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5/03/02 17:53
Filed Under 손가락 수다방

현대자동차 노보에 쓴 글... (역시 허겁지겁... 왜 이러구 살까? ㅠㅠ)

 

근데 쓰고나니... 마음 한 쪽이 뻐근하고 무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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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2월 22일, 설경에 박하기만 했던 하늘 인심이 모처럼 열려 흰 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배우 이은주씨가 자살을 했다. 우울증 때문이라는 둥, 돈 때문이라는 둥, 영화 노출신 때문이라는 둥 많은 억측과 언론의 호들갑이 있었지만 그녀는 전 국민적인 애도와 아쉬움 속에 영정 사진 속의 환한 웃음만을 남기고 한 줌의 재가 되었다. 그녀가 죽은 후 일주일이 넘게 지난 지금, TV와 잡지에서는 그녀를 기리는 특집 방송과 특집 기사를 내보내고 있고 그녀가 출연한 영화의 재상영이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자살은-이은주씨처럼 유명인이 아니기는 하지만-이미 우리에게 익숙하다.

 

글을 쓰고 있는 오늘, 부산 북구 부구청장이, 납품관련 감사를 받은 포스코 직원이, 억대 빚에 시달리던 30대 회사원이, 친구와 말다툼한 30대 회사원이, 50대 기러기 아빠가, 빚에 쫓기던 20대 여회사원이, 가정 불화를 겪던 30대 주부가, 생활고를 비관한 30대 주부가, 전기요금도 못내던 40대의 건설일용직 노동자가 자살했다는 기사가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2003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하루 30명이 자살로 세상을 떠났다. 지금도 평균 48분마다 한명씩 목숨을 끊고 있다. 이미 자살은 암, 심장질환, 교통사고처럼 우리나라 10대 사망원인이 되었다. OECD보건통계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수가 18.1명으로  82년의 6.8명과 비교, 거의 3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은주씨가 자살을 했던 2월 22일, 부당영업을 강요당하고 회비미수금 300만원 대납 요구에 시달리던 24살의 학습지 여교사가 세상을 떴다. 이는 작년 수천만원에 달하는 회비 대납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 여교사에 이어지는 죽음으로 충격을 던져 주었다. 비정규직들은 재계약이 안 돼서 죽고,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분신한다. 산재 노동자는 허리가 너무 아파서, 또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가 없어서, 요양 종결 압력에 달리는 차로 가로수를 들이받고, 병원 계단에서 목을 매고, 아파트에서 몸을 날린다. 임금체불을 시달리던 이주 노동자는 달리는 지하철에 몸을 던지고,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던 검찰직원은 호텔에서 목을 매고, 구조조정에 시달리던 증권 노동자는 연달아 목숨을 끊는다. 2004년 현대자동차에서도 산재 치료 중이던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 있었다. 자살뿐만이 아니다 2004년 과로사로 세상을 떠난 현대자동차의 동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글로 다 쓰지 못할 정도로 이 땅의 민중들은 빚에 쪼들리고, 구조조정에 시달리고, 과도한 노동강도에 시달리고, 아픈 거 제대로 치료 못 받고, 비정규직이라서, 이주 노동자라서 세상을 뜨고 있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으로 탐욕의 배를 채우고 있는 자본이 이 땅의 민중들을 빈곤으로, 불안정 노동으로 그리고 불건강으로 내 몰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한데 국회는 비정규직의 전면 확산을 위해 파견법 개악안을 통과 시키려고 하고 있고, 자본은 상시적인 구조조정의 칼날을 들이대고 있고, 정부는 자본의 자유를 위해 FTA를 비준하고, 경제자유구역과 기업도시를 만들고 있다. 산재노동자들에 대한 인정과 치료에 대한 축소 시도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여기에 민주노총 지도부는 탐욕의 배를 불려가며 노동자들을 가루가 되도록 쥐어짜고 있는 자본과 사회적 교섭을 하겠다고 하고 있다.

 

이것은 과로사로 죽임을 당하는 것도 모자라 이젠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드는 것이다. 이어지는 죽임의 행렬을 막는 길은 많지 않다. 비정규직을 철폐하고, 노동강도를 완화 시키고, 노동자들의 단결된 힘으로 자본과 정부의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막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가족이, 동료가, 그리고 이웃이 과로사로 죽거나 자살을 택하게 하는데 일조하는 것이다. 사회적 교섭의 인정은 이어지는 죽임에 가속도를 붙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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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3/02 17:53 2005/03/02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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