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이라는 이름의 야만
열대 내 부족 삶과 문화 찾아 떠난 여행기
먹거리 모자라도 가축과 함께 나누고
족장은 권력 휘두르는 대신
솔선수범으로 지도력 인정받는 세계
어찌 미개한가

고전 다시읽기/레비스트로스 ‘슬픈 열대’

‘열대’라는 단어 앞의 ‘슬픈‘이란 형용사가 인상적인 이 책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1935년 브라질의 상파울루 대학에 사회학 교수로 부임하면서 시작된 여행의 기록이다. 이후 약 20년이 지난 뒤 쓰인 이 책은, “모닝 빵처럼 팔렸다”는 말로 묘사되는 프랑스의 베스트셀러 대열에 오르면서 그를 대중적인 스타 지식인으로 만들어준다. 물론 그 이전에 이미 그는 박사학위 논문인 <친족의 기본구조>로 프랑스 사상계의 새로운 거목으로 떠올랐으며, ’구조주의‘라고 불리게 되는 새로운 철학적 흐름을 창안했다. 이어 <슬픈 열대>, <야생의 사고> 등 저작을 통해 그는 프랑스 사상계 전반을 뒤바꿔놓은 중심인물이 되었을 뿐 아니라, 독일이 주도하고 있던 유럽의 철학적 주도권을 프랑스로 이전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래서인지 구조주의라면 “한물간 지 오래”인 1990년대 중반인가에 프랑스의 문화 관련 기자들의 투표에서 여전히 ’가장 존경하는 사상가‘ 1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여행은 다른 세계, 내게 익숙하지 않은 세계와의 만남이다. 그래서 문학도, 영화도 여행자를 좋아한다. 오디세우스의 여행, 파우스트의 여행, 혹은 손오공의 여행, 레인맨의 여행 등등. 거기서 작가는 여행자를 따라가면서 그가 다른 세계와 만나며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렇게 다른 삶을 향해 떠나자고 슬며시 우리를 부추긴다. “나는 여행이란 것을 싫어한다”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레비스트로스의 이 여행기도 그렇다. 그가 정말 여행을 싫어하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그의 여행은 뜻밖의 전화 한 통으로 인해 떼밀리듯 시작된, 그래서 더 운명처럼 여겨지는 여행이었다.

그러나 그의 여행은 어쩌면 그 전화를 받기 전에 이미 시작되었던 건지도 모른다. 역사학이 자기가 사는 것과는 다른 시간을 여행하고 탐사하는 것이라면, 그가 좋아하게 되었던 인류학은 다른 공간을 여행하며 자기와 다른 사람들의 삶을 탐사하고 연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레비스트로스는 다른 종류의 인류학자여서, 현지조사보다는 수많은 조사자료들을 비교하고 교차시켜 다양한 문화나 신화들 안에 존재하는 어떤 공통된 것(그가 ‘구조’라고 부르는 것)을 찾고자 했다. ‘구조주의’란 한편으론 구조주의 언어학을 연구방법으로 삼아서 생긴 이름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바로 이 공통된 것을 찾고자하는 태도를 지칭하는 것이기도 하다.

철학 주도권 독일서 프랑스로



그렇지만 이 책에서 우리는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이 단지 책상에서 남이 쓴 글을 보며 분류하고 분석하는 것만은 아니었음을 본다. 또한 모든 문화에 공통된 것만을 찾고자 했던 것도 아니었음을 또한 본다. 이 여행기의 줄기는 카두베오족, 보로로족, 남비콰라족, 투피 카와이브족의 삶과 문화다. 그것을 천천히 거쳐가면서 그는 자신이 속한 세계와 다른 종류의 삶을 체험한다.

그림 그리길 즐기는 카두베오족의 문신과 문양에서 주어진 신체, 주어진 얼굴을 변형시키는 예술가적 창조의 욕망을 본다. 남들의 시선을 피하지 않으면서 사랑을 나누는 남비콰라족의 사랑법에서 오히려 육체적 쾌락보다는 정서적이고 유희적인 쾌락의 감각을 보기도 하고, 그 대담한 사랑의 와중에도 발기된 흥분으로 빠져들지 않는 태도에서 육체의 노출이 아니라 평정의 상실을 부끄럽게 여기는 고상한(?) 윤리감각을 발견하기도 한다. 혹은 인간의 형체란 물고기 형체와 앵무새 형체 사이의 과도기라고 보는 보로로족의 윤회적 우주관에서 인간과 동물 세계의 연속성을 보기도 하며, 가축에게도 인간과 동등한 관심과 애정을 갖고 먹을 것이 부족해도 ‘함께 식사하는’ 남비콰라족의 태도에서 그러한 연속성이 함축하는 실제적인 의미를 보기도 한다. 또 고유명사를 감추고 문자를 사용하지 않는 남비콰라족 사람들에게서 문자 없는 세계에 대한 루소적 꿈을 보기도 하고, 동시에 자신이 사용하는 문자를 흉내내 주민들을 설득하거나 ‘지배’하려는 한 추장의 태도를 보면서 문자의 짝이 권력임을 보기도 한다.

좀더 인상적인 것은 추장에 관한 정치학이다. 가령 남비콰라족의 경우 추장은 유랑생활을 편성하고 여정을 선정하며 숙영할 곳을 정하는 지도자다. 그러나 그에게는 강제를 수반하는 권력은커녕 공적으로 인정된 권한도 없다. 그는 오직 대중의 호감이나 대중에게 필요한 것을 조달해줄 능력, 혹은 솔선수범하는 능력에 의해서만 추장의 지도력을 유지할 수 있다. 따라서 추장의 지도력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은 ‘관대함’이다. 그래서 레비스트로스는 정보제공자이기도 한 남비콰라의 추장들에게 많은 선물을 주었지만, 그것은 어느새 다른 주민들 손으로 넘겨졌음을 발견한다.

