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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장기 프로젝트 [놀며 생각하며 0] 놀며 생각하며

올해도 봄은 흘러가고 나는 여전히 혼자다. 지금 돌아가는 꼴을 보아서는 올봄 역시 홀로 보내게 될 것 같다. 입으로는 연애하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면서 막상 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나를 멀리 하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좋아보인다, 멋있어졌다 말은 많이 듣는데 왜 정작 연인은 만들지 못할까. 정녕 이것이 나의 운명이란 말인가.

 

그것이 운명이라면 받아들여야지. 운명따윈 없다고? 그저 너의 게으름과 소심한 성격 탓이라고? 그 게으름과 소심함 또한 나의 일부인걸 어쩌겠나.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성격은 고칠 수 있다고? 마음먹기 나름이라고? '마음먹기 나름'은 마음 먹을 수 있는 사람에게나 통하는 말이지. 내가 그런 사람이 된다면 그게 지금의 나일까?

 

아무튼 혼자서 지내야만 한다면 혼자서 잘 놀아야겠다. 사실 뭐, 지금까지도 잘 놀았다. 내 생활의 대부분은 놀이였다. 일은 했지만 일을 위해서 일 외에 다른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다. 공부도 하고 가끔 집안일도 했지만 모두 나를 위해서 했을 뿐. 지금 생각하면 굳이 '일'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던 것 같다. 영화, 책, 음악, 공연, 친구만나기, 인터넷질, 게임, 기타치기, 등산, 자전거, 운동... 내가 했던 대부분은 놀이였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그렇다. 당시엔 잘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니까 다 놀이네. 

 

이제 이 놀이들에 조금씩만 감상이라든가 생각들을 달아볼까 한다. 왜? 놀려구. 이렇게 글 쓰는거 자체가 또 하나의 놀이. 아유 재밌어 죽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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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부품은 되지 말자

어제 <당신과 나의 전쟁>을 보았다. <저 달이 차기 전에>가 파업현장 안에서 동고동락하며 파업노동자들의 생활을 감성적으로 담아냈다면 <당신과 나의 전쟁>은 상대적으로 감성적인 것과는 거리를 두고 공장 안과 공장 밖의 풍경을 모두 담아낸 작품이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걸렸던 것이 노무현을 추모하는 사람들이 쌍용차 파업 현장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모습이었다. 노무현을 전혀 지지하지 않았던 나도 당시 분위기에 휩쓸린 건지, 광화문에서 노제를 할 때는 그 곳에 갔었다. 그 많은 사람들 틈에 섞여 떠나는 운구차를 그저 바라보았다. 그 곳의 많은 사람들은 눈물을 흘렸지만 난 그닥 슬프지도 않았고 그저 착잡했을 따름이다. 그저 착잡함이나 좀 달래보려고 그 곳에 갔었는데, 어제 그 노제를 보여주는 영화의 장면을 보고 그 자리에 있던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 난 평택엔 한번도 가지 않은 것이다.

 

물론, 그 날 광화문에 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평택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또 대부분이 파업을 하는 노동자들에게 호의적이지도 않았을거다. 그렇다고 그들을 비난하는 건 아니다. 전직 대통령의 억울한 죽음을 애닲아 하는 마음이야 왜 이해를 못하겠는가. 현직 대통령이 워낙에 무대뽀로 뻘짓을 해대니 상대적으로 과대평가된 면이 많긴 하지만, 그래도 그의 죽음은 비극이었다. 그 비극에 눈물을 흘린 사람들을 비난할 이유가 무에 있으랴.

 

그러나, 그럼에도, 영화속에서 '강상구'가 얘기했듯이 노무현을 보내며 슬퍼했던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더 좋은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들어있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평택으로 가지 않고 단지 노무현을 보내며 슬퍼하는 걸로 끝났다. 그 날 광화문에 있던 사람들의 반만이라도 평택으로 갔더라면 쌍차의 파업이 지금처럼 끝났을까.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정도의 연대라면 프랑스에서조차 찾기 힘들텐데, 제도권 교육과 언론을 자본이 꽉 잡고 있는 나라에서 그것을 바란다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다만, 영화속 광화문의 노란 풍선들이 괴기스럽게 보이면서 그 수 많은 인파 속 어딘가에 서 있을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럽기만 하다.

 

그리고 '산자'. 산자란 정리해고 명단에 없는 자, 즉 살아남은 자를 뜻하는 것 같다. 처음엔 산자들도 파업에 동참했지만 회사에서 정리해고 명단을 공개하자 대부분은 파업장을 빠져 나온다. 그리고 사측의 관제대모에 동원되어 파업중지를 외치고, 나중에는 파업을 하는 동료들과 싸우기까지 한다. 

 

산자들도 알고있다. 자신들의 행동이 부끄러운 것을. 감독이 카메라를 들고 관제대모에 온 사람들에게 "나오고 싶어서 나오신 거예요?", "정리해고 말고 다른 방법이 있다면 어느 것이 좋을까요?" 같은 말을 물었을 때 자리를 피하거나 눈길을 돌리며 아무 말도 못한다. 하지만 어쩔 수 있나. 짤리지 않으려면,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면 그 짓거리를 해야 하는 거다. 아무리 자기의 생각과 양심에 거스르는 일이더라도...

