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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사람의 육체가 성장판이 닫히면 성장을 멈추듯이 의식이나 성격도 일정한 정립기를 지나면 더 이상 바뀌지 않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누군가에게 '삶에 대한 너의 태도는 좋지 않으니 이렇게저렇게 바꾸도록 해봐.'라는 따위의 충고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 아닐까.
육체에 한계가 있듯 정신에도 한계가 있기 마련 아닐까. 내가 우사인 볼트 만큼, 아니 그보다 두 세배 더 훈련을 한다고 해서 그 만큼 빨라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육체를 이루는 유전자의 한계가 분명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정신에도 한계가 있는 것이 아닐까. 내가 아무리 의식적으로 마음을 고쳐먹으려해도 한번 틀 잡힌 마음, 정신이 바뀔까. 물론 여기서 말하는 정신의 한계란 육체의 한계와는 좀 다른 개념이다. 육체는 스피드나 파워 같은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면에서 우열을 가릴 수 있겠으나 정신이나 마음, 심성이나 기질 따위는 우열을 가리기가 애매하기 때문이다. 선량함이나 관대함 또는 담대함 같은 사회적 덕목이 있긴 하지만 그런 것도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개념이고 그런 인성의 일부만 가지고 함부로 정신의 우열을 논할 순 없다. 정신의 우열을 논한다는 것은 인격 나아가 존재의 우열을 논하는 것으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말이 길어졌는데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한 번 고정된 정신, 마음 상태가 변하기는 내가 우사인 볼트 만큼 빨라지는 빨라지는 것 만큼이나 어렵지 않을까 하는 거다. 정신, 마음 상태의 고정이 유전자 탓인지 아니면 유년 또는 소년기의 자라난 환경 탓인지, 아니면 복합적인 이유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게 지금 문제에서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미 나의 정신은 고정되어 있으므로.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라고 묻는 노래도 있지만, 사람의 본질이 변하는 것 같진 않다. 시간이 지나고 변화하는 환경에 따라 보이지 않았던 인성이 나타나는 것이 변했다고 느껴질지언정 '어, 이 사람 많이 변했네.'라고 느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변하는 것이 아예 불가능하다는 것은 아니다. 큰 병이나 사고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온 사람이 삶의 태도를 바꾸는 경우를 영화나 문학, 가끔은 현실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또는 불현듯, 아니면 오랜 수행을 거쳐 '깨달음'을 경험하는 사람들도 가끔 있다. 그러나 이는 특별한 경우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고난 아니면 어려서 생성된 성격, 기질을 평생 짊어지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좋든, 싫든, 말이다.
가끔씩 '뜨끔' 한다. 내 성격과 기질의 단점을 지적하는 느낌을 받았을 때.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냐고, 여지를 남기지 않는 열정으로 '오늘'을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여기저기서 쿡쿡 쑤실 때.
그래, 맞는 말이고 정말 공감도 하지만 성격이 안따라주는 건 어찌할까. 마음은 리오넬 메시인데 발은 개발이라 자꾸 알을 까는 것만 같은 느낌. 내 삶의 주인이 되어 주체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자꾸 누군가에게 의지하게 되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나, 누구의 시선도 개의치 않고 오늘만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자꾸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내일을 계산하는 나. 나 나 나...
고흐나 앙리 루소의 그림을 볼 때 마다 이런 나를 질책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진다. 가슴은 비수에 찔린 것처럼 '뜨끔', 얼굴은 '화끈'.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으로 뒤돌아 쭈구리고 앉아 나즈막히 중얼거린다. "자꾸 그러지 마요. 나도 이렇게 살고싶진 않지만 생겨먹기를 이렇게 생겨먹은걸 나보고 어떡하라구..."
이해한다. 절절히.
