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심포지엄- 미일동맹과 북한의 핵(1)

이것도 역시 2003년에 아사히신문에 연재될 때에 모사이트에 번역해서 올린 것 ....!!

 


미일동맹과 북한의 [핵] - 94년 위기의 교훈을 근거로 해서



북한의 핵개발문제를 둘러싸고 한미일의 전문가가 토의하는 심포지엄 [미일동맹과 북한의 [핵] - 94년 위기의 교훈을 근거로 해서](아사히신문사, 시즈오카현립대학 현대한국조선연구센터 주최)가 3월21일, 동경 우찌사이와이쵸우의 이이노홀에서 열려서, 이라크전쟁과 같은 사태를 한반도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한미일은 어떻게 해야만 하는 것인가를 토의했다.




로버트 칼루치 미 조지타운대학 외교대학원장. 미국무차관보를 거쳐 94년부터 96년까지 북한핵문제담당대사. 57세




다니엘 포네만 미 유력 싱크탱크 [외교문제평의회] 멤버. 94년 당시에는 미정부의 국가안전보장회의 핵확산금지담당 상급부장. 47세




공로명 한국 동국대학 일본학 연구소장.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 한국측 위원장. 주일대사역임. 94년부터 96년까지 외무부장관. 71세




야나이 슌지 일본 중앙대학 법학부교수. 외무부 종합 외교정책국장으로서 94년 핵위기에 대처했고, 그 후 사무차관, 주미대사를 역임했다. 66세




이즈미 하지메 시즈오카현립대학 현대한국조선연구센터 소장. 동개학 조교수, 교수를 거쳐서 1월부터 현직. 공저로 [김정일시대의 북한]. 52세



(코디네이터는 혼다 마사루 아사히신문 편집위원)

 



 

사회 여러분, 안녕하세요, 매우 오래 기다리게 했습니다. 지금부터 아사히신문사와 시즈오카현립대학 현대한국조선연구센터가 주최하는 [미일동맹과 북한의 핵 - 94년 위기의 교훈을 근거로 해서]를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오늘의 아나운서를 담당하는 이토나가 나오미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박수)

먼저, 주최자를 대표해서, 아사히신문사 전무이사 편집담당인 키미와다 마사오씨가 여러분들에게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키미와다 여러분, 바쁜신 중에도, 많이들 와 주셔서 매우 감사합니다. 시즈오카현립대학 현대한국조선연구센터, 그리고 아사히신문인 주최자를 대표해서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어제, 미군, 영국군의 이라크공격이 시작되었습니다. 대량파괴무기의 위협으로부터 우리들은 피할 수 있을지 어떨지, 해방될 수 있을지 어떨지... 이 같은 테마는, 실은 오늘의 테마인 북한의 핵문제와 연관된 것입니다.

북한은 작년말, 94년의 [북미 틀안의 합의]에 의한 핵개발동결을 그만둔다고 선언했습니다. 이어서, 핵확산금지조약(NPT)의 탈퇴, 그리고 원자로의 재가동이라는 수순으로, 행동해 가고 있습니다. 향후의 전개에 대해서는 전혀 예상도 할 수 없습니다만, 만약, 북한이 본격적으로 핵개발을 하게 되면, 아시아의 안정, 평화는 크게 흔들릴 수 밖에 없습니다.

일본은 동시에 또 하나, 납치문제라는 큰 문제를 안고 있어서, 북한에게 조기에 해결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아사히신문사는, 북한문제에 관한 연속 심포지엄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미 제1회는 지난 달 말, 개최되었고, 여기에는 한국의 동아일보의 21세기 평화연구소, 그리고 중국의 현대국제관계연구소, 마지막으로 아사히신문의 아시아 네트워크(ANA)라는 3곳의 싱크탱크가 공동으로 개최했었습니다. 또한 그 내용은 3월 6일자 지면에 게재되었기 때문에, 혹시 읽으셨었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오늘이 2번째 심포지엄이 됩니다. 앞서 말씀드린 시즈오카현립대학 현대한국조선연구센터와 공동으로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제2차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이었던 1993년, 그리고 1994년 당시, 미국정부의 북한 핵문제담당대사로서 틀안의 합의를 이끌어 낸 로버트 칼루치씨, 그리고 전 미국국가안전보장회의 핵확산금지담당 상급부장인 다니엘 포네만씨, 그리고 전 란국외무부장관이었던 공로명씨. 공로명씨는, 바로 지금, 도착하셨고, 이번 문제로 공항의 시큐러티 체크가 엄격해졌기 때문에 가까스로 여기에 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 외무사무차관이었던 야나이 tbs지씨, 마지막으로 주최자를 대표해서, 현대한국조선연구센터 소장인 이즈미씨. 모두들, 프로 중에 프로이고, 실무에 종사하셨던 분, 연구하셨던 분들뿐인 정말로 훌륭한 모일 수 있었습니다.

