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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라 버마

버마를 다녀온 한국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들을 땐, 버마의 민주화는 8888항쟁 만큼 뜨거운 열기가 다시는 타오르지 못할 것만 같았다. 억압과 공포에 짓눌려 삶을 체념한 듯한 눈빛들이 우두커니 존재하는 그 나라... 

 

며칠 전 그들이 벌떼같이 거리로 뛰쳐나와 손을 잡으며 저항하는 모습을 언론에서 보자,

나는 감격했고 한편으로는 모진 탄압과 죽음을 접하고 있는 그들의 고통에 가슴 아팠다.

 

다시, 저항이 시작된다.

 

그들과의 국제연대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생각을 담아 정성들여 피켓을 만들었다.

단순히 내일 기자회견에 가져가기 위한 용도는 별로 중요치 않았다.

 

내가 보았던 그 사진 속 난민촌 아이들의 또렷한 눈망울을 떠올리며

언젠간 그들의 꽃핀 삶과 공존할 미래를 위해,

오늘만큼은 내 하루의 일부를 진심으로 그들과 함께 보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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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호주상황]파병국의 연이은 고백 "이라크전? 실은 석유 때문에"

 

 

국방장관 석유 연계설 발언 파문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719580

 

 

 

국방장관 발언 이후 호주 국민 이라크 철군 관련 여론 조사

http://cafe.naver.com/kovill.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6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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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바그다드 6백만명 사람들, 117도 더위에서 급수 차단당해

이라크 바그다드
6백만명 사람들, 117도 더위에서 급수 차단당해

 

 

리타드 벡커(Richard Becker/ 앤서 연합 서부지역 코디네이터)

2007. 8. 3. 금


점령 지배자들이 비인도적 범죄 저지르다

 

24시간동안, 바그다드는 필수 급수가 완전 차단되어

 

 

낮동안에 최고 온도가 115도에서 120도까지 오르고 있는 가운데 도시 중심가에 지내는 6백만명 사람들이 6일동안 물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소량의 물만이 배가 아파서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환자들을 위해서 제공되고 있다.

 

보고들에 따르면, 그나마 충분치 못한 전기를 이용해 바그다드의 펌프를 작동시키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점령 지배자들인 미군들은 소름끼칠만큼 끔찍한 전쟁 범죄르 저질렀다. 만약 그들이 즉시 정류기를 제공하지 않는다면 단시간만에 상상할 수도 없는 수만 명의 엄청난 수의 목숨들이 위협받게 된다.


제네바 협약 55장에 따르면, 최대 범위까지 점령 지배자(Occupying Power)는 그 인구에 대해 식량과 진료의 의무를 져야 한다. 만약 점령 지역 원천들이 부적절한 조건에 처해 있다면 특히 필수적인 음식물, 의료품, 그 외 물품들이 반드시 지급되어야만 한다고 나와있다.

 

물론 물을 비롯해 가장 필수적인 것들의 공급 부족은 미군이나 이라크 점령에 가담하고 있는 계약자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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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대중은 '애국'이 아니라 '영구의 도전'에 열광했다"

  "대중은 '애국'이 아니라 '영구의 도전'에 열광했다" 
  [반론] <디워> 논란, 비평가는 '대중의 욕망'을 함께 읽어야 

 

  '먹물'과 '쌩-매스'(?)
 
  얼마 전 아는 사람으로부터 매우 불편한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사람은 '쌩-매스'(生-mass)라는 이상한 표현을 썼는데, 내가 그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거부반응을 보이자 그는 운동권 활동가들이 사적인 자리에서 종종 쓰는 말이라고 친절하게(?) 해명해주었다. '쌩-매스'를 풀이하자면, '날-덩어리' 혹은 '날-대중'이라는 뜻이고, 결국에는 '백지 상태로 아무 것도 모르는 대중'이라는 풍자어인 셈이다.
 
  운동권 활동가들 전부가 그런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비판적인 의식을 가지고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이들은 이 세상에 두 종류의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말해 왔다.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 혹은 지배집단과 피지배집단이라는 분류가 그것이다. 그런데 사적인 자리에서 그들은 전혀 다른 분류 체계를 보이고 있지 않은가. 바로 진보적 지식인과 대중이라는 분류 말이다.
 
  요 며칠 사이의 <디워>(D-War) 논란 역시 이러한 분류 체계로 귀결되고 있는 듯하다. 평론가들을 비롯한 '먹물'들의 혹평에 '쌩-매스' 네티즌들은 집단적인 수준의 반발을 보여 왔다. 게다가 <100분 토론> 당시 진중권의 발언을 계기로 '쌩-매스' 네티즌과 진보 지식인이라는 대립 구도가 생겼다.
 
  <디워>에 애국주의는 있다
 
  <디워>라는 영화 텍스트에 대한 세간의 비평에 대해 나 역시 크게 반대하지는 않는다. 이 영화에 애국주의적 요소가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완전한 거짓말일 것이다. 실제로 각종 매체에서 전파하는 소식들, 이를테면 이무기와 여의주 전설이 영화의 모티프이고, 영화 엔딩곡이 <아리랑>이며, 나아가 100% '국산' CG 기술로 제작된 이 영화의 흥행이 중장기적으로 국내 영화산업의 발전을 도모하고 국내 경제에 부가가치를 가져올 것이라는 뉴스들을 선별해보더라도, 전반적으로 애국주의에 강조점이 있다는 사실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혹자는 '애국주의가 왜 문제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상식적인 수준으로 설명하자면 대충 이렇다. 애국주의는 국가를 중심으로 국민들을 통합하는 효과를 동반하는데, 여기에는 통합되지 않는(혹은 될 수 없는) 비-국민들에 대한 배타성이 표출될 위험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그 통합 자체가 허구적이라는 데 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디워>의 '국산기술'은 심형래 개인 혹은 '영구아트무비'의 것이지, 우리들 개개인의 것은 아니다. 적어도 우리가 그 회사에 입사해서 임금을 받지 않는 이상, 혹은 그들이 벌어들인 수익을 고스란히 분배받지 않는 이상, 사실상 우리는 득을 볼 게 거의 없는 셈이다. 그 파이가 실효적인 신규 고용창출로 이어진다기보다는 투자자들의 금융자본 확충으로 귀결된다는 것은 명백한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디워>가 안팎으로 보이는 애국주의적 요소가 평단의 도마에 올라야 할 문제임에는 분명하다. 게다가 이 영화가 기술적으로 할리우드를 극복했다고는 하지만, 대부분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가 보여 왔던 수법 자체를 극복한 것은 아니다. 휘황찬란한 시각적 구경거리로 관객을 무장해제한 이후에, 영화 자체의 서사, 영화 외적인 담론 등을 통해 허구적인 애국정신을 들이미는 방식 자체는 거의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디워>는 할리우드의 기술에 대해 저차원적으로는 극복했지만, 고차원적으로는 전혀 벗어나지 못한 영화라 할 수 있다. 볼거리로서 흠잡을 바는 없지만, 영화'학' 혹은 문화'학'적으로는 냉정한 평가를 면할 수 없다.
 
  '애국주의 영화에 대한 열광'과 '애국주의'는 구별하자
 
  그러나 진중권을 비롯한 비평가들의 주장에 대해 내가 동조하는 부분은 여기까지다. 비평가들은 <디워>가 가진 이데올로기적인 문제가 너무나 강렬하기 때문에, 이것이 관객들에게도 그대로 통용되리라고 믿는 듯하다.
 
  교과서적으로 말하자면, 대중문화 현상을 비평하고 연구할 때에는 적어도 세 가지 정도의 분석 수준을 고려해야 한다. 텍스트 분석, 수용자 분석, 제도 분석 등이 그것이다.
 
  영화를 예로 들자면, 영화 자체의 미학적·이데올로기적 측면을 분석하거나(텍스트 분석), 이러한 측면이 관객들에게 수용·재해석되는 측면을 분석하거나(수용자 분석), 이러한 시스템이 가동하도록 하는 영화의 제작·유통의 측면을 분석하는 것이다(제도 분석). 따라서 이 중 어느 하나만을 가지고 (영화가 아니라) '문화 현상'을 파악한다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는 그 해명 과정과 결과에 커다란 공백만이 남게 된다.
 
  비평가가 슈퍼맨이 아닌 이상, 그리고 충분한 지면이 허락되지 않는 이상, 이 세 가지 분석을 동시에 병행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우리가 어떤 사물을 관찰할 때 관점과 상황에 따라 다른 이미지가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평 역시 자신이 어떤 수준의 분석을 취하느냐에 따라 문화 현상의 일면만을 관찰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비평은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한계에 대해 명확하게 선을 긋고 자신이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 있음을 솔직히 고백해야 한다.
 
  만약 관객에 대한 분석 없이, 텍스트 분석만으로 <디-워> 논란이라는 문화 현상 전체를 설명하려 한다면, 그 비평가는 자기 자신이 설명할 수 없는 것까지 무리하게 설명하려 하는 오버액션을 취할 수밖에 없다.
 
  영화 자체와 관객의 태도는 분명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영화가 애국주의적이라고 해서 영화에 열광하는 관객 모두가 애국주의자인 것은 아니다. 달리 말해 한 덩어리의 '쌩-매스'란 있을 수 없다.
 
  그냥 가족과 한때를 보내고 싶었을 뿐
 
  그런 면에서 '애국주의'라는 비판에 대해 네티즌들이 보이는 거부 반응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자신이 집단광기에 빠진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조선일보류에 달린 댓글이 아닌 이상, 대다수는 자신이 애국심과도 무관하다고 강변한다.
 
  실제로 <디워>가 개봉한 극장들에는 방학 중인 자녀를 동반한 가족 관객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이때의 <디워>는 심형래의 출연물을 보고 자란 부모세대들이 자녀와 함께 자신의 유년시절을 소통하는 연결고리가 된다.
 
  물론 <디워>의 흥행은 생각 외로 심각한 문제를 시사하는 것일 수 있다. 왜냐하면 500여 개가 넘는 개봉관을 <디워> 한 편이 차지하고 있어서(<화려한 휴가>는 400여 개),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그만큼 선택의 폭이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영화를 이런 관점에서 보는 것이 제도 분석이다).
 
  어쨌든 이렇게 반자율적으로 그냥저냥 <디워>를 보는 경우라 하더라도 애국주의에 동원되어 <디워>를 본다고만은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절망한 대중, 심형래의 도전에 열광하다
 
  이쯤에서 <프레시안>에 기고했던 이형기 등의 논자들이 우려하는 '집단 광기'의 문제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표현에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이 '광기'에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 '광기'는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어찌됐건 심형래(의 영화)에 대한 식자들의 비판이 단초가 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나 역시 심형래에 대해서는 애증의 감정이 교차한다. 특히 '신지식인' 문제가 나오면 더욱 그렇다. 심형래는 1999년 <용가리> 개봉을 전후로 하여 공보처에 의해 '신지식인 1호'로 선정된 바 있는데, 당시 공익광고에 출연한 그는 "못 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니까 못 하는 겁니다"라고 말했다. 당시 정부의 '신지식인' 캠페인에 대해서는 나도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당시 심형래의 이 말 하나만큼은 인정해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비평가들은 바로 이 부분을 무시했다. 그들은 '영구의 도전', '영화계 이방인의 도전'이 '개봉 전에 272만 달러 계약', '신지식으로 제2건국을 이룩합시다!'와 같이 성장제일주의나 국가주의로 귀결된다는 데에서만 문제를 찾았다. 진중권이 말하는 '심형래의 인생극장'이 문제인 것은 바로 이 점 때문이다. 물론 옳은 지적이다. 그러나 놓치고 있는 대목이 있다. 심형래를 지지하는 어느 UCC 동영상에는 비평가들이 놓치고 있는 내용이 무엇인지가 잘 나타나 있다.
 
  '무책임한 비판과 시기 편견/ 권력, 이익집단의 횡포/ 우리의 꿈과 열정은 항상 이 현실의 벽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중략) 우리는 그를 통해 희망을 보았다. 현실의 벽 앞에 타협하고 살아가는 우리/ 어린 시절 노력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 그를 통해 확인하고 싶고 그가 보여줄 수 있길 바란다. (중략) 우리는 그저... 노력하는 자가 승리한다는 작은 진리를 확인하고 싶을 뿐입니다.'
 
  이 동영상을 보면 대중이 심형래에게 열광하는 진짜 이유를 알 수 있다. 적어도 그들에게 '심형래의 도전'은 '무책임한 비판과 시기 편견 / 권력, 이익집단의 횡포'에 대한 도전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영구, 즉 바보의 이미지로 기억된 심형래가 화려한 학벌과 세련된 언변을 가진 이들의 '무책임한 비판과 시기, 편견' 앞에서 좌절을 겪을지 모른다며 불안해 한다.
 
  <디워>를 옹호하는 댓글 가운데 상당수가 "평론가들은 말만 번드르하게 할 뿐, 대중을 위해 실제로 한 게 무엇이냐"는 내용이 많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즐거움을 준 영구가 말만 앞세우는 지식인을 꺾는 모습을, '바보 영구'의 이미지로 각인된 심형래의 성공 신화를 보고 싶은 게다. 실제로 심형래가 부각시킨 이미지도 이런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충무로판에서 마이너리티임을 자처했다. 대중이 정말 원한 것은 애국주의적 열정이 아니라 '마이너리티의 성공 신화'였다. 그리고 이런 성공에 자신을 투영하며, 대리만족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비주류의 도전'에 열광하는 태도를 어찌 무시할 수 있을까. 엄밀한 비평이라면, 이런 측면을 무시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물론 문제는 있다. 이런 도전은 또 다른 패배자를 양산하는 '성공'과 '승리'의 경쟁논리로 포섭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단지 지배이데올로기에 의해 포섭된다는 점만으로, 도매금으로 넘기는 비평가들의 태도는 잘못이다. 여기에 '쌩-매스'에 대한 혐오감까지 곁들여지면, 관객은 더욱 답답해진다. 그리고 이런 답답함은 더욱 억센 반응으로, '광기'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그들의 비평에 '쌩-매스'는 없다
 
  애초에 나는 이 글을 쓰지 않으려고 했었다. 내 입장을 간략히 말하자면, 나는 '먹물들'의 입장에도 '쌩-매스'의 입장에도 온전히 동조하지 못한다. 나는 <디워>가 사람들이 볼 만한 영화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다지 대단한 영화라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또 영화(와 그 주변환경)에 애국주의적 요소가 강하다고 동의하면서도, 정작 관객들이 애국주의적이지는 않다고 여긴다. 요즘 같은 논란 속에서 이렇게 모호한 입장이 또 어디 있을까.
 
  그래서 글을 쓰는 게 조심스러웠다. 험한 소리가 오가는 이 논쟁을 견뎌낼 만한 강심장도 아니거니와, 논쟁의 구도가 지식인-대중과 같은 이분법적 분류로 왜곡된 상황에서 내 생각이 이도저도 아닌 모호한 입장으로 읽힐 것이 염려스러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우리 사회의 공론장에서 <디워> 논란보다 이랜드 비정규직 노조 문제, 이명박 후보 검증 문제, 탈레반 인질 소식, <화려한 휴가>에 대한 논란 등이 더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고 여겼다.
 
  그러나 진중권의 생각에 반대하는 <빅뉴스> 변희재의 글과 무수한 인터넷 게시물들, 그리고 전반적으로 진중권에 동조하는 <프레시안> 이형기의 글과 관련한 댓글들을 보면서, 광기와 적대만을 양산하는 지금의 논쟁 구도가 더 심각해지리라는 문제의식이 분명해졌다. 결국 이러저러한 이유로 나 역시 지금의 논쟁 구도 자체에 대해서 개입할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결론적으로 나는 일단의 비평가들에게 보다 책임 있는 비판 의식을 주문하고자 한다. 다양한 관객과 독자들을 동일한 집단으로 여겨 그들과 거리를 두는 비평 의식은 필연적으로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대중과 거리를 둔 비평의 칼날은 짐짓 예리한 척하기는 하지만, 그럴수록 그 칼 맛은 점점 떨어질 뿐이다. 현재 <디워> 논란에서 대중이 식자들에게 표출하는 반발 심리는 황우석 사태와 다르다. 황우석 사태 당시처럼 단순한 애국주의 쇼비니즘의 발로라기보다는, 대중의 욕망을 읽지 못 하는 비평에 대한 반발에 가깝다. 대중을 아예 없는 존재, 혹은 그저 다 똑같은 한 덩어리의 '쌩-매스'로 여기는 진보 지식인들에 대한 저항으로 받아들이는 게 옳다.  
    
  
 
   김성윤/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프레시안 2007.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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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자지라 기사를 보고 잠깐 화들짝

아프간 피랍 사태 터지고 나서 온갖 일들로 인해 몸도 마음도 지쳐가는데...

요거 보니까 기분이 이상하네

 

http://english.aljazeera.net/NR/exeres/C54A3E80-4635-4F47-998B-EE335AA3440E.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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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성주장] 제주 해군 기지 건설의 필요성

 

제주 해군기지 건설의 필요성 - 이상헌(세종연구소 연구위원)

 

http://www.sejong.org/kor/Publications/ci/data/k-ci2007-06-01.pdf

 

 

동북아 군비경쟁 무서버...

모 국회위원은 노회찬 의원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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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범민중재판 기소장

기소장 목차


Ⅰ.    전문

Ⅱ.    피고인

Ⅲ.    적용법조

Ⅳ.    침략범죄 발생 전의 상황

1.      1991. 대이라크 침공 이전의 상황

가.     미국의 대중동정책

나.     사담 후세인과 미국의 애증관계

다.     1991년 제1차 걸프전 발발

2.      제1차 걸프전 이후 2003. 3. 20. 이라크 침공 이전의 상황

Ⅴ.    침략범죄, 미영연합군의 2003. 3. 20. 대이라크 침공

1.      피고인 조지 부시, 피고인 토니 블레어의 침략범죄 행위

2.      2003. 3. 20. 이라크 침공은 명백한 침략범죄이다.

가.     침략에 관한 관련 국제법 규정 및 정의

        (1) 1974년 UN 제29차 총회에서 채택한 “침략의 정의”에 관한 결의

        (2) UN헌장 제2조 제4항 무력사용금지원칙 및 예외 규정

        (3) 국제형사재판소에 관한 로마규정 중 관련규정

        (4) 이라크전범국제민중법정헌장 관련규정

나.     미영연합군의 2003. 3. 20. 이라크 침공은 UN헌장상의 무력사용금지원칙을 위반한 것이다.

        (1) UN헌장의 집단안보체제원칙 위반

        (2) 미영연합군의 2003. 3. 20. 이라크 침공은 자위권 발동이 아니다.

다.     인도적 개입의 허구성

3.      기만적인 미영연합군의 이라크 민정이양의 허구성

가.     미국은 이라크 주재 미국대사관을 통해 실질적인 주권을 행사하고 있다.

나.     임시정부는 괴뢰정부에 불과하다.

다.     미국은 다국적군을 통해 군사적 점령을 계속하고 있다.

라.     미영연합군은 점령 상태를 이용하여 이라크에 대한 효과적 자원수탈의 기반 마련하였다.

마.     미영연합군은 이라크 내 다양한 민족, 종파 간 갈등을 이용한 분열정책을 사용하여 그 지배를 용이하게 하고 있다.

바.     따라서 미영연합군이 2004. 6. 28. 이라크 임시정부에 민정이양을 하였다고 하여도 2003. 3. 20. 침공 이래 진행되고 있는 전쟁상태에는 변함이 없고, 위와 같은 기만적인 민정이양만으로 침략범죄로서의 성격이 치유되지도 않았다.

Ⅵ.    집단학살, 반인도적 범죄 그리고 전쟁범죄

1.      사망자 수조차 집계되지 않는 이라크 민간인에 대한 범죄행위

가.     민간인을 향한 무차별 공격

        (1) ‘충격과 공포’는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폭격으로 시작되었다.

        (2) 미영연합군은 검문검색 중의 공격, 조준 사격으로 이라크 민간인들을 살해했다.

        (3) 나자프, 알 사드르에 대한 봉쇄공격, 민간인 학살

나.     미영연합군은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면서, 오히려 반대로 미영연합군이 대량살상무기를 이용하여 이라크 민간인들을 공격하였다.

        (1) 미영연합군은 제네바협약으로 금지된 대량살상무기인 클러스터 폭탄을 사용하여 이라크 민간인과 어린이들을 공격했다.

        (2) 미영연합군은 이미 그 위험성이 널리 알려진 열화우라늄탄을 이라크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사용했다.

        (가) 열화우라늄탄은 값싸고 강력하지만, 인체와 환경에 치명적인 손상을 가한다.

        (나) 미국은 열화우라늄탄의 위험성을 충분히 그리고 깊이 있게 인식하고 있었다.

        (다) 열화우라늄탄이 야기하는 인체, 환경에 대한 침해

        (라) 그럼에도 미영연합군이 열화우라늄탄을 사용하는 이유

        (마) 미영연합군은 이라크 침공과정에서 이라크 전역에 열화우라늄탄을 의도적으로 사용하였다.

2.      전쟁과 점령으로 야기된 이라크인들의 고통

가.     전쟁 최대 피해자는 이라크 아동이다.

        (1) 이라크 아동에 대한 무차별 살상

        (2) 미영연합군의 공격은 이라크 아동에게 심리적 외상을 남기고, 교육․보건․의료시스템을 붕괴시킴으로써 그들의 성장에 막대한 피해를 야기했다.

        (가) 1991년 제1차 걸프전 이후 2003. 3. 20.이전의 이라크 아동의 기본상황

        (나) 2003. 3. 20. 시작된 이라크 침공으로 인한 이라크 아동의 피해상황

나.     미영연합군의 사회기간시설에 대한 무차별적인 파괴행위

        (1) 수도․전력시설, 병원, 학교, 방송국 등 사회기간시설 파괴

        (가) 수도 및 전력시설 파괴행위

        (나) 병원 등 의료시설에 대한 파괴행위

        (다) 방송국에 대한 파괴행위

        (라) 호텔에 대한 파괴행위

        (2) 미영연합군의 민간 대상물 파괴행위 후 이라크의 공중보건 및 위생상태

        (가) 상수도 시스템의 붕괴

        (나) 전력공급시스템의 붕괴

        (다) 의료시스템의 붕괴

다.     또 다른 재앙, 환경 파괴

        (1) 유정 방화

        (2) 전투비행 배출가스에 의한 오염

        (3) 대규모 군사작전에 의한 환경파괴

        (4) 핵발전소 약탈에 따른 방사능 오염

        (5) 열화우라늄탄 사용으로 인한 방사능 오염

라.     미영연합군은 이라크 침공과정에서 인류공동유산인 유적, 문화재를 파괴했다.

        (1) 이라크의 문화유산

        (2) 미국에 대한 전시(戰時) 문화재 보호 요구 및 문화재 보호 노력

        (3) 미영연합군의 이라크 침공과정에서의 문화재 파괴와 약탈

        (4) 이슬람 문화의 상징, 모스크 파괴

마.     미국, 영국의 이라크 자원 수탈

        (1) 이라크 침공의 숨은 목적, 이라크 원유 확보

        (2) 이라크 재건을 위장한 이라크 자원 수탈

        (3) 석유 등 자원 수탈

        (4) 미국 기업에 의한 이라크 재건 사업 독점

        (가) 벡텔(Bechtel)사의 재건사업 수주

        (나) 할리버튼(Halliburton)사의 재건사업 수주

3.      무차별 구금과 구금시설 내에서의 고문과 학대

가.     미영연합군의 무차별 체포, 구금

나.     의도적이고 조직적인 수용소에서의 고문, 가혹행위, 성폭행

        (1) 아부그라이브 수용소에서 이루어진 고문과 가혹행위, 성폭행의 내용

        (2) 여성 수용자에 대한 성적학대

        (3) 미영연합군이 구금된 이라크 민간인, 포로에 대하여 가한 가혹행위 등은 의도적이고, 조직적인 행위였다.

4.      팔루자 학살

가.     제1차 팔루자 학살

        (1) 학살의 배경

        (2) 미군은 팔루자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습을 통해 대규모 학살을 자행했다.

        (3) 미군은 군사목표물이 아닌 병원까지 의도적으로 파괴했다.

        (4) 미군은 저격수를 배치하여 움직이는 모든 물체에 무차별적인 사격을 가하여 팔루자 주민들을 살상했다.

        (5) 미군은 이슬람 문화의 상징인 모스크마저 파괴했다.

        (6) 주민의 강제이주

나.     제2차 팔루자 학살

        (1) 제2차 팔루자 학살의 배경

        (2) 팔루자에서 자행된 제2차 학살

Ⅶ.    침략전쟁에 대한 대한민국의 이라크 파병

1.      침략범죄로서의 파병

가.     이라크 침공에 대한 파병은 미국과 영국의 침략전쟁에 가담하는 것이다.

나.     이라크 파병은 대한민국의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다.     이라크는 아직도 전쟁 상태이다.

라.     한미상호방위조약도 대한민국 국군의 이라크 파병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2.      파병으로 인한 행복추구권과 평화적 생존권의 침해

가.     행복추구권 및 평화적 생존권

나.     평화적 생존권의 형성과 보장

다.     대한민국 국군의 이라크 파병에 따른 평화적 생존권 침해

        (1) 대한민국 국민의 양심과 인간성에 대한 심대한 충격

        (2) 테러방지법 제정 추진, 기본적 인권 보장의 후퇴 조짐

        (3) 외국인(특히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인권침해

라.     국민의 생명권 보호의무 위반, 오무전기 직원들과 김선일씨의 피해

        (1) 김선일씨 피랍 전후의 상황

        (2) 이라크 정세 왜곡

        (3) 추가파병의 선언과 파병강행


별지1  이라크 연표

별지2  열화우라늄탄으로 인한 피해

별지3  제1차 팔루자 학살로 사망한 피해자 명단(112명)

기   소   장



Ⅰ.    전문



1.      이라크 전쟁과 파병에 대한 국제전범민중법정 준비위원회는 이라크전법국제민중법정헌장 제8조 제1항 기소인단의 구성에 관한 규정에 의거하여, 전쟁과 파병에 반대하고 이라크 침공과 관련하여 미합중국 대통령 조지 부시, 그레이트브리튼및북아일랜드연합왕국 총리 토니 블레어, 대한민국 대통령 노무현을 국제법 위반과 전쟁범죄로 기소하고자 법정준비위원회에 기소장을 제출한 시민들로 기소인단을 구성하였다.


기소인단은, 이라크전범국제민중법정헌장 제8조 제2항 기소인단의 역할에 관한 규정에 의거하여 이라크전범국제민중법정헌장 제3조 이라크전범국제민중법정(이하 “법정”이라고 한다)의 관할 규정에서 정한 침략범죄, 집단살해죄, 인도에 반한 죄, 전쟁범죄에 해당하는 행위에 관하여 광범위하고 철저한 조사를 진행하였다.


이라크전범국제민중법정헌장 제9조 제1항 기소대리인단의 구성에 관한 규정에 의거하여 법정준비위원회에서 임명한 기소대리인단은 기소인단으로부터 이라크전범국제민중법정헌장 제3조에서 정한 침략범죄, 집단살해죄, 인도에 반한 죄, 전쟁범죄에 해당하는 행위에 관한 조사결과 일체를 청취하였다.



2.      미국과 영국은 제국주의적 패권정책을 추구하는 야망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이라크를 침공하여 이라크 민중을 학살하는 더러운 침략전쟁을 감행하였고, 대한민국은 국익과 이라크의 신속한 평화정착과 재건지원 그리고 한미동맹의 중요성 등을 명분으로 내세워 대한민국 국군을 이라크로 파병함으로써 침략전쟁에 가담하였다.


사담 후세인 정권과 알 카에다 사이의 연루를 이유로 한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분도, 이라크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차단하여 세계평화를 지키겠다는 명분도 사담 후세인 독재정권으로부터 이라크를 해방시킨다는 명분도, 실상 군사적 패권주의 강화와 자국의 지배계층, 특히 군산복합체의 이익과 석유재벌의 이권 확보를 위한 핑계와 구실에 다름 아니며, 이라크 침공을 위한 교활한 계략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과 영국의 명분 없는 더러운 제국주의 침략전쟁에 의해 이라크 민중의 생명과 재산, 존엄성, 인권, 꿈, 삶 모든 것이 처참하게 파괴되었다.


독재로부터의 해방과 자유가 아니라 이라크의 주권과 독립을 탈취하는 군사적 점령과 광범위하고 체계적인 민간인 학살이 행해졌고, 전쟁과 점령, 학살의 공포 속에 이라크 민중의 삶 전체가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3.      피고인 조지 부시와 피고인 토니 블레어는 미국과 영국의 정치적, 군사적 행동을 지시할 권한이 있는 대통령과 총리의 직에 있는 자들로서, 이라크의 주권과 정치적 독립을 침범할 목적으로 UN헌장에 위반하는 무력침공과 군사적 점령에 의하여, 피고인 노무현은 대한민국의 정치적, 군사적 행동을 지시할 권한이 있는 대통령의 직에 있는 자로서, 미국과 영국의 이라크 무력침공과 군사적 점령에 파병함으로써 가담하여 이라크전범국제민중법정헌장 제3조 제1항 침략범죄를 저질렀다.


피고인 조지 부시와 피고인 토니 블레어는 자국의 군사적 행동을 지시할 권한이 있는 자로서 미영연합군으로 하여금 이라크 민중에 대한 집단살해와 민간인 살해, 고문 등 민간인에 대한 광범위한 또는 체계적인 공격행위, 그리고 제네바 협약의 규정 아래 보호되는 사람 또는 재산에 대한 고의적인 살해 또는 불법적이고 무분별하게 수행된 재산의 광범위한 파괴행위 및 확립된 국제법 체제 내에서 국제적 무력충돌에 적용되는 법과 관습에 대한 위반 행위를 하도록 함으로써 이라크전범국제민중법정헌장 제3조 제2항 집단살해죄, 이라크전범국제민중법정헌장 제3조 제3항 인도에 반한 죄 및 이라크전범국제민중법정헌장 제3조 제4항 전쟁범죄를 저질렀다.


이라크전범국제민중법정헌장 제17조 시효에 관한 규정에 의하면 이라크전범국제민중법정헌장 제3조에서 정한 침략범죄, 집단살해죄, 인도에 반한 조, 전쟁범죄에 해당하는 행위에 대하여는 시효의 법리를 적용하지 아니한다.


이라크전범국제민중법정헌장 제4조 제1항 개인의 형사책임에 관한 규정에 의하면 이라크전범국제민중법정헌장 제3조에서 정한 침략범죄, 집단살해죄, 인도에 반한 죄, 전쟁범죄를 공모, 명령, 교사, 실행, 방조, 예비, 음모한 자 및 계획적으로 은폐한 자는 그 범죄에 관하여 형사책임을 져야 한다.


이라크전범국제민중법정헌장 제4조 제2항 국가의 책임에 관한 규정에 의하면 제1호 정부기관, 기타 국가의 공적 역할을 수행하는 개인이 위 이라크전범국제민중법정헌장 제4조 제1항의 행위를 한 경우, 제2호 국가가 위 이라크전범국제민중법정헌장 제4조 제1항에 정한 범죄자들을 처벌하지 않고 비호한 경우, 제3호 국가가 이라크전범국제민중법정헌장 제3조 침략범죄, 집단살해죄, 인도에 반한 죄, 전쟁범죄 각 항과 관련된 진실을 은폐하거나 왜곡한 경우, 제4호 국가가 피해자에게 보상하지 않거나 원상회복 및 재발방지를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경우, 제5호 국가가 위 이라크전범국제민중법정헌장 제4조 제2항 제1호 내지 제4호에 규정된 행위에 의하여 국민의 행복추구권과 평화적 생존권, 생명권을 침해한 경우 국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


피고인 조지 부시와 피고인 토니 블레어 그리고 피고인 노무현은 이라크 전쟁에서 저지른 자신들의 범죄행위에 대하여 형사책임을 져야 한다.


미국과 영국 그리고 대한민국은 피고인 조지 부시와 피고인 토니 블레어 그리고 피고인 노무현을 비롯한 정부, 군, 기타 국가의 공적 역할을 수행하는 개인이 이라크 전쟁에서 저지른 범죄행위를 처벌하지 않고 비호하고, 침략전쟁, 집단살해, 인도에 반한 죄, 전쟁범죄와 관련된 진실을 은폐하거나 왜곡하고, 범죄행위의 피해자들에게 보상하지 않고 원상회복 및 재발방지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음으로써 이러한 국가의 행위에 의하여 자국 국민의 행복추구권과 평화적 생존권, 생명권을 침해하였으므로 이라크 전쟁에서 저지른 범죄에 대하여 응당 국가책임을 져야 한다.



