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 무아(無我) 코뮌주의

2007/01/19 16:00
코뮌적 관계에 들어온다고 해서 모두가 저절로 코뮌적 주체가 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사회적 차별이 없기 때문에 자의식의 견고한 벽이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날 수 있다.
따라서 누구도 그런 시행착오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진정 노마드가 되고 싶다면 그런 모습을 적나라하게 응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보면 사라진다'고 했던가. 강렬하게 접속하되 집착과 소유라는 함정에 빠지지 말 것. 활동이 하나의 영역에 멈추지 않고 다른 활동들로 흘러 들어가게 할 것.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나'와 '나 아닌 것' 사이의 경계가 없어야 한다.

- 고미숙 지음. 2004.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 휴머니스트. p.247~248.



모든 괴로움과 얽매임은 잘 살펴보면
다 내 마음이 일으킨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 괴로움과 얽매임이 밖으로부터 오는 줄 착각하고
이 종교 저 종교, 이 절 저 절, 이 사람 저 사람을 찾아다니며
행복과 자유를 구하지만 끝내 얻지 못한다.
그것은 안심입명의 도는 밖으로 찾아서는
결코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나 일어난 어떤 괴로움일지라도
안으로 살펴보면
그 모든 괴로움의 뿌리가 다 마음 가운데 있고
그 마음의 실체가 본래 공한 줄 알면
모든 괴로움은 저절로 사라진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신이 일으킨 한 생각에 사로잡혀
옳다 그르다 모양짓고
그 모양에 집착해서 온갖 괴로움을 스스로 만든다.
한 생각 돌이켜서 이 사로잡힘에서 벗어나면
모든 괴로움과 얽매임은 즉시 사라진다.

- 정토회 [수행법요집]의 수행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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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 모두에게 모든 것을

2007/01/19 15:58

 

1.
이런 자리들마다 사파티스타 민중해방군은 자신들은 앞장서서 싸우는 사람일 뿐이라면서 이렇게 선언했다.

"모두에게 모든 것을, 우리에겐 아무것도"

- Marcos. 2001. 『마르코스와 안토니오 할아버지; 부사령관 마르코스가 들려주는 하늘과 땅, 사람의 이야기』. 박정훈 옮김. 다빈치. p.203.



2.
마키아벨리는 아래로부터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기획은 "무기"와 "돈"을 필요로 한다고 제안하며 우리는 외부에서 그것들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스피노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는 이미 그것들을 갖고 있지 않은가? 필요한 무기들은 바로 대중의 창조적이고 예언적인 힘 안에 놓고서 이번에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무기"와 "돈"을 갖고 있지 않은가? 마키아벨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종류의 화폐는 사실상 생체정치적 생산 및 재생산의 직접적 행위자인 대중의 생산성에 있을지도 모른다. 문제가 되는 종류의 무기는 대중이 사보타주할 잠재력에 포함되어 있을지도 모르고 대중 자신의 생산력으로 탈근대적 명령의 기생적 질서를 파괴할지도 모른다.
오늘날 선언, 즉 정치적 담론은 스피노자적 예언적 기능을, 대중을 조직하는 내재적 욕망을 충족시키려고 열망해야 한다. 결국 여기에는 어떤 결정론이나 유토피아도 없다. 즉, 이것은 오히려 어떤 "미래를 위한 공백"이 아니라 대중의 현실적 활동에, 대중의 창조, 생산, 권력에 존재론적으로 근거한 철저한 대항 권력이다.

