사회의 준거틀로 인식됐던 빅토리안 시대(1837-1901)의 영국을 생각해보시지요. 귀족층이나 부유한 중산층의 성인 남성들은, 말로는 "자제의 도덕"을 들먹여도 고급 포르노그래피나 에로틱 문학을 열람한다든가, 고급 매춘부의 고가 "서비스"를 이용한다든가 등의 성적 욕망의 자극과 충족에 있어서는 별다른 제한을 느끼지 않았던 것 아닙니까?
  
  그러나 하류층의 매매춘 행위 같으면, "전염병 방지법" (1864, 1866, 1869)과 같은 국가적 위생기구의 통제와 교회, 자선가의 지탄을 늘 받아야 됐지요. 남성의 성욕 충족은 쉬워도 여성에게 "가정주부의 덕목"이 강요됐으며, 성인의 성생활이 다채로워도 청소년의 자위 행위마저도 "비도덕적이며 비위생적인", "힘과 담력의 함양을 방해하는" 요소로 규탄받았지요. 즉, 그 성적 욕망을 늘 여러 가지 방법으로 충족시킬 수 있었던 부유한 성인 남성이 "욕망의 피라미드"의 상부를 이루었지만, 그 상부를 받쳐주는 것은 "자제"가 강요된 대다수의 빈민, 여성, 청소년들이었습니다.
  
  다소의 차이도 있었지만 "욕망의 피라미드"의 기본틀이 초기 근대의 조선에도 그대로 이식된 것 같습니다. 중류 이상의 성인 남성이 요정에서 〈조선미인도감〉이나 권번의 "초일기(草日記)"의 유혹적인 사진으로 그 색욕을 자극하여 기생을 불러 노는 것은 어려운 일도 이상한 일도 별로 아니었습니다. 아니, 직업을 찾지 못한 대학 졸업생 - 소위 "고등 실업자" - 이라 해도, "중류" 남성 사회에 대한 소속감을 느꼈던 이상 유곽에 들락날락거리는 것을 다반사로 삼았습니다.
  
  
채만식(蔡萬植, 1902-1950)의 명작 〈레디 메이드 인생〉(1934)에서 법률 책을 잡혀 술집 갔다가 유곽에 가는 몇 명의 무직 인텔리의 모습을 기억하십니까? 카폐 여성들을 희롱하는 것을 특기로 삼는 염상섭(廉想涉, 1897 ~1963)의 소설 〈만세전〉(1922)의 주인공 "이인화"의 표현대로 "여성의 뭉실뭉실한 살"을 걱정을 잊기 위한 도구로 삼는 것은, "중류"성인 남성의 일종의 계급적인 특권이었습니다.
  
  그러나 "절지"(折枝 – "꽃 꺾기" – 기생 부르는 일의 별칭)가 "위"의 일상의 일부분이 된 개화기, 일제 시절의 사회에서는, 연령적, 사회경제적, 성별적 "하부"에 강요했던 것은 역시 맹목적인 "자제", "정숙", "정조"였습니다.
  
  〈황성신문〉(1909년 9월3-4일, 논설 "조혼의 폐해")이 조혼 (早婚)을 근절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주된 원인 중의 하나는, "규문의 일"(즉, 10대 부부의 성관계)로 남성의 지기(志氣)가 박약해져 민족을 위한 영웅, 사업가나 학자로 될 수 없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10대 중,후반의 청소년이 근대성 담론의 차원에서 사회적 "보호"의 대상물로 전락되기 시작한 것은 바로 개화기입니다.
  
  "정결과 정조를 늘 지켜라", "훌륭한 아내와 어머니가 돼서 근대적 학식을 익혀 민족 영웅이 될 사내 아이를 어릴 때부터 잘 가르쳐라"(〈대한매일신보〉, 1909년 11월17일자, "여자 교육에 대한 의론")와 같은 요구는, 여성에게는 한층 더 강력했습니다. 한국 전통 에로스의 진수라 부를 만한 〈춘향전〉을 "음탕교과서"(
이해조, 〈자유종〉, 1910)라고 매도할 만큼 빅토리안적인 "정숙"과 "자제"가 절대시됐던 것이지요.
  
  우리는 대개 개화기 때 성취한 것 중의 하나로 여성을 위한 근대적인 교육을 꼽지 않습니까? 물론 1910년 이전에 근대 교육의 수혜자가 된 여성은 극소수에 불과했지요. 1909년 같으면 공립, 사립 보통(즉, 초등) 학교에 재학 중인 여학생은 1,274명이었는데, 여성만이 다니는 이화, 정신(貞信), 배화, 숭의와 같은 사립 고등보통 여학교의 수는 말 그대로 열 손가락으로 셀 만했습니다. 수백 명에 불과했던 그 신식 학교 여학생들은 대개 개화 지향적인 신흥 지배계급에 속하거나 선교사의 도움을 받아 공부하여, 나중에 선교사 밑에서 일하게 돼 있는 "주변 분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들은 여학교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었습니까? 기독교 계통의 계몽주의자 노병희(盧炳喜)가 선교사들의 도움을 받아 1909년에 발간한 〈여자소학수신서〉라는 그 당시의 전형적인 여성 윤리 교과서를 한 번 펼쳐봅시다.
  
  그 제일과는 – 예상대로 – "얌전"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고 그 내용인즉: "대저 여자의 행하는 것과 앉는 것과 눕는 것과 일어나는 것은 남자와 다름이 많으니 마땅히 얌전하고 씩씩하며 단정하게 하되 머리를 자주 빗으며 윗옷과 치마를 (…) 깨끗하게 하고 (…)
서기와 앉기를 기울게 말며 거만한 모양을 드러내지 말며 크게 웃지 말며 소리 지르지 말며 공연히 심술내며 성내지 말며 음식 먹을 때에 이리저리 옮겨 다니지 말며 (…) 한 마디라도 헛되이 말며 (…) 경망하다는 책망을 없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여자는 마땅히 얌전해야 한다"… 말 그대로 노예 교육이라고 할 이 말도 안되는 이야기는, 개화기 때 최초로 근대적으로 정형화된 뒤에 과연 한반도에서 그 족적을 감춘 적이 있었습니까? 물론 〈엽기적인 그녀〉와 같은 최근의 영화들을 보거나
엄정화와 같은 대중문화의 여성적인 우상들을 보면 요즘 "발랄한 여자"가 어느 정도 하나의 행동 패턴으로 그 위치를 획득했다고 판단할 수도 있는데, 그게 오판이 아닌가 싶습니다.
  
  영화 속에서의 '발랄한 그녀"는, 일상 생활 속에서 개화기 식의 그 "얌전함"에 그대로 옭매여 있는 대다수의 여성들에게 일종의 대리 만족을 제공하고, "얌전한 여성"을 "정상"으로 알고 있는 남성들에게 이질적인 여성상을 맛보게 하는 재미를 가능케 하는 것이지요. 영화는 아무리 "발랄"해도 회사 생활이나 가정 생활은 역시 "얌전한 행동", "단정한 외모와 의상", "누나나 어머니와 같은 인내심과 자상함" 등을 요구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독립적인 자아를 찾으려는 여성에게는 "얌전"은 저주와 같은 이야기가 되겠지만, 여성에게 순종주의를 강요하려는 사회로서는 아주 필수적인 이데올로기지요.
  
  그 교과서의 내용을 계속 말씀드려 볼까요? 물론 여성의 "일"로 방직과 음식 만들기, 집안일하기, 쓸기와 닦기를 제시하고 특히 음식 만들기를 어릴 때부터 배우기를 권하는 것이고, 여성의 본분으로서 특히 부모 섬기기와 시부모 섬기기를 강조하지요.
  
  "시부모가 부르시거든 공순히 공경하며 대답하며, 먹을 음식이 있거든 먼저 드려 공경하고, 일이 있을 때 그 음성을 살피며 괴로움이 있을 때에도 성내지 말고 얼굴빛을 화평하게 하며 말을 공순히 하며 부드러운 기운과 참는 마음으로 그 당한 일을 참아 지내라"… 어떻습니까? 이 교과서가 나온 지 이미 거의 100년 가까이 됐지만 한국 남성이 하루에 집안 일을 하는 시간이 평균 30여 분 정도 되고 "음식 만들기" 정도는 아직까지 "당연히 여자가 해야 할 일"로 치부되지 않습니까?
  