4.      전쟁과 파병에 반대하는 전 세계 민중은 누구나 이라크전범국제민중법정헌장 규정에 의거하여 이라크 전쟁에서 침략과 학살의 주범과 그 동조자들이 저지른 범죄에 대하여 공소를 제기하고 판결을 집행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


이라크 전쟁에서 저지른 침략범죄, 집단살해죄, 인도에 반한 죄, 전쟁범죄에 해당하는 행위에 관한 증거 자료는 넘쳐흐르고 정의와 평화를 사랑하는 전 세계 민중이 양심의 증인으로 나서고 있다.


기소인단과 기소인단을 대리한 기소대리인단은 이라크전범국제민중법정헌장을 위반한 이라크 전범 피고인 조지 부시과 피고인 토니 블레어 그리고 피고인 노무현을 반전평화를 염원하는 전 세계 민중의 이름으로 이라크전범국제민중법정에 공소를 제기한다.





Ⅱ.    피고인



1.      조지 부시(George W. Bush, 현 미합중국 대통령)

        The White House

        1600 Pennsylvania Avenue NW

        Washington, DC 20500, USA


2.      토니 블레어(Tony Blair, 현 그레이트브리튼및북아일랜드연합왕국 총리)

        10 Downing Street

        London

        SW1A 2AA, UK


3.      노무현(Roh Moo-hyun, 현 대한민국 대통령)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1

        청와대





Ⅲ.    적용법조



1. 가.  피고인 조지 부시, 피고인 토니 블레어에 대하여,

        이라크전범국제민중법정헌장 제3조 제1항, 제2항 1호 내지 3호, 제3항 1호, 2호, 4호 내지 7호, 9호, 10호, 제4항 1호 가.목 내지 라.목, 바.목, 사.목, 2호 가.목 내지 라.목, 사.목 내지 자.목, 카.목, 타.목, 하.목, 거.목, 더.목 내지 머.목, 어.목, 제4조 제1항


   나. 피고인 노무현에 대하여,

        이라크전범국제민중법정헌장 제3조 제1항, 제4조 제1항



2.      미국, 영국, 대한민국에 대하여,

        이라크전범국제민중법정헌장 제4조 제2항, 제1항, 제3조




Ⅳ.    침략범죄 발생 전의 상황



1.      1991. 대이라크 침공 이전의 상황


이라크 지역은 세계 4대문명 중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다. 서구와 소아시아 지역의 패권국들은 모두 이 지역을 차지함으로써 패권세력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근대 영국, 프랑스 등은 인도, 중국, 아프리카로 가는 요충지로서 이 지역의 중요성을 인식했고, 중동지역에서 석유가 발견된 후로는 페르시아만의 중요성과 페르시아만 석유 부국(이른바 GCC 국가)의 안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냉전시대에 이라크는 소련의 남하를 막기 위한 전선으로, 탈냉전시대에 이라크는 막대한 석유 자원 보유국으로 그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이라크가 보유한 석유 매장량은 사우디아라비아를 이어 세계 제2위이다. 그것만으로 이라크가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     미국의 대중동정책


미국은 중동에서 석유가 발견된 1930년 이후 중동에 지대한 관심을 보여 왔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는 냉전의 한축인 소련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한 전략적 요충지로서 중동지역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미국이 중동지역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이래, 중동지역에 대하여 갖는 기본적인 정책은 이스라엘을 한 축으로, 온건 아랍 국가 중 하나를 다른 축으로 하는 ‘두 기둥 정책’이었다. 여기에 석유 자원의 확보 필요성에 따라 걸프만의 GCC국가들의 안보를 중요 관심사항으로 두고 있다.


한편, 소련의 붕괴에 따른 냉전의 해체와 1991년 제1차 걸프전을 거치면서 미국이 고수하던 대중동정책에 변화의 필요성이 생겼다. 즉, 미국은 소련 및 공산주의의 위협이 사라지는 대신 이를 대신할 새로운 적을 만들 필요가 있었고, 그 자리에는 이슬람과 중국 등의 국가를 가져다 놓았다. 이 시기 미국의 대중동정책 기조는 이라크의 중동 패권 저지, 이슬람으로부터의 위협 제거, 이스라엘의 안보와 석유안보로 요약할 수 있다.


나.     사담 후세인과 미국의 애증관계


사실 사담후세인은 미국의 적극적인 지원을 통해 권자에 오른 자이다. 1963. 4. 사담 후세인이 속한 바트당이 당시 소련에 가까웠던 카셈 총리 정부를 전복할 때 미국은 ‘공산주의 제거’라는 목표를 위해 바트당에 경제지원을 약속했다. 1979. 사담 후세인이 집권하고 이듬해 이란을 침공할 때도 미국은 이라크에 대하여 막대한 지원을 했다. 반미성향이 강한 이란에서 이슬람 혁명이 성공하고, 그 기운이 중동의 다른 나라로 확대되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란군의 동태에 관한 정보와 온갖 최신 무기를 이라크에 제공했고, 미국기업들은 미국 정부의 묵인 하에 이른바 911 테러 이후 미국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탄저균 등 다양한 생화학 무기 원료를 이라크에 팔았던 것이다.


그러나 1990. 8. 사담후세인의 이라크 군대가 쿠웨이트를 침공한 것은 사담 후세인과 미국의 밀월관계를 결정적으로 틀어놓는 계기가 되었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은 석유 공급의 안정적 확보를 추구하는 미국의 대중동정책을 위협했기 때문이다.


다.     1991년 제1차 걸프전 발발


1990. 8. 2. 이라크 군대가 쿠웨이트를 침공하면서 걸프만의 위기가 고조되었다. UN안전보장이사회는 결의 제678호를 통해 1991. 1. 15.을 기한으로 하여 이후 무력사용을 용인하였고, 이 기한이 지난 이틀 후(1991. 1. 17.) 새벽 미군을 중심으로 한 다국적군은 이라크에 대한 공습을 개시하였다. 제1차 걸프전이 발발한 것이다.


이라크는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에 스커드 미사일을 발사하며 응전했다. 그러나 다국적군의 압도적 공군력으로 이라크군을 패퇴시키고, 1991. 2. 24. 다국적군은 지상전을 개시하며 이라크군을 패배시켰다. 1991. 2. 26. 쿠웨이트가 해방되었다. 당시 미국 대통령(피고인 조지 부시의 아버지)은 1991. 2. 28. 전투정지를 명령했고, UN안전보장이사회는 1991. 4. 3. 항구적인 휴전 결의 제287호를 채택했으며,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은 이를 수락함으로써 1991. 4. 11. 정전이 정식 발효되었다.


쿠웨이트 해방 및 이라크 응징을 명분으로 한 제1차 걸프전에는 이면의 다른 의도가 숨어 있다. 미국은 이 전쟁을 통해 석유 매장량 세계 2위 국가인 이라크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하여 전 세계 에너지 통제권을 확보하고자 했고, 우방인 이스라엘을 위한 중동의 군사질서 재편을 꾀했으며, 전쟁에서의 막대한 군비지출로 침체된 국내 경기를 활성화하려고 했다. 이라크는 사우디아라비아 다음가는 석유가 매장(1,120억배럴 상당)된 국가이고, 이라크가 이를 개발하여 부를 축적하고 군사대국으로 성장하는 경우 미국으로서는 골치 아픈 상대가 될 수 있으며, 국제시장에서의 원유가격을 지배하는 힘이 커지게 될 것이므로, 미국은 이라크에 친미정권을 세워 이와 같은 잠재적인 위협을 제거하려 했던 것이다.


한편 제1차 걸프전 당시 목표물에 조준된 십자선을 따라 족집게로 집어내듯 정확히 목표물을 타격하던 정밀유도폭탄이 언론 매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이는 걸프전에 사용된 전체 폭탄 량의 10%에 불과했고, 나머지 90%는 종전처럼 조종사의 기량과 폭격 조준장치에 의존하는 멍텅구리 폭탄이었다. 이는 수많은 오폭이 존재했다는 사실과 미국이 자랑하는 정밀 폭격이 허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역으로 보여준다.



2.      제1차 걸프전 이후 2003. 3. 20. 이라크 침공 이전의 상황


이라크는 세계 제2위의 석유 매장량을 지닌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사회의 경제봉쇄로 말미암아 피폐함을 면치 못했다. 제1차 걸프전까지 다른 중동 국가들 보다 상대적으로 산업화되었던 이라크는 제1차 걸프전과 이후 경제봉쇄 등의 조치에 따라 피폐일로를 걸어왔다. 제1차 걸프전이 끝나고 미국과 영국의 공군은 이라크 북부(쿠르드 지역)와 이라크 남부(시아파 지역)에 비행금지구역을 정해두고 계속적으로 이라크에 폭격을 가해왔다.


한편, 미국은 2000년 대선에서 피고인 조지 부시를 대통령으로 선출했고, 피고인 조지 부시가 이끄는 미 행정부는 기존의 다자주의 외교정책을 버리고, 일극체제, 패권적 일방주의 외교정책을 펴왔다. 이스라엘의 아랍인에 대한 피의 보복을 묵인했고, 탄도탄요격미사일협정(ABM)을 일방적으로 파기했고, MD정책을 추진했다. 북한의 핵과 대한민국 정부의 대북 지원에 대한 철저한 검증을 요구했고, 전지구적 환경문제인 지구 온난화에 관한 ‘교토의정서’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했으며, 인종차별철폐회의에서 이스라엘 입장을 지지하며 철수해버렸다. 미국 상원은 국제형사재판소에관한로마규정 비준을 거부했고, 불법소형무기 거래를 금지하는 UN규정을 반대했으며, 포괄적 핵실험 금지조약에 대한 비준을 연기했다. 피고인 조지 부시가 집권한 이래 미국이 편 일련의 정책은 냉전체제로의 회귀, 일극체제의 형성․확대를 위한 일방주의 외교정책이었다.


2001. 9. 11. 미국의 국제무역센터 빌딩에 가해진 소위 911테러 후 미국은 대테러 전쟁을 선포했고, 알 카에다 지도부가 은신하고 있다고 의심하던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대대적인 보복 전쟁을 일으켰다.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보복 전쟁이 끝난 후 미국은 이라크에 눈을 돌렸다. 테러 조직을 지원했다거나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이유였다. 피고인 조지 부시는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를 강조하며 이라크에 대한 공격설을 계속적으로 흘렸고, 국제사회의 호응을 얻어 보고자 했으나 냉담한 국제사회의 반응에 초조해했고, 결국 “우리의 안보가 관련됐을 때 행동할 필요가 있다면 그렇게 할 것이다. 그렇게 하는 데는 UN의 승인이 필요 없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Ⅴ.    침략범죄, 미영연합군의 2003. 3. 20. 대이라크 침공


○ 2002. 3. 18. 피고인 조지 부시 “이라크에 대한 어떤 행동을 결정하기에 앞서 동맹국들과 협의하겠다. 이라크 공격에 대한 아랍권 지도자들의 조언에 감사하지만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정권이 대량살상무기로 다른 나라들을 위협하게끔 놔두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 2002. 5. 26. 피고인 조지 부시는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안정과 평화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후세인 정권의 교체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 2002. 6. 1. 피고인 조지 부시는 “최악의 위협이 나타나기 전에 적들과 그들의 계획을 분쇄해야 한다. 대테러전쟁은 방어적이어서 승리할 수 없다. 안전을 위한 유일한 길을 행동하는 것이며 미국은 그렇게 할 것이다.우리는 미국민들의 안전과 지구의 평화를 소수의 미친 테러분자들과 압제자들의 손에 맡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2002. 9. 4. 피고인 조지 부시는 “적절한 시기에 정부는 이라크의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필요한 조처를 위해 의회로 가 승인을 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 2002. 9. 10. 피고인 토니 블레어는 “UN을 통해 해결한다 하더라도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위협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해결하는 수단이 되어야만 한다”고 말했다.

○ 2002. 9. 12. 피고인 조지 부시는 “UN은 이라크 상황에 대처하지 않으면 수백만의 생명이 위태롭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2002. 9. 16. 이라크는 UN무기사찰단의 복귀를 무조건 받아들이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스콧 메클레린 미국 백악관 대변인은 “문제는 사찰이 아니라 대량살상무기를 해체하고 이라크 정권이 안보리의 모든 결의안을 준수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 2002. 9. 20. 미국 행정부가 발표한 ‘국가안보전략보고서’는 “(과거 억제와 봉쇄정책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미국은 테러 위협이 우리의 국경에 이르기 전에 이를 찾아 내고 파괴해야 하며 이를 위해 필요시 독자적으로 행동하고 선제적 군사력을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 2002. 9. 24. 피고인 토니 블레어는 “사담 후세인 정권의 대량살상무기 개발 위협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 2002. 9. 26. 이라크 정부 대변인은 “미영 전투기들이 2002. 2. 26. 00:45 바스라 국제공항을 공습해 2001년 국제민간항공기구에 등록한 바스라 공항의 민간레이더시스템이 파괴됐고, 공항의 주요 건물이 피해를 입었다”고 발표했고, 미국 국방부는 “목표는 민간시설이 아니라 이동식 방공레이더시스템으로 지난 수 주 동안 연합군 전투기들을 조준하는데 이용됐다”고 주장했다.

○ 2002. 10. 4. 피고인 조지 부시는 “UN은 결단력을 보일지를 선택해야 하고 사담후세인은 그의 약속을 지킬지를 선택해야 한다. 양쪽 모두 행동하지 않으면 사담 후세인의 위협을 이해하는 나라들과 광범위한 연합을 구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2002. 10. 7. 피고인 조지 부시는 사담 후세인을 ‘흉악한 폭군’이라고 부르며 “그가 생화학 무기로 미국을 공격할 음모를 꾸미고 있을지 모른다”고 주장했다.

○ 2002. 10. 10. 미국 하원은 찬성 296, 반대 133표로, 2002. 10. 11. 미국 상원은 찬성 77, 반대 23표로 피고인 조지 부시의 이라크 침공을 승인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 2002. 10. 21. 피고인 조지 부시는 “UN이 결단을 내리지 않고 사담 후세인이 무장을 해제하지 않으면 우리는 평화를 위해 국제연대를 이끌어 그의 무장을 해제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 2002. 11. 8. UN안전보장이사회는 이라크 무기사찰에 관한 결의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 2002. 11. 13. 이라크는 UN안전보장이사회의 무가사찰 결의를 수용했다.

○ 2002. 11. 20. 영국 국방장관 제프 훈은 “영국정부는 미국으로부터 공식 파병요청을 받았다”고 밝혔다.

○ 2002. 11. 20. UN무기사찰단장 한스 블릭스는 “그들(이라크)은 대통령 전용시설 사찰을 받아 들였다”고 밝혔다.

○ 2002. 12. 19. 미국 국무장관 콜린 파월은 이라크의 2002. 12. 7.자 보고서가 “과거의 정보를 다시 끌어 모았고 명백하게 정보를 빠뜨리고 있다. 우리가 보기에 이는 (안보리 결의에 대한) 실질적인 위반”이라고 밝히며 “이라크는 마지막 기회를 읽고 있다”고 강조했다.

○ 2003. 3. 6. 피고인 조지 부시는 “우리는 나라를 방어하는데 어느 누구의 허락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2003. 3. 7. UN무기사찰단장 한스블릭스는 “이라크에서 생화학무기를 생산․저장하는 지하시설이나 이동식 시설에서 어떠한 증거도 확보하기 못했다. 이라크의 알 사무드2 미사일 폐기는 실질적인 무장해제 조치”라고 밝히고 “이라크가 무장해제 의무를 다하는지 사찰하려면 몇 개월이 더 필요하다”고 말하고 국제원자력기국 사무총장 모하메드 엘바라데이는 “핵무기 생산과 관련된 알루미늄 튜브에 대한 사찰에서도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 2003. 3. 8. 미국, 영국 등은 이라크의 무장해제 시한을 2003. 3. 17.로 못 박은 수정 결의안을 UN안전보장이사회에 제출했다.

○ 2003. 3. 13. 미국 백악관 대변인 애리 플라이셔는 “결의안 표결은 내일 이뤄질 수도 있고 다음 주로 미뤄질 수도 있다. 부시 대통령의 안보리 결의안 표결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 2003. 3. 15. 프랑스, 러시아, 독일은 “현재 상황에서 그 무엇도 사찰과정을 중단하고 무력사용에 의지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없음을 재확인한다”는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 2003. 3. 17. UN주재 미국 대사 존 네그로폰테는 이라크에 대한 최후통첩을 담은 결의안 통과를 위한 외교노력을 포기한다고 밝혔다.

○ 2003. 3. 17. 20:00 피고인 조지 부시는 사담 후세인과 그 아들들에게 48시간 이내에 이라크에서 떠나도록 경고하고 이를 거부하는 경우 미국은 언제든 군사행동에 들어갈 것이라는 내용의 이라크 침공 최후통첩을 하였다.

○ 2003. 3. 18. 미국 백악관 대변인 애리 플라이셔는 “(사담 후세인이 망명길에 나서더라도) 대량살상무기를 찾아내기 위해 이라크로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1.      피고인 조지 부시, 피고인 토니 블레어의 침략범죄 행위


2003. 3. 20. 피고인 조지 부시는 TV로 방영된 백악관 연설을 통해 이라크에 대한 전쟁을 선포했다. 같은 날 피고인 토니 블레어는 영국군이 이라크 전쟁에 참전하였음을 공표했다. 미영연합군은 이라크에 대하여 대규모 공습을 감행하였고, 이라크 침공이 시작되었다.


피고인 조지 부시는 미국의 군대를 통할하는 지위에 있는 자로서 미국 육․해․공군 및 해병대에게 이라크를 공격할 것을 명령하여 2003. 3. 20. 이라크에 대한 공습, 공격, 전투 등을 수행하도록 하였다. 피고인 토니 블레어는 2003. 3. 19. 비상각료회의를 열어 이라크에 대한 전쟁을 결정하고 다음 날인 2003. 3. 20. 영국군대에 대하여 미국과 협력하여 이라크 침공을 수행할 것을 명령하였다.


미영연합군은 개전 후 남부 바스라와 바그다드, 기타 많은 도시에 대한 공습을 감행했다. 미영연합군은 2003. 4. 7. 바그다드에 집입하였고, 2003. 2. 10. 바그다드를 점령하여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렸다. 피고인 조지부시는 2003. 5. 1. 종전을 선언했다. 2003. 12. 13. 8개월 동안 은신해 있던 사담 후세인은 티크리트에 있는 농가의 지하실에서 미군에 의해 체포되었다.


현재도 미영연합군은 이라크를 점령하며 주둔하고 있다.


이와 같이 미영연합군이 2003. 3. 20. 이라크를 침공한 이래 이라크 영토에 대한 대규모 공습을 하고 무력으로 이라크의 항구 및 연안을 봉쇄하는 한편, 이라크 육군, 공군 등에 대하여 공격하고 이라크 영토내에서 무력을 행사한 행위는 위에서 본 바와 같이 UN헌장이 규정하는 집단안보체제원칙에 따른 UN안전보장이사회의 무력사용승인에 관한 어떠한 결의도 없이 감행된 것이고, UN무기사찰단에 의하여 대량살상무기에 관한 어떠한 증거도 발견되지 아니하였음에도 불구하고 2002. 9. 20. 발표한 ‘국가안보전략보고서’에 따라 이라크의 미국, 영국에 대한 무력공격이 발생하지 아니한 상태에서 선제공격을 감행한 것이므로 UN헌장에 명백히 위반하는 무력행사이자, 이라크전범국제민중법정헌장이 규정하는 침략범죄행위이다. 한편, 그와 같은 침략행위의 불법성은 이후 UN안전보장이사회의 각 결의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치유되지 않은 상태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나아가 피고인 조지 부시와 피고인 토니 블레어는 이 법정에 이르기 전부터 2003. 3. 20. 이라크 침공이 2002. 11. 8.자 UN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제1441호에 의거한 것으로 정당하고, 이후 UN안전보장이사회의 2003. 5. 22.자 결의 제1483호, 2003. 10. 16.자 결의 제1511호, 2004. 6. 8.자 결의 1546호에 의해 정당한 것임이 확인되었다고 주장하고, UN헌장 제51조에 근거한 자위권 행사라고 주장하며, 독재자 사담 후세인으로부터 이라크 국민의 해방을 위한 인도적 개입이므로 정당하다는 주장을 하여왔는바, 아래서는 그 주장의 허구성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논박하고자 한다.



2.      2003. 3. 20. 이라크 침공은 명백한 침략범죄이다.


가.     침략에 관한 관련 국제법 규정 및 정의


        (1) 1974년 UN 제29차 총회에서 채택한 “침략의 정의”에 관한 결의


1974년 UN 제29차 총회에서 채택된 “침략의 정의” 결의(Resolution on the Definition of Aggression, December 14, 1974) 제1항은 침략전쟁의 개념을 “영토, 주권 또는 정치적 독립을 침해하거나 UN헌장에 위반되는 무력의 사용(무력의 사용에는 군대에 의한 영토의 침략, 폭격, 해상봉쇄 등이 있음)”으로 규정하고 있고, 동조 제2항은 “UN헌장에 위배되는 무력행사는 침략행위의 제1차적 증거가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2) UN헌장 제2조 제4항 무력사용금지원칙 및 예외 규정


UN헌장 제2조 제4항은 “모든 회원국은 그 국제관계에 있어서 다른 국가의 영토보전이나 정치적 독립에 대하여 또는 UN의 목적과 양립하지 아니하는 어떠한 기타 방식으로도 무력의 위협이나 무력행사를 삼간다”고 규정하여 무력사용금지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UN헌장 제41조는 “안전보장이사회는 그의 결정을 집행하기 위하여 병력의 사용을 수반하지 아니하는 어떠한 조치를 취하여야 할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으며, 또한 UN회원국에 대하여 그러한 조치를 적용하도록 요청할 수 있다. 이 조치는 경제관계 및 철도, 항해, 항공, 우편, 전신, 무선통신 및 다른 교통 통신수단의 전부 또는 일부의 중단과 외교관계의 단절을 포함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고, 제42조에서 “안전보장이사회는 제41조에 규정된 조치가 불충분한 것으로 인정하거나 또는 불충분한 것으로 판명되었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국제평화와 안전의 유지 또는 회복에 필요한 공군, 해군 또는 육군에 의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 ”고 규정하고 있다.


UN헌장 제51조는 “이 헌장의 어떠한 규정도 UN회원국에 대하여 무력공격이 발생한 경우, 안전보장이사회가 국제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할 때까지 개별적 또는 집단적 자위의 고유한 권리를 침해하지 아니한다 … ”고 규정하고 있다.


        (3) 국제형사재판소에 관한 로마규정 중 관련규정


국제형사재판소에 관한 로마규정 제5조 제2항은 “제121조 및 제121조에 따라 침략범죄를 정의하고 재판소의 관할권 행사 조건을 정하는 조항이 채택되면 재판소는 침략범죄에 대한 관할권을 가진다. 그러한 조항은 UN헌장의 관련규정과 부합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4) 이라크전범국제민중법정헌장 관련규정


이라크전범국제민중법정헌장 제3조 제1항 제1호는 “침략의 죄란, 자국의 정치적, 군사적 행동을 지시할 권한 있는 자 또는 지휘를 실행할 입장에 있는 자에 의해, 국가주권, 영토권, 국가의 정치적 독립 내지 타국민의 불가침 인권에 대한 위협 또는 침범을 목적으로 타국에 대해 유엔헌장에 위반하는 무력행사에 의하여 인민 자결, 자유 및 독립의 권리를 탈취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나.     미영연합군의 2003. 3. 20. 이라크 침공은 UN헌장상의 무력사용금지원칙을 위반한 것이다.


UN헌장 제2조 제4항은 일반적으로 모든 국가에 대하여 무력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예외적으로 무력사용이 국제사회의 분쟁을 해결하는 유일한 수단이 될 때에는 UN헌장도 제한적으로 이를 인정하고 있고, UN헌장 제41조, 제42조를 통해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에 따라 UN회원국들로 하여금 국제평화와 안전의 유지 또는 회복에 필요한 무력을 사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고, 제51조를 통해 UN회원국에 대한 무력공격이 발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UN안전보장이사회가 필요한 조치를 취할 때까지 각 UN회원국은 자위를 위한 무력을 행사할 권리를 부여해 놓고 있다.


그러나 집단안보체제원칙(UN헌장 제41조, 제42조)은 처음부터 무제한적인 무력행사를 허용한 것이 아니고, 우선 경제제재나 외교적 제재조치를 통해 분쟁해결을 위한 노력을 다할 것을 요구한다. 한편 개별 UN회원국이 자위권(UN헌장 제51조)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해당 UN회원국에 대한 무력공격이 발생”해야만 한다.


        (1) UN헌장의 집단안보체제원칙 위반


미국과 영국이 2003. 3. 20. 이라크 침공의 근거로 삼고 있는 것은 2002. 11. 8.자 UN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 1441호이다. 이 결의에서 UN안전보장이사회는 그 동안의 무기사찰과 대량살상무기의 폐기를 촉구한 지난 10여년간의 결의(대표적으로 결의 제687호)를 상기하면서 이라크에 마지막 촉구(final opportunity to comply with its disarmament obligations under relevant resolutions of the Council)를 하였다. 즉, UN안전보장이사회는 이라크가 반복되는 이사회 결의에도 불구하고 UN무기사찰단(UNMOVIC)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의한 사찰 및 무장해제 노력에 적극적으로 협력하지 않았다고 평가하고 즉각적이고도 적극적으로 이들의 노력에 협력할 것을 요구하였고, 만일 이라크가 이 요구에 계속적으로 불응하면 심각한 결과를 맞이할 것[it(Iraq) will face serious consequences as a result of its continued violations of its obligations]이라고 경고하였다.


그러나 2002. 11. 8.자 UN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제1441호가 바로 미국과 영국에 무력행사를 허용한 것이라고 보는 것은 우선 동 결의의 문리해석상 불가능하고, 원래의 취지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위 결의는 이라크가 계속적으로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향후 UN안전보장이사회의 (별도의) 결의에 의하여 심각한 결과를 맞이할 수 있다는 경고에 불과하고 ‘심각한 결과‘에 무력행사가 포함되었다고 볼 수도 없다. 또한 위 결의는 마지막에서 “(UN안전보장이사회가) 본 사안을 장악하고 있을 것을 결정한다[(Security Council) Decides to remain seized of the matter]”고 규정하여 무력사용이 승인되지 않았음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미국과 영국이 비록 후에 철회(2003. 3. 17.)하기는 하였지만 UN안전보장이사회에 대하여 계속적인 무력제재 결의를 요구한 점은 위 결의 제1441호만으로는 무력행사를 할 수 없다는 점을 미국, 영국 스스로 자인한 셈이다.


한편, 이라크는 전쟁의 위협을 느낀 나머지 2002. 11. 13. UN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 제1441호를 수용했고, 대통령 전용시설에 대한 사찰도 허용했다. 이에 따라 2002. 11. 25.부터 한스 블릭스 단장이 이끄는 UN무기사찰단은 이라크 전역에 대한 무기사찰활동을 재개하였으나 대량살상무기에 관한 어떠한 증거도 발견하지 못했고, 한스 블릭스 단장은 오히려 알 사무드2 미사일 폐기는 실질적인 무장해제 조치라고 평가했다. 대량살상무기를 통한 위협을 이라크 침공의 이유로 줄기차게 주장해왔던 피고인 조지 부시는 이러한 결과에 직면한 후 곧바로 “우리의 안보가 관련되었을 때 행동할 필요가 있다면 그렇게 할 것이다. 그렇게 하는 데는 UN의 승인이 필요 없다”고 선언하였고, 이후 2003. 3. 17. 20:00(미국현지시간) 대이라크 최후통첩을 한 후 2003. 3. 20. 이라크를 무력으로 침공한 것이다.


또한 현재까지 어떠한 대량살상무기도 이라크에서 발견된 바 없다. 2004. 9. 30. 이라크서베이그룹최종보고서(Iraq Survey Group Final Report, 이른바 “듀얼퍼 보고서”)에서는 피고인 조지 부시, 피고인 토니 블레어가 2003. 3. 20. 이라크 침공의 명분으로 삼았던 사담 후세인 정권의 대량살상무기 보유 사실이 허위임을 명백히 보여주었다. 이러한 점은 2003. 5. 미국의 종전 선언 이후 8개월간 대량살상무기 색출을 총지휘하던 데이비드 케이 이라크 조사단 단장은 그 직을 사임하고 2004. 1. 28. 상원군사위원회에 출석하여 이라크 대량살상무기 정보와 관련하여 “나를 포함해 우리가 전적으로 틀렸던 것 같다”고 하는 한편 “이라크 서베이 그룹이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은닉여부를 철저히 조사했으나, 대량이던 소량이던 군사용으로 배치된 화학무기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증언하였던 점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또한 침공 전인 2003. 3. 7. 이라크 무기 사찰을 실행한 UN무기사찰단 한스 블릭스 단장이 “이라크에서 생화학무기를 생산․저장하는 지하시설이나 이동식 시설에서 어떠한 증거도 확보하기 못했다. 이라크의 알 사무드2 미사일 폐기는 실질적인 무장해제 조치”라고 밝혔던 사실에서도 이미 확인되었던 것이다. 그 전에도 사담 후세인이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진술은 여러 사람들에 의하여 확인되고 있었다. 이들을 종합하면, 오히려 미국과 영국은 이른바 911테러를 계기로 하여 대테러전쟁을 수행한다는 명목으로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 사담 후세인이 그들에게 어떤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자신의 대중동정책을 관철하기 위한 방편으로 UN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도 얻지 아니한 상태에서 이라크에 대한 일방적으로 무력침공을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기만적인 미국과 영국의 2003. 3. 20. 이라크 침공은 UN안전보장이사회의 2003. 5. 22.자 결의 제1483호, 2003. 10. 16.자 결의 제1511호, 2004. 6. 8.자 결의 제1546호에 의하여도 정당화되지 않는다. 결의 제1483호는 UN의 대이라크 제재 해제와 미국이 이라크를 점령하고 있는 현실을 인정한데 불과한 것이고, 결의 제1511호는 통합된 지휘권 아래의 다국적군에 대해 이라크 안보와 안정 회복을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승인한데 불과하며, 결의 제1546호는 2004. 6. 30.까지 권력을 이양, 2005년 민주주의 선거로 나아갈 이라크 임시정부의 주권을 승인, 점령을 종식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을 뿐이다. 이들 결의는 미영연합군이 이라크 내 주둔하고 있다는 현실을 인정하는데 그칠 뿐 나아가 전쟁 자체에 관한 내용, 즉 전쟁의 원인이나 그 책임, 종전 등에 관한 내용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이들 결의를 이유로 미영연합군의 2003. 3. 20. 이라크 침공은 정당화될 수 없다.


따라서 미영연합군이 2003. 3. 20. 이라크를 침공한 행위는 UN헌장상의 집단안보체제에 위반한 무력행사다.


        (2) 미영연합군의 2003. 3. 20. 이라크 침공은 자위권 발동이 아니다.


위에서 본대로 UN헌장은 자위권 발동요건으로 UN회원국에 대한 무력공격이 발생할 것으로 요구한다. 그러나 미영연합군의 2003. 3. 20. 이라크 침공 당시 이라크가 미국, 영국에 대하여 무력 공격을 가하지 않았음을 명백하다. 피고인 조지 부시, 피고인 토니 블레어는 이라크 침공 전 이라크 대통령 사담 후세인이 대량살상무기로 공격해 올 수 있다고 공공연히 주장해 왔지만, UN헌장 제51조의 ‘무력공격 발생’요건을 아무리 넓게 해석한다고 해도 2003. 3. 20. 이라크 침공은 그 개념에 도저히 포섭되지 않는다.