 

누구에게나 그럴 때가 있을 것이다. 아무리 가치관이 개입될 여지가 없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도 선택을 해야할 때가 올 것이다. 신념 또는 양심이냐 아니면 평온한 삶이냐. 신념이나 양심을 버리고 부와 명예라도 얻으면 좋겠건만, 그것도 아니고 그저 평온한 아니, 평온하다는 건 옳은 표현이 아니다. 그저 전과 다름없는 평범한 삶을 얻는 것이다. 신념과 양심을 버리는 대가 치고는 너무 보잘 것 없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산자들이 그렇다. 그저 어제까지 다니던 직장을 다니기 위해 관제대모에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다 같이 살자고 공장을 점거한 동료들을 비난하는 집회를 하고 파업가족들의 천막을 부순다. 동료들과 스스로에게 조금 비겁해진 대가로 그들은 일자리를 보장 받는다. 그들의 영혼은 사라지고 체제를 유지하는 부품만 남았다.

 

그들을 비난할 순 없는 것인가. 단지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나온 그들을 비난하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때로 가혹해져야 할 때가 있다. '산자'들 뿐이 아니라 수 많은 사람들이 단지 먹고살기 위해, 직장을 지키기 위해 매일같이 자신의 양심과 영혼을 버리고 체제의 부품이 되어간다. 그 잃어버린 양심, 사라져간 영혼을 복원시키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가혹해질 필요가 있다. 평온을 얻기 위해 조금의 비겁을 택한 자들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인생에서 가장 잊고 싶은 경험을 한 뒤부터 옳은 것을 옳다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얘기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 바람이 지금까지 내 삶의 가장 큰 화두였던 것 같다. 그리고 그 화두가 이번 영화를 통해서 좀 더 명확해진 것 같다. "적어도 부품은 되지 말자..." 아직까지는 부품으로서 먹고살지 않아도 되는 지금의 직업에 고마울 따름이다. 하지만 유혹은 계속된다. "조금만 더 비겁해봐. 인생 훨씬 편해진다."

 

물론 난 지금도 많이 비겁하다. 하지만 적어도 내 마음 속에 양심과 영혼을 지키려는 마지노선을 지키기 위해서 변변찮은 유혹들과 힘겹게 싸우는 중이다. 그리고 점차 느슨해지려는 방어선을 이 영화가 다잡는다. "제발 이 엿같은 자본주의의 부품이 되지는 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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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념

충치치료를 위해 치과에 갔다가 덧니가 있는 치아교정에 대해 물었다. 꼭 할 마음이 있었던 건 아니고 견적이나 좀 알아보려고. 발치를 해야하는지도. 사실 전에 건강검진 받을 때도 물어봐서 교정하려면 발치해야 한다는 건 알고있긴 했는데, 의사마다 소견이 다를 수도 있으니까. 별 생각없이 물었는데 의사가 하는 말이, 발치도 두개정도 해야하고 치아 뿌리가 짧아서 교정하면 불안정해질 수 있단다. 20대면 모를까 좀 늦은 감도 있고, 남잔데 꼭 할 필요 있겠냐며 개인적으로 비추란다.

 

그래 뭐, 알고있어. 늦은 감이 좀 있지. 지금까지 덧니로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교정하는 것도 새삼 그렇고. 그리고 굳이 발치까지 하면서 하고 싶지도 않았다고. 뭐 그리 속상할 것은 없는데 약간 씁쓸하달까 찜찜하달까. 그렇네. 삶의 가능성 하나가 영영 사라진 느낌이랄까.

 

그게 그렇잖아. 할 수 있는데 안하거랑 아예 할 여지조차 없는 것이 다르잖아. 지금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못하지만 나중에라도 할 수 있다면 어떤 가능성을 품을 수 있을텐데, 앞으로도 영영 할 수 없는 무언가를 받아들여야 할 때의 그 상실감. 그리고 체념.

 

그래 체념이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지. 닭배달 아저씨 인생의 영토가 '주공1단지 그대의 치킨런' 이듯이, 170이 안되는 나의 키를 받아들이고 나의 덧니를 받아들이고 늘어지는 턱살과 눈가에 주름을 받아들여야겠지.  뭐 어쩔 수 없는 거잖아. 내가 뭐 용가리통뼈도 아니고... 그래. 이런게 나이를 먹는다는 거겠지. 체념한다는 거. 받아들인다는 거. 앞으로 점점 더 많아질거야. 너무 서운해하지는 말자고. 그렇다고 너무 주눅들지는 말고. 쓸데없이 미리부터 체념하지는 말고. 하는데까지는 해보다가. 안됨 말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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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04

오늘도 전철역 헌책방에서 이만원어치의 책을 사가지고 왔다. 아직 읽지도 못한 책이 수십권인데 왜 그렇게 책을 사 모으는 것일까. 그것은 내가 그리는 풍경 때문이다.