북한의 핵개발을 막을 수 있을지 어떨지, 이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만, 해결을 향한 길의 실마리를, 이와 같은 심포지엄을 통해서 잡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습니다.

지금부터 오후 5시까지, 매우 긴 심포지엄입니다만, 마지막까지 경청해주신다면, 주최자로서 매우 고맙겠습니다. 그럼, 부디 마지막까지 편안히 들어주십시오. 감사했습니다. (박수) 

사회 그럼, 패널리스트 여러분들이 등단하시겠습니다. 자, 박수로 맞이해 주십시오. (박수)

지금부터, 토론을 시작하겠습니다.

우선은, 패널리스트 여러분들부터 소개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보시기에 우측부터, 전 미국국가안전보장회의 핵확산금지담당 상급부장인 다니엘 포네만씨. (박수)

미국 조지타운대학, 외교대학원장인 로버트 칼루치씨. (박수)

전 한국 외무부장관인 공로명씨. (박수)

중앙대학교수로, 전 외무사무차관인 야나이 슌지씨. (박수)

시즈오카현립대학 현대한국조선연구센터 소장인 이즈미씨. (박수)

그리고, 코디네이터를 담당하신 분은, 아사히신문 편집위원인 혼다 마사루씨입니다. (박수)

심포지엄에서는, 여러분들의 질문을 받겠습니다. 접수할 때 배포해 드린 질문용지에 간결하게 기입한 후, 휴식시간, 15시 10분 무렵으로 예정하고 있습니다만, 그 때 접수처의 질문함에 넣어 주십시오. 그럼, 이 후의 진행은 혼다씨에게 부탁드리겠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혼다 코디네이터를 담당하고 있는 아사히신문의 혼다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라크전쟁 개전 2일째라는 중요한 타이밍에 이 심포지엄은 겹쳤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작년 가을 이래, 급속하게 심각하게 되어 가기만 하는 북한의 핵문제는, 이라크의 위기와도 여러 가지로 밀접한 관계가 뒤섞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는, 이런 타이밍에 심포지엄이 열린 것은, 매우 잘 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좀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러나, 본질을 의논하기에는 매우 좋은 타이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참석해 주신 패널리스트 여러분들은, 1993년부터 94년에 걸쳐, 전쟁 일보직전까지 사실은 갔었다고, 미국의 전국방장관인 페리씨가 말했던 [93년, 94년 북한핵의혹위기] 때, 한미일의 각 정부의 당사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심포지엄의 부제는, [94년 위기의 교훈을 근거로 해서]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타이밍도 생각해서, 아울러서 [이라크전쟁의 한반도에의 임펙트]라는 점도, 실질적으로 오늘의 토론, 심포지엄의 부제가 된는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처음에 각 패널리스트 여러분들이 10분씩, 현 상황, 북한의 핵위기란 대체 무엇인가?, 94년과 비교해서 어느 부분이 같고 다른가, 또는 이라크전쟁과의 관련도, 이것은 후에 제대로 의논하겠습니다만, 언급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우선, 이즈미선생, 북한의 이 핵위기란 대체 무엇인가와, 그라고, 앞으로 어떻게 전개가 될 것으로 예상하는지, 여기서부터 이야기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모두발언 이즈미씨/10년전 보다 훨씬 더 위험한 게임


이즈미 고맙습니다. 10분이라는 한정된 시간이기 때문에, 포인트만을 몇 가지 말하겠습니다.

저는 지금, 북한의 핵문제는 아직 위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앞으로 수개월간으로 위기라고 말해지는 상태가 될 가능성은 매우 높은 것은 아닐까라고 걱정하고 있습니다.

