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8/04/06 23:02
Filed Under 이미지적 인간

 

아주 오래된 고전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포스터의 타이틀 디자인도 그렇고 약간 물이 빠진 듯함 필름의 색감도 그렇고 스토리 자체도 그렇다. 미국의 유명한 좌파 소설가인 업튼 싱클레어의 1927년작인 "The Oil"을 원작으로 삼아 만들어졌다는 이 영화는 석유자본의 형성과정과 그 속에서 드러나는 너무나 미국적인 종교와 가족의 허울을 까발리는 영화이다.

 

대사 하나 없이 유전을 발굴하기 위한 피와 땀과 죽음을 보여주는 10여분이 넘는 오프닝은 검디 검은 석유 속에서 빠져죽고 떨어져 죽는 노동자들을 보여주며 그 잔인성을 이미지화하는데 성공한다. 정말 노동현장에서 벌어지는 죽음에 대한 최고의 오프닝이라고나 할까? 이후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활활 불타는 유정의 이미지도 이런 잔인한 속성을 드러내는데 주저함이 없다.

 

그리고 이러한 잔인한 자본의 속성을 감추기 위해 가족을 가진, 심지어 어린 아들을 항상 데리고 다니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동원된다. 같이 일하던 동료의 어린 아들을 양자로 삼아서 유전을 개발하기 위해 지역 주민들의 땅을 사들이는 연설에 활용하고 진짜 친동생이 나타나자 한 순간도 떼어놓지 않았던 양아들을 멀리 떠나 보내는 그놈의 핏줄에 대한 집착이 끔찍했다. 가족이라는 틀을 활용해서 장사도 하고 그런 만큼 그 틀을 견고하게 만들고 싶어하는 욕망이 절절히 드러난다고나 할까? 자본주의를 강화하는 기제로서의 가족이 생생하게 살아났다.

 

그리고 또 하나의 갈등의 축은 종교에서 발생한다. 지역주민들의 일상적 이데올로기를 점하고 있는 종교의 속성과 이에 저항해보지만 결국 굴하고 마는 자본. 그리고 그 굴복 속을 결국은 살인이라는 폭력으로 해결하고 마는 자본의 모습이 드러난다. 직접적으로 거래를 요청하는 사제의 선량한 표정을 통해 종교의 위선을 드러내고 사제와 자본가간의 이데올로기 싸움은 폭력적으로 끝난다.

 

자본주의 강화하는 기제로서의 가족과 이와 경쟁 관계에 있는 이데올로기, 그리고 근본적인 자본의 폭력성이라는 것이 절절하게 살아넘치는 영화였다. 그리고 이를 보여주기 위해 적절히 배치된 갈등 구조와 촬영, 정말 끔찍할 정도로 훌륭한 배우들의 연기. 단순한 효과음부터 클래식까지 놀라운 스펙트럼으로 그 긴장감과 잔인함을 높이는데 기여한 라디오 헤드 기타리스트인 조니그린우드의 음악까지.

 

개인적으로 근래 본 몇 편의 영화중 최고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올해 아카데미에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작품상을 탄것은(이것 자체가 좀 놀랍기는 하지만) '데어 윌 비 블러드'의 자본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을 감내할 용기가 아카데미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감독인 폴 토머스 앤더슨의 다음이 기대가 되고 원작 소설도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고두고 고전으로 불릴 영화가 아닌가 싶다.

 

거기, 피가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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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06 23:02 2008/04/06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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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NeoPool 2008/04/07 00: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마도) 올해 최고의 영화일 것 같아요!

  2. not 2008/04/09 01: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보고, 영화보러 갑니다. 좋은 영화 추천 감사합니다.

  3. 뎡야 2008/04/09 13: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아 저도 보고 싶은데 상영관도 적고ㅜㅜ 시간도 안 맞고ㅜㅜ 아우

  4. 해미 2008/04/09 22: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네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잘 하면 향후 5년간 최고의 영화가 될 수도.. ^^
    not/ 보시고 나서 후기 올려주세요.
    덩야/ 저도 그런 상황이 발생할 듯 하여 개봉하자마자 저녁시간쪼개서 밥굶고 봤다는.. ㅠㅠ

  5. 나후 2008/04/13 00: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영화 재밌겠는데... 끝났는감???

  6. 해미 2008/04/13 09: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후/ 끝났을 가능성이 높지. 서울에서 개봉할때도 개봉관이 몇 개 없었거든.

  7. 나후 2008/04/13 21: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렇군... 이런게 있음 연락좀 하시게나... -_- 선배노릇좀 해 주셔...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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