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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제학개론 쪽글 2005/09/13
  2. 술먹고 졸면서 레포트 쓰기... 2005/09/06

경제학개론 쪽글

from as a student 2005/09/13 11:39
 

시장의 공간에서 마약문제 등에 개입가능한가??

 


고전경제학에서 상정하고 있는 “합리적 선택을 하는 개인”이라는 인간관은 J. Bentham(1748-1832)의 공리주의 철학에 기초하고 있다. 여기서의 공리는 utility를 의미하며 개인의 쾌락의 총합이 곧 국가 전체의 쾌락이 된다는 것이다. 이때 개인의 쾌락은 가치를 따지지 않으며 이는, “효용이 같다면 제도용 핀과 시는 똑같이 유용하다”라는 Bentham의 말에서도 드러나듯, 마약의 문제에 있어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즉, 이러한 Bentham의 공리주의를 엄밀하게 적용하면 금연운동, 마약단속 등은 모두 사회적 utility를 감소시킨다. 이는 Marie Esprit Leon Warlas의 『순수경제학요강』(Elements d'economie politique pure)에서도 드러난다.


그러나 여기서 몇가지 문제가 도출될 수 있다.

1. 시장실패(market failure)로서의 외부효과(externality)

Adam Smith의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는 국가의 개입없이 시장 자체로 사회적 부가 증대되고 정부의 개입과 규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기본 사상으로 하고 있지만, 정부의 개입이 필요한 경우들이 있다. 그중 한가지가 외부효과인데, 이는 한 사람의 행위가 제삼자의 경제적 후생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말한다. 마약의 문제가 외부효과일 수 있는 이유는 영국의 Lotto 당첨자의 예와 같이 혼자서 오랜 기간 대마초를 재배 및 흡연해왔고, 문제가 되지 않았을지라도 그가 Lotto에 당첨된 후에는 공인의 위치에서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었기 때문에 외부효과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즉, 개인의 쾌락이 혼자만의 쾌락에서 그치는 것이라면 전체의 쾌락 총합에 플러스 요인이 되겠지만,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면 한 개인의 쾌락 증대가 타인의 고통을 증가시키면서 오히려 전체 쾌락의 총합을 감소시킬 수 있다. 흡연권과 혐연권의 논쟁 역시 이에 해당할 것이다. 즉, 국가의 개입이 가능하다.

2. 비가치재(demerit goods)

비가치재란, 소비자가 그것이 주는 효용, 또는 쾌락을 과대평가하는 재화와 서비스를 말한다. 시장의 세계에서 상정한 합리적 인간은 이론적으로는 합리적 판단을 하고, 또 개개인의 쾌락 정도는 누군가 측정해줄 수 없는 문제이긴 하지만, 현실에서의 인간은 경제학에서 상정한 ‘합리적 개인’과 같이 합리적인 판단을 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로써, 마약 역시 비가치재로 분류할 수 있다. 개인이 때때로 불합리한 행동을 한다면, 누군가는 개인의 선택을 규제해야 한다. 즉, 국가가 과대평가되는 쾌락만큼의 비용을 요구하게 되면 비가치재의 소비를 줄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비가치재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면 ‘합리적 개인’이라는 경제학의 대전제를 부분적으로 부정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어디까지 규제할 수 있는가는 결국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집단적 의사결정 과정을 통해 결정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비가치재의 거래 및 소비에 관한 간섭은 국가나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참고자료

1. N. Gregory Mankiw, 『맨큐의 경제학』, 교보문고

2. 유시민, 『유시민의 경제학 까페』,돌베개

3. 유시민,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푸른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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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13 11:39 2005/09/13 11:39

몇시간 전까지만 해도

빡빡한 이번 학기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술을 줄여야 한다고 되뇌였지만,

또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고 11시까지 마셔대버렸다.

전공수업의 압박으로 집에 와서 꾸벅꾸벅 자다가

어느 순간 일어나 이따위 감상문을 쓰고 있는 걸 보면 참 어이 없기도 하다.

아침에 영어 퀴즈도 있는데, 1학기의 모범생은 어디로 간 거야 -_- ㅋㅋㅋㅋㅋ 

어쨌든 현재는 다시 잘수 있음을 행복해 하며.....