더구나 이라크의 군사력은 지난 걸프전 이전과 비교하여 약 40%의 상태에 지나지 않고 경제력 또한 지난 12년 동안 계속되어 온 경제제재로 도저히 다른 나라를 침공할 수 없는 최저상황에 있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일반적인 평가였다. 이런 상태에서 미국과 영국은 임박한 이라크의 무력침공을 예상하여 선제적 공격을 하였다는 것인바, 결단코 자위권 행사로 볼 수 없다. 즉, 미국과 영국은 대 테러 전쟁의 연장선에서 이라크 침공을 이야기하지만 ① 이라크는 어느 국가의 영토도 먼저 침해한 바가 없고, ② 사담 후세인이 알 카에다를 지원했다는 증거도 없는바, 2003. 3. 20. 이라크 침공은 자위권의 발동으로 볼 수 없다.


따라서 미영연합군이 2003. 3. 20. 이라크를 침공한 것은 UN헌장에서 정한 자위권 발동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 무력행사에 지나지 않는다.


다.     인도적 개입의 허구성


UN헌장체제 아래에서도 미국 법학자들을 중심으로 인도적 개입 이론이 흘러나오고 있다. 한 국가가 다른 국가에 속한 국민의 중대한 인권침해로부터 그 국민의 생명과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해당 국가를 상대로 무력행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고, 그에는 해당 국가의 동의 없이 또는 그 의사에 반하여 행할 수 있다는 이론이나, 이는 UN헌장에도 배치될뿐더러 국제관습법상으로도 인정되지 않는 것이다. 미국의 법학자들이 지지하는 인도적 개입 이론은 일방적 패권주의을 추구하여 왔던 미국의 외교정책을 합리화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더구나 이러한 인도적 개입은 2003. 3. 20. 당시 적극적으로 주장되지도 아니한 침공의 이유다. 즉, 피고인 조지 부시는 처음에는 테러와의 전쟁을, 이어 대량살상무기의 존재와 그 위협을, 끝으로 이라크와 그 국민의 해방을 언급했으나, 2003. 3. 20. 이라크 침공에 인도적 개입이 이유가 되었다고 볼 근거가 전혀 될 수 없다. 이는 2003. 3. 18. 미국 백악관 대변인 애리 플라이셔는 “(사담 후세인이 망명길에 나서더라도) 대량살상무기를 찾아내기 위해 이라크로 들어갈 것”이라고 발표한 데서도 확인된다.


따라서 미영연합군의 2003. 3. 20. 이라크 침공은 인도적 개입이라는 허구적인 이론으로 정당화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설혹 인도적 개입을 국제법의 한 이론으로 받아들인다고 해도 이번 침공의 이유에 해당하지도 않으므로 이를 근거로 침략범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3.      기만적인 미영연합군의 이라크 민정이양의 허구성


피고인 조지 부시의 종전 선언(2003. 5. 1.)과 형식적이고 기만적인 민정이양(2004. 6. 28.)에도 불구하고 현재 이라크에서는 2003. 3. 20. 미영연합군의 대규모 공습으로 시작된 침략 전쟁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


미영연합군의 2003. 3. 20. 이라크 침공 이후 피고인 조지 부시는 2003. 5. 1. 종전을 선언했다. 그리고 곧 연합군 임시행정처(CPA)라는 군정 체제를 세우고 폴 브리머(L. Paul Bremer)를 최고행정관으로 임명하여 이라크를 점령하고 있다. 연합군 임시행정처는 2004. 6. 28. 이라크 임시정부에 민정이양을 하였다.


위 민정이양은 미국과 영국이 거의 아무런 권한 없는 친미 임시정부를 구성하도록 하고 미영연합군의 점령을 정당화하려고 하는 위선에 불과하다. 민정이양 후 연합군 임시행정처는 해체되었지만, 미국과 영국은 여전히 대사관과 다국적군, 다국적자본을 통해 이라크를 지배하고 있고, 자신의 입맛대로 이라크를 길들여 가고 있는 것이다. 즉 민정이양은 미국과 영국의 계속된 정치적․경제적․군사적 지배의 형식을 은닉, 은폐하고, 그를 통해 침략범죄의 혐의를 희석시키려는 의도에 불과하며, 그를 통한 이라크에서의 불법적인 자원 수탈을 합법화하려는 기만적인 술책에 지나지 않는다. 이점은 아래에서 보는 사실들로부터 확인된다.


가.     미국은 이라크 주재 미국대사관을 통해 실질적인 주권을 행사하고 있다.


미국은 대사급 고위 관료 4명을 포함해 외교관만 1,000여명을 두고, 이라크인 직원도 700여명을 두는 등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대사관을 이라크에 두고 있다. 또한 바그다드 외에 모술, 키르쿠크, 힐라, 바스라 등 4개 도시에 대사관 지부를 설치했다. 이라크 주재 미국대사관의 1년 예산은 약 10억달러(약 1조 2,000억원)에 이른다. 이러한 사실은 비록 이라크 임시정부로 민정이양이 이루어지더라도 미국이 이라크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이라크의 실질적 주권을 계속적으로 행사하겠다는 의지의 표출이라도 할 수 있고, 결국 민정이양이 갖는 기만적 성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나.     임시정부는 괴뢰정부에 불과하다.


민정이양을 받은 임시정부는 과도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총선관리 및 일부 치안관리만을 할 수 있다. 임시정부에는 조약을 체결할 권한 및 새 법령을 제정할 권한이 없고 심지어 연합군 임시행정처가 만든 법령에 대한 개정권조자 없다. 존 네그로폰테 이라크 주재 미국대사는 2004. 4. 27. 미국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주권이양 후에도 이라크군은 다국적군의 지휘를 계속 받을 것”이고 “새로운 법률을 제정하는 것과 같은 임무는 임시정부에서는 제한되어야 하며”, “우리는 민정이양 후에도 치안과 재정 문제에서 더 많은 권한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폴 브리머 최고행정관에게 강조했다”고 밝혀 이 점을 분명히 했다. 


더구나 임시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대부분이 2003. 3. 20. 이라크 침공 이전부터 미국에 협력하였거나 과도통치위원들로 일하던 자들인바, 이들은 이라크 국민들로부터 전혀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이라크 국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없고 이라크를 통치할 수도 없다. 태생적 한계를 잘 인식하고 있는 그들은 더욱 미국과 점령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꼭두각시에 불과하다.


다.     미국은 다국적군을 통해 군사적 점령을 계속하고 있다.


미국 국무장관 콜린 파월은 2004. 6. 4. “이라크와는 파트너 관계이지만, 미국은 이라크에 미군 활동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주지는 않을 것”이고, “13만 8,000명의 미군은 미군 사령부의 지휘 하에 있다”고 밝혔다. 이라크를 지배하고 있는 13만명의 미국 주도 연합군의 지위와 역할은 민정이양에도 불구하고 전혀 변하지 않을 것이고 지휘체계도 바뀌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 것이고, 결국 연합군 지휘 사령부 명칭만 연합합동사령부(CJTF7)에서 다국적군사령부(MNF)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이라크 치안 병력은 약 90,000의 경찰과 25,000명의 방위군, 6,000명의 국경수비대, 70,000명의 시설보호군 등 약 19만명으로 구성되지만, 대부분 훈련부족과 장비부족을 겪고 있다. 실제 이라크 경찰 90,000명 중 약 70%는 훈련을 받지 않은 상태다. 따라서 군수권은 물론 제한되나마 임시정부가 갖고 있는 치안권 마저도 철저히 미영연합군의 통제 아래 있는 것이다.


그 결과 미국은 2004. 11. 대선이 피고인 조지 부시의 승리로 끝나자마자 2004. 11. 7. 임시정부로 하여금 북부 쿠르드 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이라크 전역에 60일간 비상사태(State of Emergency)를 선포하도록 하였고, 임시정부의 요식적인 동의 절차를 거쳐 제2차 팔루자 학살을 감행하였다.


라.     미영연합군은 점령 상태를 이용하여 이라크에 대한 효과적 자원수탈의 기반 마련하였다.


미국은 연합군 임시행정처의 군정상태를 이용하여 이라크의 경제관련 법령을 미국 관련 기업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도록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연합군 임시행정처 최고행정관 폴 브리머는 여러 군정법령을 제정했던바, 군정법령 제39호는 이라크 정부 소유로 있던 물․전기 공급업, 학교․병원․방송국․신문사․교도소 등 200여개 회사들을 사유화하고, 석유 및 광물 채취, 은행과 보험 분야를 제외한 모든 분야 사업에 관하여 100% 외국인 소유를 허용하고, 모든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이라크 내국인 투자자들과 비교해 어떠한 부가적 조건 없이 투자할 수 있도록 하고, 외국인투자자들이 얻은 이윤은 이라크 내에서 국외 어느 곳으로도 송금할 수 있도록 하는 동시에 이라크 재투자내지 재건에 사용할 의무를 부과하지 않고, 계약은 한번 체결되면 40년동안 효력이 있고 무제한 갱신을 허용하고 있다. 군정법령 제40호는 국가가 주도하던 이라크 금융시스템을 시장중심 금융시스템으로 하루아침에 바꾸었고, 외국은행이 이라크 은행 주식을 50%까지 소유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등 이라크 금융을 철저히 외국금융회사에 종속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했다. 군정법령 제37호는 소득 정도에 관계없이 소득세율을 일률적으로 15%로 정해 고소득자 특히 기업에 대한 엄청난 세제상 특혜를 주었고, 군정법령 제12호는 이라크에 들어오고 나가는 모든 재화에 대한 관세, 수입세, 각종 인허가세 및 유사 세금과 규제를 금지하여 외국자본의 침투를 용이하게 해 두었다.


한편, UN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제1546호 제27조에 의해 일부 석유회사들은 임시행정처로부터 부여받은 특권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는바, 특히 이라크 임시정부가 미국으로부터 석유에 관한 통제권을 이양받은 이후에 체결되는 모든 계약에서는 특권이 인정되지 않는 반면 2003. 미국이 부여한 특권은 계속될 것이라는 점이 명시되어 있다. 이는 이라크 주권 이양이 있어도 미국에게 여전히 석유를 강탈당하고 있는 점을 보여준다.


마.     미영연합군은 이라크 내 다양한 민족, 종파 간 갈등을 이용한 분열정책을 사용하여 그 지배를 용이하게 하고 있다.


이라크 내 다양한 민족과 종파간의 갈등은 임시정부 내에서 권력다툼으로 계속되고, 미국은 이를 적절히 분배하며 이라크에 대한 지배력,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은 이라크 전체 인구 2,500만명의 20 ~ 25%를 차지하고 있는 쿠르드족의 자치 열망을 이용하고, 55 ~ 60%를 차지하며 소수 수니파에 의해 지배받아온 시아파의 불만을 이용하여 이라크 지배를 용이하게 하려고 했다. 이점은 임시헌법에서 3개주 이상의 주에서 주민 2/3 이상이 제헌헌법을 반대하는 경우 이를 수정할 수 있도록 한 조항에서 그 의도가 잘 나타났다.


바.     따라서 미영연합군이 2004. 6. 28. 이라크 임시정부에 민정이양을 하였다고 하여도 2003. 3. 20. 침공 이래 진행되고 있는 전쟁상태에는 변함이 없고, 위와 같은 기만적인 민정이양만으로 침략범죄로서의 성격이 치유되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피고인 조지 부시, 피고인 토니 블레어는 각 자국 군대를 통할하는 지위에 있는 자로서 이라크의 주권, 영토권, 정치적 독립 내지 이라크 국민의 불가침의 인권을 침해하도록 할 목적으로 자국 군대로 하여금 이라크에 대하여 UN헌장에 위반하는 무력행사를 하도록 하여 이라크 인민의 자결, 자유 및 독립을 탈취하는 등 이라크전범국제민중법정헌장 제3조 제1항에 위반하는 침략범죄 행위를 하도록 한 것이다.



Ⅵ.    집단학살, 반인도적 범죄 그리고 전쟁범죄


미영연합군은 2003. 3. 20. 이라크에 대한 대규모 공습을 통한 침공을 개시한 이래 이라크 군대, 저항세력 뿐만 아니라 이라크 민간인들을 향하여 무차별적인 공습, 폭격, 포격, 사격을 가하고 있다. 이러한 미영연합군의 공격으로 2004. 11. 9. 현재 이라크 민간인은 적어도 14,533명 이상 사망하였다. 그 잔악함을 더하는 건물옥상에서의 저격수에 의한 무차별 공격, 검문소에서의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공격, 일부지역에 대한 무력 봉쇄 공격 등은 이라크 민간인들에게 말 그대로 충격과 공포를 야기하기에 충분하였다.


미영연합군은 개전 이래 일반적인 폭탄뿐만 아니라 이른바 집속탄이라고 불리는 대규모 살상무기인 클러스터 폭탄을 인구밀집지역에 의도적으로 대량 사용하였는바, 그 폭발로 인한 이라크 민간인 살상뿐만 아니라 불발탄으로 남은 것들로 인하여 수없이 많은 이라크 아동들과 민간인들이 사망하거나 신체의 중요부위가 절단되거나 심각한 부상을 입는 등 끔찍한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한편, 그 위험성을 이미 1991년 제1차 걸프전을 통해 충분히 그리고 깊이 있게 인식하고 있는 미영연합군은 보스니아, 코소보 전쟁을 지나 이번 이라크 침공 과정에서도 열화우라늄탄을 광범위하게 사용하였다. 방사능으로 인한 지속적인 피해는 비록 제1차 걸프전을 통해 참전한 군인들의 후유증으로 확인되었으나, 그 직접적이고 지속적인 피해는 결국 이라크 민중의 몫이었고, 다시 한번 막대한 물량의 열화우라늄탄을 사용한 이번 이라크 침공으로 이라크 민중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세대를 이어가며 전쟁의 참상을 자신의 몸에 새겨 두어야 하는 비극을 겪고 있다.


1991년 제1차 걸프전이 주로 사막 지대에서 이루어 진 것과는 달리 미영연합군의 이번 침략전쟁은 주로 도시, 마을 등 인구밀집지역을 중심으로 수행되었고, 그 과정에서 군사목표물이 아닌 전력시설, 병원, 학교, 방송국, 호텔, 상하수도 시설, 심지어 이슬람 문화의 상징인 모스크 등 민간 대상물을 목표로 한 광범위하고도 고의적인 공격이 있었다. 이와 같은 공격으로 이라크 사회기간시설은 철저히 파괴되었고, 미국과 영국은 이라크 저항세력과 이라크 민간인들을 이간질하기 위해 파괴된 시설에 대한 복구를 의도적으로 지연하여 지속적으로 이라크 민간인들에 대한 피해를 가중시키고 있다.


미영연합군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3대 습지대 중의 하나인 메소포타미안 습지대의 파괴를 비롯하여 심각한 환경파괴행위를 진행하고 있고, 세계 4대 문명 중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유적과 유물은 무차별적인 공습과 폭격으로 파괴하고, 또 약탈하고 있다.


미영연합군은 저항세력 색출이라는 명목으로 이라크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적이고 광범위한 불법 체포, 감금을 하였고, 그에 따라 수용소에 수용된 이라크인들에 대하여 차마 상상하기 어려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가혹행위와 고문, 성폭행을 자행하여 전 인류에 충격을 안겨 주었다.


미영연합군은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린 후에도 이라크에 계속 주둔, 점령하였고,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재편 및 안정적인 석유공급 확보라는 검은 의도를 여실히 드러내었던바, 이에 방해되는 전국적인 반미 무장봉기를 잠재우기 위하여 수니삼각지대에 위치한 작은 도시 팔루자를 희생물로 삼아 2004. 4. 및 2004. 11. 두 차례에 걸쳐 대규모 학살을 감행하였다. 학살이 진행되는 동안 죽은 사람에 관한 상황조차도 제대로 파악 되지 않고 있고, 학살을 피해 피난길에 오른 사람들은 미영연합군의 봉쇄로 사막에 고립되어 헤아릴 수 없는 피해를 입었다.


아래서는 피고인 조지 부시, 피고인 토니 블레어의 공모, 명령, 교사, 방조 속에서 자행된 미영연합군의 이라크 민간인과 이라크의 정신적, 문화적 유산과 이라크의 환경에 대한 잔악한 범죄 행위와 그러한 행위가 이라크전범국제민중법정헌장에 어떻게 위반되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보기로 한다.



1.      사망자 수조차 집계되지 않는 이라크 민간인에 대한 범죄행위


미영연합군은 2003. 3. 20. 이라크에 대한 대규모 공중 폭격을 가하며 이라크 침공을 개시했다. 전쟁 초기 ‘충격과 공포’라는 전략 아래 진행된 미영연합군의 무차별 공중폭격 및 지상군 공격은 도시, 마을, 촌락 등 인구밀집지역에 집중되면서 심각한 민간인 피해를 야기했고, 이라크 점령 이후에도 미영연합군은 저항세력을 소탕한다는 명목으로 팔루자를 비롯한 이라크의 전 지역에서 아직도 군사작전을 펼치고 있다.


미영연합군의 이라크에 대한 공격이 개시된 2003. 3. 20.부터 2004. 11. 9.까지 민간인 사망자수는 최소 14,533에서 최대 16,699명임이다. 그 중 2004. 9. 12.까지 이름이나 신원이 확인된 민간인 사망자 수만 3,029명이고, 나머지는 신원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위와 같이 집계된 사망자 외에도 이라크 침공이 시작된 2003. 3. 20. 이후 최소 10만명 이상이 숨지고, 2004. 4. 제1차 팔루자 학살과 2004. 11. 제2차 팔루자 학살의 결과를 반영하면 최소 20만명 이상 숨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더하여 사망하지는 않았으나 신체의 일부를 상실하는 등 심각한 신체적 상해를 입은 민간인의 수도 많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미군의 폭격이 집중된 팔루자 지역을 빼더라도 전후 이라크인 사망률은 전쟁전보다 1.5배 높아졌다. 그 주요 사인은, 전쟁 전에는 심장발작, 만성질환 등 질병이었으나, 전쟁 후에는 51%가 폭력과 관계되었고, 특히 폭력에 의한 사망사례 73건 중 84%인 61건이 미군의 책임에 의한 것으로 조사됐다. 주목할 것은 사망자의 대부분은 여성과 어린이였으며, 1살 미만의 유아가 사망한 경우도 14.8%인 21건이었다.


가.     민간인을 향한 무차별 공격


        (1) ‘충격과 공포’는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폭격으로 시작되었다.


1991년 제1차 걸프전은 사막지역을 중심으로 군사작전이 펼쳐졌다. 이에 비해 이번 2003. 3. 20. 개시된 이라크 침공은 이라크의 도시, 마을, 촌락 등 인구밀집지역을 중심으로 공중 폭격 및 지상군의 공격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2003. 3. 20. 미영연합군은 이라크에 대한 공중 폭격을 개시한 이후 침공 초기에 ‘충격과 공포’라는 전략 아래 크루즈 미사일 공격을 포함한 대규모 공중 공습 및 폭격을 가하였다. 항공모함 Truman의 2003. 3. 21.자 보고서는 지중해에 있던 핵 항공모함 2척과 걸프만에 있던 제5함대에서 수많은 전폭기들이 이륙하여, 위 ‘충격과 공포’ 전략을 수행한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 이러한 대규모 공습 및 무차별 폭격은 이라크 민간인 및 민간시설에 대한 극심한 피해를 초래했다.


미영연합군은 2003. 3. 23. 알 루트바에서 시리아 노동자 37명을 태운 채 이라크에서 시리아로 돌아가던 중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멈추어 있던 버스에 대한 공대지 미사일 폭격을 가했고, 그 폭격으로 버스에 타고 있던 승객 중 5명이 사망했고, 10명이 부상을 입었다. 같은 날 미영연합군은 카발라에도 공습을 가하였고, 그로 인하여 카발라의 시아파 이슬람 성지에 있던 민간인 10명이 사망했고, 32명이 부상을 입었다.


미군은 전폭기를 이용하여 2003. 3. 24. 알 아자미야 부근 바그다드 인구 밀집지역을 폭격했고, 이 폭격으로 민간인 5명이 사망했다. 같은 날 12:00경 미영연합군은 이라크 군이 주둔하고 있지 않고, 어떠한 무기도 없는 상태에 있던 바그다드 북부 아드히미야 지역에 크루즈 미사일 폭격을 가했고, 그 폭격으로 칼릴(Khalil)의 집이 파괴되고 칼릴(Khalil)의 아내인 움 아퀼과 그 며느리인 사할이 사망했으며, 칼릴의 아들 둘과 딸 하나는 부상을 입었다. 또한 미영연합군은 바그다드 외곽에 있는 농장에도 폭격을 하였고, 그 폭격으로 인하여 바그다드 시에서 그곳으로 피난을 와 있던 피난민 가족 중 파테하(Fatehah, 8세)가 사망했고, 나머지 가족들은 부상을 입었다.


미군은 2003. 3. 26. 바그다드에서 폭격기를 이용하여 차량과 민간인들이 모여 있는 바그다드 시내의 아부 탈렙(Abu Taleb)거리를 미사일 2발로 폭격했다. 그 중 미사일 한발은 아부 탈렙 거리 북부에 떨어졌다. 이 폭격으로 위 거리에 있던 나세르 식당에서 손님을 위해 점심식사를 준비하던 아부 하산(48세)과 말렉 하무드(18세)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정도로 산산 조각이 나 사망했다. 또 아부 탑렐 거리에 있던 자동차 15대 이상이 화염에 휩싸였고, 그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 상당수가 불에 타 사망했다. 미사일 공격으로 불길에 휩싸인 채 뒤집어져 있는 자동차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미사일 공격으로 자동차 문을 필사적으로 떼어내려 했지만, 한 여성과 아이들 셋이 자동차 안에서 산 채로 화장되어 죽어가는 광경을 무기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한편, 다른 한발의 미사일은 동쪽으로 향하는 차도를 정확히 맞추었고, 금속 파편은 아파트 밖에 서 있던 세 사람을 덮쳤는데, 그 중 한 명인 타르는 그의 머리가 이미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시신이 갈갈이 찢겨졌다. 이 폭격으로 인하여 이라크 민간인 21명이 사망했다.


같은 날(2003. 3. 26. 17:30경) 미영연합군은 아파치 헬기를 이용하여 시리아에서 바그다드로 향하는 도로 위에 있던 버스 3대를 향해 미사일 공격을 가했다. 이 버스들은 민간인 승객들을 태우고 시리아에서 바그다드로 가던 중이었는데, 3대의 버스가 교차로에 가까이 갔을 무렵, 아파치 헬기에서 발사된 미사일이 선두에 가고 있던 버스 앞에서 터졌다. 버스가 곧바로 멈춰 몇몇 승객들은 탈출했으나, 16 ~ 17명의 승객은 미처 버스에서 탈출하지 못한 상태였고, 이 상태에서 다시 아파치 헬기는 미사일을 발사하여 버스를 정확히 명중시켰다. 두 번째 버스와 세 번째 버스는 첫 번째 버스가 급정차하는 바람에 이에 추돌했고, 첫 번째 버스의 폭파 파편에 맞아 파손되었다. 아파치 헬기는 부서진 버스위로 여전히 미사일 공격을 가하였고, 이로 인해 위 버스에 승차했던 민간인들이 부상을 당했다


미영연합군은 2003. 3. 28. 피고인 조지부시와 피고인 토니블레어가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사담후세인에 대항하여 민중봉기를 일으킬 것이라고 주장했던 바그다드의 노동자 거주 빈민촌인 슈알레(Shu'ale)에 미사일 공습을 가했고, 그로 인한 민간인 사상자는 수십 명에 달했다.


개전 초 미영연합군의 바그다드에 대한 무차별 공습이 있은 뒤, 알 누르 병원의 오사마 사크하리 의사는 최소한 어린이 15명을 포함하여 55명이 사망했고, 47명 이상이 부상당했다고 밝혔다. 하키 이스마일 마주키 의사는 이 병원에서 불과 300m 떨어진 민간인 거주 지역에 대한 공습이 있었고, 이 공습을 통한 학살이 있었던 곳에는 군사 목표물이 될 만한 것이 없다고 말했다. 로버트 피스크 기자(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 소속)는 2003. 3. 29.까지 위 병원에서 최소 62명이 사망했다고 밝히는 한편 당시 위 병원의 처참한 상황을 전했는데, 그는 “두 살짜리 여자아이 사이다 자파르의 코와 위에는 고무관이 꽂혀 있고, 온몸은 붕대로 감겨 있었다, 눈에 보이는 거라곤 그 아이의 이마와 조그만 두 눈과 턱뿐이었다, 그 애 옆에는 피와 파리로 뒤덮인 오래된 붕대와 면봉 무더기가 놓여 있었고 거기서 조금 떨어진 더러운 침대에는 세살짜리 모하메드 아마이드가 얼굴, 배, 손, 발을 붕대로 꽁꽁 싸맨 채 누워 있었다. 그 애가 누워 있는 침대 바닥에는 시커멓게 응고된 커다란 핏자국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 공습을 미영연합군은 이라크군의 대공 미사일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폭탄 투하 장소에서 100m 떨어진 곳에 사는 한 주민은 공습 당시 폭탄 투척으로 생긴 직경 2m의 구멍에서 미사일 파편을 발견했고, 그 미사일 파편에는 “일련 번호 30003-704ASB 7492, 로트 번호 MFR 96214 09(‘96214 09’는 토마호크 등 미사일 무기제조업체인 ‘Raytheon'의 제조업체 코드이다)”라고 적혀 있었다. 한편, 공습현장에서 발견된 폭탄 구멍의 크기는 상대적으로 작은 것과 대조적으로 유탄 부상의 정도는 매우 끔찍했고, 인명피해는 광범위했다. 미사일이 터지면서 금속 파편 더미가 사람들, 주로 여성과 아이들을 덮쳤고, 벽돌로 허술하게 지은 집의 벽을 뚫고 들어와 여성과 아이들의 사지와 머리를 잘라버렸다. 미사일 파편은 시장 맞은 편 큰길가 벽돌집 거실에 있던 세 형제(장남은 21세, 막내는 12세였다)의 몸을 베어냈고, 두 집 건너에 사는 자매 둘도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했다. 알 누르 병원의 마취 전문의인 아메드 박사는 “우리는 이런 부상자들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이 사람들은 수십 개의 금속 조각에 박혀 온 몸에 구멍이 났다”고 말했다. 한 노인은 다리와 엉덩이 뒤편에 24개의 구멍이 뚫렸고, 그 중엔 동전 크기만 한 구멍도 있었다. 엑스레이 사진을 찍은 결과 그의 몸에는 최소한 탄피 35개가 박혀 있었다.


이러한 미영연합군의 행위는 이라크 민간인 및 적대행위에 직접 참여하지 아니한 이라크 민간인 개인에 대하여 고의적으로 공격하여 살해한 것으로 이라크전범국제민중법정헌장 제3조 제4항 제1호 가.목, 제2호 가.목이 규정한 범죄에 해당한다.


        (2) 미영연합군은 검문검색 중의 공격, 조준 사격으로 이라크 민간인들을 살해했다.


미영연합군의 민간인에 대한 공격은 전폭기를 동원한 공격, 미사일 공격 등 무차별적인 공격과 이라크에 주둔하는 미영연합군들에 의하여 개별적, 특정 민간인들에 대하여 광범위하게 고의적으로 가한 공격으로 나뉜다.


이라크 주둔 미영연합군은 순찰이나 검문검색 과정에서 또 가택 수색 과정에서 공연히 이라크 민간인들을 구타하고 현금과 금품을 강탈 했으며 민간인을 목표물로 삼아 조준사격을 가하여 살해했다. 그 대상에는 심지어 어린이까지 포함된다. 또한 저항세력 소탕 명목으로 일정지역을 봉쇄하였고, 그 지역에 있는 민간인들을 저항세력으로 간주하여 무차별 살상하였다.


미국 제3보병사단은 2003. 3. 31. 16:30경 카발라 남쪽 40km에 위치해 있는 검문소에서 1974년산 랜드로버 차량이 검문소에 접근하는 것을 발견하였고, 경고사격 없이 바로 발포하였다. 이 발포로 인하여 위 차량에 탑승하고 있던 어린이와 여자를 포함한 바크핫 핫산(Bakhat Hassan)의 가족 11명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을 당했다. 핫산 가족은 미군 헬기에서 뿌린 전단지의 내용을 믿고 자신들의 마을을 떠나 나자프로 향하던 중이었는데, 위 검문소에 다다라 손을 흔들며 검문소를 향해 가던 중 공격을 받았고 그 결과 이러한 참혹한 일을 당한 것이다. 미군의 공격으로 핫산의 눈앞에서 2살과 5살 된 두 딸의 목이 잘려 나갔고 3살 된 아들 1명, 핫산의 부모와 두 형, 그 형들의 아내, 12살과 15살 된 조카딸 2명 모두 11명이 사망했다. 핫산은 직전에 지나쳐온 검문소에서 검문소를 지키던 미군에게 손을 흔들고 미군의 화답을 받았던 것처럼 위 검문소 앞에서도 차량에서 손을 흔들며 검문소를 향해 가고 있었으나 돌아온 것은 조준사격에 의한 가족의 참살이었다. 사고 발생 직후 미군 의무병은 자신들의 실수이며 미안하다고 사과하기도 했다.


미국 해병대원들은 2003. 4. 1. 샤트라 남쪽 마을 근처의 검문소에서 철조망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트럭을 몰고 오던 한 남자를 향해 총을 쏴 살해했고, 위 공격으로 같은 트럭에 타고 있던 승객 1명은 팔과 다리에 부상을 입었다. 한편 같은 날 미국해병대원들은 남부 나시리아에서 심각한 인명손실을 겪은 후 미군에게 접근하는 모든 차량에 대하여 발포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후 미국 해병대원들의 총격으로 인하여 벌집이 된 15대의 차량과 인근 도로와 도랑에서 12명의 민간인 사망자가 발견됐다.


미국 해병대원들은 2003. 4. 4. 바그다드의 검문소에서 민간인 버스가 제지 명령에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위 민간인 버스를 향해 총격을 가하여 어린아이 3명과 그 어머니, 할아버지 등 일가족 5명이 살해했다. 그 일시경 다른 차량에 대하여도 총격을 가하여 4명의 민간인을 살해했다.


미군은 2003. 4. 11. 나시리아의 검문소 앞에서 민간인 차량을 향해 발포하여 어린이 2명을 살해하고, 민간인 7명에게 부상을 입혔고, 그 무렵 바그다드의 검문소에서 민간인 차량을 향해 총격을 가하여 민간인 3명을 살해하였으며, 에이브러엄 탱크를 이용하여 바그다드 남쪽 교외 간선도로를 달리고 있던 민간인 차량에 총격을 가하였다.


미영연합군은 2003. 9. 바스라의 한 호텔에서 이라크인 9명을 체포했고, 그들을 모두 땅에 엎드리게 한 뒤 머리 등을 군화발로 마구 짓밟으며 영장 없이 현금을 압수하는 등 이라크를 점령한 이래 2004. 5. 중순경까지 24건의 이라크 민간인 폭행, 현금 내지 금품 절취사건이 보고 되었다. 이중 18건은 절도 및 약탈 사건이고 6건은 폭행사건이었다. 위 사건들은 검문검색 및 가택수색 중 저항세력에 지원되는 금품을 압수한다는 명목으로 자행되었고, 일부 병사는 위 과정에서 민간인을 폭행하고, 구타했으며, 총기를 발사하는 등 위협을 가했다. 위 수치는 미 육군 범죄수사국에서 조사된 것으로 이라크 민간인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인 미군에게 보고하지 못하여 조사되지 않은 범죄는 애초부터 제외된 것이다.


영국 킹스 연대 1대대 소속 병사는 2003. 8. 21. 카르마트 알리에서 명확한 위협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의 8세 소녀 하난 살레 마트루드를 55m거리에서 정조준하여 사살하였다. 당시 하난은 세 친구와 놀고 있었고 영국군의 장갑차가 집 쪽으로 다가오자 친구들과 함께 근처로 갔다가 복부에 총을 맞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틀 후 사망했다. 이 사건은 국제사면위원회(AI)에 의하여 2004. 2월과 3월 총격 희생자의 가족들과 목격자, 이라크 경찰 연합군 임시행정처(CPA) 관리들에 대한 사고경위 등 조사 후 2004. 5. 11. 발표되었다.


이와 같은 미영연합군의 행위는 이라크 민간인에 대하여 의도적으로 광범위하고 체계적인 공격의 일부로 행해진 살해, 불법 체포․구금․약탈이므로 이라크전범국제민중법정헌장 제3조 제3항 1호, 5호, 제4항 1호 가.목, 다.목, 라.목, 2호 가.목이 규정한 범죄에 해당한다.


