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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보기(일상)'에 해당하는 글들

  1. 2005/07/09  지금 tv에.....
  2. 2005/07/09  간만에 비를 맞으니......
  3. 2005/07/09  거 봐~~~~!!
  4. 2005/06/20  정리정돈의 대가..Ursus Wehrli (1969~ ) (7)
  5. 2005/06/20  대한민국 군대...그 곳은... (4)
  6. 2005/06/13  시험 기간........ (2)
  7. 2005/06/10  50번째 떼거리 잔차질!
  8. 2005/06/09  '정치외교학'이란...
  9. 2005/06/05  노브레인 콘서트 다녀오다.. (2)
  10. 2005/06/03  서평-임철우의 『백년여관』

윤도현의 러브 거시기에 블랙홀 나온당.......

 

역시~~~~~~~~~~~~~~~~~~~~~~~~~~~~~~~~~~~~~~~!!!

 

특히 드럼이 180bpm 이상으로 내달릴 때 느껴지는 쾌감이란.....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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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09 00:57 2005/07/09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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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간만에 맨 몸으로 비를 맞게 되었는데.......

역시나 멜랑꼴리한 기분이 든다.....

 

원래 비를 싫어하는 터라 이런 일 거의 없지만

가끔, 아주 가끔 비를 맞게 되면 홀딱 맞아버린다.

 

그때 찾아드는 온갖 기억.....추억들........

 

나랑은 별로 안 맞는 센치함.........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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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09 00:57 2005/07/09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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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뭐랬어.....

파병하지 말쟀잖아......

근데 왜 말 안들어.......

민중의 목소리가 껌으로 들리나......!!!!

이제와서 테러비상경계니 뭐니 하면서 어설픈 짓거리 하지말고

그냥 철군해.........!!

 

이러다 테러나고 나서 외양간 고치지말고.....

 

제발 남의 나라가서 민폐 끼치지 말자구.....응???

 

국가야~! 그리고 정부야~!

정부의 주인이자 국가의 전부인 우리 민중의 말 좀 들어라~!!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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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09 00:48 2005/07/09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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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an Miró >

종달새의 노래 , 1967


 


 


 

VINCENT VAN GOGH
La chambre de Van Gogh a Arles (Van Gogh's Room at Arles)
1889
Oil on canvas
57 x 74 cm (22 1/2 x 29 1/3 in)
Musee d'Orsay, Paris


 

 
 


 

 

< Bruegel, Pieter

The Fight Between Carnival and Lent
1559
Oil on oak panel
118 x 164.5 cm
Kunsthistorisches Museum Wien, Vienna


 

 

 


 


 


 


 

 

 

Ursus Wehrli, class 1969, is left-handed person, transverse philosopher and learned Typograf. For 15 years it together with Nadja winner tourt as Komikerduo Ursus & Nadeschkin between Wattwil, Basel, Berlin and New York and in this constellation several times excellently last with the "New York Comedy Award", the "Salzburger bull" and the "German small art price". It lives as Komiker to clear up Kabarettist and free lance artists into Zurich on the idea art came it, when it was surprised one morning when the roll getting the winter beginning and at the ears froze.

© Tom Kawara


 

진중권의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을 통해 알게된

코미디언, 엔터테이너, 디자이너를 겸한 스위스 태생의 예술가이다.

오...정말 놀라운 발상 & 실력이다..

나도 저런 유머감각이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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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20 20:41 2005/06/20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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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그곳은 자유민주주의 국가 내의 공동체 중

가장 비자유민주주의 성격을 지닌 곳이 아닐까 한다.

 

기강, 효율 이라는 명목으로 모든 인권은 개무시되니 말이다.

이런 뭣같은 인권개념으로 어떻게 자국민을 보호하려고 하는지...

 

지금 언론이 이번 군사건을 "군문화 vs 신세대 문화" 식으로 몰고 가면서

문제의 촛점을 신세대의 문화에 맞추고 있는데

이것은 분명 잘못된 문제접근이다.