나는 나의 집을 갖길 원한다. 꼭 내 소유가 아니어도 된다. 전세나 임대주택이어도 상관 없다. 단지, 나만, 내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는 공간이면 족하다. 내가 그리는 풍경은 바로 그 공간에서 그 동안 사모았던 책들을 보며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책을 보기 편한 안락의자에 몸을 파묻고 옆에는 차 한잔을 놓고 밝은 햇살을 받으며 책을 읽는다. 그러다 졸리면 그대로 잔다. 책은 어느새 잠들은 나의 손에서 떨어진다. 나는 계속 달콤한 낮잠을 자고 있다. 혹은 이런 풍경도 있다. 일과를 마치고 잠자리에 든 시간. 잠자기 전 책을 읽는다. 침대옆 탁자엔 읽고 싶은 책들이 몇권 널려 있다. 조그만 라디오에서는 클래식이 흐른다. 나는 스탠드 불빛에 의지해 책을 읽는다. 그러다 잠이 오면 책을 놓고, 라디오를 끄고, 스탠드불을 끈 다. 그리고 잠이 든다. 이 풍경의 날을 위해 오늘도 나는 책을 사 온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지금보다는 책을 읽을 시간이 많을 것이므로.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고, 오직 읽기 위하여 책을 읽을 것이므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많은 노점이 있다. 뻥튀기, 호떡과 국화빵, 전기구이 통닭, 마른 오징어와 쥐포, 밀감, 닭꼬치...  모두들 장사는 좀 되시나요? 어떻게 먹고 살 만들 하시나요? 얘들 학원은 보내고 가끔은 고기반찬도 좀 해 잡수시나요?... 많이 파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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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

설악산을 종주하였다. 2010년 10월 20일부터 21일까지 1박 2일의 산행이었다. 첫날은 백담사에서 시작하여 영시암, 오세암을 지나 중청 대피소까지 오는 산행이었다.  거리는 약 13km, 시간은 6시간 정도 걸렸다. 둘째 날은 아침에 대청봉에 올라 일출을 보고 희운각 대피소, 공룡능선, 마등령을 지나 설악동 쪽으로 하산하였다. 거리는 약 14km, 시간은 약 일곱시간 정도 걸렸다.

 

화려한 단풍을 기대하고 갔건만 나뭇가지들은 앙상하기만 했다. 고드름과 얼음이 얼었고 마르고 찬 바람이 불었다. 땀과 맑은 콧물이 같이 흘렀다. 옷깃으로 휴지로 손수건으로 콧물을 연신 훔치다가 나중에는 그냥 흐르도록 놔두었다. 맑은 콧물은 코끝에 맺혀 있다 한 방울씩 떨어졌다.

 

처음 사용한 스틱은 손에 익지가 않았다. 거추장스럽고 걸리적거렸다. 그래서 스틱을 다시 배낭에 넣었는데, 그러고 조금만 가자 한참 동안의 오르막이 나왔다. 오르막에서는 스틱이 도움이 되기 때문에 스틱을 넣은 것을 후회하였다. 다시 배낭을 풀기가 귀찮아 한참을 그냥 오르다 잠시 쉬는 참에 다시 꺼냈고 이후로는 계속 짚으며 다녔다. 

 

중청 대피소에 도착하였다. 내 옆옆 자리에도 혼자 올라온 남자가 있었다. 깔판과 침낭을 가져온 그는 대피소에서 천원에 빌려주는 담요를 보며 춥지 않나?라고 혼잣말을 하였다. 자기의 깔판과 침낭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듯. 물론 춥지 않다. 사람들이 다 찬 대피소는 오히려 더울 지경이다. 대피소에서 이천원이면 담요 두개를 빌릴 수 있는데 뭐하러 번거롭고 무겁게 깔판과 침낭을 가지고 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등산용구에 대해 잠시 말하자면, '적당하게'가 중요한 것 같다. 좋은 용구가 있으면 산행이 편해진다. 때로는 편해지는 정도가 아니라 꼭 필요한 용구도 있다. 그런 것은 어느정도 비싸더라도 좋은 제품을 구입하면 좋겠지만 적당한 정도를 넘어서는 성능이라면 낭비가 아닐까. 지난 번 지리산 종주 때 비가 와서 날이 쌀쌀했다. 몸이 빗물과 땀에 젖어 추웠다. 특히 배낭을 맨 등이 젖었는데 잠시 쉬다가 다시 배낭을 맬 때의 그 차가움에 소름이 돋았다. 그래서 등 통풍이 잘 되는 배낭과 방수와 발수가 잘 되는 등산복이 필요하겠구나 생각을 했고 얼마 전 구입했다. 적당한 가격의 것으로. 근데 여러 등산 애호가들의 블로그를 돌아다니다 보면 거의 군대용품이나 서바이벌 용품 같은 장비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굳이 그럴 것 까지 있을까 싶다. 어디까지나 놀이 아닌가. 진짜 서바이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척' 하는 건데 굳이 그런 장비를... 전쟁놀이를 진짜 총을 갖고 하는 느낌이랄까, 그런 기분이다.

 

둘째 날 아침, 일출을 보기 위해 대청봉에 올랐다. 새벽에 비가 오는지 대피소 창에 번갯불이 비치곤 했다. 대청봉의 바람은 엄청났다. 너무 추워 작은 바위에 기대 몸을 움츠려 바람을 피했다. 바다와 구름이 잘 구분되지 않는 풍경이었다. 날은 밝았고 해는 구름 가운데 모습을 드러냈다. 바람은 여전히 쎘고 나는 추워서 대피소로 서둘러 돌아갔다.

