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집, 새 방

from diary 2010/11/30 11:17

새로 이사한 집에서 자는 두번째날 밤...

전날 미처 다 청소를 끝내지 못한 화장실 청소를 빡빡 하고, 책을 읽으려고 앉았는데, 도무지 휑뎅그레한 것이 집중이 되질 않는다. 기타도 꺼내서 쳐보고, 괜시리 물건을 이리 갖다 놨다 저리 갖다 놨다 여전히 휑뎅그레한 것이 사람 사는 집 같지가 않다. 쳐박아두었던 천 떼기로 커튼을 만들어 달았는데, 그것도 처연하게만 보여서 서랍을 온통 뒤져 뺏지며 한 짝 남은 귀걸이, 심지어 와인 코르크마개까지 주렁주렁 달았다. 맘에 안 든다. 하나하나 나에게 말을 건다. 그것들이 내 손에 들어온 순간들이 말을 건다. 그래서 그 쓸모없는 조각들을 서랍 속에 넣어두고 있었을 것이다. 차마 버리지 못하는 관계의 부스러기. 여전히 지속되는 좋은 관계도 있지만, 그때는 좋았지로 종결되는 관계도 있다. 역시 서랍 속에 있는 편이 나을 뻔했다. 그래도 주렁주렁 매달았던 노력이 아까워서 며칠 더 두기로 했다. 계속 정신에 거슬리면 당장 떼버리면 되니까. 여전히 벽은 휑뎅그레하고, 집의 공간이 1평쯤 줄어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했다. 여백의 미 따위 꺼져버려. 휑뎅그레한 방에서 자려고 누웠으나 오래오래 잠이 오지 않는다. 어느 순간 천둥소리에 잠이 깼고, 집이 둥둥 어디론가 떠내려갈 것만 같은 느낌에 뭉실뭉실거리며 다시 잠이 들었다. 바깥에 빨래를 널어놓지는 않았나 비맞으며 안되는 것은 없었나... 아, 그러고보니 쓰레기봉투를 열어놓은 채로 그냥 뒀다. 물이 잔뜩 들어갔을 것이다. 구멍을 내서 빼야겠다............

 

커튼을 달려고 바느질을 했다. 커튼은 마인지 삼베인지 뭐 그런 재질인데, 1센티쯤 되는 실오라기들이 방안 가득 쌓였다. 먼지같은 그것들이 손으로 쓸어내면 하나가득 밀려나온다. 나도 모르게 기침이 나오고, 폐에 실밥이 가득 붙어있는 상상을 하였다. 화장실 청소를 한다. 고민을 조금 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샀던 PB액, 변기의 묵은 때를 향해 발사, 창문을 열었다. 여기저기 액체를 뿌리고 질식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열심히 바득바득 닦고 물을 뿌려 씻어낸다. 반짝반짝 윤이 나는 정도는 아니지만, 이젠 좀 괜찮다 싶다. 한참 청소를 하다가 창문을 바라보니 두겹짜리 창문을 하나만 열고 청소를 하고 있다. 질식할 만도 했다. 이러다가 이상한 액체에 중독되어 죽어버리는 것은 아니겠지 하는 생각을 또 하고야 만다. 왜 자꾸 죽음이 상상되는 것일까. 이 집에 살던 할머니는 10년도 넘게 여기서 살다가 집주인이 내보냈다고 한다. 70이 넘은 노인네가 자꾸 병원을 왔다갔다 하는데, 언제 어찌될지 모르겠어서 내보냈다고 한다. 그 말을 듣던 부동산 중개인은 그래서 독거노인들이 방 구하기 어렵다고 맞장구를 치고, 나는 30년 후 40년 후에는 방을 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방을 빼앗은 죄책감을 조금 느꼈다. 백골송장, 너무 오랫동안 방치되어서 백골이 될 때까지 산 자의 공간에 머무르는 송장, 송장은 죄가 없지만, 사람들은 재수없다 할지도 모르겠다. 죽음은 기피대상, 혐오대상, 열등재. 난 아직 환영받는 세입자, 거부당하지 않는 싱글 청년. 아랫집 사람하고 이야기라도 하고 살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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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30 11:17 2010/11/30 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