 

이번 사건의 문제는 (아니 거의 모든 군내 사건은) 군대 그 자체이 있다.

모든 개성과 특성과 주체성을 무시한 현재의 군대체제가

일반시민의 자유민주주의 의식을 따라가지 못한채

과거의 억압적이고 비인권적인 행태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그런데 지금 언론은 그것보다는

일반시민의 의식 성장을 문제삼고 있는 것이다.

(군대에서 탈영, 자살, 구타와 같은 사건의 원인을 발표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군대 그 자체의 비자유민주주의 성향은 은폐, 엄폐한 채

 사건 당사자의 특이성만을 문제삼는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일인가?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인분사건' 이후 잊혀졌던

몰상식의 군대문화가 다시 도마 위에 올라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군대가 '사람의 공동체'로 변혁되었으면 한다.

 

(물론 나의 궁극적인 바램은 군대의 해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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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20 20:32 2005/06/20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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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러. 나

 

 공부 지지리도 안하고 이러고 있음........--;;;;;;

갈수록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 & 집중하는 시간이 짧아짐.....덴자~앙!

 

낼은 맘먹고 도봉문화정보센터에 가서 공부할 예정임....

(원래 오늘고 가려했으나 늦잠 관계로...

 낼은 다행히 9시 개관이라 갈 수 있을 것 같음......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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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13 22:39 2005/06/13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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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10 12:39 2005/06/10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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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와 문학이라는 글쓰기 교양 수업의 과제로 쓴 자기전공 소개글이다.

 

 

 “전공이 뭐니?”
 “법학(의학, 교육학)을 전공하고 있어요.”
 “그래, 훌륭한 법관(의사, 교사)이 되렴.”

 

 “전공이 뭐니?”
 “정치외교학을 전공합니다.”
 “너, 정치하지 마라!”
 “.......”

 



 정치외교학과에 들어온 지가 벌써 8년째이건만 아직 이 이상의 반응을 본 적이 없다. 이렇듯 정치외교학과는 우리나라 정치인의 이미지에 의해 평가받고 있다. 정외인으로서 억울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이에 이 자리를 빌어 정치외교학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설명해 보고자 한다.


  정치외교학과에서 배우는 것은 말 그대로 정치와 외교이다. 이중에서 외교도 국가 간의 정치라 할 수 있으니 ‘정치외교학과에서는 정치를 배운다'고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정치란 무엇인가. 정말로 우리나라 정치인이 하는 정치가 그 정치의 전부인가.


 앞의 일화처럼 사람들은 정치하면 보통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들이 하는 뭔가 국가적 차원의 일만을 떠올린다. 그러면서 정치를 하는 사람은 따로 있고 자신은 그것을 감시하는 역할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반만 맞는 이야기다.


 정치는 유명한 정치학자 D.Easton의 정의를 빌리자면 “사회를 위한 제가치(諸價値)의 권위적 배분"이다.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사회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여러 가치를 구성원이 납득할 수 있는 방법으로 배분하는 행위가 바로 정치란 이야기이다. 여기서 말하는 가치란 자원이나 화폐 같은 물질적인 가치뿐만 아니라 권력이나 지위 등의 추상적 가치도 포함한다. 이러한 가치는 대부분 유한적인 것이어서 그것을 자칫 잘못 나누면 공동체의 불화를 불러올 수 있다. 따라서 공동체 구성원의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수단을 통해 가치를 배분해야 한다. 하지만 이 설명으로도 아직 정치는 먼 이야기로만 들린다. ‘가치’란 개념이 너무 추상적이기 때문이다. 앞에서는 가치의 예로 자원, 화폐, 권력, 지위 등의 범위가 큰 것들을 들었는데 우리 주변에서 찾아보면 쉽게 만나는 것들도 많다. 예를 들자면, 친구 셋이서 빵 4개를 나누어 먹는 방법이나 모임의 대표를 뽑는 방법 또는 팀과제를 조원에게 배분하는 방법 등이 이에 속한다. 즉, ‘정치'란 공동 목표를 추구하는 활동으로 갈등을 조정하여 조화로운 삶을 추구하는 모든 행위를 뜻하는 것이다. 이는 정치란 공동체 생활임을 뜻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동체에 속하므로 ‘정치는 곧 생활이다’고 할 수 있다.