다른것 동질화 목격 깊은 슬픔

이러한 삶과 문화를 어찌 ‘미개하다’고 말할 것이며, 어찌 ‘야만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알다시피 그것은 서구인들에 의해 미개하고 야만적인 것이 되어 파괴되어 버렸고 ‘문명화’ 내지 ‘근대화’라는 이름 아래 동일한 양상으로 변형되어 버렸다. 그러나 그는 안다. 럼주 한잔의 미묘한 맛은 거기에 섞여 들어간 불순물 때문임을. 사람들의 삶에서 이질적인 것, ‘불순물’을 제거해버리려는 것은 “사회에서 가장 좋은 향기를 제공하는 것들을 스스로 완전히 파괴해버리려고 하는 것”임을.

그렇기에 그는 자신과 다른 모든 것을 비난하고 이질적인 모든 것을 자신의 모습대로 동질화해버리는 서구문명에 대해, 바로 자기 자신이 속한 그 세계에 대해 거대한 분노를 느끼며, 그것으로 파괴된 열대의 세계에서 깊은 슬픔을 느낀다. 틀림없이 그의 여행은 이 침략과 파괴에 의해 말살당한 흔적을 목격하고 체험해야 하는 여행이기도 했을 것이다. 이로 인해 이 여행기에는 또한 깊은 슬픔이 스며들어 있다. 아마도 그것이 이 책의 제목을 ‘슬픈 열대’라고 붙이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레비스트로스를 무척 좋아한다. 이 책 속에 배어 있는 그 따뜻한 마음을, ‘야만인’에 대한, 자기와 다른 종류의 삶에 대한 애정을 깊이 사랑한다. 데리다의 비판처럼 원시적인 것에 대한 향수나 구조주의적 방법에 문제가 있음은 사실이지만, 몽상이나 향수마저 지울 수 없었던 그 따뜻한 안타까움을, 그 깊은 슬픔을 가슴으로 느끼지 못한다면 그런 비판은 너무 쉽고도 안전한 투자 같아서 싫다.

슬픔과 분노를 안고 그는 돌아간다. 그러나 그가 돌아가는 곳은 또 다른 원시의 열대도, 그가 속했던 문명화된 대륙도 아니다. 그것은 이질적인 것 모두가 서로에 기대어 있는 세계다. “역사, 정치, 사회적·경제적 세계, 물리적 세계, 심지어 하늘까지, 이 모든 것들이 동심원을 이루며 나를 둘러싸고 있다.” 여행의 끝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은 것일까? “당신이 신이 된 것을 알게 되는 것은 자기 몸에서 빛이 난다는 것을 느끼거나 기적을 행할 능력이 생겼다는 것을 깨달음으로써가 아니라 야생의 짐승들이 가까이 다가와도 불쾌하게 느껴지지 않고, 그 온몸을 엎고 있는 악취나 분뇨에서도 예사로워질 때랍니다. 모든 시체, 모든 부패물, 분비물이 다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질 때랍니다. 신이 되고 나면 나비들이 당신 목덜미에 앉아서 교미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의 마지막은, 그 ‘귀로’의 끝은 미얀마의 챠웅(불교사원)이다. 외부, 타자, 이질적인 것을 견디지 못하는 획일적 문명, 혹은 그것의 좀더 남성적이고 호전적 형태인 이슬람에서 더 없는 불편함을 느끼는 그는 여성적이거나 탈성화된 불교에서, 외부의 이질적인 것에 열려 있는 불교에서, 그것과 만남을 통해 기독교적 문명이 여성화되는 것에서 희망을 찾는다. 그러나 그 희망은 기독교의 서구와 불교의 인도 사이에 발생한 남성적 이슬람으로 인해 이미 오래전에 절단된 것이다.

귀로의 끝은 ‘열려있는’ 불교사원

하지만 ‘서양’과 ‘동양’을 잇는, 실현되지 못한 희망을 대신할 또 하나의 희망을 찾아낸다. 그것은 뜻밖에도 마르크스주의와 불교의 만남이다. 형이상학과 인간행위의 조화를 실현했던 이 두 사상의 만남을 통해, “인간을 첫 번째 사슬로부터 해방시키는 마르크스주의의 비판과 그 해방을 완결시키는 불교의 비판”의 만남을 통해 “동양으로부터 서양으로 흐르는 확고한 운동”이 이루어지리라고 말한다.

그는 한때 열대를 찾아 떠났지만, 그 열대를 통해 자신이 속한 세계를 떠난다. 그리하여 너무도 익숙해진 그 ‘문명화된’ 세계를 떠나도록 사람들을 촉발한다. 다른 삶으로 떠나는 여행을.

