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리 도두리를 지켜주세요.

 

문화주간 동안에 우리 과 20여명의 학우들은 농활을 다녀왔다. 대다수 학생들은 인터넷에서만, 혹은 얘기로만 전해들었던 곳. 

농활 후 우리는 소위 말하는 대추리도두리병 환자가 되었다. 우리가 했던 일은 285만평 너른 들판에 농약을 주는 일이었는데, 처음엔 한 방울이라도 닿을까 바르르 도망치다 나중에는 무심해 질 정도로 농약과 친숙해 졌고, 농활 후에도 마세트, 글라신 (이것이 농약 이름) 소리만 나오면 까르르 웃어댈 정도로 농약에 중독되었다. 가능하면 주말마다 들일하러 가자고 농약 기운 떨어질 때 쯤 다시 들어가자고 서로서로 다짐 비슷한 것을 주고받으며 즐거워하는 일이 불과 일주일 전.

하지만, 이제 대추리에는 가도 농약 주러는 갈 수 없다. 가도가도 끝없던, 들판에만 나가면 방향감각을 잃어버리곤 했던 그 너른 들판에는 철조망이 두겹세겹 쳐지고, 며칠 후면 푸릇푸릇 싹을 틔워낼 볍씨가 있는 논은 2미터 깊이로 파헤쳐지고 있다.

대추리에 농사지으러 갈 수 없기 때문에 대신 촛불을 들고 있다. 그곳에 굳이 미군기지가 들어오기 때문이 아니라, 한반도가 전쟁기지화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 아니라 농민들이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땅을 빼앗길 수밖에 없는 현실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촛불을 든다.

고라니가 뛰어다니고, 마을사람들이 617일째 밝히는 촛불행사에는 솔부엉이 내외가 구경을 오고, 농지를 망가뜨리는 두더지도 시간맞춰 바깥 세상 구경을 나오는 곳에 지금은 사방을 둘러봐도 전투경찰과 군인과 철조망과 포크레인이 있다.

한밤중 적막한 시골마을에 군인들이 이동하는 군홧발 소리가 울려대고 사복경찰들이 민가에 들이닥쳐 사람을 내어놓으라 협박하기도 한다.

두 번이나 살던 곳에서 내쫒긴 할머니, 할아버지는 그저 그 땅에서 농사짓고 사는 것이 꿈. 그렇게 600일 넘게 촛불행사를 계속해 오셨는데, 언론은 억대 보상금을 노리는 이기적인 사람들로 매도하고야 만다.

이 분들의 땅을 빼앗기지 않게 하는 것이 인권을 지키는 길이다. 이 분들이 올해도 농사짓게 하는 것이 평화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인권과 평화를 지켜낸 땅으로 여름에는 피사리하러, 가을에는 수확하러 농활을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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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11 00:47 2006/05/11 00: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