 

키가 작은 소녀를 대청봉에서 보고는 얘는 뭐야 했는데 대피소의 식당에서 다시 만났다. 옆에 참견하기 좋아하는 아줌마들이 여러가지를 물어보았다. 고1이고 학교가 신종플루 때문인지 뭔지로 휴교를 해서 혼자 왔다고 한다. 그리고는 우유와 샌드위치로 아침을 먹었다. 참견하기 좋아하고 인정도 많은 아줌마들이 이것저것 먹을 것을 여러가지 챙겨주셨다. 그러지 않았다면 나라도 무언가 먹을 것을 챙겨줬을 것이다. 에너지바 하나라도... 그러고 싶었다.

 

하산길은 공룡능선과 마등령을 타고 내려왔다. 8시간 걸린다는 길을 5시간 정도에 내려왔다. 그리 무리하지는 않았지만 내려오니 힘이 들었다. 단풍은 산 밑에서 볼 수 있었다. 금강굴에서 바라보는 단풍은 장관이었다.

 

하산한 설악동은 공원이었다. 평일이었지만 단풍 구경 온 사람들이 많아서 붐볐다. 한적했으면 막걸리나 한 사발 할 수도 있었겠지만, 식당은 북적거렸고 막걸리 생각도 별로 없었다. 대신 시원한 사이다가 먹고 싶어 사이다를 사 마셨다.

 

서울로 가는 차를 기다리는데 술 한잔이 무척 하고 싶었다. 그래서 경미와 초원에게 연통을 날렸지만 모두 안된다는 대답. 태훈과는 약속을 잡았으나 도착시간이 마땅치 않아 취소하였다. 좀 외로웠다. 

 

다리에 알이 배겨 삼일 동안 걷기가 힘 들었다. 지리산 때도 그렇지 않았는데. 오히려 지리산이 더 힘들다고 느꼈는데 하체 운동은 설악산이 더 되었나 보다. 지리산과 설악산을 비하자면 나는 지리산이 더 좋다. 지리산은 숲이 우거졌는데 설악은 그에 비해 척박한 느낌이었다. 대신 설악은 계곡이 많아 여름에 가면 좋을 것 같다. 다음엔 해가 긴 여름에 남교리 코스로 올라봐야겠다. 서북능선을 타리라. 그리고 몇몇이 함께 간다면 하산 후에 대포항에서 술을 한잔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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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22일 대한민국은...

오늘, 오전에 대한민국의 하늘에서는 부분일식이 있었다. 달이 해의 일부를 가려버린 것이다. 금세기 최대의 일식이라니 아마 내 일생 한국에선 더한 일식을 보기는 힘들 것이다.

 

오늘, 오후에 대한민국의 국회에서는 미디어법이 통과되었다. 국회에 있는 친구는 야당의 의원들이 마치 스파이더맨 처럼 국회 안으로 줄을 타고 들어갔는데 졸라 멋있었단다. 인터넷 신문의 기자인 선배는 2류에서 3류로 밀려나게 될 거 라며 "이놈의 마이너 인생이란..."과 같은 소회를 밝혔다. 야당과 진보진영에서는 수구집단의 언론장악 음모라 주장하고 여당과 보수진영에서는 미디어 관련 일자리가 2만개 이상 생길거란다. 물론 난 미디어법은 기득권 세력의 언론장악 음모라고 생각한다.

 

오늘, 하루종일 대한민국의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에서는 공장을 점거한 노조원들과 경찰·구사대 간에 전투가 있었다. 경찰은 헬기와 물대포로 최루액을 뿌려대고 노조원들과 구사대들은 새총과 쇠파이프로 서로 싸웠다.이것은 완연한 전투다. 중소도시 한 공장의 한 복판에서 이런 전투가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실로 의아한 일이다. 그러는 한편 공장의 다른 곳에서는 1000명이 넘는 임직원들이 출근을 하여 업무를 봤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얘기만 듣고는 도무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경찰은 식수, 전기, 음식 뿐만 아니라 소화전의 물 마저 끊어버렸다. 고사작전을 쓰고 있나보다. 그러는 한편 용산에서 썼던 컨테이너를 준비하고 있다. 노조원들이 점거하고 있는 도장공장 안에는 인화물질이 가득하다. 실로 일촉즉발,  용산과는 비교할 수 없는 대참사가 예정된 사실 처럼 다가오는 것은 아닐까.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오늘 하루, 나는 무척이나 한가하였다. 아침에 퇴근을 하여 밥을 먹고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도 머리가 멍해서 어영부영 하다가 저녁을 맞았다. 일식 때에는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집에 오는 중에 주위가 조금 어두워지는 것을 느꼈다. 아, 일식이구나. 자전거를 세우고 하늘을 보았다. 구름 사이로 상현달 모양의 해가 언뜻 보인다. 달이 해를 먹고 있다. 내 일생 마지막 일식인데 좀 더 보다 갈까. 하다가 별 것도 없고 빨리 집에나 가자 싶어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그래, 내 일생 최대의 일식이지만, 나랑은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다.