서평자 추천 도서

슬픈 열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지음, 박옥줄 옮김

한길사 펴냄(1998)

(<슬픈 열대>의 완역본)

야생의 사고

레비스트로스 지음, 안정남 옮김

한길사 펴냄(1996)

(토테미즘이라 불리는 미개인의 사고법이 턱없는 미신이 아니라 사물을 분류하는 또 하나의 과학, 구체성의 과학이란 점을 보여주면서, 서구인의 자기중심주의를 비판한 책)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

디디에 에리봉 지음, 송태현 옮김

강 펴냄(2003)

(기자인 에리봉과 레비스트로스의 대담을 통해 쓰여진 레비스로스의 ‘회고록’)

 

 

족장의 권력이 지닌 무기는 관대함이다


“족장은 전쟁을 할 때 선두에 서서 싸우는 사람이다.” 몽테뉴는 이 이야기를 그의 <수상록>의 유명한 한 장에서 기술하면서 그 원주민의 자신만만한 정의에 놀라움을 나타내고 있다. 내가 그로부터 거의 4세기 후에도 동일한 대답을 들었다는 사실은 나로서는 커다란 놀라움과 존경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문제였다.···

족장은 명확하게 규정된 권한이나 공적으로 인정된 권위에서 그의 기반을 구할 수 없다는 점을 우선 말해두어야 하겠다. 동의가 권력의 근원을 이루며 또한 동의가 족장의 지위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족장은 어떻게 그의 의무를 완수해 나가는가? 그의 권력이 지닌 무기 가운데 가장 주요한 수단은 관대함이다. 대부분의 미개민족들 사이에서, 특히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관대함이 권력의 본질적인 속성이다.···[그래서] 그는 아무리 자질구레한 것들일지라도 빈곤이 닥칠 경우에는 상당한 가치를 지닐 수 있는 식량, 도구, 무기, 장신구 따위의 여분의 양을 그의 통제 하에 두어야 한다. 개인이거나 가족이거나 또는 전체로서의 하나의 무리가 어떤 것을 욕구하거나 필요로 할 때 그 호소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 바로 족장이다. 그러므로 관대함이란 새로운 족장에게 기대되는 가장 중요한 속성이라 하겠다.···

족장들은 가장 적합한 나의 정보 제공자들이었다. 나는 그들의 어려운 처지를 알고 있었으므로 기꺼이 그들에게 풍부한 증여물을 주었다. 그렇지만 내가 그들에게 준 선물은 하루나 이틀 이상 그들의 손에 있지를 않았다. 내가 어떤 무리들과 몇 주간을 함께 지내고 헤어질 때가 되면 주민들은 내가 [족장에게] 주었던 도끼·칼·진주 따위를 소유하고 있고는 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일반적으로 족장은 물질적인 면에서는 내가 도착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빈곤한 상태에 있었다.···

훌륭한 족장은 그의 솔선수범하는 능력과 기술을 증명한다. 화살의 독을 준비하는 사람은 족장이다. 마찬가지로 족장은 남비콰라족의 유희에 사용되는 야생의 고무로 된 공도 만든다. 또한 그는 무리들이 단조로운 일상생활을 잊어버릴 수 있도록 노래도 잘 하고 춤도 잘 출 줄 아는 쾌활성을 지녀야만 한다.(박옥줄 옮김, <슬픈 열대>(한길사), 564~5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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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돈다…그래도 신은 존재한다
김용석의 고전으로 철학하기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대화>

지구 중심주의 깨부순 지동설
인간의 자존심엔 상처 주지만
신의 섭리는 우주로 확장시켜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대화>는 <프톨레마이오스-코페르니쿠스 두 가지 주된 우주 체계에 관한 대화>라는 긴 제목의 저서를 줄여서 일컫는 표현이다. 1632년 출판된 이 책은 지동설 주장으로 금서 목록에 올랐고 갈릴레오가 그로 인해 종교 재판을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해설자들도 종교 재판에 연관한 역사적 의의를 많이 강조한다. 하지만 이 책은 문장 하나하나 음미하면서 읽을 가치가 있는 고전이다. 깊고 넓게 다양한 생각 거리를 주기 때문이다. 저자가 밝혔듯이 “주된 줄거리 못지 않게 재미있는, 딸린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대화>의 과학적 의의는 지동설 주장과 함께 갈릴레오의 방법론이다. 자연을 수학화하는 근대 물리학의 전통을 수립했기 때문이다. 이런 과학적 성과를 넘어서 <대화>는 중요한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 그것은 지구중심주의 및 인간중심주의로부터의 탈피이다. 이를 합하면 ‘지구인 중심주의’로부터의 해방이다. 당시까지 서구인의 의식은, 세계가 우주의 중심에 있는 지구에서 사는 인간을 위해 창조되었고 그들에게 유용하도록 질서가 잡혀 있다는 믿음의 영향 아래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천문학적 발견은 지구(따라서 그곳의 거주자)가 우월적 위치에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천체들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대화>의 화자 사그레도는 말한다. “지구도 달, 목성, 금성, 또는 다른 행성들과 마찬가지로 움직일 수 있고, 실제로 움직인다.” 그렇게 함으로써, “지구는 하늘에 있는 천체들과 같은 위치에 놓여 그들의 특권을 공유하게 된 것”이다. 지구중심주의를 벗어나는 일이 지구에게 마땅한 권리를 돌려주는 것이라는 역설적 은유는 흥미롭다.

 

지구와 다른 천체들을 연속선상에 놓고 본다는 것은, 또 다른 측면에서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타격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지구에서는 생성, 소멸, 변화의 현상이 있지만 다른 별들과 우주에는 그런 것이 없다고 믿었다. “지구에는 풀, 나무, 동물들이 태어나고 죽고 합니다. 비, 바람, 폭풍우, 태풍이 일어납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지구의 생김새는 계속 바뀝니다. 그러나 하늘의 물체에는 이런 변화를 볼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천동설을 믿더라도, 항상 순환해서 제 자리로 돌아오는 천체의 운동을 확인할 뿐이었지, 육안으로 보아 전혀 변하지 않는 것 같은 천체의 물질적 변화를 믿지 않았다.

