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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반전 평화와 국제연대에 관한 캠페인이에요

아메드(디아르바크르)에서 경찰과 충돌 발생, 4명 사망.

3월 25일 터키 동부 쿠르디스탄 지역의 빈골이라는 지역에서 터키 정부군의 대규모 PKK게릴라 소탕작전을 시행 총 14명의 게릴라를 사살하였습니다.

지속적으로 말씀드려왔지만, PKK는 휴전을 원하며 평화협정을 계속 터키 정부에 요구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터키군은 게릴라들을 공격 총 14명의 게릴라를 사살하였습니다. 다음은 사살된 게릴라들의 사진과 명단입니다.

            KENAN DEMîR(Sêrt)       REŞÎT AHMET(Afrîn)     BULENT TANIŞIK(Amed)
                   1985년생                           1980년생                       1977년생
         ABDULLAH RUKUN(Êlih)    ÎDRÎS SÎNET(Edene)  KEMAL TAHAZADE(Mahabad)
                   1982년생                          1982년생                          1978년생
            FATÎH ÇETÎN(Amed)       HAMET GULÎ(Kobanî) MUZAFFER PEHLÎVAN(Amed)
                  1982년생                            1979년생                           1981년생
        ADNAN MAHMUT(Kobanî) MAHMUT GULER(Amed)  HUSEYÎN KIZIL(Semsûr)
                 1977년생                           1982년생                          1978년생
                            ARMAN KATURANÎ(Sinê) KAWA ÎBRAHÎM(Silêmanî)
                                      1982년생                            1979년생
사살된 14명의 게릴라 가운데 4명이 아메드 태생이어서 3월 28일 오전 10시에 합동으로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이 먼저 공격을 했는지, 장례행렬이 먼저 공격을 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만 경찰과의 대규모 충돌이 있었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부상자가 발생하였고 4명의 쿠르드인이 사망한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뒤늦게 이 소식을 알고 현장으로 달려갔지만 이미 장례행렬은 끝났습니다만, 저녁 늦은 시간까지 남아 계속 시위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뒤늦게 도착했지만 시위는 매우 격렬하였고 경찰의 진압은 한국에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진압방식이었습니다.

경찰의 진압은 시위대를 향한것 뿐만아니라 주변의 시민에게까지 무차별로 이루어졌으며, 연행되는 시위 참가자의 사진을 찍는 저에게 경찰이 총구를 들이대며 위협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위협하던 경찰은 정복도 아닌 사복을 입은채 총기로 위협하였으며, 설사 사격을 가한다고 하더라도 그가 누구인지 도저히 알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 연행되는 시위 참가자. 그는 피를 흘리고 있었지만, 계속 경찰의 폭행을 당하고 있
           었습니다. 하지만, 경찰이 총구를 들이대며 위협하는 통에 더 사진을 찍을 수 없었
           습니다.

시위대를 총기로 구타하는 한편 시위대를 향한 위협사격을 계속하여 언제 총탄이 날아들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젖기도 했습니다. 어두워질수록 무방비 상태에 있는 시위대를 향해 경찰은 돌을 던졌고, 시위가 있는 거리를 단전시켜 가로등마저 꺼버려 날아오는 돌이 보이지도 않은채 시위대를 공격하였습니다.
        ▲ 시위대를 향해 돌을 던지는 군인.
         ▲ 시위 현장의 거리를 단전시켜 가로등마저 꺼진 거리. 멀리 경찰 차량의 불빛과 희
            미하게 시위대의 모습이 보인다.

시위대는 현 집권당인 AK PARTI 정부은행인 Trukiye Bank등을 공격하였고, 경찰과 군대는 이에 맞서 진압부대 배치 및 경찰장갑차의 기동순찰로 맞서고 있습니다.
         ▲ 집권당인 AK PARTI를 공격하는 시위대. AK PARTI를 방어하고 있는 대열은 경찰
            이 아닌 군대이다.
         ▲ 시위대는 국립은행인 Trukiye Bank를 방화했다.