위대한 개츠비 F. 스콧 피츠제럴드 민음사, 2003 |
돈과 여자. 아니 돈은 여자를 만나기 위한 곁에 두기 위한 수단이었으니 결국은 여자. 그러나 그 여자는 또한 자신이 꿈꾸는 이상향의 한 상징. 결국은 상류사회를 바라는 꿈이었나. 한갖 부질없는 꿈, 결국은 재산과 허세. 위선과 허영으로 가득찬 상류층의 삶을 개츠비는 꿈꿨나보다. 그러나 그런 부질없는 꿈마저 없다면 개츠비에게 삶은 얼마나 부조리하고 무의미했을까. 그것이 곧 재즈시대 미국의 욕망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지금 우리사회의 욕망이기도 하다.
나 역시 마찬가지. 최근 독립한 나만의 공간을 남보기 부끄럽지 않게 근사하고 폼나게 꾸미려고 한다. 내가 사는 이곳은 내 허영과 위선의 공간. 이곳에서 영원히 이루어지지 않을 초록빛 꿈을 꾸리라.
○ 오슬로의 이상한 밤, 2007, 벤트 해머
- 제목이랑 포스터 보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영환줄 알았다. 원작의 제목은 주인공 이름인 <오드 호텐(O' Horten)>인데. 한글제목으로 낚인 사람 나 말고도 여럿 있을 듯 하다. 뭐 북구의 밤 정취를 생각하면 환타지스런 면이 아예 없진 않은 것도 같다.
- 노르웨이의 철도는 정년이 67세란다. 우리나라의 철도는 57세. 현재 59세로 연장 추진 중일껄. 고용안정 면에선 좋겠지만 이 정도면 너무 긴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평균연령이 80을 넘어 90을 바라보는 때이니 그럴만도 하겠지만. 나의 정년은 몇세가 될라나. 그때까지도 살고 싶을까.
- 기관사들의 놀이가 인상적. 소리만 듣고 무슨 기관찬지, 어느 노선인지 맞추는 놀이. 어느 노선의 다리가 몇 개인지 맞추는 놀이. 퇴임 축하연에서 단체로 기관차 성대묘사 칙칙폭폭 뿌~~ 하는 것도 재밌고. 실제로도 노르웨이 기관사들은 그러나. 숙련노동자들의 자긍이 느껴지는 모습.
- 주인공 오드의 단출하고 소박한 살림살이. 단순하지만 기품있는 북구의 디자인.
- 나는 이렇게 독신남이 나오는 영화가 좋더라. <웰컴>이라던가 <토니타키타니>라던가.
○ 리오 브라보, 1959, 하워드 혹스
- 별로 잘 생기진 않았는데도 존 웨인은 '가다'가 나온다. 역시 기럭지가 중요하다.
- 앤지 디킨슨 매력 있다. 몸매도 완전 늘씬...
- 우리편은 절대 죽지 않는다. 스템피 영감 정도는 죽을 줄 알았더만 한 명도 안죽네. 어째 그리 엉성하게 움직이는데도 총알 한 방 안 맞냐. 50년대 영화란 참...
- 끝까지 해피엔딩. 뭔가 반전을 기대했던 관객들에겐 대반전이었겠다. 맘 편히들 보시라.
○ 몬티 파이튼의 성, 1975, 테리 길리엄, 테리 존스
- 나 이거 참 골때려서..ㅋㅋㅋ
- 개인적으로 제일 재밌었던 장면은 왕자를 가둬놓는 장면에서 왕이랑 병사들의 대화. 얼렁뚱땅 능청스런 개그가 딱 내 코드다.
○ 본 시리즈 ; 본 아이덴티(2002, 더그 라이만), 본 슈프리머시(2004, 폴 그린그래스), 본 울티메이텀(2007, 폴 그린그래스)
- 영혼 없는 공무원의 힘겨운 영혼 찾기.
- 이런 음모이론 영화들이 헐리웃에서 잘만 만들어지는 걸 보면 미국정부는 통이 큰 걸까 대충 자신들의 정체를 인정하는걸까. 아님 그저 영화만 잘 팔리면 장땡이라는 장삿속인가.
- CIA의 놀라운 정보력. 노트북 훔치다 들킨 우리의 국정원은? 영화는 영화일 뿐 오해하지 말자?
- 긴박한 추격씬도 화끈한 액션도 세편 연속보면 지겹다.
