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직은 어색한 '소장'이라는 직함. 소장이기 때문에 바쁜건 아니지만 소장이기 때문에 고민해야겠단 것들이 많아지고는 있다. 아직은 소장 모드 적응중.
#2.
테니스를 배우기 시작했다. 황제 테니스 어쩌구 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반감이 있는 스포츠이긴 하지만, 일단 배우고 나면 그닥 돈이 많이 들지 않는 꽤 괜찮은 스포츠인것 같다. 아직 게임의 규칙도 모르고 이제서야 자세를 잡기 시작이지만 새벽 공기를 마시면서 동이 터오는 하늘을 바라보는게 썩 괜찮다. 차근차근 배워서 나중에 같이 테니스를 칠 수 있는 동지들을 모으는게 내년쯤에는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3.
토론이 졸렸다. 요즈음 느끼는 건데 나는 '토론부적응증후군' 환자인 것 같다. 토론의 주제가 관심이 많은거고 최근 이런저런 단상들이 많이 떠 오르는 주제 임에도 불구하고 토론이 힘들다. 특히 미리 이렇게 이야기해야겠다 정리하지 않는 이상 토론의 과정에 동참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완전히 정리되고 논리가 서지 않더라도 머리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자유롭게 이야기 할 수 있는 토론이 어디에나 없다. 어떤 주제든 발제자를 비롯한 선수들이 있게 마련이고 그 선수들이 말을 하고 있는 중간에 끼어드는 재주도 없고, 끼어든 선수의 말을 받아칠 재주도 없다. 확실하게 논리가 있던지 빈틈을 보이지 않고 이야기를 하던지, 중간에 말을 잘라 먹는거에 대해 화를 내던지, 잘라먹더라도 끈질기에 이야기하는 끈기가 있어야 하는데 나는 그 어떤 것도 잘 안 된다. 중간에 서로의 말을 자르고 자른 순간 목소리가 조금씩들 높아지는... 그런 토론이 졸렸다.
#4.
눈물을 쏟아내는 어머니에게 쏟아지는 카메라가 싫어서 올라오는 눈물을 삼켰다. 송면이의 죽음처럼 원진 레이온 노동자들의 죽음처럼 그렇게 기억되는 또는 기억되어야만 하는 죽음이 또 하나 생기고 또 늘어만 간다는 사실이 그렇게 서럽고 아플 수가 없다. 활동을 하면서 감성이 많이 무뎌져서 이제는 잘 울지 않는데, 주루룩 흐르는 눈물에 내가 더 당황했다.
#5.
새벽 3시. 드르륵 진동으로 해 놓은 핸드폰이 울리는 소리에 깼다. 대충지부 사무장 동지의 전화다. 전화를 받는 순간 전화 밖으로 대충지부 동지들이 집회를 하고 있는 소리가 들린다. 어제 새벽 직장폐쇄를 단행한 코스모링크였다. 용역이 들어왔고, 들어오면서 신나를 뿌린것 같다고 한다. 차분하지만 긴장이 걸린 새벽 3시의 목소리.
그제 통화를 하면서 아무래도 일복이 터진거 아니냐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생각해보면 일복이 터진게 아니라 지역에서 벌어지는 현안에 최선을 다해 결합하기 때문에 일이 많은 걸텐데... 제발 아무도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초조한 새벽.
#6.
폐허가 된 농성장. 또 들어온다는 용역. 긴장되고 약간은 흥분한 듯한 동지의 목소리. 입주변으로 헤르페스가 흉하게 돋아난 동지.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리 큰 일이 아니라는 듯 가볍고 편하게 잘 싸우라고 이야기하는 것. 감수성이 예민해졌다. 시도때도 없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7.
최초로 음주운전에 걸렸다. 맥주 두병 마시고 운전해서 가던 길 대로에서 막는 바람에 바로 막혀서 휙하고 불었다. 삐~ 하는 소리와 함께 '그 자리에 세우고 내리세요'하는 경찰. 내리고 큰 빨대같은 음주측정기를 불었다. 폐활량이 딸려서 잘 안 돼 여러번 실패하기는 했지만 '다음부터는 음주운전하지 마세요'란 말을 듣고 다시 운전을 해서 집으로 향했다. 나의 차분하고 웃음기 넘치는 여유로운 대처에 나 스스로 놀랐다. 그 와중에 경찰이 물어보는 말에 알콜의 체내 흡수속도까지 고려해서 바로바로 잘 대답하고 있는 나에게도 스스로 놀랐다.
혈중 알콜농도 '0.018'. 나의 첫 기록이다. 마지막 기록이 되기도 해야 할텐데...
#8.
금속산업의 사회화라니... 안 된다고 이야기를 할 만한 냉랭함도 부족하고, 배를 쨀 만한 배짱도 없고, 못 하겠다고 사정하기 위한 전화를 할 여유도 없었다. 흐흑. 그 쪽팔림이라니. 흐흑. 다른 동지들의 발제가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기억할 몇 가지. 소유와 통제의 문제. 어찌보면 통제가 더 중요한 문제일수 있겠다는. 그리고 사회화를 하기 위한 투쟁의 경로가 필요하다는 것. 공공재의 정의는 결국 힘관계 속에서 결정된다는 것. 자본의 세계화에 맞서 자본의 사회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
#9.
당을 만든다. 만들 수 있을지 가능성은 있는건지 만들면 지금의 상황이 좋아지는건지는 알 수 없지만, 실패를 하더라도 일단 해보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열정과 열의를 가지고, 최선을 다해서 말이다. 왜 당이어야 하는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현재의 조건에서 당이 아니면 안 되는 이유는 명백하다.
#10.
약간의 우울감. 호르몬 때문인지 관계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우울하지만 그저 맘 놓고 놀기에는 할 일이 산더미이니 일 속에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활력을 찾아야 한다. 뭔가 무거운 것이 가슴에 툭 하고 떨어지는 시간.
#11.
공장 담벼락에 노랗게 피기 시작한 개나리. 시간이 또 흘러서 계절은 변하고 변함없이 그 공장 담벼락에도 여전히 꽃은 핀다.
#12.
너무나 미국적인 마이클 무어. 재기발랄하기는 하지만 그의 미국중심적인 이야기와 사고가 오히려 섬뜩하게 느껴졌다.
#13.
몇일째 아침부터 환자들 이야기 듣고 틈틈이 전화받고, 메신저로 이런저런 업무를 처리하고 나니 정말 정신이 없다. 할 일도 진행이 안 되고... 핸드폰 꺼 놓고 어디론가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봄인가?
#14.
왜 그때 발언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위험하니 자원봉사 같은거 가지 말라고, 차라리 문제를 일으킨 삼성으로 달려가야 한다고 이야기했어야 했다. 자극성 물질도 그렇지만 발암물질도 많으니 장기적 대책과 체계가 없으면, 바다가 죽어가는게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래도 자원봉사를 가서는 안 된다고 말렸어야 했다. 감수성이 문제였던걸까? 아니면 환경문제는 내 운동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인걸까? 섬세하고도 예민한 시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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