미디어법은 낮잠에서 깨어나 인터넷을 하다가 통과된 줄 알았다. 그래 그렇게 되었구나. 앞으로 조중동 처럼 나불되는 방송을 어찌볼까 짜증이 난다. 언론노조와 야당에서 끝까지 투쟁을 한다니 믿어본다. 부디 승리하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평택. 아아, 여기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이냐. 예정된 참사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는데 다들 뭘 하고 있느냔 말이다. 이미 벌어진 참사도 있다. 한 조합원의 부인이 스스로 목을 맸다. 이 지경까지 정부는 사측은 국회의원들은 시민단체들은 노조는 무엇을 했단 말이냐. 난 비겁하게도 예정된 참사가 벌어졌을 때 내 마음의 부담을 덜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내가 뭘 어떡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속한 노조의 좌파그룹에선 평택으로 모이길 호소하는 메세지가 계속 오고 있다. 거기 가서 그들과 함께 정부와 사측을 규탄하는 집회를 하면 내 역할을 하는 것일까. 옥쇄 투쟁 중인 노조에 연대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아, 정말 모르겠다.

두렵다, 정말 두렵다. 내일 아침에 일어났을 때 용산참사 때 처럼 평택에서의 대참사를 속보로 전하는 뉴스를 보게 될까 두렵다. 죽음도 불사한다는 노조원들이 정말 다 죽어버릴까봐 정말 두렵다. 그런 일이 곧 벌어질 것 같은데 너무나 태평스런 세상과 사람들이 너무 무섭다. 죽어가는 사람을 눈 앞에 놔둔 채로 "어 어, 이러면 안되는데. 어떻게 해야 되는데." 그러고만 있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도대체 내 책장의 수 많은 사회과학 책들은 다 무슨 소용이며 그 책을 쓴 저자들은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누구 하나 속시원히 해답을 내 줄 수 있는가.

 

언제나 희망을 밖에서만 찾는 나, 비겁한 내가 누구를 탓하고 원망하겠나. 나 같은 사람이 모여 만든 이 사회에도 정녕 희망이 있을까. 그렇지만 부디, 평택 쌍차의 노조원들은 무사히 공장 밖으로 나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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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영화와 아줌마

주5일 40시간 근무제를 하지 않는 나는 평일에도 낮에 시간이 나는 날이 제법 있다. 그런 날 가끔 조조 영화를 보기도 한다. 값도 싸고 한가하기 때문에 조조영화 보기를 좋아한다. 요즘 평일 조조로 본 영화들만 해도 <마더>, <걸어도 걸어도>, <요시노 이발관>, <거북이 달린다>, <트랜스포머2> 등 여러 편이 있다.

 

근데 요새 조조영화를 볼 때 아줌마들 때문에 당황스러운 때가  종종 있다. 주위의 사람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아줌마들의 잡담이라든가 전화 받기 같은 경우 때문이다.  <마더>를 볼 때에는 내 주위의 1시 방향, 8시 방향, 11시 방향으로 세 팀의 아줌마들이 포진하여 대화를 나누고 전화를 받고 무엇인가 들은 비닐봉지를 부스럭 거리는 등 서라운드로 소음을 내더니, <거북이 달린다> 때는 4명씩 짝을 이룬 아줌마 부대 두팀이 내 바로 앞 줄의 좌석 8개를 점령해서는 남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떠들어가며 영화를 관람한다. 주인공이 잘 생겼네, 저 사람 <박쥐>에 나왔던 배우네, 아이고 아이고 잡아야지 잡아야지, 깔깔깔... 도저히 몰입을 할 수가 없었다. <마더>의 경우는 40대 후반 정도 되는 아줌마들이었고 <거북이 달린다> 때는 40대 초반 아줌마들 같았다. 나이드신 분들이라 그런가 하지만 또 그런 것도 아닌게 <요시노 이발관>때는 30대 중후반 정도의 아줌마 둘이서 거의 카페에서 대화를 나누는 정도로 얘기를 하면서 영화를 본다. 도저히 그냥 볼 수가 없어서 조용히 좀 해달라고 얘기를 했다.(내 옆옆자리에 앉았었거든.) 그 다음부턴 잠잠해졌지만 기분이 언짢아 이후로도 영화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왜 이럴까. 왜 아줌마들은 조조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때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으며 소음을 만들어 내는 것일까. 내가 목격한 것이 아주 드문 예라면 개인적인 성격 탓으로 돌릴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보편적인 현상이라면 이에 대한 사회적인 맥락에서의 분석이 필요할 것이다. 일단 아줌마들이 조조영화를 택하는 이유는 나랑 비슷할 것이다. 매일 출근하는 것은 아니니 평일 낮에 시간이 난다. 그리고 조조영화가 싸고 사람도 적다. 친구들과 아침에 영화 보고 점심 먹고 집에 오면 시간이 적당히 맞는다. 뭐 이런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조조영화관에 아줌마들이 많은 것 아닐까. 절대적인 수로는 아닐지 몰라도 상대적으로 연령대와 성별로 구분하여 다른 시간대보다 조조에 아줌마들이 많은 것은 확실할 것이다. 그래서 조조시간에 아줌마군이 두드러진다. 