○ 신 소림사, 2011, 진목승
- 식상하기 그지없는 액션영화. 하지만 가끔 이런 식상한 액션영화가 보고싶을 때가 있다.
- 성룡은 적당히 늙어가는 것 같은데 유덕화는 언제 늙으려나. 그러다 한방에 훅 가지.
○ 조씨고아, 2010, 첸 카이거
-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중국영화는 일단 좀 먹어준다.
- 갈우의 연기가 좀 인상적.
○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 2011, 김석윤
- 생각보다 괜찮은데.
- 부모님과 함께 영화관 간건 머리크고나서 처음인거 같다.
○ 검우강호, 2010, 수 차오핑, 오우삼
- 할 말 없음.
델핀이 참 답답하고 웃기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아니 실제로도 굉장히 까탈스러운 캐릭터지만, 그래도 난 이해가 간다. 누구나 때로는 아무도 자신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자신은 혼자라고 느껴질 때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게 사실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이 깊어지면 영화속의 델핀처럼 자기 스스로도 잘 모르겠고 마음의 갈피도 잘 못잡게 되곤 한다. 그러니까 자꾸 울음만 나고... 일종의 방황 같은 거 아닐까. 델핀이 좀 예민한 성격이라 방황이 깊고 길어졌겠지만, 방황은 누구나 하는 것 아닐까. 각자의 성격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누군가를 만나 외로움에서 벗어나든 녹색광선을 보고 진실을 깨닫든 , 어찌됐던 대부분의 방황은 시간이 지나면 끝나기 마련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또 새로운 방황이 찾아오겠지. 그리고 또 일상으로 돌아오고... 그렇게 방황과 돌아옴을 반복하며 늙어가고 죽어가겠지.
나는 지금 어떤 상태인지 생각해보면, 방황중이다. 좀 됐다. 좀 됐는데 스스로 방황이라고 인식한 지는 그리 오래지 않았다. 벗어나려고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는 중인데 잘 안된다. 어쩌면 만성이 될 것 같다. 그리 바람직한 상태는 아니고 벗어나고 싶은데, 최근 시작하려 하는 글쓰기가 나의 방황을 벗어나게 해줄 "녹색광선"이 되어주려나.
오늘에 관한 글이라...
오늘은 토요일, 글쓰기 모임을 만들자는 회동을 갖은게 저번 주 토요일이니까 오늘이 정확히 일주일이 되는 날이네. 그러니까 오늘까지 글을 쓰면 기간을 넘기진 않는 셈인가?
오늘은 쉬는 날이다. 간만에 여유있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 나의 일상은 늘 여유가 있었지만, 아니 그냥 여유가 있었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나의 일상은 세상에서 두 번째로 심심할 정도로(글쓰기 모임을 주도한 오양이 세상에서 제일 심심한 사람이라고 자평하므로 나는 두 번째) 여유가 있었지만 이번 주는 이런저런 일이 많았다. 뭐 미리미리 해뒀으면 그렇게 바쁠 일도 아니었지만서도, 내일 할 수 있는 일을 굳이 오늘 할 건 또 뭐냐는 뿌리깊은 게으름의 의식때문에 그렇게 되었다. 아무튼 그래서 오늘의 여유가 조금은 특별하다.
오늘은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서 밀린 집안 청소(그래봤자 쓸고닦고가 다지만)와 빨래(세탁기 돌리면 안되는 등산바지 하나)를 하고 정말 간만에 집에 있는 운동기구를 이용해서 운동도 좀 하고 책도 보고 낮잠도 자고 낮잠자다 놓친 <음악중심>이 억울해서 아프리카!에서 걸그룹 나오는 방송을 입이 헤벌리고 보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이렇게 자판을 두들기고 있다. 앞으로 남은 할 일은 <무한도전>보면서 저녁먹고 다음웹툰 <인생이 장난>(캬~ 이거 재밌네)이나 보다가 낮잠자서 잠안오면 다운 받아 논 영화나 보며 맥주나 한 두캔 부셔버리고 자야지. 쓰고보니 그럭저럭 알차게 보내는 하루같은걸. 쉬는 날은 쉬라고 있는거니까.