저녁 7시를 넘긴 시간까지 경찰 장갑차가 시내를 질주하며 순찰하고 있고 시위대는 산발시위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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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드(디아르바크르)에서 경찰과 충돌 발생!!

아메드(디아르바크르)에서 경찰과 충돌 발생!!

아메드(디아르바크르)시에서 쿠르드인들과 경찰과의 충돌이 발생, 부상자가 속출하고 있다는 소식을 급하게 전화로 알려왔습니다.

 

얼마 전, 아메드 시에서는 몇 명의 쿠르드인이 게릴라로 지목되어 죽는 사건이 발생, 그 장례식이 오늘(2006년 3월 28일) 있었습니다.

 

장례과정에서 경찰과의 대규모 충돌이 발생하였다고 합니다.

 

누가 먼저 공격을 했는지, 정확한 사상자는 어떻게 되는지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대규모의 충돌이 일어난 것으로 미루어 많은 사상자가 있을것으로 예상됩니다.

 

한상진씨와 저는 10분전 이 소식을 전화로 전달받았으며 늦으나마 급하게 아메드로 가려고 합니다.

 

매일같이 죽어가고 있는 쿠르드인들의 현실은 접할 때마다 가슴이 아픕니다.

 

 

PLSong.com 운영자 단풍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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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네우로즈에 참가하다.

드디어 지즈레라는 도시에서 네우로즈를 같이 할 수 있었습니다.

셈딘리에서는 군과 경찰의 검문으로 인한 시간이 지체되어 하카리에서는 경찰에 억류되는 통에 참가하지 못했는데, 지즈레에서 참가할 수 있었습니다.

하카리의 경험도 있고 분위기도 그래서 지즈레에서의 네우로즈에 가면서도 경찰과의 충돌이 있지나 않을까 꽤나 걱정했었습니다만, 다행이도 별다른 충돌 없이 지나갔습니다.

아메드(디아르바크르)의 네우로즈에서 경찰의 선제공격 때문에 약간의 충돌이 있었으며, 완이라는 도시에서도 약간의 충돌이 있었다는 뉴스를 봤습니다.

어제 올린글에서 보시면 아시겠지만, 지즈레에서 아이들이 밤새 시가행진을 해서 우려되었지만 정작 지즈레에서는 별다른 일이 없었고...

이스탄불 등의 도시에서 어제밤 경찰이 총격을 가하는 등의 행동이 있었다고 합니다.

네우로즈는 쿠르드 전통의 새해맞이 행사입니다. 즉, 축제인거죠. 한국으로 치면 설이라고나 할까요. 지즈레에서는 축제분위기가 물씬 풍기었습니다. 경찰의 감시와 장갑차까지 동원한 무력시위만 뺀다면요.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즐거운 축제를 보내는 쿠르드인들의 흥겨움에 절로 어깨춤이 나더군요.

여러분에게 사진으로나마 느낌을 전해보고자 합니다. 내년 네우로즈에는 이번처럼 사진찍는 외국인이 아니라 축제를 즐기며 참가해 보고 싶습니다. 같이 가실 분~~~~~ 손!!!

          ▲ 검문을 당하면서도 즐거워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왼쪽 뒤편에 경찰이 동원한 경찰
          장갑차가 보인다. 이 날 지즈레 네우로즈 주변에는 총 3대의 장갑차가 목격되었다.
         ▲ 터키 정부가 네우로즈 현장에 자살폭탄 테러가 있을것이라고 경고하자, 행사주최
         측도 자체적으로 검색을 했다. 하지만, 터키 정부가 테러를 할 것이라고 지목한 PKK
         는 네우로즈 기간동안 그 어떤 종류의 공격도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 행사를 위해 화려한 복장을 갖추는 쿠르드 여인들. 흔들고 있는 천의 빨강, 노랑,초
         록은 쿠르드를 상징하는 색이다.
         ▲ 오잘란의 사진을 들고 있는 참가자. 많은 터키 거주 쿠르드인들에게 오잘란은 희망
         의 상징이다. 오잘란은 쿠르드 노동자당(PKK)의 당수로 현재 터키 정부에 의해 사형을
         선고 받고 복역중에 있다. PKK는 현재 터키 정부에 휴전을 선언했지만, 정부군의 공격
         을 받고 있다.         
         ▲ 네우로즈 현장은 항상 경찰의 채증반이 대거 몰려온다. 우연히 서로 촬영하게 된
         경찰.
         ▲ "V"는 쿠르드인의 승리를 상징한다. 몇 년전 한 쿠르드 여성이 "V"표시를 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당하는 과정에서 경찰이 머리채를 잡아 채어 두피가 벗겨지는 사
         건이 발생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소름이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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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네우로즈, 지즈레에서 전야를 보냅니다.