  이 교과서에서처럼 남편을 더 이상 "부녀자의 하늘"로 부르지 않으니까 정도의 차이야 당연히 있지만 지금도 술 먹은 남편이 밤 늦게 친구를 데리고 집에 오면 아내로서 화내지 말고 상을 차려주는 것이 "여성다운 인내심의 덕"으로 보지 않습니까? 즉, 개화기 때 정형화된 남성우월주의적 근대의 젠더 담론은 지금 비록 그대로 존속된 것은 아니지만 그 노예적
  
  거짓 "도덕"의 골자인 순종주의의 강조는 계속 이 시대의 여성들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여성에게 경제적, 정치적 권력을 제대로 나누어주지 않는, 남성이 실권을 잡은 사회인 만큼 여성에 대한 초기 근대의 극단적인 억압성이 극복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한국 개화기의 근대는 남성의 욕망을 부추기면서도 여성의 욕망을 이렇게 극단적으로 억압하는 방향으로 그 틀이 잡힌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는 물론 이웃 나라에 비해서도 훨씬 심한 성리학적 사회의 반(反)여성적인 성격이 아닌가 싶습니다. 예컨대 1850년대에 태평천국의 반청 (反淸) 봉기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혁혁한 공로를 세운 태평군의 여군 (女軍)과 같은 존재를, 조선말기의 어떤 민란에서도 아마도 찾기가 힘들 듯합니다. 민중 투쟁에서의 여성의 참여야 당연히 있어서도 수많은 여성이 무기를 든 투사가 된다는 것은 조선 사회로서는 상상하기가 어려웠던 것이지요. 물론 태평천국 때의 여군의 성분을 보면 상당수가 광서성의 장족(壯族) 출신들이었는데, 모계 사회로서의 면모를 부분적으로 간직해온 장족의 젠더 질서의 구조가 조선은 물론, 가까이 사는 한족과도 많이 달랐습니다.
  
  그런데 한족이라 해도, 남성보다 더 적극적으로, 더 용감하게 폭력 투쟁에 앞장서는 여성 투사의 상을 꽤나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감호여협(鑑湖女俠)"이라는 아호를 가질 만큼 어릴 때부터 말타기와 검술 등을 즐겼던 청나라 말기의 혁명 투사 추근(秋瑾: 1875~1907)을 생각해보시지요.
  
  아이를 가진 뒤의 남편과의 이혼과 일본 유학, 일본에서의 동맹회라는 공화주의 조직에서의 맹활약, 귀국 이후의 여성 신문 발간과 비밀리의 혁명군 조직, 그리고 굴복함이 없는 장렬한 죽음…
잔 다르크는 그 "애국 정신" 덕분에 개화기의 조선 신지식인들 사이에서 꽤나 인기를 모은 인물이었는데, 살아 있는 잔 다르크, 즉 추근처럼 남편도 버릴 줄 알고 칼도 들 줄 아는 여성을 동지로 삼기에는 "자강회"나 "신민회"의 남성 계몽주의자들은 개방적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다른 이유를 들자면 남존여비 사상을 "양처현모"라는 방식으로 근대화시켜 새로운 젠더 이데올로기를 창출한 메이지 일본의 영향을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구한말의 여성을 위한 수신 교과서의 상당 부분은 바로 일본의 수신 책을 본딴 것이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여성의 목을 옥죄는 끈질긴 유교주의와 일본 영향에다가 여성을 "얌전" 등의 이름으로 압박한 것은 바로 그 당시의 조선 신지식인계의 젠더 담론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던 기독교가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조선 최초의 여학교인 이화학당이 1886년에 바로 선교사들에 의해서 설립됐다는 것도,
황신덕(1898-1983)과 같은 "주류"의 신여성이 "조선 부인의 생활에 광명은 기독교이었다"라고 공언하는 등 일제시대 이후의 "개명한 여성"들이 대개 기독교와 인연이 두터웠다는 것도 다들 아는 사실일 것이다.
  
  그런데, 이화학당을 세운 선교사들이 기독교 전파를 근본적인 목적으로 세워 그 학당에서 남편과 아이들에게 기독교 신앙을 심어줄 수 있는 미래의 주부들을 양성할 계획으로 교육 사업에 종사했다는 것까지는 우리가 보통 잘 인식하지 않는 듯합니다. 구미 사회의 보수적인 종교계를 대표했던 그들이 "가정과 교회에 충실한 정숙한 부인" 만들기를 목적으로 삼은 것이었는데, 이와 같은 젠더의 논리는 아주 쉽게 조선의 성리학과 접목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계몽기의 민족주의자들에게는 대개 기독교가 "우주와 사회의 절대적이며 전반적인 진리"로서 성리학을 그대로 대체하면서 상리학적 색채를 띠는 경우가 많았는데, 여성 억압적인 이데올로기의 차원에서는 그 접목의 과정은 아주 자연스러웠습니다.
  
  개화기 때 조선에 이식되어 유교화된 기독교의 여성관을 살펴보기 위해서 초기 기독교 문학을 조금 흝어보는 게 어떨까요? 예컨대 기독교적 영향을 강하게 받은 전형적인 친일 언론인
이상협(1893-1957)의 소설 〈눈물〉(〈1913-1914년 〈매일신보〉 연재)을 보시지요.
  
  거기에서 관료였다가 근대적 실업에 투신한 은행가 서협판의 딸 서씨부인은 바로 결함이 없는 모범적인 규수입니다. "남자의 안목이 황홀할 정도"로 용모가 뛰어나지, 엄격한 유교적인 가풍 속에서 자라와서 남편을 섬기는 정성과 예의가 대단하지, 부모들이
정해준 가정의 사업 계승자인 조필환과 "아무런 추잡함이 없는 순결하고 신성한 연애"를 잘하여 결혼하지 – 말 그대로 문제될 게 하나도 없습니다. 거기에다가 조필환에게 한문까지 배웠으니 여중군자인 셈이지요. 부유한 집에서 순결하게 성장하고 "여자에게 필요한 만큼" 교육을 조금 받고, 부모를 섬기고 남편을 내조하는 "정숙한 규수"야말로 본인들도 대다수 상류층이나 중산층에 속했던 계몽주의자들의 긍정적인 여성상이었던 모양입니다.
  
  서씨부인과의 대척점에 서 있는 주인공은, 그 남편 조필환을 유혹하여 일시적으로 현명한 부인을 버리게 만든 악한 기생 "평양집"입니다. 지체 없는 가정에서 태어난 그 천한 "평양집"은 남자를 유혹하는 음탕함이 가득 찬데다가 성냄과 시기심이 많고 올바른 여덕(女德)이 뭔지도 모르는 부류지요. 그런데 이러한 부류도 결국 구세군의 설교로 그 악행을 깨닫고 뉘우치고 하나님을 믿게 되니 서씨부인과 조필환의 가정 평화가 결국 회복되고 맙니다.
  
  "정숙한 숙녀"와 "음탕한 요부"라는 두 범주로 모든 여성들을 나누고 심판하는 남성중심주의적, 중산층 위주의 이분법, 그리고 "가정"과 "종교"의 결합… 개화기 때 처음으로 마시게 된 이 독약의 여독(餘毒)은 지금도 사회의 곳곳에서 남아 있어 우리 몸과 마음을 마비시키고 있습니다.
  
  한 번 생각해보시지요. 한국 사회에서 지금이라도 자기 친구나 가정에게 자신과 동거하고 있는 여자 친구를 "나의 동거녀"라고 소개하려면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하겠습니까? 노르웨이 같으면 20대 중에서 결혼한 쌍들보다 동거하는 쌍이 더 많고 "동거녀"나 "동거남"은 "부부" 못지 않게 정상적인 명칭이 됐는데, 우리는 아직까지 "신성한 가정"의
허상을 그대로 붙잡는 것이 아닙니까? 아니면 공인(公人) 여성으로서 "나는 레즈비안"이라고 공언하기가 쉽겠습니까? 빅토리안 시대 가정 윤리주의의 철폐, 남들과의 다양한 형태들의 평등한 성적인 결합을 용인하는 개인 만들기 차원에서는 우리로서 아직 갈 길이 참 먼 것 같고, 대형 교회들이 지금처럼 막대한 영향력을 보유하는 이상 그 길로 가기가 그리 쉽지도 않을 듯합니다.
  