- Negri, Antonio and Hardt, Michael. 2000. Empire. Harvard University Press.: 윤수종 옮김. 2001. 『제국』. 이학사. pp.106~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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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붓다들의 꿈

2007/01/19 15:44

2004. 01. 01~ 01. 04.
명상과 통합적 예술매체(무용, 심리극, 미술, 음악)를 활용한 자아존중감 향상 프로그램

 

 

[누렁이에 대해]

누렁이는 영빨을 받아 눈물을 줄줄 흘렸습니다.
엉덩이가 뜰것 같아서 똥구녕을 땅에 대고 있으려고 노력했다고
하더군요. 사실 나도 누렁이가 웃는것인지 평화로운것인지
서서 "당신은 참으로 존귀하고 소중한 사람임다"하면서
눈물을 줄줄흐르는데, 찡한 기운이 표면을 뜹디다.
실은, 내 자신 현실에 대지 못하고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환장하겠습디다. 영빨 받아 현실(물론 이때 현실이란
개와 노예들의 자본척도의 현실과 다른)과 접촉하는 누렁이가
너무 부럽습디다.

<희랍인조르바>란 소설이 있는데,
거기 나오는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모든 사람이 누렁일 보고 교주라고 했습니다.
허버 즐겁고 유쾌한 교주였습니다. 사람들은 주변에 누렁이와
뭘하려고 했습니다.

나는 와이키키란 이름을 쓰고 내 고민을 털어놨고,
이걸 사이코드라마로 만들었는데 누렁이가 이걸 해줬습니다.
존나 잘해줬습니다.

자기전에 잠시 나누던 성에 대한 이야기도 좋았습니다.폴리네시아의
사랑에 대해서는 감동적이고 나도 빨랑 시도해보고 싶었습니다.


누렁이는 나보고 '선배'라고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염병헐럼의 습관이 붙어 있어 사람 만날때
연줄로 생각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사회학과 연줄이 거기에는 들어있습니다.
또 누렁이는 나에게 네트웍이란 말을 쓰지말자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염병헐럼의 네트웍이냐 이거죠.
네트웍이란 부르조아가 하는것입니다.
돈빨아먹으려고 만들어놓은 것입니다.
그럼 우리들은? 바로 연대입니다.
요런걸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누렁이는 정말이지 공부해볼만한 인간입니다.
그중에 하나가 웃긴거 인데,
나는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웃긴 사람을 좋아한다는 너무
당연한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텔레비젼에서 누구 보고 흉내내는 웃김이 아니라
살면서 자연스럽게 묻어나오는 그런 웃긴걸
좋아합니다.
다 아는데, 털어넣기 힘든 어떤 걸
파악 공격욕 없이 나오는 어떤 힘~~요런것이 바로 개그의
힘인데, 그런면에서 누렁이는 참 힘이 있습니다.
부럽습디다.





[명상프로그램, 참여후에..]


명상치료 프로그램 이름은 "붓다들의 꿈"이었습니다.
붓다란 말은 '깨달은자'라는 말입니다.
참 싸가지 있는 말입니다. 나는 불교가 어떤점이 맘에 드는데,
다른 어떤 가르침이나 이성적인 교육,지식과는 달리
이미 깨달은 것에서 시작해 '연역'해서 찾아나선다는 의미가
강하지요. 모든이가 깨달은이니, 누가 누굴 가르칠수 있다는 말인가요.
참 싸가지 있는 발상입니다. 개새끼들은 이런 태도를 교육을 부정했다
느니 해대겠지요. 이점 생각해봅니다.


누렁이의 지령으로
-이 어감을 보세요. 이제 '누렁이'선배가 아니라 누렁이입니다.-
명상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전사들과 함께 한 최초의 프로그램
참여입니다.


춤을 춰서 자기를 표현하라고 했습니다.
그림을 그려서 자기를 표현하라고 했습니다.
울라고 했습니다. 웃으라고 했고, 날뛰라고도 했습니다.
가끔은 나이트 분위기도 났습니다.
여자활동가 들과 껴안기도 했습니다.


나는 주로 마징가를 그렸습니다. 내 이름은 '와이키키'였습니다.
누렁이는 영빨을 받아 교주로 등극했습니다.


밥은 천천히 먹었습니다. 밥공양하는 공산주의자를 만났습니다.


오는길에 호박엿이랑 추주뿡이랑 날개랑을 생각했습니다.
이년들아, 니기들도 와야 했다, 이런 걸 나누고 싶었습니다.