        (3) 나자프, 알 사드르에 대한 봉쇄공격, 민간인 학살


한편, 미군은 2004. 8. 5. 마흐디군과 사이에 맺은 2004. 6. 5.자 휴전협상이 종료되었음을 선포하고, 같은 달. 10. 나자프 주민들에게 대피령을 내린 후 헬기와 탱크를 이용하여 나자프를 초토화시키기 위한 군사작전을 개시했다. 같은 달 12일부터 미군은 탱크, 장갑차, 아파치헬기, 전투기를 이용하여 총공세를 가하기 시작하였고, 그로부터 3주간에 걸쳐 나자프를 완전 봉쇄했다. 나자프 안에 있던 기자들을 모두 철수시킨 후 밤에는 전투기를 이용한 공습을, 낮에는 나자프 시내 안으로 진군하면서 주위의 이라크 인들을 모두 적으로 간주하고 사살하였다. 미군은 계속 포위망을 좁혀가면서 저항세력들 중 무장그룹들을 이맘 알리 모스크 쪽으로 몰아갔고 이라크 보안군을 이용하여 이맘 알리 사원내로 진입하기도 하였지만 저항세력들은 이미 사원을 비우고 일반 민가로 흡수된 상태였다. 미군은 엄청난 화력으로 나자프를 봉쇄한 채 지속적인 학살을 자행했다. 그러나 학살이 진행될수록 이라크 전역의 저항세력의 항쟁은 거세졌고 시아파, 수니파 구별 없이 대다수의 이라크 인들은 미군의 나자프, 알 사드르 학살에 항의하며 거리로 뛰어나가 학살 중단, 미군 철수를 외치면서 시위를 하였다. 계속되는 여론 악화로 인하여 미군과 이라크 임시정부는 시아파 내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알 시스타니를 영국으로 불러와 협상을 재개했고, 협상이 타결되자 수백 명의 이라크 민간인들을 학살한 미군은 슬그머니 군대를 나자프에서 빼냈다.


미군은 2004. 8.경 나자프 공격을 시작함과 동시에 알 사드르 시에 대해서도 똑같이 군사작전을 개시하였다. 8월 초 2주 동안 미군은 탱크와 장갑차를 이용하여 도시를 봉쇄했고, 도시 내부를 폭격했다. 이라크 임시정부의 국방장관의 기자회견이 있은 후에는 헬기와 전투기를 동원하여 주, 야간으로 공습하였고, 그 때부터는 집 밖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을 조준 사격, 사살했다. 학살 전에는 하루에 4 ~ 5시간 정도 공급되던 전기와 물도 완전히 차단하였다. 미군은 도시를 탱크로 에워쌈과 동시에 특정 지역 내에 일정한 zone을 만들어 그 지역 내에 주둔하면서 움직이는 것들에 대하여 무차별 사격을 하였고, 집 안으로 들어가서 젊은이들은 불법 체포, 구금하였고 이에 저항하는 경우 무조건 저항세력으로 간주하여 사살하였다. 한 지역의 작전이 끝나면 다른 지역으로 움직이면서 작전을 수행하였다. 알 사드르 시 내부의 2개의 병원은 환자로 가득 차 있는 상태였다. 총상을 당해도 밖으로 나가서 죽는 것보다는 집안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죽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부상당한 이라크 민간인들은 그냥 집안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죽어갔다. 이 학살은 2004. 8. 새롭게 시작된 것이 아니라 개전 이후 1년여 동안 알 사드르 지역 사람들이 몰타다 알 사드르를 신뢰하고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동안의 지속적인 탄압 수위를 높인 결과였다.


이러한 미영연합군의 행위는 (앞서 본 이라크 민간인에 대한 개별적인 공격행위와는 전혀 성격을 달리하는 집단학살을 전제로 한 것으로) 나자프 및 알 사드르 지역을 봉쇄한 채 위 지역에 거주하는 이라크인들에 대하여 의도적으로 광범위하고 무차별적이며 체계적인 공습과 폭격, 조준사격 등을 통해 살해하고 중대한 신체적, 정신적 위해를 야기한 것이고, 불특정 이라크 민간인들에 대하여 고의적인 조준사격 등을 통해 살해하거나 신체 또는 건강에 심각한 고통이나 중대한 위해를 야기한 것이며, 군사목표물이 아닌 위 지역의 거주지 또는 건물에 대한 공격이나 폭격을 가한 것이고, 피점령지인 이라크 내 위 지역들에서 주민들을 다른 지역으로 강제로 이주토록 한 것이므로 이라크전범국제민중법정헌장 제3조 제2항 1호 내지 3호, 제3항 1호, 4호, 5호, 제4항 1호 가.목, 다.목, 2호 가.목, 다.목, 라.목, 사.목이 규정한 범죄에 해당한다.


나.     미영연합군은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면서, 오히려 반대로 미영연합군이 대량살상무기를 이용하여 이라크 민간인들을 공격하였다.


        (1) 미영연합군은 제네바협약으로 금지된 대량살상무기인 클러스터 폭탄을 사용하여 이라크 민간인과 어린이들을 공격했다.


클러스터 폭탄이란 흔히 집속탄이라고도 불린다. 깡통모양의 모(母)폭탄 내에 작은 음료수 캔 크기의 자(子)폭탄이 202개에서 700개까지 들어있어 모자(母子)폭탄이라고도 불린다. 그 작동원리는 시한장치에 의해 모폭탄을 목표 상공에서 폭발시키면 그 속에 있던 자폭탄이 쏟아져 나오고 각각의 자폭탄은 다시 폭발하면서 약 300여개의 톱니 모양의 강철 파편을 주위에 흩뿌리는데, 이 파편들은 콘크리트 벽에 구멍을 낼 정도로 높은 살상력을 지니고 있고 사람들의 목과 팔다리를 절단시켜 죽음이나 치명적인 부상에 이르게 한다. 클러스터 폭탄의 살상 반경은 100미터 정도로 애초부터 민간인과 전투원을 구별하여 공격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무차별적인 살상무기이다. 즉 살상반경 안에 있는 살아있는 생물체라면 그것이 사람이든 동물이든, 어른이든 아이이든, 남자이든 여자이든, 민간인이든 전투원이든 가리지 않고 살상하는 것을 목적으로 제작된 무기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클러스터 폭탄에는 민간인과 전투원을 구별하지 않는 무차별적 공격성에 더하여 또 하나의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 클러스터 폭탄의 자(子)폭탄 중 최소 5%에서 최대 30% 정도가 최초의 충격으로 터지지 않고 불발탄이 된다는 점이 그것이다. 아이들은 노란색의 음료수 캔처럼 생긴 폭탄을 장난감이나 구호식량인 것으로 알고 만지다가 폭탄이 터져 죽거나 다치고 있다.


2003. 4. 25. 미국 합창의장인 리처드 마이어스(Richard Myers)장군은 “이라크에서 연합군이 사용한 클러스터 폭탄은 약 1,500발이다, 그로 인해 희생된 민간인 피해자는 단 한명에 불과하다, 모든 사용된 클러스터 폭탄과 목표물에 대해 조사해 본 결과로는 1,500발 중 단 26발만이 민간인 지역 1,500피트 내에 떨어졌을 뿐이다, 즉 이제까지 클러스터 폭탄으로 인한 부수적인 피해는 단 한 건만 보고 되었다”고 발표했다. 한편, 영국 국방부는 2003. 4. 24. 적어도 66발의 구형 BL-755 클러스터 폭탄을 사용하였음을 시인했다.


그러나 아래에서 보는 피해사례를 통해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미영연합군의 클러스터 폭탄 사용량에 대한 발표는 허구에 불과하고, 미영연합군은 금지된 클러스터 폭탄의 위험성을 인식하면서도 의도적으로 이를 대량 사용하여 수많은 민간인 피해 특히 어린이들에 대한 피해를 가했음을 알 수 있다.


○ 2003. 3. 23. 나시리아의 민간인 거주 지역에 클러스터 폭탄 3 ~ 4기가 떨어졌고, 그 폭발로  10명이 사망하고 200여명이 다쳤다. 같은 날 11:30경 미영연합군은 바스라 외곽 지대부터 민간인 주거지역까지 전폭기를 통해 클러스터 폭탄 등으로 무차별적인 공습을 가했고, 그로 인해 민간인 50명이 사망하였다.


○ 2003. 3. 29.부터 며칠동안 바빌론에 클러스터 폭탄을 이용한 공중폭격이 계속되었고, 그로 인하여 많은 아이들이 죽고 다쳤다. 아기의 몸은 절반으로 동강났고, 수의로 싸여져 마치 인형과 같은 아기의 작은 시체가 병원에서 실려 나갔으며, 10세쯤으로 보이는 소년의 시체가 길거리에 방치되어 있었다. 힐라 병원에는 고통으로 절규하는 아이들과 다친 사람들로 가득했다. 마제드 드제릴은 아내와 두 아이를 잃었다. 유일하게 생존한 그의 셋째 아이는 발을 잃었다. 다섯 살의 호다 카만 압베스는 다리에 폭탄을 맞았고, 마리암(10세)은 오른쪽 눈에 소형폭탄이 박혔고 위와 허벅지에 상처를 입었다. 마리암의 어린 여동생 호다(5세)는 오른쪽 귀 바로 위 머리에 깊은 구멍이 나는 부상을 당했다.


○ 2003. 4. 7. ~ 15. 바그다드 서남쪽 알 카르노크 부근에서 불발 클러스터 폭탄의 폭발 또는 공습으로 라시드 마지드, 마지드의 두 아들인 아르칸과 가산, 우다이 케드르가 사망했다. 위 알 카르노크는 올리브나무와 부겐빌레아 등 수풀이 우거진 조용한 도시이지만 현재 그 수풀과 가지 사이사이 약 100여개의 불발 클러스터 자(子)폭탄이 널려 있었다. 그 무렵(2003. 4. 11.) 바그다드 북부에서 불발 클러스터 자(子)폭탄을 아이들이 가지고 놀다가 폭탄이 폭발하여 어린이 2명이 사망하였다.


○ 2003. 4. 18. 이라크 소녀 1명은 음료수 캔 크기의 불발 클러스터 자(子)폭탄(M-42 "bomblet)을 집어서 미군 쪽으로 다가오다가 폭탄이 폭발하여 사망했다.


○ 2003. 4. 9. - 22. 바그다드 북부 가잘리야 구역에서 클러스터 폭탄이 폭발하여 민간인 21명 내지 26명이 사망했다.


○ 2003. 4. 19. 바그다드에서 M-42 클러스터 폭탄의 자(子)폭탄 폭발로 민간인 3명이 사망했다.


○ 2003. 4. 6. ~ 5. 3.  카발라에서 M-42 클러스터 폭탄의 자(子)폭탄이 폭발하여 민간인 3명이 사망했다.


○ 2003. 4.경 하난 유스피(당시 11세)는 양을 치던 중 들판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막대기로 찔러보다가 왼발을 잃었다. 그리고 알리마디 카툼(당시 12세)은 길에서 발견한 폭탄이 터져 왼쪽 어깨와 팔이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고, 당시 두 명의 친구와 사촌은 사망했다. 모하메드 사바(당시 13세)는 폭탄을 주워들다가 오른 손을 잃는 참혹한 부상을 당하였다.


○ 2003. 4.경 나시리아의 빈민지역에서 사는 할라 하산(당시 5세)과 동생 알리(2세)는 쓰레기 더미 속에서 공을 줍다가 앞마당에서 폭탄이 터져 각각 다리와 얼굴에 파편이 박히는 사고를 당했다.


○ 이라크 북부 키르쿠크에서는 종전 이후 한 주 동안 52명이 사망하고, 63명이 상해를 입었는데 그 피해자 대부분은 어린이들이었다. 종전 이후 2003. 5. 20.까지 평균 25명 정도의 민간인이 불발 클러스터 폭탄으로 상해를 입었다.


이처럼 클러스터 폭탄은 사람을 죽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더욱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사람들을 불구로 만든다. 또 그 피해는 공습이 중단된 이후에도 멈추지 않는다. 국제사면위원회(AI)는 직접적인 공습이 중단된 후에도 갓난아기에서부터 청소년에 이르는 아동들이 계속하여 불발탄에 의해 희생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클러스터 폭탄은 제네바협약에서도 이를 금지하고 있는 무차별적인 대량살상무기로서, 그 위험성을 인식하고 있는 미영연합군은 클러스터 폭탄을 고의적으로 이라크 전역에 사용한 행위는, 이라크 아동을 비롯한 민간인들을 고의로 살해하는 한편 과도한 상해나 불필요한 괴로움을 야기하는 성질을 가는 무기를 사용하여 이라크 민간인들의 신체 또는 건강에 심각한 고통 및 중대한 위해를 야기하고, 군사적 필요와 무관하게 군사적 목표물이 아닌 마을 촌락 주거지 또는 건물을 무차별적으로 폭격하여 파괴한 것이므로 이라크전범국제민중법정헌장 제3조 제4항 1호 가.목, 다.목, 라.목, 2호 가.목, 라.목, 더.목이 규정한 범죄에 해당한다.


        (2) 미영연합군은 이미 그 위험성이 널리 알려진 열화우라늄탄을 이라크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사용했다.


        (가) 열화우라늄탄은 값싸고 강력하지만, 인체와 환경에 치명적인 손상을 가한다.


        열화우라늄탄은 원자력 발전소를 운영하거나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원료를 얻기 위해 천연우라늄을 농축하는 과정에서 생긴 우라늄 찌꺼기로 만든 무기이다. 그 주성분은 우라늄238(99.79%), 우라늄235(0.2%)이다. 열화우라늄탄은 핵무기는 아니지만 핵분열성 물질인 우라늄235를 포함하고 있어 공격목표와 충돌하는 순간 인체에 해로운 방사능 먼지를 발산한다. 열화우라늄은 밀도가 납의 1.7배 정도의 고밀도여서 적은 크기의 발사체로도 적의 장갑차를 꿰뚫을 수 있는 강력한 강도를 갖고 있고, 가연성이 높아 탱크의 측면 등 단단한 물체를 타격하는 순간 곧바로 물체를 뚫고 들어가면서 자연적으로 불이 붙어 섭씨 6,000도의 고열로 타들어가게 된다. 열화우라늄은 가격이 매우 저렴하여 쉽게 구입하고 제조할 수 있다.


        열화우라늄탄은 1980년대 중반 미국이 대전차용 무기로 개발하였고, 1991년 걸프전에서 최초로 사용되어 이라크 전차 1,200여대를 파괴하는 전과를 올렸다. 이후 1994년 ~ 1995년 보스니아 전쟁, 1999년 코소보 전쟁 당시 세르비아 측의 장갑차와 전차 심지어 코소보 알바니아계 난민들에게까지 약 4만여발의 열화우라늄탄을 퍼붓기도 했다.


        극도로 밀도가 높은 열화우라늄탄은 쇠로 된 장갑차를 쉽게 관통하고, 충돌 순간 타들어가며 화재 순간 극히 미세한 방사능 독성 우라늄 산화 먼지 미립자를 배출한다. 이러한 미립자들은 바람을 타고 날아가 사람에 의하여 흡입되거나 섭취되고, 또 땅과 물, 바다에 침투한다.


        열화우라늄은 중금속으로서의 화학적 독성과 방사능 배출 때문에 인체에 흡입되거나 섭취되는 경우 인체 내부 장기에 해를 가한다. 우라늄 의학연구센터(the Uranium Medical Research Center)에 의하면 우라늄 오염의 독성과 방사능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으로 면역시스템을 약화시킬 수 있고, 폐렴, 감기, 심한 기침 같은 심각한 호흡기질환과 신장이나 위장병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고 되고 있으며, 인체에 흡입된 우라늄 분진은 백혈병을 포함한 다양한 질병을 일으킬 수 있다.


        열화우라늄탄의 위험성이 최초로 보고된 것은 1991년 제1차 걸프전에 참전한 미국, 영국, 캐나다 군인들 사이에 암과 백혈병, 저혈압, 기억상실 등을 비롯한 각종 질병이 나타나면서부터이다. 참전군인 뿐만 아니라 2세들에게서도 선천성 기형, 면역 결핍, 호르몬 이상, 감각기관 마비 등의 치명적인 장애가 나타났다. 미국의 참전군인 70만명 중 약 30만명이 이러한 증세를 보였고 미국 보훈처에서 장애등급 판정을 받은 참전군인만 18만 3천명에 이르러 전체 참전군인의 26%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사망자도 400명이 넘었다. 다만, 열화우라늄탄의 사용에 따라 인체에 미친 증상은 상당한 기간이 지난 후에야 드러난다.


        (나) 미국은 열화우라늄탄의 위험성을 충분히 그리고 깊이 있게 인식하고 있었다.


        미국은 열화우라늄탄이 질병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을 부인한다. 그러나 열화우라늄탄이 광범위하게 사용된 1991년 제1차 걸프전 이전에 나온 미국 국방부 내부 보고서는 열화우라늄을 사용한 무기의 방사능과 중금속이 인체 내부의 신장, 폐, 간의 손상을 일으킬 수 있고, 암 발생율을 증가시켰다고 경고하였다. 또 열화우라늄탄 사용과 관련된 미국 육군훈련지침서는 어떠한 열화우라늄에 오염된 장비나 지역에 75피트 이내로 접근하는 사람은 누구나 호흡기와 피부를 보호할 수 있는 방호복, 장갑 등의 안전장비를 착용하도록 요구하고 있고, 바람이 불어가는 방향에 따라 접근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한편, 미국은 네덜란드 정부에게 파병된 군대가 주둔하게 될 알-사마와(Al-Samawah) 근처에서는 열화우라늄탄을 사용하지 않았음을 보장하였다.


        이러한 제반 정황에 비추어 보면 미영연합군은 열화우라늄탄이 인체와 환경에 미치는 위험성에 관하여 이미 충분하고 또 깊이 있게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 열화우라늄탄이 야기하는 인체, 환경에 대한 침해


        1991년 제1차 걸프전에 참전한 미국 군인들은 만성피로, 비부발진, 탈모, 두통, 근육통, 관절염, 신경마비, 불면증, 우울증, 정신착란, 기억상실, 천식, 호흡장애, 위장질환, 심장질환, 생리이상 등의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이러한 고통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심각해지고 있고,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의 수가 늘어가고 있으며 그들의 2세에게도 선천성 기형, 면역결핍, 호르몬 이상, 감각기관 마비 등의 증상이 발견되고 있다.


        한편, 열화우라늄에 의하여 누구보다 큰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이라크 국민이다. 1998. 12.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열린 ‘걸프전(1991년)에서 미국, 영국에 의해 사용된 열화우라늄의 건강과 환경 영향에 관한 회의(Conference on Health and Environmental Consequences of Depleted Uranium used by U.S. and British forces in the 1991 Gulf War)'에서 발표된 내용에 따르면 1차 걸프전 때 이라크 남부지방에서 열화우라늄에 노출된 적이 있는 군인들 중 각종 암에 걸린 19세에서 50세 사이의 남성 1,425명을 조사한 결과 1991년에는 29명에 불과하던 암 환자가 1996년에는 327명으로 11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고, 또한 열화우라늄에 직접적으로 노출되지 않은 사람에 대한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를 보였으며 조사 대상 315명 중 1991년에 발병한 사람은 3명인 반면 1994년에는 76명으로 24배 증가하였다. 이러한 결과는 전쟁터에서 직접 열화우라늄에 노출된 전투원뿐만 아니라 민간인에게도 광범위하게 열화우라늄이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준다.


        한편, 열화우라늄탄은 탱크의 표면에 충돌하는 순간 높은 가연성으로 인하여 불이 붙게 되고 그 화재 순간 극히 미세한 방사능독성 우라늄 산화 먼지 미립자를 배출한다. 이러한 먼지들은 바람을 타고 날아가 땅과 물, 바다에 침투한다. 이러한 먼지들은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에도 대기와 지표면, 지표수에 그대로 잔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엔환경계회(UNEP)에 의하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전쟁에서 열화우라늄탄이 사용된 후 7년이 경과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기, 지표수에 열화우라늄 물질이 잔존한다는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이와 같이 잔존하는 열화우라늄 물질은 그 지역에 거주하는 민간인들과 생명체에 대하여 광범위한 피해를 가하는 것이다.


        이번 이라크 침공과정에서 열화우라늄탄이 집중 투하되었다고 보고된 바그다드 주변 네 곳의 방사능 수치는 정상치보다 1,000배 ~ 1,900배나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특히 미군이 주둔한 후세인 대통령 궁 근처의 방사능 수치는 통상에 비해 1,900배 높았다.


        (라) 그럼에도 미영연합군이 열화우라늄탄을 사용하는 이유


열화우라늄탄을 사용하는 군사기술적인 명분은 열화우라늄이 탱크와 같은 단단한 목표물을 타격할 때 파괴력이 높다고 하지만 과학기술적인 검토 결과로는 실제 기존의 텅스텐 대전차포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수준이거나 기능개선이 가능한 텅스텐 대전차포를 사용하는 대신 정치적, 윤리적 부담을 안고 있는 열화우라늄탄 사용을 고집하는 것은 미국 핵산업과 군수산업의 이해관계가 깊숙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국 내에만 쌓여 있는 74만톤의 열화우라늄 핵폐기물을 처분하여야 하는 미국 핵산업계와 에너지성은 이를 군수용과 산업용으로 재사용하도록 권장정책을 취하고 있다. 다양한 핵폐기물로 넘쳐나는 미국으로서는 이를 비싼 비용으로 보관하느니 이를 사용하도록 권장할 필요가 있고, 그 결과로 열화우라늄탄 사용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고, 이번 이라크 침공 과정에서 미영연합군은 열화우라늄탄을 광범위하게 사용한 것이다.


        (마) 미영연합군은 이라크 침공과정에서 이라크 전역에 열화우라늄탄을 의도적으로 사용하였다.


        영국은 자신들의 챌린저 탱크를 이용하여 이라크에서의 주요 전투과정에서 열화우라늄탄을 약 1.9톤 소비했다는 점을 자인했다. 그러나 미국은 열화우라늄탄 사용에 관하여 부인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러한 부인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열화우라늄탄을 발사할 수 있는 무기를 광범위하게 사용하였다. 즉, 1분에 4,200발의 열화우라늄탄을 발사할 수 있는 30mm 포를 장착한 A-10 워트호그 탱크 파괴 전투기, AC-130 무장헬기, 아파치헬기, 열화우라늄탄을 장착한 105mm ~ 120mm 대전차포를 발사하는 브래들리 전차 등이 그것이다.


        한편, 미국은 네덜란드 군대가 주둔할 예정지인 알 사마와 근처에서 열화우라늄탄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알 사마와 지역은 유프라테스 강을 건너는 다리에 접근할 수 있는 바스라와 바그다드 까지 이어지는 도로에 전략적으로 위치해 있다. 바그다드로 행군하던 미군은 이곳에서 이라크 군의 격렬한 저항에 직면했다. 마을과 길에서 모든 저항이 사라지기까지 일주일 이상의 기간이 걸렸다(물론 이 전투과정에서 알 사마와 주민 112명이 사망했다). 이 전투 과정에서 미군은 열화우라늄탄을 폭넓게 사용했는데, 널리 배포된 미군의 야전메시지에서 쿠퍼 일등 상사는 제3보병대, 제7기갑부대에 의해 알 사마와로 가는 길과 나자프에서 사용된 무기 시스템, 특히 25mm 열화우라늄과 7.62 같은 무기들은 훌륭히 작전을 수행했다고 보고했다. 또한 이라크 침공에 참전 중인 제41보병연대 제1보병대대 소속 브래들리 전차 승무원인 패널(E. Pennel)은 그의 부모에게 보내는 서신을 통해 그의 승무원이 알 사마와 마을에서 7명의 이라크 군인과 맞닥뜨렸을 때 25mm 열화우라늄탄을 어떻게 발사하였는지 묘사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이라크 침공에서 사용된 열화우라늄탄의 양에 대하여 1991년 제1차 걸프전 당시의 375톤을 훨씬 상회하는 1,000톤 ~ 2,200톤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편, 지난 제1차 걸프전과는 달리 주로 인구밀집지역에 집중 폭격을 가한 이번 이라크 침공에서는 열화우라늄탄에 의한 방사능 오염 피해가 막대한 것이라고 진단한다. 방사능 오염으로 인한 피해는 이라크 침공에 참여한 군인은 물론, 이라크에 생활의 터전을 둔 이라크 민중에게 고스란히 남게 될 것이고, 이라크 침공이 끝난다고 하더라도 지속적으로 또 대를 이어 침해를 가할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잔혹한 결과를 야기할 것이다.


이와 같이 열화우라늄탄이 과도한 상해난 불필요한 괴로움을 야기하는 무기라는 점과 그 사용시에는 인체 및 환경에 대한 광범위한 피해를 야기한다는 점을 이미 충분히 그리고 깊이 있게 인식하고 있던 미영연합군이 2003. 3. 20. 이라크 침공 이래 이라크 전역에서 이를 광범위하게 사용한 행위는, 이라크 민간인 또는 적대행위에 직접 참여하지 아니한 이라크 민간인 개인에 대한 고의적이고 광범위하며 체계적인 공격의 일부로 행해진 것으로서 이라크 민간인을 살해하고, 절멸시키려는 것이며, 적법한 전쟁 무기라는 외관을 통해 이라크 민간인들의 신체 또는 정신적 건강에 대하여 중대한 고통이나 심각한 피해를 고의적으로 야기고, 과도하게 이라크 민간인들에게 부수적인 상해를 가하고, 자연환경에 대하여 광범위하고 장기간의 중대한 피해를 야기하며, 과도한 상해나 불필요한 괴로움을 야기하는 무기를 사용한 것이므로, 이라크전범국제민중법정헌장 제3조 제3항 1호, 2호, 제10호, 제4항 2호 가.목, 다.목, 더.목이 규정한 범죄에 해당한다.



2.      전쟁과 점령으로 야기된 이라크인들의 고통


가.     전쟁 최대 피해자는 이라크 아동이다.


전쟁으로 인한 가장 큰 피해자는 성장과정에 있는 아동이다. 전쟁으로 인해 아동은 그 생명권, 가족 및 공동체와 함께 할 권리, 건강권, 인격적 발전을 추구할 권리 등 기본적 인권이 침해되고 있다.


칼, 총, 폭탄, 지뢰 등을 무력분쟁은 그 직접적인 결과로 수천 명의 아이들을 전쟁의 직접 희생자로 만들 뿐만 아니라, 식량공급의 와해, 보건체계, 위생체계의 붕괴 등 전쟁의 간접적인 결과로 수백만 명의 아이들을 사망에 이르게 하고 있다.


이번 이라크 전쟁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무차별적인 폭격과 대량살상무기의 사용으로 수많은 어린이들을 전쟁의 직접적인 피해자로 만들었고, 식량, 보건, 의료, 위생, 교육시스템을 의도적으로 붕괴시킴으로서 아동들은 전쟁의 참화 속에 무수히 희생되고 있다.


        (1) 이라크 아동에 대한 무차별 살상


개전 이래로 미영연합군의 공격은 전투원인지 민간인인지, 성인인지 아동인지 여부를 가리지 않는 무차별적인 것이었다. 이로 인한 아동의 피해상황이 매우 심각한데, 이는 1949년 1949. 8. 12.자 제네바 4협약 추가 1977. 6. 8.자 제1의정서 제77조에 규정된 아동의 특별보호의 원칙에 명백히 반하는 것이었다.


미영연합군이 폭격을 퍼붓던 2003. 3. 23.경 자카 세헤일(당시 6세)은 미영연합군의 공격으로 심각한 척추손상을 입어 전신이 마비되었고, 루술 살림 압바스는 폭격 당시 문들을 닫으러 갔다가 가슴과 오른 손에 폭탄의 파편이 날아와 박히는 부상을 당했다. 이들은 알리야 모우크 병원에서 치료중이다.


미영연합군의 폭격이 있던 2003. 3. 24.경 바그다드에서 그 폭격으로 인하여 알리(당시 14세)와 알리의 여동생 샤히드 및 남동생 아메드는 머리를 다치는 부상을 당했고, 그들의 어미니는 사망했다. 이들은 현재 바그다드의 노만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기는 하지만 어머니의 보호는 더 이상 받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한편, 같은 날 미영연합군의 폭격으로 인하여 나다 아드난(당시 14세)은 오른쪽 두개골을 다치는 부상을 당했고, 왼쪽 허벅지에 깊은 상처를 입었으며 현재 바그다드의 알 킨디 병원에서 치료중이다.


미영연합군은 2003. 3. 28. 새벽 모술에서 군사목표물이 없는 민간인 지역에 대하여 대량폭격을 하였고 이로 인하여 7채의 집이 파괴되었다. 또한 여러 명의 여성들과 최소한 50명의 아이들이 부상을 입었다.


미영연합군은 2003. 4. 2.경 미사일 공습을 단행하였고, 그로 인하여 아이샤 아메드(당시 8세)는 한쪽 눈의 시력을 상실하였고 얼굴과 몸은 유탄 폭풍에 의하여 난도질당한 듯한 상처를 입었으며, 그의 남동생 모하메드는 죽었다. 그의 엄마와 다른 남자 형제는 머리와 가슴에 부상을 입었고, 그의 아빠와 두 자매 역시 부상을 당했다. 아메드의 가족은 위 공습으로 죽거나 다치는 외에도 모두 다른 곳으로 뿔뿔이 흩어져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어린 아이들은 부모의 보호를 받을 수 없게 되었다.


미영연합군은 2003. 4. 6.경 공습을 가했고, 그로 인하여 알리 압바스(12세)는 부모를 모두 잃었고 자신은 중화상을 입어 두 팔 절단 당했다. 이날 공습으로 다른 수천 명의 아이들이 부상을 당했고, 의약품과 의료진이 부족한 이라크의 병원에서 죽거나 어렵게 전쟁의 상처를 치유해야 하는 지경에 놓였다.


특히 불발로 남은 클러스터 폭탄(자폭탄)은 대인지뢰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남아 있는 상태이고, 호기심 많은 이라크 아동들을 대상으로 계속적인 피해를 야기하고 있는바, 그 피해에 관해서는 이미 위 제1항 나. (1)에서 보았다.


이와 같은 이라크 아동에 대한 미영연합군의 무차별 살상행위는 이라크전범국제민중법정헌장 제3조 제4항 1호 가.목, 다.목, 2호 가.목이 규정한 범죄에 해당한다.


        (2) 미영연합군의 공격은 이라크 아동에게 심리적 외상을 남기고, 교육․보건․의료시스템을 붕괴시킴으로써 그들의 성장에 막대한 피해를 야기했다.


        (가) 1991년 제1차 걸프전 이후 2003. 3. 20.이전의 이라크 아동의 기본상황


        이라크의 5세 미만의 아동 중 최소 50만명이 영양실조 또는 저체중 상태에 있었다. 특히 이라크 북부지역 아동 중 11.4%, 중남부지역 아동 23.1%는 만성영양실조 상태였다. 5세 미만 아동의 사망률은 1990년과 비교하여 2.3배 증가했고, 그 사망원인 중 70% 이상이 설사, 급성 호흡기 감염 질병이었다.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는 식수, 위생 및 보건 시설과 영양실조가 질병발생율과 사망률을 증가시켰다.


        이라크의 취학연령 아동 중 최소 23%는 초등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남아는 73%, 여아는 70%만이 초등학교를 다녔고, 1991년 제1차 걸프전 이후 문맹률이 크게 증가하여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는 성인비율이 1985년 89%에서 1997년 57%로 급증했다.


        이라크 아동의 대다수는 강한 일상적 공포를 느끼고 있었고, 주로 가족의 죽음이나 자신의 미래 삶에 대한 공포가 강했다. 전반적으로 개인은 무력한 희생자가 된다는 개인적 감정과 필연적으로 오게 될 전쟁 때문에 자신들의 삶과 미래가 완전히 파괴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


        (나) 2003. 3. 20. 시작된 이라크 침공으로 인한 이라크 아동의 피해상황


        미영연합군의 공습과 폭격으로 많은 상하수도 및 정화시설이 파괴되었다. 더위와 상수도정화약품(염소가스)의 부족으로 하수정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수질오염 정도가 심각해졌다. 전후 이라크의 식수문제도 무척 심각한 상태에 처해있다. 이로 인해 이라크 전역에서 수인성 질병으로 인한 많은 피해가 보고 되고 있다. 특히 아동의 경우 면역체계가 아직 발전 단계에 있어 콜레라나 설사병 등에 대하여 신체가 방어할 능력이 약한 관계로 설사병 발생수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개전 이래 2003. 5. 13. 바스라에서는 5세미만의 콜레라 환자가 24명으로 증가했다. 또한 식료품공급이 정상화되지 못해 아동은 계속해서 영양실조로 고통 받고 있고, 위와 같이 설사병 등 수인성질병에 걸려 그나마 공급되던 최소의 영양분마저 몸에서 흡수할 수 없게 되어 아동의 영양상태는 심각한 상태이다. 5세미만 아동의 1/4이상이 만성영양실조 상태이고, 급성영양실조는 전쟁을 거치면서 2배 이상 증가(4.4% → 7.7%)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위와 같은 콜레라나 설사병은 다른 나라에서는 결코 생명에 위협이 될 수 없지 않을 것임에도 영양실조에 걸려 몸이 허약한 상태에 있는 이라크의 아동들은 그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놓여 있고, 실제 많은 아동들이 죽고 있다.


