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의 로비 의혹, 그 끔찍함을 넘어서
몇 일째 신문이 의사협회의 로비 의혹으로 시끄럽다. 25일에는 드디어 의사 협회와 회장의 자택과 병원에 대한 압수수색이 진행되었다. 의사협회의 내부 갈등이 발단이 된 듯한 폭로전은 정치권과 정부에 대한 금품 로비 의혹으로 번지면서 검찰 수사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고, 이런 혼란(?)을 틈타 로비를 합법화하는 법안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이 와중에 입법예고 된 의료법 개정에 로비가 과연 효과가 있었는지에 대한 분석들이 진행되었고, 의사들의 요구는 대부분 받아 들여졌다는 것이 전반적인 평가이다.
장동익 회장의 국회의원 로비 관련 사태는 의사협회 회원인 나로서는 굉장히 당혹스런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의사 면허증만 따면 자동으로 가입을 하게 되고, 일 년에 한번 수십만 원의 회비가 월급에서 제해지는 지금의 구조 속에서 ‘회원’임을 인지하고 있지도 못하던 내게 이상한 방식으로 ‘정체성(?)’을 심어준 계기가 되었다. 내가 낸 회비가 어떤 식으로든 국민들의 건강권을 침해하고 의사들의 부정을 감추는 입법 과정에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정말 끔찍하다. 하지만 끔찍해 하고 의협의 회비를 납부를 거부하는 개인적 저항뿐만이 아닌 뭔가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이렇게 된 걸까? 의사들은 뭘 해야 하는 걸까?
로비를 했다는 의료법 개악(?)안
의사들이 집단 휴진을 불사하고 자해를 하면서까지 철회하라고 주장했던 주요한 의료법 개정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의료행위에 ‘투약’이 포함되어 있지 않아 약사가 의사들의 고유 업무를 침범하고, 간호사 업무에 ‘간호진단’이 포함되어 간호사가 의사들의 고유 업무를 침범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의료인이 아닌 자에게도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없는 경우에는 유사의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여 의사들의 진료권을 침해하고, 임상진료지침을 정하도록 해서 정부가 의사들을 통제한다는 것이었다. 진료권 침해, 정부의 통제라는 명분을 들고 있지만 주로 비 의사 직종과의 영역 다툼과 관련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결국, 의사들이 핵심적으로 제기했던 모든 문제들은 규제개혁위원회의 최종 심사를 거치고 있는 개정안에서 모두 삭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24일, 필자는 의사협회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제목은 ‘약사 문의전화 받지 않을 경우 벌금 300만원 문다’였다. 약사들이 의사의 처방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거나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 처방전을 써준 의사에게 전화를 할 경우 의사가 수술이나 환자 처치와 같은 특별한 이유 없이 전화를 받지 않을 경우 벌금을 물린다는 것이다. 이것도 최초 개정안에는 징역형을 포함하게 되어 있었던 것이 벌금형 수준으로 낮춰진 것이다. 하여간 의협은 법안에 대해 발끈했고 나를 포함한 전체 회원에서 선정적 제목의 메일을 보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의료법 개정의 핵심은 다른 데 있다.
로비와 상관없었던 의료 상업화
의사들의 집단휴진과 로비 의혹에 번번이 가려있기는 하지만 이번 의료법 개정안의 핵심은 효율성을 내세워 병원을 중심으로 산업화 하려는 의료 상업화라 할 수 있다. 큰 병원 안에 의원을 개설할 수 있도록 허가를 해줘서 일차 의료가 약화되고 가뜩이나 대형화 일로를 가고 있는 대형 병원 중심의 의료 전달 체계가 강화될 가능성을 높였다. 또한 비전속의사의 진료를 전면 허용함으로서 병원의 추가 수익 창출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한편 유인․알선 행위를 제한적이기는 하나 허용하고 의료 법인의 부대사업을 허용하고 병원 간의 인수․합병이 가능하도록 해서 병원 자본의 영리 추구 행위를 합법화 해주려 하고 있다. 또한 건강보험이 적용 되지 않는 비급여항목에 대해서 민간보험회사와 가격 계약을 하는 경우에도 합법적인 광고가 가능해져서 민간보험의 병원에 대한 지배력을 더 높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삼성 보험과 삼성 의료원이 가격 계약을 하게 되면 삼성 의료원을 이용하려는 사람은 삼성 보험에 가입하는 것이 유리해질 것이다. 즉 민간 보험에 따라 의료기관을 선택하는 경향이 높아지고 보험 서비스를 빙자하여 과잉 진료와 비급여항목의 남발이 이루어질 여지가 높아지는 것이다.