 그럼 정치사상은 무엇인가. 우리는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소유하며 살아간다. 먹고 입고 잠자고 하는 모든 행동이 소유와 관련이 있다. 어렸을 때야 소유의 개념이 명확하지 않았고 또 그리 중요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소유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어 자신의 것을 챙기게 된다. 그것은 생존과 결부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소유의 문제로 우리는 많은 사람들과 부딪치게 되는데 이를 누구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보았고, 누구는 ‘자유와 평등의 장’으로 보았다. 그러한 인식아래 인간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이론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그것이 바로 정치사상이다. 여기에서도 정치는 생활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정치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정치적 활동’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해야할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모두 아우르는 개념이다.

 이에 혹자는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
  “그럼 정치외교학과에서는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인가?”
 

 그렇다. 정치외교학과에서는 사는 법을 배운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조화롭게 사는 법을 배운다. 가치의 배분에서 소외되는 이가 없이 모두가 만족하는 세상을 이루는 방법을 배운다. 국내정치와 국제정치 모두 이러한 사상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많은 수의 정치인들이 이를 망각하고 특정 부류의 이익과 권리만을 내세우고 있어 욕을 먹는 것이고, 덩달아 정치외교학과생도 핀잔을 듣는 것이다. 때문에 이러한 왜곡된 정치를 하지 못하도록 우리 모두가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 하지만 정작 실상을 돌아보면 많은 이들이 정치에 무관심하게 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정치는 생활이다. 그렇기에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것은 곧 삶에 무관심하다는 소리가 된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정치외교학이 필요한 것이다. 정치가 곧 삶임을 주지시키고 나아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부터 권위의 정당성을 인정받아 갈등을 조정하여 조화로운 삶을 추구하는 리더가 되도록 훈련하는 곳이 바로 정치외교학과이다. 따라서 “살지 말아라!”라는 뜻과 같은 “정치하지 마라!”는 우매한 충고는 앞으로 더 이상 하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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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09 23:34 2005/06/09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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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욜에 있었던 노브레인 콘서트에 다녀왔다.

간만에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다 땀으로 적셔가며 논 것 같다.

(원래 난 운동을 해도 이 정도까지 땀을 흘리지 않는 편이다.)

밧뜨 그러나.....

지금 몸이 너~~~~무 아프다.

완전 몸싸움.............ㅋㅋㅋㅋ

뭔 놈의 슬램을 그렇게 전투적으로 하는지 원......

온몸의 관절이 모두 삐그덕~!! 근육도 욱신욱신.....--;;;;;

그래도 재밌었다......

 

(아.......이렇게 부실하게 후기를 쓰다니.....ㅋㅋ

어쩔 수 없다...과제가 넘 밀려있다....기말고사가 끝난 후에 쓸란다.

그 때 찍은 사진과 이벤트 당첨으로 받은 티셔츠 사진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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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05 18:01 2005/06/05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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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기억하는 또 다른 방식
-임철우의 『백년여관』-

 