        2003. 5. 6. 바그다드의 알 알위야 병원에서 치료받던 무하마드 카심은 설사병으로 입원한지 열흘이 지났고, 병원침대 위에서 울음을 그치지 않고 있는 이 작은 소년은 정맥주사에만 의존한 채 투병했으며 그의 부모와 병원 의사들의 각별한 관심에도 불구하고 병세가 점점 악화되어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있었다. 무하마드와 알리는 쌍둥이 형제로서 엄마 뱃속에서 7개월만에 나온 조산아들인데 태어날 당시 몸무게가 고작 2kg에 불과했다. 2003. 5.경 이 아이들의 몸무게는 다른 나라에서는 신생아들의 평균 체중에 해당하는 3kg에 불과하다. 전쟁이 터지고 이 쌍둥이 형제의 부모는 바그다드의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는데 그곳은 먹을 만한 식수가 없어 결국 쌍둥이 형제는 몇 주 동안 설사병으로 고생하게 되었고, 다행히 알리는 이제 좀 나아졌으나, 무하마드는 치명적인 수준으로 몸이 약해져 목숨이 위태로웠다. 이 병원 소아과 의사 후세인 페이딜 알 자와디는 바그다드시의 하수처리 시설이 오랜 기간 제 역할은 하지 못하면서 이같이 극도로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게 되었고 설사병 이외에도 콜레라의 창궐을 걱정하고 있었다. 또한 이 병원에는 무하마드 카심 이외에도 많은 울부짖는 아동들과 이를 껴안고 있는 그 부모들을 셀 수 없이 많이 만날 수 있었던 것으로 UN IRIN은 보고하고 있다.


        한편 전기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하루 1-2시간 정도만 치과 진료가 가능한 상태이고, 우식유병율이 상당히 높은 상태이다. 우식치는 대부분 방치되고 있어 조기에 영구치를 상실하는 청소년들이 많을 것이다. 11%의 아동들이 외상으로 인한 전치부 파절 또는 탈락을 보이고 있다.


        미영연합군의 이라크 침공에 따라 이라크 아동들은 신체적인 피해 이외에도 심각한 정신적 외상을 입은 것으로 유니세프 보고서는 밝혔다.


        수인성 질병 및 불발탄의 폭발 등으로 신체부상을 입어 치료를 요하는 아이들의 수는 많으나, 계속된 봉쇄로 인하여 병원기자재, 의료품 부족한 상태이고, 전력시설물에 대한 공습과 폭격으로 전력 부족을 겪고 있어 이라크의 병원 시설은 거의 마비 상태이다.


        지난 20년간 계속된 이란 대 이라크전쟁, 1991년 제1차 걸프전, 이번 이라크 침공, 12년간의 경제제재, 부패한 정권으로 인해 현재의 이라크 공교육은 거의 마비상태에 있다. 수차례의 전쟁 과정에서 6 ~ 7천여개의 학교는 폭격으로 파괴되거나 창문, 집기류 등이 파손되었고, 그나마 남아있던 학교는 약탈의 대상이 되거나 군사기지로 사용되고 있다. 2003. 5.말 이라크 남부의 학교 80%가, 북부의 학교 100%가 각 정상화 되었지만, 같은 해 6. 현재 아동의 출석율은 65%로 매우 낮은 상태이다. 이러한 상황은 거리의 아동들을 양산하여 그로인한 인신매매, 성매매, 착취의 문제 등 새로운 인권침해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되고 있다.


미영연합군이 2003. 3. 20. 대이라크 침공을 감행한 이래 진행한 이라크 전역에 대한 공격은 이라크 아동들의 신체 또는 건강에 심각한 고통이나 위해를 주고, 명백히 과도하게 이라크 아동들에 대하여 부수적인 상해를 가한 것이므로 이는 이라크전범국제민중법정헌장 제3조 제4항 1호 다.목, 2호 다.목이 규정한 범죄에 해당한다.


나.     미영연합군의 사회기간시설에 대한 무차별적인 파괴행위


2003. 3. 20. 미영연합군이 이라크에 대한 공중 폭격을 개시한 이후, 전쟁 초기 ‘충격과 공포’라는 전략 아래 미영연합군의 무차별 공중폭격 및 지상군의 공격이 도시, 마을, 촌락 등 인구밀집지역에 집중되었고 병원, 호텔, 전력시설, 댐 등 민간시설에 대한 파괴 및 그 피해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미공군중부사령부(CENTAF) 보고서는 “실제 투하된 폭탄의 상당수가 적의 군사시설보다는 전장을 광범위하게 피격해 부수적 피해가 컸던 것”으로 무차별 파괴를 인정했다.


        (1) 수도․전력시설, 병원, 학교, 방송국 등 사회기간시설 파괴


        (가) 수도 및 전력시설 파괴행위


        미영연합군은 2003. 3. 21. 이라크 남부 바스라를 공습하여 바스라의 고압선을 파괴했다. 그로 인해 바스라 전역에 대한 전력공급이 중단되었고, 그로 인해 바스라 주민 60%인 90만명이 의존하고 있던 와파 알 카에드 급수장 등 바스라의 주요 상수도 처리체계가 마비되었다. 2003. 4.말 현재 바스라에 대한 수도 및 전력공급은 공습 발발 이전 수준의 60%에 불과했다. 전력공급은 식수난을 야기했고, 급수차를 동원하여 구호품으로 나누어 주는 식수는 암시작에서 1.5리터 들이 1병이 1달러에 암거래 되었다. 미영연합군의 침공 이후 나시리아 지역의 수도처리시설 또한 불안정한 전력공급으로 인해 하루 6시간 정도밖에 가동되지 못하고 있는 열악한 상황이고, 알 주바이나나 샤프완 같은 바스라 북부 도시들 또한 공습 후 일주일 동안 수돗물을 공급받지 못했다. 2003. 4. 3. 알 두라 발전소의 피해로 바그다드 전역에 공급되던 전력의 90%가 공급중단 되었다.


        (나) 병원 등 의료시설에 대한 파괴행위


        미영연합군은 2003. 3. 26. 이라크 군이 주둔한다는 아무런 증거도 없는 상태에서 루트바에 있는 병원을 폭격했고, 2003. 4. 2. 바그다드에 있는 적신월 산부인과 맞은 편 빌딩을 폭격하고 그 충격으로 위 병원의 천장이 붕괴되도록 하여 환자, 의사, 간호사 등이 부상을 당하였고, 2003. 4. 20. 나시리아에 있는 보건소와 의약품 보관소를 미사일로 공격하여 파괴했다. 그리고 미영연합군이 2003. 4.경 바그다드를 공격하고 있던 동안 야모크 병원으로 1시간당 100명 정도의 환자가 몰려들고 있었는데 그 무렵 미영연합군은 이 병원 3층에 대하여 로켓공격을 가했고, 그로 인해 병원상황이 크게 악화되어 단지 응급조치만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다) 방송국에 대한 파괴행위


        미영연합군은 2003. 3. 26. 폭격기를 이용하여 바그다드에 있는 이라크 국영 TV방송사 건물을 폭격했다. 이 국영 TV방송사가 24시간 외국으로 방송을 송출하고 있던 위성TV전파는 같은 날 04:30경부터 중지되었다. 방송 송출 개시 전이었던 국내 전파도 기능이 마비되었다. 당시 미영연합군의 공격은 전자통신기기를 사용불능 상태로 만드는 것으로 알려진 전자파폭탄(E-Bombs)을 사용한 고의적인 것이었다. 한편, 미영연합군은 2003. 4. 8. 08:00경 알 자지라 방송국 건물을 향해 미사일 폭격을 가했고, 그 폭격으로 인하여 요르단 출신 기자 타리크 아유브(Tariq Ayoub)가 사망했다. 미영연합군은 알 자지라 방속국으로부터 두개의 건물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던 아부다비 방송국에 대하여도 폭격을 가했다.


        (라) 호텔에 대한 파괴행위


        미영연합군은 바그다드 중심지에 있는 팔레스타인 호텔에 특파원은 아니지만 이라크 전쟁을 취재하기 위하여 200명이 넘는 외국인 기자들이 체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2003. 4. 8. 11:55경 제3보병대 소속 탱크를 이용하여 위 팔레스타인 호텔을 포격했다. 이 포격으로 호텔의 15층과 17층이 폭파되었다. 2003. 4. 8. 미군과 이라크군은 티그리스 강을 사이에 두고 교전을 벌였고 미군이 쉽게 우위를 차지하며서 미군 탱크 2부대가 티그리스강의 공화국다리를 건너 팔레스타인 호텔 쪽으로 전진하였다. 공화국 다리는 팔레스타인 호텔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다리였고 많은 기자들이 전쟁장면을 사진으로 찍거나 비디오로 촬영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미군은 탱크의 포구를 팔레스타인 호텔 방향으로 돌렸고 포탄을 발사하였다. 팔레스타인 호텔 15층 1504호는 로이터 통신의 지국이고 그곳에서는 많은 보도진들이 일을 하고 있었는데 포탄이 사무실의 한가운데로 뚫고 들어와 폭발하였다. 이 폭발로 우크라이나 출신의 카메라맨인 태라스 프로시(Taras Protsy)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였고, 영국인 스텝인 폴 파스퀄름(Paul Pasqualedms)은 얼굴과 목에 유리파편이 박히는 부상을 입었으며, 3명 이상의 기자가 부상을 입었다. 14층의 스페인출신의 카메라맨인 호세 코우소(Hose Couso)는 호텔 발코니에 있다가 포격에 맞아 많은 피를 흘리는 심각한 부상을 입어 수술을 받았으나 1시간 후에 사망했다.


        (2) 미영연합군의 민간 대상물 파괴행위 후 이라크의 공중보건 및 위생상태


        (가) 상수도 시스템의 붕괴


        미영연합군의 공습과 폭격은 바그다드 수도관 연결망의 40% 정도를 파괴했다. 그결과 바그다드로 공급되는 물의 50%가 유실되었다. 미영연합군의 공습과 지상전투과정에서의 탱크 및 장갑차 이동은 지표면을 흔들었고, 오랜 경제제재로 보수가 이루어지지 못한 채 지표 아래 있던 부식된 수도관 라인은 파열되었다. 게다가 미영연합군은 바그다드 함락을 위해 도시를 봉쇄하면서 전력 및 수도시설 복구를 위한 국제기구들의 긴급지원을 수행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현재 식수난은 더욱 악화되고 있고, 판매되는 식수는 중산층 조차도 사먹을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비싸다. 이러한 식수난은 콜레라, 이질, 설사 같은 수인성 질병을 창궐하게 하고, 아동들에게 탈수증, 영양실조를 안겨주었다. 질병에 감염된 아동들은 아래에서 보다시피 미영연합군의 공격으로 의료시스템이 붕괴되어 그 상태가 더욱 악화되고 있다.


        (나) 전력공급시스템의 붕괴


        전쟁 직전 이라크는 하루에 2시간 단위로 3 ~ 4번 정도의 정전이 있었다. 그러나 전쟁 직후에는 약 8시간 정도 정전이 되었다가 2003. 7., 8.경에는 약 10시간 정도 정전, 2003. 10.말경에는 12시간 정전, 2003. 11.경 저항세력의 총공세가 있었던 시기에는 2 ~ 3일 동안 전기를 전혀 공급받지 못하였다. 2004. 6. 이라크의 전력사정은 2003. 11.경의 수준이거나 더 악화된 상태이고, 하루에 14시간 정도 정전이 되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 미영연합군 점령당국측은 저항세력들의 발전소 공격이 가장 큰 이유라고 설명하고 있으나 1991년 제1차 걸프전 때에도 비슷한 전력난이 있었지만 3개월만에 복구된 것에 비추어 보면 점령당국에 복구의지가 없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이러한 의도적인 복구지연은 저항세력과 이라크 민간인들 사이를 이간질하는 민족분열전략의 일환이다. 현재 일부 이라크 인들은 자체적으로 발전기를 구입하여 이를 가동시켜 부족한 전력을 보충하고 있지만, 발전기를 구입하기 힘든 이라크 민중들은 전기가 없는 상태에서 그냥 지내거나 마을 주민끼리 공동으로 구입하여 조금씩 끌어 쓰고 있는 실정이다. 그로 인해 적어도 각 가정마다 매월 10달러에 15달러이상 전기 공급비용을 추가 지출하고 있다.


        (다) 의료시스템의 붕괴


        연합군 임시행정처(CPA)는 보건의료예산을 2002년도 예산의 70배가 넘는 210만 달러가 금년 후반기 의료장비확보를 위해 쓰일 예정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지역의 1차 의료를 담당하고 있는 진료소에 대한 지원은 거의 전무하거나 매우 부족한 상태다. 2003. 4.부터 같은 해 6. 사이 조사된 이라크의 의료상황은, 보건성으로부터 제공받는 약의 양과 질에 한계가 있고, 자발적 보건센터의 경우 모든 진료소에서 환자에게 진료비만 받고 약값은 부담시키지 않기 때문에 모스크나 적신월사, 외부 NGO로부터 1 ~ 2차례의 약 지원 밖에 받지 못하는 대부분의 진료소는 재정적으로 매우 취약해지고 있다. 2004. 4. 12.부터 2004. 4. 24. 사이 알 카마라 티칭 병원(Al kamara teaching hospital)의 입원실은 악취와 더 이상 더러워질 수 없는 시트가 사용되고 있고, 의료시스템의 붕괴로 의료 인력이 이탈하여 간호 인력 없이 환자의 보호자가 환자를 돌보고 있고 병상이 비어 있어도 많은 환자를 돌려보내고 있는 실정이었다. 알 야마크 일반병원(Al Yamak General hospital)은 큰 규모의 병원이지만 응급실만 운영 중이었고, 하루에 약 1,500명의 환자가 방문하지만 병원행정의 마비로 바그다드나 인근 도시에서 온 의사나 간호 인력, 약사들이 모두 자원봉사의 성격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외부로부터 약품 및 재정지원이 필요한 상태였다. 시아파 거주지역인 뉴바그다드나 사담시티의 경우 병원들이 아직 문을 열지 않고 있는 실정이고, 모스크나 학교건물의 임시 진료소에서 한 두 명의 의사들이 하루 수백 명의 환자들을 자원봉사형식으로 진료하고 있다. 지역단위의 보건소가 개설되어 운영되고 있으나 의료시스템의 붕괴로 이라크 민간인들의 1차적 의료 요구는 과잉상태에 있다.


2003. 3. 20. 미영연합군의 이라크 침공 이래 군사목표물이 아닌 민간대상물에 발생한 위와 같은 결과는 미영연합군이 지난 1991년 제1차 걸프전 때와는 달리 도시, 촌락, 마을 등 인구밀집지역을 의도적으로 대규모의 무차별 공습을 가하고 폭격을 가한데서 연유하는 것이고, 그 피해는 현재도 악화되고 있을 뿐 복구되고 있지 않으며 심지어 미영연합군은 복구를 위한 국제기구의 활동마저 방해한 것이므로 이는 이라크전범민중법정헌장 제3조 제4항 1호 라.목, 2호 라.목, 아.목, 자.목, 타.목이 규정한 범죄에 해당한다.


다.     또 다른 재앙, 환경 파괴


전쟁으로 인한 환경 파괴의 영향은 해당 지역, 해당 국가 주민 및 생태계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주변 지역까지 광범위하고 연쇄적인 피해를 야기하고, 세대를 이어 영향을 미친다. 이라크 전쟁의 결과 발생한 환경파괴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원유 유출과 유정 화재로 인한 오염, 대량살상무기 및 대규모 공습에 따른 방사능․화학․독성 물질에 의한 오염, 대량 난민 이동에 따른 생태계 및 서식지 파괴, 각종 식물류의 소실 및 토착종의 멸종, 사막파괴 등이 있다. 다만, 파괴된 환경으로 인한 피해는 오랜 시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광범위하게 나타나므로 그 피해를 곧바로 측정하기란 쉽지 않다.


이라크는 겨울 철새인 섭금류(두루미, 물떼새의 종류)의 세계 5대 서식지이자 봄, 가을에 물떼새 수십만 마리가 찾아드는 중간 기착지이다.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을 끼고 있는 이라크 남동부 메소포타미안 습지대는 조류 수천종의 서식지로 생태계의 보고이자 메소포타미아 문명 5000년 역사를 이어온 마단 원주민의 삶의 터전이다. 또한 메소포타미안 습지대를 포함한 이라크의 습지 33곳은 1993년 세계적으로 중요한 습지 리스트에 포함되었고, 이들 습지는 국제자연보호연합(IUCN)의 적색목록에 포함된 적어도 7여 종의 포유동물과 조류 수천종의 서식지이기도 하다.


1991년 제1차 걸프전으로 인하여 이라크와 그 주변 지역의 환경 재앙은 이미 시작되었다. 15,000㎢에 이르던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습지대는 전쟁으로 인해 그 대부분이 파괴돼 예전의 0.3%인 50㎢밖에 남지 않았다. 그 결과 시베리아에서 남아프리카에 이르는 범지구적 생물다양성에도 연쇄적인 악영향을 미쳤다. 도깨비 쥐(몸길이 최대 28㎝의 큰 쥐)와 수달류는 거의 멸종했고, 마단 원주민도 대부분 생활의 근거를 잃었다. 걸프전 당시 약 750개의 유전 방화로 발생한 유독성 연기는 반경 1,600㎞의 상공을 시꺼멓게 뒤덮었고 수백만 배럴의 기름이 흘러나와 방대한 사막 지대와 해양을 오염시켰다. 국제조류보호협회는 제1차 걸프전 때 600만 - 800만 배럴의 기름이 인도양으로 흘러나와 두터운 기름 층을 형성했고, 이로 인해 해변에서 겨울을 나던 철새와 섭금류 등 3만 5천마리가 폐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에 더하여 2003. 3. 20. 시작된 미영연합군의 이라크 침공은 이미 가사 상태에 있는 이라크 환경의 목을 졸라 질식시키는 것에 다름 아니다.


        (1) 유정 방화


개전 초 이미 이라크 남부 지역 유정 중 30여개가 불타기 시작했다. 이러한 유정 화재는 독성연기와 화염을 발생시켰고, 유황, 수은, 다이옥신, 푸란 등의 치명적인 오염 물질을 발생시켰으며, 인근지역에 계속되는 스모그를 형성시켰다. 그 결과 어린이와 호흡기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해를 가했고, 그 지역의 생태계를 오염시켰다.


        (2) 전투비행 배출가스에 의한 오염


할로겐과 프레온 가스는 ‘오존층을 파괴시키는 물질에 대한 몬트리올 의정서’에 의해 오존층을 감소시키는 물질로 인정되어 그 사용이 규제되고 제한되는 물질이다. 미영연합군의 이번 이라크 침공과정에서의 전투비행은 무려 6만 ~ 8만번에 달한다. 이 전투비행으로 약 2000톤의 할로겐이 배출되었다. 또 스텔스 폭격기와 전투기들은 적군에게 감지될 수 있는 배기가스와 먼지를 줄이기 위해 프레온 연료 첨가물을 사용하였다. 이번 이라크 침공 과정에서 배출되고 사용된 이러한 오존층 파괴 물질들은 전 세계가 3개월 동안 배출하는 양과 같다.


        (3) 대규모 군사작전에 의한 환경파괴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메소포타미안 습지대는 다양한 생물의 서식지로서 생태계의 보고이다. 제1차 걸프전에 이어 이번 이라크 침공으로 메소포타미안 습지대는 심각하게 파괴되었고, 특히 3 ~4월 이동하는 철새들의 번식에도 치명적인 결과를 야기했다.


        (4) 핵발전소 약탈에 따른 방사능 오염


핵발전소의 약탈로 방사능 물질이 흩어졌다. Tuwaitha 핵발전소가 약탈될 때 주민들은 우라늄이 든 용기를 가져와 그 내용물을 땅에 쏟아 버리고 음식과 식수 저장용 용기로 사용했다. 500개 가운데 150개의 용기가 아직 수거되지 않은 상태이고, 자원봉사자들이 몇 kg씩의 우라늄이 든 혼합통을 찾아내기도 했다. 위 용기가 있던 집에서는 방사능 수치가 정상치의 10,000배가 넘었고, 주민들은 코피, 구토, 호흡곤란 및 피부질환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5) 열화우라늄탄 사용으로 인한 방사능 오염


위 제1항 다. (2)에서 본 바와 같이 열화우라늄탄은 그 사용시 방사능 독성을 가진 우라늄 산화 먼지를 만들어내고, 오랜 기간동안 대기, 물, 대지에 그대로 남아 생물체에 대한 지속적인 피해를 야기한다. 미영연합군의 이번 이라크 침공과정에서도 열화우라늄탄은 막대한 양이 사용되었고, 그로 인한 방사능 오염 피해는 그대로 이라크 민간인들에게 전가될 것이다.


이와 같은 환경에 대한 피해는 미영연합군의 2003. 3. 20. 일방적인 이라크 침공에서 야기된 것이고, 그 위험성을 충분히 인식하면서도 미영연합군은 대규모 공습, 폭격, 포격을 가하는 등 이라크 환경을 파괴한 것이므로, 이는 이라크전범국제민중법정헌장 제3조 제4항 2호 라.목이 규정한 범죄에 해당한다.


라.     미영연합군은 이라크 침공과정에서 인류공동유산인 유적, 문화재를 파괴했다.


        (1) 이라크의 문화유산


이라크 지역은 이른바 세계 4대 문명 중 하나인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 유역의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로서 수메르와 바빌로니아, 아시리아, 이슬람 문화가 차례로 번창했던 지역이다. 이라크에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 하트라가 있다. 바그다드에서 서북쪽으로 350km 떨어져 있는 하트라는 파르티아 제국의 수도였다. 종교적인 목적으로 건설된 대규모의 도시로 후에 실크로드의 중요한 거점 역할을 담당하였고, 동서 문화 교류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메소포타미아인들은 세계 최초로 문자기록을 남겼고, 처음으로 하루를 24시간으로 구분한 문명인이기도 하다. 이들은 또 어떤 인류보다 먼저 도자기 그릇에 밥을 담아 먹은 문화인들이었다. 이라크는 유대교, 기독교의 성지로 바그다드 북쪽 40km에 위치한 아시리아의 수도 니느웨의 유적, 9세기의 모스크 등 많은 종교유적과 함무라비 법전, 바빌론, 아시리아제국의 왕궁이 있었던 님루드, 기원전 3세기에 건설된 고대 도시 에르빌 등 2만5천여개의 세계적인 유적지가 산재해 있고 상당수의 유적지들은 아직 발굴조차 되지 않은 상태이다.


        (2) 미국에 대한 전시(戰時) 문화재 보호 요구 및 문화재 보호 노력


이라크는 단순한 사막이 아니다. 역사상 가장 최초로 문명이 일어난 곳이고, 최초의 문자, 최초의 문서, 최초의 기념비적 건축, 최초의 예술 등이 나타난 곳이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가시화되고 있던 2003. 1. 고고인류학자들은 미국 국방부와 국무부 담당자들을 직접 만나 중요 유적지를 상세히 기록해 주었고, 미국에게 1954년 체결된 전시문화보호협약의 준수를 요구했다.


한편, 이라크 국민들은 이러한 자신의 역사를 보호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991년 제1차 걸프전을 겪은 후 지방 박물관 다수가 소장품을 바그다드로 옮겨 왔다. 국립박물관이 더 안전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방대한 양의 금붙이, 동전, 보석류 등의 문화재가 이라크 중앙은행 지하금고에 옮겨졌다. 8,000여점의 유물들은 바그다드의 비밀 장소에 옮겨졌다. 39,000여점의 필사본들도 박물관에서 나와 바그다드 인근의 방공호에서 피난처를 찾았고, 인근 주민들의 감시와 보호로 무사히 박물관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전쟁 이후로 셀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유물들이 각지의 박물관에서 사라졌다”는 이라크 외교관 니자르 함둔의 말처럼 이번 이라크 침공 과정에서 이라크 문화재에 대한 약탈과 파괴행위는 공공연히 자행되었다.


        (3) 미영연합군의 이라크 침공과정에서의 문화재 파괴와 약탈


미영연합군은 이라크 침공 과정에서 대규모 무차별 공습과 폭격을 가하였다. 그 결과로 바그다드의 국립박물관이 있는 알-주르 궁이 파괴되고, 기원전 3,500년 수메르 왕조 때의 토기를 비롯하여 아시리아 시대의 대리석 조각, 바빌로니아 시대의 석상 등 많은 유물이 파괴되었다. 바빌로니아 시대의 나무 하프는 둘로 쪼개져 있었고 나무에 새겨 넣은 금은 벗겨져 나갔다. 한편, 대부분의 유물들이 건축물로 지반이 취약한 사막이나 도심의 이라크 정부 청사들 인근에 자리 잡고 있어 큰 해를 당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미군은 2004. 4. 7. 05:00경 탱크를 몰아 박물관으로 쳐들어왔다. 30분 후 이라크 군대의 미군 탱크에 대한 발포가 있었다. 당시 이라크 경찰을 찾을 수 없었다. 이라크 국립박물관 관장에 의해 박물관 문이 잠겨지긴 했지만 약탈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한편, 바그다드 주둔 미군은 이라크 국립박물관 직원들로부터 박물관이 약탈되고 있다는 정보를 받고 잠시 탱크 한대를 박물관 앞에 배치하였으나 탱크는 이내 철수했다. 관공서 보호 명령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라크 국립박물관에 대한 약탈은 2004. 4. 10.부터 같은 달 12.사이에 자행되었다. 이라크 국립도서관과 기록보관소, 토란 도서관, 모술 박물관, 바그다드의 미술박물관 등도 약탈당했다. 그 중에 인류 최초의 법전인 함부라비 법전 서판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문화재 약탈 수법을 보면 조직화된 범죄 집단의 소행임을 보여준다. 유리절단기가 사용되었고, 수천 파운드나 되는 무거운 미술품이 약탈당했으며, 지하금고를 따고 들어가 작고 옮기기 쉬워서 신속하게 처분할 수 있는 원통형 인장 등의 유물들을 약탈했다. 그들은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문화재의 목록을 불태워 없애는 치밀함을 보였다. 향후 세계 미술품 시장에서 이라크에서 약탈된 유물의 추적 및 회수를 어렵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라크 국립박물관은 총 30만점의 유물 중 17만점가량이 약탈당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 중에는 인류최초의 기록물이자 문자의 효시인 수메르인의 점토판 조각들과 인류최초의 설문학인 ‘길가메시 서사시’ 서판도 포함되어 있고, 황금사발, 황금 잔, 장례식 가면 등 가치를 산정할 수 없는 귀중한 유물이 약탈되었다. 이라크 국립박물관 부소장 나브할 아민은 “우리의 유산은 끝났다”고 한탄했다.


        (4) 이슬람 문화의 상징, 모스크 파괴


미영연합군은 2004. 4. 7. 코브라 공격용 헬기와 F-16 전투기를 이용하여 팔루자의 알 나잘(Al Nazzal) 지역에 5백파운드의 폭탄을 쏟아 부었다. 이 폭격으로 이라크 민간인 40명 이상이 희생되었고, 압델 아지즈 알 사마아이 모스크는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었다. 당시 미군은 압델 아지즈 알 사마아이 모스크의 파괴에 정밀유도폭탄을 사용하였다.


이와 같이 미영연합군이 대규모 무차별 공습, 폭격을 통해 인류의 공동유산이라고 할 세계 4대 문명 중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유적과 유물을 파괴하고, 약탈한 행위는 이라크전범국제민중법정헌장 제3조 제4항 2호 아.목, 하.목이 규정한 범죄에 해당한다.


마.     미국, 영국의 이라크 자원 수탈


        (1) 이라크 침공의 숨은 목적, 이라크 원유 확보


이라크는 약 1,120억 배럴의 원유가 매장된 세계 제2위의 산유국이다.


미국은 전 세계 석유소비량의 25%를 차지하는 거대 석유소비국이다. 1992년 미국 국무부는 중동지역의 석유자원을 거대한 전술상의 자원으로 또 전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물질적 보상이라고 말했다. 2001년 미국의 딕 체니 부통령에 의해 주도된 국가에너지전략보고서는 미국 내 석유 생산량이 앞으로 20년간 해마다 12%씩 줄어들고 수입석유에 대한 의존도가 70%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세계 석유 총생산량의 25%를 소비하는 미국으로서는 석유 확보에 국가의 사활이 달려 있는 셈이다.


        (2) 이라크 재건을 위장한 이라크 자원 수탈


미영연합군은 2003. 3. 20. 대규모 공습을 통한 이라크 침공 이래 이라크 남부 바스라 지역을 가장 먼저 장악했다. 한편, 미영연합군의 지원을 받는 쿠르드 반군이 북부 유전지역 근처의 키르쿠크 지역 공격을 시도했을 때 미국 군대는 폭격 실수인 것처럼 키르쿠크에 대한 폭격을 가하기도 했다.


이라크의 석유자원은 이라크 정부의 통제 아래 국영기업들이 관리 운영해 왔다. 미국에게 이라크는 전 세계 경제시스템을 벗어나 독자노선을 걷고, 그 지역의 다른 나라들과 연합할 수 있는 잠재적, 지역적 권력을 지닌 두려움의 존재였다. 미국 국방부장관인 도널드 럼스펠드는 이라크 경제체제를 스탈린주의화 된 경제체제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이번 이라크 침공을 통해 미국은 위와 같은 이라크 경제를 자유시장체제로 전환시키려고 했다. 수십억 달러의 이라크 공적 자본이 호텔, 설비시설, 정련소, 공장, 미디어, 항공노선 등을 사유화하는데 사용되었고, 이라크 국민들에 의해 창출된 수십억 달러의 공적자본은 거대 미국의 기업체에 넘겨졌다. 이라크 국민들은 이러한 비용의 지불을 강요당하고 있는 것이고, 그 비용은 모두 이라크의 석유에서 나온다.


        (3) 석유 등 자원 수탈


위에서 본 바와 같이 UN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제1546호 제27에 의하여 일부 석유회사들은 연합군 임시행정처(CPA)로부터 부여받은 특권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이라크 임시정부가 미국으로부터 석유에 관한 통제권을 이양받은 후에 체결하는 모든 계약에서는 특권이 인정되지 않는 반면, 2003년 미국이 부여한 특권을 계속 부여될 것임이 명시되어 있다. 이에 따라 이라크는 주권이양 이후에도 미국에 의한 석유 수탈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있다.


한편, 연합군 임시행정처 최고행정관 폴 브리머가 만든 군정법령 제39호에 의하면 외국인도 석유와 광물 채취 등의 사업에 관하여 100% 소유를 허용하도록 하고 있고, 이들 군정법령에 대하여 이라크 임시정부는 그 개정 권한조차 가지고 있지 아니하여 미국과 영국은 이라크에 대한 자원 수탈에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도록 되어 있다.


        (4) 미국 기업에 의한 이라크 재건 사업 독점


        (가) 벡텔(Bechtel)사의 재건사업 수주


        벡텔사는 이라크 공격을 주장한 부시의 선거운동의 강력한 지지자였던 전직 미국무부 장관인 조지 슐츠를 통해 부시 행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건설회사인 벡텔사는 이라크 재건을 위한 두 가지 중요 계약을 수주했다. 미국 국무부 산하기관으로서 이라크 재건 초기 단계를 관리한 유세이드(USAID)는 2003년 벡텔사에 이라크 지역 전기, 수도와 같은 사회기간시설 재건사업을 맡겼고, 또 연합군의 침공과 다년간 방치되어 파손된 이라크의 전기, 도로, 항구, 기타 다른 기반시설을 수리, 유지하기 위한 재건사업 제2단계를 위한 계약을 수주했다.