  메이지 시대 일본인들이 만든 "양처현모"라는 표현을 개화기 때 "어머니"와 "후사(後嗣)"가 중시되는 조선 식으로 "현모양처"라고 바꾸었는데, 크게 봐서 이는 19세기 후반 구미 지역의 중산층 사회의 위선적이며 억압적인 성적 모럴을 기원으로 해서 그 내용이 유교화됐다 뿐이지, 이렇다 할 만한 근본적인 변화는 없었던 듯합니다.
  
  "현모양처"가 돼야 된다는 성차별적인 가치관을, 식민지 시대의 교육을 받은 대다수의 "신여성"도 별다른 저항 없이 받아들이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보통 "신여성"들을 "사회 활동가"로 상상하지만, 실제로 공산당 지도자와 동지 결혼하여 사회주의 운동에 투신하거나 아예 독신으로 살면서 사회 활동을 하는 소수(
박헌영의 부인 주세죽, 최창익의 처 허정숙, 독신녀 김활란 등)를 제외하고는 대다수의 "신여성"들의 꿈은 남편을 보필하여 아이를 훌륭하게 키우는 정도였습니다. 남성은 호탕해야 하지만 여성은 정조를 무조건 지켜야 한다는 이데올로기에 그들도 그대로 길들여지고 말았던 것이지요.
  
  그러한 배경을 염두에 두면, 유부남인 애인과의 동반자살(1926년)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소프라노이자 여배우
윤심덕(尹心悳)과, 남편 김우영과의 이혼 과정을 그 유명한 "이혼 고백장"(〈삼천리〉, 1934년 8-9호)에서 솔직하게 서술하고 무책임한 애인 최린으로부터 당당히"정조 유린에 대한 위자료"를 요구해 합의금을 받는 데에 성공한 화가이자 문필가 나혜석(羅蕙錫, 1896-1948)은 진정한 영웅으로 보입니다.
  
  왜 굳이 "영웅"이냐고요? 여성의 욕망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았던 근대 초기의 사회에서, 예술적 재능이 뛰어난 이 2명의 조선 여인들은 개인적 불행을 끝까지 감수하면서 그 욕망을 솔직하게 실천할 권리를 위해서 싸우다 갔기 때문입니다. 윤심덕은 아까운 젊은 나이에 죽고 나혜석은 죽음보다 더 무서운 무의탁 폐인의 생활을 몇 년 하다가 갔지만 둘 다 현모양처를 되라는 체제의 요구를 끝까지 거부한 셈이지요.
  
  이와 같은 "반란자"들이 암울했던 그 시대에 여성 몸의 독립의 길을 텄기에 오늘날의 한국이 아시아에서 가장 활발한 페미니즘 운동을 자랑할 수 있지 않습니까? 둘 다 자산 계급의 딸이었지만, 왠지 그 몸의 주권을 되찾은 그녀들을 "혁명가"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햇빛이 보이는 오슬로에서 박노자 드림
  
  참고 문헌:

  
  
신영숙, "일제하 신여성의 연애결혼 문제", - 〈한국학보〉, 45, 1986.
  이배용, "개화기, 일제 시기 결혼관의 변화와 여성의 지위", - 〈한국근현대사연구〉, 제10집, 1999.
  고미숙,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 – 민족, 섹슈얼리티, 병리학〉, 책세상, 2001.
  
이길연, 〈한국 근현대 기독교 문학 연구〉, 국학자료원, 2001.
  Wells, Kenneth M. "The Price of Legitimacy: Women and the Kunuhoe Movement, 1927-1931." In Gi-Wook Shin and Michael Robinson, eds. Colonial Modernity in Korea.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Asia Center, 1999.
   
 
  박노자/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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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2. 25

 

FTA 대신 만들어 10개년 농정로드맵, 이거, 정말 웃긴다. 간만에, 정말 웃어본다.

농업에 경영능력을 들이대고, 경영 능력없는 농가는 시장의 움직임에 의하여 퇴출되어야 한다는, 기업과 노동자에 대한 논리를 들이대는데... 글쎄올시다.

현재 20대 농가가 우리나라에 몇 개나 있을까? 2002년 통계로 정확히 3048가구가 20대에 농사를 짓는다.

서울특별시에는 딱 한 가구가 농사를 짓고 있다. 전라남도가 668호로 가장 많고, 경기도, 충청북도, 경상북도가 300호 이상의 20대 농업가구가 존재한다. 전라북도에는 203호의 20대 농가가 존재한다.

그리고 전체 농업인구의 55% 정도가 65세 이상의 농가이다. 65세 이상은 농사가 되든 안되든 농업을 안지을 수 없는 사람들이다.

퇴출에 관한 얘기와 경영능력에 관한 것이 도대체 누구를 겨냥한 얘기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기본적으로 누가 농사를 짓고 있고, 우리나라 농업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에 관해서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은 느낌이다.

전국의 3048호의 20대 농가... 한 대학교의 한 학년 수도 안되는 숫자가 우리나라의 "젊은 영농인이다." 그리고 5년 후에 우리나라 농업인구의 절반이 70을 넘어선다.

이런 숫자들로 주요 수치들을 검토해보자. 농가 인구가 전체 인구의 7.5%에서 2013년도에서 3.4%로 낮추겠다... 그냥 있어도 이렇게 된다. 10년 후면 30대 농업인구가 3000명대가 되고, 상당히 많은 농업인이 고령과 사망 등의 이유로 자연스럽게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된다.

이런 전환을 촉진하기 위해서 헥타아르등 64세 이상 농민에게 24만원의 보조금이 지급된다. 역시 70% 이상의 고령 농민들은 1 헥타르 미만이므로, 어지간하면 논 좀 많이 가지고 있는 노인들은 평균 50만원 정도 받고 논 좀 파시라는 얘기랑 마찬가지다.

그렇게 해서 결국 6헥타르의 전업농 7만 가구를 만들어내는 것이 이 농정 로드맵의 핵심이다. 실제 10년 후에 30대로서 농업의 허리를 담당할 사람이 지금 3000호 정도인걸 알고 하는 얘기인지 모르겠다. 30대로 범위를 넓혀보면, 전국에 4만 가구정도 존재한다.

어떻게 생각해도, 현재의 50대 이상의 가구는 어차피 늙어서 손댈 필요가 없으니까, 40대와 50대 숫자로 6만호라는 숫자를 꺼집어냈겠지만, 20대 농업인구 3천호를 놓고 보면, 지독하게도 농업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감추기 어렵다.

이제는 그만둘 사람이 더 이상 농촌에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자 그 다음에 내친 김에 몇 가지만 더 들여다보자.

이 6헥타르를 쉽게 하기 위해서 농지도 풀고, 구매를 쉽게 하지만, 이미 작년에 주말 농장 이름으로 3백평을 풀면서 증명이 된 것이 외지인들이 투자 목적으로 농지를 구매하게 된다는 사실이고, 현 경제팀은 이렇게 더 쉽게 농지를 풀고, 여기에 아파트와 공장을 지으려고 하는데, 이 농지 전환이 6헥타르로 간다는 건, 그야말로 당신들의 희망이다.

근데 이렇게 비농지 목적으로 인근의 농토가 계속 풀리면서 토지가격이 높아진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설령 6헥타아를 구입하더라도, 높아진 토지 가격 때문에, 더욱 더 가격 경쟁력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점이다. 국가가 전부 나서서 아예 구매해주고 임대한다면 모를까, 경자유전의 원칙과 신자유주의 원칙이 동시에 작용하는 현재의 농업 조건상, 이렇게 해서 6헥타아를 확보하게 되더라도, 이미 높아진 토지 구매 비용 때문에 경쟁력은 택도 없는 얘기다.

여기에 결정타를 먹이는 것이 내년에 실시하겠다는 추곡수매제다 폐지이다. 지금까지 그나마 10년 동안 우리나라 농사를 지켜온 추곡수매제 폐지를 다른 말로 번역하면, 6 헥타아르 만큼 크게 망하게 된다는 얘기이다.

우리나라 농업수익률이 얼마나 되는지 아시는가? 평균 1.5%의 수익률을 자랑스럽게 기록하고 있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농가부채를 피해나갈 수 없다는 얘기다.

거기에 더욱 '그림의 떡'처럼 붙여놓은 농약과 화학물질을 차단한 농산물에 대한 우수농산물관리제도라는 거가 그렇다.

