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 노동자 건강권 쟁취 투쟁의 달, 이렇게 보냅시다. -
봄비가 온다. 공장벽이 노랗게 물들어 가는 지금 하얗고 화려한 꽃비를 재촉하는 봄비가 내린다. 흑백필름과 같던 계절이 밝고 화려한 색깔로 바뀌는 이즈음 우리는 매년 거리에 선다. 바로 4월이 노동자 건강권 쟁취 투쟁의 달이기 때문이다. 황사가 날리는 대학로를 뛰어다니기도 했고, 파워포인트로 힘겹게 영상을 만들어 현장에 배포하기도 했고, 촛불을 들고 현장에서 죽어간 많은 노동자들을 기리기도 했으며 많은 토론과 고민이 이루어졌던 시기가 4월이다.
4월의 의미
‘노동자 건강권 쟁취 투쟁의 달’의 기원은 ‘7월 산재추방의 달’이다. 1988년 올림픽으로 들떠 있던 그 해 여름 7월 2일, 온도계를 만드는 서울 양평동 한 공장에서 일하던 15세의 소년 노동자가 수은 중독으로 사망하였다. 87년의 뜨거움을 경험했던 노동자민중은 문송면을 그냥 보내지 않았다. 역사 속에 그를 살려내어 자본의 탐욕으로 죽어간 많은 노동자를 살려냈다. 그리고 그 죽음을 기념하고 여전한 투쟁을 결의하기 위해 매년 7월을 ‘산재추방의 달’로 정하여 2001년까지 이어져 왔다.
그러나 7월은 실천이 쉽지 않은 시기이다. 임·단협이 한참이기도 하고 휴가철이기도 하다. 노동자 건강권의 문제를 당위나 호소가 아니라 현장의 활동의 주요한 의제로 상정하고 실질적인 현장 실천을 모색하기 위해 무언가를 제안하기도 난감한 7월이 아닌 다른 시기가 필요했다. 따라서 조직 노동자들이 한 해의 투쟁 과제를 구체적으로 잡고 전 세계적으로 노동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를 기리는 4월을 ‘노동자 건강권 쟁취 투쟁의 달’로 정하고 실천을 도모하게 되었다.
4월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활동이 집중되는 기간이다. 1998년 4월 28일 화재로 사망한 188명의 태국 장난감 공장의 노동자들을 기리는 것으로 시작된 촛불 추모 행사는 캐나다, 태국, 타이완, 브라질, 포르투갈, 도미니카공화국, 페루, 아르헨티나, 버뮤다, 파나마 등에서 법정기념일로 정해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확장되었다. 자본의 이윤을 위해 살해된 전 세계 수많은 노동자들을 추모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천명하고 투쟁을 결의하는 것이 4월 행사인 것이다.
아래로부터 시작하는 4월 사업
2008년은 이명박 정부의 시작과 함께 규제완화를 중심으로 노동자 건강이 더욱 벼랑 끝에 놓일 것이 뻔히 예상되는 시기이다. 이런 시기 4월의 정신을 올곧이 살려내기 위해 노동안전 단체와 활동가들만 알고 지나가는, 그저 집회나 한번 하는 또는 중앙 중심의 토론회와 기자회견이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현장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4월이 되어야 한다. 중앙에서 공문으로 ‘하달’되는 투쟁지침이 아니라 대중들의 직접행동을 모색하기 위한 ‘아래로부터의 기획’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건강의 문제가 임금-고용의 문제보다 우선이 되어야 함을 생산성이 아니라 우리의 몸과 삶이 기준이 되는 세상이 와야 임금-고용의 문제도 해결될 수 있음을 공유하고 소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임금-고용이라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는 노동자들의 필요와 요구라는 것이 실은 노동자들의 삶을 갉아먹는 자본에 대한 요구와 분노가 왜곡되어 나타나는 것임을 확인해야한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의 노동자는 이러저러하다’고 누가 이야기해주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 스스로가 자신의 삶과 일상을 돌아보고 동료의 삶을 읽고 자신의 삶이 읽히게 하는 방식에서 가능하다.
이를 위해 먼저, 다양하고 지속적인 현장의 선전부터 시작하자. 노동자들의 눈이 닿는 어느 곳이든 우리의 삶과 건강의 문제가 보이게 하자. 노동조합의 홈페이지든 조합의 사무실이든 현장의 벽 한편이든 아니면 이메일이든 어디든 건강권의 문제와 우리의 일상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 금속 노동자든 공공 부문의 노동자든 이주 노동자든 불안정 노동자든 누구에게나 건강권의 문제를 고민할 계기를 마련해보자. 그리고 이런 계기를 바탕으로 매달 2월 지속적이고 꾸준히 서로의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대중의 직접 행동을 모색해보자.
위협받는 노동자 건강권, 반격의 계기를 만들자
인정하기 싫지만 노동자 건강의 문제는 제도화와 타협의 관행 속에서 그 본질적인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아니, 현장의 주체들이 그 의미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장의 왜곡된 목소리를 끌어내는 것이며, 그 속에서 왜곡되어 있음을 서로 인지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지역과 현장에서 건강권이라는 단어조차 어색하고 생소한 노동자들에게 그 의미를 알리고 반격의 기회를 벼르게 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닐까?
따라서 전문가들이나 노동보건 활동을 수년간 해온 활동가들이 현장을 ‘읽어 주는’ 것이 아니라 현장이 ‘읽히는’ 방식으로 사업을 기획하고 만들어야 한다. 이 속에서 허울뿐이 아닌 실제적인 지역 전선과 현장 실천, 더 나아가 전국 전선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하나를 하더라도 아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어야 하고, 활동가들은 그 왜곡을 드러내고 조직하는 것에 노력을 기울여야한다.
4월은 그런 활동의 의미를 살리고 현재 진행형인 노동자들의 죽음 속에서 또 다른 투쟁을 도모하는 시기여야 한다. 그리고 4월이라는 한시적 시간뿐만이 아니라 명목만을 유지하고 있는 매달 2일, 노동자 건강권 쟁취 투쟁의 날을 지속적 실천을 모색하고 벼르는 날로 만들어야 한다. 꽃 피는 봄날, 반격의 계기를 벼르며 현장과 지역으로 나아가자. 우리의 삶 속으로 당당히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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