 

하지만 갈릴레오는 “천체들이 변화하고 생성 소멸할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 것은, 인간의 죽음에 대한 공포와 함께 영생에 대한 욕망이 투영되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더 나아가 그는 <대화>의 화자 살비아티의 입을 통해 육체뿐만 아니라 “인간 영혼도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영혼불멸설조차 부정할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인간의 ‘숭고한 자존심’에 상처를 준다. 인간이 우주에서 특별하지 않은 존재일 수 있다고 시비를 거는 것이다.

 

이는 종교적으로도 중요하다. 인간중심주의로부터의 해방은 신앙심을 축소시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확대시키기 때문이다. 갈릴레오는 과학적 탐구로 지구인 중심주의로부터 벗어남으로써, 인간만을 위한 신이 아니라 진정으로 세상 만물을 위한 신을 확인한 것이다. 그때까지 인간중심주의는 오히려 신의 위상을 인간에 맞춤으로써, 신의 섭리를 한정시키고 신앙심을 축소시켰던 것이다. 반면 인간이 무한한 우주에서 아주 미미한 존재라는 것은 신의 위상을 무한히 확장시킨다. 인간이 우주의 중심에 있음으로 해서 신의 손길을 느끼고 신의 은총을 받는 게 아니라, 우주의 변방에 있더라도 그렇기 때문이다. 세상 만물을 다스리는 신의 손길은 광활한 우주의 한 귀퉁이에 있는 미물에게도 미친다. 인간이 우주의 중심에 있어서 신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신이 편애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함으로써 갈릴레오의 신앙심은 더욱 돈독해질 수 있었다. 따라서 그의 과학적 업적은 신을 부정한 게 아니라, 신을 온전히 긍정한 것이다. 종교 재판 후 그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이 말을, 과학적 발견 이후 더욱 새로워진 그의 신앙심을 위해 빌려 쓴다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그래도 신은 존재한다.

 

영산대 교수 anemoskim@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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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슴이 너무 너무 아프고 떨립니다.

2005/08/18 07:17

 

2005년 8월 17일 오후 2시 70여 일간의 노숙농성에도 변화가 없는 공단 측의 무성의한 태도에 항의해, ‘산재불승인철회, 산재승인 재조사’를 요구하며 무기한 단식 농성을 결의한 ‘하이텍알씨디코리아 조합원 감시와 차별에 의한 집단정신질환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김혜진 지회장 및 노동 사회단체 대표자 17명 무기한 단식농성 돌입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그러나 집회도중 경찰은 집회장에 난입했고 이 와중에 단식투쟁을 하기로 예정된 하이텍알씨디코리아 김혜진 지회장 등 4인이 고공농성에 돌입했다. 이들이 고공철탑에 올라서자 경찰은 농성철탑 주변에서 집회 참가자들을 강제로 몰아내고 곧바로 테러진압에나 투입되어야 할 경찰 특공대를 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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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국적이란 움직이는 것

2005/08/10 13:59
[펌] 한겨레21 > 칼럼 > 박노자 칼럼  > 내용   2005년08월04일 제571호

 

국적이란 움직이는 것!

[박노자의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근대적 개념 형성 이전에 ‘이탈자’들은 어떤 대접을 받았는가
스위스 출신 프랑츠 레포르트에서 신라 출신 설계두, 개화기의 서광범까지

▣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 · 한국학

최근에 일어난 ‘국적 포기자’에 대한 여론재판을 지켜보면서 필자는 이 상황을 단순히 유산층의 병역 면탈에 대한 반감으로만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병역을 천역(賤役)으로 알았던 전근대 지배층의 사고를 이어받아 빈민개병제의 국가를 운영하면서도 가책을 느끼지 않는 특권층에 대한 빈민개병제 희생자들의 분노는 클 수밖에 없다. 살인적인 경쟁 사회를 만들어놓은 한국 지배자들이, 평민의 자손에게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간에 억압적인 규율과 막노동을 강요하고 자기 자손에게는 사회 진출 준비를 더 잘할 특별한 기회를 준다니 기회 균등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것이다.

그들은 모두 ‘배신자’였나

그러나 병역 이행에서의 부정이 보여주는 계급 불평등 현실의 다른 측면들을 지켜볼 때도 우리는 과연 이 정도로 흥분하는가? 예컨대 국회의원 등 특권층의 병역 면제자 비율에 대한 통계가 발표될 때도 이 정도의 분노의 파도가 일어나는가? 전방근무 등 가장 어려운 종류의 병역을 이행하는 사람들 중에서 특권층의 자손이 몇명인지 그리고 특권층의 자손이 군에서 어떤 종류의 특별한 근무를 맡는지에 대해서는 왜 우리가 공개적으로 묻지 않는가. 즉, 계급적 불평등에 대한 분노가 이번 ‘국적 사태’에서의 분노의 강도를 부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해도 충분한 설명은 되지 못하는 것이다.