6헥타르, 즉 만 팔천평에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고 농사지을 수 있는 슈퍼맨 있으면 나와봐라다, 정말... 다이옥신 성분으로 이루어진 제초제 사용하지 않을 방법이 없는 만큼, 이 대규모 기업농화라는 건, 머리 속에만 있는 그야말로 상상 속의 경영이다.

상황이 이런데, 경영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정책지원을 한다는 얘기가 의미하는 바는? 머리 있고, 경영 능력이 있는 사람은, 1.5%의 수익률에 그나마 수급 조절 기능을 가진 추곡수매제도 사라진 상태에서, 그리고 6헥타르의 농토 역시 거꾸로 가격이 올라갈 상태에서 투자할 것인가?

경영 마인드가 있는 사람이면 절대로 이런 투자는 안한다.

우리가 원하는 변화는 좀 더 총체적이며, 미래지향적인 소농 위주의 유기농 형태로의 사회적 전환과 이를 위한 단계적 계획 같은 것이지만, 지금 정부가 로드맵으로 제시한 건, 어차피 가만히 있어도 농업이 망할텐데, 그 때까지 뭔가 정부가 했다는 면피 이상은 아무 것도 아니다.

정말로 의지가 있다면, 이런 모순에 가득찬 6헥타르, 전문농업인 7만이라는 구호부터 폐지해야 한다. 이 대규모 소수 정예 기업농 방식은 온 국토를 망칠 뿐만이 아니라, 온 국토를 화학농으로 전락시킬 뿐이다.

게다가 이렇게 조각조각 만들어낸 6헥타르가 캘리포니아처럼 한 군데 바둑판처럼 몰려있기를 기대하는가?

또 다른 한편에서의 농림부 기준으로 농약과 제초제를 강화하는 종합계획이 수립되어 이미 집행되고 있다. 지금 6헥타르를 따라가는 농업인들은 현재의 농림부 계획대로라면, 2~3년후면 반환경적인 농업으로 국토를 좀먹는 농업의 적으로 내몰릴 사정이다.

한 쪽에서는 어쩔 수 없이 규제를 강화한다고 하면서, 한 쪽에서는 수익성과 환경적인 측면에서 사회적으로 퇴출될 수 밖에 없는 대규모 영농으로 전환하라는 로드맵을 제출하면서, 그래도 우리는 농업을 위해서 무언가 하고 있다는 얘기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녹색정치는 6헥타르, 7만 전문영농인을 위한 로드맵에 대하여 반대한다. 국토환경과 생태계 보호를 위해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회적 소수로 전락해버린 농업인이 더 이상 오락가락 정부의 미친 영농정책의 희생자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원칙 때문이다.

정부는 이 사기와 기만, 그리고 기본적으로는 자기 통계와 자료 분석도 제대로 안한, 보여주기 정책을 앞뒤맞지 않게 모아놓은 농정 로드맵을 부디 폐기해주시기 바란다.

조각조각난 6헥타르 위에 농업인의 눈물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고, 농정경영능력이라는 미사 여구 아래, 농촌 지역에도 아파트를 지어줘야 한다는, 미친 경제정책을 그만보고 싶다.

지금 농업에 20대가 3,000가구, 전국에 달랑 3,000 가구가 남아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농촌 지역의 아파트가 아니다. 이들은 헬기로 날아다니면서 농사지을 수 있을 것 같은 6헥타르가 아니다. 제대로 된 직불제와 제대로 된 유통구조, 그리고 기본적인 정부의 지원이 필요한 거지, 경영능력을 입증할 '경영 마인드'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거의 정부가 무상으로 제공해준 100헥타르 이상의 대평원에 헬기로 농약과 제초제를 무한정으로 살포하는 카길사와 우리나라의 농촌이 같은 조건에 있는 것이 아니다. TV를 너무 많이 봐서 머리가 이상해졌다고 할 수 밖에 없다. 꿈의 6헥타르가 아니라, 악몽의 6헥타르가 펼쳐지는 것을 보고 싶지는 않다.

당신들 정부는 이렇게 몇 년 버티고 농업을 경제 부흥의 이름의 개발정책으로 건설경기나 일으키고, 허울만 가지고 시간을 때우면 그만이지만, 지금 당신이 망가뜨리는 것은 우리나라의 몇 백년을 한꺼번에 해치우고 있는 중이라는 걸 아실지 모르실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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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리]청계천을 막지 못하다니...

2005/12/12 12:00
새만금도 어렵지만, 청계천은 더욱 어렵다.

그리고 새만금도 죄질이 나쁘지만, 청계천은 더욱 죄질이 나쁘다.

새만금에는 힘들게 살아온 전북이라는 특정한 지역의 경제가 저당잡혀 있어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청계천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그냥 죄질이 나쁘기 때문에 아주 마음 편하게, 이 나쁜 놈들 하고 말해줄 수 있어 속만은 편하다.

그러나 막기는 매우 어렵다. 명박이형이라는 써글 놈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정말 복잡한 서울이라는 특별한 도시의 발전상, 그리고 도시 빈민의 문제, 게다가 조악한 인프라라는 문제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1. 생태하천 복원이라는 말 좀 쓰지 마라!


청계천은 생태계라는 말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정확히 얘기하면 조경에 가까운 일이다... 쓰바...


생태하천이라구 허벌 썰레발 떨지만, 그냥 쉽게 얘기하면 집에다 어항을 하나 갖다 놓는 거랑 똑같다구 보면 된다. 한강물을 푸든, 아니면 지하철 역사의 지하수들을 퍼오던, 하여간 그냥 커다란 어항 하나를 갖다 놓는다고 보면 똑같다.

원래 청계천 자체가 인공하천이기 때문에 건천이라고도 하는데, 하여간 물은 별로 없다. 아무리 삐가번쩍하게 해두, 늘상 물이 흐르는 하천이 아니기 때문에 명박이 형, 참을 수가 없다. 물 퍼다가 다시 흘리는 거다.

그냥 물만 흘리면 분수 같은 개념이지만, 물고기도 몇 마리 푼다고 하니까 그냥 어항 하나가 도심 한 가운데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걸 생태계라고는 안하고, 그냥 조경사업이라고 한다.

더 쉽게 얘기하자. 집 안 한 가운데 어항이 있으면 기분은 좋다. 거기에 자라를 키워두 되고, 아니면 아무 거나 넣어두 된다. 기분 나쁘면 치우면 그만이다.

그런 어항이 허벌 큰게 하나 서울 한 가운데 들어온다고 보면 딱이다. 문제는 치우기 어렵다는데 있다. 집에 있는 어항은 애가 다치면 치우면 그만인데, 사대문 안에 떡하니 들어온 청계천이라는 어항은 나중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치우기가 좀 어렵다.

물론 그건 명박이 형이 걱정할 건 아니다. 다음에 들어올 시장이 걱정할 일도 아니다. 그냥 그게 부영양화가 되든,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키들, 그들은 걱정하지 않는다. 어, 좋은 어항 하나 생기는구나 했던 시민 전체의 조금씩의 희생, 그리고 좀 될만한 세금으로 그냥 때우면 될 일이다.

하여간 이건 어항 만드는 사업이다. 여기다 제발 생태하천 복원이니, 도시 생태계 조성이니 하는 얘기 좀 하지 마라...

쉽게 생각하면, 진짜 하천은 청계천 밑의 파이프로 흐르고, 그 옆으로 또 강에서 물퍼올 또 다른 파이프가 흐르고, 대충 예쁘게 조성된 청계천이라는 파이프 위로 물이 흐르는 거다.

왜 내가 이게 생태계 복원이라고 하지 않냐면, 강의 하구에서부터 시작되는 생태계가 여기에는 없기 때문이다. 그냥... 미끈둥한 파이프가 강 밑으로 나오고, 강물이 스며드면서 시작되는 정상적인 생태계의 기초가 여기에는 없기 때문이다.

이 속에 사는 물고기들... 비들기 같은 거라고 보면 된다. 파리의 비들기들은 자동차가 달려오면 열심히 뛰어간다. 정말 열심히 뛰어간다. 나는 본능마저 까먹은 비들기 같은 것들을 어항 안에 뿌려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2. 이거, 개발 파쇼의 복권이다!

전설이 몇 가지가 있다. 무슨무슨 위원이라고 참가한 사람들이 다 빙신이거나다 꼴통들인 것만은 아니다. 거기에도 생각이 있는 사람들도 있고, 양심있는 사람들도 있다.