오늘은 이렇게 그다지 할 얘기가 없고, 어제의 얘기를 하는건 어떨까. '오늘'이란 주제는 기억에 남는 하루를 얘기해보란 것으로, 내 마음대로 해석해서 말이야. 아, 그럼 어제. 어제는 연말정산을 했다. 매년 한 번씩 하는 거지만 할 때 마다 복잡하고 번거롭고... 간소화서비스라는데 뭐가 간소화 되었는지도 모르겠고... 아무튼 연말정산을 하면서 또 한 해가 지났음을 새삼 느낀다. 올해는 신용카드로 얼마를 썼고 현금영수증은 얼마를 썼고... 의료비는 얼마, 보험이랑 주택마련저축은 또 얼마얼마... 생활인의 한 해 돌아보기. 이렇게라도 한 해 돌아보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나.
항목들을 본다. 의료비 항목에 치과진료기록이 있다. 역시 치과는 썩었을 때 바로바로 가야지 괜히 병 키우다 신경치료까지 해버렸다. 그래도 여전히 치과는 꺼리게 된다. 미룰 수 있는 만큼 미루고 싶은 마음... 그리고 또... 작년엔 해마다 해오던 정치기부금을 안했네. 탈당 하고서도 세액공제만큼은 계속 했었는데. 아니 잠깐, 작년에 지방선거 했잖아. 노회찬한테 선거지원금 10만원 한거 같은데. 그거 영수증 받아놓고 굴러다니는거 봤는데. 깜빡 하면 빼먹을 뻔 했네. 에이 월요일에 다시 해야지. 근데 영수증은 도대체 어디있는거야 . 전에 봤었는데. 에이 꼭 찾을땐 없더라. 월요일에 재발급 해달라고 진보신당에 전화해야 되겠네. 아이 번거로워... 어제 얘기를 하려했는데 나의 오늘이 또 이렇게 간다.
내년 연말정산에선 할머니가 부양가족에서 빠지겠지. 그리고 몇년 후엔 아버지가 들어올테고. 혹시 또 모르지. 아내나 아이가 생겨 인적공제 항목을 채우게 될 때라 올런지도. 각박하고 고단한 일상에 지쳐 그저 앞만보고 달려가는 생활인들에게 지난 한 해와 주위사람들까지도 돌아보게 하는 연말정산의 알뜰한 배려. 국세청이여, 영원할지어다!!!
이런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물으면 그닥 할 말은 없지만서도.. 그래도 어떻게든 지난 한 해는 돌아봐야 할 것 같아서...
지난 해에도 많은 영화를 보았다. 40여편... 극장에서도 보고 다운 받아서도 보고. 블럭버스터도 있고 독립영화도 있고. 헐리우드도 있고 국내 유럽, 아시아 영화들도 있고. 최신개봉작도 있고 옛날 영화들도 있고.
<대부 1, 2, 3>
아 걸작이다. 왜들 그렇게 대부 대부 하는지 알 것 같다. 세편 모두 러닝타임이 김에도 시간가는 줄 모르고 보게 된다. 생면부지의 땅에 맨손으로 이민와서 일가를 이뤄낸 사람들의 단순한 논리. "신세진 건 꼭 갚는다. 그러나 나한테 까불면 큰 코 다친다." 강철로 만든 칼 같은 이 단순함은 강하다. 그러나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들 수 있는 용기가 있을 때에야 비로소 강해진다. 이런 단순함의 매력에 사람들이 빠지는 것이 아닐까. 나도 돈 꼴레오네가 되어 한 번쯤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누군가에게 들이밀고 싶다.
<아저씨>, <악마를 보았다> 그리고 <해리 브라운>
이에는 이, 눈에는 눈... 복수 복수 복수... 살인, 강간, 인신매매 등 비인간적 범죄의 전세계적 만연. 회개하라 인간들아. 불의 심판이 떨어지리라. 범죄에 대한 개인들의 복수. 복수는 나의 것. 법이고 경찰이고 믿을 수가 없다. 검찰과 경찰들은 반성할지어다. 느그들이 잘 했으면 이런 영화들이 나왔겠니?
