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가....]

 

사실 철밥통과 밥그릇은 약간의 뉘양스 차이가 있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철밥통은 이러나 저러나 절대 깨지지 않는 그릇의 이미지가 있지만,

밥그릇은 그저 밥그릇일 뿐이다. 지켜야할 밥그릇..

약간의 뉘양스 차이는 일단 무시하고,

적어도 공격당하는 맥락 상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두 가지를 동일시할 수도 있을 듯하다.

 

최근에 '밥그릇 지키기'로 두들겨 맞은 것은

영화인들의 스크린쿼터 사수 투쟁이었다.

어쩌면 그들의 이데올로기는 늘 한치의 차이도 없는지

돈 좀 번다 싶으면 철밥통, 밥그릇이 욕을 먹는다. 

 

우리나라 사람들 어쩐다 이런 얘기는 정말 하기 싫지만,

싸잡아서 욕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어째 자기 밥줄 달린 일은 생존권이고,

남의 밥줄 달린 일은 철밥통일까.

 

이럴 때 늘 등장하는 이데올로기가 "그 죽일 놈의 국익"님이시다.

자기 밥줄 지키면서 국익도 지키면 좋은거고,

자기 밥줄 지키는게 국익에 반하는 거면 죽일 놈이 되는 것인가.

 

어쨌거나 ...

옆길로 새기 전에 원래 하려던 얘기로 넘어오면

 

작년에 한창 교원 평가제 얘기가 이슈가 되었을 때

나도 참 정리가 안 되었더랬다.

오늘 관련 책을 읽으며 ( "교육부의 대국민 사기극")

어이쿠야 했다.

 

제 4장 교원 평가 중...................

IMF 사태 이후 사회 전반적인 노동시장의 불안정은 상대적 안정성을 가진 집단을

기득권 집단으로 몰고 가는 풍조를 만들어냈다. 일명 " 철밥통론"이 등장한 것이다.

너도 나도 '남의 밥그릇 깨기'가 하나의 유행이 되어 버렸다. 노동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노동은 안정되어야 사명감도 가질 수 있고, 인간다운 삶을 최소한 보장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자본의 관점에서 신분보장은 이윤창출의 걸림돌로 여겨질 수 있다.

안정된 직장=철밥통=나태함의 등식은 철저히 자본이 유포한 이데올로기다. 철밥통은

모든 노동자가 생존의 조건으로 싸워야할 목표이지 깨어져야할 대상이 아니다. 어느새

교직을 철밥통의 상징물로 인식시키며, 깨어져야할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기간제 교사와

시간강사가 담임교사가 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면서도 철밥통을 깨야한다는 이중적 사고는 노동의 안정성을 중시하면서도 노동시장의 불안정으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병수

 

노동시장의 유연화...  새내기 시절 처음 들었던 그 생소한 단어가

이렇게 익숙한 단어가 되리라고 그 시절엔 알았을까. 학습하면서 열심히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그 어렵던 신자유주의가 이렇게 내면화되리라고 누가 알았을까.

 

대학에서도 매 학기가 끝나면 수업에 대한 평가를 한다.

가만 생각해보면 그 수업 평가라는 것이 누구의 편의를 위한 것인지 ..

결코 학생들을 위한,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수업 평가는 아니다.

현재와 같은 교수-학생, 혹은 선생-학생의 위계질서 하에서 이루어지기 힘든,

평등한 관계의 상호 비판이 가능하다면 현재와 같은 어이 없는 평가는 도입할 필요도,

그런 평가를 도입하려는 이들의 이데올로기에 현혹될 필요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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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21 00:33 2006/02/21 00: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