위기의 성격을 생각할 때에,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특히 이것을 10년전의 위기와 비교한 경우입니다만, 미국의 이 북한의 핵문제에 대한 이해 방식이, 저는 10년전과는 크게 변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북한은 10년전의 경험을 그대로 답습해서, 같은 게임을 다시 반복하려고 하고 있다. 미국이 크게 변해 있다는 점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사실은 북한에게는 없는 것은 아닐까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이것은 매우 위험한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미국의 인식이 변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93년, 94년 당시의 핵위기때의 미국의 관심은, 이것은 후에 칼루치대사, 포네만씨들도 발언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역시 확산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이 핵병기를 가지는 것 자체가 핵병기의 확산을 초래한다는 인식이, 미국에게는 강해서, 그것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가 상당한 중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3가지 중요한 것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만, 1번째)는, 1995년에 핵확산금지조약(NPT)의 재연장회의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북한이 핵병기를 보유하는 것을 허용하게 되면, 세계적인 범위에서의 핵확산방지체제, NPT체제가 크게 동요하는, 혹은 붕괴할 지도 모른다. 따라서, 이것을 막지 않으면 안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2번째)로는, 북한이 핵병기를 가지는 것은, 동북아시아지역에 핵병기가 확산하는, 즉 일본 혹은 한국, 게다가 대만이 핵병기 보유 방향으로 움직일지도 모른다. 이것은 동북아시아지역의 국제관계를 크게 변화시키고, 매우 위험한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막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인식이 있었다.

3번째)로는, 북한의 핵병기는, 지역을 넘어서, 예를 들면 남아시아, 혹은 중동지역에 수출되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은, 우선 중동지역에 갈 가능성은 크게 있었고, 지금도 있습니다만, 결과적으로 중동의 평화 안정을 상당히 위협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막기 위해서라도, 미국이 북한의 핵문제를 해결할 수 밖에 없어서, 93, 94년 교섭을 하고, 합의를 본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그러나 그 때에는, 적어도 미국 본토가, 혹은 미국이 직접적으로 위협을 받는다는 인식은 매우 적었다고 생각하니다.

그러나, 현재의 부시정권이 북한의 핵문제를 생각할 때에는, 이것은 확실히 직접적인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다. 지금의 부시정권의 언행에서 보면, 본토방위의 관점에서 보고 있는 점이 매우 강해지고 있는 것이 큰 변화로 생각합니다.

이것은, 북한이 핵병기를 보유하는 것은, 미국을 직접 공격하는 수단으로서 사용할지도 모른다는 점이 있고, 또는 북한이 많은 핵병기를 보유해서, 혹은 많은 병기용의 플루토늄을 보유하는 것은, 당연히 중동지역의, 이른바 미국이 말한 [깡패 국가]의 손에 들어가거나, 또는 테러리스트가 북한에서 얻은 핵병기를 미국에 사용할 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즉 이제는, 북한의 핵병기란 것은, 적어도 거의 간접적인 형태이든, 미국 본토를 직접 공격하는 것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 10년간의 변화에서 또 하나의 다른 큰 차이는, 북한이 탄도미사일의 개발을 계속해 왔고, 미사일의 사정거리가 향상되고 있는, 장래에는 대포동2호라고 불려질 미사일이 미국 본토에까지 도달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우리들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더욱 더 북한은 미국을 직접 공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현재의 부시정권에 있어서의 북한 핵문제라는 것은, 미국 본토를, 미국 자신을 직접 위협할지도 모르는 문제로서 파악하고 있다. 이것은 본토 방위의 관점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10년전과는 상당히 다른 것입니다.

그런데, 반면 북한은, 여전히 93, 94년의 성공예라고 할지, 경험, 기억에 근거해서 또 현재의 핵문제에 대처하는, 게임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조금전에도 혼다씨가 소개했습니다만, 여기에 계시는 저 이외의 분들은 모두 93, 94년의 북한의 핵위기 때에 당사자인, 미국, 한국, 일본의 정부에서 담당하셨던 분들입니다. 지금, 정부를 떠나서, 이러한 형태로 심포지엄에서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 사람들을 보면, 93, 94년의 핵위기 때에, 말하자면 핵문제를 만든 사람들, 그리고 미국과 교섭했던 사람들이, 또한 현재에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북한의 경우에는, 이 10년간 계속 같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담당해 왔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10년전의 기억, 체험이란 것은, 매우 대단한 것이었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그렇다고 하면, 북한쪽에서 보면, 93, 94년의 모든 핵위기를 만들고, 미국과 교섭을 해서, 미국과의 사이에서 거래를 성립시킨 것은, 역시 성공이었다는 기억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다시 같은 일을 반복해서 미국과 교섭을 하고, 교섭을 통한 거래를 무엇인가 실현시키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그 범위에서 북한이 나오는 것은 어렵고, 새로운 발상에 서서 새로운 상황에 대응하는 것은, 저는 매우 어려울 것으로 생각합니다.

