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 인생 최고의 지름신이 강림하셨다. 딱 연봉이 오른만큼 냉큼 차를 질렀다 (사실 냉큼은 아니다. 동생의 장가와 엄마의 압박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갈등하고 있던 찰나 연봉이 오른것이 천우신조라고나 할까?). 빨간색 i30가 내가 태어난 후 최초로 나만의 공간이 되었다. 환경오염에 동참하고 싶진 않아 고민을 많이 했지만 활동과 일상의 병행에서 절약되는 시간을 생각하니 무시할 수가 없었다. 좌우당간 조심조심 착한 운전을 해야겠다.
#2.
고민이 많고 일이 많아서인지 몸이 지친다. 그냥 누군가가 따뜻하게 안아주면 좋겠다는 생각이들만큼, 딱 그만큼 지쳤다.
#3.
2005년 지긋지긋하게 비가 오던 근로복지공단이 떠올랐다. 새벽이면 우리 농성장을 지나가던 청소차의 소리에 잠을 깨고 부시시한 행색으로 병원을 향하던 그때가 생각났다. 드디어 행정소송에서 승소를 했다는 기쁜 소식에 눈물이 핑돌면서 그 여름이 떠올랐다. 기쁜다. 정말 기쁘다. 그리고 참 다행이다.
#4.
하루걸러 한번씩 밤을 새다 시피 했더니 체중은 늘고 머리는 멍하다. 거기에 호르몬의 변화까지, 최악의 컨디션.
#5.
그 동안의 이름값을 한 민주노동당. 노-심의 명성에 기대어 내용없이 (또는 내용이 부각되지 못한채) 한 선거치고는 자기 표는 지킨것 같은 진보신당. 민노당은 자기 갈 길을 주욱 열심히 갈 듯하고 진보신당은 내홍을 겪을 수는 있겠지만 기존의 기반으로 위기를 잘 헤쳐나가리라 생각된다. 빠지는 것은 컨텐츠와 내용이라고나 할까? 아~ 비정치적이기 그지없는 나조차 암담해지는, 우리나라 파~란 나라. 흑!
#6.
아침 7시에 날라온 문자. 간밤의 논의가 지루하고도 뜨거웠음을 알려주는 문자. 논의는 뜨거운데 정서는 추위를 느낄 정도로 차가운 느낌이다. 지도부를 자임하는 사람도 없고 지도부의 성격과 역할에 대한 열띤 토론이 있는 것도 아니다. 왠지 영양제를 맞으며 연명하는 가로수가 생각난다.
#7.
이런 상태로 소장을 계속해야 되나 싶다. 아는 것도 없고, 통찰력도 없고, 토론도 못하고, 논의도 못하고, 문제제기도 못하는... 그리고 좋은게 좋다고 생각하는 나의 나쁜 성격까지 말이다. 형의 쪼으는 듯한 문제 제기와 따지는 듯한 물음이 폭력적이고 기분이 나쁘다는 생각을 했지만 틀린말이 아니라는 생각에 아무 얘기를 하지 못했는데 계속해서 두고두고 기분이 나쁘고 생각이 난다. 훈련이 덜 되었거나 또는 그런 방식이 맘에 안 드는 후배로서 배려를 받고 싶다는 소망은 소장으로서 적절치 않다. 쟁점을 잘 정리하지 못하고 주절주절 이야기하고 논쟁적이지 못한 것은 소장으로서 적절치 않다. 상처 안 받으면 상관없지만 상처를 받기때문에 적절치 않다.
#8.
이렇게 쓰이는 느낌이 싫다. 몇일을 붙들고 있고, 계속 분석중이고, 최소 한달이상은 밤잠 설쳐가며 고생하고 있는데 주체의 반응이 없으니 일이 속도가 안 난다. 내가 조직사업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부 주체들하고 토론이 잘 되는 것도 아니고, 완성도가 높은 설문지도 아니고, 다른 자료들이 잘 나오는 것도 아니고... 완전 아웃소싱된 느낌. 보람이 없다. 뭘 더 해달라는 요구도 없고, 뭘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는 고민도 소통되지 않는 이 답답함. 지부가 바쁜건 알지만, 이건 너무한다. 최소한 동지에 대한 예의가 이건 아니지 싶다.
반대로 처음 사업을 하는 이 사업장은 너무나도 열심이다. 물론 사업을 임기동안 최우선의 과제로 삼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요구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고민하고 토론하고 물어보고 소통해주는 것이 너무 좋다. 새벽까지 고민을 이어가기도 하고 주말에도 미안한듯 이런저런 이야기를 물어주거나 의견과 현장의 분위기를 전달해주는 그 성실함이 좋다. 내가 하는 일의 소중함을 알아주고 배려해주는 동지들의 모습...