 

 

노동의 시간, 인간의 시간


어느 의류공장, 5개의 움직이는 라인과 1개의 쉬는 라인이 있고, 각각의 라인 앞에는 완성된 옷의 개수가 표시되고 있었다. 작업 특성 상 미싱과 시다 일이라는 것은 나사를 돌리는 식의 극도의 단순함으로 쪼개지지는 않았고, 컨베이어 벨트 역시 그런 식으로 돌아가진 않았다. 누군가의 앞에는 5벌 이상의 옷들이 쌓이기도 했고, 누군가는 느린 작업에 대한 책망을 듣기도 하는 일이었다. 과연 라인은 인간의 시간을 최대한 가속시키고 있었을까.


채플린의 모던타임즈, 수업시간에 그 영화를 본 것이 그 영화를 적어도 두 번째 보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억나는 장면이 오직 그가 공장에서 일하는 장면, 밥먹는 기계에 농락당하는 장면, 그리고 그 앞뒤 정도였던 것은 그만큼 처음 그 영화를 보았을 당시로서는 상당히 어렸던 내게 충격적인 영상이었기 때문이었을 것 같다.

아담스미스가 실제로 초기 산업사회에서 보았던 것이 분업으로 인한 장밋빛 미래였는지, 노동자들을 효과적으로 ‘착취’함으로써 얻는 전체적인 잉여가치의 증가였는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당시 내가 느꼈던 충격은 분업이 가져오는 비인간성, 그 자체였던 것 같다. 첫째는 극중 주인공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한 가지 동작만을 기계적이고, 단순반복적으로 하도록 하였던 일의 단순성이었고, 또 하나는 더 이상 그의 시간을 그가 통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몇 년 후, 바로 그 자본주의적이고 비인간적인 분업화된 단순노동을 하게 되었다. 옷을 만드는 일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의 숙련도를 요구할 것이라고 느끼기 쉽겠지만, 나는 라인에 투입된 첫날부터 옷을 찍어내기 시작했다. 그 전에 한 번도 미싱 비슷한 기계도 다뤄본 적이 없음은 물론이다. 라인 어딘가, 내 앞의 몇 번째 전인가에서 찍어오는 점들 위에 정확히 노루발을 얹고 발만 드르륵 움직이면 되는 몇 번의 동작은 정확하게 한 벌의 옷을 만들어내 주었다. 나중에는 졸면서도 찍어낼 정도로.

작업장에서는 끊임없이 시간에 대한 보이지 않는 투쟁이 존재한다. 각 라인마다 붙어있는 완성된 제품의 개수는 라인 별 경쟁을 부추기는 듯 쉴새없이 올라가고, 그도 모자라 개인마다 지급된 수첩에는 자신이 그날 한 일들을 꼬박꼬박 기록하여 매일 체크당하였다. 한달마다 전체나 라인별 우수자에게 약간의 보상이 주어졌고, 그 약간의 보상은 누군가에게는 점심시간의 일부를 포기할 만큼의 인센티브였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회사측의 의도가 일방적으로 관철되기만 하였을까. 노동자들은 절대로 오버페이스하지 않는다. 의도된 태업을 통해 그들은 자신들만의 시간을 유지하고, 사측의 자기시간 통제를 최대한 눈속임한다.

영화를 보면, 채플린이 새로 들어간 공장에서 기계 속에 들어간 숙련공을 꺼내 주려하는 장면이 있다. 한참을 이것저것을 시도해보다가 점심시간을 알리는 벨이 울리고, 숙련공은 여전히 기계속에 있지만, 채플린은 점심을 먹는다. 숙련공에게도 우스꽝스럽게 점심을 먹여주며 말이다. 이것이 어찌보면 테일러주의, 포드주의의 결정적인 한계를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노동자가 Saint Monday를 빼앗기고 시간을 24시간으로 나눠 모든 시간을 똑같이 나눠서 똑같은 분량의 일을 하도록 요구받던 순간부터 인간의 자연스러운 노동 싸이클이라는 것은 사라졌다. 그러나 완전히 사라졌는가. 여전히 우리는 월요병을 가지고 있다.

노동력을 판 순간부터 존재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와 자본 사이의 시간에 대한 통제권을 둘러싼 투쟁은 채플린의 시대를 지나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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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06 02:16 2005/09/06 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