쌩깐다는 말은 이럴 때 쓴다. 회의에 참가한 명박이 형, 계속 졸다가, 회의 끝날 때쯤, 그럼 언제부터 첫 삽을 뜨게되는 거지요?

건설회사는 노난다. 이건 새만금과 비슷하다.

명박이 형과 서울시 선거 같이 뛰었던 사람들. 인생 풀린다.

좋은 건? 명박이 형, 건설업체, 인근에 땅 있는 소유주들...

죽어나는건? 이와 상관없이 세금을 내야하는 나머지 서울 시민들, 강북으로 출퇴근 해야하는 사람들과, 어쨌든 그 근처에 가야하는 사람들, 청계천 일가에서 먹고 살았던 사람들, 그리구 강북 뉴타운 건설이라고 명박이 형 꾀임에 넘어가 허벌레 하는 사람들... 이 사람들이 죽어가는 거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건 없는 사람들과 있는 사람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땅을 가진 사람들과 그냥 임대해 가계하나 가지고 있던 사람들과, 뭐 그런 사람들간의 문제이다.


3. 왜 어려운가?

여기에 프로들이 개입하지 못한 것은 복계하천 청계천의 상태가 꼴이 아니었고, 또 청계고가의 안정성에도 문제가 없다고 말할 수 없던 두 가지 문제 때문이다.

그럼 그냥 청계천 썩도록 하면 좋겠어? 니가 청계고가 무너지면 책임질래?

이 두 가지 문제에 프로 중의 프로라고 자부하던 자칭 전문가들이 전부 입 다문게 청계천 복원사업의 또 다른 핵심이다. 그래서 어려웠고, 다들 입 다물었다.

청계천 복원은 대의적으로 좋은게 아니었을까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나, 별 다른 대안은 없었다... 이 두 가지 중의 하나의 입장을 취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중에 정답은?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어벙벙한 말 밖에 할 수 없는가? 실제로 그렇다.

무엇보다도 서울시에서도 아무런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이건 안되고, 저건 되고라는 검토를 할 수가 없었다고 말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4. 이제 내일이면 고가가 헐리고 남은 것은 숙제들 뿐이다...


이제 청계고가의 통행금지가 시작되고, 헐릴 것이다. 고가를 다시 손을 보고, 시간을 갖고, 적절한 복원에 대해서 검토를 하자는 대부분의 주장이 힘을 잃게 된다.

명박이 형은 생각보다 쉬웠다고 샴페인을 터뜨릴 것이다.

그러나 악랄하게 여기서도 교훈 하나를 취할 수 밖에 없다.

청계천에서 내몰린 사람들... 그들을 위해서라도 무엇인가 필요하다.

그리고 긴긴 싸움은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다.

더 이상 이 땅에 이런 개발파쇼, 정보독재와 밀실행정에 의한, 그리고 '환경을 위한다는' 어항 행정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말만으로 그러한 것들은 생겨나지 않는다.

헐린 고가 아래로, 우리는 하나의 패배를 가지게 된다. 이명박이라고 대표되는 개발 아이콘에 대하여, 패배 하나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이건 지난한 싸움의 시작에 불과하다. 앞으로의 5년 내내, 늘 지고 싶지는 않다. 5년 동안, 기나긴 방어가 지리하게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최대한의 선방을 하고 싶다... 그리고 다시 5년... 그 때도 지금처럼 암울하게 패배하고 싶지는 않다.

손 한 번 제대로 못써보고 밀리는 이러한 싸움을 다시 반복하고 싶지는 않다.

정치세력화가 절실하다는 것을 절감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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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리] 새만금을 디벼주마

2005/12/12 11:58

2003. 6. 8

 

새만금을 둘러싼 고도의 술수들을 디벼주마…

새만금 간척사업에 대해서 말이 많다. 현재 상황, 졸라 복잡하다. 하꺼야 마꺼야…

오해가 오해를 불러온다. 청와대도 바짝 긴장했다. 정신 차려야해… 한 발만 잘못 딛으면 여기서 지옥이야.

전북도 바짝 긴장했다. 밀리면 죽는다. 이건 지역감정으로 끌어 가야해…

하여간 새만금을 둘러싸고 별 상관없는 사람과 쫌 상관있는 사람들이 정식으로 한탕 붙기 직전이다.

삼보일배가 끝나고 나서 전북의 대대적인 반격이 시작됐다. 도지사가 삭발을 했다… 엽기적인 사태가 벌어지고, 하여간 지금 새만금 반대하는 편에 서면 응징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을 했다… 졸라 무섭나? 하여간 여기까지 와버린 통에, 애꿎은 새만금… 조금씩 죽어간다.

하여간 새만금을 둘러싼 거짓말과 오해, 그리고 편견을 지금부터 디벼주마…

1. 담수호의 비밀

2000년에 민관합동조사단이라는 게 있었다. 졸라 빙신들 모여서 삽질 했다고 하는게 딱이다. 하여간 할 수 있는 거짓말들은 다 갖다 붙여서 했다는게 이거고, 그나마도 합의가 안되어서 위원장 양반이 대충 자기 개인의견인 것처럼 정부에 ‘걍 해’라고 보고서를 올렸는데, 이게 지금 말하는 2년간의 사회적 합의라는게 그거다.

근데… 이 사람들도 농사를 지어야 한다고 빙신 같은 답을 냈다고 사람들이 방방거렸지만,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던 이유가 있다.

새만금에 흘러오는 강에는 만경강과 동진강이라는게 있는데, 이 만경강이 열라 썩어있다는게 고민의 시작이다. 부분적으로 5급수고, 전체적으로는 5급수 이상되겠다. 그래서 목표 수질로 4급수를 맞췄다.

열라 복잡한 얘기해서 본 우원 가슴이 아프지만, 하여간 물 얘기 좀 하자. 1급수라는 게 있다. 청정수역이라는게 그런 건데, 걍 마셔도 되는 물이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쉬리, 이런게 여기 산다.

2급수라는 건 뭐냐? 정수하면 마실 수 있는 물이라고 보면 된다. 잉어같은게 여기 살고, 놀래미 같은 놈들도 여기서 대충 산다.

3급수? 이게 고도처리하면 마실 수 있는 물이다. 하여간 생난리를 좀 치면 먹어도 되는 물이 3급수다…

새만금 담수호의 목표 수질인 4급수, 두둥, 이게 용업용수 혹은 2급 공업용수로 불리는 물이다. 그냥 논바닥에 물대주거나 아니면 뜨거운 기계의 물을 식히는 용도로 사용해도 괜챦다는 물이 이 새만금 호수의 ‘꿈의 목표 수줄’ 4급수이다.

붕어… 이거 강한 놈이다.


< 나, 붕어… >

붕어같이 강하고 독한 놈들은 4급수에서도 죽지 않고 산다.

옛날 전두환 이전에 한강 졸라 속상하게 더러운 적 있었다. 그때에 가끔 붕어에서 휘발유 냄새가 난다더니, 하던 시절이 있었다… 목표 수질인 새만금호의 수질이 이거다.

근데 이걸 위해서 졸라 복잡한 조건을 걸었다 이거야…

만경강이 왜 이렇게 열라게 물이 안좋냐 그러면, 그 위에서 축산폐수, 그러니까 소똥 같은게 열라 내려오기 때문이거던… 근데 이 축산폐수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처리하기 어려운 수질오염물질이라는 사실…

그래서 이 4급수를 맞추기 위해서 전주를 포함한 위쪽의 개발은 전부 막고, 그리고, 에또, 비료 사용도 30% 줄이고, 또 음… 위에 가축사육도 하지 않도록 권장(?)하고…

그리고도 두둥, 위의 금강호의 물을 계속 이리로 끌어다가, 소위 물에다 물타기를 한다…

이런거거던… 그래도 4급수를 맞추기가 어렵거던… 씨바… 왜 이렇게 어려운 거야?