국적 포기자들이 해외동포로서 권리를 박탈당하게 만드는 ‘홍준표 법’의 국회 부결에 따른 성난 누리꾼의 움직임들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먼저 우리에게 국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국적에 대한 의식이 현대사에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짚어보아야만 한다. 이러한 검토를 하지 않고서는 국적 포기자들이 수많은 사람들의 눈에 ‘배신자’로 비치게 된 원인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 스위스 출신으로 ‘국적’ 문제에 대한 별 생각 없이 표트르 대제의 총신이 되어 러시아를 좌지우지한 프랑츠 레포르트. 300년 전 유럽에는 아직 국적의 시대가 도래하지 않았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국적에 대한 의식의 원류를 찾노라면 몇 가지 놀라운 사실이 발견된다. 근대적인 국민국가에의 소속이란 의미의 ‘국적’이란 말은 한국사에서 극히 최근에 형성된 법적 개념이라는 것이다. 유럽 국가들은 대체로 18세기 후반 이후에 프랑스 혁명의 영향으로 봉건적인 ‘신민’의 개념에서 근대적인 ‘시민권자’ 개념으로 이동했다. 예컨대 17세기 말만 해도 제네바 출신의 모험적인 군인 프랑츠 레포르트(1655~99)는 러시아군 장교로 고용된 뒤 차차 명성을 얻어 외국인 출신임에도 표트르 대제의 가장 가까운 총신(寵臣)이자 러시아에서 ‘황제 다음으로’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될 수 있었다. 그 뒤 19세기 중반이 되면 레포르트처럼 러시아군 장교로서 출세하려는 서구인들은 이미 국적 변경 절차를 밟아야 했다. 조선에서 조선 국적 소유자를 최초로 국제법적으로 규정한 문서들은 구한말 열강들과 맺은 불평등 조약들이었고, 국내 최초의 근대적 국적법은 1948년 5월11일에 남조선 과도입법원이 만든 ‘국적에 관한 임시조례’였다. 우리에게 늘 있어온 것으로 느껴지는 이중 국적 불허나 국적 상실과 같은 개념들은 한국 법제도사에서 기껏해야 반세기 정도의 역사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국적이라는 일본식 근대적 법학 용어가 차용되기 전에 인접 국가의 신민이 된 ‘이탈자’에 대한 시선은 과연 어땠을까? 물론 한 군주국의 장교로 복무했다가 조건이 안맞거나 갈등이 생기면 경쟁 군주국에 가서 그 군에 복무해도 누구라도 ‘배신자’라 하지 않았고, 국가적 소속이 매우 상대적이었던 18세기 말 이전의 서구에 비해 동아시아에서의 국가 소속 의식은 훨씬 더 뚜렷했다. 그러나 <삼국사기> 편찬의 책임자 김부식이 아무리 유교적인 충(忠)을 중시한 사람이었어도, 신라에서 621년에 당나라로 밀항해 당나라 군대에 입대해 나중에 전장에서 장렬히 죽은 신라의 육두품 준귀족 설계두 이야기를 ‘열전’에 집어넣었다.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불법적 국적 이탈자’인 설계두는 ‘자랑스러운 우리 조상’ 고구려에 대한 침략에 참전했다가 고구려인의 손에 죽은 당나라 군대 장교로서 반역자까지는 아니더라도 진골로 태어나지 않은 죄로 신라에서 그 포부를 펼치지 못해 결국 ‘동족’과의 전쟁에 내몰린 비극적 인물로 보일 것이다.

 

그러면 김부식이 그를 영웅의 반열에 올린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고구려보다 신라를 정통으로 인식한 김부식의 편벽된 역사의식이나 당나라에 대한 사대주의적 태도도 작용했겠지만 “본국의 신민이냐 타국의 신민이냐”보다는 “어느 정도 충실한 신민이냐”를 훨씬 더 중요시했던 유교의 보편주의적 논리가 고구려인과의 싸움에서의 당나라 장교 설계두의 장렬한 죽음을 신라 전사들의 전장에서의 순국과 같은 선상에서 평가할 수 있는 근본적 근거가 됐기 때문일 것이다. 근대 계몽주의자들처럼 역사를 혈연적이며 불변한 ‘아(我)와 피(彼)의 투쟁’으로만 보지 않는다면 본국을 이탈한 타국 신문의 충성뿐 아니라 적국 신민의 충성도 우러러볼 수 있는 것이다. 1658년, 청나라의 요청으로 ‘나선정벌’, 즉 러시아 카자크 비정규군과의 국지전에 나선 조선의 병마우후 신류(申瀏)가 포로로 잡힌 적군들을 위로하면서 ‘군주를 위하여 이렇게도 멀리 온’ 그들의 충성을 치하한 것도 바로 이와 같은 논리다.

 

적국 신민의 충성도 우러러볼 수 있다.


△ 조선 후기 ‘국적 이탈자’ 중 ‘외국인’임을 가장 선명하게 밝힌 사람은 아마도 서재필일 것이다. 그는 조선에 돌아와서 독립신문 발행 등의 계몽 활동을 할 때 꼭 자신의 이름을 한글로라도 ‘서재필’이 아닌 ‘필립 제이슨’으로 썼다.

물론 ‘국적 이탈자’에 대한 전통 사회의 시선은 꼭 곱지만은 않았다. 임진왜란 때 왜군에 부역했다가 나중에 자진해서 왜군을 따라 일본으로 간 자들을 역적으로밖에 인식되지 않았다. 여기에서는 ‘이탈’ 그 자체보다 적군에 대한 ‘부역’이 더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15세기에 황해도 출신의 정동(鄭同) 등 어렸을 때 조선에서 명나라 환관으로 바쳐진 여러 사람들이 나중에 명나라의 사신 자격으로 고국에 다녀왔을 때 그들에 대한 조선 사대부들의 시선은 차가웠다. 이 경우에는 ‘이탈’ 자체가 문제됐던 것보다는 환관이라는 계층에 대한 양반들의 멸시가 작용한데다 명나라의 위세를 등에 업고 여러 횡포를 부렸던 조선 출신의 명나라 대인의 행동에 대한 원망이 결정적 요인이었다. 정동은 본인이 태어난 신천(信川)을 현에서 군으로 승격하도록 조선 정부를 성공적으로 압박할 정도의 위세를 떨쳤는데, 조선 조정 신하의 입장에서 곱게 봐줄 리 없었다. 그럼에도 명나라로 적을 옮긴 조선 출신의 환관들이 고국에 올 때 조상 분묘에 제사를 지내도록 편의 제공을 받는 등 조선 초기 식의 ‘동포로서의 권리’를 누리기도 했다.

