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24살, 사내하청 노동자의 사망
‘어제의 사망 1명, 누적 249명’
우리가 도로를 지날 때 쉽게 볼 수 있는 교통사고 재해 현황판의 이야기가 아니다. 올해 초부터 전국 주요 공단지역 및 유동인구가 많은 40개 지점에 노동부가 설치․운영하고 있는 ‘산업안전 전광판’에 지난 17일 명시되어 있던 현황이다. 전광판에서 나타나 있는 ‘어제의 사망 1명’은 바로 16일 오후 4시 30분경에 굴삭기에 깔려 사망한 만 23살의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를 말하는 것이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죽음의 행렬
노동자들의 죽음에 관한 소식이 끊이지 않고 있다. 4월 3일에는 경남 김해시의 합성피혁 제조업체에서 일하던 36세의 한 노동자가 DMF 코팅 원단과 부직포를 접착기에 밀어 넣는 일을 해온지 다섯 달 만인 지난 3월 26일 독성 간염을 진단받고, 불과 2주 만에 사망하였다. 이 회사의 사업주는 제조업으로 등록조차 하지 않고 십여 명의 노동자에게 합성피혁 제조와 포장 등의 일을 시켜왔다.
지난 3월 22일에는 창원의 두산메카텍 작업현장에서 교량 상판이 떨어져 작업 중이던 인부 2명이 사망하고, 2명이 중경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망한 두 명의 노동자는 모두 사내하청이었다.
한편 3월 모 대학병원에서는 청소 일을 하던 청소용역 여성 노동자 한 분이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 인력은 그대로인 상태에서 증축된 건물의 청소까지를 담당하며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다가 결국 심근 경색으로 사망하고 만 것이다. 이 노동자의 사망에 대한 산재 신청을 하러간 노동조합의 담당자는 “당신네 조합원도 아닌데 왜 나서냐?”는 근로복지공단 지사의 망발을 들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 이전인 2월 28일 17시경 선박구조물을 만드는 오리엔탈정공 진해공장에서 한 노동자가 화장실에서 의식을 잃은 체 발견됐다. 급히 병원으로 옮겼지만 이미 사망을 한 상태였다. 그는 사내하청업체에 다니는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너무나도 뻔(?)한 노동자들의 죽음
늘어놓기 버거울 정도로, 숨이 막힐 정도로 노동자들의 죽음이 이어지고 있다. 집회판에서 경찰한테 맞아 죽고, 몸에 불을 댕겨 죽고, 열악한 작업 현장에서 사고로 죽어가고 있다. 몇 일째 언론에서는 버지니아 공대의 총기 난사 사건이 보도되고 있고, 오늘 포털사이트의 주요 기사에 슈퍼 주니어라는 아이돌 그룹의 한 멤버가 교통사고로 중태에 빠졌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그리고 총격사건의, 그리고 교통사고의 원인을 추측하는 기사들이 줄을 잇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줄줄이 비엔나처럼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노동자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그 원인을 분석한 기사도 또는 그 죽음의 책임을 추궁하는 기사도 찾아볼 수가 없다. 노동자들의 죽음의 원인이 너무 뻔해서 일까? 너무나 뻔하고도 당연하게 안전장치를 제대로 하지도 않고, 조심스럽게 일하기가 힘들 만큼 노동 강도가 세고, 과로사로 사망할 만큼 할 일이 많아서이기 때문일까? 너무나 많이 죽고 너무나 확실한 이유로 죽기 때문에 기사 거리도 되지 않는 거 아닐까?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수출액 10조9215억 원을 기록해 전년보다 2조766억 원이 증가하면서 노사 상생의 길을 통해서 ‘잘’ 나가는 대표 기업으로, 조선업 활황 시대를 이끄는 선두 주자로 평가 받고 있다. 그러나 현대 중공업에서는 2006년 GS 건설에 이어 산재 사망 2위를 차지하는 영광(?)을 차지하기도 했다. 기업은 잘 나가는데 노동자들은 죽어 나간다. 노동부의 발표에 따르면 2006년 2,454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했다고 한다. 노동자들의 죽음이 줄지 않고 있다.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자