21일 네우로즈에 참석하기 위해 터키 동남부의 지즈레라는 도시에 와 있습니다.

도착해 숙소를 정하고 식사를 하느라 큰 일은 없습니다만, 현재 지즈레에서는 도시의 아이들이 모여 거리를 행진하며 "오잘란"을 외치고 있습니다. 오잘란은 쿠르드 독립을 주장하며 무장 게릴라 조직인 쿠르드 노동자당(PKK)의 당수로 현재 터키 정부에 의해 사형을 언도받고 복역중에 있는 쿠르드의 지도자입니다.

아직까지 큰 불상사는 없지만 아이들이 계속 시내를 행진하고 있는 탓에 경찰은 매우 긴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내일 있을 네우로즈에서 더욱 큰 불상사가 발생하는 것을 경찰도 원치 않을 것이므로 불상사는 없을 것입니다.

터키에 와서 여러 도시에서 열리는 네우로즈에 최대한 많이 참가하고 싶었지만 첫 네우로즈는 군과 경찰의 검문때문에, 두 번째 네우로즈는 하카리 경찰에 연행되는 통에 한 번도 제대로 참가하지 못했습니다.

내일은 꼭 볼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오잘란의 사진을 들고 거리를 행진하는 아이들의 사진을 한 컷 올립니다. 단,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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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에 6시간동안 억류되었다 풀려났습니다.

지금은 하카리에서 4시간 떨어진 반이라는 도시입니다.

하카리에서 네우로즈에 참석하려다 경찰에 연행되어 6시간 동안 억류되어 있다 풀려난 뒤 곧바로 하카리를 떠나왔습니다.

연행되고서 무려 5시간이나 지난 다음에야 하카리 네우로즈는 허가되지 않은 불법집회였고, 그에 따라 네우로즈 모든 참가자를 검색하라는 명령이 상부에서 내려져 있는 상황이었다는 것을 경찰로부터 전달받았습니다.

아침 9시경 네우로즈 현장에 들어가려는 저를 가로막아선 경찰은 아무런 말도 없이 제 몸을 더듬기 시작했고, 이에 항의하던 저는 단 한마디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콘트롤"

Control. 통제를 하겠다는 뜻이었고 이에 영어가 가능한 경찰을 찾으며 거부를 했더니 곧바로 입이 틀어막히고 팔이 뒤로 꺽인채 경찰차에 강제로 실려 경찰서로 연행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두어대 얼굴을 가격당하기도 했습니다.

팔이 너무 심하게 꺽여 아프다고 말했지만 경찰은 "웰컴투 터키", "터키 폴리스 굿"이라는 말만 하더군요. 마치 아는 영어는 그것밖에 없는 것처럼...

경찰서에 도착하고서도 한참이 지나서야 영어가 가능한 경찰이 왔고, 그 이전에는 한 경찰은 저에게 침을 뱉는 등의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더군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아무런 설명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경찰서에서 변호사가 오고 영어통역이 가능해지고 나서야 상황을 판단할 수 있었습니다.