        (나) 할리버튼(Halliburton)사의 재건사업 수주


        석유 공급 및 군수물자 납품을 다루는 할리버튼사는 1995년부터 2000년까지 현 미국 부동령 딕 체니에 의해 운영되었다. 할리버튼사는 과거 쿠바의 관타나모 지역에 포로수용소를 건설했다. 2003. 3. 20. 이라크 침공 이전 할리버튼 사는 연간 분기별로 5억달러의 결손을 내고 있었지만, 이라크 침공이 진행되던 2003. 말 할리버튼 사는 260억달러의 흑자를 냈다. 흑자의 원천은 이라크 재건 사업과 석유 계약에서 만들어진 이익이었다. 부통령 딕 체니는 현재도 할리버튼사로부터 매년 20만달러의 퇴직금을 받고 있다.


        미국 공병부대는 이라크 재건 사업을 계획하고 고안하는 책임을 맡고 있다. 전쟁 이전 상황으로 이라크 석유 산업을 재건하는 데는 약 11억4천만달러의 가치를 지닌 220개의 사업들이 필요하고 2004. 3. 완료되는 것으로 계획되어 있다. 처음 두 단계를 위한 일들은 미국 공병부대의 일정표에 의하면 9억6,700만달러의 비용으로 전체 사업 85%를 2003. 12.에 끝마치기로 되어 있다. 미국 공병부대는 재건사업을 위한 공정한 입찰을 위한 마감일을 2003. 8. 15.로 예정하여 두고, 계약의 입찰자를 2003. 10. 15.에 발표했다. 할리버튼사의 자회사인 켈로그브라운앤루트(Kellogg Brown & Root)사 직원들은 2003. 3. 이라크에 있었고, 그들은 미영연합군을 위한 기반시설의 건설, 인사이동, 군납관련 계약을 따냈고, 이미 유정방화 진화작업을 시작했다. 반면 입찰 일정표에 따르면 경쟁회사들은 2003. 10. 15.이후 준비를 시작하여 2003. 말에 사업을 끝내야 하는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이에 따라 경쟁회사들은 나머지 15%의 지분을 따내기 위해 경쟁하였고, 재건사업의 85%에 해당하는 부분은 할리버튼사의 자회사인 위 켈로그브라운앤루트사에 맡기는 것으로 자동적으로 결정되었다. 미국 부통령 딕체니는 최근 할리버튼사를 위한 거래를 조정한 사실이 밝혀졌는데, 미영연합군이 미사일 공격을 시작하기 전인 2002. 10. 미국 국방부는 이라크 유전에 대한 통제권을 할리버튼사에 제공하는 방안을 비밀리에 논의한 것이다. 


이와 같은 미국과 영국의 자원 수탈 및 재건사업을 이용한 이라크에 대한 약탈은 이라크전범국제민중법정헌장 제3조 제4항 2호 하.목이 규정한 범죄에 해당한다.



3.      무차별 구금과 구금시설 내에서의 고문과 학대


미영연합군은 저항세력 색출이라는 명목으로 무고한 이라크인들을 무차별적이고 광범위하게 불법 체포, 감금을 하였고, 그에 따라 수용소에 수용된 이라크 인들에 대하여 차마 상상하기 어려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가혹행위와 고문, 성폭행을 자행하여 전 인류에 충격을 안겨 주었다.


가.     미영연합군의 무차별 체포, 구금


1949. 8. 12. 제네바 제4협약 제78조는 “점령국은 안전보장상의 절대적 이유로 피보호자들에 관한 안전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될 경우에라도, 주거지정 또는 억류이상의 조치를 취할 수 없다. 그러한 주거지정 또는 억류에 관한 결정은 점령국이 본 조약 규정에 따라 정하는 일정한 절차에 쫓아서 행하여야 한다. 이 절차는 관계 당사자의 소청권을 포함하여야 한다. 소청에 대하여는 가능한 한 신속한 결정이 있어야 한다. 주거지정 또는 억류의 결정이 확인되었을 경우에는 동 결정은 점령국이 설치한 권한있는 기관에 의하여 필요하다면 매 6개월마다 정기적으로 심사를 받아야 한다. 주거지정의 처분을 받고 자기 고향을 떠날 것을 요구받은 피보호자들은 본 협약 제39조의 완전한 혜택을 향유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미영연합군은 저항세력 색출을 이유로 이라크의 민가에 침입하여 민간인들을 무차별적으로 체포하고 그 과정에서 여성과 아이들에 대한 심각한 정도의 폭력을 가했고, 심지어 재물을 절취, 손괴하였다. 미군에 의해 구금된 이라크인들 중 최고 90% 정도는 미군의 실수로 체포된 경우이고, 구금된 이라크인들은 자신의 체포이유를 묻는 것조차 금지되어 있다. 또한 이들 민간인들은 전쟁포로들과 분류되지 않은 채 포로들과 함께 구금시설에 구금되어 있고, 구금 후 1년이 넘게 아무런 혐의도 없이 형사기소 등의 절차가 진행되지 않거나 체포, 구금 이후 실종된 사례도 발생했다.


미국 800헌병 여단에 의해 관리되는 여러 포로수용시설은 OGAs(Other Government Agencies)들에서 보내지는 포로들을 수용한다. 그러나 그들에 대한 어떠한 자료도, 그들의 신분도, 심지어 구금이유도 모른 채 포로들을 수용하고 있다. 아부그라이브 수용소의 320 헌병 대대도 OGAs를 위해 적어도 한차례에 6 ~ 8명 가량씩 위와 같이 아무런 자료 없는 포로를 수용하기도 했다. 불법 체포, 구금된 이라크인들의 사례를 보면 다음과 같다.


○ 바그다드의 아부 야신 알자위 셰이크는 미군이 전 지역을 탱크와 장갑차로 포위한 상태에서 모스크로 들어와 금요기도를 하며 미영연합군에 대한 나쁜 말을 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체포되어 구금되었다. 구금된 동안 침대와 담요도 제공받지 못했고, 기도를 위한 목욕도 허용되지 않았으며, 머리에 두건이 씌워졌다.


○ 미군은 사마라의 셰이크 아메드 야히르 알사마라이의 가게에 갑작스레 들이닥쳐 두 아들을 체포해 갔고, 돈과 자동차를 2대를 약탈해갔다.


○ 미군은 바그다드에서 빠져 나가고 있던 미니버스에 갑자기 총을 쏘았고, 이에 후세인 살렘 클레프의 맏아들이 버스 위에 올라가 평화의 상징으로 백색기를 흔들어도 미군은 총격을 가해 다리에 부상을 당했으며 미군이 부른 의료 헬기에 테워진 후 부상자는 실종되었다.


○ 바그다드에 거주하는 나짐 압둘 후세인(당시 52세)은 헬륨 풍선을 만드는 데 쓰이는 물질을 미군이 폭발물 제조에 쓰일 수 있다는 이유로 아부그라이브 수용소로 끌고 갔고, 테러범이라는 사실을 자백할 것, 자백하지 않으면 병사들을 보내 부인을 성폭행할 것이라고 협박당했다. 섭씨 50도가 넘는 텐트에 수용하면서도 겨울옷과 모자, 장갑 및 추가 담요를 지급받을 뿐이었고, 모래바닥에 밀쳐 넘어뜨리고 조사관에 의해 얼굴이 모래에 짓이겨 졌다.


이와 같은 미영연합군의 불법 체포 구금행위는 위의 제네바 제4협약에 위반하는 것은 물론 이라크전범국제민중법정헌장 제3조 제3항 5호, 제4항 1호 바.목, 사.목, 자.목이 규정한 범죄에 해당한다.



나.     의도적이고 조직적인 수용소에서의 고문, 가혹행위, 성폭행


위와 같이 불법 구금된 이라크 민간인들에 대하여 미영연합군은 위 제네바 제4협약의 절차를 이행하지 않은 것은 물론 의도적이고 조직적인 고문, 가혹행위, 성폭행을 자행했다.


미군, 영국군은 모든 기지마다 하나씩의 구금시설을 가지고 있다. 이 수용소들에서는 피구금자들의 실종, 피구금자들에 대한 폭행, 물과 음식을 주지 않는 가혹행위, 가족과의 면회 불허 등 수용자에 대한 부당한 대우가 끊이지 않고 조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바트 당원인 나젬 사둔 하타브(Nagem sadoon hatab)는 2003. 4.경 ‘White Horse'부대 내 구금시설에 수용되었다가 미군 간수들의 폭행과 질식 유발행위로 2003. 6. 5. 사망했다.


수용자에 대한 고문, 가혹행위가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후세인 정권시절 정치범을 수용하던 아부그라이브 수용소의 수용자 고문, 가혹행위, 성폭행 사실이 드러나며 밝혀졌다.


        (1) 아부그라이브 수용소에서 이루어진 고문과 가혹행위, 성폭행의 내용


후세인 정권 시절 정치범을 수용하던 아부그라이브 수용소에는 2004. 5. 현재 약 15,000명의 이라크 포로 및 민간인들이 수용되어 있다. 아부그라이브 수용소는 바그다드 인근에 위치한 감옥으로 이라크 최대 규모의 수용시설이다. 바그다드 함락 후 미영연합군은 이 수용소에서 수많은 이라크인들을 상대로 잔혹한 육체적, 정신적 고문을 가했다. 이 고문은 후에 밝혀진 것처럼 악의적이고, 조직적으로 자행된 것이었다.


아부그라이브 수용소에서 벌어진 수용자 고문, 가혹행위, 성폭행들을 조사하여 발표된 미육군 조사보고서에 의하면 아부그라이브 수용소에서의 고문과 가혹행위가 전해진 후 안토니오 M. 타구마 소장에 의하여 작성되어 발표된 미육군 조사보고서에 의하면 아부그라이브 수용소에서 이루어진 가혹행위는 다음과 같다.


○ 포로를 주먹으로 가격한 행위

○ 손바닥으로 포로의 뺨을 때리는 행위

○ 발로 포로를 차는 행위

○ 제소자의 벗은 발에 뛰어 올라간 행위

○ 남녀 포로들을 발가벗겨 비디오를 찍거나 사진을 찍은 행위

○ 강제적으로 포로들에게 다양한 성행위 자세를 취하게 하여 사진을 찍은 행위

○ 동시에 여러 포로들의 옷을 벗겨 강제로 며칠동안 옷을 벗은 상태로 있게 한 행위

○ 옷을 벗긴 남성 포로에게 강제로 여성을 속옷을 입게 한 행위

○ 여러 명의 남성 포로들에게 사진이나 비디오를 찍으며 강제로 자위행위를 하도록 한 행위

○ 옷을 벗긴 남성포로들을 쌓아놓고 그 위에 뛰어 올라간 행위

○ 머리에 모래주머니를 이게 하고 손가락과 발가락, 성기에 전선을 감은 채 식량상자에 벌거벗은 포로를 올라서게 하고 전기고문을 하는 것처럼 위협한 행위

○ 한 포로에게 15세의 동료 포로를 강제로 강간하게 한 뒤 그 포로의 다리 위에 ‘나는 강간범입니다’라고 글을 쓴 행위

○ 개 목걸이나 가죽 끈을 벌거벗은 포로의 목에 걸고 durns 병사에게 사진을 찍도록 포즈를 취하게 한 행위

○ 한 헌병간수가 여성포로와 성관계를 갖은 행위

○ 입에 재갈을 물리지 않은 군견들을 풀어 포로들을 겁주고 놀라게 한 행위 및 적어도 한 차례 이상 개가 포로를 물어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 행위

○ 죽은 이라크 재소자의 사진을 찍은 행위

○ 화학 전구를 깨서 인이 함유된 액체를 재소자에게 쏟아 부은 행위

○ 장전된 9mm 피스톨로 재소자를 위협한 행위

○ 벌거벗을 재소자에게 찬물을 쏟아 부은 행위

○ 빗자루 손잡이와 의자로 재소자를 구타한 행위

○ 남성포로를 강간하겠다고 위협한 행위

○ 헌병 간수가 감방벽에 부딪혀 상처입은 포로의 상처를 바늘로 찌르는 것을 허용한 행위

○ 포로의 항문에 전구와 빗자루 손잡이를 쑤셔 넣은 행위


        (2) 여성 수용자에 대한 성적학대


미군은 아부그라이브 수용소에 대한 수용자 고문 및 학대와 관련한 자체 진상조사를 진행했고, 남성 수용자뿐만 아니라 여성 수용자에 대하여도 성폭행 및 학대행위가 자행되었다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2003. 10. 아부그라이브 수용소에는 약 30명의 여성이 투옥되어 있었고, 2004. 5. 초경에도 5명의 여성이 투옥되어 있었다. 미군 교도관이 수감되어 있는 여성을 감방 바닥에서 주기적으로 성폭행했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고, 미군에게 강간을 당한 이라크 여성은 임신한 후 행방이 묘연하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으며 이라크 여성을 벌겨 벗긴 상태에서 사진 및 비디오 촬영까지 했다는 보고도 있다.


아부그라이브 수용소에 수감된 한 여성은 성폭행을 당해 48시간 동안 의식을 잃었고, 미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루 17차례나 성폭행을 당했다.


미군 병사는 여성 수감자 남편으로 하여금 아내가 성폭행당하는 장면을 강제로 지켜보도록 하고 여성 수감자의 머리채를 잡은 채 옷을 벗기고 성폭행을 하였다. 이후 수용소에서 풀려난 위 여성 수감자는 네 아이의 어머니였지만 남편의 얼굴을 볼 수 없어 자살했다.


        (3) 미영연합군이 구금된 이라크 민간인, 포로에 대하여 가한 가혹행위 등은 의도적이고, 조직적인 행위였다.


미영연합군의 고문과 학대는 단지 포로의 대우에 관한 제네바 협정을 교육받지 못한 일부 병사의 일탈행위가 아니었다. 조직적인 고문 및 가혹행위였던 것이다.


위의 미육군 조사보고서는 “군정보기관의 심문관과 미 정부기관의 심문관들은 헌병 간수들에게 포로들의 심문이 잘 이루어질 수 있는 육체적, 정신적 조건을 만들도록 적극 요구했다”고 적시하고 있다.


제372헌병 중대의 데이비스(Javal S. Davis) 하사는 “나는 군정보기관이 관할하고 있는 1A 사동에 있는 포로들이 다양한 행위를 하도록 강요받는 것을 보았다. 그것에 대해 나는 도덕적으로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 물론 그 사동은 군정보기관의 관할에 있었다. 정보기관 사람들은 성적 학대행위에 대하여 승인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 이 자를 풀어 우리에게 데리고 오라, 확실히 그는 끔찍한 밤을 보내게 될 것이다. 그는 확실히 그 일을 당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 내가 이해하는 바에 따르면 정보기관 장교들은 다음과 같은 찬사를 받기도 했다. ‘잘 했어, 그들은 진짜 빨리 무너지고 있어. 모든 질문에 다 대답을 하더군. 그들은 고급정보를 주고 있어. 마침내 말이야. 그리고 계속 잘 하라구. 그렇게 밀어붙여’”라고 증언했다.


미국인 통역관 나칼라(Adel L. Nakhla)는 “그들은 포로들이 배로 미끄러지게 하고 올라 뛰어 오르내리는 등 이상한 행위들을 하게 했다. 포로들에게 물을 뿌려 젓게 하고 그들을 게이와 같은 식으로 불렀다. 그들은 동성애 하는 것을 즐기는 듯 했다. 그 때 포로들은 손과 발에 수갑과 족쇄가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는 그들을 서로 포개어 쌓기 시작했다.”고 이야기 했다.


제800헌병 여단 사령관 제니스 카핀스키(Jenis Karpiski) 준장은 정보기관의 개입과 관련 “정보기관 대원들이 헌병들에게 포로들에 대한 성적학대를 하도록 아이디어를 제공해 주었다”고 언급했다.


미군 당국자들은 “심문기술자들은 관타나모 섬에서 심문방법에 제약이 없는 ‘적군 전투원들’을 심문하는 역할을 담당해 왔으며 이들은 지난해 가을 이라크의 아부그라이브 감옥에 파견되어 3개월 동안 그곳 정보부대원들을 훈련시켰다”고 밝히고, 이라크 주둔 미군 군사당국자도 “5개의 심문기술자 팀이 지난해(2003년) 10월 심문기술을 전수하기 위해 관타나모 섬으로부터 이라크의 아부그라이브로 파견되었다”고 밝혔다.


위 증언들과 심문기술자의 파견 등을 종합해 보면 미군이 수용자들로부터 정보를 캐기 위해 비인도적인 심문 기술인 육체적․정신적․종교적인 학대방법을 이용해 왔고, 이러한 행위는 미국 정부에 의한 지시에 따른 것이거나 미국 정부의 용인 아래 조직적으로 자행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점은 미국정부가 일찍이 이라크 포로들을 제네바 협약의 적용을 받지 않아 심문방법에 제한이 없는 적군 전투원이라는 주장을 해왔던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한편, 영국군 또한 이라크 포로 및 민간인 수용자에 대한 고문 및 가혹행위를 자행했다. 영국군 병사는 알몸의 이라크 포로 용의자 머리에 두건을 씌운 채 소총 개머리판으로 두들겨 팼고, 꿇어앉은 용의자에게 오줌을 누기도 했다. 또한 영국군은 피구금자 한 명을 8시간 동안 취조했고, 피구금자의 이빨이 모두 부러지고 턱뼈가 나간 뒤 달리는 트럭 밖으로 내던져 버렸다. 이라크 수용자를 상대로 킥복싱 연습까지 했고, 주먹과 발로 누가 수용자들을 멀리 날려 보내는지 시합을 했다. 한편, 영국군에 의해 폭행당한, 이라크 한 호텔의 접수계원이었던 바사 무사는 폭행으로 인한 상처가 악화되어 사망했다.


이와 같이 악의적이고 조직적으로 자행된 미영연합군의 수용소 내에서의 이라크인들에 대한 고문, 가혹행위, 성폭행 등의 행위는 이라크전범국제민중법정헌장 제3조 제3항 6호, 7호, 9호, 제4항 1호 나.목, 2호 러.목, 머.목이 규정한 범죄에 해당한다.



4.      팔루자 학살


미영연합군은 2004. 4. 4.부터 같은 해 5. 1.까지 약 26일 동안 팔루자로 통하는 모든 길목을 봉쇄한 채 팔루자에 있는 모든 이라크인을 대상으로 무차별 학살을 감행했다(제1차 팔루자 학살). 한편 조지부시가 미국대선에서 재집권에 성공한 직후인 2004. 11. 8.부터 같은 달 13.까지 팔루자에 대하여 단일 작전으로는 베트남전 이후 최대규모의 무차별 공습과 시가전을 통해 팔루자를 함락시켰고 그 과정에서 역시 팔루자에 있는 모든 이라크인들을 상대로 무차별적인 학살을 감행했다(제2차 팔루자 학살).


팔루자는 바그다드 서쪽 40km 지점에 위치한 인구 약 20만명의 도시이다. 수니파의 집중주거지역인 이곳은 수니 삼각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미영연합군은 수니삼각지대를 후세인 정권하에 활동했던 핵심세력들이 잔존하고 있는 지역이자, 모든 무장봉기의 진앙지로 보고 있다.


가.     제1차 팔루자 학살


        (1) 학살의 배경


2004. 3. 8. 정권이양을 위한 과도헌법이 통과되었다. 과도헌법에 대하여는 그 반발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었는데 미군정에 줄곧 반대하여 온 젊은 시아파 지도자 모크타다 알 사드르 뿐만 아니라 미군정에 대해 온건한 입장을 보여 왔던 시아파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알 시스타니까지 연방제에 대한 반대의 의사를 분명히 하는 등 미군정과 다른 입장을 발표했다.


2004. 3. 28. 미국이 주도하는 연합군 임시행정처(CPA)가 시아파 종교소식지인 알 하우자에 대하여 60일간의 정간조치를 했다. 이후 2004. 4. 3. 알 사드르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황에서 다음 날인 4. 4. 나자프 모스크 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이던 시위대를 향해 미영연합군은 발포를 하였다. 이 발포로 이 때 21명의 사망자와 20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하는 사건이 터졌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이라크 내 시위양상은 무장 항쟁으로 바뀌었고, 이를 진압하려는 미군의 공세는 강화되었으며 이에 무장 봉기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미영연합군은 이라크 지배를 확고히 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던 중 팔루자 학살을 단행할 단초를 제공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2004. 3. 31. 팔루자에서 저항세력의 공격을 받아 미국 민간 경호업체 직원 4명이 사망하였는데 이 중 시체 2구를 누군가가 도살된 양처럼 다리위에 매달아 놓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비록 이들은 민간 경호업체 안전담당 직원들로 미군에 협조하여 이라크에 대한 정보 수집을 해왔다는 의심도 제기되었지만, 군인이 아닌 민간인에 대한 사망과 언론에 공개된 사체에 대한 모욕 장면이 미영연합군의 보복행위에 대한 명분을 제공한 것이다.


        (2) 미군은 팔루자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습을 통해 대규모 학살을 자행했다.


제1차 팔루자 학살 동안 미군은 한번도 팔루자 내 진입로를 통해 체크포인트를 넘지 못했다. 팔루자 시내에 진입이 불가능했던 미군은 F-15, F-16 전투기와 아파치 헬기를 동원하여 팔루자 시내 전체에 연일 무차별 폭격을 감행했다. 군사목표물에 대한 정밀폭격은 없었고, 오직 민간인에 대한 대량 살상만이 존재했다.


미군은 2004. 4. 7. 코브라 공격용 헬기와 F-16 전투기를 이용하여 알 나잘(Al Nazzal)에 5백 파운드의 폭탄을 쏟아 부었고, 이 폭격으로 이라크 민간인 40명 이상이 희생되었고, 압델 아지즈 알 사마아이 모스크가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었다. 위 민간인 40명은 폭격을 피해 모스크로 피신한 것이었으나 그 자리에서 그대로 모두 죽었다. 또한 미군은 알 줄란에 있는 민가에 폭격하였고, 그 폭격으로 20명 이상의 가족이 몰살당했다.


2004. 4. 9. 과도통치위원회에서는 팔루자에서 자행한 미군의 폭격으로 5일 동안 최소 400명 이상 죽고, 1,000명 이상 부상당했다고 공식 발표 했다. 이름이 확인된 사망자는 모두 112명이었고, 나머지는 신원조차 확인되지 않았다.


        (3) 미군은 군사목표물이 아닌 병원까지 의도적으로 파괴했다.


미군은 팔루자에 대한 학살이 진행되는 동안 공습을 통해 팔루자에 있는 탈리브 병원을 파괴했고, 국립 팔루자 병원으로 가는 다리를 모두 봉쇄하였다. 팔루자에는 위 두개의 큰 병원이 있으나 위와 같은 공습에 의한 파괴와 봉쇄로 팔루자 주민들은 부상자들을 모스크나 오래된 건물로 옮겨 치료해야만 했다. 또한 미군은 엠뷸런스의 운전사를 공격하여 임산부를 후송하던 것을 막았고, 구호요원들이 부상자들에 대한 헌혈을 위해 혈액을 싣고 있던 차량마저 막아서기도 했다.


        (4) 미군은 저격수를 배치하여 움직이는 모든 물체에 무차별적인 사격을 가하여 팔루자 주민들을 살상했다.


미군은 2004. 4. 8. 팔루자 주민들에게 “8시간 이내에 팔루자를 떠나지 않으면 무자헤딘으로 간주하겠다”고 발표하였고, 팔루자 진입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헬기를 이용하여 팔루자 시내 건물의 옥상에 저격수를 투입했고, 저격수들은 팔루자 거리에서 움직이는 주민들 및 모든 물체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조준 사격을 가하여 주민들을 살해했다. 한편, 미군은 F-16 전투기를 이용하여 민간인에 대한 정조준 발포를 하기도 했다.


2004. 4. 5. 엠뷸런스에 대하여 미군 저격수는 조준사격을 가했고, 임산부를 후송하던 앰뷸런스 운전수는 위 조준 사격으로 부상당했다. 같은 날 미군 저격수는 토마토를 사러 나간 이라크 민간인 1명을 조준 사격하여 살해했다.


2004. 4. 6. 무하메드 자밀의 사촌을 조준 사격으로 사살하였고, 민가에 대한 로켓 공격을 가하여 가옥이 파괴했다.


2004. 4. 13. 미군 저격수는 아흐메트 노와프의 친구에 대하여 머리 이마에 조준 사격을 가하여 사살하였고, 자신의 집 앞에서 이마에 명중되어 죽어가는 아들을 구하기 위해 집밖으로 뛰어 나오던 아버지 역시 같은 자리에서 미군 저격수의 조준 사격에 의하여 살해되었다.


        (5) 미군은 이슬람 문화의 상징인 모스크마저 파괴했다.


미군은 2004. 4. 7. 정밀유도 폭탄인 헬파이어 미사일 3발을 이용하여 알 나잘에 있는 압둘 아지즈 알 사마아이 모스크에 폭격을 가했고, 이로 인하여 압둘 아지즈 알 사마아이 모스크는 완전히 파괴되었으며, 그 안에 있던 40명의 팔루자 주민들도 모두 사망했다.


        (6) 주민의 강제이주


미군은 2004. 4. 8. 팔루자 주민들에게 “8시간 이내에 팔루자를 떠나지 않으면 무자헤딘으로 간주하겠다”고 발표했고, 이후 팔루자 내에서 움직이는 모든 팔루자 주민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조준 사살했다.


이러한 미군의 소개명령으로 인하여 팔루자 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20만명의 주민 중 3분의 1이상이 강제적으로 퇴거조치를 당했고, 이러한 퇴거조치는 봉쇄가 해제된 2004. 5. 1.까지 계속되었다. 한편, 이러한 소개명령에 근거하여 미군이 열어준 팔루자 서쪽 도로는 사막으로 향한 길이었고, 이 사막마저 미군에 의해 봉쇄되어 있어 팔루자의 피난민들은 최소 하루 또는 이틀 통안 사막에 갇혀 있어야 했다. 피난민을 이루는 대다수는 여자와 어린이들이었는데, 이들은 식수부족, 뜨거운 태양빛, 수십 킬로미터에 걸친 인파 등으로 심각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나.     제2차 팔루자 학살


        (1) 제2차 팔루자 학살의 배경


미군은 여론의 저항에 부딪쳐 제1차 팔루자 학살을 중단한 이후에도 저항세력의 근거지인 팔루자에 대한 대규모 공습의 필요성을 여러 차례 언급해 왔었다. 미국 대선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 이를 주저해 온 것이었다. 그러나 미군은 피고인 부시의 재선이 결정된 직후 정치적 부담이 사라지자 즉시 대규모 공습에 나섰다. 공습의 목적은 저항세력의 핵심지도부 체포에 있는 것이 아니라 2005년 1월의 이라크 총선 실시를 위한 치안 확보에 있었다. 즉 수많은 인명피해를 감수하고서라도 괴뢰정권의 안정화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전략적인 학살이었다.


        (2) 팔루자에서 자행된 제2차 학살


미국의 대선이 끝난 직후 이라크 임시정부는 2004. 11. 7. 이라크 전역에 60일간의 비상사태를 선포했고, 팔루자에는 24시간 통행금지령을 발령하여 15세 ~ 55세 남자들의 바깥  출입과 차량 통행을 금지시켰다. 팔루자로 통하는 모든 도로는 차단되었다. 전단지와 확성기 등을 통해 팔루자 내 모든 시민은 즉각 팔루자를 떠나야 하며 떠나지 않는 시민은 모두 저항세력으로 간주하겠다고 경고했다. 2004. 11. 8. 밤 팔루자에 해병대 병력이 투입되며 학살이 시작됐다.


제2차 팔루자 학살에 동원된 병력은 미군 1만 2천명과 이라크 방위군 2만명을 포함한 약 3만 2천여명으로 베트남전 이후 단일 작전으로는 최대 규모 병력이 동원되었다. 공습개시 당시 30만명의 팔루자 시민 중 약 6만명이 팔루자 시내에 잔류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같은 달 13. 미군은 팔루자 지역 대부분에 대한 점령을 완료했다. 31명의 미군과 6명의 이라크군이 숨졌고, 이라크인은 약 1,200명이 죽고 200여명이 포로로 잡혔다. 그러나 저항세력의 핵심지도부는 이미 팔루자를 빠져 나간 상태였고, 무고한 이라크 시민의 상당수가 희생되었다.


정확한 피해 상황에 대하여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현재까지 알려진 제2차 팔루자 학살 과정에서 발생한 구체적인 피해는 다음과 같다.


미국 제1해병사단 소속 병사는 2004. 11. 13. 팔루자에 있는 한 사원에서 부상당한 저항세력 조직원을 발견한 뒤 ‘여기 죽은 척 하고 있다’고 외치며 부상당한 저항세력의 조직원의 상체 부분을 향해 총 쏘았다. 그 조직원은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미군은 이라크 민간인 일가족 7명을 살해했고, 그 안에는 이제 3개월 된 영아도 포함되어 있다.


미군은 친척을 방문하기 위해 차량을 타고 라마디로 향하고 있던 탈리브(당시 33세)의 차량을 공격하였고, 그 공격으로 탈리브의 아내 알람(당시 26세), 아들인 오마르(당시 7세)와 바라트(당시 3세), 막내 딸 자이나브, 사촌 로키아 등 5명이 사망했다.


미군이 2004. 4., 2004. 11. 이라크 팔루자 시에서 자행한 두 차례에 걸친 학살 행위는 이라크전범국제민중법정헌장 제3조 제2항 1호, 2호, 3호, 제3항 1호, 2호, 4호, 10호, 제4항 1호 가.목, 다.목, 라.목, 2호 가.목, 나.목, 다.목, 라.목, 사.목, 아.목, 카.목이 규정한 범죄에 해당한다.



한편, 피고인 조지 부시, 피고인 토니 블레어는 각 자국 군대를 통할하는 지위에 있는 자들로서 공모하여, 2003. 3. 20. 이라크 침공 이전부터 마치 이라크 대통령 사담 후세인이 이른바 911테러를 자행한 테러단체 알 카에다와 연계되어 있다거나, 위 사담 후세인이 보유하고 있는 대량살상무기로 미국과 영국을 공격할지 모른다는 등의 허위의 정치적 공세를 가하여 미국 및 영국 군대의 군인들로 하여금 이라크 및 그 국민들에 대한 근거 없는 적개심을 키우게 하고, 나아가 실제 이라크 침공 이후 현재까지 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위 제1항 내지 제4항과 같은 범죄행위를 자행하도록 명령, 교사, 방조한 것이다.



Ⅶ.    침략전쟁에 대한 대한민국의 이라크 파병


피고인 노무현은 미영연합군의 이라크 침공이 시작된 2003. 3. 20. 대국민담화를 통해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한 지지 입장을 표명했고, 같은 달 21. 소집된 임시 국무회의에서 미국과 동맹국군의 기지 운용에 필요한 지원을 위하여 600여명 규모의 1개 건설공병지원단과 미국과 동맹국에 대한 진료를 위하여 100명 이내의 의료지원단을 이라크 현지에 파견하는 내용의 “국군부대의 대이라크 전쟁 파견 동의안”을 의결하여 파병 결정을 하였다. 피고인 노무현의 이러한 결정은 2003. 4. 2.자로 국회의 동의를 받아 효력을 발생하였다. 대한민국은 같은 해 5. 이라크에 건설공병지원단, 의료지원단 675명을 파병하였다. 한편, 대한민국 국회는 2004. 2. 이라크에 3,000명 규모의 추가파병을 동의하였고, 같은 해 8. 파병하였으며, 대한민국 정부 국무회의에서는 이와 같은 대한민국 국군의 이라크 추가 파병과 이라크 전후 복구지원 경비 3,104억4,954만원을 2004년도 일반회계 예비비에서 지출할 것을 결의했다.


그 결과 현재 3,953명의 대한민국 국군이 이라크에 주둔하고 있다.



1.      침략범죄로서의 파병


가.     이라크 침공에 대한 파병은 미국과 영국의 침략전쟁에 가담하는 것이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2003. 3. 20. 이라크 침공은 UN헌장이 정한 절차적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것이고, UN헌장의 기본 원칙인 주권존중의 원칙 및 무력사용금지원칙에 반하여 이라크의 주권과 영토, 정치적 독립을 무력으로 침탈한 침략범죄이다.