 

그리고 다음, 왜 아줌마들은 영화를 보면서 떠들거나 전화를 받거나 할까. 사실 이건 꼭 아줌마들만 그런 것은 아니다. 아저씨들도 많이 그런다. 영화를 볼 때만 그런 것이 아니고 전철같은 공공장소에서 정말 시끄럽게 떠들거나 전화를 받는 이들 중에는 아저씨들도 많다. 조조에 나이 든 아저씨들이 없어서 그렇지 아저씨들이 있었다면 아마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나이 드신 분들의 그런 행태를 보면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법을 잘 배우지 못해서 그런 것 아닐까 싶다. 한참 먹고 살기 힘들던 시절, 굶지 않으려면 남을 배려하기는 커녕 밟아 죽여야 내가 산다. 상식과 배려가 없는 사람들이 정권을 잡고 통치를 하였으므로 사회에서도 상식과 배려는 통하지 않았다. 그저 악다구니를 써야 살 수 있었던 사회였다. 그런 사회를 살아오신 분들이니 영화관에서 전화 좀 받고 얘기 좀 하는 거야 뭐 좀 그럴 수도 있지 않냐라고 나와도 이해할 수 있다. 이해는 할 수 있는 것이다. 짜증은 나더라도.

 

그렇다면 연령대가 나보다 그닥 많지도 않은 아줌마들이 그러는 건? 그 아줌마들은 집에서 아이 키우고 집안일 하고 남편 뒷바라지 하느라 하루도 제대로 쉴 날이 없다. 그런 와중에 보고 싶던 영화를 상영하자 큰맘 먹고 아이를 어디에 맞기고 집안일을 잠시 미루고 오랜만에 친구와 만나 극장에 온다. 간만의 외출로 마음은 좀 들떠 있다. 영화가 시작했지만 들뜬 마음과 반가운 친구 덕에 할 얘기가 너무 많아 영화를 보며 계속 얘기를 하게 되는 것이다. 과중한 가사노동 속에서 자아를 잃어가고 있던 아줌마들이 영화관에서 간만에 자유를 만끽하며 잃어버린 자아를 찾는 것이다. 그러느라고 좀 떠들었다... 라고 얘기한다면, 그래, 이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짜증은 나지만...   

 

앞으로도 나는 조조영화를 종종 보러 다닐텐데 아줌마들과 불화하지 않고 영화를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지금부터라도 상식과 배려가 통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그리고 아줌마들을 과중한 가사노동에서 해방시키기 위한 투쟁을 해야 할 것인가. 아아, 생각해 보면 굉장히 지난한 일이다. 하지만 이런 것이 진실일 수도 있다. 조조영화에서 영화를 조용히 보기 위해선 사회 변혁 운동이 필요하다. 는 것 말이다. 모든 것은 이렇게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다. 동떨어진 문제란 굉장히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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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7

오늘은 도림천변을 13킬로미터 정도 달렸다. 저번에는 처음 뛸 때 굉장히 힘들었는데 오늘은 발이 가벼웠다. 어제 쉰 탓일까. 시작부터 있는 오르막길을 좁은 보폭으로 달린다. 발과 숨이 가볍다. 그 페이스로 계속 달렸다. 보폭은 짧게, 숨은 두번 들이쉬고 두번 내쉬고. 습습 흐흐...

 

속력을 내지 않고 달리니 힘이 들지 않는다. 평소에 달리던 신도림 역을 지나 오목교 까지 달렸다. 날씨는 그리 춥지 않았지만 장갑을 끼지 않아 손이 시려웠다. 장갑 하나 구하려는데 좌판이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내일은 자전거 장갑이라도 끼고 나와야겠다.

 

반환점을 돌아오는데 머리가 희끗희끗한 아저씨가 날 앞질러 간다. 그래, 속력을 너무 내지 않았다. 오래 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느 정도 속력도 있어야 한다. 천천히 오래만 가는 것은 마라톤이 아니다. 그러면 힘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힘이 들지 않으면 마라톤이 아니다. 하루종일 걷듯이 해서 풀코스를 완주한다 한들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뭐 주위구경이라든지 오래 걷기라든지 그런 의미는 있을지 몰라도 마라톤은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속도를 좀 낸다. 아저씨와 나의 간격은 20미터 정도 더 이상 벌어지지 않는다. 좀 더 속력을 낼 만하다. 간격이 점점 좁혀진다. 따라잡을 마음은 없었는데 곧 추월할 것 같다. 하지만 아저씨는 도림천과 안양천의 분기점에서 안양천 쪽으로 간다. 나는 도림천 쪽의 왔던 코스로...

 

속력을 줄이진 않는다. 계속 달린다. 약간 힘들어진다. 장거리 달리기에서 체력이 떨어지는 것은 한 순간이다. 처음엔 좀 무리를 해도 "이 정도야 끝까지 버틸 수 있겠지." 하는 맘이지만 나중에 체력이 떨어지면 한발 내딛기도 죽을 맛이다. 그래서 페이스 조절이 중요하다. 수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몸으로 겪어야만 익힐 수 있다.  속도를 조금 올린 페이스로 계속 가니 역시나 조금 힘들어진다. 다리 근육에 피로가 엄습한다. 하지만 조금은 더 버틸 수 있다. 달리자, 연습 할 때 근육에 무리는 조금 주어야 하니까. 한 11킬로미터 정도를 지나니 그 때부터는 발이 다시 가벼워진다. 숨도 골라진다. 그렇게 도착지인 성무대까지 무리 없이 도착한다.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 추운 손을 주머니에 넣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리나 골반에 별 무리는 없다. 내일 아침에도 달릴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연습량을 늘여야 하는 시기. 내일도 일찍 일어나 달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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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달리기

한겨레 마라톤이 6일 앞으로 다가왔다. 10키로미터. 연습량은 절대 부족하다. 하지만 10키로 정도야 어떻게든 되겠지. 아직은 젊으니까.