"콘트롤"이라는 터키어 단어가 있으며, 그것이 수색을 의미한다는 사실과 수색을 요청-콘트롤이라는 한 마디-했는데 그것을 거부하여 수색거부죄로 경찰에 연행되었다는 사실을 연행 뒤 5시간이나 지나고서야 알 수 있었습니다.

결국 6시간만에 법정으로 가서 약식으로 재판을 받았고 방면되었습니다. 방면되고 곧장 네우로즈 현장으로 달려갔지만 이미 끝난 상황이었구요.

오로지 네우로즈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하는 목적을 가지지 않고서야 이럴 수 있었는지 의문입니다.

일단 몸에 이상은 없고 곧장 하카리를 떠나왔기에 신변의 위협도 사라졌습니다.

형제의 나라 터키에서 아무런 통보도 없이 강제 연행, 억류, 폭행 당했지만 그나마 저는 외국인이라 이정도 일 것입니다.
제가 쿠르드인이었다면, 현장에서 어떤일을 당했을지 상상조차 하기 힘들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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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네우로즈, 쎔딘리를 가다

2006 Newroz(네우로즈)가 18일 쎔딘리, 아다나, 육쎅코바 등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찾은 곳은 쎔딘리의 네우로즈 현장입니다.

하지만 군과 경찰이 총동원되어 쎔딘리로 모여드는 사람들을 막더군요. 저 역시 쎔딘리를 향하는 과정에서 경찰에 의해 막혔지만 강한 항의를 통해 쎔딘리로 향할 수 있었다. 쿠르드인이 아니라 외국인, 한국인이라서 받은 혜택이었습니다. 하지만, 환승지였던 육쎅코바에서 쎔딘리까지 30Km의 거리에 2곳의 경찰과 3곳의 군 검문소를 통과하느라 시간이 지체되어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했습니다.



군과 경찰의 검문소들은 촬영금지였습니다.

육쎅코바에서 쎔딘리로 가는 첫 경찰의 검문소에서 출입금지를 통보 받았을때, 그 사유에 대해 경찰은 한 마디로 대답하더군요. "보안!". 황당한 대답에 어떤 문제가 있어 쎔딘리로 갈 수 없는지를 묻자 더더욱 황당한 대답이 나왔습니다.

"오늘이 문제다!"

차량의 출입이 되지 않는다면 걸어서라도 가겠다고 우기자 그제서야 같이 버스에 탔던 쿠르드인들은 모두 하차하고 저와 함께 쎔딘리로 가던 한상진씨 그리고 운전기사만 출입을 허락하더군요.



경찰의 저지에 쎔딘리로 갈 수 없는 시민들이 버스에서 내려 버스비를 돌려 받고 있습니다.

물론 그 이후에도 검문소마다 10여분씩 시간이 소요되었고 겨우 도착한 쎔딘리에서는 이미 마무리로 접어들어가고 있는 네우로즈만을 보아야 했습니다. 정말 분통이 터져서리... 한상진씨의 집에서 쎔딘리까지 가는데만 14시간정도 걸렸거든요.

14시간이 걸려 도착하자 마자 우리를 맞이한 사람들은 쎔딘리의 시민들이 아니라, 중무장하고 있는 경찰들이었습니다. 하나같이 총을 휴대하고 방패와 곤봉을 들고 네우로즈 현장 바로 옆에 장갑차까지 대기시킨 경찰들의 행동에 어이가 없었지만 대회 주최측은 오히려 우리의 안전을 우려하여 안전한 곳으로 우리를 이동시키기에 바쁘더군요.




무장하고 네우로즈 현장에 있는 경찰들. 네우로즈 현장 근처를 군의 헬기까지 선회하고는 했습니다.

군과 경찰은 왜 이렇게 쎔딘리로 모여드는 사람들을 막았는지 궁금하시죠.

2005년 겨울 초입, 쿠르드 서적을 취급하는 쎔딘리의 서점에 경찰이 수류탄을 투척 2명의 쿠르드인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 2006 네우로즈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도시가 되었답니다. 당시 수류탄을 투척한 경찰은 처벌을 받았다고 하지만, 기존의 관행으로 보건데 그 처벌의 수위는 그리 높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매번 쿠르드인 살인 사건이 생길때마다 그래왔으니까요.