의사들의 불만은 상업화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이렇게 대형병원 중심으로 의료체계를 개편하면서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동네 의원이고, 국민이다. 대형 할인마트가 우후죽순처럼 생기면서 망한 것은 영세한 동네 구멍가게이고, 털린 것은 서민들의 주머니임을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대형병원을 중심에 둔 의료체계를 강화하고 병원이 영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고자 하는 의료법 개정안은 집단 휴진에 들어갔던 의사들의 대부분을 지금보다 더 나쁜 조건에 놓이게 하는 것이다. 실제로 수억씩 빚을 내서 의원을 차린 후 적자 운영을 면치 못해 다른 일을 한다는 의사들도 생겨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의료법 개정안에 대해 병원 협회에서는 공개적으로 티를 내지는 못하지만 대환영(?)을 하는 분위기이고, 개원의들이 자해까지 하면서 저항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렇다면 1,000만원을 받았다는 로비설이 불거지고 있는 정형근 의원이나 ‘용돈’인지 ‘후원금’인지를 받아썼다는 보건복지위의 국회의원들이나 100억대의 부동산을 가지고 있다는 장동익 의협 회장이나, 시장성을 강화하는 의료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유시민 장관 모두가 은행 빚 얻어서 병원 차리는 의사들의 공적 아닐까?
의사들이 학교에서 배운 데로 진료를 못하고 태반 주사나 중금속 치료, 비만치료, 성장 호르몬 주사와 같은 근거도 없는 시술을 하게 되고 양심적(?)으로 살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지금의 의료 체계가 시장의 논리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경쟁적 환경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적인 공급자로서의 특성을 백분 활용하여 환자들에게 의학적으로 확실하게 입증되지도 않은 영양제를 복용하도록 하고, 치료를 권하면서 자기들의 주머니를 채워 온 의사들의 이윤추구적 진료행위가 문제 아닐까?
로비는 소용없다. 의료 공공성을 주장하라!
지금까지의 상황을 살펴보면 실제로 대가성의 금품이 주어졌던 아니든 간에 의사들의 주장은 거의 대부분 수용된 것으로 보인다. 100번 양보해서 장동익 회장이 개인의 비리를 감추기 위해 정치권을 이용했고, 거론된 국회의원들이 절대(!) 결백하다고 하더라도 의사들이 그렇게 목 놓아 부르짖던 요구안은 어찌된 일인지는 모르지만 대부분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여전히 의사들의 살 길은 쉬어보이지 않는다. 의사들이 ‘사회주의 의료’라고 어처구니없게도 비판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너무나 안타깝게도(!) ‘신자유주의 의료’에 충실히 복무하는 법안이기 때문이다. 조그마한 동네 의원들이 대형 종합 병원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더욱 심화될 것이고 극심한 경쟁 속에서 약한 자 혹은 자본이 부족한 자는 죽게 마련이다. 의사들이 칭송해 마지않는 자본주의의 핵심적 결론은 바로 ‘약육강식’이고, 의사들도 절대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의협의 로비 의혹 소식을 접하면서 오래간만에 중소병원에 월급쟁이 의사로 근무하고 있는 열혈한 한나라당 지지자인 선배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 선배는 “이제는 월급을 좀 덜 받아도 좋으니까 공공 병원에 근무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경쟁이 극심한 의료시장에서 불안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중소병원에서 근무한다는 것이 온전히 환자를 보는 일 때문이 아니라 영업과 매출에 대한 압박 때문에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최근 공공 병원도 경영 합리화를 빌미로 구조조정을 진행하거나 민영화의 흐름이 있어 의사들에게 예전처럼 마음이 ‘편한’ 직장은 아니다. 하지만 개인 병원에 비하면 엄청나게 좋다고 그 선배는 이야기했다.
이 선배의 이야기처럼 로비로는 의사들의 살 길을 열 수 없다. 의사들의 살길은 시장화를 막는 것에 있다. 경쟁하지 않고 매출에 신경 쓰지 않고 양심적인 진료를 교과서에서 배운 데로 할 수 있는 공적인 의료체계를 주장해야 한다. 그것이 의사들이 제대로 살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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