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미군기지 이전 재협상, 법적 근거는 충분하다"
송상교 변호사 "'국제적 신뢰 상실'은 말도 안 되는 핑계"
2006-06-07 오후 5:10:38
한국 정부는 미국에 평택 미군기지 이전과 관련해 재협상을 요구해야 하고, 한국의 재협상 요구는 충분한 법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이 점점 더 힘을 얻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의 송상교 변호사는 7일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주한 미군기지 이전협정에 대한 재협상의 필요성과 가능성'에 관한 토론회에서 "재협상이 불가능하다는 정부의 주장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 법적, 현실적 측면에서 보다 냉정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송상교 변호사는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와 민변이 함께 주최한 이 토론회에서 "협정체결 후 변화된 사정에 따라 조약 당사국이 재협상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라며 "조약상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정부가 주장하는 '국제적인 신뢰를 깨뜨리는 것'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2008년까지 사업 마무리 못하면 하늘이 무너지나?"
현재 정부는 미군기지 이전사업을 더이상 늦출 수 없으며 재협상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못박고 있다. 그 이유는 국무총리실 주한미군대책기획단이 낸 정례브리핑 자료 '미군기지 이전사업, 사실은 이렇습니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홍보자료에서 정부는 주민들의 반발에도 토지수용을 강행하는 것이나 군사시설 보호구역을 지정하는 것 등을 합리화하면서 "한국은 2008년까지 기지이전 사업을 마무리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금년 하반기에는 본격적인 시설공사에 착수해야 하고, 5월부터 설계·측량, 토질조사, 환경영향평가, 문화재시굴조사 등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정부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송상교 변호사는 "2008년 말까지 사업을 마무리짓지 못하면 무슨 커다란 일이 벌어지느냐"고 되물으면서 "사실 이에 대한 정부의 대답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국제적 신뢰에 커다란 흠이 된다'것 뿐, 더 이상의 구체적인 설명이 없다"고 지적했다.
송 변호사는 "그러나 국제적 신뢰를 지키기 위해 군인까지 동원하여 제 나라 국민들을 살던 곳에서 몰아낸다는 것은 아무래도 설득력이 부족하다"면서 "정부는 국제적 신뢰가 무엇인지, 이 사업이 우리의 국익에 어떤 보탬이 되는지 정확히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용산기지 이전협정에 재협상 조항도 있는데
송상교 변호사는 이날 토론회에서 △미국과 맺은 각 협정의 재협상이 불가능한지 △우리 국내법과의 관계상 재협상의 가능성과 이를 뒷받침하는 논리가 있는지 △미군기지 이전에 관하여 참고할 만한 외국 사례는 없는지 등으로 나눠 '재협상 절대불가'인 정부의 주장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송 변호사는 일단 2004년 맺은 용산미군기지이전협정(UA)이나 연합토지관리계획(LPP) 등의 협정에 이미 재협상이나 평택 이외의 다른 곳으로 이전, 계약의 일방 파기 등을 규정한 항목이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
미군기지 이전 재협상 관련 조항
용산미군기지이전협정 제2조 제5항 : 양당사국은 이전의 시행과정에서 주한미군의 시설과 구역의 소요에 현저한 변화가 발생할 경우에는 상호협의하고 이전계획에 필요한 조정을 가할 수 있다.
용산미군기지이전협정 제7조 제2항 : 이 협정은 양 당사국의 상호동의에 의하여 서면으로 개정될 수 있다.
용산미군기지이전협정이행합의서 제6항 "개정" : 개정을 위한 건의는 양당사국의 동의에 의하여 언제든지 제출될 수 있다. 개정요구는 희망하는 개정안 발효일보다 적어도 60일 전에 이루어져야 한다. 주한미군지위협정 합동위원회에 의하여 승인된 개정은 양당사국이 개정의 이행을 위한 각자의 법적 요건을 충족하였다는 통고를 교환하는 날에 발효한다
송 변호사는 이러한 규정에 대해 "한국정부나 미국 측 모두 향후 미군기지 이전 과정에서 정책변화나 현지 사정 등에 현저한 변화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미리 예상한 것"이라며 "이들 조항은 쌍방이 언제든 상호동의 하에 협정을 재조정하고 개정할 수 있다는 점을 명백히 한 것"이라고 말했다.
"대내적, 대외적 현저한 변화는 이미 발생"
송상교 변호사는 조항 가운데 용산미군기지이전협정 제2조 5항에 있는 '시설과 구역의 소유에 현저한 변화가 발생할 경우'라는 규정에 주목하면서 "이미 대내적, 대외적으로 현저한 변화가 발생한 상태"라고 주장했다.