어쨌든 이는 전체 쿠르드인들을 분노시키기에 충분합니다. 작년 겨울부터 크고 작은 충돌이 이 곳 쎔딘리와 하카리 등 주변 도시에서 격렬하게 나타나고 있고 그로 인해 더 많은 피해자가 나고 있지만, 경찰을 통제하는 고위 관계자(직위명은 거버너라고 하구요. 시장과 상관없이 중앙정부에서 임명하는 시장으로 보면 됩니다. 지방자치선거로 뽑히는 시장은 경찰에 대한 통제권이 전혀 없습니다)는 아직까지 제대로 된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도 독일에서 온 진보단체 관계자들이 거버너 면담을 신청했지만 일언지하 거절당했거든요. 백주 대낮에 경찰이 민간인에게 수류탄을 투척하는 것과 같은 군과 경찰의 민간인 살해 사건들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 곳 쿠르디스탄은...

사건이 일어난 장소를 찾았을 때, 시간이 지나 서점은 보수하여 새로 문을 열었지만 당시의 흔적들을 보존하고 있는 서점에는 사망한 쿠르드인의 영정과 흔적들을 보관하고 있더군요. 한국이라면 현장을 그대로 보존하였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류탄이 폭발하며 생긴 바닥의 패인 흔적과 천정의 파편 흔적들은 그날의 참상을 짐작하게 만들었고 당시 사망한 두 명의 쿠르드인이 흘린 피의 흔적을 볼때엔 화가 너무 나서 자연스럽게 욕이 나오더군요.







희생자의 영정과 수류탄 투척의 흔적들.

민간인 살해 사건으로 인해 쿠르드인들의 불만이 높아져 네우로즈 자체를 무산시킬 수는 없기에 다른 도시에서 모여드는 쿠르드인들을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막아서는 군과 경찰에 혀를 내둘렀습니다. 하지만, 경찰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천 여명의 사람이 운집한 채 주로 연설과 함성으로 쎔딘리의 네우로즈는 쿠르드인들의 분노를 느끼기에 충분하였고, 다음 네우로즈 참석을 위해 하카리로 이동하는 와중에도 쿠르드인들에게 새삼 희망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이동하는 과정에서도 터키의 경찰은 실망시키지 않더군요. 제복도 입지 않은 채 총을 둘러맨 이들이 갑자기 나타나 차를 세우고 패스포트를 요구하는데, 저는 그들이 게릴라인줄 알았습니다.
누구인지를 물었을때 천연덕스럽게 경찰이라고 대답하더군요. 총만 둘러맨 사복차림의 무리가 군인인지 경찰인지 게릴라인지 아니면 무장강도인지 여행하는 관광객들이 알 방법이 없잖아요.

한국에서도 경찰에 대해 불만이 많고 욕도 많이 해봤지만, 여기서만큼 욕해보진 않은 것 같습니다. 허허허








사람들의 손가락이 보이시나요? 'V'표시는 쿠르드의 저항을 의미한답니다. 저 'V'표시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체포당하기도 한답니다. 이 곳 쿠르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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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라브자를 추모하는 날

오늘 쿠르디스탄에서는 아메드(디아르바크르), 이스탄불, 앙카라, 하카리 등 터키의 주요 도시에서 할라브자 18주년을 추모하는 시위가 있었고, 시리아, 이란 등지에서도 많은 시위가 있었습니다. 특히, 할라브자 지역에서는 많은 군중이 모여 시위를 벌인 것으로 확인됩니다.



할라브자 사건 18주년을 기념하는 시위가 쿠르디스탄 전역에서 일어났습니다. 할라브자 사건이란 1980-1988년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사담 후세인이 쿠르드인이 거주하는 도시인 할라브자에 독가스 공격을 하여 5000명이 넘은 쿠르드인이 사망한 사건입니다.