<허트로커>
일, 업무란 이렇게 하는 것이다. 전문가의 업무처리 방법. 때론 나도 이런 식의 업무를 해봤으면 하는 욕구를 느낀다.
<바스터즈>, <더 콘서트>
멜라니 로랑 완전 이쁘다. +_+
<시>
집단 성폭행과 이에 따른 자살. 아이고 어른이고 추모와 반성은 간데없고 그저 뒷수습만이 중요할 뿐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우리에겐 시적 감수성이 필요하다.
<인력자원부>, <당신과 나의 전쟁>
그래,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는 더 깊이 생각해봐야할 필요가 있겠지. 하지만 적어도 영혼 없는 기계가 되진 않겠어.
<방가 방가>
영화의 마지막 부분, 불법체류 노동자들을 도망치게 하는 과정에서 방가는 공무집행방해죄로 잡혀가겠지. 벌금을 물 수도 있고 징역을 살 수도 있겠지. 전과자란 낙인이 찍힐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게 대순가. 출입국관리법 그게 그리 대순가. 때로는 법도 어기고, 공무집행방해도 할 수 있어야 사람이다. "동냥은 못할망정 쪽박은 깨지마라." 방가의 외침에 나는 눈물 짓는다.
자전거를 잃어버렸다. 도둑맞았다라고 하는 것이 맞을까. 나는 분명 자전거를 세워둔 곳을 알고 있었는데 가보니까 없었다. 자전거 스스로 증발하지 않았다면 누군가가 가져간 것이겠지. 누가 무슨 의도로 가져간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 알리지도, 허락도 받지 않고 가져갔으니 도둑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 자전거가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음을 느낀(알았다기 보다는 느꼈다는 것이 당시의 내 감각에 더 가까운 표현같다) 때는, 정말 어리둥절했다. 아, 이것이 도둑을 맞았다고 하는 것인가. 하는... 분노도 짜증도 슬픔도 아닌 그저 그런 감정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다. 별로 화도 나지 않고 슬프지도 않다. 별 느낌은 없다. 그저 궁금할 뿐. 어떻게 가져갔을까. 왜? 무슨 맘으로? 혼자 가져갔을까, 아니면 공범이 있었을까. 사람들의 시선은 어떻게 피했을까. 자물쇠는 어떻게 풀었을까. 풀었을까, 끊었을까.
자전거가 있던 자리에 도난의 흔적이라도 찾아볼 걸 그랬나.끊어진 자물쇠줄이라도 있나 한번 보게. 하지만 난 그렇게 섬세하지 못하다. 그저 가서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주위를 한번 휘휘 둘러보고는 와버렸을뿐. 어차피 찾을 수 있을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니까, 다 부질없는 짓일테다.
처음 자전거를 사고서는 이름도 붙여주고 했지만, 그런건 역시 내 취향이 아니다. 그저 난 타고다니던 한대의 자전거를 잃어버렸을 뿐이다. 물론 정은 좀 들었지만.
봄이 되면 새로운 자전거를 장만해야할테다. 새 자전거를 구하는 일은 나에게 번거로움이 될 것인가 즐거움이 될 것인가. 아무래도 비싼 자전거는 사지 못할 것 같다. 도난의 기억이 언제나 생각의 한 켠에서 자리잡고 있을테니까.
최근 <뺨에 서쪽을 빛내다>라는 새 시집을 낸 장석남 시인의 시 낭송회에 다녀왔다. 시 낭송회는 처음인데 참 괜찮다. 앞으로 자주 다녀야겠다.
얼마 전부터 시에 관심을 갖게 되고 시를 읽고 싶어졌다. 그래서 시를 조금씩 읽고는 있는데, 도통 별 느낌이 없다. 김어준이 <게르니카>원작을 앞에 놓고서도 별 느낌이 없는 자신을 보고 입시공부하느라 미적 감수성을 키울 타이밍을 놓친 것 같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난 시적 감수성을 키울 타이밍을 놓쳤나보다.