특히 문제는, 미국의 인식이 크게 변한 것은, 바로 2001년 9월 11일의 동시 다발 테러사건 이후입니다. 미국 본토가 직접 목표가 되고 있는 것을 전제로, 미국이 안전보장을 생각하게 된 것은, 8월 11일 이후라고 생각합니다만, 그것이 결과적으로, 세계, 국제정세를 크게 변화게 한 것도 사실입니다만, 미국 자신들을 크게 변화시켰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점에 대해서, 북한이 과연 어느 정도로 이해를 하고 있는지, 또는 특히 북한의 경우에는, 김정일 총서기장이, 얼마나 이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아마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저는 생각합니다. 이 점을 이해하는 것은, 밖에서 보면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북한의 관점에서 보면, 93, 94년 했던 것을 반복하면, 반드시 최후에는 미국이 교섭에 응하고, 거래에 응해 주는 것은 아닐까. 즉 미국을 위협하는 것입니다. 미국을 위협하면, 끝내는 미국이 교섭에 응해 주는, 그리고 교섭을 통한 거래도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향후의 전개를 생각해 보면, 북한은 반드시 지금의 위기 레벨을 올려 갈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 때, 지금, 자주 말해지는 것은 3가지입니다. 첫째)는 북한이 플루토늄의 생산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탄도미사일의 발사 실험을 다시 실시한다. 이 번의 경우에는, 대포동2호가 되어, 보다 사정(거리)가 긴 것을 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세 번째)로, 핵보유선언, 혹은 핵실험을 실시하는 것이, 북한이 사용할 수 있는 3가지 카드로, 자주 말해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 세 번째인 핵보유선언이든지 핵실험은, 당면의 경우에는, 거의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북한이 지금까지 자신들은 핵병기를 가지지 않는, 한반도의 비핵화를 지지하는, 실현시키자고 말해 왔기 때문에, 일단 이 태도를 뒤집어서 핵보유가 되면, 이것은 완벽하게 국제적으로 고립한다. 중국, 러시아조차, 이제 북한과의 밀접한 관계를 가질 수 없는 상황을 만들기 때문에, 저는 북한이 간단히 그러한 방향으로 착수한다고는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단 문제는, 플루토늄의 생산, 그리고 미사일의 발사이지만, 이 2가지는 충분히 있을 수 있다는, 이것을 카드로서 내놓고서 미국을 더 위협해서, 미국을 교섭 테이블에 어떻게든지 끌어내서, 그리고 거래를 하려는 상황으로, 가까운 시일내에 북한은 갈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플루토늄이 먼저인가 미사일이 먼저인가라는 이야기입니다만, 저는 보다 확실한 것부터 카드를 내밀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순서로 말한다면, 플루토늄생산이 먼저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미사일발사라는 것은, 발사에 실패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단 실패를 하면, 미사일 카드는, 거의 효과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플루토늄생산은, 제대로 준비를 갖춰서 추출에 들어가면, 확실하게 플루토늄은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입니다. 확실성으로 보면, 플루토늄이 훨씬 높다. 따라서 저는, 카드를 내놓는 순서는, 보다 확실성이 높은 것으로, 미국을 위협한다는 것이 당면, 이 수개월, 비교적 가까운 시기, 이라크전쟁이 일단락된 후에는 그러한 방향으로 갈 것은 아닐까 시ㅍ습니다.

그렇게 하면, 이것은 매우 긴장을 높인다. 그리고, 미국을 상당히 자극하는, 미국은 상당히 심각한 걱정을 가질 것입니다. 즉 직접 미국의 안전이 위협받을지 모른다고 부시정권은 생각할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매우 위험한 게임일 것으로. 93, 94년에 한 것 보다도 훨씬 위험한 게임을 북한은 하려고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전에 북한에게 그러한 도발적인 공갈의 게임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상당히 간단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혼다 고맙습니다. 톱타자로 나서면, 매우 힘들 걸로 생각합니다만, 시간이 다소 길었습니다. 다음 분은 가능한 10분의 제한시간을 지켜 주시면 좋겠습니다.

다음은 칼루치씨. 칼루치씨는 93년, 94년의 위기 때에는, 국무차관보에서 북한과의 실제 교섭담당 대사를 하시고, 또 한 틀안의 합의라는 중요한 협정을 이루어 내신 분입니다. 그럼, 칼루치씨 부탁드립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