이제는, 노동자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것이 사업주든, 정부든 간에 노동 현장에서 사라져간 노동자들의 죽음에 대한 원인을 밝히고 책임을 지워야 한다. 안전장치를 충분히 하지 않고 일을 시킨 사업주와 무재해의 신화를 위하여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사망을 은폐하기에 급급한 사업주, 건물을 증축 하면서도 사람은 충원하지 않는 사업주, 제조업으로 허위 신고해서 건강검진조차 받지 않게 만든 사업주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리고 안전 점검을 철저히 하지 않고, 사측을 보호해주기 급급한 정부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한해 2,500명의 노동자가 죽어 가는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몇 해 전 개봉했던 ‘귀신이 산다’라는 영화는 조선소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집에 사는 귀신간의 주택 소유를 둘러싼 코미디였다. 영화를 보고 몇 년이 흘러 영화의 자세한 줄거리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잊을 수 없는 한 장면이 있다. 그건 바로 그 노동자가 일하는 조선소의 모습이었다. 귀신을 볼 수 있게 된 주인공의 눈에 들어오는 조선소의 이곳저곳을 작업복을 입고 왔다 갔다 하는 조선소 노동자 귀신(?)들의 모습……. 그 섬뜩했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도, 우리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에도 우리가 입고 있는 옷에도 그리고 우리가 먹고 있는 음식에도……. 우리가 누리고 이용하는 모든 곳에 노동자들의 죽음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 이러한 죽음에 책임을 지우고 죽지 않고 일할 수 있는 현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과중한 노동강도 속에서 짧은 운명을 다하고 사라져 갈 수 밖에 없는 노동의 현실을 바꿔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화창한 봄날 어느 노동자가 현장에서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은 이제 그만 듣고 싶다. 화창한 봄날 어느 노동자가 일을 쉬고 꽃놀이를 즐겼다는 그런 소식을 듣고 싶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페레 2007/04/23 21: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나 일상적인 죽음에 이젠 동정심마저 죽어버렸겠죠. 김해는 제 고향이라서 그런지 더욱 마음에 와닿네요... 결국 자본주의를 찢어버리고 돈보다 사람이 우선하기 위해 생활속에서, 거리에서 실천하는 것이 현재 최상의 방법이 아닌가 싶습니다
해미 2007/04/24 00: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페레/ 동정심마저 죽어버린 현실이 안타깝네요. 저도 동의 함다. 다만 거리에서 '같이' 실천하기 위한 방법을 찾고 싶어요. ^^
김태희 2007/05/14 15: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근본문제는 대학병원 의사들이 특수검진을 안하려는데 있지 않나요?
저는 의사는 아니고 의료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십분 동감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산업의학과의 역사는 10년 밖에 안 되며 모든 의사가 기피하는 과이므로 축적된 인력이 없습니다. 96년 당시 정부가 대안으로 내세운 것- 환자를 보지 않는 예방의학과 전문의를 산업의학 전문의로 만들어 놓고 특수검진 제도를 강행했던 것에서 그 근본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환자를 실제로 보는 인턴1년, 레지던트4년의 5년 과정을 거치지 않고, 당시의 예방의학의사는 연필과 계산기만 두드리는 예방의학 3년 과정만 이수하였을 뿐입니다. 이 정책이 잘되었다면 오늘날 이런 사태가 오지는 않았을 것인데, 이 정책의 근본오류는 이런 배경의 대학병원 급에서 일하는 대다수의 산업의학전문의는 특수검진을 단 한 번도 하지 않고 종합검진같이 소득이 많은 일을 할 뿐입니다.
노동운동가들이 사회의 잘못된 것을 개선해보려고 하는 시도는 잘못된 행동이 아닙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오류를 발견하시기를 기대합니다. 양보다는 질이 우선이라는 말을 상기하십시오.