 

쇄국을 지향한 명나라와 조선의 경우 두 나라 신민의 경계가 분명했는데 그 전에는 달랐다. 예컨대 9세기에 산둥반도의 신라방(新羅坊)이나 신라촌(新羅材)에서 거주하면서 일본과 무역을 했던 신라 계통의 상인들은 일본의 사문서에는 신라인으로 서술되는 반면 신라에 적대적이었던 일본 정부의 공문서에는 주로 당나라 사람으로 기재돼 있었다. 서술자의 성향에 따라 당나라 사람으로도 신라인으로도 볼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신라에서는 신라 신민으로 당나라에서는 역시 외국 계통의 당의 신민으로 간주됐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실질적 이중 국적의 회색지대는 러시아나 미국 거주의 일부 조선 정치인들이 러시아 내지 미국 국적을 가졌으면서도 조국 정치에 계속적으로 개입한 개화기에도 실제로 존재했다. 예컨대 갑신정변의 실패 이후 미국으로 도주해 1892년에 ‘조선의 국왕에게의 모든 충성을 영원히 포기하고’ 미국 국적을 얻은 서광범(徐光範·1859~97)은 나중에 고국에 돌아와 법부대신(법무부 장관)과 학부대신(교육부 장관)을 지내고 주미 조선 공사(대사)까지 역임하지 않았던가? 아무리 외국 국적을 가져도 일단 조선 신민으로 태어난 사람은 완전한 타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 당시의 의식이었다.

 

그러면 최근의 ‘국적 포기 사태’ 때 감지될 수 있었던 ‘국적’의 신비화, 절대화는 언제 이루어졌을까? 아마도 그 결정적 시기는 박정희의 집권기, 특히 유신 시대라고 보인다. 민주적 정통성도 민족적 정통성도 결여된 무법 종속 정권이 대민 세뇌 도구로 삼았던 것은 무엇보다 일제 시기 방식의 국가주의였는데, 이 국가주의의 핵심 개념은 ‘대통령 각하’를 모시고 병역 의무를 즐거이 이행하는 ‘대한민국의 선량한 국민’과, ‘악마 같은 이북 공비’나 ‘불온사상’에 전염될 확률이 높아 믿기 어려웠던 해외 동포 사이의 확실한 경계선을 긋는 ‘국적’이었다.

 

국적의 신비화는 유신시대부터

‘국적 있는 교육’ ‘국적 있는 문학’ ‘국적 있는 역사학’ 이야기가 쏟아졌던 그 시기야말로 국민들로 하여금 ‘국적’을 신줏단지처럼 모시게끔 유도했다. 병영 국가에서의 국적 신성화인 만큼 한국 국적을 보유하는 남성 정상인은 무엇보다 먼저 ‘군인’으로 규정되었다. 학교에서의 교련, 대학에서의 군사훈련, 아무런 대안이 없으며 본인의 의지·신념과 무관한 군복무, 그리고 그 뒤의 예비군 훈련과 방위세 납부는 대한민국 국적 정상인 남성의 ‘당연한’ 생활리듬처럼 돼버렸다. 이와 같은 광적인 군사주의의 분위기에서 전통사회에 존재해왔던 ‘우리’와 ‘남’ 사이의 관용의 ‘회색지대’는 없어지고, 국적 포기자는 마치 전시라면 총살당해야 할 탈영병처럼 인식되고 병역 불이행은 ‘남자답지 못한 일’이거나 ‘비국민적’ ‘반국민적’ 행각으로 개념화됐다. 유신시대가 막을 내린 지 꽤 됐지만, 그 시대에 제도화된 국가주의와 군사주의는 지금까지도 우리 현실적 생활을 지배할 뿐 아니라 우리 마음까지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태어나서 자란 흙에 대한 사랑과 그 땅의 민중에 대한 애착이 꼭 여권이나 주민등록증으로만 표현되지 않는다는 걸, 특정 국가에서 출생한 남자라고 해서 살인 훈련을 받을 아무런 천부적 의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우리는 언제쯤이면 이해할 수 있을까.

 

참고 문헌

1. 조영록, <근세 동아시아 삼국의 국제교류와 문화>, 지식산업사, 2002.
2. 권덕영, ‘9世紀 日本을 往來한 二重國籍 新羅人’, <한국사연구>, 제120집, 2003, 85~114쪽.
3. 이광린, <개회기의 인물>, 연세대학교출판부, 1993, 203~242쪽.
4. 도회근, ‘국민과 국적’, <울산대학교사회과학논집>, 제9집, 제2호, 1999, 59~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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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푸른 하늘, 칭기스 칸



- 몽골인에게 유일한 신은 지평선에서 지평선까지 사방을 가득 채운 ‘영원한 푸른 하늘’뿐이었다. 이 신은 땅 전체를 관장했다. 또 이 신은 죄인이나 우리에 갇힌 짐승처럼 돌로 지은 집에 가두어 놓을 수도 없었으며......신의 말을 붙잡아 책 속에 집어넣을 수도 없었다.

0. 칭기스 칸의 목소리는 소박하고, 분명하고, 상식적이다. 그는 자신의 적들이 쓰러진 것을 자신의 우월함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능력 부족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나 자신에게는 특별한 자질이 없소” 그는 ‘영원한 푸른 하늘’이 “오만과 지나친 사치” 때문에 주변의 문명을 벌했다고 말한다.