일단 미군의 감축 계획이 주한미군에 공여할 부지의 면적과 시설을 정하는 데에는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송 변호사는 "협정 이후인 2006년 2월경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공식 합의가 이루어졌으며, 최근 미국에서도 미군의 추가감축 계획에 대한 공식적인 발언이 이어지고 있다"며 "이는 미국에 공여하기로 한 360만 평의 부지가 모두 필요한지에 대한 합리적 의심의 근거가 된다"고 말했다.
특히 송 변호사는 전략적 유연성으로 인한 미군의 추가 감축으로 재협상을 요구하는 것은 전적으로 미국측의 사유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재협상 및 협정개정 요구의 더욱 강력한 근거가 된다고 봤다.
또 그는 "미국이 팽성지역 부지에 요구하고 있는 성토작업은 약 5000억~6000억 원이 추가로 들어가는 작업일 뿐 아니라 50미터 높이 야산 180개를 깎아야 하는 등 재앙적 수준의 환경파괴가 예상되는 작업"이라면서 "이는 협정 당시 정부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설에 관련해 일어나 예상치 못한 변화도 재협상 요구의 근거로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팽성읍 주민들이 끝까지 수용을 거부하고 군인까지 투입되어 대규모 충돌이 벌어지는 상황도 재협상 요구의 근거가 된다. 송 변호사는 "이처럼 강경하게 거부하고 있는 주민들의 주거와 농지까지 반드시 미군에 공여해야만 하는지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방적인 의사표시로 협정 종료도 가능"
또 용산미군기지 이전협정은 필요한 경우 미군기지를 평택이 아닌 다른 곳으로 이전할 수 있다고 해 재협상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용산미군기지 이전협정 제2조 2호는 "서울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유엔사ㆍ연합사 및 주한미군사의 부대는 평택지역으로 이전되며, 필요한 경우에는 양당사국의 상호합의에 의하여 다른 지역으로 이전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송상교 변호사는 "평택 팽성읍 주민들은 힘겹게 만들어 온 자식같은 간척지를 미군기지로 결코 넘겨줄 수 없다고 하고 있고, 미국 측에서도 미군기지를 이전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성토가 필요하다고 하는 마당에 이러한 비용을 들여가면서까지 평택으로 미군기지 이전을 고집할 것인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송 변호사는 용산미군기지 이전협정 8조를 들어 한미 중 한 국가가 일방적인 의사표시로 협정을 종료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용산미군기지 이전협정 8조는 "이 협정은 일방 당사국이 타방 당사국에 대하여 1년 앞서 서면으로 이를 종료할 의사를 통보하지 아니하는 한, 용산기지이전계획이 완료될 때까지 유효하다"는 내용이다.
그는 "협정의 유효기간 및 종료에 대해 규정한 이 조항은 당사국 사이의 상호신뢰 보호를 위해 1년 예고기간을 두되 일방의 의사표시로 조약의 종료가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연한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려 하나"
송상교 변호사는 "협상 체결 후의 사정변경에 따라 재협상을 요구하는 것은 조약 당사자에게 부여된 당연한 권리"라며 "이미 2002년 미국이 연합토지관리계획에 대한 재협상을 요구해 연합토지관리계획개정협정을 체결한 선례가 있다"고 말했다.
송 변호사는 "이러한 조약상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국제적인 신뢰'를 깨뜨리는 것과는 아무련 관련이 없으며, 오히려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는 것이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국회의 예산통제로 사업 중단 또는 재협상도 가능"
다른 여타의 협정과 같이 평택 미군기지 이전 사업에 따른 협정들도 국회의 비준을 받아야 함은 물론, 구체적인 사업 집행에 필요한 자금에 관해 국회의 예산통제를 받아야 한다. 협정 자체가 국민에게 중대한 부담을 지우는 조약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송상교 변호사는 "이 협정의 이행은 이 목적을 위해 승인되고 배정된 자금의 가용 여부에 따른다"라는 내용의 용산미군기지 이전협정 제2조 제7항 등을 들어 "국회가 예산 통제 권한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조항은 만일 어느 일방이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지 못하여 사업에 차질이 생기는 경우 이는 불가피한 상황이므로 조약위반이라는 법적인 책임이 발생하는 것으로 보지 않기로 한 것"이라며 "예산 확보가 이루어지지 않아 협정을 이행하지 못할 경우 협정 위반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국회는 마음만 먹으면 미군기지이전사업 자체의 진행을 일일이 통제할 수 있고, 나아가 사업을 중단시킬 수도 있다"며 "국회가 자신의 통제권한을 행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채은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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