미국은 사회주의 국가인 이란과 반미성향의 중동 국가들을 견제하기 위하여 후세인을 등장시켜 쿠데타를 일으키고 단결력이 강한 아랍권의 분열을 위해 이란-이라크 전쟁을 일으키도록 사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미국은 이라크에 엄청난 양의 무기를 제공하였고 이 때 화학무기들도 함께 제공되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5개의 나라(터키, 이라크, 이란, 시리아, 아제르바이잔)에 의해 분할 통치되고 있던 쿠르드인들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이란의 지원아래 이라크 내에서 무장봉기, 반 후세인 시위 등을 통해 독립투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라크 내에서의 쿠르드 반군 때문에 골치아파하던 후세인은 쿠르드 반군에 대한 공격을 했고, 할라브자가 포함됩니다. 후세인은 할라브자에 사린가스 공격을 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무장세력인 쿠르드반군은 사상자가 거의 없고 무고한 민중들만 죽어간 사건입니다.

이라크 전쟁 이후 체포된 후세인에게 지목된 많은 죄목가운데 할라브자 독가스 공격 사건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자신들이 제공한 독가스임을 숨기고 있죠. 더구나 할라브자 사건 당시 중동지역의 분쟁 종식이라는 핑계로 묵인했던 미국이 지금에 와서 할라브자 사건을 재판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꼴입니다.

최근들어 당시 할라브자 사건에 대해 새로운 시각이 있는데요. 할라브자에 숨어있는 쿠르드 반군에 공격하기 위해 사린가스를 살포할 예정이며 무고한 시민들은 다치지 않도록 대피할 것을 경고했지만, 할라브자를 점령하고 있던 쿠르드 반군이 대피를 막았다는 것이죠. 시민들을 방패막이로 할라브자 점령을 지속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는 시각이 있습니다.

하지만, 독가스 공격은 실행되었고 무고한 시민들의 사망이 늘어났다는 것입니다. 이는 독가스 공격을 감행한 후세인이 무죄라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대피를 막은 쿠르드 반군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1995년 일본에서 지하철에 살포되어 12명의 일본 시민들이 숨진 옴진리교가 사용한 것이 바로 사린가스입니다. 사린가스는 1930년대 나치에 의해 개발된 것으로 냄새, 색, 맛이 없어 호흡곤란 등의 증세가 나타나기 전에는 사용여부를 알 수 없습니다.

아래의 사진들은 할라브자와 관련된 사진들입니다. 보기에 끔찍한 사진들이 많아 사진을 올리는 것에 대해 고민했었습니다만, 제가 할라브자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고 사진이 더 많은 것을 전달 할 수 있을것이라는 생각에 이렇게 올립니다.

사진 보기를 원치 않으시는 분들은 지금 창을 닫으시거나 다른 화면으로 이동하시면 됩니다.


할라브자 희생자들의 공동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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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드를 지나 시르완에 도착

21시간의 버스여행을 마치고 무사히 아메드(디아르바크르)에 도착하였습니다. 말이 21시간이지 정말 빡센 여행이었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앉았더니 엉덩이가 짓무르더군요. ^^*

아메드에서 하룻밤을 자고 어제 아메드에서 한 시간 반 거리에 있는 시르완이라는 곳에 왔습니다. 이 곳 쿠르드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상진씨가 시르완에 집을 구하고 있는 중이며, 저는 그 곳에서 약간의 시간을 보낸 후 여러곳을 다니게 될 것 같습니다.

아마도 완, 하카리 등지를 돌아다니게 될 것 같습니다.

요즘 쿠르드 지역의 상황을 먼저 전해드리자면... 터키정부의 보이지 않는 쿠르드 탄압이 외부에서 보았던 것보다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현재 터키정부는 이라크 국경을 넘어 PKK 소탕 군사 작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외부에는 아직 제대로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터키 현지 TV에는 이라크 지역에서 PKK 소탕 작전을 벌이고 있는 터키군의 활동이 보도되고 있습니다.