하여간 이래… 게다가 엿 같은 건 이게 질소나 인, 하여간 말은 복잡하지만, 그냥 변 성분이라고 보면 돼… 한마디로 똥물은 질소와 인, 그리고 암모니아 - 이거 뭔지 알지? 방구가스의 주성분 - 같은 거로 구성되어 있거던…

거꾸로 얘기하면 비료라고도 하지. 그래서 2년 전에 똥물에서 뱃놀이하고 관광할 똘아이가 누가 있겠냐고 했더니, 농업기반공사 아그들, 그건 비료성분이라서 오히려 농업에 도움이 된다고 한거야. 음… 똥물이 비료긴 하지…

이 물이 새만금 담수호로 들어가면, 으찌돼나? 농기반 아그들 얘기로는 일단 들어간 강물이 호수에 두달 반 동안 있다 나간대거던…

따땃한 여름날, 비료 성분 잘 썩인 물에 플랑크톤이니 녹조류니 하는게 한 번 팍 퍼져나가면, 골때리게 아름다운 광경을 볼 수 있겠다. 대충 여의도 30배쯤 되는 잘 썩은, 아니 잘 삭은 비료더미같은게 되는거지… 죽여줄껄… 상상도 못하게 아름다운 광경되겠다…

너같으면 그런데서 뱃놀이 하고 싶겠냐?

산업단지니 중심도시가 못되는건 이 물 때문에 그래. 마실 수 없는 물을 누가 마시냐? 너 같으면 마시고 싶냐? 그래서 금강호에서 또 지하수로로 엄청나게 물을 끌어오면 된다고 하는데… 충청도 사람들은 또 바보냐. 나중에 지네 마실 물도 없어지는 10년 후에, 나 몰라 하고 자빠지면…

골 때리게 아름다운 장면 나오겠다. 세계 최고의 간척지에 세계 최대의 오염지대… 이 오명을 새만금이 뒤집어 쓰게 되거던…

2. 갯벌이 새로 생긴다?

이 얘기만 나오면 본 우원, 또 꼭지돌기 시작한다. 음… 갯벌이라는게, 그냥 맨 갯벌이 있고, 하구갯벌이라고 하는 상당히 귀한 갯벌이 있는데… 하여간 강을 끼고 있는 갯벌과 강을 끼지 않은 갯벌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거야… 동진강, 만경강을 끼고 있어서 새만금 갯벌을 1급으로 쳐주는 거거던…

옛날에도 생겨나지 않았냐고 하지만, 옛날에는 강을 안막았쟎아, 븅신들아…

갯벌을 구성하는 고운 모래는 바다에서도 오고 강에서도 오는데, 실제 영양분은 다 강에서 내려오거던…

그냥 바닷가의 모래사장 알지… 거기에 별 거 없는건, 그냥 모래구, 별 영양이 없어서 그렇거던…

여름에 모래사장에 해수욕가서 낙지 잡아본 적 있냐? 이상하게 모래사장에는 별 거 없지? 그게 영양분 때문이거던…

그걸 강이 숨을 쉰다고 그러는건데, 새로 생기는 갯벌은 크기도 허벌 작을 뿐더러, 강이랑 끊겨 있어서, 모래사장 비슷한데, 모래가 곱지는 않고… 하여간 모래더미 같은거거던…

물론 독한 넘들은 거기에서도 살지… 5급수 이상 물에서도 사는 넘들 있으니까…

그걸 ‘죽벌’이라고 해. 죽어있는 갯벌이라는 거지…

3. 전북경제에 도움이 된다?

쓰다보니까 또 열받기 시작한다. 지금 국민소득 만 불이라고 하지만, 전북 지역은 7천불도 안돼… 가슴 한구석이 아리기 시작한다.

하여간 정치하는 죽일 넘들이, 그런 전북 사람들을 댓구 사기치는 거랑 비슷해. 그래도 워낙 전북에 아무 것도 없으니까… 이해도 되고, 맘도 아프지.

근데, 이런 거야. 지금 아무리 뭐라고 해도, 거기에는 농지 밖에 못들어가. 지금은 다 아는 척 하지만, 자료 갖다놓고 검토하면 그렇게 결론날 수 밖에 없거던…

옛날 총리시절, 이한동이라는 한또도 잘 해줄려고 했는데, 가만 보니까 이거 완전 청문회 감이거던… 그래서 농업이라고 결론을 낸 거야. 누가해도 물문제 때문에 그럴 수 밖에 없어.

물막이 끝나면, 공사는 그때부터 시작이야. 물빼고, 열라 빼고, 거기에 소금기 빼고, 10년은 기다려야 하는데, 실제 정부예산은 1700억원씩 밖에 안 들어가니까, 사실 그 예산으로 이거 끝낼려면, 백년이 걸리거던…

음… 좀 정부에서 신경 써주면 50년…

그야말로 공사는 조금씩 하면서, 갯벌은 죽고, 그안에 있던 넘들도 다 죽고…

먼지 풀풀 날리면서 그냥 10년 동안 공사장으로 되거던… 냄새도 좀 날거야. 갯벌 안에 있는 넘들 죽은거… 그리고 담수호로 바뀌면서 바다고기들, 죽거던… 어느 날 한 번에 죽으면, 바다 위에 배를 내밀고 좀 썩을 거거던…

관광? 이 10년 동안 물썩고, 고기들 죽은 거 보러 오겠냐? 너 같으면 공사장 먼지 날리는데 회먹으로 오고 싶겠냐?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십년 동안 ‘우리의 옥토’ 기다리는 동안에 전북 경제가 살아난다구?

살아나면, 지금 전북경제의 꿈이고 희망이라고 한 사람들, 노벨 경제학상 다 받을거야. 간척으로 지역 경제가 살아나다! 케인즈 선생의 뉴딜로도 미국 경제가 살아나지는 않았거던…

하여간 어쨌든 새만금이 죽더라도 전북경제라도 살아났으면 좋겠지만, 그러면 정말 지금 사기꾼들이 경제학 이론을 바꾸는 셈이야. 아니라구?

시장의 철의 법칙이 10년 후에 작동되는걸 함 구경하는 재미도 솔솔치 않을거야.

아, 물론 농기반 아그들은 살아나지. 지금 걔네 예산 90%가 새만금 관련 사업이거던… 다시 말하면 밥줄 없을 놈들이 10년 동안 덩더쿵 덩더쿵 하면서 월급 받는데는 지장없지만, 전북경제에는… 큰 도움 안돼…

왜냐구? 다른 동네는 10년 동안 노냐? 광주, 평택, 부산, 대구… 살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거던… 물론 전북이 티나게 살기 어렵구… 그래서 내고 맘이 아프지만…

그러나 하여간 딴 동네는 살자구 10년 동안 허벌라게 열심히 뭔가 할꺼거던…

심하게 얘기하면, 1,700억원만큼 들어오는 돈, 그나마도 기획예산처에서 짤려서 내년에는 1,600억원이거던… 이거 머리수로 나눠봐? 1인당 5만원 정도?

매년 5~6만원 정도… 그나마도 이거로 돈 버는 분들은 만 명도 채 안될걸… 연간 5만원 정도 받고, 아, 기분좋다, 살림살이 좀 나아지는구나, 하면서 10년 동안 그냥 기다리고 있는거야.

그래두 그거나마 없는 거보다 낫다구? 생각해봐라… 지난 9년 정도, 매년 공사 했쟎아. 근데 좀 나아졌어? 앞으로 10년 동안 똑 같은 상황이라니까…

괜챦다구? 그럼 그러구 있든지. 5년 후의 상황을 생각해봐. 전국, 아니 세계 최대의 오염지역, 전북… 그나마 내륙지대는 만경강 상류라고 개발이 꽁꽁 묶이구…

왜 전북만 미워하냐구? 미워하긴 뭘 미워해. 그렇게 되는게, ‘경제적 과정’이라는 거지.

통일되면 새만금이라는 땅이 필요하다구?

장난하나… 독일이 통일하면서 동독 지역에 열라 돈 쏟아부어준거 몰라? 새만금의 땅을 기다리면서 열라 땅 만들다 통일되면, 그땐 모든 돈이 다 북한으로 들어가게 되있거던…

통일되면 쌀 많이 필요하다구? 장난하나, 진짜… 쌀 값은 20년 후에는 더 떨어져. 그리고 농업기술도 더 발전하게 되거던… 쌀, 제발 쌀 걱정 좀 하지 마시라.

쌀이 남는게 아니라 사람들이 밥을 덜 먹는거거던… 미치겠군. 앞으로 쌀 더 안먹어.

4.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나라 법치주의 맞나?

