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과 관련된 레포트, 혹은 수업시간에 든 생각들... 기타 등등'에 해당되는 글 28건

  1. 루그호의 여인천국 - 문화인류학 쪽글3 2005/04/13
  2. 세미나지도수업 날림 레포트... <모터싸이클 다이어리> 2005/04/01
 

모소족의 어머니는 사람들 위에 군림하지 않으며 놀고먹지 않으며 위엄을 부려 다른 사람을 겁주지 않는다. 그 어머니를 그려 딸이 부르는 노래를 들으면 모소족 사회에 대한 약간의 이해를 구할 수 있다.


달은 겨우 닷새만 환하지만 어머니는 딸에게 한평생 그렇게 환히 밝다.

집안에서는 어머니가 모든 일을 주관하고 집 밖에서는 심촌이 일을 가르쳐준다.

사랑하는 어머니가 없으면 두 눈을 잃은 것과 같다.

어머니를 집에 두고는 섭섭해서 다른 집에 가서 살지 못한다.

내가 찾은 ‘아하’는 어머니의 마음의 뜻을 알 것이다.

어머니가 길러주지 않았으면 인간된 삶을 찾을 수 없었다.

아득하고 힘든 인생의 길에 어머니가 생각나면 어머니와 같이 지내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

어머니가 더 이상 세상에 없어도 자식을 기르고 가르치는 은혜는 내 마음 안에 있다.

아름다운 루그 호, 내 어머니와 너무 닮았다.

세상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어머니,

재물은 사람이 만들지만 어머니는 사람이 만들 수 없다.

산과 들과 짐승은 풀을 먹고사는데 우리 어머니는 고생만 먹고산다.

- 이경자, 모계사회를 찾다 중에서...




 

영상을 보다 재미있게 만들기 위한 장치였는지, 아니면 평등하고 권력 분산적인 사회에 대한 상상력 부족인지는 알수 없지만, 영상에서는 마치 그 사회가 인류의 오래된 옛 원형이자 모권 사회인 것처럼 그리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루그호 모소족은 미개종족도 아니요. 어머니에 강력한 가장권을 주고 있지도 않다.

다만 모계로 혈통을 잇고 있고, 우리와는 다른 ‘주혼’이라는 방식의 혼인풍습을 가지고 아버지가 존재하지 않는 모거제 사회이다. 굳이 모계제가 아니더라도 수많은 종족, 민족들이 자신들 고유의 풍습을 잃어가고 가부장적 질서를 확고히하고 있는 요즈음에도 루그호의 모소족이 과거로부터 이어진 모계제를, 모택동 시절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지하고있는 사회경제적 토대가 무엇일까. 난 그것이 물질문명으로부터의 고립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생계는 주로 호수에서의 고기잡이와 밭농사, 그리고 남자들이 주로하는 목축업이다. 목축으로 상품경제에 어느정도 편입되어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자급자족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듯하다. 그것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가. 임금이 생계의 원천이 아니라는 것이다. 임금이 생계의 원천이 되게되면 가계는 소비에 의해 꾸려지게 되고, 철저히 돈을 벌수 있는 일과 돈이 되지 않는 ‘잡다한 일’을 구별하게 된다. 모소족에게도 분명 여성의 일과 남성의 일의 영역이 있다. ‘아마’인 어머니는 집안의 최고 어른이지만, 그는 놀고먹는 이가 아니다. 위의 노래에서도 보이듯이 우리사회의 어머니와 다름없이 집안의 일을 주관하고 고생만 하는 어머니이다. 우리사회의 어머니가 하는 일은 돈이 되지 않는, 상품경제 사회에서의 교환가치를 생산할 수 없는 일인 반면, 모소족의 어머니는 가족의 생계와 인간된 삶의 중심에 있는 것이다.

어찌보면 여전히 가부장제 하에서 억압을 경험하는 우리의 어머니, 그리고 딸들에게 이 사회는 유토피아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과 동일한 문화를 가졌던 다른 지역의 모소인들의 경우 남성의 ‘해방’을 경험하거나, 기본적 뼈대는 동일하지만 여성은 중노동을 하고, 남성에게는 새기르고 분재하는 호사를 부리는 단지 모계사회의 흔적만 남고 왜곡된 구조를 갖기도 한다. 그것은 원래의 고유문화가 물질문명과 보다 가까운 지역에서 어떻게 변화하는지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우리사회에서의 여성해방, 그것은 단지 어떠한 유토피아를 상정하고 그것을 이상화하여 따라가는 것이 아닐 것이다. 이미 현재의 사회는 남녀의 평등을 그 철학적 기반으로 하고 있다. 다만 근대적 질서에서 벗어나지 못한 구조와 의식이 여전히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남성과 여성을 짓누르고 있다. 그러나 균열지점이 보이지 않는가. 호주제가 폐지된 것은 제도적변화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이미 평등한 가정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고, 남성의 우월성을 과도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마초로 낙인찍히기도 한다. 변화의 가능성은 우리 안에 이미 있다. 모소족의 유의미성은 유토피아로서가 아니라 우리사회의 현 구조가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 변화가능한 것임을, 인류의 보편적 사회구조가 아니라 다만 근대적 가부장제 질서의 한 모습일 뿐임을 보여준다는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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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4/13 01:35 2005/04/13 01:35
 

체 게바라의 20대 라틴아메리카 여행을 담은 영화, 모터싸이클다이어리...