피고인 노무현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미국과 영국의 이라크 침공이 침략범죄에 해당한다는 사정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2003. 3. 20. 대국민담화를 통해 미영연합군의 이라크 침공이 이라크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이 실패로 돌아간 상황에서 대량살상무기의 조속한 제거를 위하여 이루어진 불가피한 조치라면서 미국과 영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한 지지입장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이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UN헌장에 위배되는 침략범죄라는 명백한 사실을 도외시한 것이다.


이라크 침공에 관하여 국제사회는 유례없는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고, 미국은 UN안전보장이사회에서조차 동의 받지 못했다. 미국의 입장을 지지한다는 피고인 노무현의 입장은, 미국이라는 강대국이 힘을 앞세워 국제법을 무시하고 범죄행위를 감행하는 데 동조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더욱이 건설공병대를 주축으로 하는 국군을 파병하여 침략군의 공격과 침투에 필요한 건설임무를 담당하게 함으로써 대한민국 국군으로 하여금 침략전쟁 수행에 필수적이고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도록 한 피고인 노무현의 파병 결정은 미국에 대한 단순한 지지를 넘어서서 대한민국을 침략범죄의 공동수행자로 만든 것이다.


아래에서는 피고인 노무현이 이라크에 대한민국 국군을 파병하며 주장한 명분이 얼마나 기만적인 허구인지에 관하여 하나하나 논박하고자 한다.


나.     이라크 파병은 대한민국의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피고인 노무현은 대국민담화를 통해 미국의 대 이라크 전쟁에 대한 파병결정과 미국의 입장을 지지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국익에 부합한다고 주장하였다.


우선 침략범죄인 미영연합군의 2003. 3. 20. 이라크 침공에 가담한 피고인 노무현의 파병결정도 역시 침략범죄로서 국제법적으로 불법이고, 아무런 법적 근거가 될 수 없는 추상적인 국익의 개념만으로는 결단코 그 불법성이 치유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지지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국익에 부합하는 것도 아니다. 최근 한반도 주변 상황으로 볼 때 이라크 전쟁을 계기로 미국의 힘의 공세가 더욱 가속화되며 북미간의 긴장을 고조시킬 것으로 보이는데, 피고인 노무현이 미국의 무분별한 힘의 공세에 동조하는 것은 피고인 노무현이 표방해온 남북화해와 평화번영정책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더구나 피고인 노무현의 파병결정은 세계 각 나라와 시민사회에게 대한민국이 침략전쟁의 수행국이라는 깊은 인상을 심어주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세계 양심세력에게 한반도 평화를 위한 협조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만들었다. 이와 같은 위험성을 증대시키는 것은 그 자체로 대한민국의 국가 이익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최근 피고인 노무현은 피고인 조지 부시와의 정상회담을 통해 북핵 6자회담에서 대한민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임을 확인하였지만, 이는 피고인 조지 부시가 2기 행정부 수립 전에 북핵문제를 방치할 수 없으면서도 북핵문제에 관하여 실질적으로 개입하기 어려운 시기에 확인한 내용에 불과할 뿐, 궁극적으로 북핵문제 해결의 전권이 대한민국에게 주어진 것은 아니다.


그 외에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파병동의안에 의하면 전후 이라크 지역에서 취할 경제적 이익도 상당히 중요한 파병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를 파병에 따른 국익에 포함시키는 것은 석유자원의 독점과 경제적 이익 획득을 위하여 침략전쟁을 감행한 미국의 약탈적 외교방식을 그대로 따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다.     이라크는 아직도 전쟁 상태이다.


정부의 2차 이라크 파병동의안은 그 목적을 “전후 이라크의 신속한 평화정착과 재건지원”으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전후 이라크”라는 표현은 2003. 5. 피고인 조지 부시가 종전을 선언한 것에 그 근거를 두고 있는 듯 하다. 전쟁이 끝났으므로 이제 남은 과제는 “평화정착”과 “재건지원”이라는 합리적인 사고의 발현이다.


그러나 문제는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미국은 종전을 선언한지 1년 6개월이 더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전쟁 초기보다 오히려 더 많은 13만8천명 가량의 미군을 주둔시키고 있고, 교대 병력이 투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병력을 철수하지 않고 있을 뿐더러 이것도 모자라 2004. 12. 1. 미국 국방부는 미군 12,000명명을 늘려 이라크 주둔 미군을 15만명으로 증강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군은 현재 하루 1천 6백회 순찰업무와 일주일 평균 180회의 공격을 수행하고 있고, 미군 전투기는 하루 150회 가량, 저항세력 거점을 격멸하기 위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라크 팔루자에 대해서는 두 번에 걸쳐 전면적이고 무차별적인 학살을 감행하기도 하였다. 위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이라크는 법률적인 의미에서도 전쟁 상황이며 실질적인 의미에서도 군사작전이 진행되고 있는 전쟁 상황인 것이다.  


또한 “이라크의 신속한 평화정착과 재건지원”과 “세계평화와 안정”을 위하여 추가파병을 원한다고 하면서도 동의안은 당사자라고 할 이라크를 언급조차 하지 있지 않았고, 세계평화를 위한 국제기구인 UN도 무시하였다는 문제가 있다. 동의안은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적 연대”에 동참한다며 이번 파병이 UN 결의안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요청에 따른 것임을 밝히고 있다.  


UN은 이라크 전쟁을 전후하여 이라크의 주권은 이라크인들에게 있다고 수차례 확인한데 이어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제1511호에서는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를 이라크 주권을 대표하는 기구로 확인한 바 있다. 실질적으로 권한이 제한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주권국가에 군대를 파견하려면 마땅히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의 요청 내지 승인이 있어야 한다. 한편 UN은 이미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제1483호에 따라 Special Representative on Iraq를 임명하여 이라크 재건과 평화유지에 따른 업무를 총괄하고 있고 결의 제1480호에 따라 UN Assistance Mission for Iraq를 구성한 바 있다. 무엇보다도 결의 제1511호는 “이라크의 안보와 안정에 기여하기 위해 통합사령부 아래의 다국적군을 허가”하고 UN 회원국들이 군사력 등을 다국적군에 지원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한국 정부의 파병은 적어도 이 결의안에 근거하였어야 하는 것이다. 


라.     한미상호방위조약도 대한민국 국군의 이라크 파병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또한 피고인 노무현의 파병결정은 한미동맹관계의 군사적 측면을 규율하는 기본 조약인 한미상호방위조약에도 위배된다. 피고인 노무현은 한미동맹관계의 중요성을 파병의 근거로 내세우지만, 한미상호방위조약도 국제평화와 UN의 결정을 존중할 것을 그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지, 동맹관계유지에 무조건적인 가치를 부여하고 있지 않다. 이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문언상으로도 분명하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전문은 “본 조약의 당사국(대한민국과 미국)은, 모든 국민과 모든 정부가 평화적으로 생활하고자 하는 희망을 재확인”하여, 한미동맹이 평화를 위한 동맹이어야 함을 대전제로 하고 있다. 또한 제1조에서 “당사국은 관련될지도 모르는 어떠한 국제적 분쟁이라도 국제적 평화와 안전과 정의를 위태롭게 하지 않는 방법으로 평화적 수단에 의하여 해결하고 또한 국제관계에 대하여 부담한 의무에 배치되는 방법으로 무력으로 위협하거나 무력을 행사함을 삼가할 것을 약속”하여, UN헌장에 위배되고 세계의 평화를 파괴하는 침략전쟁에 대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한미동맹의 당사국이기 이전에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구성원이고, 한미동맹관계 역시 국제사회의 약속인 UN헌장을 존중하는 전제 위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미동맹관계 유지가 피고인 노무현의 파병결정의 위법성을 제거할 명분이 될 수도 없다.



2.      파병으로 인한 행복추구권과 평화적 생존권의 침해


피고인 노무현에 의하여 결정되고, 대한민국 국회가 동의한 이라크 파병은 대한민국 국민의 행복추구권, 평화적 생존권, 생명권을 침해하였다. 또한 역사 이래 평화애호국으로 칭송받아온 대한민국 국민에게 침략 전쟁 수행국이라는 오명을 안겨 주었다.


대한민국 국군의 이라크 파병은 위와 같이 UN헌장 및 국제법 위반일 뿐만 아니라 중대한 헌법위반이다. 즉, 대한민국 헌법 전문, 제5조 제1항이 선언하고 있는 국제평화주의 및 침략적 전쟁 부인의 원칙 및 자위전쟁에 대한 파병만을 인정하는 제5조 제2항에 위배된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군 파병의 위헌성은 위와 같은 추상적 헌법원칙 위반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다음과 같이 대한민국 국민의 행복추구권 및 평화적 생존권을 구체적으로 침해했다.


가.     행복추구권 및 평화적 생존권


대한민국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행복추구권의 내용으로 생명권, 신체를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 자유로운 활동과 인격발현에 관한 권리, 평화적 생존권, 휴식권, 수면권, 일조권, 스포츠권 등이 포함된다고 일반적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 중 평화적 생존권이란 각 개인이 무력충돌과 살상에 휘말리지 않고 평화로운 삶을 누릴 권리를 말한다. 기본권 중 생명권이 가장 선차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것과 같이, 평화적 생존권 역시 행복추구권 가운데 선차적 위치에 있다. 무력충돌과 살상으로부터 자유롭지 아니하고는 언제든지 그 생명과 신체의 안전을 빼앗기거나 위협당할 수 있고, 이러한 경우 행복추구권의 다른 내용들을 실현하는 것은 역시 기대할 수 없다.


평화적 생존권은 각 개인이 가해자가 되지 않음으로써 그 자신의 인간성과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평화를 상실하지 않을 권리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타인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을 침해하지 않을 권리는, 최고의 가치로서 지위를 가지는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외경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상호 공존하는 인간 본래의 생활방식에 따라 스스로 다른 인간을 살상하지 아니함으로써 자신과 상대방의 인간으로서의 존재와 존엄을 지키려는 것은, 그 자체로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반영한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그가 속한 국가 정책에 따른 무력충돌로 상대국민의 생명 또는 안전을 침해하게 될 경우, 인간성의 기본을 구성하는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외경은 파괴되고, 크게 흔들리게 된다. 기본적 인간성의 파괴는 행복추구권의 다른 내용도 실현하기 어렵게 만든다.


나.     평화적 생존권의 형성과 보장


근대헌법 형성 이후 일어난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개인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이 그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그가 속한 국가와 상대 국가의 정책, 그를 둘러싼 국제사회와 국제기구의 입장에 의하여 좌우되는 현실을 여실히 증명하였다. 각국의 이해관계와 종교적․정치적 입장의 차이에 발생한 전쟁은 막강한 폭발력을 가진 현대식 무기의 사용으로 타국민에 대한 대량살상을 몰고 왔다. 교전에 직접 참가하지 않은 일반인 누구라도 언제든지 살상될 수 있는 현대전의 양상은 교전당사국 국민들을 죽음의 공포에 몰아넣는 한편 전쟁에 대한 환멸과 인간성의 파괴를 가져왔다. 그 과정에서 평화적 생존권은 개인의 인간성 유지와 행복추구를 위한 전제로서 주권국가와 국제사회에 의하여 필수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것임이 분명해 졌고,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 목록에 포함되기에 이른 것이다. 평화적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로는 전쟁의 포기와 군비의 금지, 침략적 전쟁 부인, 평화교란행위 금지, 양심적 병역거부권 인정 등을 들 수 있다.


다.     대한민국 국군의 이라크 파병에 따른 평화적 생존권 침해


        (1) 대한민국 국민의 양심과 인간성에 대한 심대한 충격


피고인 노무현의 이라크 파병 결정은 대한민국 국군을 침략전쟁에 나서도록 함으로써, 국민들로 하여금 그 의사에 반하여 불법적 무력충돌에 휘말리게 하였고 침략국가의 국민이라는 오명을 씌웠다. 또한 대한민국이 국민들로부터 납부받은 세금으로 이라크 국민들의 생존과 신체의 안전을 위협하는데 동참함으로써, 타인의 생명을 존중하고 타인과 공존하는 데서 자신의 인간다움을 확인하려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양심과 인간성에 심각한 타격을 가했다.


        (2) 테러방지법 제정 추진, 기본적 인권 보장의 후퇴 조짐


미영연합군의 2003. 3. 20. 이라크 침공 이후 이라크 내에서 대한민국 국민에 대한 수차례의 납치사건이 있었고, 오무전기 직원들에 대한 피격으로 2명의 사망자와 2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으며, 김선일씨에 대한 참수 살해 사건이 있었음에도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를 무기력하게 지켜봐야만 했다. 게다가 대한민국 국군의 파병 이후에는 대한민국 국내에서 조차 테러를 당하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공포심이 조성되었다. 이에 테러방지법을 제정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반세기 동안 힘들게 일구어낸 기본적 인권 보장의 틀마저 흔들리는 상황에 놓여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2년 테러방지법안을 제출한 바 있고, 당시 테러방지법안은 국가정보원장 산하에 대테러센터를 설치하는 것을 골자로 하여 국가정보원에 대하여 테러활동에 관한 주요 권한을 부여하고 있었다. 그러나 비밀정보기관에 대하여 통제되지 않는 권한 부여는 심각한 인권침해 상황을 야기할 수 있다는 각계의 반발에 테러방지법안은 제16대 국회와 함께 폐기되었다. 그러던 중 대한민국 제17대 국회의 다수당인 열린우리당에서 다시 테러방집법안을 들고 나왔다. 이번에는 국가대테러위원회를 재정경제부, 국방부, 외교부 등 12개 부처장관과 국가정보원장 등이 함께 위원으로 참여하고, 대테러센터의 장은 국무총리의 제청에 따라 대통령이 임명하며 대테러센터를 국무총리 산하에 두는 등 그간 지적되어 온 인권침해요소를 제거했다는 것이고, 따라서 2004. 정기국회에서 처리하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이와 같은 주장은 허위에 불과한 것으로 비록 대테러센터는 국무총리 산하에 둔다고 하지만 실질적인 대테러활동에 관한 권한은 다시 국가정보원으로 집중시키고 있어 그간의 인권 침해적 요소는 하나도 제거된 것이 없다. 즉, 현재 추진 중인 테러방지법안은 그 시행령을 통해 테러에 관한 실질적인 첩보와 테러정보수집, 테러 용의자 색출에 관한 권한을 국가정보원에 부여하도록 하고 있다. 이전 테러방지법안이 대테러활동과 관련하여 군 병력의 출동까지 예정하고, 감청 및 통신 제한 사유를 확대하며 외국인에 대한 사찰활동 등을 가능하게 하는 가운데 국가정보원에서 그 주도적 권한을 행사하도록 하는 등 전반적인 인권침해요소를 두루 내포하고 있었던 것처럼 현재 추진되고 있는 테러방지법안 역시 이전 테러방지법안과 비교하여 실질적으로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다.


        (3) 외국인(특히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인권침해


한편, 대한민국 국군의 이라크 파병은 대한민국에 체류 중인 외국인(특히 외국인 노동자)들이 대한민국 국민들과 함께 어울려 평화롭게 살아갈 권리마저 앗아가고 있다. 대한민국 법무부 내부지침은 반한활동이라는 개념을 만들었고, 반한활동을 한 것으로 인정되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집중단속, 강제추방하고 있는데, 위 지침에는 단순히 이라크 파병이나 불법체류 단속 등 대한민국의 정책을 반대하는 활동까지 반한활동에 포함시키고 있어 외국인(노동자)의 인권탄압을 위해 얼마든지 악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다. 2004. 10.경 언론들은 어느 이슬람 사원이 반한단체이며 이 단체의 지도부들이 국정원에 의해 강제 출국된 사실을 보도했는데, 이는 아무런 증거도 없는, 한 의원이 흘린 허위의 정보였음이 밝혀졌다. 물론 이러한 사건은 파병으로 인해 테러위협에 시달리는 대한민국이 무고한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가하는 무수한 테러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대한민국 국군의 파병이후 종교적 집회를 여는 것마저 쉽지 않아 혼자서 기도를 하는 등 대한민국에 의해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취급받은 인권침해를 받고 있다.


라.     국민의 생명권 보호의무 위반, 오무전기 직원들과 김선일씨의 피해


수많은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된 파병의 결과 파병철회를 요구하는 이라크 저항세력에 의해 김선일씨가 살해되고, 이라크 저항세력의 공격으로 오무전기 직원 2명이 살해되고 2명이 부상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1) 김선일씨 피랍 전후의 상황


가나무역 소속 직원 김선일씨가 저항세력에 의해 납치된 시점은 2004. 5. 31.로 알려졌다. 대한민국 정부는 같은 해 6. 18. 추가 파병을 공식 결정했고, 그 다음날인 6. 19. 미군은 팔루자 민간인 주거지역에 공습을 가하였으며, 구호를 하려던 사람들을 향해 확인사살을 하여 최소 20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들은 2004. 6. 28.에 예정되었던 괴뢰정부에 대한 이라크 민정이양을 심각한 위협으로 느끼고 있던 이라크 저항세력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음이 분명하다.


대한민국 정부는 김선일씨 피랍 전부터 미국, 영국에 이은 3위 규모의 추가파병을 공공연히 약속하고 있었다. 이러한 추가 파병약속은 많은 파병국들이 철수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미국의 이라크 지배에 대한 확고하고도 강력한 지지표명이었다.


저항세력은 2004. 4.부터 점령군에 대한 대대적인 반격을 하였고, 미국은 2003. 3. 이라크 침공 때보다 더 많은 숫자의 미군을 주둔시키고 있는 실질적인 전쟁상태였으며, 2004. 4. 미군 사망자 수는 2003. 3. ~ 4.의 사망자 합계를 능가하고 있었다. 또한 이라크 내 외국인에 대한 테러는 심각한 지경에 이르러 2004. 5. 8. 미국 민간용역업체 직원 닉 버그가 피랍되어 참수당하는 장면이 인터넷으로 전세계에 중계되었고, 같은 해 6. 12. 미국인 폴 존슨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에서 피랍되어 같은 달 18. 참수된 시체로 발견되는 등의 사건이 잇따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즉, 김선일씨 피랍 당시는 이라크에 거주하는 대한민국 국민에 대한 정부의 보호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었다.


        (2) 이라크 정세 왜곡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라크인들이 국군의 파병을 환영하고 있으며 이라크 내 상황을 안정적이라고 보고하는 등 이라크 정세에 대한 사실을 고의적으로 왜곡하려 하였다. 아부그라이브 수용소의 수용자 고문, 학대나 팔루자 학살이 알려지기 이전인 2004. 3. ~ 4.초, 연합군 임시행정처(CPA)의 여론조사 결과 이라크 내 미군 및 연합군의 주둔을 반대한다는 의견이 82%에 달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는 파병결정 및 파병지의 선정과정 등에 있어 이러한 사실을 감추려고만 하였다. 2003. 11. 30. 오무전기 직원 김만수, 곽경해씨가 이라크 저항세력에 의해 피살되는 사건이 발생한 이후 대한민국 정부가 보여준 태도 역시 그러했다. 오무전기 직원들이 피살되기 약 20일 전인 2003. 11. 11. 피고인 노무현은 3천명 규모의 추가 파병지침을 내렸다. 위 김만수, 곽경해씨는 피살당하기 직전 2킬로미터 떨어진 마을에서 길을 묻는 과정에서 주민으로부터 한국 사람이냐는 질문을 받았고, 사살된 무장단체의 일원이 스스로 한국 사람을 쏘았다고 사망 직전 진술했다는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무장단체는 위 오무전기 직원들이 대한민국 국민임을 알고 대한민국 국군 파병에 대한 반발로 김만수, 곽경해씨를 의도적으로 살해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는 이 사건이 오히려 파병정책에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하여 임재석씨에게 한국 사람이냐는 질문을 받았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말 것을 요구하고, 무장단체의 일원의 위와 같은 진술을 접하고도 미군 당국이 수사하고 있으니 알 길이 없다면서 적극적으로 사실을 은폐하려고 하였다.


더구나 2004. 4. 이라크 내 저항세력의 대대적 반격 직후인 같은 해 6. 21. 김선일씨의 피랍사실이 보도된 후에도 대한민국 정부는 안이한 대응으로 일관했다. 대한민국 정부가 기울인 노력이라고는 이라크 방송에 출연해 파병하게 될 자이툰 부대가 평화재건 부대임을 홍보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특전사와 해병대 등 전투병이 주류인 자이툰 부대가 이라크의 평화재건을 위한 부대라고 생각하는 이라크인은 거의 없었다.


        (3) 추가파병의 선언과 파병강행


대한민국 정부의 테러 위험에 대한 안이한 대처는 오무전기 직원들 및 김선일씨 피살사건 책임에 관한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다. 침략국가의 국민은 테러로부터 안전할 수 없으며, 안전에 대한 위험성은 심지어 국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침략전쟁을 주도한 미국, 영국 외에 무장세력에 의해 참수되어 살해된 최초의 외국인이 바로 한국인이었다는 사실은 세 번째 규모의 파병국인 우리 국민의 생명권이 구체적으로 위협받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게다가 김선일씨가 납치된 상황에서 무장세력을 향해 추가파병의 확고한 원칙을 재확인하는 대한민국의 강경한 대응은 국민에 대한 보호 의무를 완전히 저버린 무분별한 처사였다. 무장단체는 미국, 영국의 침략전쟁에 대한 대한민국 국군의 파병결정을 철회하라는 것 외에 다른 요구를 하지 않았다.


이라크 저항세력들의 김선일씨 살해나 오무전기 직원들에 대한 공격은 민간인에 대한 반인도적 행위로서 그 어떠한 이유로도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추가파병은 수만 명의 무고한 이라크 민중의 목숨을 앗아간 침략전쟁에 동참하는 범죄행위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참수라는 방법을 동원한 패륜적 살해 위협은 부당하지만, 파병철회라는 요구 자체는 정당한 것이었다. 따라서 국제법적으로 위법한 파병을 저지하려는 저항세력의 요구에 대해 대한민국 정부가 이라크 국민과 대한민국 국민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해야 했던 유일한 선택은 국제법을 존중하는 파병철회였다. 결국 위법한 파병을 강행한 대한민국 정부는 침략전쟁에 동참함으로써 국민에 대한 생명권 보호의무를 위반하고 행복추구권과 평화적 생존권을 침해한 것이다.


이와 같이 미영연합군이 2003. 3. 20. 대규모 무차별 공습과 폭격으로 이라크를 침공한 시점부터 미국과 영국의 침공을 지지하고, 미국과 영국의 파병요청을 거부하지 못한 채 애매모호하고 막연한 대한민국의 국익과 전후 이라크의 평화재건, 굳건한 한미동맹관계유지를 위해 파병한다는 결정을 한 피고인 노무현의 행위는, 대한민국 국군을 통할하는 최고 책임자이자 침략전쟁을 부인하고, 국제평화주의를 추구할 것임을 대내외에 널리 선언한 주권국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대한민국 국민에게 침략전쟁의 수행자라는 씻을 수 없는 오명을 안겨 주었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에 의하여 보호받고 평화적 생존권을 보장받아야 할 대한민국 국민을 예정된 죽음으로 내몬 것에 다름 아니다. 결국 피고인 노무현의 이라크 파병 결정은 이라크전범국제민중법정헌장 제3조 제1항에 해당하는 침략범죄를 감행한 미국과 영국의 침략범죄행위에 대한 방조에 해당한다.


                                2004.     1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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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식 나경운 나루 나명희 나미향 나상인 나선주 나성희 나세웅 나수아 나영섭 나영정 나우진 나재희 나진규 나철수 나하나 나해니 남경화 남궁미혜 남궁은 남국이란 남궁현 남기남 남기혁 남길현 남만희 남상윤 남선영 남선진 남승균 남유선 남윤경 남윤희 남은임 남지연 남지영 남진영 남현선 남혜경 남희태 너랜 노경수 노경주 노과훈 노귀섭 노기순 노만호 노미화 노민 노순석 노영란 노영실 노영애 노영환 노은희 노을 노정순 노정원 노정현 노종극 노종필 노준식 노한샘 노향옥 노혁 노형균 노혜숙 노효정 누은미 느림


단현석 달로가요 달리 도경 도경만 도숙정 동소심 두효철 들풀


라선경 라용희 레이 류귀애 류기애 류동훈 류미경 류미례 류병수 류봉식 류사비나 류선희 류영훈 류은숙 류정렬 류정식 류정은 류지현 류천수 류한승 류현희 류혜인 류진호 리병도


마성식 맑스철학연구 맹관호 맹광희 맹보명 맹신재 명우 명효영 명희 모성룡 모은정 모준규 無名人 무영 무토 문경 문규현 문규현 문문주 문미라 문민수 문병원 문병호 문복기 문상린 문상린 문설희 문성용 문성욱 문성이 문성진 문성희 문성희 문세경 문소림 문연종 문재영 문종석 문정옥 문주현 문창근 문헌준 문현주 문현준 문혜정 문수희 문희태 묻지마세요 미니 미류 미진 민경선 민동훈 민미선 민병학 민성환 민시화 민은영 민인엽 민재미 민정연 민지혜 민지훈


박가영 박건영 박가현 박건희 박경남 박경미 박경배 박경서 박경석 박경선 박경은 박경일 박경진 박경희 박경희 박광우 박광욱 박광욱 박근식 박근필 박근혜 박기범 박기원 박기호 박기훈 박길선 박길수 박남준 박남준 박다영 박단비 박대균 박대성 박대희 박대희 박도석 박도은 박도자 박동민 박동수 박동일 박동환 박두남 박래군 박만호 박명복 박명하 박문영 박명호 박명화 박문칠 박미경 박미라 박미라 박미련 박미애 박미애 박미현 박미현 박미현 박미혜 박미화 박민서 박민선 박민수 박민주 박민주 박민지 박민철 박배자 박배진 박범숙 박병길 박병남 박병석 박병섭 박북실 박분희 박삼식 박상국 박상규 박상용 박상용 박상욱 박상웅 박상윤 박상현 박상희 박서희 박석근 박석진 박선미 박선아 박선영 박선우 박성서 박성숙 박성주 박성준 박성준 박성현 박성호 박성호 박성화 박성희 박세용 박세준 박소연 박소영 박소영 박송우 박수성 박수정 박수형 박숙영 박순남 박순희 박신규 박신영 박아름 박아름 박양순 박연미 박연수 박영 박영규 박영규 박영미 박영민 박영삼 박영선 박영숙 박영애 박영재 박영진 박영호 박영환 박영희 박예린 박예지 박완 박용 박용신 박용준 박용진 박우람 박원경 박유민 박유선 박유연 박윤미 박윤애 박윤정 박은경 박은미 박은민 박은정 박은주 박은진 박의영 박이선우 박인선 박인섭 박인순 박인웅 박일성 박재순 박재용 박재우 박재원 박재형 박재환 박재흥 박정아 박정연 박정연 박정은 박정주 박정은 박정향 박정호 박정희 박종국 박종국 박종삼 박종성 박종수 박종숙 박종익 박종일 박종탁 박종필 박종호 박종희 박주영 박주영 박주완 박주현 박준도 박준성 박준혁 박준현 박준형 박지민 박지선 박지성 박지영 박지수 박지영 박지영 박지영 박지영 박지원 박지혜 박지훈 박진 박진 박진규 박진업 박진욱 박진희 박차욱 박찬국 박찬수 박찬호 박찬희 박창훈 박채진호 박천순 박천일 박철 박철군 박철균 박철우 박철호 박초롱 박최정기 박춘종 박충건 박태준 박태호 박하순 박한나 박한동 박한종 박해룡 박해욱 박햇님 박현 박현석 박현정 박현주 박형석 박형인 박형헙 박혜린 박혜미 박혜선 박혜인 박혜정 박혜정 박혜진 박효신 박효정 박효정 박효진 박효진 박홍란 박훈영 박흥순 박희연 박희임 박희정 반태경 밥 방강수 방남철 방미경 방민희 방병헌 방선영 방용승 방종빈 방현 방희섭 배강연 배경내 배경석 배경인 배명식 배민희 배복주 배상월 배선규 배성무 배성문 배성미 배성진 배성호 배성화 배수진 배영옥 배영희 배우리 배정란 배정현 배종수 배주영 배지선 배현영 배혜미 배희정 백경록 백광애 백기현 백길자 백남순 백다현 백동민 백동훈 백동훈 백무현 백문기 백사비나 백소원 백수연 백순희 백승범 백승욱 백영민 백은솔 백일주 백정희 백철 백태양 백혜성 범용 변규백 변기정 변라정 변상돈 변상우 변종선 변연식 변우백 변정관 변진옥 변태준 변혜진 변홍철 별음자리표 보리 보쳉 붉은일반


상우 상윤 서경국 서경덕 서광선 서동민 서동진 서동희 서미경 서미정 서민태 서범준 서보경 서보일 서성열 서순양 서승일 서연주 서영주 서영진 서영화 서우석 서원영 서은종 서은희 서장수 서정란 서정명 서정미 서정은 서정철 서정호 서정훈 서지원 서지희 서창호 서진영 서한석 서효주 석미영 석미영 석지영 선장원 설영욱 설은주 설정은 설정화 성기태 성기환 성시봉 성유미 성은미 성은선 성인 성정영 성현란 세형 소국현 소생영 소영호 소옥연 소용환 소은화 손가람 손명수 손명학 손문희 손미정 손병숙 손보경 손상열 손서연 손선주 손선희 손세리 손승이 손용규 손우람 손은숙 손은진 손일곤 손정보 손정숙 손정숙 송정현 손지아 손지원 손진아 손태성 손태용 손형우 송강현주 송경영 송경진 송관욱 송광국 송기찬 송남규 송만철 송명관 송명관 송문석 송미숙 송병걸 송병섭 송병승 송상현 송석근 송선주 송수환 송승호 송승회 송연주 송연진 송영일 송원영 송원찬 송유나 송유니 송익석 송인애 송재복 송재정 송정미 송정용 송정희 송종운 송지애 송지연 송지영 송지현 송창학 송치웅 송한내 송한수 송해임 송현섭 송현숙 신강 신경아 신경현 신경혜 신경화 신광수 신대섭 신도식 신동진 신동하 신동혁 신머루 신명호 신문자 신미영 신민예 신민찬 신상규 신선아 신성균 신수미 신수빈 신수희 신순희 신용관 신윤숙 신윤철 신은영 신은이 신은정 신은주 신임숙 신정숙 신정숙 신정아 신정원 신정환 신종훈 신진주 신춘길 신춘길 신행호 신현숙 신혜민 신혜연 신효숭 신희선 심규관 심규환 심기섭 심미석 심미혜 심병곤 심병찬 심상범 심숙영 심연규 심영민 심영보 심영은 심윤수 심은하 심은희 심전호 심주이 심주현 심한보 심혜진 심혜진 심희재 심희철