1. 몽골군은 평생 유목민 생활을 해온 사람들로 일찍부터 이동하며 싸우는 법을 배웠다. 농민 출신의 병사들에게 달아나는 것은 패배였고 추적하는 것은 승리였다. 정주하는 병사들은 공격하는 군대를 어떤 장소로부터 몰아내고자 했다. 반면 유목민은 적을 죽이려고 했다. 공격하다 죽이건 달아나다 죽이건 상관없었다. 달아나면서 이기는 것 역시 제자리에 머물러 이기는 것과 다름없는 어엿한 승리였다. 몽골군은 적을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에서 끌어내면, 동물의 대규모 이동을 관리할 때 사용하던 기술을 이용했다. 몽골군은 추적자들이 그들을 따라오면서 긴 줄로 늘어서게 했다. 그렇게 되면 적의 방어력이 약해졌으며, 몽골군은 그들을 함정으로 끌여들여 쉽게 공격할 수 있었다. 아니면 작은 분대로 나뉘어 달아나면서 추적하는 적 역시 작은 무리로 나누어 놓았다. 그렇게 하면 적을 좀더 쉽게 요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 칭기스 칸은 전쟁을 위해 “모자를 벗고, 얼굴을 땅으로 향하여 사흘 낮밤을 기도하면서 ‘내가 먼저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으니 복수를 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말했다. 그런 뒤에 산에서 내려와 작전을 숙고하고 전쟁 준비를 했다”

3. 전쟁에 임하는 칭기스 칸은 “분노의 회오리바람이 불면서 인내와 자비의 눈에 흙이 들어갔고, 진노의 불이 사납게 타오르면서 그 눈에서 물이 말랐으니 그 불을 끌 수 있는 것은 피 밖에 없을”것이라는 말했다. “사람이 알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은 적을 정복하여 눈앞에서 몰아내는 것이다. 그들의 말을 타고 그들의 소유를 빼앗는 것이다. 그들에게 귀중한 사람의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보는 것이다”

4. 칭기스 칸은 지도력의 첫 번째 열쇠가 자기절제라고 가르친다. 특히 자만심과 분노를 극복하는 것이 중요한데, 자만심을 누르는 것은 들의 사자를 제압하는 것보다도 어려우며 분노를 이기는 것은 가장 힘센 씨름꾼을 이기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했다. “자만심을 삼키지 못하면 남을 지도할 수 없다.” 절대 자신이 가장 강하거나 가장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아무리 높은 산이라도 그 산에 사는 짐승들이 있다. 그 짐승들이 산꼭대기에 올라가면 산보다 더 높아진다.

5. 칭기스 칸은 “지도자의 전망이 절대 원로들의 가르침으로부터 멀리 벗어나서는 안 된다”고 말하면서 “낡은 델이 더 잘 맞으며 늘 더 편안하다. 이 옷은 거친 덤불속에서 힘겹게 살아도 잘 버텨주지만, 새 델이나 입어보지 않은 델은 금방 찢어져 버린다.” 칭기스 칸은 자신의 수수하고 소박한 생활방식에 따라 자식들에게도 물질적인 천박함이나 허튼 쾌락을 추구하지 말라고 경고하기도 한다. "좋은 옷을 입고, 빠른 말을 타고, 아름다운 여자들을 거느리면 자신의 전망이나 목표를 잊기 쉽다.“ 그런 사람은 ”노예나 다름없으며, 반드시 모든 것을 잃고 만다.“
“나는 소치는 목동이나 말을 모는 사람들과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음식을 먹고 있소. 우리는 똑같이 희생하고 똑같이 부를 나누어 갖소”라고 말하면서 “우리는 늘 원칙에서 일치를 보며, 서로에 대한 애정으로 결합되어 있소”라고 고백한다.

* 델(deel); 몽골의 전통 겉옷
* -Jack Weatherford. 정영목 옮김. [칭기스 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사계절-에서 발췌.





1227년(*주) 유목론 또는 전쟁기계



공리1- 전쟁기계는 국가 장치 외부에 존재한다.
명제1- 이러한 외부성은 먼저, 신화, 서사시, 연극 그리고 게임들에 의해 확인된다.

1. 국가장치의 두 극
*인도-유럽 신화에서 나타나는 정치적 주권: ‘마법사-왕’, ‘판관-사제’라는 두 극; 밝음과 어두음, 격렬함과 평온함, 신속함과 장중함, 공포와 규율, 구속과 계약→이런 대립은 상대적 일뿐이며 분할이나 통일체를 구성하는 하나의 쌍(서로 교대하면서 기능한다.)이다.
⇒ 두 극은 국가장치의 주요 요소로서 이항적 구분을 분배하고 내부성의 환경을 형성, 이중분절이 국가 장치를 하나의 지층으로 만든다.

2. 국가장치에는 전쟁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국가가 전쟁을 통하지 않고 폭력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경우: 군인대신 경찰관과 교도관을 동원, 전투를 방지하면서 장악하고 속박하는 기능.
*국가가 군대를 보유하고 있는 경우: 전쟁의 법률적 통합과 군사 기능의 조직화가 전제.

3. 전쟁기계는 다른 곳(외부!)에서 온다.
*전쟁 기계는 국가 장치와는 다른 종류, 다른 본성, 다른 기원을 가지고 있다.

4. 전쟁기계와 국가장치의 비교
*장기와 바둑: 장기는 구조적으로 기능, 제도화되고 규칙화되어 있는 전쟁, 전선과 후방 다양한 전투들이 코드화되어 있다. 닫힌 공간을 분배→홈패인 공간. nomos
바둑은 투입 또는 배치 기능을 수행(바둑알은 경계짓기, 포위하기, 산개하기), 전선없는 전쟁, 충돌도 후방도 없으며 심지어는 전투마저 없는 전쟁. 열린 공간의 분배→매끈한 공간. polis.