 최근 일어난 여러 가지 국내,외 사건 중 전혀 다르면서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국내로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국립 대전 현충원을 찾아 12.12 군사 쿠데타의 주역 중 하나인 유학성 씨의 묘소를 참배한 일과 국외로는 일본 경비정이 울산 간절곶 앞 바다에서 우리나라 해경과 대치한 사건이다. 이 두 가지 것이 비슷한 이유는 두 사건의 주인공이 모두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둘 다 과거에 한국국민에게 커다란 상처를 입혔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억은 잊은 채 현재의 얄팍한 법체계를 방패삼아 스스로를 법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는, 오히려 피해를 보고 있다는 식의 기억을 하고 있다. 하나는 수백 억의 추징금을 받고도 全재산이 29만 원 뿐이라면서 당당히 살고 있고, 하나는 제국주의적 침탈을 자행했으면서도 한국 어선에 의해 영역침범을 당했다며 강경대응하고 있다. 이렇게 이 둘은 가해자 기억을 망각한 채 피해자로 살고 있다.

 



 반면 피해자인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나? 씁쓸하게도 시간이 갈수록 피해자로서의 인식을 잊으면서 살고 있다. 변변한 보상이나 사과도 하나 받지 않았으면서 너무나 쉽게 용서와 화해의 제스처를 보내고 있다.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 과거에 대한 기억을 지우라 종용하기까지 한다. 특히 과거를 글로 기록하는 문학의 경우 역사에 대한 기억과 재생의 역할을 더 이상 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역사는 뒤로한 채 개인의 존재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흐름은 우리 자신을 상처투성이로 남기게 되고 결국 자기 성장의 커다란 장애물로 작동하게 된다. 여기 이와 같은 거꾸로 된 흐름을 바로 잡으려는 시도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임철우의 『백년여관』은 일제시대부터 4.3제주항쟁, 한국전쟁, 80년 광주민주화운동까지 우리나라 1백년의 역사를 그림자섬 '영도(影島)'의 '백년여관'에 모인 등장인물들의 갖가지 사연을 통해 그려낸다. 그는 1981년 등단 이후 한국전쟁과 광주 5.18 민중항쟁과 같은 묵직한 소재를 즐겨 다뤄 왔다. 80년대적 무거움을 버리고 90년대적 경쾌함으로 다투어 달려가던 90년대에도 그의 취향은 달라지지 않아, 1998년 초에는 5월 광주의 열흘을 다큐멘터리처럼 재구성한 다섯 권 짜리 장편 <봄날>을 출간하였다. 이번 소설에서도 그는 4.3제주항쟁과 한국전쟁, 베트남전쟁과 함께 광주를 중요한 주제로 다루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역사문제를 소설로 그려내는 것에 대해 많은 이들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 역시 이러한 것을 의식하여 소설 안에서 논쟁을 벌인다. 

 “역사나 정치의식 과잉이라는 것도 벌써 한참 지난 시절 얘기죠.”
 “요즘 소설 안 쓰시나? 이형 소설, 본지가 한참 된 거 같은데. 이젠 제발 오월이니 육이로니 하는 거 좀 벗어나서. 멋진 거 하나 써보쇼. 예?”
 이에 대해 그는 그러한 역사인식이 가진 얄팍함을 까발린다.
 “...어쨌거나 너와 동시대인임에 분명한 그들의 삶, 아니 존재 자체를 깨끗이 지워버리고 싶어 견딜 수가 없는 거겠지...그 고약한 인분 덩이를 눈앞에 빤히 놓아두고서야 아무 일도 없다는 양 훌쩍 뛰어넘어, 저 현란한 너희들의 미래 속으로 홀가분하게 내달려가기란 아무래도 거북스럽고 기분 찜찜할 테니까. 안 그래?”

 그는 역사를 그저 흘러간 과거의 시간이 아닌 현재와 관계를 맺고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의 표정은 그다지 달가워 보이지가 않다. 때문에 그는 새로운 방식으로 역사를 기억하고 기록한다.
 첫 번째는 소설 속의 주인공을 새롭게 그려내는 방식이다. 

  “<섬이 하나 있다. 그림자의 섬. 영도> 당신의 책상 앞 벽에 붙인 쪽지엔 그렇게 적혀 있다. 그건 당신이 구상 중인 소설 『섬』에 관한, 이를테면 창작메모인 셈이다.”
 