법 얘기는 재미없지만, 그래도 해주겠다. 공유수면매립법에 의한 공유수면매립허가, 이런게 있거던. 여기에 ‘농업목적’이라고 해서, 갯벌에 대한 매립허가를 받은 거거던…

너무현 아저씨가 맞습니다, 맞고요라고 말한 건 행정행위라고 안해. 정치행위 혹은 통치행위 같은 거지…

근데 신구상기획단이 새만금 갯벌의 용도변경을 논의하기 위해서 만들어지는 순간, 이걸 행정행위라고 하거던…

정부에서 오늘부터 신구상기획단을 만들었습니다, 발표하는 순간부터 공사는 불법 공사가 되는거거던… 왜냐구? 목적이 바뀌었으니까…

그럼 그 다음날부로 법 좀 한다는 넘들이 바로 소송을 내는거지. 불법공사 강행에 대한 가처분소송… 뭐 이딴 비스무레한 건데, 미안하지만, 공사 중지 결정이 나올 확률이 높아.

계속하고 싶으면? 그냥 대법원까지 올라가는거지.

근데 공사하고 싶은 사람들이 재판에서 이길려면, 용도변경을 명확히 하고, 그에 대한 환경영향평가와 경제적 타당성까지 다시 만들어내야 하는데… 왜냐구?

이게 국책사업이라서 그렇거던… 정부는 그렇게 행위하도록 법에서 정해놨어. 근데 환경영향평가 1년 걸리는 거 알아? 그거 다시 해야되거던… 근데 아마 통과시키기가 쉽지 않을걸?

경제적 타당성 검토도 쉽지 않을걸? 왜냐구? 공단이나 하여가 다른 거로 할려면, 20조쯤 들어가는데, 거기에서 그 돈 나오는걸 만들어내기가 만만치 않을거야…

산업공단 같은거로 할려면, 간단하게 남산이 150개 정도 필요하다구 보면 돼. 왜냐구? 여의도 140배가 생겨나는데, 안 그렇겠어?

근데 이 땅을 다른데서 가져올 수 있나? 다른 동네가 다 바보야? 전북의 산이란 산은 전부 파다가 새만금에 쌓아주겠다는 얘기를 하는거거던…

농기반 아그들은 신나지. 덩더꿍 덩더꿍… 전북엔 뭐가 남아?

사실은 공사도 하지 못할거야. 바다에서 파오면 된다구? 물론 되지. 그럼 30조쯤 들겠다구 계산하겠지. 그 타당성 보고서가 깔끔하게 나오기 전까지, 새만금에는 손가락 하나 못대…

그러지좀 말라구?

내가 하는게 아니라니까… 변호사들 많쟎아. 함 보자구 지금 벼르고 있거던… 법 좀 알아? 함 고민해봐.

전북에 도움이 안될 뿐더러, 죽는 길이라니까… 환경만 죽어서가 아니구, 그런 대형 국책사업은 벌어지지 않을 거라니까. 있는 돈은 농업에서 들어오는 돈 매년 1700억원이 다야.

1인당 5만원씩 받는다고 좋아하는 동안에 하여간 처절한 일들이 벌어질 거라니까…

기분 나쁘다구? 미안해. 그런데 시장법칙이라는게 그런건데 어떻게 해. 그리고 국책사업에 대해서는 그만큼 머리 아픈 절차들을 변호사 아찌들이 그렇게 만들어놨거던…

하여간 생각들좀 해보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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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이라는 이름의 야만
열대 내 부족 삶과 문화 찾아 떠난 여행기
먹거리 모자라도 가축과 함께 나누고
족장은 권력 휘두르는 대신
솔선수범으로 지도력 인정받는 세계
어찌 미개한가

고전 다시읽기/레비스트로스 ‘슬픈 열대’

‘열대’라는 단어 앞의 ‘슬픈‘이란 형용사가 인상적인 이 책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1935년 브라질의 상파울루 대학에 사회학 교수로 부임하면서 시작된 여행의 기록이다. 이후 약 20년이 지난 뒤 쓰인 이 책은, “모닝 빵처럼 팔렸다”는 말로 묘사되는 프랑스의 베스트셀러 대열에 오르면서 그를 대중적인 스타 지식인으로 만들어준다. 물론 그 이전에 이미 그는 박사학위 논문인 <친족의 기본구조>로 프랑스 사상계의 새로운 거목으로 떠올랐으며, ’구조주의‘라고 불리게 되는 새로운 철학적 흐름을 창안했다. 이어 <슬픈 열대>, <야생의 사고> 등 저작을 통해 그는 프랑스 사상계 전반을 뒤바꿔놓은 중심인물이 되었을 뿐 아니라, 독일이 주도하고 있던 유럽의 철학적 주도권을 프랑스로 이전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래서인지 구조주의라면 “한물간 지 오래”인 1990년대 중반인가에 프랑스의 문화 관련 기자들의 투표에서 여전히 ’가장 존경하는 사상가‘ 1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여행은 다른 세계, 내게 익숙하지 않은 세계와의 만남이다. 그래서 문학도, 영화도 여행자를 좋아한다. 오디세우스의 여행, 파우스트의 여행, 혹은 손오공의 여행, 레인맨의 여행 등등. 거기서 작가는 여행자를 따라가면서 그가 다른 세계와 만나며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렇게 다른 삶을 향해 떠나자고 슬며시 우리를 부추긴다. “나는 여행이란 것을 싫어한다”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레비스트로스의 이 여행기도 그렇다. 그가 정말 여행을 싫어하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그의 여행은 뜻밖의 전화 한 통으로 인해 떼밀리듯 시작된, 그래서 더 운명처럼 여겨지는 여행이었다.

그러나 그의 여행은 어쩌면 그 전화를 받기 전에 이미 시작되었던 건지도 모른다. 역사학이 자기가 사는 것과는 다른 시간을 여행하고 탐사하는 것이라면, 그가 좋아하게 되었던 인류학은 다른 공간을 여행하며 자기와 다른 사람들의 삶을 탐사하고 연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레비스트로스는 다른 종류의 인류학자여서, 현지조사보다는 수많은 조사자료들을 비교하고 교차시켜 다양한 문화나 신화들 안에 존재하는 어떤 공통된 것(그가 ‘구조’라고 부르는 것)을 찾고자 했다. ‘구조주의’란 한편으론 구조주의 언어학을 연구방법으로 삼아서 생긴 이름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바로 이 공통된 것을 찾고자하는 태도를 지칭하는 것이기도 하다.

철학 주도권 독일서 프랑스로



그렇지만 이 책에서 우리는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이 단지 책상에서 남이 쓴 글을 보며 분류하고 분석하는 것만은 아니었음을 본다. 또한 모든 문화에 공통된 것만을 찾고자 했던 것도 아니었음을 또한 본다. 이 여행기의 줄기는 카두베오족, 보로로족, 남비콰라족, 투피 카와이브족의 삶과 문화다. 그것을 천천히 거쳐가면서 그는 자신이 속한 세계와 다른 종류의 삶을 체험한다.

그림 그리길 즐기는 카두베오족의 문신과 문양에서 주어진 신체, 주어진 얼굴을 변형시키는 예술가적 창조의 욕망을 본다. 남들의 시선을 피하지 않으면서 사랑을 나누는 남비콰라족의 사랑법에서 오히려 육체적 쾌락보다는 정서적이고 유희적인 쾌락의 감각을 보기도 하고, 그 대담한 사랑의 와중에도 발기된 흥분으로 빠져들지 않는 태도에서 육체의 노출이 아니라 평정의 상실을 부끄럽게 여기는 고상한(?) 윤리감각을 발견하기도 한다. 혹은 인간의 형체란 물고기 형체와 앵무새 형체 사이의 과도기라고 보는 보로로족의 윤회적 우주관에서 인간과 동물 세계의 연속성을 보기도 하며, 가축에게도 인간과 동등한 관심과 애정을 갖고 먹을 것이 부족해도 ‘함께 식사하는’ 남비콰라족의 태도에서 그러한 연속성이 함축하는 실제적인 의미를 보기도 한다. 또 고유명사를 감추고 문자를 사용하지 않는 남비콰라족 사람들에게서 문자 없는 세계에 대한 루소적 꿈을 보기도 하고, 동시에 자신이 사용하는 문자를 흉내내 주민들을 설득하거나 ‘지배’하려는 한 추장의 태도를 보면서 문자의 짝이 권력임을 보기도 한다.