명상참여후에 가진 묵직한 어떤것은..
<~~되기>를 위해서
<전략적>인 태도가 아닌 사람 자체의 공산주의적인 인간형을 위해서
명상은, 그것도 집합적인 명상은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좋고/싫고의 판단중지를 하면서 <~되기>를 지향하는 프로그램을
집단적으로. 수행을 중놈들이 절하고, 신부들이 기도하고,
또 섹스하지 않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면,
모든걸, 삶자체를 '수행화'하는 것이야 말로 공산주의적 인간이라는것.

또 공산주의자란...
자본에 물든 노예가 아닐터인데
그 구분은 역시 예술로서...예술적 감이 없다면? - 나처럼- 그걸 키워야
한다는 것. 훈련을 통해. 소리치고, 그리고 흔들고 싸대는 난교를 통해.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수카님. 안녕하세요? 저, "와이키키"입니다.
어제 잘 들어가셨어요?
저는 누렁이랑 함게 맑은공기 집에 가서 한잔 꺽고
광주로 내려왔는데 집에 오니 꽤 되었더군요.
3박 4일간 즐거웠습니다. 내려오면서 사람들 이야길 하다가
아스카님이 귀엽다는 것에 우리 모두 영빨을 받고 동의했습니다.
남자도 귀여울수 있다고 누렁이교주는 말하더군요.
반가웠습니다. 건강하시고요. 가끔 들어와 구라 혹은 투덜대거나
해도 될까요?^^



2004년 1월4일부터... 저는 큰 복을 받았습니다. 아니, 찾은걸가요?
여러모로 감사드려요.. 내 주변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알았습니다.
이번캠프 주제가.. '자아찾기' 던가요?
내 안의 고통과 슬픔, 기쁨, 고민들을 다 털어버리고 나니까..
이제 다른것을 받아들이는게 너무 쉽습니다.
얼마나 울기도 많이 울었는지.. 이제는 얼굴에 웃음을 담아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수원으로 올라오는길에..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려 차한잔하면서 집에 전화를 했어요.
엄마에게 반갑게.. '사랑해요.. '라고 고백했습니다. 처음이에요..
너무나 좋아하시는 엄마.. 아빠... 왜 진작 이렇게 쉬운말 한마디 하지 못했을까요?

집에 돌아와.. 역할극에서 만났던 성훈씨와 그 여자친구에게
하고싶던 이야기를 했습니다. 밥 한번 함께 먹은적이 없는 우리..
신년회식을 하기로 했지요.. ^^

그리고, 오늘아침 사무실에 출근하여.. 사람들을 한번씩 꼬옥.. 안아주었습니다.
사람들이 좀 부담스러워 하더이다.. 히히.. 그래도 좋아하던걸요.
그러고 나니, 너무나 마음이 편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해보니.. 정말 쉬워서 좀 실망이 들 정도였었습니다.

이제 조금 화가 나는 일도 극복이 됩니다...
이렇게 좋은 기회를 준 전북지역의 활동가들과 계속 함께갈 것을 설득해준 아스카..

부족한 형편을 알고 재정을 지원해준.. 행동연대 회계님..^^
맘편히 쉴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해준 저의 일터 사람들과..
그 공간을 싸게 제공해주신 임실의 목사님 내외분..
좋은 음식으로 제 몸을 가볍게, 편하게 만들어주신 동지들..
저를 맘과 성의를 다해서 꼬옥 안아주던 4일간 식구였던 사람들...

너무나 감사합니다.
제가 살아있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하다는 것을 충분히 느낍니다.
나도.. 여러분도.. 너무나 소중하고 존귀한 존재입니다.

[*** 밝고 행복한 에너지가 느껴져서 간직하고 싶은 글^^ 2004.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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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운동)에 관한 메모

2007/01/19 15:34
* 여성 운동은 자본(제국)의 발전-산업노동자의 증가와 자본의 요구로 여성노동력이 필요해짐-과 더불어 시작됨. 즉 여성운동은 자본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면서 자신의 신체와 권리를 성장시킴; 자본의 의도와 맞물리면서 발생하고 성장하는 운동들...