『백년여관』의 주인공은 소설을 쓰는 작가로 나오며 그 역시 ‘영도’라는 섬을 화두로 하여 글을 쓰는 중이다. 그리고 모든 사건이 끝나고 소설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주인공의 소설 역시 완성되는데 그 시작이 『백년여관』의 시작과 같다. 게다가 이것이 단순히 그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로 다가올 수 있도록 주인공을 지칭할 때 ‘나’라는 일인칭 호칭을 사용하지 않고 ‘당신’이라는 2인칭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이와 같은 주인공 설정과 호칭 선택은 독자로 하여금 소설 밖에서 텍스트를 대하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 안으로 들어와서 여러 역사적인 사건들을 만나게 한다. 즉 독자를 또 다른 주인공으로 초대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은 마술적 리얼리즘이다. 마술적 리얼리즘이란 역사적인 상황과 절대로 있을 법하지 않은 일들을 꿰어 맞춘 듯한 서사 기법으로 콜롬비아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지은 『백년 동안의 고독』이 그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이야기의 배경이나 주제는 역사적이며 사실적이지만 이야기 전개 방식이나 세부 사건은 판타지와 같은 방식으로 펼쳐진다.

  “....모슬포에선 멸치잡이 그물에 고양이만한 크기의 쥐 떼가 잡히고, 서귀포 앞바다에선 느닷없이 어마어마한 멸치 떼가 작은 무인도 위로 한꺼번에 뛰어올라왔다. 또 난데없이 바다에서 회오리바람이 몰려와 수천 마리의 실뱀을 온 마을 지붕 위에 쏟아 붓기도 하고, 서귀포 밤섬에선 수십 마리의 돌고래가 일제히 암벽을 향해 돌진해 머리를 들이받고 죽어버렸다.”
 

 이러한 기이한 형식의 묘사와 서사 방식은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역사전개를 흥미로운 이야기로 바뀌어준다. 민담이나 전설과 같이 과장되어 있기에 재미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현실에 대한 인식을 흐트러트리지 않을 정도로만 사용되고 있어 흥미 위주의 판타지 문학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이처럼 임철우는 여러 가지 이유로 역사를 기억하는 것을 거부하는 이들에게 역사를 바라보는 또 다른 방식을 제시함으로써 현재와 미래에 대한 올바른 대응을 할 수 있는 인식체계 마련해 주고 있다. 우리 한국국민에게 있어 반드시 기억하고 재인식해야 할 굵직한 사건들을 새로운 방식의 글쓰기 방식을 통해 소화하기 쉬운 텍스트로 요리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이와 같은 시도를 지나쳐 버리기엔 너무나 아쉬우면서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만약 많은 이들의 외면으로 인해 이러한 시도마저 없어져 버린다면 처음 이야기한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백년여관』의 작가 후기 중 한 부분을 인용하며 이 글을 마칠까 한다.

  “산 자의 시간과 죽은 자의 시간. 이 세계엔 그 두 개의 서로 다른 시간이 공존한다. ‘죽은 자의 시간’은 결코, 연대기의 숫자를 바꾸는 것만으로, 과거니 역사니 하는 따위 딱지를 붙여 간단히 폐기처분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그를 기억하는 자들의 삶을 통해, ‘산 자의 시간’과 더불어 존재하고 또 한참으로 더 지속해간다. 그러므로 그것을 기억하는 자들이 아직 우리와 더불어 살고 있는 한, ‘죽은 자의 시간’은 과거이면서 동시에 엄연한 현재형의 시간인 것이다.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한 인간 존재의 죽음은 육신의 호흡이 멎음으로써가 아니라, 그를 기억하는 지상의 맨 마지막 인간이 사라지는 순간에야 비로소 완성되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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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03 08:33 2005/06/03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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