 

풀코스 마라톤 러너들에게는 10키로 정도는 가벼운 하루 연습량 밖에 되지 않는 아주 짧은 거리다. 나에게도 그리 부담스러운 거리는 아니다. 그러나 일단 어느 거리든 레이스에 나가기로 마음 먹었으면 그 거리를 마음 속 깊이 새기게 된다. 그 거리를 중심에 두고 훈련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나에게 10키로나 풀코스 러너에게 풀코스나 부담이 되는 정도는 비슷하지 않을까.

 

이번에 50분 안으로 들어오면 다음엔(아마도 4월 중순에 하남에서 있을 엠비시 마라톤) 하프를 신청할 계획이다. 그러려면 연습을 지금보다 몇 배는 많이 해야겠지. 이번 달 들어 총 달린 거리가 50키로나 되려는지 모르겠다. 저번 주 까지는 일주일에 하루 10키로 정도 밖에 뛰질 않았으니... 물론 일주일에 이틀 이상은 수영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절대적인 연습량은 한참 부족하다.

 

저번 주 금요일 부터 오늘까지 30키로를 뛰었다. 어쩌면 지금은 다리의 피로를 풀기 위해 쉬어야 할 지도 모르는 기간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달려야 한다, 연습을 해둬야 한다는 마음에 어쩔 수 없이 달린다. 실제 경기에서 해로울 수 있지만... 하지만 뭐, 겨우, 10키로니까... 어떻게든 될 것이다.

 

오늘은 날씨가 흐렸지만 기온은 따뜻했다. 운동복에 가벼운 웃도리를 걸치고 달렸는데 더웠다. 바람이 불긴 하였으나 더워진 몸을 조금 식혀줄 만한 따뜻한 바람이 불었다. 도림천은 지금 한창 공사중이다. 환경정비와 하천 주변을 공원처럼 조성한다는 공사인데 청계천 처럼 만들어 놓을까봐 걱정이다.  한참 공사중이라 포크레인이 흙들을 파헤쳐 놔 시궁창 냄새가 난다. 하천 맞은 편의 나무들도 색바랜 잎들을 떨어뜨리고 풀들도 시들어 누렇게 변해 지저분하게 헝클어져 있다. 하늘도 흐려 회색빛이고, 전체적으로 참 음울한 분위기였다.

 

그래도 달리면서 들은 음악이 날 위로해준다. 요새는 달리면서 예스(yes)의 음악을 듣는다. 예스의 음악은 달리면서 듣기에 참 좋은 것 같다. 전체적으로 발랄하고 또 보컬에 화음을 주는 것이 상쾌한 느낌을 줘(때로는 너무 작위적인 느낌이 들긴 하지만) 달리기를 즐겁게 한다.  약간 시카고(chicago)의 음악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장르로 치면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에 들어가지만 내가 들어 느끼기에는 그렇다.

 

오늘은 처음부터 달리기가 힘들다. 다리가 무겁고 숨도 가쁘다. 왜 이러지. 아침에 수영을 해서 그런가. 하긴 수영을 하고나면 끝나고 계단 올라오는 것도 힘이 든다. 다리 근육을 꽤 쓰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 힘이 들면 10킬로를 어떻게 뛸 것인가. 나는 다음에 하프도 도전해야하고 내년 쯤에 풀코스도 한번 달리려 하는데, 겨우 이 정도 밖에 안된단 말인가... 평소라면 오늘 컨디션이 영 아닌걸 하고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제 다 읽은 하루키의 책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보면 힘이 들다가도 어느정도 지나면 호흡도 근육도 제 기능을 찾는 경험을 볼 수 있다. 그래서 나도 참고 계속 달려본다. 이래뵈도 10킬로 정도는 48분대에 끊었던 러너다. 그리 쉽게 그만둘 순 없다...고 억지로 자존심을 끌어내본다. 이런 생각이 뒤죽박죽으로 엉켜 달리는 중 예스의 음악이 3번째 트랙으로 넘어갈 때 쯤, 이제야 달리기가 편해진다. 아 하루키의 말은 이런 것이로군. 호흡도 안정되고 다리도 훨씬 가벼워졌다. 이제 쉽게 달릴 수 있다. 

 

내가 달릴 때 신는 신발은 아식스의 GT-2120. 재작년에 산 러닝화다. 당시 매장에서 제일 비싼 러닝화였는데 요새는 그 두배하는 신발도 나온 것 같다. 재작년에 샀지만 달릴 때만 신기 때문에 그리 많이 신지는 않았다.(물론 가끔 신어도 오래 달리기 때문에 신고 간 거리는 꽤 될테지만.) 이 신발은 뭐가 안맞는지 오래 달리다 보면 발 안쪽에 물집이 생긴다. 신발은 길들여 질때 그런 일이 있기 마련이라 그리 신경은 안쓰는데 신발을 하도 가끔 신다 보니 길도 안들고 신을 때 마다 물집이 생긴다.

물집이 그렇게 아프진 않다. 발을 딛을 때마다 약간씩 찝히는 고통이 있긴 한데 오히려 단조로운 달리기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약간의 자극 같은 것이 된다고 할까. 아무튼 그리 고통스럽진 않다.