이번 장석남 시인의 시집 제목인 '뺨에 서쪽을 빛내다' 가 어떤 의미로 와 닿나. 물론 각자의 느낌과 해석이 있겠고 정답은 없겠지만, 난 도통 모르겠다. 근데 작가는 "서쪽을 지는 태양, 석양이 뺨에 비친다. 뺨에 홍조가 드는거죠. 좀 부끄럽단 겁니다. 사는게 좀 부끄럽지 않나요. 살기위해 먹어야 되고 생활을 해야하고 그런게 다 참 부끄러운 것 같아요..." 뭐 대충 이런 식의 말을 한 것 같다. 아, 그러고보니 확 와닿는다. 인간으로서 연명하기 위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다른 유기체들을 먹어야만 한다. 그 과정에서 생활이란 것을 해야하고. 생각해보면 참 무엇에 대해서인지도 모를 부끄러움, 구차함.. 같은 것이 한 없이 느껴진다. 최규석의 <사랑은 단백질>과도 일맥상통하는 느낌이다.
이런 식으로 시인이 자신의 시를 몇편 낭송하고 거기에 대한 설명을 곁들이니 시들이 많이 와닿는다. 시를 읽는 방법을 한걸음이나마 떼었단 느낌 같은 것이 들었다. 그리고 시인에 대한 편견 같은 것도 많이 깨져 좋았다. 장석남 시인 스스로가 말했는데 "중국집 주방장과 시인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좋다"고... 시인은 뭔가 대단한 것 같고 깨우친 것 같고 달관한 듯한 이미지인데 막상 알고보면 똑같은 생활인이라는 것. 여러 독자들의 질문에 장석남 시인도 의미심장한 답변보다는 별 생각이 없어서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 모습들이 더 소탈해보이고 해서 좋더라.
오늘 게스트로 하이미스터메모리가 나와서 시 낭송도 하고 노래도 불렀다. 펜으로서 참 좋았다. 사인도 받고 얘기도 몇마디 나눴다. ㅎㅎ 곧 2집 앨범이 나온다하고 10월 초에 쇼케이스가 있으니 꼭 오란다. ㅎㅎ
장석남 시인의 이번 시집에서 하나,
부뚜막
부뚜막에 앉아서 감자를 먹었다
시커먼 무쇠솥이 커다란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솥 안에 금은보화와도 같이 괴로운 빛의 김치보시기와
흙이다 겨우 씻어낸 소금 술술 뿌린 보리감자들
누대 전부터 물려받은 침침함,
눈 맞추지 않으려 애쓰면서
물도 없이 목을 늘려가며 감자를 삼켰다
아무도 모를 것이다 감자를 삼킨 것인지
무쇠솥을 삼킨 것인지
이마 위를 떠도는 무수한 낮별들을 삼킨 것인지
눈물이 떨어지는 부뚜막이 있었다
어머니는 부뚜막이 다 식도록, 아궁이 앞에서
자정 너머까지 앉아 있었다 식어가는 재 위의 숨결
내가 곧 부뚜막 뒤의 침침함에 맡겨진다는 것을 짐작했지만 나는 가만히
어머니의 치마 끝단을 지그시 한번 밟아보고 뒤돌아설 뿐이었다
마당 바깥으로 나서는 길에 뜬 초롱한 별들은
모든 서룬 사람의 발등을 지그시 누른다는 것이
이후의 내 상식이 되었다 그로부터
천정이 꺼멓게 그을린 부엌 찬 부뚜막에 수십년을 앉아서 나는
고구려 사람처럼 현무도 그리고 주작도 그린다
그건 문자로는 기록될 수 없는 서룬 사랑이다
그것이 나의 소박하기 그지없는 학설
아무도 모를 것이다 나는 아직도 그것을 시(詩)로 알고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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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을 회피하고픈 사람들이 가장 흔하게 하는 변명이 '난 원래 이런놈'이라지요. 그건 그냥 지독하게 이기적인 것뿐이지요.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