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ZA에 띄운 편지

from 대추리 일기 2006/12/03 22:36

금요일에 문예인들 주점에 촬영을 가던 길에

교보문고에 들렀다.

 

정말 오랜만에 들러서 책을 샀는데, 정말 사고싶은 책이 정말 없었다.

어려운 머리아픈 책 말고 소설이나 그런 것을 보고 싶었는데,

요즘은 통 관심도 없어서이기도 하겠지만, 얼핏 봐서도 별로 땡길 리가 없는 것들로

가득찬 서점이라니;;

 

그 사이에서 이 책을 주워들었다.

 

크게 기대하거나 한 것은 아니었는데..

 

너무 가볍게 접하거나 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기 때문에...

 

그런데, 지하철 버스 안에서 오가며 읽다가 계속 울어버려서

 

내 참... 아무래도 내가 이상한 건지...

 

자꾸 현실과 오버랩 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비슷한 상황이 나올 때마다

그때의 그 감정이 되어버리는 것.

 

...

 

 

아직 성인도 되지않은 예루살렘의 일개 시민인 네가 테러가 뭔 줄은 알고 있기나 해?

응? 네가 테러로 죽어봣어? 테러로 다쳐봤어? 가까이서 테러를 본 적이나 있어?

텔레비전만 켜면 보이니까 다 안다고 생각하는 거야? 하지만 리오르, 텔레비전은 제가

냄새를 맡을 수 있게 하지도, 폭발이 일어나는 그 찰나의 침묵을 들려주지도 못한다고!

고함, 그리고 한탄과 통곡과 신음까지..... 모두 아이들처럼 울어대. 나이가 오십줄이 된 사람들까지도! 텔레비전은 네게 그런 것들을 보여주지는 않아. 아직은 온전하고 건강하게 살아 있는 방송국 리포터들이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고서 '테러 현장'에 나가지 않았으니까. 아무도 알 수 없는거야.

 

 

 

 

 

"특히 중요한 건 그 사람들이 각자 하나의 개체로 존재한다는 걸, 그들이 공통된 운명에 처해 있다고 해서 모두가 닮은꼴인 익명의 존재가 아니란 걸 인식하는 거야. 그 사람들 각자는 둘도 없는 유일한 존재니까."

 

 

...

 

그래. 아는 사람이 없을 때와 있을 때 그 느낌은 정말 달라.

예를 들면 스리랑카에 쓰나미가 일었을때...

그런 대 재앙 속에서 아는 이들의 가족들이 실제로 실종되거나 다치거나하고

또 그렇게 겨우 한 두 다리 쯤 건너서 알고 있는 사람이 당사자일 때

그건 재앙을 맞은 '그들'이 아니라 내가 아는 '누군가'의 안부를 걱정하게 되는 거지.

만약 이곳 대추리에 당신이 아는 누군가가 있다면

대추리에 무슨 일이 터질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릴거야.

아는 사람...이 주는 강렬한 느낌.

동정심? 걱정해주는 마음?

ㅋ 갑자기 맹자의 측은지심과 관련된 이야기가 떠오르네.

맹자가 아니었나;;

내가 아는 돼지를 죽여 만든 고기를 먹지 못하는 것과

내가 모르는 돼지를 죽여 만든 고기를 먹는 것...

(이런 부분은 확실히 어릴 때와 나이들어서 달라진 것 같아. 무뎌진거지)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 적극적으로

후자까지 먹지 않게 된다면 그건 좀더 이성적인 어떤 것이라고 봐.

뭐랄까.. 이데올로기가 결합된 것?

적극적으로 평화를 향유하기 위해서는 물론 그 단계를 넘어서야 겠지만,

음.. 그래서 자매결연 따위를 하는걸까? -_-

이건 좀 비호감이군.

anyway 어려운 주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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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03 22:36 2006/12/03 2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