* 인류의 역사에서 여성은 남성과 더불어 항상 존재해 왔는데, 왜 여성운동이나 여성의 권리가 어느 시공간에서 시작하는가? (비정규직이나 불안정노동도 마찬가지?...)

* 대중(민중)의 사고와 이해는 지배 체제의 이데올로기: 지배이데올로기는 피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이다.

* 남한에서 노동운동의 폭발과 발전은 (포스트 포디즘시대의) 자본이 더 많은 노동력을 싼 값에 제공받기 위한 전략이었다?-자본의 전략!
즉, 자본에 의해 기존의 억압적이고 처참한 공장에서 '인간다운 삶'이 보장 될 수 있는-그것도 노력의 희생과 노력이 필요하지만-노동의 표상으로 전환시킴.

* 자본과 운동의 문제는 자본의 확대발전과 더불어서 나타남.

* 자기 자신의 고유한 생성을 형성하는 것.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즉, 어떻게 생성이 포섭보다 더 강력한 힘으로 작용할 해서 자본과 노동의 역관계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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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테러, 전쟁...

2007/01/19 15:30

* 공포에 대하여

제16항
... 공포는 정신의 무능력에서 생긴다...

     -스피노자 [에티카] 제4부 '인간의 예속 또는 정서적 힘에 대하여'에서-


'테러는 권력이 경찰장치나 대중매체적인 무기를 남김없이 수중에 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다수의 피착취자를 지배의 망 속에서 더욱이 깊게 빠뜨리는데 사용하는 것이 명백하다...
...
서독의 적군이나 붉은 여단의 자본주의 진지에 흔들림을 가한다고 하는 의미이지만... 개인을 고립시키는 방향으로 향하는 모든 것, 개인의 무력감을 강화하는 모든 것, 개인에게 죄책감을 부여하는 국가나 집단적 시설 및 그 부속물에 의존하는 것으로 작용하는 모든 것-이러한 대중조작의 현상들에 공격의 예봉을 돌리지 않고 혁명적 행동을 한다고 칭하는 것은 바보같은 이야기이다.
...
당치도 않은 거대한 국가권력과 장악하고 싶지 않을 정도의 사소한 정치=군사기계 사이의 대치에서 생겨난, 모든 점에서 부조리 이외에 없는 병적인 드라마라는 핵심을 응시하고 있다.'


     - 가타리. 『자유의 공간을 향하여』. 아우토노미아 총서3; '집단적 멜랑꼬리의 메아리처럼'(pp.70∼71)에서...

2001/09/12...



* 전쟁에 대하여


클라우제비츠(Carl von Clausewitz)는 [전쟁론]에서,
전쟁을 두가지 유형으로 나누는데,
하나는 '적의 타도(打倒)를 목적으로 하는 전쟁'과
다른 하나는 '단순히 국경지대에서 몇몇 지역의 정복을 목적으로 하는 전쟁'으로 구분한다.

전자의 전쟁은 적을 정치적으로 격멸하거나 단순히 방어불능의 상태로 만들어서 아측에 유리한 평화를 강요하는 것이며,
반면 후자의 전쟁은 적 지역을 점유하거나 점령한 지역을 유용한 교환수단으로 하여 평화협상시 활용하는 것이다.

또한 전쟁에 대해 정의하면서 전쟁에 대한 난해한 정론적 정의보다는 전쟁의 요소, 즉 양자결투에 관해 이야기를 한다.

따라서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은 확대된 양자의 결투에 불과하다'라고 말하면서
이들 '양자의 당면 목적(전쟁의 목적)은 적을 타도하고 이를 통해서 어떤 추가적인 저항도 불가능하도록 만드는 데 있다.