5. 전사
*국가의 관점에서 보면 전사의 독창성과 기인한 성격은 부정적인 형태로 드러난다.→따라서 전사란 언제라도 군사적 기능을 포함해 모든 것을 배반할 수 있는 사람이거나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칭기스칸)이다.

6. 국가 자체는 전쟁기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
*국가는 군사제도 형태로서만 전쟁기계를 전유할 수 있지만 이 전쟁기계는 끊임없이 국가에 문제를 제기한다.(유목민의 전쟁사)

7. 클라이스트의 작품
*전쟁기계를 국가장치에 대립, 산적떼/비밀, 속도, 정동/외부성에 의한 엄청난 속도와 발진력/정동(affect)는 전쟁무기이다. 정동의 탈영토화 속도/수없이 부서진 원환들/몸짓이나 감동의 탈주체화/죽을 힘을 다하는 광기와 응고된 긴장의 연속적인 질주

*스모선수, 바둑기사

8. 국가에 환원불가능한 전쟁기계가 국가에 도전할 수 있는 혁명력을 갖춘 사유기계, 사랑기계, 죽음기계, 창조 기계로 생성가능한가?

문제1- 국가장치의 형성을 방지할 수 있는 수단은 존재하는가?
명제2- 전쟁기계의 외부성은 민속학에 의해서도 똑같이 확인된다.

1.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 원시공동체.
*원시사회의 메카니즘은 국가장치의 형성을 저지하고 불가능하게 만드는 장치!-추장(chef)은 위신과 설득과 집단의 욕망을 미리 간파하는 것 이외에는 어떤 제도적, 정치적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따라서 추장은 권력자이기보다는 리더나 스타와 같은 존재, 항상 인민들에게 부인당하고 버림받을지 모를 위험에 처해 있는 존재이다.

2. 전쟁은 국가를 반대한다. 그리고 국가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전쟁은 국가를 저지하고 물리치는 사회 상태의 한 양태이다.

3. 국가형성을 억제하는 여러 가지 집단적 메카니즘
*패거리나 무리: 보고타 거리의 청소년 갱 집단은 공동 도둑질(절도)과 공동분배 후 해산, 문제가 발생시 집단적 탈퇴, 15세가 되면 갱을 탈퇴해 독립한다
*동물의 무리에서도 리더제는 복잡한 메카니즘을 지니고 있다: 최강자가 리더가 아니라 내적인 관계들의 짜임에 의한 것으로 안정적인 권력의 설치를 억제한다.
*‘사교성’의 형식: 사교집단은 사회집단처럼 권력의 중심과의 관계가 아니라 위신을 전파(분산)함으로써 움직인다.
⇒무리나 패거리는 리좀유형의 집단으로 권력형 기관 주위에 집중되는 나무형 집단과 대립된다. 따라서 패거리, 도적떼, 사교계는 전쟁기계가 변신한 모습이다.

4. 전사와 전쟁기계의 규칙들-국가형성을 저지하는 것들(전사의 특징); 근본적인 무규율성, 위계제도에 대한 문제제기, 버림이나 배반을 통한 끊임없는 협박, 민감한 명예의식.

5. 국가의 출현: 국가는 전쟁의 결과이기보다는 경제적 혹은 정치적 힘들의 진전으로서 설명된다. 따라서 국가는 진화가 아니라 갑작스런 돌연변이(‘씨족에서 제국으로, 패거리에서 왕국으로’라는 낡은 시나리오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진화가 아니라 절단이다)

6. 국가는 완성된 모습으로 항상 존재해 왔다(‘원국가’의 가설): 국가는 항상 외부와 관계를 맺어 왔다. 국가를 규정하고 있는 것은 내부와 외부의 법칙이다. 따라서 보편적인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7. 국가나 전쟁기계를 독립성의 관점이 아니라 영구적인 상호작용의 장 속에서 공존과 경쟁의 관점에서 외부성과 내부성, 변형의 전쟁기계와 동일성의 국가장치, 패거리와 왕국, 거대기계와 제국에 대해 사고해야 한다. 동일한 장이 국가 안에서 자신의 내부성을 한정할 뿐 아니라, 국가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나 국가에 대항하는 것 안에서 자신의 외부성을 서술한다.


(*주) 1227년(1227년 8월 18일)은 징기스 칸[그의 본명인 테무진은 ‘대장장이’라는 뜻으로 그의 아버지 예수게이가 패배시킨 적장의 이름을 본뜬 것이다]의 사망을 말한다. 천개의 고원은 ‘목차를 보면, 사건들로 가득 차 있다. 1914년 전쟁 그리고 ’늑대인간‘의 정신분석, 1947년 아르또가 기관없는 신체를 알게 된 해, 1874년 바르베 도르빌리(Barbey d'Aurevilly)가 중편소설을 이론화한 해, 1227년 징기스 칸의 죽음, 1837년 슈만의 죽음......여기 날짜들은 곧 사건들이자 연대기적 진행성을 잃어버린 흔적들이다. 천개의 고원은 사고들로 가득 차있는 셈이다.’(Deleuz. Gilles[1980]. 김종호 옮김. 2000. 『대담 1972~1990』. 솔. p.55.) 들뢰즈는 천개의 고원은 개념들로 가득 찬 책이며, 그 개념은 사건을 말하는 것이지 본질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따라서 천개의 고원은 비개성적이고 비사물적인 개별화를 가르키는 것이다.(같은 책 p.56. 참고)


-Deleuze, Gilles and Guattari, Félix[1980]. 김재인 옮김. 2001. 『천개의 고원』. 서울: 새물결. [12. 1227년 유목론 또는 전쟁기계] 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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