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서론은 <기대수명>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자본주의적 삶에 대해 서술하는 듯 보이는 책의 서론은 기대수명으로 시작한다.

제목에서 볼 수 있듯 프로이트의 죽음과 삶에 대한 철학을 떠올리게 하기도 하고,

우리의 삶이 끊임없이 노후를 걱정하며 내 달리는 서글픈 노동으로 가득 채워진 현실을 떠올리게 하기도 하는 그런 서론이다.

 

근대는 죽음을 유예시켰고, 자연스러운 죽음을 질병이라는 이름으로 관리하기 시작했다.

기대수명은 길어졌다.

그러나 과연 인간의 삶은 얼마나 가치있어 졌는가.

내일 죽음이 올 것 처럼 오늘을 산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며 살 것인가.

하지만 내일 죽음이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무엇을 포기하고 살고 있는가.

 

나는?

내일 죽음이 온다해도 나는 학원에 가서 아이들을 가르칠까.

오늘은 그만 두겠다는 얘기를 할까 하고 출근을 하지만

그런 날은 유독히 아이들이 더 예뻐 보이는 것은

그 아이들과 내가 맺고 있는 수학이나 공부라는 매개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어쨌거나 그 공간에서 6개월이나 관계맺어 왔기 때문에 느끼는 아쉬움에서 오는 것이리라.

 

어쨌거나 내일 당장 죽음이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나는 어떤 선택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똑같은 오늘을 자본주의적 노동을 하며 산다.

 

누군가 연봉 1억을 줄테니 하루에 4-5시간만 자고 온종일 자본주의적 계산으로 가득 찬 노동을 하라고 한다면 10년을 그렇게 일하고 평생 행복하게 지내겠다는 계산을 하는 것이 온당한 것일까.

그렇게 살아간 10년은 이후의 수십년으로 보상받을 수 있을까.

우리의 시간은 시간급 4천원과 몇 만원의 차이로 가치판단될 수 있는 것일까.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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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뛰로당쟁은 "경쟁이야 말로 무의미한 역사의 동력"이라고 말한다. 그는 "중요한 것은 참여한다는 것"이라는 삐에르 드 꾸베르땡의 문장을 거꾸로 돌려 참여한다는 것이야말로 최악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오히려 중요한 것은 차명하지 않는거, 체제가 우리는 야만적으로 만드는 것을 거부하는 것,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쳇바퀴를 돌리는 햄스터가 되기를 거부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우리는 모두 달리고 있지만 어디를 향해 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뜀박질하근ㄴ 이유는 다만 뛰어야 한다는 단순한 사실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이 참여하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더라도 과연 참여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남들은 다 뛰는데 길에 주저앉으란 말인가. 지하철 입구가 토해내는 노동하는 노예들의 모습은 그리 아름답지 않지만 그렇다고 거리에서 비를 맞으며 자고 있는 거지들 역시 보기 좋지는 않다. 어떻게 텔레비전이나 한번 더 보겠다고 뛰어다니지 않을 수 있으며, 사탕이나 대인지뢰를 생산하지 않을 수 있는가. 내가 하지 않으면 누군가 할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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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지 않으면 누군가 할 일이다. 그래서 오늘 난 무엇을 생산하고 있는가. 사탕? 대인지뢰? 경쟁? 오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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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정리하는 버릇은 들이기 나름이다. 생각의 나열에 불과할지라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요즘 들어 책을 끝까지 읽지 않는다. 중간에 멈춰버린 것들이 소복소복 쌓여 녹지도 않은 채 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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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6 02:09 2010/02/26 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