안경호 안그라미 안기옥 안길수 안길호 안나현 안동섭 안동춘 안명덕 안명자 안미나 안미란 안미현 안미혜 안병모 안병우 안병주 안보영 안상용 안성민 안소현 안소희 안애경 안영란 안오순 안용정 안원영 안유미 안은경 안은정 안은주 안인기 안재형 안정호 안종기 안주연 안태정 안태종 안해용 안혜진 안홍열 안홍태 안효선 안효진 알리하마드 야루 양경오 양규서 양규선 양규헌 양도원 양동인 양동일 양동현 양명국 양명희 양미라 양민재 양석주 양소진 양승숙 양승조 양승호 양승호 양승훈 양애경 양오남 양은정 양은지 양자원 양재우 양정승 양정현 양준상 양태진 양태진 양한솔 양행법 양혜진 양희근 양희준 엄다빈 엄병천 엄성준 엄수진 엄익기 엄주영 엄지영 엄태현 엄태현 여상훈 여성오 여은정 여임동 여정민 여준규 여찬황 여혜경 연기실 연영석 염경석 염미선 염성태 염창근 염환 영준 예전옥 오건호 오경만 오경선 오경애 오광진 오기주 오길석 오덕영 오동환 오두희 오명희 오미란 오미숙 오민혜 오병규 오병우 오병일 오병주 오병현 오병환 오보배 오상규 오상용 오상훈 오선명 오선미 오선실 오성찬 오세득 오세라 오세영 오세윤 오세창 오세혁 오세혁 오세형 오수연 오수영 오수진 오수현 오승현 오승화 오시온 오영수 오영수 오영숙 오영은 오용화 오윤희 오은경 오은실 오은진 오자영 오자영 오재창 오정희 오주영 오준희 오지혜 오진원 오창현 오하라츠나키 오한나 오현근 오현석 오현태 오혜민 오혜선 오환태 오희선 옥동구 옥석천 옥은재 옥치영 왕성환 용혜랑 우경자 우기쁨 우동국 우미아 우병국 우석균 우성만 우지용 원권식 원권식 원선미 원선욱 원요환 원인실 원종현 원춘희 원하연 원학운 위순심 위창희 유경남 유경순 유경아 유경혜 유광식 유기림 유기만 유기수 유기주 유기철 유나경 유남희 유덕화 유미애 유병수 유병희 유봉하 유부곤 유석원 유석준 유선영 유성렬 유성순 유성주 유성진 유성훈 유세리 유세정 유소연 유승현 유연숙 유연아 유영주 유영화 유웅선 유윤래 유은숙 유의선 유인수 유인숙 유인재 유인환 유재건 유재덕 유재언 유재은 유재춘 유재호 유재훈 유주영 유주희 유준하 유지은 유진옥 유진희 유창렬 유철수 유태영 유한이 유현웅 유현주 유현준 유형도 유혜경 유혜린 유혜선 유혜영 유희주 윤건 윤귀성 윤나경 윤다림 윤덕환 윤동호 윤라헬 윤미경 윤미향 윤민호 윤복현 윤상일 윤상필 윤석철 윤석현 윤선 윤선아 윤선화 윤성근 윤성엽 윤성환 윤소민 윤수민 윤신혜 윤여미 윤여벙 윤여병 윤여운 윤영 윤영선 윤영진 용영태 윤용근 윤용덕 윤용철 윤유희 윤은주 윤정 윤정민 윤정욱 윤정향 윤정현 윤종원 윤지원 윤창섭 윤현배 윤형호 윤형환 윤혜영 윤홍일 윤홍주 윤화용 윤효정 윤희명 윤희만 은동원 은승준 은종복 은혜준 이가영 이가영 이가이 이강복 이강택 이건호 이경규 이경묵 이경미 이경미 이경선 이경아 이경애 이경애 이경은 이경은 이경임 이경재 이경종 이경준 이경진 이경호 이경호 이경호 이경화 이경화 이경훈 이경훈 이경희 이경희 이경희 이계삼 이공순 이공은나 이관성 이관원 이광국 이광민 이광민 이광성 이광원 이광은 이광혁 이광현 이광호 이귀선 이귀순 이규남 이규남 이규명 이규성 이규영 이규진 이규철 이근복 이근정 이금동 이금선 이금자 이금호 이금희 이기곤 이기선 이기연 이기은 이기중 이기호 이기호 이나리 이나리 이난이 이난희 이남래 이남수 이노 이다배 이다예 이대인 이덕호 이덕희 이도한 이동교 이동기 이동민 이동산 이동식 이동엽 이동엽 이동준 이동창 이동은 이동철 이동현 이동호 이동환 이동훈 이동훈 이동희 이동희 이두리 이득행 이로사 이리나 이림은주 이명석 이명순 이명식 이명식 이명욱 이명희 이모세 이미경 이미나 이미랑 이미미 이미숙 이미숙 이미영 이미자 이미정 이미정 이미혜 이민섭 이민아 이민영 이민영 이민영 이민용 이민우 이민우 이민정 이민정 이민정 이민지 이민현 이반의경 이범근 이병근 이병덕 이병도 이병무 이병삼 이병옥 이병욱 이병진 이병태 이병헌 이병훈 이병훈 이보영 이복성 이상공 이상교 이상규 이상규 이상래 이상렬 이상미 이상민 이상섭 이상순 이상식 이상아 이상열 이상엽 이상영 이상원 이상윤 이상윤 이상재 이상준 이상진 이상진 이상혁 이상훈 이상훈 이상훈 이상희 이석범 이석운 이석현 이선년 이선미 이선미 이선미 이선미 이선아 이선영 이선영 이선영 이선윤 이선장 이선주 이선해 이선화 이선희 이성민 이성섭 이성실 이성옥 이성은 이성훈 이성희 이세영 이소라 이소연 이소은 이소은 이소형 이소희 이송이 이송희 이수경 이수남 이수동 이수완 이수정 이수종 이수진 이수정 이숙경 이숙경 이숙양 이숙현 이숙현 이순정 이순화 이슬 이슬기 이슬이 이승규 이승기 이승록 이승완 이승용 이승우 이승철 이승헌 이승현 이승현 이승호 이승훈 이승희 이아름 이아영 이안나 이연이 이영근 이영두 이영란 이영미 이영민 이영수 이영순 이영신 이영신 이영욱 이영주 이영주 이영진 이영철 이영호 이영환 이영환 이영희 이예슬 이예슬 이예연 이예지 이오순 이오이 이와중 이완순 이완표 이왕훈 이용건 이용덕 이용백 이용석 이용석 이용식 이용준 이용헌 이웅 이웅술 이웅표 이원 이원규 이원석 이원심 이원영 이원욱 이원재 이원준 이유리 이유민 이윤덕희 이윤미 이윤섭 이윤성 이윤숙 이윤영 이윤정 이윤정 이은경 이윤주 이윤희 이으뜸 이은경 이은미 이은숙 이은영 이은정 이은정 이은주 이은주 이은지 이은희 이은희 이은희 이응인 이의중 이의진 이이진아 이인규 이인숙 이인환 이자해 이자호 이장규 이장미 이장열 이재성 이재숙 이재숙 이재영 이재용 이재용 이재원 이재유 이재은 이재익 이재정 이재진 이재철 이재현 이정구 이정무 이정미 이정석 이정선 이정섭 이정숙 이정아 이정원 이정자 이정하 이정하 이정한 이정현 이정훈 이정희 이조성준 이종규 이종근 이종명 이종목 이종석 이종선 이종우 이종원 이종인 이종일 이종회 이종훈 이주미 이주봉 이주상 이주연 이주연 이주연 이주영 이주영 이주원 이주원 이주철 이주철 이주헌 이주현 이주현 이주현 이주형 이준섭 이준수 이준아 이준영 이준용 이준우 이준호 이준호 이준환 이준희 이준희 이중덕 이중희 이지만 이지선 이지섭 이지숙 이지연 이지연 이지영 이지영 이지영 이지영 이지영 이지영 이지영 이지영 이지웅 이지은 이지향 이지현 이지현 이지형 이지화 이지훈 이지희 이진규 이진상 이진석 이진선 이진성 이진숙 이진숙 이진실 이진아 이진영 이진의 이진형 이진호 이진호 이진홍 이진희 이진희 이찬수 이창근 이창기 이창석 이창수 이창우 이창인 이창희 이창희 이채린 이천종 이철 이철 이철호 이철호 이철희 이철희 이청 이청원 이청혜 이치승 이치원 이태식 이태형 이태훈 이태희 이토현 이필영 이한나 이한나 이한철 이항근 이항서 이해동 이해숙 이행남 이향미 이혁영 이현 이현경 이현근 이현담 이현대 이현미 이현미 이현미 이현블 이현석 이현선 이현수 이현숙 이현아 이현영 이현영 이현영 이현정 이현정 이현주 이현지 이현희 이혜경 이혜규 이혜련 이혜리 이혜림 이혜미 이혜미 이혜성 이혜순 이혜영 이혜영 이혜진 이혜한 이호성 이호흔 이홍구 이홍렬 이홍재 이화 이화섭 이화숙 이화옥 이화옥 이화진 이환춘 이활련 이황우 이황현아 이효린 이효정 이후 이후탁 이훈 이훈구 이훈희 이흥세 이희수 이희정 이희정 이희주 인성주 인주이 임가영 임동현 임병섭 임병희 임병희 임보라 임상빈 임서영 임성민 임성우 임성윤 임성초 임세연 임세환 임소순 임소원 임수연 임숙희 임승관 임승철 임연신 임연신 임연재 임연재 임영하 임윤희 임은경 임은아 임은혜 임은희 임이화 임인상 임인자 임재성 임재우 임재은 임정수 임정호 임정호 임정훈 임정훈 임정희 임종연 임종완 임지인 임진국 임진호 임태국 임태균 임태성 임필수 임하림 임현정 임혜경 임희동 임희영


장경도 장경도 장경식 장경욱 장고순 장귀연 장규덕 장규진 장근영 장대규 장대현 장덕량 장덕일 장동현 장명수 장명순 장미진 장미현 장병윤 장보임 장봉주 장분연 장성대 장성아 장성희 장세원 장세향 장수일 장순원 장순이 장승필 장시원 장신기 장연주 장연호 장연희 장영민 장영숙 장영예 장용석 장용창 장원광 장원석 장원석 장원아 장윤경 장은희 장정남 장정숙 장정옥 장종택 장지은 장진 장진석 장진성 장진혁 장하연 장해진 장현숙 장현정 장혜빈 장혜옥 장혜정 장효자 재련 재영 재용풀 전 전경봉 전광식 전규찬 전김명훈 전두현 전문기 전병덕 전병좌 전보람 전복례 전상우 전성우 전선웅 전성원 전소희 전수경 전순덕 전순철 전승로 전승엽 전연무 전영규 전영란 전영복 전영숙 전영재 전오수 전왕규 전욱 전재현 전점례 전정일 전정임 전종익 전준형 전지석 전창미 전초롱 전태연 전현주 전혜민 전혜숙 전혜영 전홍섭 전홍준 정경석 정경희 정계연 정관성 정관용 정기석 정다영 정다운 정다정 정다정 정다정 정달현 정대영 정덕순 정동욱 정동화 정록호 정명아 정미경 정미영 정미자 정민수 정민식 정민아 정민용 정박기선 정병두 정병수 정병준 정병필 정보근 정보임 정보희 정봉남 정봉우 정봉희 정상영 정상용 정상현 정상호 정상훈 정석만 정선미 정선희 정선희 정성주 정성태 정성훈 정세동 정수경 정수근 정수빈 정수정 정수희 정순녀 정순환 정승현 정신 정아름 정여은 정연용 정연택 정연훈 정영섭 정영수 정영수 정영우 정영자 정옥상 정욜 정용문 정용욱 정용욱 정용윤 정용윤 정용진 정우익 정운희 정원석 정원섭 정유진 정윤화 정은선 정은하 정은혜 정의봉 정의석 정의일 정의행 정이은정 정인숙 정인숙 정인호 정재덕 정재숙 정재용 정재원 정전진 정점순 정정민 정정우 정종길 정종숙 정종현 정주연 정주연 정주희 정준현 정지영 정지윤 정지윤 정지현 정진덕 정진숙 정진영 정진주 정진호 정찬호 정찬호 정춘호 정태란 정태령 정태봉 정태연 정태영 정한섭 정한식 정해선 정현경 정현수 정현승 정현정 정현주 정현철 정형진 정혜경 정혜경 정혜민 정혜민 정혜영 정혜윤 정혜인 정혜진 정혜진 정혜희 정호 정호선 정호연 정홍조 정화 정효선 정효진 정희선 정희숙 정희철 제성모 제정화 조가영 조건삼 조경민 조경희 조권희 조귀동 조규용 조길성 조남석 조남성 조남수 조남휘 조대환 조덕휘 조동석 조동현 조명숙 조명제 조명희 조문익 조미선 조미선 조미선 조미숙 조미옥 조미옥 조미자 조미진 조민아 조민준 조민희 조산선 조새롬 조선 조선 조선철 조성경 조성근 조성진 조성찬 조성호 조세훈 조승조 조약골 조영오 조영태 조영훈 조윤미 조윤미 조윤성 조윤식 조윤환 조은상 조은샘 조은섭 조은정 조은주 조은하 조은홍 조인수 조일범 조정모 조정묵 조정선 조정호 조지영 조지영 조창현 조춘재 조현두 조현아 조현아 조현옥 조현조 조형규 조형식 조형택 조혜란 조혜욱 조홍 조효선 조효선 조효숙 조희은 주강수 주말란 주맹하 주미순 주병영 주소연 주승일 주영수 주영아 주용기 주우열 주이소영 주인호 주재노 주재노 주제준 주지희 주해인 주향미 주현주 주형은 주화옥 지광범 지미선 지숙영 지영 지영 지은경 지은정 지은정 지은희 지자영 지주은 지택영 지택영 지혜리 지희 진경수 진광일 진기병 진기혁 진동혁 진상은 진상임 진선모 진선영 진선행 진영민 진영선 진영우 진영종 진예진 진유미 진인표 진재연 진주화 진창희 진창희 진한솔 진현아 진효주 진흙 차우영


차정림 차헌호 채경환 채규정 채미예 채민 채송아 채수민 채윤태 채진숙 천경록 천문호 천미현 천보선 천연옥 천영화 천용길 천하나 천현식 천혜숙 최강은 최광범 최광혁 최광현 최기수 최기일 최김재연 최대현 최덕희 최도연 최동건 최동호 최동호 최명재 최문희 최미경 최미경 최미선 최미헌 최민 최민 최민기 최민순 최민순 최민임 최민정 최민호 최민호 최병문 최병호 최보라 최상숙 최석원 최석주 최석호 최석호 최선명 최선미 최성구 최성봉 최성서 최성준 최세라 최소연 최소영 최소정 최소희 최수정 최순악 최승묵 최승묵 최승엽 최승옥 최승원 최승현 최승희 최신애 최심애 최아람 최아영 최연정 최연훈 최영서 최영주 최영찬 최영택 최영화 최영훈 최예륜 최옥순 최용수 최용원 최용준 최용준 최용현 최우진 최운규 최원길 최원찬 최유미 최유민 최유정 최윤경 최윤순 최윤식 최윤정 최은봉 최은숙 최은정 최은혜 최인기 최인선 최인성 최인순 최인혜 최인화 최인화 최재수 최재숙 최재인 최재풍 최재훈 최재훈 최정규 최정남 최정민 최정수 최정식 최정애 최정우 최정현진 최종두 최종왕 최종호 최주연 최준영 최중대 최지연 최지연 최지영 최지훈 최진걸 최진미 최진성 최진아 최진우 최진하 최창원 최창준 최충언 최태하 최하나 최하영 최하예리 최혁 최현도 최현미 최현삼 최현아 최현아 최현정 최현희 최형린 최혜린 최호림 최홍권 최흥찬 최희진 추소정 추영호 추은정


탁경민 탁동철 탁솔애 탁혜영


표기석 표동훈 표미정 표순재 표연식 표은태 표준미 피영짐 피자매연대


하강주 하금철 하기송 하상모 하승우 하아람 하윤호 하재훈 하정구 하준철 하진희 하태훈 하효열 하효열 한경란 한경숙 한난석 한남수 한남숙 한대식 한동헌 한동훈 한동희 한명인 한민규 한민은 한상욱 한상준 한상진 한상철 한상호 한상호 한선남 한성우 한성인 한송이 한송희 한순옥 한승빈 한승욱 한승원 한승철 한아름 한애라 한영선 한영숙 한영진 한용열 한우진 한윤경 한윤옥 한이정희 한재홍 한정구 한정운 한정호 한정희 한종현 한지숙 한지영 한지원 한진 한진아 한태길  한태희 한혁 한혁 한현수 한혜연 한혜영 한혜영 함다니엘 함상민 함철기 함학식 허금옥 허동일 허범중 허양림 허영록 허완영 허요 허용만 허유경 허유진 허윤범 허윤석 허윤희 허은미 허정란 허정문 허종 허주현 허진만 허필자 허하자 허혜영 현순야 현승룡 현정희 현준 현필화 현희승 형미라 혜리 호성희 호순애 홍경남 홍경미 황관의 홍근수 홍기범 홍덕만 홍리나 홍명희 홍미희 홍민경 홍민정 홍상욱 홍서연 홍선 홍성규 홍성남 홍성임 홍송자 홍수경 홍수민 홍숙자 홍순봉 홍승용 홍승이 홍승현 홍신원 홍양훈 홍예은 홍우철 홍윤아 홍윤표 홍은영 홍정영 홍주민 홍지연 홍지혜 홍진 홍진성 화소영 황건우 황광우 황규만 황규철 황금성 황기면 황동규 황두경 황비면 황삼 황석환 황선엽 황성남 황성문 황선문 황성원 황성효 황세연 황세욱 황소라 황수미 황수용 황수진 황승식 황승환 황영선 황영식 황영식 황예진 황윤길 황의식 황이레 확익순 황인군 황인정 황인철 황장희 황정남 황정욱 황정일 황정진 황주선 황주연 황준 황지나 황지성 황지현 황차은 황태규 황평우 황하늬 황해평 황현복 황희숙 효정


A~Z

Faye Hare ivan Jewel Naser no qkrgks RLAEHD


그 외 10분

2004. 12. 6. 현재 총 3,413명



기소대리인


김칠준, 이상희, 위대영





이라크전범국제민중법정   귀중

별지1

이라크 연표


○ 1958. 7. 14. 압달 카림 카셈이 거느리는 자유 장교단이 주도한 군사 쿠데타 발생, 이라크 군주제 전복, 공화정 수립

○ 1961. 카셈은 새로운 독립국가인 쿠웨이트가 이라크의 영토임을 주장, 카셈 정권에 대한 쿠르드족 무장봉기 발생

○ 1963. 2. 바스당 계 장군단의 쿠데타, 카셈 장군 살해, 좌익세력에 대한 대대적 숙청, 이라크는 쿠웨이트에 대한 영토 주장을 부정함

○ 1966. 쿠르드족과 이라크 정부군 휴전

○ 1968. 7. 17. 바크르 장군 중심으로 하는 군부와 바스당 온건파의 쿠데타, 바크르 장군이 대통령 겸 혁명지도 평의회(RCC) 의장에 취임, 전권 장악

○ 1972. 4. 바크르 정권 소련과 우호협력 조약 체결(기한 15년). 친 동구권 노선 강화, 같은 해 6. 이라크 석유(IPC) 국유화 추진, 1975.말까지 국내 모든 석유회사를 국유화

○ 1975. 3. 이란 팔레비 정권과 아르제 협정 체결, 이라크 영토 내 쿠르드 반군파에 대한 이란측의 지원을 중단시키는데 성공, 6월 이란과 국경확정조약 조인

○ 1979. 7. 16. 바크르 대통령 퇴임 직후 사담 후세인 혁명평의회 부의장 대통령 및 혁명평의회 의장에 취임

○ 1980. 9. 17. 사담 후세인 대통령은 이란의 이라크 국경지대 거주지역에 대한 폭격에 따라 1975년의 양국간의 국경분쟁 종식에 관한 아르제 협정 파기 선언, 같은 달 22. 이라크군은 이란군과 본격적인 전쟁 돌입, 합의를 폐기하고 이란 침공

○ 1982. 이란의 이라크에 대한 대규모 반격, 이라크에 빼앗긴 대부분의 영토 회복, 미국의 이라크 지지(1979. 호메이니의 이슬람 혁명 성공에 대한 두려움, 이슬람으로부터의 위협 강조 시작), 1979. 이란 학생들의 미 대사관 인질사건 발생

○ 1984. 미국과 이라크의 외교 관계 회복

○ 1986. UN 안전보장이사회, 이라크가 이란군에 대해 생화학신경가스 사용했음을 보고

○ 1986. ~ 1987. 이라크와 이란간 페르시아만에서의 전차 전쟁

○ 1988. 4. 이라크군 빼앗긴 땅을 회복하고 같은 해 8. 20. 정전에 합의

○ 1988. 쿠르드 족에 대한 ‘인종청소’를 목적으로 했던 ‘Anfal 작전’은 북부 이라크에서 약 5만명에서 10만명의 사망자를 발생케 함, 같은 해 3. 16. 이라크는 다량의 신경가스로 무장하고 쿠르드족 거주지역을 공격, 약 5천여명을 살해, 같은 해 8. 20. 이란과 휴전, 쿠웨이트에 대한 영토권 주장

○ 1990. 8. 2.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UN은 1991. 1. 15.까지 이라크에 철군할 것을 요구, 이라크에 대한 경제제재 부과, 같은 해 11. 29. UN은 쿠웨이트를 해방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수단을” 사용할 것을 결의

○ 1991. 1. 17. 이라크에 대한 대규모 공중폭격을 시발로 ‘사막의 폭풍’ 작전 개시, 같은 해 2. 24. 지상전 개시, 같은 달 27. 쿠웨이트 해방, 같은 해 3. 3. 이라크 항복

○ 1991. 이라크 휴전 후 약 2개월간 남부와 북부에서 일어난 봉기들에 대한 무력진압, 터키, 이란과의 국경지대에서 난민문제를 발생시킴, 같은 해 4. 이라크 북부에 비행금지구역이 지정됨, 이라크 생화학무기에 대한 UN특별위원회(UNSCOM) 설립

○ 1992. 비행금지구역 남부이라크까지 확대

○ 1993. 미국 대통령의 4월로 예정된 쿠웨이트 방문의 안전보장을 도모하기 위해 바그다드의 이라크 국가정보국에 대한 미국의 쿠르즈 미사일 공격

○ 1994. 대통령 및 국무총리에 사담 후세인 취임, 이라크 국가의회 쿠웨이트의 국경과 독립을 승인

○ 1994. ~ 1997. KDP와 그 경쟁세력인 쿠르드 애국동맹(PUK)의 내전, 1996. 8. 이라크 정부군은 북부비행금지구역으로 이동, KDP가 PUK를 제압하는 것을 지원

1995. 4. UN 결의안 제986호는 식량과 의약품을 구입하기 위한 이라크의 원유수출을 부분적으로 허용함, 이라크는 그 결의안을 같은 해 10.까지 거부

○ 1996. 이라크 민족회의의 쿠데타 실패

○ 1998. 무기사찰단의 강제추방, 같은 해 10. 16. ~ 19.간 미국과 영국의 이라크 폭격, 이른바 ‘사막의 여우’ 작전

○ 1999. UN 결의안 제1284호는 UNSCOM를 UN감시검증사찰위원회(UNMOVIC)로 대체 결의, 이라크는 결의안 거부

○ 2000. 1991년 이후 첫 이라크의 항공기 비행, 러시아, 아일랜드 그리고 여러 중동국가와의 상업적 항공선의 복구, 시리아의 대이라크 파이프라인 개방

○ 2001. 2. 미국과 영국의 이라크 폭격, 같은 해 5. 1981년 이후 최초로 터키와 철도선 재개통

○ 2002. 3. 아랍정상회의는 이라크에 대한 군사행위를 거부, 같은 해 5. UN 안전보장이사회의는 같은 달 14. 인도적 물품의 반입을 전면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한 대 이라크 제재조치 개정안(결의안 제1409호)을 만장일치로 채택, 같은 해 7. 이라크는 UN안전보장이사회에서 무기사찰을 거부할 것을 천명, 같은 해 8. UN은 이라크의 무기사찰단 수용 및 재입국요청을 거부

○ 2002. 10. 현 미국 대통령이 피고인 조지 부시의 사담 후세인 제거를 위한 군사행위를 미상하원이 승인


별지2

열화우라늄탄으로 인한 피해


<표1>열화우라늄에 노출된 군인들의 암 발생 변화

암의 종류  1992년  1993년  1994년  1995년  1996년  1997년  1998년  합계

림프종      10      16      75      85      80     106     82      449

백혈병      10      28      45      53      65      70     40      311

  폐암        4       6      39      40      41      40     40      210

  뇌암        1       2      20      30      35      40     34      162

  위암        2       6      13      15      10      10     10       66

고환암       -        1      5      10      12      15     15       58

골수암       2       3       5      10      10      12     15       57

췌장암       -        -       -       3      10      12     15       40

편동암       -        -       -       -       7      11     15        36

  간암        -        -       -       5      -       11     13        36

  합계       29       62    197     251     280     327    279     1,425


<표2>열화우라늄에 노출되지 않은 군인들의 암발생 변화

암의종류  1991년  1992년  1993년  1994년  1995년  1996년  1997년  합계

  폐암      2       6       7       15      11      23      14     78

  위암      -       10      11      17      14      13       -      65

백혈병     1       4       7       11      7       12       6     48

림프종     -        2      8       11      9        8       6      44

  간암      -        1      6        8      10       5       -      30

골수암             -       2       12      7        3       3      27

  뇌암      -        -      -         2      4        7      10      23

  합계      3       23     41       76     62       71      39      315


별지3

제1차 팔루자 학살로 사망한 피해자 명단(112명)


번호           이름                         성별 매장날짜(2004.)    거주지역

1      Alaa Abbas Al Jressy                      4. 16.          Al-jullan

2      Ali Abdul Ghareeb                         4. 10.          Al-jullan

3      Kefyeaa Khalaf Ali                         4. 10.          Al-jullan

4      Noor Mahmood Atea                       4. 18.          Al-jullan

5      Layla Mahmood Atea                      4. 18.          Al-jullan

6      Adowea Mahmood Atea                   4. 18.          Al-jullan

7      Soham Khalaf Ali                          4. 7.           Al Shohdaa

8      Ahmed Mokhlif Abid                      4. 9.           Al Shohdaa

9      Salim Ahmed Ali                           4. 12.          Al Shohdaa

10     Waleed Abdul Hameed Hamid            4. 12.          Al Nazzal

11     Salman Hadee Hasan                      4. 15.          Al Nazzal

12     Emad Mokhlif Jerdaan                      4. 11.          Al Nazzal

13     Sahera Nowaf Hamad                      4. 8.           Al Nazzal

14     Amera Saeed Mahmood                    4. 12.          Al Nazzal

15     Aswan Aadil Maky                        4. 18.          Al Askary

16     Waleed Khalid Maky                       4. 15.          Al Askary

17     Hany Hameed Mahmood                  4. 9.           Al Dubat

18     Saeed Ali Fadil                              4. 9.           Al Dubat

19     Hady Hasan Mahmood                    4. 15.          Al-jullan

20     Boshraa Khaleefa Hady                    4. 15.          Al Shorta

21     Sara Omer Ali                              4. 16.          Al Shorta

22     Qosay Samee Fayaad                       4. 14.          Al-jullan

23     Aadil Mohamed Fayaad                    4. 15.          Al-jullan

24     Othemaan Khaleefa Odawan               4. 14.          Al-jullan

25     Mohamed Khalar Salwan                   4. 12.          Al-jullan

26     Najy Jabbar Hashim                        4. 11.          Al-jullan

27     Moshrif Abid Hasan                       4. 11.          Al-jullan

28     Khaleel Hasoon Saad                       4. 8.           Al-jullan

29     Maher Rasheed Alwan                      4. 9.           Al-jullan

30     Sanaa Jabbar Hasan                        4. 8.           Al Nazzal

31     Shokrea Atea Aamer                       4. 8.           Al Nazzal

32     Khaola Omer Khaleel                      4. 12.          Al Nazzal

33     Eeman Marwan Ebraheem                 4. 15.          Al Shohdaa

34     Shaker Khalefa Ali                         4. 15.          Al Shohdaa

35     Hammady Hasan Amer                    4. 17.          Al Askary

36     Thekra Samee Hosen                       4. 17.          Al Askary

37     Qais Hosen Jaralah                         4. 18.          Al Askary

38     Sowsan Bader Kadim                      4, 18.          Al Askary

39     Alaa Abdula Staar Kheder                 4. 18.          Al Askary

40     Samea Ali Hosen Najy                      4. 18.          Al Askary

41     Sorya Kheder Hosen                       4. 16.          Al Dubat

42     Aamer Ali Omer Al Kobaigy              4. 16.          Al-jullan

43     Wasen Hady Najy                          4. 15.          Al-jullan

44     Taha Lateef Alwan                         4. 15.          Al Nazzal

45     Basema Salim Ebraheem                    4. 15.          Al Nazzal

46     Ahmed Hosen Abula                       4. 9.           Al Nazzal

47     Ahmed Abid Hosen Khalaf                4. 9.           Al Nazzal

48     Hosam Mohamed Majeed Al Esaoy        4. 9.           Al Nazzal

49     Sameera Khalid Hosen                      4. 9.           Al Nazzal

50     Aqeel Jassim Hekmat                      4. 9.           Al Nazzal

51     Unis Jassim Hommady                      4. 9.           Al Askary

52     Salam Majeed Hosen Khalaf               4. 9.           Al Askary

53     Ali Omar Khaleel Al Kobaicy              4. 9.           Al Askary

54     Sadea Ahmed Najy                         4. 9.           Al Askary

55     Saadon Ahmed Mnajid                      4. 9.           Al Askary

56     Alaa Esmaeel Yasen                        4. 9.           Al Dubat

57     Asaad Abid Ahmed                        4. 9.           Al Dubat

58     Ali Mohsen Omar Al Kobaicy              4. 10.          Al-jullan

59     Kareema Saad Hosen                       4. 10.          Al-jullan

60     Kareem Saad Hosen                        4. 10.          Al-jullan

61     Soaad Khalid Mohsin                      4. 10.          Al-jullan

62     Hosen Kadee Kadim                       4. 10.          Al-jullan

63     Nedal Kareem Towfeek                    4. 10.          Al-jullan

64     Jassim Abbas Salman                       4. 11.          Al-jullan

65     Nowfel Nowaf Abbas                      4. 11.          Al Nazzal

66     Amjad Mohanned Kassim                  4. 11.          Al Nazzal

67     Aliaa Abbas Alawee                        4. 11.          Al Nazzal

68     Salim Khakaf Hadee                       4. 11.          Al Nazzal

69     Ibraheem Salman Ahmed                   4. 9.           Al Nazzal

70     Ahmed Khalaf Masaod                      4. 9.           Al Nazzal

71     Saloan Mohamed Hadi                      4. 9.           Al Nazzal

72     Ammar Ali Saadon                         4. 9.           Al Nazzal

73     Ammar Saad Nasir                         4. 10.          Al Nazzal

74     Sameer Ahmed Khalaf                      4. 10.          Al Askary

75     Yasir Ahmed Khalaf                        4. 10.          Al Askary

76     Nasir Salman Mahed                       4. 10.          Al Askary

77     Saleem Mohamed Abdula                  4. 10.          Al Askary

78     Khamees Mohamed Saad                   4. 10.          Al Askary

79     Samer Ead Mikhlif                         4. 10.          Al-jullan

80     Madia Sahir Abid                          4. 10.          Al-jullan

81     Sohaiila Abbas Hamed                      4. 10.          Al-jullan

82     Kareema Mohammed Faiad                4. 11.          Al-jullan

83     Nadia Mohsen Eesa                        4. 11.          Al-jullan

84     Mohanned Abbas Ali                       4. 11.          Al-jullan

85     Riad Khalf Motannish                      4. 18.          Al-jullan

86     Sohair Mohamed Hadi                      4. 18.          Al-jullan

87     Mostafa Mohamed Omar                   4. 19.          Al Askary

88     Omar Najee Faraj                          4. 19.          Al Askary

89     Basma Hommadi Asaad                    4. 19.          Al Askary

90     Khames Hosen Khalaf                      4. 11.          Al-jullan

91     Abeer Hadee Jabir                         4. 11.          Al-jullan

92     Nibrass Hasen Khaleel                      4. 11.          Al-jullan

93     Omar Hadee Hasen                        4. 11.          Al-jullan

94     Barakat Jabbar Abbas                      4. 11.          Al-jullan

95     Yeasir Atea Aamir                         4. 12.          Al-jullan

96     Hoda Aamie Khaleel                       4. 12.          Al-jullan

97     Maisoon Jabbar Abbas                      4. 12.          Al-jullan

98     Wadha Jabir Mohsin                       4. 12.          Al-jullan

99     Hadied Mohamed Jber                      4. 11.          Al Nazzal

100    Saadia Khaleel Jasim                       4. 11.          Al Nazzal

101    Omar Hadi Hasen                          4. 11.          Al Nazzal

102    Noria Khalaf Eedan                        4. 11.          Al Nazzal

103    Rafid Jasim Obead                         4. 13.          Al Nazzal

104    Hadi Mohsin Omar                        4. 13.          Al Nazzal

105    Sahera Abbas Majeed                      4. 13.          Al Nazzal

106    Wesam Khalel Amer                       4. 14.          Al Nazzal

107    Mohamed Hade Hasen                      4. 14.          Al Shohdaa

108    Hamed Mokhlif Hamadi                   4. 14.          Al Shohdaa

109    Atheer Khlid Jasem                        4. 15.          Al Shohdaa

110    Alaa Mosharaf Abid                        4. 15,          Al Shohdaa

111    Sanea Hamendi Hasen                      4. 16.          Al Shohdaa

112    Fatheaa Ahmed Abbas                      4. 15.          Al Shohd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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