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5/11/17 00:14
Filed Under 이미지적 인간

영화가 시작하는 순간부터 흘러내리기 시작한 눈물은 멈출줄을 몰랐다.

 

일요일 상영에 하이텍 언니들과 공대위 식구들이 다 함께 가기로 했는데, 일요일 일정이 불안해서 혼자 노동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았다.

 

지난 월요일...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 촛불 밑에서 회의를 해야 했던 농성장에서 술 기운을 빌려 겨울옷과 침낭으로 돌돌말린 누에고치 마냥 잠이 들었고, 그 여파로 감기가 걸려 고생하고 있었다.

 

여름에는 우리가 농성하는 날마다 그렇게 비가 오더니만, 이제는 바람이 오즈의 마법사에서 돌풍에 집이 휘감겨 올라간 것처럼 우리의 위태위태한 농성장을 위협하듯 분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항상 새벽을 깨우던 그 빌어먹을 놈의 덤프트럭 소리가 유난히 크게 느껴지는 화요일이라고 생각했다. 노동자대회때의 짐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너무 추워 침낭이나 겨울옷이 없이는 앉아 있기조차 힘든 농성장에 있으면서 마음이 더 추웠다.

 

오늘 농성 160일차 수요집중집회를 하고 방용석 이사장의 집앞까지 선전전과 행진을 하면서도 유난히 바람이 차다고 느꼈었다. 갑자기 들이닥친 겨울이 우리네 마음을 할퀼만큼 잔인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상영시간에 맞춰 아슬아슬하게 완성해 온 따끈따끈한 테입은 혜리 감독의 이 투쟁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었다.

 

노조탄압공장이라는 간판이 보이는 '수출의 다리' 옆에 있는 하이텍 공장에서 시작한 카메라는 언니들 하나하나를 그리고 투쟁의 과정 힘차게 연대했던 동지들의 얼굴 하나하나로 이어지고 있었다.

 

첫 장면이 시작하면서부터 흐르기 시작한 눈물은 쉽사리 멈추지를 않았다. 지난 봄, 투쟁의 시작부터 농성 160일에 접어든 지금까지... 우리를 스치고 간 또는 때리고 간 많은 사건들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재연되기 시작했다.

 

하이텍 언니들의 모습과 우리의 모습을 곳곳에서 확인하면서 필름에 담기지는 않은 많은 이야기와 고민, 눈물과 아픔이 새록새록 생각났다. 그 상황에 내가 있었던 자리, 들은 이야기, 한 이야기, 그리고 동지들의 모습...

 

내 머릿속 기억의 편린들이 생생이 되살아나 둔감해져 가고 있던 머리를, 그리고 가슴을 자극하는것만 같았다. 그렇게 많은 과정을 함께 겪어왔고, 많이 힘들었고, 많이 아팠다. 그리고 이제, 노무현 정권 퇴진이 구호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오늘... 농성장에서는 이후 투쟁방향과 전술에 대한 회의가 있다. 거기서 어떻게 결정이 되든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길을 피해가거나 돌아갈 생각은 추호도 없다. 아마도, 지금까지 버텨온 동지들 모두가 그러할 것이다.

 

일요일... 언니들과 공대위 동지들이 영화를 보러온다. 안 봐도 뻔하다. 그 동안 너무 많이 울어서 눈물이 말라버렸다는 언니들이지만 아마도 한참을 울고 또 울게 뻔하다. 스크린에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는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는 경험이기도 할텐데, 아마도 언니들에게는 그 '재미'보다 '감동'이 더 클거 같았다.

 

요새... 언니들이 많이 힘들어 하고 있었다. 공대위 동지들도 막막함에 많이 지쳐들 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마도 혜리동지의 '영화'는 '활력소'를 불어넣는 역할을 할 수 있을거 같다. 영화속에는 우리의 투쟁의 성과가 살포시 녹아 있었다. 그런 성과들을, 그리고 그간의 과정을 확인하면서 아마도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인 길'을 뚜벅뚜벅 갈 것이다.

 

참세상 동지들과 혜리 동지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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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17 00:14 2005/11/17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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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재유 2005/11/17 15: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논문이 어쨌거나 12월 초이면 매듭을 짓게 되니까, 꼬옥 하이텍 찾아가 뵙겠습니다. 해미님 글을 읽으니까 하이텍 동지들의 감회가 어떨지 조금은 이해가 갑니다. 같이 못해서 늘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2. 해미 2005/11/18 08: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재유/ 흠.. 좋으시겠네요. 근데 어떤 논문인지 갑자기 궁금해 진다는...ㅋㅋ

  3. 이재유 2005/11/18 15: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학위 논문 제목은 <맑스의 계급의식 형성 장소와 보편화에 관하여>입니다. 졸고라서 창피하네요*^^*... 그래도 제본 나오면 꼬옥 드립겠습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4. toiless 2005/11/20 00: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앗. 포스트를 남기셨군요. 보러 와 주셔서 감사... 아쉬움이 많은 작업이었지만, 모두에게 힘이 좀 되었으면...

  5. 해미 2005/11/21 08: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toiless/아마도, 모두에게 큰 힘이 되었을 거예요. 홧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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