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과 관련된 레포트, 혹은 수업시간에 든 생각들... 기타 등등'에 해당되는 글 28건

  1. 18살 환경활동가의 강연 (3) 2005/10/19
  2. 신역희 레포트 2005/09/24

조효제 교수님의 지구촌 사회와 국제NGO 수업

예고없이 토비 놀런이라는 영국의 활동가와의 자리가 만들어졌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한국까지 날아온 그가 18살의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이라는 것~

 

 

토비 놀런은 영국 출신의 청소년 환경운동가이다.

토비는 올해 18세로 영국 바쓰시의 프라이어 파크 칼리지 고교를 졸업하였다.

토비는 어릴 적부터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고 대단히 열성적으로 지역사회의

환경운동에 동참하였다. 그는 또는 에코유스(Eco Youth)라는

청소년 환경단체를 만들어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http://www.ecoyouth.info

토비는 환경운동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5년 6월 엘리어트 몰리

영국 환경부 장관으로부터 "올해의 청소년환경상"을 받았다.

 

토비는 한국의 새만금 문제를 영국과 유렵에 알리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

한국의 국제 환경단체인 "새와 생명의 터"(Birds Korea)의 초청으로 현재

한국을 방문 중이며 10월 20일에 출국할 예정이다.

http://www.birdskorea.org

 

- 강연 소개 글 중에서

 

 

강연 내용은 주로 한국의 새만금을 비롯한 철새 서식지에 대한 얘기와

그런 철새 서식지가 한국의 무관심으로 황폐화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채워졌다.

한국에서만 발견되는 멸종위기의 새들....

 

강연 후반에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조류 독감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특히 철새의 이동을 염려하며 조류독감의 엄청난 확산이 위기로

얘기되고 있는데, 실제로 그러한가하는 것.

토비 놀런과 동행한 "새와 생명의 터" 대표인 닐 씨의 얘기에 따르면

조류독감이 철새를 통해 확산될 것이라는 예견은 전혀 근거가 없다고 하였다.

현재까지 발견된 조류독감은 모두 사육되는 닭, 오리 등에서 발병,

또 사육장의 밀집된 환경으로 급속히 집단발병하였고,

사람에게 전염되었던 것 역시 닭, 오리 등을 통해서 이지

철새가 조류독감의 감염경로 였던 적은 한번도 없다 한다.

현재 조류독감의 근원으로 지목되며 철새들이 그 생존을 위협받고 있는 상황은

매우 우려스럽다고....

인상적이었던 것은

진정 조류독감을 피하고 싶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Don't eat chicken!!

 

진정 위험스러운 것은

식용 조류의 사육환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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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19 22:19 2005/10/19 22:19

신역희 레포트

from as a student 2005/09/24 17:56

 30분만에 날림으로 쓰기....이렇게 써도 되나;;;;

머리가 아니라 손이 가는대로 쓴 알 수 없는 내용의 독후감.

물론 논리도 없고, 근거도 없다. 주장만 있을 뿐 ㅋㄷㅋㄷ

내가 봐도 열라 재수없는 레포트....푸푸풋

야, 손!! 너 재수없어~

 

김호경, 『종교, 과학에 말을 걸다』를 읽다


지난 한가위 연휴 동안에 파키스탄 가족의 집에 가게 된 일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그들 가족과 손님들이 기도를 하는 시간이었고, 우리는 인사도 제대로 못한 채 여성들만 함께 모여 있는 방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한국의 문화 속에서 만나던 파키스탄 사람들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한국 속의 작은 파키스탄에 온 듯한 기분을 느꼈던 순간이었다. 기도 시간이 끝나자 방안의 여성들 중 가장 나이 많은 분이 우리를 붙들고 이슬람 교리를 설파하셨다. “나무는 누가 만들었나요. 흙은 누가 만들었나요. 물고기는, 새는, 사람은?” 물론 그녀의 바램은 신이 만들었다는 대답을 듣고 싶었겠지만, 나의 신앙은 달랐다. 기독교인도, 불교인도 아닌 나에게 종교는 중요치 않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당신의 종교를 존중하고, 만물에 신이 깃들어있다고 생각한다고, 그러나 그것이 내게 종교가 아니라, 철학이라고 대답했다.

이 책, 『종교, 과학에 말을 걸다』는 내가 느끼기엔 종교도, 과학도 아닌, 사상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다. 서구사상의 역사에서 종교와 과학이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전부나 다름 없기 때문에, 곧 사상의 역사가  혹은 과학의 역사와 일맥상통하게 되는 것이다.

서구사상사에서 보통 중세는 신학의 시대이자, 암흑의 시대라고 한다. 그리고, 근대는 신학의 부정과 인간에 대한 긍정에서 출발한다. 그렇다면 고대는 어떠할까. 서구철학사상의 앞페이지를 장식하는 자연철학자들은 그 이전의 시대인 주술과 신화의 시대에서 우리가 아는 한은 최초로 신을 배제한 우주를 설명하려고 시도했던 이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이러한 시도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에 의해 오랜기간 잊혀졌다.

중세 1000년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신학적으로 계승한 시기이다.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가 그 역할을 수행했던 주역이다. 이들에 의해 플라톤의 이데아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제1원인도 하나님으로 수렴되었다. 물론 그들의 철학이 왜곡되었다기보다는 그들 철학 자체가 가진 수렴점이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

그렇다면 근대는 어떤가. 중세가 신학의 시대이고, 근대가 과학의 시대라고 하지만, 꼭 그렇게 이분될 수 있을까. 물론 코페르니쿠스에서 출발한 천동성의 부정으로 대표되는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의 이동은 획기적인 변화였겠지만, 과연 근본적으로 무엇이 변화되었는지는 재고해볼 여지가 있다. 책에서도 말하고 있듯이, 과학은 근대의 신앙이었다. 중세에 신이, 혹은 성경말씀이 곧 진리였듯이 근대에는 과학이 곧 진리 그 자체였다. 그러나 20세기 초반으로 와서 그러한 과학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은 이미 깨어졌다. 과학은 많은 사람이 믿고 있는 일종의 믿음체계일 뿐이었고, 지금도 역시 그러하다.

그렇다면 저자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종교와 과학은 둘다 세계와 인간을 탐구하고자 하는 노력이었고, 둘다 같은 맥락context 속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화해가능하다는 것인 듯하다. 종교가 지금까지 해왔던 과학에 대한 도전은 자신의 거울에 대한 도전이었다는 것이다. 헤겔 식으로 말하자면, 종교라는 these가 과학이라는 antithese를 종합하여 synthese를 향해가자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그러나, 저자의 논리대로 가더라도 결국 종교와 과학은 둘다 modern의 요소로 한정지어지는 것이 아닐까. 저자에게는 chaos였던 근대 이후(post-modern)의 시대에 저자의 해법은 신학자로서의 저자의 한계는 아닌가.

체계로 세상을 설명하는 시대는 지났다. 설명되지 않는 불안정한 세계 속에서도 샤르트르는 인간의 실존을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오히려 주술과 신화가 다시 돌아온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무슬림 아주머니가 이야기했던 것, 나무를 누가 만들었나를 이해하고자 함은 여전히 근대에 갇혀 있음에서 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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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24 17:56 2005/09/24 17: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