그러한 영향인지 쿠르드 지역 각지에서 경찰과의 충돌이 벌어지고 있는데요 특히 하카리 시에서는 경찰과의 충돌이 심각하게 일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아직 하카리에 가보질 못해 정확한 상황은 알 수 없으나, 터키 TV에서 주요 뉴스 가운데 하나로 취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상황은 보여지는 것보다 심각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상대적으로 외국인인 관계로 저는 안전합니다. 하지만 도처에 군의 검문이 강화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다음엔 더 많은 내용을 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면서...오늘은 이만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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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드로 떠나기 전 날

이제 내일이면 쿠르디스탄의 수도라고 불리우는 아메드로 떠납니다.

이 곳 이스탄불에서의 시간은 기본적인 쿠르드어를 배우는 한편 쿠르드 가족을 돌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전까지는 한국인 친구였는데 이번 방문부터는 가족이 되었답니다. 쿠르드 이름도 받았지욤. "뷀라드" 와 "웰라트"의 중간 발음입니다. ㅋㅋㅋ

지금까지는 매번 방문시마다 비행기를 타고 아메드에 갔었습니다. 시간문제도 있으려니와 그렇게 비싸지만은 않은 비행기값 때문이었습니다. 서울에서 제주까지 실제 비행시간이 30여분정도이면서 6만원이 넘는 비행기값에 비교해 실제 비행시간이 두 시간인 아메드행 비행기값이 63,000원 정도여서 그렇게 비싸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비행기는 시간이 빠르다 보니 놓치기 쉬운것들이 매우 많지요. 지나가는 풍경이나 사람들의 생활같은 것은 느끼기 힘든것이 비행으로 하는 여행인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버스를 이용해 떠나보기로 했습니다.

오후 13:30분에 출발하여 다음날 아침 10:00시에 도착하는 표를 구했습니다. 더구나 원래는 50리라(약 37,000원)인데 표를 끊는 직원이 쿠르드인인데다 표 끊으러 같이 간 여동생 미네가 잘 설명을 해줘서 20% 할인을 받아 40리라(약 29000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약 20시간의 여행이 상당히 기대됩니다. 한국에선 기껏해봐야 서울-부산간, 아니면 속초에서 부산가는 버스가 정말 길고 지루한 여행입니다만 20시간이라... 기대가 됩니다.

몇몇 분들이 건강에 대해 염려를 하셔서 건강과 관련한 소식도 알립니다. 매일 먹는 미역국(미역을 여기까지 가져왔답니다 ㅋㅋㅋ), 매일 한 시간 이상 걷거나 뛰기, 푹 자고, 잘 먹고 하는 통에 한국에서보다 몸상태는 나아졌습니다. 더구나 술을 마실 수가 없으니... 울 쿠르드 가족은 무슬림들이어서 술은 나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메드에 가게 되면 할 말이 더욱 많아지겠지요.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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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 법안 상임위 통과를 보면서...

쿠르드지역 방문을 위해 터키에 와 있는 지금 상황에서 함께 투쟁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노무현 정권은 도살자입니다.

지금도 월 50만원도 되지 않는 돈으로 한 달을 버텨야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넘쳐나는 상황입니다. 최소한의 사회복지 보호망조차 없는 상황에서 개악된 비정규법안은 비정규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결과를 낳을 뿐입니다.

도대체 노동자를 밑바닥의 밑바닥까지 내몰아야만 만족하는 것일까요.

자본주의 경제학으로도 소비가 이루어져야만 자본주의를 지탱할 수 있다고 하는데, 임금을 줄여 소비를 줄이는 정책을 만들고 확대시키려 하는지 도대체 알수가 없습니다.

이제 우리의 아들딸들은 모두 비정규직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게 되었네요.

멀리서 투쟁에 함께하지 못하지만 마음만은 함께할까 합니다.

비정규직을 없애야만 우리의 아이들에게도 미래가 있을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급한 마음에 짧게 글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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