언젠가는 신발이 길이 들여지든 내 발의 안쪽에 굳은 살이 백히든 더 이상 물집이 잡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스포츠 매장에 가면 러닝화와 마라톤화가 따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두 신발의 차이는 러닝화는 쿠션이 조금 더 있지만 약간 더 무거운 반면에 마라톤화는 쿠션이 덜하고 무게가 가볍다. 러닝화도 신으면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을 만큼 가벼운데 마라톤화는 그것마저 무겁다고 쿠션을 빼버리면서까지 무게를 줄인다. 풀코스의 고통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평소엔 거의 느껴지지 않는 무게마저 풀코스 레이스에서는 천근만근으로 느껴지는 것.

대부분의 러너는 마라톤화가 아닌 러닝화를 신는다. 왠만한 중급 러너와 많은 수의 상급 러너도 러닝화를 신는다. 달리기를 하면 발을 디딜 때 몸무게의 3배의 압력이 무릎에 가해진다. 이 발디딤을 수천번에서 수만번까지 해야한다. 당연히 무릎에 무리가 온다. 그렇기 때문에 쿠션은 소중하다. 무릎의 충격을 덜 수 있는 것은 땅과 발바닥 사이에 있는 신발의 쿠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소중한 쿠션을 포기하고 그 대신 가벼움을 선택한 마라톤화를 신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은 빠른 속도가 필요한 사람들, 기록이 중요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완주가 목적이 아니라 기록이 목적인 사람들(물론 대부분의 러너는 출발 전에 자신의 목표 시간을 정하지만 그 목표를 위해 쿠션을 포기하진 않는다)인 그들은 마라톤을 직업으로 하는 프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 프로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어느 기록 내에 들어오겠다는 스스로의 약속을 지키거나 경쟁상대를 이기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러닝화를 신는 사람들과의 마음가짐의 차이는 분명히 있지 않을까 싶다. 어느 정도의 목표 시간대는 있지만 다치지 않고 완주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인 러닝화와 목표로 정한 시간대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고통과 건강의 위협까지 감수하려는 마라톤화. 둘 중에 옳고 그름은 없다. 각자의 스타일이 있을 뿐. 나로 말하자면, 물론 전자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달리다 보니 어느 새 신도림 역에 와 있었다. 초반에 너무 힘들어서 그랬는지 정말 눈 깜짝할 새에 신도림까지 온 것 같다. 전에는 여기 까지 오기가 참 지루했는데. 시간을 보니 이번에 특히나 빨리 온 건 아니고 다른 때랑 비슷하게 도착했다. 잡생각을 많이 해서 시간이 짧게 느껴졌나보다. 좀 더 뛸 수 있는 기분이었지만 오후의 약속에 늦지 않기 위해 오던 길로 방향을 바꿔 돌아서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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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eday i'll build a boat

고등학교 때 작은 배를 타고 대양을 횡단해 여행을 하는 한 청년의 이야기를 티비를 통해 보았다.  낮에는 돌고래들과 나란히 물살을 가르고 밤이면 달빛 아래서 '비처럼 음악처럼'을 부르던 청년의 항해가 참 멋져보였다. 물론 좋지만은 않았을 거다.  망망대해에서 홀로 얼마나 무섭고 또 악천후에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누구하나 의지할 사람이 없었을테니...

 

하지만 그래도 멋져보였다. "나도 언젠가는 꼭 배를 타고 세계를 여행하고 싶어. 큰 여객선이 아닌 작은 보트를 타고 말이야." 하지만 항해에는 자신이 없었다. 항해도 읽기도 어려울 것 같았고 항해에 필요한 각종 장비들 - 레이다와 무전기 또 배에 있는 각종 계기판 같은 거 - 을 다루기가 자신 없었다. 그래서 이과를 다니고 있던 친구를 꼬셨다. "야, 너 해양학과 가라. 가서 항해술 배워서 나중에 나랑 같이 배타고 여행가자."  해양학과에서 배 모는 법을 가르쳐주는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그냥 그런 줄 알았다. 그리고 그 친구는 해양학과를 가지 않았다. 지금은 그 친구가 무슨 과를 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아무튼 바다와 관련이 있는 학과는 아니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졸업 후 그 친구를 만나지도 않았다. 딱 한번 전철역에서 우연히 마주쳤고 서로 반갑게 인사를 한 후 해어졌다.

 

지금은 배를 타고 바다 여행을 하겠다는 생각은 거의 하지 않지만 이 노래를 들을 때 마다 고등학교 때의 그 꿈이 생각난다. 그리고 그 꿈을 상상할 때의 기분 좋은 설레임 또한 같이 느껴진다. "아, 정말 멋질거야... " 지금이라면 다른 누구를 꼬실 것 없이 내가 항해술을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친구를 꼬실 것이다. 혼자서는 너무 외로울 테니까. 노래 가사처럼 3명이나 4명을 태울만큼 큰 보트로 친구들과 함께 여행하고 싶다. 먼저 동남아 인도 아라비아까지 갔다가 수에즈 운하를 거쳐 지중해로, 그렇게 유럽을 거치고는 남미로, 그리고 다시 일본을 들른 후 귀환. 와, 정말 멋지다.

 

그럴려면 정말이지 언젠가는 배를 만들어야 겠구나. 먼 바다까지 여행할 수 있도록 아주 튼튼하게.

 

 

  

jon mark - someday i'll build a bo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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