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모처럼 온전한 혼자만의 금요일이었다.
연구실의 연구원들은 모두 지방 출장을 가서 아무도 없었고, 그 와중에 회의 하나 하고, 학부 졸업반 학생들의 발표 들어주고, 혼자 자장면 하나 후딱 먹고, 따뜻한 햇살이 쏟아지는 봄날의 미술관에 갔다가, 사업장 교육을 하나 하고, 서점에 들러 좋아하는 책 냄새를 흠뻑 맞다가 김밥 한줄 먹고 영화까지 봤고, 찢어진 가방을 대신해서 가방을 하나 사고 집에 와서는 새벽 1시가 되어 와인 한잔 하다가 와인이 너무 맛이 없어서(나는 드라이한 맛을 좋아하는데... 선물받은 프랑스 와인이 영 꽝이었다. ㅠㅠ) 다시 아사히 맥주로 전환했다. 내일 아침에 전공의들 강의가 있어서 준비하려고 하였으나... 결국 놀고 있다는.... ㅠㅠ
그나마 기분이 업 되는 것은 듣고 있는 라디오에서 브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이 나온다는 것... ㅋㅋ
하여간 결론은 음주 블로깅이라는 것...ㅋㅋ
#1.
올림픽 공원내의 소마 미술관에서 진행중인 "반 고흐에서 피카고까지"의 앙코르 전시회를 사업장 교육전에 시간이 남아 슬쩍 들렸드랬다.
사실 이번 전시회는 "클리브랜드 미술관전" 이라는 이름을 붙이는게 맞았다. 사실 반고흐에서 피카소라기 보다는 초기 인상주의의 쿠르베에서 몬드리안 정도가 맞지 않았을까 싶긴 하다. 모든 사람들이 알 만한 인물을 내세운 조선일보의 상업성(?)이라고나 할까?
하여간 누구나 이름을 알고 있을 법한 모네, 마네, 드가, 르느와르, 피사로, 세잔, 마티스, 고갱, 모딜리아니, 피카소, 로댕과 루소, 몬드리안과 마그리트까지...
전성기의 작품을 기대하진 말아야 한다. 전부 초기작 아니면 완전 후기작이었고, 조명도 완전 꽝이라서(이건 어느 전시나 마찬가지인것 같은데...) 색감들이 살지 않는 불행한(?) 전시였다.
그러나... 봄 햇살이 쏟아지는 올림픽공원은 너무 이뻤고, 간만에 정말로 눈부신 햇살이 쏟아지는 도심속의 공원을 걷는 기분은 정말 좋았다.
조팝나무가 눈부신 흰 빛을 발하는 입구
참... 자그마하면서도 예쁘게 잘 지은 건물이다.
공간이 참 예쁜 소마 미술관
포스터에 있는 고흐의 그림과 여기저기서 톡톡 터지고 있는 봄
파란 하늘을 시샘하듯 만개한 봄
왠지 뒷모습과 길게 느리워진 그림자가 외로운 벤치... "외로움"이란 제목을 붙이고 싶었다.
#2.
그리고 천년학... 풍광 죽이고 그 아슬아슬한 사랑에 눈물나고, 그런 감정의 줄타기를 냉랭하게 바라보는 임권택이 잔인하게 느껴지는 영화였다.
영화는 철저하게 여성인 '송화'의 눈으로 진행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송화의 삶이라는 것이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왠지 그녀의 삶에 나도 모르게 설득되는 느낌이었다.
물론, 오정해의 연기가 너무 별로라서 안타깝기는 했지만 조재현의 그 미세한 감정선을 타는 연기는 정말 멋졌다. 오정해는 그냥 말로하는 연기는 완전 꽝이었지만 구구절절 춘향가를 불러제끼는 장면에서는 판소리가 왜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것이었는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전혀 격정적이지 않고 맹숭맹숭한 멜로지만 판소리를 들을 때 만은 정말 멋지다. 특히 제주도의 용머리 오름(다음에 제주를 갈 일이 있으면 꼭 올라봐야겠다.)에서 송화가 불러제끼는 춘향가의 "님을 따라 가고 싶다"는 한 구절은 정말 아슬아슬한 감정선을 보여주더라.
그리고 한 장면 더... 어린 송화와 동화가 이불 속에서 발가락을 맞대는 장면... 그 은근한 설렘이 스크린 밖으로 튀어나와 생생하게 느껴졌다.
하여간 임권택은 좀 촌스럽기는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을 다루는데는 정말 경지에 올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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