지금까지 ‘체 게바라’라는 이름이 내게 어떤 의미였나. 쿠바혁명에 커다란 역할을 하였고, 혁명 직후 은행 총재가 되었다는 정도와 5년 전 누군가가 준 체 게바라 평전이 읽지도 않은 채 내 책장 제일 꼭대기에 꽂혀있다는 것이 내가 그에 대해 알고 있는 전부였다.

이 영화가 체 게바라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이번에 영화를 보면서 알게 되었다. 혁명가의 상징에서 이제는 자본주의의 상품으로, 전 세계 어디서나 그의 얼굴을 티셔츠에서, 거리에서 만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그의 유의미성이 사라지거나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모든 사전 정보 없이 영화 자체만을 본다면, 이 영화는 두 20대 두 남자의 로드무비다. 앞날에 대한 막막함, 혹은 결정되어 지는 것에 대한 거부 등이 그들을 떠나게 만든 것일까. 내가 보냈던 20대 중반의 방황이 순간 오버랩 되었던 것은 나에 대한 부정도, 그들에 대한 긍정도 아니다. 그들의 여행은 흔히들 하는, 도시에 발자국 찍기 식의 여행이 아니다. 폐기처리 일보직전의 오토바이 하나에 달랑 몸을 싣고 둘은 대륙 종단에 나서는 것이다. 물론 걸어가고 싶었겠지만, 대한민국국토종단이 아니라 대륙종단인 이상 오토바이라는 독특한 운송기구를 선택하게 된 것일까. 그리고 그들이 천천히 조금씩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만나는 것은 라틴아메리카의 자연, 지형, 문명, 그리고 사람들... 길 위의 사람들...



 

여행하는 이들은 모든 길 위의 이들이 여행하는 이들이거나 정착한 이들일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실상 길 위에는 수많은 정착하지 못한, 집을 빼앗기고 땅을 빼앗긴 이들이 있었다. 먹을 것은 풍족했던 옛날을 회상하는 가난한 이들이 있었다. 가진 거라곤 고장 난 오토바이와 여자친구가 준 15달러밖에 없는 두 청년은 어떠한 선택을 하는가.

일단 그들은 목적했던 여행의 마지막, 페루의 나환자촌을 방문하고 그 곳에서 나환자들을 치료하고, 그들과 부대끼고, 환자와 의사와의 관계를 넘어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를 맺고, 둘은 그 여행의 끝에서 각자의 길로 나아간다. 그리고 그 둘이 어떻게 되었을까.

이 영화가 여기서 끝을 맺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왜 굳이 체 게바라를 소재로 하면서 체 게바라의 일대기나 혁명기의 영웅적 모습이 아닌 20대 중반의 맹목적인 여행을 보여주는가. 그것은 단지 체가 왜 혁명에 뛰어들게 되었는지가 아니라, 나를 그 상황에 투영시키거나 나의 20대를 생각게 하면서 나의 삶의 방향을, 목적을,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체는 분명 의사로서의 길을 갈 수도 있었다. 같은 여행을 한다 해도 다른 결정을 내릴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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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쓰고 책장 꼭대기 체 게바라 평전을 읽기로 하였다. 바로 영화가 끝나는 부분까지 책으로 다시 체를 만났다. 구체적인 몇몇 부분을 제외하고는 거의 비슷한 흐름이었으나 한 가지 영화만으로 알 수 없었던 중요한 사실은, 체의 조상이 라틴아메리카인이 아니라는 것.. 난 라틴아메리카 혁명이 민족주의에 기반한 사회주의 혁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라틴아메리카 혁명은 아르헨티나인, 칠레인, 쿠바인 등의 민족성이 아니라 라틴아메리카 대륙이 가지는 공통분모에 대한 이해 없이 판단하기 힘들 것이라는 막연한 가정을 가지고 다시 체의 당시 고민과 여행을 따라가 보았다. 체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영향 등으로 반체제운동에 깊은 고민이 있었으나, 여행을 떠나기 전 그의 미래는 민중과 함께하는 의사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행은 그를 의사가 아닌 혁명가로 변모시키는 중대한 계기가 되는 듯하다. 처음 그들이 계획했던 여행은 자신의 조상들의 문명이 있는 유럽으로 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핏줄의 근원이 아니라 현재 살고 있는 땅, 라틴아메리카를 여행하게 되는 것. 유럽의 자손이 아니라 라틴 아메리카인으로서 뿌리를 찾아 떠나는 여행, 백인들에 의한 지배가 있기 전의 문명, 마추픽추에 올라 자신의 정체성을 재부여하고자 했던 것이 이 여행의 시작이다. 백인으로서가 아니라 라틴아메리카인으로서 라틴아메리카 대륙을 체험하고 그가 결국에 이르른 결론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까.

최근에 호치민 평전을 읽으면서, 누군가의 일생을 통해 역사를 배우는 것이 꽤 흥미로운 작업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랫동안 먼지쌓인 빨간 표지의 이 책을 이제는 읽을 때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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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4/01 17:38 2005/04/01 17: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