해미 2007/05/15 15: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태희/ 제가 생각하는 근본 문제는 대학병원 의사들이 특수검진을 안하려는데 있다기 보다는 하청 노동자들이나 불안정 노동자들이 일하는 환경이 나날이 열악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대학병원에 있는 의사라고 모두 훌륭하거나 전문성이 뛰어나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대학병원에 있는 의사들이 정말로 열심이 특검을 한다면 정말 도움이 많이 되겠지만, 현장에서 죽어나가는 노동자들의 죽음을 막기에는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특검과 같이 노동자들의 건강을 다루는 문제가 사업주의 결정권에 따르다 보니 돈 버는 병원이 양심적으로 행동하기를 기대하기 힘든것도 사실이구요. 공공재로서의 노동자들에 대한 산업보건서비스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
지나가다 2007/05/26 19: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 하루 검진 인원 수 제한이 없다면 악순환이 되풀이 됩니다.
어떤 검진센터는 하루 300-400명을 검진하는데, 이것을 계산하면 400명/360분=1.11분입니다. 그런데, 교대 시간에 근로자들이 몰리는 것을 감안한다면 실제론 한명 당 20-30초 정도나 될까요? 30초 만에 제대로 된 건강검진을 할 수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문제 있는겁니다. 이 문제는 검진에 사용되는 시간을 줄이려는 사측의 입장과 같은 시간에 성과를 더 보려는 검진센터의 입장이 일치 하기에 여태껏 지속되어 온것입니다.
진료받으러 가는 동네의원급에선 75명으로 정해져있습니다. 검진은 처방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없으므로 좀더 볼수 있다고 쳐도 하루 검진인원이 법적으로 150명 선에서 정해져야합니다.
2. 몸으로 일해가며 배운적이 없고 환자경험이 없는 예방의학 전공자들은 특수검진에서 배제되어야 합니다.
예방의학 전공자들은 근로자 관련된 직업병 진단을 평생 단 한번도 해본적이 없습니다. 작금의 특수검진 사태를 몰고온 산업의학회의 주축은 대학병원 교수들이고 이 들이야 말로 평생 단 한번도 특수검진을 나간 적이 없는 사람들 입니다. 노조에서 병원과 협의를 할 때 담당의사가 실제 수련받은 산업의학 전문의인지 확인해야 하는 데도 불구하고, 이 과정을 확인 안한 책임이 있슴을 반성하십시오.
해미 2007/05/28 23: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나가다/ 검진인원 제한 해야 된다는 의견에는 동의합니다. 이미 그 제한은 있습니다. 문제는 제도적으로 제한한다고 해서 실질적으로 검진의 질이 달라질지는 의문이라는 사실이지요. 동네 의원급에서 75명으로 정해져 있어도 진료의 질이 천차 만별이라는 사실과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검진에 있어서 현장과 직업병을 잘 아는 의사가 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노동조합의 일부 책임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요. 누가 하느냐도 물론 중요하지만 검진의 내용을 채우고 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검진을 받을 권리를 지킬 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하는 것이 지금의 사태를 해결하는 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산업의학 전문의들만 한다고 해도 지금의 시스템에서는 제대로 이루어지기 힘든게 현실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요... 제가 이 글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죽음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의견은 좀 다른 내용인것 같네요. 물론 지금 특검의 문제가 중요한 쟁점이긴 하고, 노동자들의 죽음과 전혀 무관한 것도 아니긴 하지만 말이에요. ㅎㅎ
콩!!! 2007/05/29 09: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지나가던 중에 지나가다님의 글이 눈에 밟히네요. 왜 노조에서 담당의사의 자질을 확인안한 데 대해 책임을 져야 할까요. 산업보건서비스 제공 인력의 질 문제가 노동조합의 책임은 아닐텐데 말입니다.
해미/ 이 글에서 해미가 말하고 싶었던 얘기와 조금 다른 얘기에 나도 한몫하네그랴..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