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늦은 졸업식 후기

from diary 2010/03/15 01:45

최근의 학교 거부 선언과 관련하여 이러저러한 '말'들이 오가고 있는 가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올해 졸업이라는 것을 드디어 하였고,

그리고 그 졸업식은 참 거시기하였다.

 

 

 

한 친구가 왜 졸업식 때 울었느냐고 물었다.

 

음... 운 것 까지는 아니고 좀 울컥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졸업을 하는 친구들 한명한명 나와서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울먹거리는 분위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대학은 단지 '그런' 공간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난 이 대학을 선택했었고,

그리고 졸업을 하였다.

 

물론 이곳이 뭐 얼마나 다르냐, 차이보다는 공통점이 많다고 해도 할 말은 없지만,

졸업이라는 것을 하면서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공간에 있었다는 것이 참 좋았다.

 

어느 순간부터 맹맹하기만 하던 나의 신경에도

그 졸업은 나의 '모교'에 대한 특별한 '마지막' 이미지로 남았다.

 

사실 난 대학을 입학하면서 졸업할 때까지 늘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내 인생의 목표는 졸업, 즉 거칠게 말하자면 졸업장이라는 것을 받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졸업장 때문에 학교 다니는 것이 싫어 떠났지만,

다시 졸업장 때문에 학교를 다니는 역설.

물론 그 속에는 조금은 편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그 진담 반에 들어 있었기도 하거니와

한편 그냥 졸업장이면 돼. 어느 대학이든. 그런 것도 있었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대학이라는 것도 어떤 의미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용납할 수 있다는 것.

그게 어떤 자기변명일지라도.

 

한번은 접고 들어갔지만,

그래도 최후에 지켜야할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나름의 결론이 그것이었을 것이다.

 

선생님은 졸업식을 하던 순간에도 '나의 선택'에 대한 이야기를 또다시 꺼내 놓으셨지만,

난 그 이야기가 당시 갈팡질팡하던 나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라서 부끄럽고 싫다.

 

약간 다른 이야기인데, 어제 함께 수다를 나눈 00 언니는 이제는 꼬리만 보고 쫓아가는 것은 하기 싫다고 했다.

결국 꼬리를 잡고 빙빙 도는 것 뿐이라 싫다고 했다.

쉽지 않은 나이에 대학 졸업장을 따고 경력이 있음에도 다시 취업에서 씁쓸함을 느껴야 하는 상황에서

또다시 사회가 요구하는 그것을 더 할 것인가 그런 상황에서 몸이 아프도록 힘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다고, 그 꼬리잡기의 궤도에서 이탈하고 싶다고 했다.

 

아마도 난 아직 그 궤도 어디쯤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똑같은 궤도 위를 달리고 있는 것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내일 선택할 것은 꼬리가 아니라 발가락이나 귓바퀴 쯤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면 쥐뿔이라도...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우리의 졸업은 꼬리를 잡기 위한 졸업이 아니다.

몇몇 선생님들의 수업은 지금의 나를 몇 할 쯤 규정할만큼 영향을 주었고,

그리고 졸업과 동시에 나는 다시 던져졌다. 이 공간에.

 

아, 그렇지.

내가 졸업식에서 슬퍼졌던 이유.

학교는 내게 그런 공간이었다.

뭐든 할 수 있는 나 자신에 대한 실험의 공간.

그 안에서 하지 않았던 것이 더 많지만,

학생이었기 때문에, 더이상 어떤 길을 갈지 선택을 유예한 자로서의 특권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었던 아늑한 울타리에서 벗어나는 것이 슬펐다.

그리고, 던져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불안감.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

 

나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의 99.9%은 동류항에 불과할 수도 있고,

아니면 유사할 뿐일 수도 있고,

 

그래서 나는 행복할 것인가.

 

 

 

-정리가 하나도 안되지만, 문득 뭔가 써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일단 휘갈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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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5 01:45 2010/03/15 0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