좀더 인상적인 것은 추장에 관한 정치학이다. 가령 남비콰라족의 경우 추장은 유랑생활을 편성하고 여정을 선정하며 숙영할 곳을 정하는 지도자다. 그러나 그에게는 강제를 수반하는 권력은커녕 공적으로 인정된 권한도 없다. 그는 오직 대중의 호감이나 대중에게 필요한 것을 조달해줄 능력, 혹은 솔선수범하는 능력에 의해서만 추장의 지도력을 유지할 수 있다. 따라서 추장의 지도력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은 ‘관대함’이다. 그래서 레비스트로스는 정보제공자이기도 한 남비콰라의 추장들에게 많은 선물을 주었지만, 그것은 어느새 다른 주민들 손으로 넘겨졌음을 발견한다.

다른것 동질화 목격 깊은 슬픔

이러한 삶과 문화를 어찌 ‘미개하다’고 말할 것이며, 어찌 ‘야만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알다시피 그것은 서구인들에 의해 미개하고 야만적인 것이 되어 파괴되어 버렸고 ‘문명화’ 내지 ‘근대화’라는 이름 아래 동일한 양상으로 변형되어 버렸다. 그러나 그는 안다. 럼주 한잔의 미묘한 맛은 거기에 섞여 들어간 불순물 때문임을. 사람들의 삶에서 이질적인 것, ‘불순물’을 제거해버리려는 것은 “사회에서 가장 좋은 향기를 제공하는 것들을 스스로 완전히 파괴해버리려고 하는 것”임을.

그렇기에 그는 자신과 다른 모든 것을 비난하고 이질적인 모든 것을 자신의 모습대로 동질화해버리는 서구문명에 대해, 바로 자기 자신이 속한 그 세계에 대해 거대한 분노를 느끼며, 그것으로 파괴된 열대의 세계에서 깊은 슬픔을 느낀다. 틀림없이 그의 여행은 이 침략과 파괴에 의해 말살당한 흔적을 목격하고 체험해야 하는 여행이기도 했을 것이다. 이로 인해 이 여행기에는 또한 깊은 슬픔이 스며들어 있다. 아마도 그것이 이 책의 제목을 ‘슬픈 열대’라고 붙이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레비스트로스를 무척 좋아한다. 이 책 속에 배어 있는 그 따뜻한 마음을, ‘야만인’에 대한, 자기와 다른 종류의 삶에 대한 애정을 깊이 사랑한다. 데리다의 비판처럼 원시적인 것에 대한 향수나 구조주의적 방법에 문제가 있음은 사실이지만, 몽상이나 향수마저 지울 수 없었던 그 따뜻한 안타까움을, 그 깊은 슬픔을 가슴으로 느끼지 못한다면 그런 비판은 너무 쉽고도 안전한 투자 같아서 싫다.

슬픔과 분노를 안고 그는 돌아간다. 그러나 그가 돌아가는 곳은 또 다른 원시의 열대도, 그가 속했던 문명화된 대륙도 아니다. 그것은 이질적인 것 모두가 서로에 기대어 있는 세계다. “역사, 정치, 사회적·경제적 세계, 물리적 세계, 심지어 하늘까지, 이 모든 것들이 동심원을 이루며 나를 둘러싸고 있다.” 여행의 끝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은 것일까? “당신이 신이 된 것을 알게 되는 것은 자기 몸에서 빛이 난다는 것을 느끼거나 기적을 행할 능력이 생겼다는 것을 깨달음으로써가 아니라 야생의 짐승들이 가까이 다가와도 불쾌하게 느껴지지 않고, 그 온몸을 엎고 있는 악취나 분뇨에서도 예사로워질 때랍니다. 모든 시체, 모든 부패물, 분비물이 다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질 때랍니다. 신이 되고 나면 나비들이 당신 목덜미에 앉아서 교미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의 마지막은, 그 ‘귀로’의 끝은 미얀마의 챠웅(불교사원)이다. 외부, 타자, 이질적인 것을 견디지 못하는 획일적 문명, 혹은 그것의 좀더 남성적이고 호전적 형태인 이슬람에서 더 없는 불편함을 느끼는 그는 여성적이거나 탈성화된 불교에서, 외부의 이질적인 것에 열려 있는 불교에서, 그것과 만남을 통해 기독교적 문명이 여성화되는 것에서 희망을 찾는다. 그러나 그 희망은 기독교의 서구와 불교의 인도 사이에 발생한 남성적 이슬람으로 인해 이미 오래전에 절단된 것이다.

귀로의 끝은 ‘열려있는’ 불교사원

하지만 ‘서양’과 ‘동양’을 잇는, 실현되지 못한 희망을 대신할 또 하나의 희망을 찾아낸다. 그것은 뜻밖에도 마르크스주의와 불교의 만남이다. 형이상학과 인간행위의 조화를 실현했던 이 두 사상의 만남을 통해, “인간을 첫 번째 사슬로부터 해방시키는 마르크스주의의 비판과 그 해방을 완결시키는 불교의 비판”의 만남을 통해 “동양으로부터 서양으로 흐르는 확고한 운동”이 이루어지리라고 말한다.

그는 한때 열대를 찾아 떠났지만, 그 열대를 통해 자신이 속한 세계를 떠난다. 그리하여 너무도 익숙해진 그 ‘문명화된’ 세계를 떠나도록 사람들을 촉발한다. 다른 삶으로 떠나는 여행을.

서평자 추천 도서

슬픈 열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지음, 박옥줄 옮김

한길사 펴냄(1998)

(<슬픈 열대>의 완역본)

야생의 사고

레비스트로스 지음, 안정남 옮김

한길사 펴냄(1996)

(토테미즘이라 불리는 미개인의 사고법이 턱없는 미신이 아니라 사물을 분류하는 또 하나의 과학, 구체성의 과학이란 점을 보여주면서, 서구인의 자기중심주의를 비판한 책)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

디디에 에리봉 지음, 송태현 옮김

강 펴냄(2003)

(기자인 에리봉과 레비스트로스의 대담을 통해 쓰여진 레비스로스의 ‘회고록’)

 

 

족장의 권력이 지닌 무기는 관대함이다


“족장은 전쟁을 할 때 선두에 서서 싸우는 사람이다.” 몽테뉴는 이 이야기를 그의 <수상록>의 유명한 한 장에서 기술하면서 그 원주민의 자신만만한 정의에 놀라움을 나타내고 있다. 내가 그로부터 거의 4세기 후에도 동일한 대답을 들었다는 사실은 나로서는 커다란 놀라움과 존경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문제였다.···

족장은 명확하게 규정된 권한이나 공적으로 인정된 권위에서 그의 기반을 구할 수 없다는 점을 우선 말해두어야 하겠다. 동의가 권력의 근원을 이루며 또한 동의가 족장의 지위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족장은 어떻게 그의 의무를 완수해 나가는가? 그의 권력이 지닌 무기 가운데 가장 주요한 수단은 관대함이다. 대부분의 미개민족들 사이에서, 특히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관대함이 권력의 본질적인 속성이다.···[그래서] 그는 아무리 자질구레한 것들일지라도 빈곤이 닥칠 경우에는 상당한 가치를 지닐 수 있는 식량, 도구, 무기, 장신구 따위의 여분의 양을 그의 통제 하에 두어야 한다. 개인이거나 가족이거나 또는 전체로서의 하나의 무리가 어떤 것을 욕구하거나 필요로 할 때 그 호소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 바로 족장이다. 그러므로 관대함이란 새로운 족장에게 기대되는 가장 중요한 속성이라 하겠다.···

족장들은 가장 적합한 나의 정보 제공자들이었다. 나는 그들의 어려운 처지를 알고 있었으므로 기꺼이 그들에게 풍부한 증여물을 주었다. 그렇지만 내가 그들에게 준 선물은 하루나 이틀 이상 그들의 손에 있지를 않았다. 내가 어떤 무리들과 몇 주간을 함께 지내고 헤어질 때가 되면 주민들은 내가 [족장에게] 주었던 도끼·칼·진주 따위를 소유하고 있고는 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일반적으로 족장은 물질적인 면에서는 내가 도착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빈곤한 상태에 있었다.···

훌륭한 족장은 그의 솔선수범하는 능력과 기술을 증명한다. 화살의 독을 준비하는 사람은 족장이다. 마찬가지로 족장은 남비콰라족의 유희에 사용되는 야생의 고무로 된 공도 만든다. 또한 그는 무리들이 단조로운 일상생활을 잊어버릴 수 있도록 노래도 잘 하고 춤도 잘 출 줄 아는 쾌활성을 지녀야만 한다.(박옥줄 옮김, <슬픈 열대>(한길사), 564~5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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