그러므로 전쟁은 我의 의지를 구현하기 위해 적을 강요하는 폭력행동이다.'라고 정의한다.

또한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의 성격과 관련해서
1. 적대감정 및 의식에서 연원된 맹목적 본능의 폭력성
2. 확률과 우연의 게임의 성격
3. 순수한 이성의 영역에 속한 정치적 도구의 성격

이 세가지가 삼위일체를 형성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에 대한 명확하고 필수적인 관점이 확립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결국 전쟁의 핵심적인 본질은
'전쟁이란 다른 수단들을 가지고 행하는 정치와 다를바 없다'라고 말한다.
즉, 전쟁은 도구적 성격을 띤 정치의 한 도구라는 명확한 해석과 관점을 제시한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전쟁은 다른 수단들에 의한 정치의 연속'이며,
'전쟁은 정치적 행위일뿐만 아니라 진정한 정치적 도구이며,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추구이다'라고 말하면서,
'전쟁의 가치는 정치에 의해 결정되며 정치는 전쟁을 합리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클라우제비츠는 그의 사유 끝, 즉 전쟁에 대한 최종적 판단은
자신의 [전쟁론] 마지막 구절에
'불가능한 것을 구하기 위해 가능한 것을 희생시키는 사람은 바보이다.'라고 쓴다.



* 푸코(Foucault)에 의해 정리된 전쟁에 대한 생각들을 보면,
먼저 블랭빌리에의 사유를 푸코는 가져온다.

- 프랑스의 역사학자인 불랭빌리에(1658∼1722)는 역사-정치적 분석에서 전쟁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 분석들에서 전쟁에 부여된 우위성은 사실은 전쟁관계에 부여된 우위성이다. 즉 전쟁을 사회의 일반적 분석지표로 사용하기 위해 불랭빌리에는 전쟁에 대한 세가지 연속적 혹은 중첩된 일반화를 시도한다.

1. 전쟁은 법을 중단시키고 그것을 뒤흔드는 단절의 에피소드이다. 즉 전쟁은 역사를 단순히 뒤흔들거나 중단시킨 정도가 아니라 그것을 완전히 뒤덮어 버린다.

2. 전쟁이 한 사회체에 자국(흔적)을 남기는 것은 더 이상 '침략'이라는 사실이 아니라, 군사제도의 교대(변화)를 통해 모든 민간 질서에 전체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즉 전쟁은 전쟁을 하는 방식으로서 전쟁이고, 전쟁을 준비하고 조직하는 방식으로서의 전쟁이다. 무기의 분배와 무기의 성격, 전투기술, 군인의 모집과 봉급, 그리고 군대로 귀속되는 세금등으로 이해되는 전쟁. 더 나아가 전쟁은 무기의 일반 경제학이고, 한 특정한 국가 안에서 무장된 사람들과 무장해제된 사람들의 경제학이다.

3. 전쟁은 누가 승자이고 누가 패자냐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강해졌으며 누가 약해졌느냐의 문제이다. 즉 강자는 약자가 되고 약자는 강자가 되는 순간부터 새로운 대립과 분열, 새로운 배분이 있게 된다. 여기서 블랑빌리에는 전쟁관계를 모든 사회적 관계 안에 집어넣었다.

따라서 블랑블리에에게 있어서 전쟁은 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기본 개념이고 특히 역사적 담론으로 사회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개념이 된다고 푸코는 말한다. 더 나아가 (푸코는) '전쟁이 결국 역사적 담론의 진실의 모태였다'라고까지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역사를 전쟁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때 전쟁은 담론의 출발점이며, 동시에 역사적 담론과 참조대상이 생겨날 수 있는 가능성의 조건이고 이 담론이 지향하는 목표이다. 담론은 전쟁에서부터 시작되고 전쟁에 대해 말한다.

따라서 푸코는 클라우제비츠가 말한 '전쟁은 다른 수단으로 지속되는 정치'에서 '정치는 다른 수단에 의해 지속되는 전쟁'으로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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