현장에 넘치는 냉소와 무관심은 같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처하는 활동가들의 자세는 참 다르다. 남성과 여성의 차이일 수도 있고, 업종의 차이일 수도 있고, 정치적 색깔의 차이일 수도 있고, 사업의 무게에 대한 인식의 차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차이가 현장의 분위기를 결국 다르게 만들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고민만 모락모락.
#9.
손가락이 부러지면서 깨달은 몇 가지가 있다. 첫째, 나한테 위급한 상황이 생기면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건 연구소다. 손가락 다치고 여기저기 일정 조정을 위해 전화를 돌린건 전부 연구소 관련한 일이었다. 둘째, 난 정말 통증에 둔하다. 손가락이 부러진 채로 아픈지도 모르고 잘 잤으니 말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손가락이 이상하게 휘어져 있는걸 발견하지 못했으면 아마 엑스레이 찍어볼 생각도 안 했을 거다. 세째, 나는 말보다 글이 익숙하다. 자판에 손가락을 얹어야 비로서 글도 쓸 수 있다. 왼손을 자유롭게 못 쓰다 보니 생각도 딱 그만큼 늦어지고, 글도 잘 안 써진다. 마지막으로, 남들한테 도움 받는데 익숙치 않고 아쉬운 소리도 잘 못한다. 기브스를 한 채로 꾸역꾸역 발표 자료도 만들고 병실에 가족들도 오지 말라고 하고, 혼자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어떻게든 결국 해낸다.
왠지 스스로가 살짝 처량하게 느껴졌다.
#10.
머리를 잘랐다. 싹뚝. 20대에 이렇게 짧게 자르면 나름 귀여워 보이고 보이시한 매력이 있었는데 30대가 되니 살짝 아줌마스럽다.
#11.
무난한 선택. 고사중인 나무에 무난한 선택이 회생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지는 판단하기 어려운 일이다. 잘 되길 바라지만 그 과정에서 몸도 마음도 상할거 같은 동지들이 좀 안쓰럽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홍실이 2008/04/30 12: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술은 잘 된거지? 문자 보낼까 하다가, 손가락도 성치 못한 사람한테 고문일 거 같아 참았음. 내가 맨날 듣는 소리가 "손가락이 뿌러졌냐? 전화도 안 하게!" 인데... 진짜 부러진 사람한테는 뭐라 위로를 해야 할지 ㅎㅎㅎ 그나저나 당분간 운전은 피하는게 좋을 듯!
콩!!! 2008/04/30 13: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 해미가 아는 것 많고, 통찰력과 직관도 좋아서 "지"와 "감"을 두루 갖춘 사람이라고 느껴. 얼마나 쟁점을 잘 잡는지는 얼마나 고민을 익혔는지에 따라 다른 것 같고. 배려를 특별히 더 원하는 사람이 있거나 배려에 특별히 무감한 사람이 있는 건 아닐 거 같아. 나도 해미도 그 형도 말야.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면서 나와 해미 자신과 그 형에게 기회를 줘요. "당신 때문에 아팠다"고 말하는 그 시작이 힘들긴 하겠지만.
스토커 2008/04/30 13: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해미 기운내시오. 당신은언제나늘그리고지금도최선을다하고 있소.
잘하려고 하기보다 최선을다하는모습이 해미답다는 생각을 많이 하오.
소장을하려고타고난사람은없소. 다만할수있는것을할수있는만큼 할 뿐이오.
기운내시오. 손꾸락부러진것도빨리낫기바라오. 그리고이발한건 제법 예뻤소. 힘을내시오. 김박사.
해미 2008/05/08 13: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홍실/ 운전을 안 하는게 더 위험하더라구요. 짐들고 만원 버스 탔다가 2차 손상 입을 번 했다는.. ㅠㅠ
콩/ 그런거 같아요. '아프다'고 이야기하는게 힘들더라구요. 마음도 그렇고 손가락이 아파도 마찬가지구요. 일단은 손가락이 낫는데 집중 하기로 결심했음다.
스토커/ 쌩유~
rabbit 2008/05/27 23: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간 제법 흘렀는데 이제 손가락 좀 나아졌나요... 해미는 30대니까 금방 나을 거에요... 난 작년 7월 넘어져서 금간 발목이 아직까지 아파서 아직도 보조대 끼고 있어요...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